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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이주! 찬성 VS 반대] 농사 해봤더니 쉽지 않않다
-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모두 한 번 쯤 꿈꾸는 것 중 하나가 전원생활이다.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 소리에 눈 뜨고, 지나는 바람이 건네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계절이 그린 그림에 취하고 …. 그래서 필자도 경치가 좋은 양평에 깨 밭을 사서 깨가 쏟아지게 농가주택을 지었다. 집을 설계하며 어디에 무엇을 둘까, 신바람 나는 고민으로 행복했다. 무슨 나무를 심을까, 화단은 어떻게 가꿀까, 채마밭엔 무엇을 심을까? 밭 가운데 지하수가 나오게 해서 채마밭에서 자란 열무와 배추 오이를 따서 바로 씻어 넣고 김치를 담그면 그리 사근사근하고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풋고추와 깻잎 상추 그 외 자생하는 민들레로 쌈을 해 먹고 취나물 도라지 더덕까지 식탁에··· 산천이 숨 쉬고 있었다. 고추장, 된장 만 있으면 반찬거리는 지천이라 풍요로웠다. 밭에 자라는 토마토는 밭을 일구다 목이 마르면 따 먹고, 수박도 참외도 몇 구루 심고 단 호박은 울타리를 타고 오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단감이 익고 호두나무에도 열매가 맺히고 계절마다 열매로 분주했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은 땡감을 쳐다만 보아도 행복했다. 두 마리 개와 같이 노는 재미도 있었다. 텃밭에 있으면 놀자고 와서 제 등을 비비곤 했는데 힘도 장사라 밭을 망가트리곤 벌을 서기도 했다. 그런데 힘이 부쳐갔다. 풀이 그렇게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지, 벌레가 순식간에 나의 피부를 곰보빵처럼 만드는지 몰랐다. 비오면 주변을 살펴 흙을 보충하고, 낙엽 쓸어 담기가 전투작전을 방불케 하고, 눈 오면 치우는 일이 버겁고, 말벌을 조심해야 하고 가끔은 뱀이 현관에 들어와 있고 밤이면 산에서 뭔가 내려와 등불 같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곤 했다. 낮이나 밤이나 적막하기가 산 속 같았다. 전원에 살면 신선처럼 여유 있으며 느린 삶이 영혼을 살찌우리라 했지만 실상은 쓸쓸했다. 마음 맞는 친구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형제도 바빴다. 제주도는 따뜻해서 사계절 밭에 상추와 배추가 자란다. 생선 좋아하는 사람에겐 낙원같이 느껴질 것이다. 형제들이 함께 간다 해도 친구들까지 몰고 갈수는 없는 거리이다. 잠깐 머무르며 즐기는 곳으로는 좋겠지만 이주는 심한 외로움을 몰고 올 것 같다. 젊어서 힘도 좋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다면 시도할 만도 하다. 도전하기엔 기력도 부치고 머리도 늦게 돌아가는 우리 시니어들에겐 모험이 될 것 같다.
- 2016-06-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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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 매화꽃과 함께 광양 봄 나들이 100배 즐기기
- 매화꽃은 가장 먼저 봄을 알려온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 하여 ‘설중매’라고 부르기도 한다. 회색빛 도시, 겨울옷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오아시스처럼 섬진강변에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긴 겨울에 숨이 막힐 듯 답답한 사람들은 도심을 벗어나 매화꽃을 찾아 장거리 여행 채비를 서두른다. 타 지역은 아직도 썰렁한 산하지만 섬진강 주변으로는 매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청매실 농원엔 눈이 내린 듯 흐드러지게 매화꽃이 만발하고 일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나겠지만 3월 중순쯤 섬진강가의 온 마을에는 매화꽃이 만발한다. 길거리에도, 집 뒤뜰에도, 그리고 강변 옆으로도 꽃 천지다. 허허로운 산야에 핀 흰 꽃은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야 제멋이 난다. 꽃잎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만 꽃이 작고 나무줄기가 있어서 한 그루만 모여 있으면 제빛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화마을로 알려진 전남 광양시 다압면 도사리, 삼벅재 골짜기로도 부르는 이 마을 농가들은 산과 밭에 곡식 대신 모두 매화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하얗게 만개한 매화꽃이 눈꽃처럼 휘날리고 하얀 꽃구름이 골짜기에 내려앉은 듯 장관을 이룬다. 꽃이 만개하면 으레 매화 축제가 열린다. 매화꽃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청매실 농원이 가장 유명하다. 수십년 묵은 매화나무 아래, 청보리가 바람을 타는 농원 중턱에 서면 굽이져 흐르는 섬진강 너머 하동 쪽 마을이 동양화처럼 내려다보인다. 매화꽃 군락을 감상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도 없지만 해마다 몰려드는 인파 탓에 교통체증과 사람들에게 치인다. 초보 여행객들이 아니라면 이 북적거림을 피해 섬진강 하류를 기점으로 강변 드라이브 길로 나설 것이다. 그곳 또한 아름다운 여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진월에서 신아리, 신구리, 월길리 등 낯선 이름의 마을을 지나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꽃이 도로 옆을 화사하게 장식해 인적 드문 산간지역에 아름다운 전경을 만들어냈다.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은 소를 이용한 밭갈이에 여념 없고 산등성이에도 무심하게 하얗게 봄꽃을 피워내고 있다. 잠시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열어놓은 차창 밖으로 진하면서도 달콤한 매화향이 코끝을 감싸온다. 윤동주 시인의 애련한 흔적이 남은 망덕포구엔 벚굴이 한창 이어 발길을 멈추는 곳은 섬진강 물줄기가 바닷물과 조우하는 망덕포구다. 배알도라는 자그마한 섬 앞으로 띄엄띄엄 배들이 정박해 있고 횟집이 길게 이어진다. 섬진강 끝자락에 남은 포구라는 것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곳엔 윤동주(1917~1945)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 포구는 매력적이다. 그저 시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싸하다. 측은지심에 가슴이 저려 온다. 일제 식민지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과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에 견주어 노래한 민족시인. 일제강점기에서 피어보지도 못한 채 사그라진 시인의 인생을 어찌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리디시린 삶의 자그마한 흔적이 이 망덕포구에 있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를 보관했던 낡은 정병욱 가옥(근대문화유산 제341호, 1925년 건립)과 시비가 있다. 횟집 즐비한 포구 앞에, 인기척 없는 가옥 한 채가 썰렁하게 있다. 굳게 닫힌 유리창 너머로 윤동주 시인과 친구의 학창 시절 얼굴이 해맑게 미소 지으며 반긴다. 마루 한쪽이 열려 있고 ‘원고가 숨겨져 있던 곳’이라는 안내 글자가 있다. 어떤 연유로 이곳에 윤동주 시인의 원고가 숨겨져 있었을까? 시인이 일본유학을 떠나기 전, 3부의 원고를 만들었다. 1부는 자신이, 1부씩은 은사 이양하 교수와 절친한 친구이자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맡겼다. 정병욱이 학병으로 끌려가면서 광양의 어머니에게 원고를 맡긴다. 어머니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집 마룻바닥 밑에 원고를 숨기고 보관해왔다. 무사히 돌아온 정병욱은 1948년 유고시집 를 발간하게 된 것이다. 주옥 같은 윤동주 시인의 시가 이렇게 알려지게 된 데 큰 기여를 한 집인 게다. 광양시에서는 윤동주, 정병욱 작은 기념관, 도서관, 문학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소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또 윤동주 백일장, 문학상을 추진하는 등 윤동주 시인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할 생각이다. 또 이 봄, 망덕포구를 찾아볼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벚굴이다. 1~4월이 제철인 벚굴은 이곳이 아니고서는 먹을 수가 없다. 벚굴은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짜지 않고 굴의 비릿한 맛이 적다. 거기에 일반 굴에 비해 보통 10배 정도나 크다. 서너 개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다. 동백꽃 흐드러지게 핀 옥룡사지에서 즐기는 봄날의 오수 광양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백계산(505m) 자락의 옥룡사지다. 주차장에서부터 걸어가야 한다. 도로 옆, 길목(해발 403m)에는 대규모(약 2100평) 동백군락지(도지정 기념물 12호)가 있다. 온 산을 동백나무가 에둘러 감싸고 있다. 신라 경문왕 4년(864), 도선국사가 옥룡사를 창건하고 풍수지리설에 따라 보호수를 심었다는 전설이 흐른다. 절을 세울 때 땅의 기운이 약한 것을 보충하려고 꾸몄으며, 제자들의 심신수련을 위해 차밭을 일궜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이 동백군락지는 ‘아름다운 숲’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그곳에 피어난 동백꽃은 따사로운 봄날과 잘도 어울린다. 동백숲길에 폭 빠져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금 오르면 옥룡사지(사적 제407호)다. 전설에 의하면 이 절터는 큰 연못이었는데 9마리의 용이 살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에 도선국사가 용을 몰아냈는데 유독 백룡만이 말을 듣지 않자, 지팡이로 용의 눈을 멀게 하고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쫓아낸 뒤 숯으로 절터를 닦아 세웠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이 옥룡사에서 30여년 동안 홀로 앉아 말을 잊고[宴坐忘言] 지내다 입적했다. 조선 후기에 화재로 타 버려 폐사된 후 긴 세월 절터만 남아 있다. 대신 우측 언덕을 넘으면 도선국사비와 부도탑을 만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초에 비석이 유실되었으나 2003년 본래 자리에 복원되었다. 또 이곳에서 산 길로 거슬러 오르면 동양 최대의 청동약사여래불이 서 있는 운암사를 만나게 된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이야기 도선국사(827~898) 하면 고로쇠 수액의 전설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참선하다 몸을 일으키려던 도선국사. 무릎이 금세 펴질 리 만무하다. 도선은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는데 나무가 부러졌고, 부러진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나왔다. 그 물을 마신 도선의 다리가 펴져 ‘뼈에 이로운 물’이라 하여 ‘골리수(骨利水)’로 불렀는데, 나중에 고로쇠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마다 경칩이면 백운산에서 고로쇠 약수제(3월 5일)와 축제를 연다. 어쨌든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동백나무, 녹차나무가 남아 옛터를 지키고 있다. 또 옥룡사지 가는 길목에서 중흥사(061-763-6655)를 찾아도 좋다. 중흥산성 3층석탑(보물 112호)과 중흥사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도 유형문화재 142호)이 있다. 근처 도선국사마을(061-762-6716, dosun.go2vil.org)도 재미가 있다. 다도, 도자기, 염색, 전통 손두부 만들기 등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전통농촌테마마을. 특히 물 맛이 좋아 원님 전용 식수로 애용되었다는 사또약수터가 있다. 이 약수를 이용해 만든 손두부를 농가에서 판다. Travel Tip! 가는 길 서울 출발 → 호남고속도로 → 익산JC → 완주JC에서 순천 광양 방향 간 고속도로 이용 → 광양IC → 광양읍에서 매천 유적지를 보고 10여분 가면 옥룡면 소재지다. 옥룡면에서 광양읍내로 다시 나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월IC로 나오면 망덕포구를 만나기 쉽다. 그리고 하동 쪽으로 가면 섬진강변을 만나고 근처에 청매실 농원이 있다. 청매실 농원부터 여행을 하려면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구례를 거쳐 들어오는 것이 편하다. 숙박정보 백운산 자연휴양림(061-763-8615, www.gwangyang.go.kr)은 울창하고 소나무 숲이 가히 장관이다. 특히 휴양림의 황톳길은 흙에 들어 있는 원적외선이 뿜어져 나와 맨발로 걸으면 혈액순환에 큰 도움이 된다. 읍내 덕계리(순천, 보성 가는 방면)는 모텔촌이다. 주변 연계 여행지 광양 시내에는 매천생가와 유적공원, 장도박물관(061-762-4853, www.jangdo.org)이 있다. 어치계곡, 동곡계곡, 금천계곡, 성불계곡 등은 빼어난 계곡미를 자랑한다. 별미집 광양읍내엔 불고기 특화거리가 있다. 매실한우(061-762-9178), 3대광양불고기(061-762-9250), 조선옥숯불갈비(061-792-8559), 금목서(061-761-3300) 등을 꼽는다. 봉강면의 지곡산장(061-761-3335, 닭숯불구이)이 아주 괜찮다.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철에는 미리 예약하면 음용이 가능하다. 그 외 이 계절에는 광양의 계곡 주변 민가 식당에서 고로쇠와 함께 닭숯불구이를 먹을 수 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6-03-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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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와 함께1] 손자바보의 행복
- ‘행복한 노후’ 즉 은퇴 이후 시작되는 ‘시니어 라이프’를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한 조건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의식 구조 속에서는 노후 생활의 행복은 자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특히 자신의 분신인 손자들을 자주 만날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특별히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 나의 분신, 현우와 승우 제게는 지금부터 4년 여 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두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녀석들이야 서로 4촌 간이지만, 저로서는 마치 쌍둥이 손자를 안은 느낌이었습니다. 두 아들 집을 왔다갔다 하며 녀석들을 어르기도 하고, 사진도 찍어주고 하던 어느 날, 마침내 대오각성(大悟覺醒)의 순간이 다가오더군요. “두 손자 현우(炫宇)와 승우(承宇)는 내 피를 받아 세상에 나온 나의 분신들이며,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는 이 녀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중대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밤 안으로, ‘앞으로 살면서 손자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두 손자들은 제가 앞으로 많은 시간과 정성과 마음을 쏟아서 사랑해 주어야 할 제 인생의 소중한 열매들이니까요. 나중에 아들, 며느리들과도 협의를 거쳐 완성한 리스트 가운데는 ‘두 손자들과 몽골의 초원에 누워 밤하늘의 별 바라보기’ ‘유치원 시절부터 두 손자들에게 한자 가르치기’ ‘사진을 바탕으로 한 손자들의 육아일기 쓰기’와 같은 항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 뒤로 손자들에게 가급적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손자바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녀석도 유달리 할아버지를 좋아해 주었으며, 특히 먼저 태어난 현우는 집도 가깝고 해서 두 돌이 되기 전부터 종종 제 곁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요. ◇ 블로그에 올리는 두 손자의 육아일기 요즘도 변함없이 수시로 손자들의 사진을 찍고 간단한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는 일을 지속하고 있는데, 앞으로 2년 쯤 후에 만약 여건이 된다면 ‘바보할배의 육아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볼까 생각중입니다. 이 목표가 성사된다면 아마도 손자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손자들이 가슴 속에 아름다운 꿈을 간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그리고 손자들을 정서적인 사람으로, 또 배려심을 갖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특히 노력을 해 왔습니다. 어린이집을 거쳐 금년에 유치원에 들어간 손자 녀석들이 지난 7월 말에 난생 처음으로 방학이란 걸 했습니다. ◇ 농가주택에서 두 손자를 위한 캠핑 두 손자의 아비, 어미들이 한참 전부터 두 아이의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많은 생각들을 하기에, 제가 아이들에게 춘천 농가주택에다 여름캠프를 만들어서 일주일쯤 데리고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얘기했지요. 일단 두 손자 녀석들은 서로 무지하게 좋아하는 사촌 형제와 일주일 동안을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잔뜩 흥분을 해서 어쩔 줄 모르더군요. 그리고 녀석들을 보내는 입장의, 최근에 둘째 아이를 낳아서 육아에 여념이 없는 둘째 며느리 현우어미도, 직장생활을 하는 큰며느리 승우어미도 큰 걱정을 하나 덜어낸 홀가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손자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 나무 그네와 수영장 텃밭에다 벤치형 나무 그네를 사다가 설치했고, 한쪽으로는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놀 수도, 잘 수도 있도록 평상을 만든 다음 평상 위에 두꺼운 비닐 장판을 깔았습니다. 또 전기선을 끌어다 텐트 안에 예쁜 전구와 함께, 모기나 나방을 잡는 ‘블랙홀’이라는 기구도 설치했습니다. 또 장난감 가게에 가서 전시용으로 사용하던 미니 플라스틱 수영장을 사다가 낮은 평상 위에 설치를 끝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중간에 무료하지 않도록 수영은 물론 물총, 비눗방울 기구, 그리고 종이찰흙 등 자질구레한 장난감 소품들도 몇 가지를 사다 놓았지요. 마침내 7월 24일(금), 두 손자를 데리고 춘천으로 와 아내와 같이 상당 기간 연구를 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여름방학 캠프를 녀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녀석들의 반응이 어땠냐고요? 상상 이상이었지요. 아이들 말로 ‘뿅!’ 가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캠프 생활에 녀석들은 잘도 적응해 주었습니다. 해주는 대로 밥도 척척 잘 먹었습니다. 특히 야채 종류는 입에 대기도 싫어하던 승우 녀석이 사나흘 지나더니 밥상 앞에 앉으면 스스로 손바닥에 상추 한 잎 올려놓고, 그 위에 밥과 삼겹살 한 점, 쌈장을 얹은 다음 입속으로 밀어넣고 우걱우걱 씹는 모습이란… 세상에 그보다 더 할아버지,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습이 또 있을까요. 밤이면 두 녀석이 제 양 옆을 차지하고는 제 팔을 베고 누워서, 제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꿈나라로 빠져 들어가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들… 그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 또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8월 1일 저녁까지, 8박9일에 걸친 손자들의 여름캠프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습니다. 일주일을 목표로 하기는 했지만, 일주일을 넘어 9일 동안을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지내주었습니다. 집에 갈 때도 얼마나 서운해하며 돌아갔는지 모릅니다. 손자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 이틀 정도는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늘어지더군요. 그러나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피로였습니다. 그 모습을 SNS를 통해서 본 어떤 분이 “손자를 위해 희생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 봐야 학교 들어가고 나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 건 그걸로 끝인데, 왜 그렇게 애를 쓰느냐”고 물으시더군요. 삶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참 이기적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투자하지 않고,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행복이란 게 과연 있을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를 자주 못 본다고 해서, ‘9일 간의 캠프생활’이란 그 아름다운 기억마저 녀석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 버리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분의 글에 이렇게 답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투자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을 겁니다. 저는 손자들과 함께하는 행복이란 할아버지, 할머니의 수고에 대한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손자들이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바탕으로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한 어떤 투자도 다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행복하니까요.” >>>글·사진 조용경 전 포스코엔지니어링 부회장
- 2015-09-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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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세대 이야기] 한국전쟁의 악몽을 딛고선 ‘호랑이들’
- 그날 동네 꼬맹이들은 죄 동구 밖 팽나무 숲 그늘에 모였다. 스무 명은 족히 될 성싶었다. 읍에서 나왔다는 아저씨 둘이 아이들을 줄지어 앉혔다. 자 자, 꼬맹이들은 앞쪽에 앉고 큰 놈들은 뒤쪽에 앉아, 알았지? 이 더운 날 흰 와이셔츠에 양복저고리까지 걸친 걸 보면 아저씨들은 분명 읍내의 큰 교회에서 나온 이들이 분명했다. 글 최학 소설가 / 우송대 교수 일러스트 윤민철 작가 그 더운 여름날 팽나무 숲의 기억 전에도 이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앞으로 열심히 교회에 나오라는 아저씨들 따라 찬송가 몇 구절을 부르고 나면 공책과 연필, 운 좋으면 초콜릿까지 얻어 걸릴 수 있었다. 땅바닥에 퍼질고 앉은 아이들이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아저씨들을 보고 있는 사이 한 아저씨가 먼저 왜 이리 덥지? 하면서 천천히 양복저고리를 벗었다. 그 순간 아이들은 모두 제 눈을 의심했다. 그리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얼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아저씨의 어깨를 한 바퀴 두르고 겨드랑이 아래로 내려온 건 벨트. 가죽 벨트에 달린 권총집이며 거기 삐죽이 고개를 내민 빛나는 권총 손잡이까지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뒤이어 다른 아저씨도 저고리를 벗었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권총이었다! 만화나 영화에서만 봤던 권총의 실물을 내 동네에서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볼 줄은 아무도 상상치 못했다. “미군 열차에 돌멩이 던진 놈, 누구야?” 두 아저씨가 우리들 앞에 굳건히 다리를 벌리고 섰다. 좀 전 같이 웃음 띤 얼굴이 아니었다. 노여움을 가득 묻힌 낯빛, 무서운 눈초리... 금방이라도 빵빵, 우리를 향해 총을 쏠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움켜쥔 채 바르르 몸을 떨었다. 요란한 매미소리도 귓전에 들리지 않았다. 한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경찰서에서 나온 아저씨들이다. 우리가 왜 너희를 여기 불러 모았는지 알겠지?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모조리 경찰서로 끌고 갈 것이다. 알겠어? 응, 그저께 저녁 여기 동네 앞을 통과하는 미군 열차에 돌멩이 집어 던진 놈, 누구야? 돌 던진 놈 있지, 어느 놈이야?”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옆 자리 경렬이가 바르르 몸을 떨었고 내 앞의 용수가 흠칫 놀라며 어깨를 곧추세웠다. 쟁쟁한 적막이 흐르는 사이 다른 아저씨가 말했다. “허, 요놈들 봐라. 말을 않겠다 이거지?” 그가 가볍게 오른손을 옮겨 제 권총집을 쓰다듬는 순간이었다. “얘가 그랬어요! 얘가 돌 던졌어요!” 누군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뒤쪽이었다. 아이들의 눈이 그쪽으로 쏠렸다. 등하교 때마다 곧잘 우리에게 제 책보자기를 떠맡기던 민호였다. 그가 온몸을 떨면서 제 옆의 경수를 가리켰다. “넌 안 그랬니? 너도 했잖아! 얘, 얘도 돌 던졌어요. 나만 아니에요!” 튕기듯 일어난 경수는 민호뿐만 아니라 제 앞뒤 애들까지 한꺼번에 짚었다. 그게 신호였다. 스무 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발광하듯 제 동무들을 고발하기. 마침내 내 단짝 경렬이 나보다 먼저 나를 가리켰고 나 또한 약간이라도 늦으면 죽을세라 앞의 용수를 지적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으며 이내 팽나무 숲은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묻혔다. ‘기브 미 쪼꼬레또!’를 외치며 자란 세대 내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산골 마을 앞에는 경부선 철길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해질 무렵이면 미군들을 잔뜩 태운 군용열차가 마을 앞을 통과했다. 열차가 오기 전부터 철둑 이편저편에 서 있던 마을 아이들은 열차가 다가오기 무섭게 두 팔을 흔들어대며 ‘기브 미 쪼꼬레또!’를 외쳐댔다. 그러다보면 실제로 열차에서 초콜릿이며 오렌지가 던져지기 일쑤였고 때로는 뚜껑을 따지 않은 C레이션이 통째로 얻어 걸리는 횡재를 할 때도 있었다. 그 무렵 난생 처음 본 일회용 종이컵, 플라스틱 스푼 등에 대한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열차를 탄 미군들의 숫자며 그들이 던져주는 ‘물건’의 양이 눈이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동네 아이들은 예사로 기차를 향해 팔을 쭉 뻗으며 감자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미군들 또한 감자로 응수해 오자 급기야 돌멩이를 던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형사들이 돌아간 뒤, 아이들은 누구 하나 동무를 찾는 법 없이 뿔뿔이 흩어졌으며 이후 골목을 달음박질하는 아이들의 소리조차 한 달 넘게 사라졌다. 아이들보다 닭이 더 많았던 교실 많은 또래의 아이들이 통학 열차를 타고 대구를 내왕하며 중학교를 다녔지만 나는 폐광이 있는 산 아래의 농림학교에 다녔다. 비인가 중학 과정의 이 학교의 교실엔 아이들 숫자보다 닭들이 더 많았다. 아이들은 영어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추 모종내기, 깻잎 따기, 염소 키우기, 하천 부지 개간에 동원됐으며 따로 닭들을 책임진 나는 틈날 때마다 사료를 주고 닭똥을 치웠으며 자전거 뒷자리에 계란을 싣고 자갈 많은 신작로를 달렸다. 볕 좋은 날이면 유치환 시집이며 봔 루운의 같은 책을 들고는 닭들을 피해 폐광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일제 때 코발트를 캐냈다는 이곳엔 고대의 성전 같은 건조물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고 그 아래에 끝도 깊이도 알 수 없는 캄캄한 갱들이 미로처럼 뻗어 있었다. 더러 애들과 함께 관솔불을 켜서 갱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인체의 해골이며 뼈다귀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 보도연맹 사람들을 집단으로 학살한 현장이었다는 사실은 훨씬 뒤 내가 고향을 떠난 뒤에 알았다. 명색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고 입을 것이 마땅찮았으며 앞날은 암담하기만 했다. 양은그릇에 담긴 흰 쌀밥을 간장에 비벼 먹는 꿈을 꾼 날에도 나는 계란을 싣고 읍내에 갔으며 구판장에 그것을 넘긴 뒤에는 또 하릴없이 4학년 때 짝꿍이었던 수리조합장 딸이 살고 있는 기와집 근처를 몇 바퀴 돌다가 호롱불 켜진 대밭 아래 초가로 돌아와야 했다. 시간 맞춰 역으로 가면 통학열차에서 내리는 교복 입은 그 아이를 먼 데서라도 지켜볼 수 있었지만 내겐 그럴 용기도 없었다. 무작정 상경해 고생 끝 대학 입학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증을 쥔 뒤 나는 무작정 서울로 가는 밤 열차를 탔다. 그리고 그날 내 옆자리에 앉았던 못된 아줌마를 지금도 잊지 않는다. 점심 저녁을 건너 뛴 아이가 혼자 꼬르륵 소리를 내며 옆에 앉아 있는데도 그녀는 삶은 계란 네 개를 차례차례 혼자 다 먹었다! 다음 날 아침 용산역에 내린 나는 멀리 인왕산만 바라보며 독립문까지 타박타박 걸어 형님의 셋방을 찾아 들었다. 형들 덕에 서울의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생애의 행운이었다. 간신히 교복을 걸치고 책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녔지만 아직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처지는 아니었다. 공부와 무관하게 대학 진학을 할 만한 집안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더러 글을 쓰기도 했지만 문학을 해보겠다는 뜻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등록금 적은 국립대학 역사학과를 지망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지곤 낭인 생활을 했다. 입시학원에 가는 대신 2본 동시상영의 싸구려 영화관을 전전했으며 노모의 성화에 못 이겨 두 차례 공무원 시험을 보기도 했다. 다음해 간신히 대학에 적을 올려놓고는 가정교사, 무허가 학원 선생 등을 하며 학비를 벌었다. 대학은 학기 중에도 수시로 교문을 닫았기에 출석일수를 걱정할 일은 드물었다. 간혹 선배들에게 끌려가서 통일, 노동, 매판자본 등등의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내 앞가림도 못하는 주제에 그런 거창한 담론들이 내 귀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지하 유인물을 펴낸 주모자로 오인 받아 성북경찰서 취조실에서 하룻밤을 자는 때에는 까닭 없이 그 어린 날 팽나무 숲의 광경이 생생히 살아났다. 더 이상 형사들이며 권총조차 무섭지 아니한데 수치심이 온몸을 감싸왔다. 갈래머리를 한 뽀얀 피부의 조합장 딸아이가 보고 싶었다. 마흔넷에 청상이 되어서도 아들 아홉을 홀로 키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그해 가을, 종로 3가의 한 찻집에서 그 여자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딴 애들 몰래 지우개를 쥐어주던 그녀의 손길 하나까지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는 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대학 강단 떠난 후 소설에 새삼 감사 몹시 소설이란 걸 쓰고 싶었던 것이 그 즈음이었던 듯싶다. 정한숙 선생 담당의 ‘소설창작실습’의 과제를 닷새 만에 완성했다. 바닷가 결핵환자 요양소가 이야기의 주 무대로 돼 있지만 거기엔 내 고향의 코발트 광산은 물론 동구 밖 팽나무 숲과 조합장 딸아이까지 다 들어가 있었다. 생전 처음 단편소설의 분량을 채운 그 소설이 그해 겨울 한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작이 돼 버리고 말았다. 올해가 내 정년이다. 8월 말일자로 나는 34년간 몸담았던 대학의 교단을 떠나는 것이다. 친구들 대부분이 50대 초 중반에 직장을 떠난 것에 비하면 나는 ‘참 길게도 해먹은’ 셈이다. 쥐뿔의 학위도 없는 내가 일찌감치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었던 것도 다 문학 덕이었다. 스무 해 넘게 문학 강의만 해 오던 내가 정년 10년을 남겨 놓고는 중국을 비롯한 외국 학생들만을 상대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수업했으며 그 인연으로 중국 백주(배갈)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갖게 되었다. 백주 관련 책을 내고 바깥으로 백주 강의를 다닌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난해에는 두 나라 관계 인사들과 함께 ‘한중백주문화교류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이기는 하지만 내가 이렇듯 중국을 새롭게 만난 것도 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가 된다. 퇴직 후에도 나는 서울 집에만 머물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계룡산 줄기 끝에 앉은 농가 한 채를 빌려 일주일에 사나흘을 거기서 지내기로 한다. 텃밭을 가꾸고 소설을 쓰고 또 좀 더 깊이 중국을 공부하면서 내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부끄럽고 고단했던 내 어린 날의 시간들이 내 인생의 남은 세월에서도 각성과 용기의 원천이 돼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최 학 1950년 경북 경산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문단 등단. 1979년 한국일보 장편소설 공모에 역사소설 ‘서북풍’ 당선. 1981년~현재 우송대 교수. 고려대문인회 회장 역임. 현재 한중백주문화교류협회 회장. / 저서: 창작집 ‘식구들의 세월’ ‘손님’ 등. 장편소설 ‘미륵을 기다리며’ ‘화담명월’ 등. 산문집 ‘시가 있는 간이역’, ‘배갈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 ‘니하오 난징’ 등.
- 2015-03-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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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CUS] 30·40·50·60대가 뭉쳤다… 친환경 토마토 박사 5인조 부대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산과 물의 기운이 좋아 전국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해서 ‘박사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에 ‘친환경 토마토 박사’ 5인조가 떴다. 친환경 토마토만큼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다는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성원경(61), 김남규(61), 김선복(58), 허우석(40), 박지훈(31)씨. 독수리 5형제를 떠올리기엔 나이 차가 꽤 나는 이들은 일에서만큼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다. 세대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요즘. 이와는 반대로 세대차가 나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많고,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준다는 그들을 만나 보자. 3060 청장년 유니온 "함께라면 자신 있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작목반장인 장년 3인방은 친환경 토마토 재배분야를, 청년 2인방은 유통분야를 전적으로 맡고 있다. 본래 산양삼 재배와 유통을 해왔던 두 청년은 토마토 재배에 대해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토마토 농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작목반장들은 애써 수확한 토마토를 제 값어치을 받지 못하고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협업을 시작하게 됐고, 질 좋은 상품과 실속 있는 유통망을 갖춘 완전체를 이루게 됐다.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은 최대로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공유하며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갖춘 그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그야말로 천하무적 5인조 부대가 탄생한 것이다. 30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세대차가 주는 의미 함께 일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다섯 명 모두 ‘믿음’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뭘 믿고 함께 하는가. 김남규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젊음과 열정’이라 답했다. 그는 “그냥 젊은이들 하는 거 보면 열정이 넘치잖아. 그 열정을 사는거지 뭐.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과 열정 그 자체가 믿음이고 신뢰인거야. 아직은 우리가 시작단계지만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고, 서로를 믿게 하니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막내 박지훈씨는 그들의 ‘경험과 삶의 지혜’에 신뢰가 간다고 이야기했다. “그분들께서 30년 넘게 해오신 농사일에 대한 경험과 세월은 부정할 수 없죠. 어쩌면 제가 살아온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 이 일을 하셨는데 어떻게 믿음이 안가겠어요. 그동안 축적해오신 노하우와 삶의 지혜가 우리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죠.” 그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이 주는 ‘열정’과 앞서나갈 수 없는 연륜이 주는 ‘경험’을 교류하며 30년을 뛰어넘는 ‘세대차’를 갈등의 씨앗이 아닌 믿음의 싹으로 틔우고 있었다. 함께라서 좋은 이유 1. 역할분담으로 대량생산 유통가능 (대형 거래처 납품량 소화 가능) 2. 우리들만의 토마토 재배·판매 가능 (자체 브랜드화) 3. 개인 농사꾼이 아닌 농업공동체 형성을 통한 위험부담 최소화 4. 농사 전문가는 오직 농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어 질 좋은 상품을 수확 5. 체계적인 시스템이 상품의 질을 높여주니 재구매율은 점점 증가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 “첫째로 내 몸에 좋아.” 김선복씨가 친환경을 택한 이유다. 그는 “처음엔 농약안치고 하려니 수확량도 적고 남는 게 없으니 이게 되겠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 길이 더 편한길이더라”며 “아직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식이나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까 애써 길러 내놔도 농약친 토마토랑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어. 친환경이라 모양이 좀 안 예쁘게 나오면 그보다 덜한 취급도 받는데, 그게 이 일을 고집하면서도 가장 속상하지”라고 털어놨다. 토마토 밭에서 연신 토마토 입을 매만지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던 성원경씨도 김씨와 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렇게 토마토가 병해를 입어도 친환경이니까 농약이나 화학약품은 안 쓰고 있는데,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토마토가 병들어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니 그게 정말 안타까워”라며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농약은 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작목반장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 또한 유통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들은 “그저 농사만 열심히 지어서 도매상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저희 작목반의 땀방울과 정성을 박스에 담아 다양한 판매처를 통해 브랜드를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어요”라며 “그냥 토마토가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다르게 재배한 상품인지 먼저 알리고 소비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라고 말했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친환경 토마토 유통 원칙 1. 일차적으로 최상의 품질을 약속한다 2. 최상의 신선도를 위해 발송 당일 수확을 원칙으로 한다 3. 중간 유통과정 생략으로 최고의 품질의 토마토를 착한 가격에 4. 배송비(택배비)는 무조건 무료배송 (배송비가 붙거나 착불일 경우 상품의 이미지 또한 좋지 않기 때문) 5. 박스무게를 제외한 실 중량으로 정직하게 포장판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이 바라보는 미래 “자연의 힘으로 키워낸 친환경 토마토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맛있게 먹고,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거지.” 작목반의 바람은 한결 같았다. 정직한 마음으로 땀 흘려 키워낸 토마토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먹었으면 하는 것. 때문에 그들은 매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 어떻게 재배하고 어떻게 판매할지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고. 김선복씨는 “이렇게 하면 홍보가 잘되고 잘 팔릴 것 같다라고 상상하는 것들은 많은데 우리같이 나이먹은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잖아. 근데 젊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같이 고민하고 방법도 알려주고, 또 직접 진행해 주니까 큰 도움이 되지”라며 매번 회의를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내고 함께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우석씨는 본래 하고 있는 산양삼과 친환경 토마토를 접목시킨 ‘프리미엄 토마토’ 생산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산양삼 원액을 관주해 산양삼의 사포닌 성분이 토마토에서 나오도록 시험재배해 성공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상품화하기엔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죠”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새로 개발되는 신품종들도 다른 농가들보다 빨리 시험재배를 통해 다양한 토마토를 소비자가 각각의 입맛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며 토마토뿐만 아니라 아스파라거스도 지금의 시스템으로 재배와 유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들이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농촌에서 버는 돈이 웬만한 대기업 월급쟁이 보다 낫다”라고 할 정도로 농촌은 많은 이들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무턱대고 귀농을 했다간 낭패보기 일쑤다. 10년 전, 군대 전역 후 21살부터 농사일을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대표명함을 꿰찬 박지훈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저희 농장에 귀농을 꿈꾸시는 분들이 견학 오시면 하는 이야기가 고추도 심고 오이도 심고 쌀 농사도 조금 짓고 산양삼도 심어보고 싶다고 하세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는 건 좋지 않죠. 한 가지만 생각하고 계획하시는 게 좋아요. 귀농해서 첫해 농사는 가까운 지인분들에게 먼저 판매하면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시작이 반이니 두려워 마시고, 항상 ‘잘 될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 2014-07-1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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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마이 라이프와 귀농사모가 함께하는 '여름로하스 캠프'
- 이투데이PNC가 운영하는 시니어 전문 미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www.bravo-mylife.co.kr)는 회원수 16만명인 귀농사모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오는 7월 18일부터 8월 17일까지 강원도 고성군 삼포2리 해변에서 열리는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 행사를 공식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또 장기적으로 귀농사모 회원들의 유기농산물 직거래사업도 공동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 행사 개요 1. 개최일시 : 2014년 07월 18일(토) ∼ 08월 17(일) 2. 장 소 : 삼포2리해변 3. 주 최 : 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조직위원회 4. 후 원 : 강원도/고성군/속초경실연/양양귀농지원센터/고성군번영회/삼포2리해변어촌계/설악헬스케어귀농귀어타운/영농법인한백/국립한경대학교 평생교육원/강원관광대학/강원귀농인협회 5. 주 제 :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삼포2리해변 오토캠핑 귀농귀촌창업학교 6. 강 사 : 첨부서류 참조 7. 참가 예상 인원 : 연 6만명 ◇ 행사 소개 제14차 귀농사모 여름로하스캠프 및 2014 삼포2리해변 귀농귀어캠프운영 계획 1. 목 적 ◦ 귀농사모회원 16만명에게 귀농귀어체험 기회 제공. ◦ 강원출신 출향인인 지역 공동체로서의 연착륙 할 수 있게 일체감과 자긍심을 고취. ◦ 강원도와 고성의 문화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귀농 귀어 창업체험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귀농인구 유치 및 지역경제 활성화. 2. 방 침 ◦ 전국 및 도내 예비 귀농 귀촌 귀어인 및 도민을 대상으로 16만 회원의 Daum우수카페 귀농사모 홈페이지에서 신청을 받아 선정. ◦ 30일간의 가족이 동행하는 귀농 귀촌 귀어 체험 워크숍활동 중심 프로그램 운영. ◦ 건강하고 화목한 귀농과 지역민과 융화하는 행복한 귀농 만들기 프로그램 운영. 3. 세부 운영계획 ◦ 일시 : 2014. 7. 19.(토) ∼ 8. 17.(일) 30일간. ◦ 장소 : 삼포2리해변 ◦ 대상 : 귀농사모 회원 및 전국민 ◦ 인원 : 30일간 연 6만명 ◦ 숙식 : 오토캠핑 및 삼포2리해변 주변 팬션/민박/식당 ◦ 프로그램 : 속초고성양양지역귀농체험워크숍/수산물 이용 치유식품개발 워크숍/힐링쿠킹쉐프전문과정/어린이귀농학교/애견해수욕리조트/소상공인해수욕장/여성귀농인워크숍/싱글귀농인워크숍/귀농귀촌아이디어클럽워크숍/귀농복덕방워크숍/지붕개량워크숍/DIY CCTV/귀농인의3D프린터워크숍/경원대학교총동문회워크숍/한경대학교귀농귀촌특화과정동문회워크숍/귀농귀촌인무료오토캠핑장/황토건축워크숍/목조주택워크숍/조입식주택워크숍/농막워크숍/원두막워크숍/원목구워크숍/용접워크숍/비닐하우스워크숍/칡소사육자워크숍/MBC예비귀농인워크숍/한국일보귀농동호회워크숍/KBS귀농동호회워크숍/한국노총귀농동호회워크숍/국방부귀농동호회워크숍/농협중앙회귀농동호회워크숍 ◦ 숙박은 자부담 입장료 및 사용료는 유료 4. 운영 일정표 운영 일정표는 참가농가들 일정 조율 중으로 6월 30일 확정. *프로그램은 기상변화 또는 일정에 따라 다소 변경될 수 있음 5. 준비사항 가. 행사장확보(삼포2리해변 일대) 나. 행사 사무국: 강원귀농귀촌학교내 사무총장 : 조재근(박사) 고문 : 최진규(약초전문가) 자문 : 정성근(한경대학교 교수) 다. 착안사항 • 안전중심의 안락 한 캠프 • 귀농사모+고성군민+전국민+지역경제 상생 프로그램 • 이 문건과 관련 문의사항은 010-7345-3344(정성근교수)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2014-07-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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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산 나리(백합의 우리나라 고유 이름) 품종 개발로 수출길 열어요"
- 동서양의 아름다움을 지닌 백합은 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도 절화(가지째 꺾은 꽃) 수출 1위 원예 작물이다. 하지만 농가들은 국산 종자가 없어 백합 구근(알뿌리)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로열티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이 같은 비용부담을 덜고자 농촌진흥청 화훼과 강윤임 연구사가 수입에 의존해오던 백합 구근의 자급화 길을 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농진청 화훼과는 백합 품종 개발과 보급하고자 1998년 나리 품종 육종을 시작한 이래로 모두 80개의 품종을 개발했다. ‘나리’는 백합의 우리나라 고유의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불려온 이름으로 순결을 지키려다 절명(絶命)한 처녀의 무덤에서 피었다고 전해진다. 강 연구사는 지난 2012년부터 수출과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종간 잡종 나리 개발 품종 육성에 나섰다. 최근 강 연구사가 개발한 백합 품종 ‘밀키웨이’는 세계 백합 수출시장의 대부분 품종을 차지하는 네덜란드 오리엔탈 백합을 대체 할 수 있는 품종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밀키웨이는 오리엔탈-트럼펫(OT) 종간 잡종나리로 아이보리색의 꽃이 아름답고 알뿌리 부패병에도 강한데다 물에 꽂아 신선한 상태로 유지 가능한 기간인 절화수명이 더 긴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강 연구사는 “현재 대부분의 수입해 이용 중인 절화용 구근을 국내산 구근으로 대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양구 기간이 단축되고 시장 기호도가 높은 화색과 화형의 종간잡종 백합 품종을 개발·보급이 시급한 실정이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중국 등 인근 국가로 시장을 확대하여 일본으로 국한되어 있는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최근 위축되고 있는 화훼소비를 촉진하고자 소비자의 관심과 다양한 소비처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화색과 화형의 종간잡종 백합 개발에 전념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강 연구사는 국내 나리 절화 유통기반 확립과 구근 수입시 농가 보호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특히 강 연구사가 제안한 나리 절화농가가 절화 수명 연장제 구입 지원 정책제안도 채택돼 농가에 큰 도움을 주게 됐다. 이밖에 강 연구사는 수출용 나리 적정 저장온도와 전처리제 선발 등 수확 후 관리 기술 개발도 이끌어내 농가의 나리 수출 활성화에 한 몫하고 있다.
- 2014-06-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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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농촌여름휴가 페스티벌' 개최, "올 여름은 농촌으로 휴가 떠나세요"
-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을 앞두고 ‘2014 농촌여름휴가 페스티벌’이 열린다. 26~29일 나흘간 서울 양재동 에이티센터(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228개 부스가 마련돼 농촌관광자원을 소개한다. 9개 광역지자체 300여개 마을이 제공하는 농촌체험 휴양마을 프로그램을 비롯해 농가맛집, 체험목장, 자연휴양림, 6차산업현장 등 다양한 농촌체험관광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야생화 사진 선발전, 특산품 장터도 함께 운영된다. LTE 생중계로 전달돼 개막식과 주요 체험마을 등의 모습을 PC, 스마트폰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행사 둘째날에는 민간여행사를 댓아으로 농촌관광 상품 설명회도 함께 진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세월호 사고 이후 수학여행 등 단체여행 취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체험마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2014-06-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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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사연] 춘천시 서면의 '박사'급 친환경 토마토 재배 농사꾼들
- 글·사진 김일환 강원도 춘천시 서면(西面)에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가 막힌 평야지대가 한복판에 있다. 서쪽으론 몽덕산(660m, 가덕산(858m), 북배산(867m) 등이 솟아 있고, 북한강이 북쪽 경계를 출발해 동쪽을 감아 돌면서 평야를 감싼 지형이다. 산과 물의 기(氣)가 통하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났다. 그래서인지 이곳 서면은 ‘박사(博士)마을’로 유명하다. 전국 면단위 지역 중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해 얻은 별칭이다. 이곳에 ‘박사’급 친환경 토마토 재배의 농사꾼들이 있다. 나이순대로 성원경(61), 김남규(61), 김선복(58), 홍순창(47)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4명은 다른 2명의 젊은이들과 항상 붙어 다닌다. 같은 동네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면서 토마토의 전국 유통을 담당하는 박지훈(31), 허우석(40)씨다.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이들 30~60대의 청장년 6명은 삶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이며, 서로가 서로의 ‘멘토’(스승)다. 꼭 8년 전이었다. 12명의 토마토 농가가 의기투합해 친환경 토마토 재배를 선언했다. 하지만 처음에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수확량은 줄었고, 초창기 유기농 토마토라고 해서 값을 더 쳐주지도 않으니 힘이 빠진 농부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제는 4명이 남은 것이다. 그 무렵, 젊은이 2명이 춘천 서면에 찾아들었다. 산양삼 재배와 유통사업을 한답시고 터를 잡았는데, 농사라고는 쥐뿔도 모를 것 같은 젊은이들의 등장에 동네 어른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저희가 1년 안에 망한다고 내기들 하셨대요. 근데, 망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럭이 들어와서 택배박스를 싣고 나갔어요. 컴퓨터로 산양삼을 파는 저희가 신기하셨을 거예요.” 한 평생 농사일에 잔뼈가 굵은 토박이 농부들과 뽀얗고 앳된 얼굴로 굴러들어온 도시 젊은이들은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농사는 농사 전문가가, 유통은 유통 전문가가 맡아 분업하고 협업하면서 수년전부터 친환경 토마토의 역사를 활기차게 쓰게 됐다. “농사는 우리가 전문가지. 하지만 인터넷이고 유통은 몰라. 그건 박 사장과 허 이사가 하는 거야.” (김남규) “친환경 토마토 농사는 우리 반장님들이 최고예요. 저희는 이 분들이 잘 키운 토마토를 잘 팔면 되는 거지요.” (박지훈) 성원경씨 등 4명의 농사꾼은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작목반장이자 각자 토마토 농장을 소유한 지주농가로 종자의 선택부터, 재배, 수확, 선별과 배송작업을 항상 함께 한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 있지만, 내일과 네 일의 구분은 없다. 일본종과 유럽종의 교잡종인 ‘마미리오’를 선택하여 똑같은 방식으로 재배하고, 품앗이로 서로 일을 도우면서, 공동 선별장에서 박스에 담아 출하한다. 제 값을 받아 어디로 보낼 지는 박 대표와 허 이사의 몫. 홈페이지 관리하랴, 주문받아 송장번호 입력하랴 늘 바쁘다. 친환경 토마토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수년전부터다. 제 자식 입에 농약 묻은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 학부모들의 관심 덕에 전국의 학교 급식에 유기농 토마토가 납품되기 시작했고, 올곧은 농부들의 정성에 젊은 유통 파워가 결합하면서 전국의 학교와 호텔, 식당 등지로 판로가 급속도로 넓혀졌다. 이렇게, 4명의 농부가 총 1만평에서 키워낸 토마토가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농가별로 인건비 등의 모든 비용을 제외하고 순소득으로 연간 최소 5000만원 이상을 달성한다고 했다. 춘천 서면의 이들 농가에서 출하되는 양은 5~6월과 9~10월에는 10kg 들이 기준으로 500~600박스. 1년에 가장 추운 1개월을 쉬고는 여러 비닐하우스를 교대식으로 운영하면서 연중 토마토를 수확하는 데, 일교차가 큰 5~6월에 수확한 토마토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친환경이요? 친환경한다고 하면 제가 나서서 ‘팔뚝질’을 했어요. 농약 안 쓰고 화학비료 안 뿌리면 돈은 어떻게 버냐구요.”(김선복) 김선복씨가 친환경으로 돌아선 이유는 날로 땅이 황폐해지면서 더 독한 농약을 더 많이 뿌려야하는 악순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의 땅 빌려서 한두 해 농사지어 바짝 수확량을 올려야하는 위탁농은 친환경재배, 엄두도 낼 수 없어. 돈이 안 되는데, 되겠어?”라고 했다. 내 땅을 잘 일구어 오래도록 처자식 안 굶기고 교육시키려면 땅을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는 얘기다. 김남규씨가 친환경에 뛰어든 이유는 보다 직접적이다. “농약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못해 먹겠더라고. 농사란 게 우선 내가 해롭지 않아야 하는데 농약 쓰면 나부터 힘들어.” 친환경 토마토 농부들에 따르면, 요즘 도시 마트에서 판매되는 토마토는 땅이 아닌 물에서 키운 토마토가 많다고 했다. ‘수경재배’로 키운 토마토인데, 수경재배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물에 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썩은 참나무를 잘게 썰어 퇴비로 뿌려 지력을 높인 땅에서 키운 토마토가 이젠 귀해졌다는 얘기다. 플라스틱 통 안에 토마토를 심어 키우는 ‘배지재배’도 있는데 이 또한 산도와 당도를 조절하느라 이것저것 화학성분을 넣는다고 한다. 서면의 농가에서는 한 그루(1주)에 대략 5kg의 수확량을 거둔다고 한다. 토마토 농사를 잘 지었다면 1주에 7kg도 나오는 데, 친환경재배하다보면 수확량은 조금 부족하다. “토마토도 사람과 비슷해요. 한 고랑에 토마토를 너무 좁게 심으면 답답해서 토마토가 작구요. 너무 넓으면 알은 큰데 수확량이 적어집니다.” 토마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은 대략 30cm. 약간 넓게 심어서 공기순환을 잘 시켜 토마토가 서로 부대끼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게 양질의 토마토를 재배하는 노하우다. 친환경으로 땅에서 키운 토마토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찰지고 아삭아삭하다. 당도가 높다. 저장성이 강해 오래 보관해도 쉬 상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정말 맛있다’. “며칠 전에 유럽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이탈리아를 비롯해 본래 토마토는 유럽이 원조거든요. 그런데 외국인들이 우리 토마토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난리예요. 하하.” 박지훈 대표는 “토마토 경쟁력은 우리도 세계 최고수준입니다”고 자랑했다. 끝으로 농부들이 전한 토마토 잘 고르는 노하우. 토마토는 ‘후숙과일’이다. 붉은 빛이 막 돌기 시작한 ‘거의 녹색’의 토마토를 따서 보내면, 배송 및 보관과정에서 익어간다. 그래서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은 발송당일 수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루라도 더 오래 보관하면서 먹게 하려면 그날 배송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형마트 같은 곳에 금방 터질 것처럼 붉게 익은 토마토는 결코 싱싱하지 않다는 것. 육질이 단단하면서 녹색 빛이 많이 도는, 집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토마토가 좋은 토마토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몰라줄 때가 있다고 했다.
- 2014-06-25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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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와 힐링] 대추, 오래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늙지않아
- 대추 이야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대추를 보고 안 먹으면 늙는다” 대추는 옛날부터 노화방지에 대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본초경소론 등 다양한 문헌에 소개가 되고 있고, 대추가 가지고 있는 비타민류나 식이성섬유, 플라보노이드, 미네랄 등은 노화 방지와 항암 효과도 가지고 있다. 대추는 맛이 달고 독이 없어 속을 편안하게 해 얼굴이 밝아 보이고 몸이 가벼워진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색이 붉다 하여 홍조(紅棗)라고도 한다. 과육은 주로 당분이 들어 있으며 점액질·능금산·주석산 등도 들어 있다. 씨에는 베툴린·베투릭산·지방 등이 들어 있어 한방에서 이뇨강장·건위진정·건위자양의 약재로 사용한다. 식이성 섬유를 많이 섭취하면 장내의 여분의 담즙산을 줄이므로 담즙산의 독성을 줄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담즙산은 장내세균에 의해 발암물질로 변화됨으로 담즙산을 줄여주는 것이 암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대추가 가지고 있는 베타카로틴은 체내 유해 활성산소를 제독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건강 장수에 도움이 된다. 대추는 사내아이를 상징하며 혼인식 날 며느리의 첫 절을 받을 때 시어머니가 폐백상에서 대추를 던져주는 풍속이 있다. 대추는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열리며 바람이 불어도 씨눈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꽃이 피는 만큼 열매가 맺는다하여 종족보존, 다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추씨는 통 씨여서 곧 절개를 뜻하며 순수한 혈통을 의미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오월 단오날 정오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내는 풍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의 줄기가 둘로 갈라진 곳에 돌을 끼워주거나 도끼나 낫으로 줄기에 상처를 주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대추가 많이 열린다고 한다. 대추의 주산지는 경북 경산으로 경산대추는 좋은 품질과 빛깔을 유지하고 있어 최상의 상품으로 대접을 받고 있고 그 외 밀양 청도 영천 등도 최근 재배면적 많이 늘어나서 농가소득 품목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보은 대추는 생대추로 대부분 유통이 되고 있으며 군에서 품질관리에 많은 공력을 쏟아 부어 당도가 월등이 높은 보은 생대추를 유통시키고 있다. 더불어 최근 가공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다양한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추슬라이스와 대추 액기스, 대추음료, 대추차 등이 시중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품목이다. 대추는 아들과 다산을 상징하며 늙지 않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 신기하지만 우리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열매이다.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 현실에 젊음을 유지하는 방법은 대추처럼 쉽게 주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조금만 붉은 대추 열매의 주름처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젊음의 비결이 아닐까 한다.
- 2014-06-15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