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59) 바인그룹 대표는 가방에 MP3를 네댓 개씩 갖고 다닌다. MP3마다 영역별로 다운받은 강의 파일이 담겨 있다. 산책할 때도, 러닝머신에서도, 심지어 출장 갈 때도 늘 강의를 듣는다. “리더의 에너지는 공부에서 나온다. 공부는 가장 확실한 자기충전 방법이다. 리더가 직원들에게 나눠줄 것은 에너지다. 내가 매일 공부하는 이유다.” 김 대표의 지론이다. 알고 보니 그는 유도선수 출신. 무릎 연골 부상으로 유도를 그만두고, 출판사 영업사원으로 동화책과 백과사전을 팔러 다니던 그는 35세의 나이에 1995년 교육전문기업 ‘동화세상 에듀코’를 창업한다. 동화세상 에듀코는 유아에서 성인까지 온·오프라인 교육을 망라, 티칭과 코칭을 아우르는 교육전문기업이다. 2017년 에듀코를 모체로 교육·유학·여행·외식·무역·건설 등을 계열사로 아우르는 바인(vine)그룹으로 전환했다. 말 그대로 포도송이처럼 선한 열매를 알차게 맺자는 의미에서의 새 출발 선포다.
신설동에 소재한 바인그룹 사옥은 마치 자기계발 실행의 모델하우스를 방불케 했다. 대표 집무실엔 실행 플랜 게시판과 2095년까지의 미래비전 백년달력이 걸려 있다. 직원 화장실엔 벽마다 눈 돌릴 틈 없이 명언이 빼곡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영철 대표가 건네는 명함엔 ‘나 김영철은 한평생 끊임없이 수양해 자신을 누리며 남들에게 기쁨이 되어주는 삶을 살아가겠다‘는 사명선언이 담겨 있다. 명함 타이틀도 바인그룹이 아니라 바인벤처다. 스타트업 벤처의 유연하면서도 맹렬한 야생정신을 배우겠다는 자기다짐의 의미다.
사옥 분위기뿐 아니라 김영철 대표도 마치 ‘걸어 다니는 자기계발서’를 접하는 느낌입니다. 실제 저자들보다도 실행을 더 잘하시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교육의 힘을 믿습니다. 제가 그 덕을 실제 체험했고요. 자꾸 드러내서 가시화해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에 저부터 솔선하고 직원에게도 권합니다. 유도선수인 제가 사회에 나와 영업의 고수가 되고, 또 경영자로 변신할 때 사회에서 받은 강의, 교육이 큰 힘이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어디에서든 교수, 강사란 말을 들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벌떡 일어나 90도로 감사인사를 합니다.”
김 대표는 직원들 교육에는 예산의 한도를 정해놓지 않고 좋은 프로그램은 아낌없이 받도록 한다. 권장을 넘어 아예 의무화해 놓았다. 아이디어 창조, 마인드, 스피치, 리더십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교육, 지닉스 교육을 받는다. 지닉스는 Genie(잠재력)+Explore(탐험·여행)의 합성어로 ‘내 안의 잠재력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기존 교육에 매번 새로운 교육이 더해지니 교육비 예산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직원의 성장판을 열려면 회사 예산의 천장을 없애야 한다는 게 그의 확고한 소신이다. 직원을 이용해 회사 성과를 올리기보다, 회사를 이용해 직원이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나름의 경영철학에서다. 본인의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게 학력, 경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는 인재철학이다. 그는 “사과 씨 안엔 사과가 없지만 사과가 되지 않느냐”며 잠재력을 읽고 육성하는 게 바로 진정한 리더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잠재력이야말로 학력, 경력보다 확실한 인생 전공이기에 그것을 읽어주고 그것을 살펴볼 환경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젊은 시절부터 자기계발을 잘하셨습니까?
“하하. 웬걸요. 강원도 산골 가난한 농가 출신이라서 학교 다니는 것도 사치였어요. 유도를 하게 된 것도 고등학교, 대학교를 장학금으로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아보니 책 공부 말고 사람 공부도 큰 것 같아요. 동네 어른들께 어깨너머로 배운 예의범절, 더불어정신 등이 인생의 큰 공부더라고요. 남들은 흘려듣는 이야기도 저는 좋게 말하면 곧이곧대로, 나쁘게 말하면 고지식하게 귀담아들었어요. 유도하면 장학생 된다고 해서 유도 시작하고, 유도 국가대표 선수되려면 술, 여자,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고 해서 실천했고요. 그것도 자기계발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하하.”
그가 자녀는 물론 직원들에게 늘 책, 이론 공부 못지않게 강조하는 게 정신 자세, 세상 공부, 즉 더불어정신이다. “혼자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다. 더 큰 성과는 옆 사람, 다른 분야와의 협업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기계발이 성공 처세술이 아니라 공동체 정신이라고 말한다. 박수 받는 것 못지않게 박수 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때 직원들과 비인기종목 외국선수팀 응원을 굳이 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늘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누어주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계발이고 참교육이다.
유도와 경영, 얼핏 보면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게 서로 통하는지요.
“유도를 하며 몸으로 익힌 정신력, 위기관리 능력, 팀워크, 후배를 챙기고 선배와 스승님을 모시는 진심이 도움이 됐습니다. 그건 어느 분야, 어느 곳에서든 통하더군요. 그 외에 두려우면 피하기보다 부딪친다는 실행력, 모든 것에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긍정성 등 몸으로 배운 것이 영업, 사업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유도를 하다 다치시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출판사 영업사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최고성과를 내서 시쳇말로 영업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리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이 뭐였습니까.
“운동선수가 가진 승부근성과 체력이 도움이 됐어요. 좌절되니까 영업을 통해서라도 승부를 내겠다. 자존심도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매달렸지요. 그러다 보니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더군요. 유도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라서 제 잠재능력을 잘 몰랐는데, 또 다른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리고 영업뿐 아니라 조직관리에 강점이 있다는 사실도 새로 알게 됐어요.”
선수를 그만둘 무렵 90kg에 육박했던 몸무게가 60kg대로 떨어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체력과 승부근성으로 넘길 수 있었다는 회고다. 영업사원 초기엔 거절당하면 상처도 많이 받았단다. 그냥 안 사면 되는데 모욕을 주며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영업사원의 근성이 있는데 그냥 물러설 수 없지 않은가. 때로는 덩치 좋아 보이는 그에게 시비조로 싸움을 거는 남자 고객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한판 붙더라도 차마 때릴 수는 없으니 흠씬 두드려 맞고… 분한 눈물을 삼켰지만 그때 성질이 많이 순화됐다는 회고다. 그는 늘 현장정신을 강조한다. 관리직 직원들이 현장 경험을 필수로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두 아들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했다. 아버지의 궤도를 그대로 밟아 유도 국가대표 선수를 거쳐 현재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큰아들 김광섭 상무 역시 현장 경험을 거쳤다. 작은아들은 대학 때 아프리카에서 6개월 봉사를 하도록 했단다. 현장에서의 쓴맛은 인생에서 두고두고 위대한 자산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해서다.
35세의 나이에 창업을 하셨지요. 23년간 사업을 해오시면서 위기의 격랑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역경은 몸을 다쳐 유도를 그만둔 것입니다. 그 후에는 위기도, 역경도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어떤 상황이든 역경으로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거든요. 제 평생 취미는 결심입니다. 창업을 하면서 결심했어요. ‘정상에 도전할 때 어떤 이유도 대지 않겠다, 어떤 장애물도 난관도 문제 삼지 않겠다, 나는 일이 힘들다고 불평 안 한다’라고요. 내 안의 잠재력을 작동시키려면 강렬한 의식을 계속 불어넣어줘야 해요. 나는 매일매일 결심해요. 고민하면 걱정이 생기지만 결심하면 꿈이 커집니다. 문제는 작아지고요. 말이 씨가 된다고, 말을 초긍정으로 하면 그것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더군요.”
습관이 운명이라고 하는데요. 운을 부르는 좋은 습관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운동과 신문 스크랩입니다. 사람은 배신당할 때 제일 상처가 깊다고 하는데요. 정작 사람들은 스스로를 배신해요. 자신의 건강을 과신해 돌보지 않거든요. 그러다가 내 몸은 내가 잘 아는데, 이런 증세가 올 리가 없는데, 병에 걸릴 이유가 없는데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나 하며 후회하지요.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해 배신을 당하는 것이지요.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운동습관을 생활 1순위로 놓고 있습니다. 평일 아침에는 달리기나 수영, 주말엔 가족과 등산 등을 규칙적으로 하려 해요. 그 외에 조간신문 6개 정도를 통독하고 직접 스크랩합니다. 한 달이면 얼추 스크랩 한 권이 채워집니다. 나중에 아들들에게 읽어보라 권하지요.”
정말 걸어 다니는 자기계발서이시네요. ‘하면 된다’ 산업화 세대의 구호이지만 요즘 신세대는 ‘되면 한다’ 주의 아닙니까. 직원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시는지요.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력, 학력보다 미래의 잠재력을 믿어주면 서로 통하게 돼 있어요. 그들도 신임한다는 것 다 알더군요. 다만 7대 3의 법칙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7은 잘해주고 3은 요구하고 지적해야 해요. 무조건 잘해주기만 하면 자만심을 갖게 돼요. 반면에 지적만 해대면 심리적으로 위축돼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고요. 인재 육성을 할 때는 무조건적인 자애보다는 신념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는 자녀교육에도 적용됩니다.”
김 대표는 “한국 사람은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특히 인정해줄 때 능력을 엄청나게 발휘한다”고 말한다. 그는 전 직원 4500명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공개했다. 이 번호로 하루에 200통의 문자가 온단다. 그중 제일 기쁜 내용은 “내 꿈을 이룰 계기를 마련했다. 과거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바뀌었다”며 ‘비포 앤 애프터’의 성장기다. 직원들에게서 온 핸드폰 문자를 다시 읽는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서도 기업이 매년 성장했습니다. 또 영역을 확장, 바인그룹으로 전환하셨는데요. 어떤 포부를 갖고 계십니까.
“창업할 때만 해도 말 그대로 한 맺힌 성공, 돈 많이 벌어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이 컸습니다. 이후 기업의 가치관을 생각하게 됐어요. 성장을 통해 직원과 고객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직원성장, 고객성장을 통해 회사도 성장할 수 있는 백년기업으로요.”
김영철 대표는 앞으로 바인그룹은 엄청난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며 3년 후의 인터뷰를 부탁했다. 직원들의 잠재력을 믿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자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하략)
리더가 팔로워를, 어른이 젊은이를 어마어마한 만남으로 서로 생각해 환대하고 대우할 때 우리 사회는 저절로 행복해지지 않을까.
김영철 바인그룹 회장
1960년생 강원도 양구군 출신으로, 학창시절 유도선수로 활동하였다. 대학시절 부상으로 유도의 꿈을 접고 출판사 영업사원을 했다. 1995년 교육전문기업 ㈜ 동화세상에듀코를 설립했고 2017년 10개 계열사를 운영하는 바인그룹으로 전환했다. 사람의 성장을 핵심가치로 둔 인재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그간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선정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상’ 수상,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