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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의 요리 PART5] 요리는 타이밍이다
- 양평 서종면에서 요리를 재미로 시작한 ‘요리하는 남자’ 방수형(45)교수는 아내를 위해 텃밭에 다양한 허브식물과 케일을 가꾸기 시작했다. “요리는 해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어요. 시도하는 게 더 중요해요. 맛이 있든 없든 그 사람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싶어지거든요.” 그가 내놓은 음식 앞에 고요한 평화를 느꼈다. 요리를 통한 나눔의 기쁨이 이것인가 보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장소 협찬 송스키친 남성미 넘치는 외모와 색깔 강한 연기로 익숙한 방수형 호서예술전문학교 연기예술학부 교수는 그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게도 ‘앞치마 두른 남자’들의 세계에 그 누구보다도 일찌감치 발을 담근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요리를 한다는 그의 요리 세계에는 어떤 레시피가 숨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저희 어머니가 음식 간을 볼 때면 저에게 맡기곤 했어요. 왜 저에게 맡겼느냐면, 본인이 간 보는 게 귀찮으셨을 테니까(웃음).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네가 그래도 가족들 중에서 제일 정확하게 맛을 볼 줄 알아.’” 무사, 살인자, 조직폭력배 등등 선 굵은 연기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방수형 교수는 ‘센’ 인상과는 달리 웃음기 섞인 목소리와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가 좋아하는 요리,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의 얘기가 아니던가. 어머니의 나물 조기교육(?)을 받으며 자라다 방 교수는 4년 전 호서예술전문학교 식품조리학과에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요리를 배운다는 게 식당이라도 차린다는 생각 없이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방 교수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외할머니도 그렇고 어머니께서도 워낙 음식을 잘하셨어요. 특히 나물에 관해 잘 아셨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니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 좋은 음식을 알게 됐죠.” 방 교수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진 않았지만 행복한 집안이었다. 어머니는 일요일이 되면 나물을 캤고 그럴 때면 꼭 방 교수를 데리고 다녔다. 그가 자연스럽게 요리와 친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요리에 대한 그의 경험과 생각은 이라는 에세이집으로 다듬어져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만들 수 없는 그 시절 무밥의 맛 방 교수의 어머니는 나물을 잘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약초에 관해서도 도통했다. 그런 지식은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쓴 물’을 자주 먹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외할머니가 봄에 쑥을 캐서 쑥물을 우려내 그에게만 줬던 것이다. 쑥은 지혈 작용과 함께 염증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어린 시절 쓴 물을 자주 먹었던 것이 자신의 미각을 발달시킨 것 같다고 말한다. “외갓집에서 가장 싫었던 음식이 무밥이었어요. 그런데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왜 그렇게 먹기 싫었는지 모르겠는데(웃음). 제가 만들면 그때 그 시절의 무밥 맛이 안 나와요.” 그가 요리를 배운 것은 어머니의 손맛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가장 잘하는 게 시래기 된장국입니다. 제가 워낙 좋아해서 요즘도 어머니 집에 가면 두 그릇씩 먹게 돼요. 어머니가 수많은 요리들을 많이 해줬어요. 그중에서 간단하게 만드는 것들이 최고인 듯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해주었던 맛에 연구를 통해 접근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한다는 즐거움 방 교수는 어렸을 때는 생존을 위해 먹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시골 소년답게 산 밑 물가에 가서 수영하고 오는 길에 기찻길 옆에서 무를 뽑아 먹고 산딸기나 으름을 따먹었던 즐거운 추억들이 있다. 그러나 맛 자체를 느끼지는 못했다. 서울에 올라와 배우로 일하며 혼자 살게 되면서는 더욱 맛을 위해 먹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런 시절에도 요리해 먹을 때 어머니가 해준 맛과 비슷해야 성에 찼다고 한다. “나이가 마흔을 넘어가면서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맛을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해 요리하게 되더군요.”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맛있는 걸 만든다는 것. 즉 정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요리에 대한 의욕을 다소 잃은 것 같아요. 음식의 맛도 시간이 지나니 미세하게 변하더군요. 아마 사랑을 줄 대상이 없어져서일 겁니다.” 방 교수가 가장 사랑을 주는 대상이라면 아내일 것이다. 그의 아내는 1990년대 ‘광고계의 퀸’으로 불리며 대한항공, 삼성전자, LG화학의 전속모델이었던 박리디아 씨. “아내가 러시아에서 3년 반, 뉴욕에서 4년 반 동안 유학 생활을 했어요. 그런 데다 선천적으로 유럽식이나 미국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음식 취향이 너무 달랐습니다. 아내는 유럽식이지만 저는 토속 음식을 좋아했으니까요.” 두 사람은 공통의 맛을 찾아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내가 아침에 일찍 학교를 가거나 출근해 저보다 항상 바빠요. 그래서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계란탕을 준비하죠. 케일, 쪽파, 마늘 다진 거를 섞어서 새우젓으로 간을 해 만든 간단한 계란탕이면 그 사람도 저도 아침으로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이소박이도 좋아하게 됐어요. 주말에는 약백숙으로 식사를 함께 하죠.” 깐깐한 방 교수가 만든 오이소박이 한입 베어 물면 그가 고민하는 삶, 자연, 사회, 문화, 영화가 입안에서 알싸하게 씹힐 것 같다. 요리는 타이밍과 과정이 중요 방 교수의 요리는 철저한 자연식을 추구한다. 그는 현대인의 대표적인 피부 질환인 아토피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병이라고 비판했다. “저희 때만 해도 피부질환으로 고생했던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아토피는 면역 질환 때문에 생기는 거거든요. 영양학에서는 인 성분이 부족하면 피부질환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현대문명의 대량생산체제로 만든 대형 마트의 농산물에는 인 성분이 부족해요. 채소가 땅에서 스스로 영양을 흡수하면서 자라야 하는데, 그냥 비료를 뿌려서 만드니까요.” 그는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은 재료로 만든 제품을 골라서 먹는 게 몸에 유익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지는 건 무엇보다도 건강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재료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요.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자연에 가까워져야 합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회복이 쉬워집니다. 그러니 최대한 자연에 가까이 접근해야 해요. 음식도 생활도 생각도.” 방 교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요리의 포인트는 크게 ‘타이밍’과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이 있는데, 그 타이밍에 먹어야 맛있는데 안 먹으면 화나죠(웃음). 그리고 김치찌개를 제가 참 잘 해요. 그런데 특별한 재료라는 건 없어요. 다만 과정이 중요해요. 똑같은 재료라도 어떤 순서로 조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죠. 예를 들어 콩나물국밥을 잘하는 집에서는 밥을 국 안에 넣어 끓이지 않고 따로 둡니다. 흔히 서울의 콩나물국밥집에서는 밥을 끓여버리는데, 끓이면 밥의 전분이 다 풀어져서 콩나물국의 육수 맛이 안 나게 돼요. 생각해보세요. 옛날 드라마를 보면 ‘주모 국밥 하나 말아주쇼’라고 하지 ‘끓여주쇼’라고는 안 하잖아요.” 그는 ‘수저로 몇 큰 술’ 같은 레시피는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저는 재료를 퉁퉁 넣어줍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그리고 화학조미료는 아예 안 넣어요.” 자신이 요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만들어 보라 “여성의 사회 진출과 맞벌이가 많아지고 캠핑문화가 발달하면서 최근의 남자의 요리 현상이 일어났다고 봅니다.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부부라면 서로를 도울 줄 알아야죠.” 어머니의 손맛을 찾기 위한 의지, 그리고 건강을 위한 철저한 자연식의 추구는, 요리가 사랑하는 사람, 지인, 세상과의 소통이기에 가능한 법도일 것이다. 그에게 요리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남자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우선 함께 캠핑을 자주 다니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인 자신이 요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좋다는 거죠. 캠핑을 가서 스스로 음식을 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 지방의 향토 음식들을 많이 먹고 다니면서 그 재료나 만드는 방법을 가볍게 물으면 나중에 자신이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앨빈 토플러는 돈이 많다고 해서 부자인 게 아니라 조금을 갖고 있더라도 누릴 수 있어야 부자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활용하며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내가 술을 흥청망청 마시는 삶을 살면 그런 분위기를 계속 이끌어갈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자제하면서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누구에게서 받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해서 나눌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봅니다.” 요리를 통한 나눔의 기쁨. 이는 소통보다 좀 더 나아간 자족적인 기쁨이다. 그래서 부자에 대한 개념도 그는 남달랐다. “제가 부러운 게, 예쁜 기와집에 10년, 50년 된 장이 담긴 항아리 쫙 깔아놓고 사는 분들이에요. 그게 진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부러워요.” 마지막으로 그에게 집밥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 “집에 있을 때는 열무김치, 오이, 김치, 계란 프라이 등등 간단하게 먹게 됩니다. 부유한 집안이라도 매일 어마어마하게 차려놓고 먹지는 않아요. 그렇게 하면 병이 나지 않을까요?”
- 2015-10-02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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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테마②] 이번 추석엔 가족묘지를 이야기해 보자
- 추석은 가족이 모여 수확의 풍족함에 대해 자연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날이다. 가족이 모이면 으레 가족 대소사가 화젯거리가 된다. 그중 묘지도 단골 주제다. 묘지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조상과 후손을 연결시켜 줌으로써 그 사회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전승시켜 사회의 지속성과 사회적 통합, 연대를 담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묘지는 우리 가족제도를 구성하고 뒷받침하는 근간이자 뿌리다.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에 비해 비교적 높은 사회적 점성(粘性)과 유대를 유지하는 것도 이러한 묘지제도의 순기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묘지가 가지는 이러한 순기능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려면 묘지가 다양하고 복잡하게 살아가는 현대의 가족들을 보다 쉽게 모이게 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예전의 분묘(산소)처럼 이 산저 산,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후손들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더더욱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후손들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 뿐 아니라 묘지를 돌볼 후손들도 나이가 많아 일일이 찾아가 벌초하고 때맞추어 성묘하고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결론하여 자연장지를 조성해 한 곳에 모아 쉽게 찾아가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옛것만 고수하다가는 전통 그 자체는 물론 거기에 담긴 소중한 문화자산의 가치 자체가 멸실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묘지는 조상이나 부모뿐 아니라 자신과 자녀들의 사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이냐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이는 곧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묘지를 어떻게 마련하고 구성할 것이냐는 가족들이 모일 때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건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세대 구성이나 가족 구성, 우리 사회의 유동성을 고려하면 단연 묘지를 모아야 한다. 매장이든 화장한 후 봉안당에 모시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면 가족들이 찾아뵙기가 수월치 않다. 가족묘원이든, 종중묘원이든 일단 한곳으로 모아야 한다. 그래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예전처럼 대가족이 아닌 핵가족이고 그것도 일인가족, 부부가족 등 비전형적 가구들이 폭증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 내외다. 남녀 둘이 결혼해 겨우 1.2명의 아이를 낳는다는 이야기다. 아들로 내려가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남자계승은 확률적으로도 3대를 넘기기 쉽지 않다. 여자가 계승한다 해도 4~5대를 넘기기는 쉽지 않다. 결국 3~5대만 지나면 묘지를 돌볼 후손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후손들로부터 그나마 절이라도 받으려면 조상 묘를 모아야 하고 부모나 자신도 그런 가족묘원에 사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선산이나 시골, 고향에 가족이나 종중 묘원을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으면 집 가까운 곳의 봉안당이나 자연장지 등에 선대부터 자신, 자녀들이 들어갈 묘원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또 고려할 게 매장할 것이냐, 화장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문제다. 굳이 시대변화를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화장이 대세다. 매장이냐 화장이냐는 가치, 선호의 문제라기보다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의 문제다. 비교적 적은 인구가 전국에 널리 골고루 퍼져 살던 시대에는 매장이 대세였다. 가까운 곳에 매장 분묘를 구하기도 쉬웠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모여 살기에 도시 근교에 매장할 땅을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이젠 매장보다는 화장이 대세가 된 것이다. 거기다 화장이 가지는 장점도 많다. 보다 신속하게 자연으로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이고 비용도 저렴하며 위생적이다. 화장한다 해도 화장 유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도 중요하다. 예전엔 주로 분묘 형태의 봉안묘를 만들어 모시는 분들이 많았으나 이젠 이것도 자연장이 대세다. 자연장(自然葬)은 말 그대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며 고인을 신속히 자연으로 되돌리는 장법이다. 선산에 30~40평의 가족 자연장지를 만들어 나무와 꽃, 잔디를 심고 조상을 모시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 묘들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음은 물론, 자신과 자녀들의 묘지도 마련된다. 서양의 녹림장(Greenwood Burial)과 우리의 전통 매장을 적절하게 조합한 장법이다. 가족묘원을 조성하는 게 어려워 보이지만 맘만 먹으면 의외로 간단하다. 선산이나 고향에 전답이 있다면, 모퉁이에 30~40평 정도를 할애해 잔디와 나무를 심으면 된다. 가족 공원을 꾸민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저기 있는 산소를 파묘해 화장한 다음 옮겨와 나무 밑이나 잔디밭에 묻으면 그만이다. 일례로 전통 대가였던 경주최씨 문중은 인덕원이란 종중묘원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후손들이 명절이나 제사에 찾아와 종중묘원에서 제를 올리고 성묘를 한다. 일부 후손들은 종중묘원으로 소풍을 오기도 한다. 사시사철 풍광도 즐기고 후손들에게 예를 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뛰어 놀고 어른들은 돗자리를 깔고 담소를 나누며 조상을 추억하기도 한다. 이렇게 공원 같은 가족, 종중묘원을 조성해 놓으면 향후 묘지 걱정도 없게 되고 후손들이 더 자주 찾게 되며 묘원에서 가족이나 다른 일가도 만나게 돼 가족 간, 친족 간 우애도 돈독해진다. 요즘은 아파트 시대라 작은 공간에 가족 이외의 친족을 초대하기는 쉽지 않다. 가족 묘원을 만들면 낮에 묘원에서 약속해 같이 식사하고 헤어지면 된다. 요즘 라이프스타일에도 딱 맞는 게 바로 가족, 종중 묘원이다. 잔디를 심고 온갖 꽃나무로 추모목(追慕木)을 심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가족자연장지가 여의치 않다면 집단화된 자연장 묘원, 이를테면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하늘숲추모공원 같은 곳에 자연장 해도 된다. 묘지는 단순히 고인을 처리하는 장소가 아니다. 묘지는 시대변화에 맞추어 당대인의 생활상과 가치를 담아내고 상징적으로 극화시켜 사회 구성원의 연대를 강화해주는 문화적 제도다. 현재를 사는 후손들이 선대를 방문해 소통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가족묘지,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 모이면 진지하게 토론해 보자.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모두가 관련되는 공통주제로 가족 간 끈끈함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소재이자 기회이다. △ 강동구(姜東求) 생사의례문화연구원장 (재)한국장례문화진흥원 이사, 서울대 사회학과 졸, 동국대 대학원 졸(행정학박사)전 동국대 불교대학원 생사의례학과 교수
- 2015-09-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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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들의 요리 PART1] 요리는 치유다
- 좀 과장해 온 방송이 ‘먹방(먹는 방송)’이고 ‘쿡방(요리 방송)’이다. 정규 편성표를 가득 점령한 본방송에, 채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무한 재생되는 재방송까지 더하면 브라운관에서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끊이지 않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덕분에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연일 미디어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어떤 이는 만능 요리 비법을 선보이며 사람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또 어떤 이는 허세 가득한 동작과 신출귀몰한 요리 기술로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미디어의 중심에 선 이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심영순, 홍신애 등 여성 요리인 또는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허셰프’라는 별칭으로 사랑받는 최현석을 비롯해 샘 킴, 이찬오, 레이먼 킴 등 최근의 요리 유행을 이끄는 주동력은 역시 남성들이다. 하필 지금에 이르러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인간의 대표적 본능인 ‘식탐’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한 분석이 아닐까 싶다. 식탐을 자극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최근 들어 갑작스레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요리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성적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라는 추측 역시 마찬가지. 요리 잘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유독 요리 유행이 도드라진 데는 분명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옮아가는 도중에 필연적으로 생겨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귀 기울일 만하다. 남성의 도움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된 여성들이 강한 남성보다는 모성적 남성을 원하면서 요리 잘하는 남성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더불어 남성들이 요리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는 주장이다. 가족 해체 등의 사회 불안이 이른바 ‘집밥 열풍’의 주요인이라는 설도 설득력을 갖는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남성들이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을 때와 같은 편안함을 갈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복고주의’라는 견해도 있다. 원시사회 때부터 임신 및 육아가 여성의 몫이었던 반면, 식량 획득과 요리는 남성의 몫이었으므로 최근의 유행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성적 분업 이론(남성과 여성의 생리학적 특징의 차이에 따라 일이 나뉜다는 학설)에 근거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려는 시기와 현재 사이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멀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런 맥락과 비슷한 주장들이 최근 유행과 더불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요리에 진실로 그리워하는 것이 있다 더러는 지겨울 만도 하다. 튀기는 소리, 지지는 소리, 끓는 소리에 맛있다는 호들갑까지 더해진 천편일률적 요리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쾌감만 선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이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이자 환경운동가’라고 설명하는 마이클 폴란은 저서 에서 현대인들이 직접 요리하지 않고 텔레비전 등 미디어를 통해 요리에 심취하는 현상을 ‘요리의 역설(Cooking Paradox)’이라 지칭했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요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잘난 듯 떠들어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요리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폴란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가정에서 식사 준비에 필요한 시간은 하루에 고작 27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또 다른 저서 에서는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서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요리 유행의 핵심은 손쉬운 요리, 값싼 요리, 다가가기 쉬운 요리다. 폴란은 그런 요리들을 떠받쳐줄 기둥이 그다지 깨끗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리 없다. 음식평론가 황교익 씨는 우리나라 특유의 ‘치맥’ 유행을 ‘값싼 육류를 제공하려는 정부와 산업계의 노림수가 대중에 통한 결과’라고 비판하고, 요리사 겸 저널리스트인 박찬일은 모 언론에 기고한 칼럼 ‘달걀의 운명’에서 달걀이 대량 생산되는 현실을 두고 ‘이 불안한 풍요가 실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불안해한다. 우리 삶에 가장 가까운 닭고기와 달걀의 현실이 이럴진대 다른 식재료는 오죽할까. 요리 방송이 주로 밤 시간대에 편성된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지 않아도 될 시간에 식욕을 지나치게 돋움으로써 건강상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 굳이 렙틴(Leptin)이니 글렐린(Glehlin)이니 하는 신경호르몬 이름을 들먹이지 않아도, 요리 방송의 부추김에 떠밀려 맥주 캔과 더불어 기름진 안주거리를 찾은 경험이 누구든 한두 번쯤은 있을 터. “이른바 ‘쿡방’ ‘먹방’의 영향으로 뇌에 내성이 생기고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게 돼 비만 등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의사들의 진언은 괜한 걱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바람을 선선하게 느낀다. 갖가지 역효과에 눈 감으려는 무책임함 때문이 아니다. 어떤 잇속이 걸려 있기 때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나쁜 영향 못지않게 결정적으로 좋은 영향이 분명 그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요리는 무슨 존재인가 요리 늦바람이 골프나 주식투자보다 재미있고 가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남이 해주는 요리만 먹던 ‘상남자’들이 아내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칼을 집어든 이유는 뭘까. 은퇴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것과 달리 중년 부부의 경우 아내는 점차 밖으로 활발하게 움직인다. 남자들의 요리는 가정 평화는 물론, 고령화시대에 대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필수 학습으로 회자되고 있다. 남자들의 요리는 생의 진실을 담아낸 영화처럼 따뜻하며 때로는 코끝 찡하게 먹먹하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맵고 짜고 달고 시큼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리는 섬처럼 고립된 개인들을 잇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를 위해 상을 차리고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상대방의 입맛과 식습관, 식탁 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영화 의 주인공 도완득은 언제나 혼자 밥을 먹고 등·하교하며 자신의 삶에 누구도 초대하지 않는 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서 끈질기게 거절하던 반 친구의 “라면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그러자”고 답한다. 그는 이제 누군가와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을, 자신의 삶에 타인이 들어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화 은 핀란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각자 상처를 지닌 채 식당을 찾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따뜻한 영화다. 카모메 식당은 우리나라의 분식집쯤 되는 작은 동네 식당. 세 여인은 이곳에서 시나몬 롤과 오니기리를 먹으며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것은 상대와 유대관계를 맺겠다는 적극적 신호다.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에서 자주 들어왔던 “한술 뜨라”는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언어 습관은 바로 그 정신에서 출발했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걸출한 코미디 영화 에서 타인을 거부하던 시절의 주인공 멜빌 유달(잭 니컬슨)은 홀로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기만 한다. 그러다가 이웃집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레그 키니어)을 받아들이면서부터는 중국식 수프를 나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주인공이 게이 화가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서 음식을 선택한 것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음식에는 그런 힘이 분명히 있다. 지금의 요리 열풍에도 그처럼 명쾌한 힘이 내재돼 있다. 그 동안 우리 가장들은 나쁜 의미에서 독야청청했다. 전통적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근엄함과 배타심을 구분하지 못하고 스스로 차단막을 내걸었던 이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로 인해 자기 고립의 함정 속으로 스스로 빠져들고 말았다. ‘삼식이’라는 말을 아시는가? 은퇴 후 삼시세끼를 부인이 해주는 식사로 해결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뉘앙스부터 천박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생산 가능 인구(15세에서 64세 사이)와 생산 불가능 인구 사이의 비율이 2060년에 이르러 50대50이 된다는 고령화 사회에서 누구도 그 유행어의 비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쉽게 말해, 한때 배달의 기수였던 남성들이 현대에 이르러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요리 유행은 계륵과 가족 사이에 음험하게 드리워진 차단막을 걷어내도록 하고 있다. 음식을 타인과 나누는 요리의 정신이 계륵들로 하여금 스스로 벽을 허물게 만들고 있다. 최근 요리 열풍의 핵심에 나이 지긋한 남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차줌마’로 일컬어지는 차승원, ‘백 주부’라는 애칭으로 사랑받는 백종원, 중화요리의 대가라는 이연복 등은 모두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 남성들이다. 그들은 방송의 중심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요리는 어렵지 않다”,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그 동안 요리에서 소외돼 있던 계층, 다시 말해 중년 남성들을 주방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 점이 오히려 쉽게 요리에 접근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백 주부는 자신의 요리를 세발자전거에 비유했다. 어린 아이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한 번도 안 타본 사람도 겁내지 않고 타 볼 수 있는 세발자전거처럼 누구나 시작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용기를 주어 다음에는 두 발 자전거 타기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주방 안으로, 관심 속으로 최근 은퇴 전후 남자들에게 요리교실이 인기다. 실제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초문화원의 ‘아버지요리교실’은 정원 25명으로 3개월씩 진행하는데, 은퇴 전후의 50, 60대가 주축이다. 서울대 노화고령화사회연구소와 이화여대 글로벌식품영양연구소, 순창군이 함께 시행하는 ‘골드쿡’ 프로젝트는 은퇴 전후의 중·장년층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실습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청이나 강남구청 등이 꾸준히 운영해온 중년 남성 대상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남양주 시청의 ‘아버지 요리교실’, 광주광역시 농업기술센터의 ‘아버지 요리교실’ 등 최근의 요리 유행에 힘입어 개설된 아버지 대상의 요리교실 역시 하나둘이 아니다. 고양시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은 55세 이상의 은퇴 남성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남성을 위한 요리 교실로,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간단한 생활 요리법을 전수해준다. 수업 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남성만의 요리 교실로, 새로운 인간관계와 자아를 재정립하고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들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강좌’라고. 여기에 경기 부천시, 광명시, 고양시, 충북 음성군, 강원 영월군, 경북 칠곡군 등 군 단위에서 시행되는 남자 요리교실과 ‘시니어 요리교실’ ‘행복남요리교실’ ‘츠지원’ 같은 사설 요리 강좌까지 합치면 중년 남성 대상의 요리 강좌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해외 유명 셰프를 초빙하는 경우도 있고 값비싼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사용한다. 8~10명 정도의 수강생만 받아 소수 정예로 운영되는 만큼 전문직이나 높은 사회적 위치와 함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수강생들이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강좌에 참가하는 남성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것, 그래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는 것이다. 요리 잘하는 최철주 전 중앙일보 논설 고문은 “나이 먹은 남자들의 요리는 치유일 수밖에 없다”며 “가족을 위해, 혹은 지친 누군가를 위해 배려와 진심을 담아 요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고 말했다. 요리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진심을 상대에게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강력한 한 방법이다. 마이클 폴란은 요리 방송이 요리에 대해 떠들기 좋아하게 만들 뿐 요리 자체로 끌어들이지 못한다고 역설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요리 유행은 그와 양상이 사뭇 다르다. “요리는 어렵지 않다”는 어떤 요리인의 주장에 고무돼 실제로 많은 남성들이 요리에 도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도전하려 하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요리는 사람들의 유대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부작용을 여럿 양산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요리가 가족 또는 타인과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근의 요리 유행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중요한 소통 수단이다. 어느 종교 지도자는 밥을 나눈다는 것은 음식과 시간을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꿈과 비전도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중년 남자들이 ‘먹방’과 ‘집밥’을 통해 찾고자 하는 것은 ‘맛’이 아닌 ‘정’이고 ‘온기’가 아닐까. 분명, 요리라는 행위에는 그처럼 명쾌한 힘이 있다. { 남자가 가도 괜찮은 요리 수업 } 양천구 ‘아버지 요리 교실’ 3·6·9·12월, 1년에 4회 양천구 지역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요리 강좌. 한 달 과정으로 매주 토요일 4회 수업한다. 장어구이, 들깨수제비 등 비교적 난도 있는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초문화원 ‘아버지 요리 교실’ 10~12월 3개월 12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강의 신청은 10월 31일까지 받는다. 매주 목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수업한다. 단호박 밤수프부터 제육볶음, 황태찜, 연어 스테이크 등 반찬과 일품요리를 두루 배울 수 있다. 롱런아카데미 ‘아빠 요리 교실’ 분기별로 2개월 8주 과정. 매주 월요반과 수요반 2회 운영한다. 두 강좌 모두 요리의 기본인 계량법과 밥 짓기로 시작해 떡갈비 같은 접대용 음식은 물론이고 생선 손질법과 찌개 끓이는 법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지식을 알려준다. 고양시 흰돌종합사회복지관 ‘젠틀맨 생활 요리 교실’ 은퇴한 남성이 노후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개설한 요리 강좌로 기본적 요리 용어부터 꼼꼼하게 알려준다. 매주 목요일 12회 수업을 진행한다.
- 2015-09-1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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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빈방을 공유하는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
- 자녀들이 출가하면 빈방이 생긴다. 이 빈방을 이용해 돈도 벌고, 외국인 여행객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공유경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를 이용해서 말이다. 에어비앤비는 자신의 주거지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다. 호텔, 펜션처럼 전문 숙박업과 다르게 일반인들이 방을 내주고 빌린다. 단순히 빈방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낯선 이들과의 만남과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빈방을 나누는 새로운 문화 빈방을 공유하는 문화는 아직 우리에게 어색하고 낯설다. 숙박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도 시작할 때는 ‘이 사업이 될까’라는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잘 아는 힐튼 호텔의 기업 가치와 맞먹는 숙박계의 거인이 됐다. 여전히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 일부를 빌려주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 비싼 호텔비 걱정 때문에 시작한 에어비앤비 서비스는 공간을 빌려주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여행객이 오면 집주인이 근처 구경을 시켜주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도와준다. 여행객은 정형화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집주인과 수다를 떨면서 마치 친구처럼 지내기도 한다. 낯선 문화를 공유하면서 일상을 보내는 것 자체가 여행객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것이다. ◇빈방을 공유하는 사람들 이제는 에어비앤비로 빈방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계여행을 꿈꾸는 어떤 젊은 부부는 “세계여행을 가는 대신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으자”라고 생각해 에어비앤비를 시작했다. 빈방을 예쁘게 꾸미고 내방을 에어비앤비에 등록했더니 전 세계 여행객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여행하는 사람들과 수다 떨고 함께 밥을 먹고 관심사를 공유하니 마치 자신이 여행을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집에서 하는 세계여행인 셈이다. 노후 생활을 에어비앤비로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 사무실로 이용했던 주택을 예쁘게 꾸며 여행객들에게 빌려줄 생각인 것.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방대한 책과 CD를 모았는데, 여행객들은 특색 있는 것을 좋아할 것 같아 책과 CD로 둘러싸인 독특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오면 서로 대화가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숙소를 등록하고 금액도 내가 정한다 빈방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면 좋을 것 같으면서도 걱정거리가 생긴다. 해외 여행객들이라면 언어가 안 통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하지만 안심해도 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이용해 해외 여행객들이 자주 오지만, 호텔보다 저렴하다는 입소문에 내국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숙소를 등록할 때 할 수 있는 언어를 표시하지 않으면 여행객들도 어느 정도 상황을 이해하고 온다. 꼭 외국 언어를 알 필요는 없다. 또 하나는 내 집 빈방의 사진을 찍어서 올려야 하는데 방법을 몰라 걱정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쉽게 사진과 정보를 올릴 수 있도록 에어비앤비 홈페이지에서 차근차근 알려준다. 마지막 걱정은 빈방을 내놓으면 시시때때로 연락이 와서 귀찮을 것 같고, 집에 사람이 없는 날에 여행객이 숙소를 신청하면 난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점이다. 에어비앤비는 내가 원할 때만 방을 빌려 주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일만 빌려주고 싶다면 그 날짜만 예약할 수 있도록 설정할 수 있다. 집주인이 날짜와 가격을 정하면서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에어비앤비는 빈방을 활용하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활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글 유장휴(디지털습관경영연구소 소장/전략명함 코디네이터)
- 2015-09-11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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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휴의 Smart Aging] 머릿속을 가볍게 만든다. 할 일 관리도구 '원더리스트'
- 요즘 서점에 가보면 단순하게 사는 법에 관한 책들이 많다. 단순함의 위대함부터 정리를 잘 할 수 있는 법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제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니 몸도 마음도 단순하게 만들자’라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해야 할 것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머릿속이다. 기억할 게 많고 해야 할 일이 많으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다. 머릿속이 복잡하면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게 된다. ‘이거 해야지’ 하는 순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어리둥절할 때도 있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잊는 것이다. 생각을 갑자기 단순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할 일을 정리하다 보면 복잡한 생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할 일을 눈에 보이게 하라 머릿속을 말끔히 비우게 하고 할 일을 관리해주는 도구가 바로 다. 퇴직 후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분이 있었다. 학교생활을 새로 시작하려 하니 기억해야 할 게 너무 많다고 한다. 과제도 해야 하고, 스터디 모임에 참석도 해야 하고 매번 급작스럽게 생기는 일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데 정리가 잘 안 된다고 한다. 포스트잇에 메모도 해보고, 스마트폰에 있는 메모 앱에 적어놔도 적는 순간뿐이다. 적기만 하고 다시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분에게 할 일 관리를 할 수 있는 앱을 안내해 드렸다. 그랬더니 할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급한 것들은 바로 처리하고 시간이 걸리는 것들은 목록화했더니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일단 해야 할 일을 모조리 앱을 이용해서 꺼내 놓으니 머리로 기억해야 하는 수고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할 일 정리의 고수 할 일을 가장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앱이 이다. 요즘은 할 일 관리 앱이 대세다. 여러 가지 도구가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 를 추천하는 이유는 기능이 군더더기가 없어 사용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생각을 정리하고자 배우는 건데 익히는 데 힘을 빼면 안 된다. 무조건 쉬운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는 쉽게 배워서 바로 쓸 수 있는 도구이다. 그리고 무료라는 장점도 있다. 일반 종이에 메모하는 것과의 차이점은 메모지에 메모하려면 당연히 종이와 연필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는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스마트폰을 열고 할 일을 작성하면 끝이다. 장보기할 물건, 친구 생일축하 전화하기, 세금고지서 납부하기, 가스계량기 검침 등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한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처리하지 않으면 계속 신경이 쓰인다. 할 일 리스트를 작성하고 처리했을 때 완료를 누르면 할 일 목록에서 사라진다. 할 일 목록이 비어 있을수록 머릿속은 깔끔해진다. ◇부부가 공유하는 할 일 목록을 사용하는 게 익숙해졌다면 목록을 공유해보자. 는 주로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사용하는데, 장 볼 목록을 미리 작성해 놓으면 빠트리지 않고 살 수 있다. 종종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로 뭐 좀 사오라고 요청하면 남편들은 하나씩 빠트리기 일쑤다. 이럴 때는 아내와 남편의 를 공유하면 된다. 아내가 자신의 목록에 살 것을 작성하면 남편 목록에도 자동으로 작성된다. 남편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물건을 사면 된다. 장보기 물건뿐 아니라 부부의 관심사를 넣을 수도 있다. 보고 싶은 공연, 가고 싶은 여행지, 찾고 싶은 맛집 등 정보를 서로 담아 놓기도 한다. 처음에는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서 사용했지만 쓰면 쓸수록 관심사로 목록이 채워지게 된다. 우리가 할 일을 관리하는 이유는 단순한 일은 바로 바로 처리하고 삶의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머릿속부터 말끔히 비워야 한다. 글 유장휴(소통기업 AG브릿지 대표/전략명함 코디네이터)
- 2015-08-1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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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부부는 이심전심 아닌 동상이몽
- 부부 생활에서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같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돈독하고 행복한 부부생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명한 기술이 중요하다. 여기 사회생활 ‘만점’, 가정생활 ‘빵점’이었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현재 가정 행복코치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부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명한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이 됐다. 짚라인 코리아의 대표이자, 부부 토크쇼 ‘둘이 하나데이’의 진행자. 이제는 그를 수식하는 단어도 많다. 이수경 씨다. 그가 이렇게 변한 사연은 무엇일까? 1993년, 22년 전 어느 날을 이수경 대표는 잊지 못한다. 당시 직장인이었던 이씨가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승승장구할 때였다. 5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고, 3년에 한 번씩 자동차를 바꿔야만 훌륭한 아버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좋은 남편, 훌륭한 아버지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물었다. “여보, 당신은 행복해요? 난 지금 하나도 안 행복해.” 이런 말을 하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다며 콧방귀를 뀌던 찰나에 아내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 가족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부세미나에 한번 참석해 봅시다.” 특별히 부부생활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이씨는 아내의 이런 제안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부부 세미나는 문제가 있는 부부만 참석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꺼려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서 이씨의 대답은 ‘No!’. 그가 생각하기엔 그곳에 참석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내도 포기할 줄 몰랐다. 이씨를 설득해 부부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3일 밤낮을 애원했다. 회사 생활에 빠져 집에 들어오면 침대에 눕기 바빴던 이씨와의 부부생활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내의 정성에 이씨도 백기를 들었다.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부부세미나에 참석하기로 한 것. 내키지 않은 동행이었지만 그것이 이수경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가정 ‘권위자’에서 가정 ‘경영자’로 2박 3일 일정의 부부세미나. 이씨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정확히 부부세미나의 첫 강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미나 참석 자체가 불만이었던 이씨는 강의가 시작하자 의자에서 엉덩이를 쭉 빼고 눕다시피 앉았다. 일종의 불만 표출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반항(?)도 강의가 시작되자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구부정했던 허리는 이미 꼿꼿해졌고, 강의를 듣는 눈빛은 초롱초롱해졌다. 강의에서의 그 무엇인가가 이씨의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이다. “그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거만했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니 집에서 잠만 자도 다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강의를 듣고 나니 그것이 아니더라고요. 가정에서 권위만 가지려 했지 가장으로서 가정 경영은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뒤통수가 시원해지더라고요.” 강의의 내용은 간단했다. 이 교육을 이전에 들었던 참가자가 그들의 부부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 모습이 이씨 부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가족이 모두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정 경영을 도외시하고 있는 모습. 그것은 이씨 부부 생활을 실상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그 수업이 이수경 가정생활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아내에게 “가정을 경영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선언한 후, 꼬박 2년 동안 국내에서 열리는 수많은 부부세미나에 참석했다.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 대한 책도 30권 이상 탐독했다. 그렇게 다년간 부부와 가정생활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남편이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남편이 가정 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변하니까 가족이 변하더라고요. 주말에 잠만 자는 게 일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하나 둘씩 변하기로 다짐했어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포옹했는데 서른이 넘어서도 하고 있어요. 부부 생활도 바뀌었죠. 이른바 *텐텐 대화법으로 부부 사이가 더 돈독해졌습니다.” ◇ 매달 21일, 둘이 하나데이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높지 않잖아요? 행복해지는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가정 행복에 대해 연구를 하면서 가정이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의 오프라인 부부쇼를 기획하게 됐죠.” 이씨는 그 열정에 보람을 얹혀 개그맨 겸 소통테이너인 오종철과 손을 잡았다. 1년 동안 부부쇼 ‘둘이 하나데이’를 기획한 것. 지난 3월 21일 첫 선을 보인 ‘둘이 하나데이’는 매달 21일에 열리는데, 이는 ‘2(둘)이서 1(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부부의 날’인 5월 21일에서 착안한 것이다.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이 부부쇼에서는 강연, 참가자 그룹회의, 가족 선서, 편지쓰기 등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부부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이씨는 오종철과 함께 MC로 활약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수경에게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기업인, 강사, 작가, 토크쇼 진행자, 가정행복코치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에너지를 뿜으며 이 모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가슴 깊은 곳에서 활활 타오르는 열정과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예요. 여러 가지 역할을 모두 놓치기 싫거든요. 물론 가정 경영자로서의 역할도요. 이 많은 역할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역할은 바로 가정행복코치예요. 제가 20여년 전 느꼈던 것처럼 타인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넣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부부에게도 기술이 필요하다 “마음에서 마음을 전한다고요? 말을 안 하는데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저는 이심전심이라는 말은 부부 사이에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부부는 동상이몽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화해서 서로의 이해를 얻어야 해요.” 가정행복코치가 된 후 그에게 부부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씨가 가장 크게 보람을 느낄 때도 그가 낸 책 나 강연을 보고 부부생활에 다시 활력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그래서인지 그가 부부 생활 노하우를 담은 책 는 출판 이후 149주 연속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씨의 부부관계 노하우는 책, 둘이 하나데이, 개인 상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이씨는 상담을 해보면 대부분의 부부 문제가 대화 부족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대화로 뛰어들었다간 위험할 수 있다. 감정이 격해져 비수가 꽂히는 말로 자칫 부부간 감정의 골만 깊어지는 경우도 허다한 탓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현명한 대화의 기술이다. “한번은 이런 적이 있어요. 라디오 방송을 마치고 비방송용으로 게스트들과 이야기하는데 한 분이 ‘청계천에서 손잡고 다니는 중년 커플은 다 거짓말이죠?’라고 하더라고요. 내막을 몰라서 참으로 당황스러웠는데 그분이 일종의 권태기였나 봐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꼴 보기 싫어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단점보다는 남편의 좋은 점을 하루 한 가지씩 노트에 써보라고 얘기를 했어요. 얼마 있다가 연락이 왔습니다. 남편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둘이 하나데이에 나와 커플 스쿼트도 하며 부부 금실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부부생활 코칭과 ‘둘이 하나데이’의 긍정적인 성과가 쌓여가자, 이씨의 몸값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그가 1년 동안 기획한 ‘둘이 하나데이’는 한 기업에서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포맷을 그대로 따갈 정도로 말이다. 그런 이씨가 꿈꾸는 미래는 이제 더 큰 울타리를 향한다. “가화만사성이 사화만사성(社和萬事成)이라고 생각해요. 건강한 가정이 모여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거죠. 그 작은 것을 만들어 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부가 손잡고 ‘둘이 하나데이’에 오는 것을 상상합니다.” *텐텐 대화법이란 부부끼리 대화할 것에 대해 10분을 노트에 써 보고, 10분을 대화 하는 것이다. 감정적인 것을 배제하고, 이성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 2015-08-07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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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이 아침] 글로벌로 시작된 제2의 인생과 도전
- 듀폰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담당자로 인재개발 15년, 그리고 인사 업무를 7년간 맡으며 기업 인재교육 분야의 최고전문가로서 활동했던 윤경로(尹景老·62) 전 듀폰 부사장. HRD(Human Resource Development·인적자원개발)와 HRM(Human Resource Management·인적자원관리) 분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그의 현재 직함은 사단법인 글로벌인재경영원 원장이다. 경영원의 목표는 학생들과 비즈니스인들의 글로벌 역량을 단시간 내에 최적화시키는 것. 자신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장기로 두 번째 인생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그는 “사실 좀 쉬고 싶었다”라고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윤경로 원장이 사단법인 글로벌인재경영원을 만든 목적은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당연히 ‘좋은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가 만들고 싶은 좋은 인재의 차원은 기존의 인재상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기준이 글로벌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다. “우리 땐 해외로 여행도 잘 못 갔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일상이 됐죠.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글로벌 역량이 과거 세대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과 인도 등 새롭게 떠오르는 나라의 인재들이 우리나라 인재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하는 중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되레 그런 경쟁자들이 없었던 우리 세대보다 글로벌 경쟁력은 더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예요.” 우리나라 인재의 역량 저하 현상 … 심각한 문제다 윤 원장의 말에서는 내내 변화하는 현실에 관한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위기의식에는 확실한 근거 또한 있었다. 그가 듀폰에 있을 때, 사내 핵심인재를 선발하게 되면 예전에는 한국인들이 핵심인재 범주에 상당수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렇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출신 인재가 글로벌 기업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 현상이 듀폰만 그런 건가 싶어서 IBM이나 GE에도 물어봤어요.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더군요. 심지어 더 심각하다고 할 정도로.” 흔히 한국은 천연 자원이 없는 대신 인적 자원의 우수성으로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다는 신화가 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신화가 추락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윤 원장은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는 일반화된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글로벌 인재를 본격적으로 육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글로벌인재경영원을 사단법인으로 만든 이유도 대학생 때부터 글로벌 인재 육성을 목표로 대학교 등에 프로그램 제공을 위해서다. “우리나라 인재들은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 볼 때 영어에서 밀리고, 다양성에 대한 경험과 수용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일하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인도는 글로벌 CEO 다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학교까지 인도에서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에서 CEO로 올라간 거죠.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에요.” 국내 인재들의 글로벌 경쟁력, 정확하게 평가하고 토론해보자 “미디어에서 우리나라 인재들의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평가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기업에서는 해외로 사원을 보낸다고 할 때 어학 교육 정도만 해서 보내는 경우들도 많아요.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게 기업의 고민입니다. 앞으로는 기업들이나 생활의 글로벌화가 더 진전되는 게 당연한 흐름이기에 그에 맞추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LG전자 프랑스 법인에서 일했던 에릭 쉬르데주 전 LG전자 프랑스 법인 대표는 이라는 책을 냈다. 책에는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겪은 과중한 업무와 전시행정, 승진 차별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다. 윤 원장은 저자의 행동이 옳지 않았다고 전제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성공해야 좋은 인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윤 원장은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담아 중소기업에 글로벌 역량을 제공하는 방안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윤 원장이 듀폰에서 은퇴한 지는 2년여가 되어오고 있다. 듀폰에서 22년을 인재들의 육성과 발굴에 바쳤다. 그런 윤 원장이 은퇴 전에 생각했던 게 젊은 직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듀폰 내에서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바깥에서 만들게 된 것이 글로벌인재경영원이다. 그가 은퇴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젊은 인재들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니 그 희망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 미래지향적인 사고, 적극적인 의지가 글로벌 인재가 갖춰야 할 자질이에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법 1953년생인 윤 원장에게선 나이를 잊은 활력이 느껴진다. 그에게 즐겁게 살기 위한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지를 물어봤다. “자신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좀 겸손해져서 내려놔야 해요. 그러면 새롭게 배울 수가 있어요. 요즘 뭔가를 배울 기회는 많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꿈이 없어졌어요. 제 2의 인생은 어떤 꿈을 갖고 경영해야 합니다. 저는 새로운 것을 가지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윤 원장은 현재 인간개발연구원, 세계미래포럼, 백강포럼에 출석하는 중이다. 그는 강사가 일방적으로 강연만 하는 포럼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능성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의사소통의 기술인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의 최고 전문가였기에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자신이 포럼을 한다면 토의와 참여 형식이 주가 되는 형식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혔다. “나이 들어서 좋은 점이라면 심적으로 여유가 생긴 겁니다. 듀폰에 있을 때는 낮에 일하고 밤에도 일해야 했어요. 글로벌기업이라 시차에 따른 업무들이 야간에도 발생했거든요. 그리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윤 원장은 항상 사람들이 뭔가 생산적이고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인재 전문가다운 성향을 드러낸 대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이 없으면 지루해져요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지는 배우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다. 나이가 들어 남편이 은퇴하고 나면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하여 관계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되레 갈등이 커지는 경우도 많다. “저는 터득했죠(웃음). 공동관심사를 가지는 겁니다. 아직은 둘 다 일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그리고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루해지는 이유도 꿈이 없어서입니다. 가급적 부부가 함께 꿈을 찾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죠.”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존중에 대한 이야기다. 인터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람을 대하는 전문가로서 윤 원장의 기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묵직한 대답이었다.
- 2015-07-1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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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와 나 - PART5]한 지붕 열 세 식구 이야기
- 내가 2003년에 낸 에세이집 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모여 살 수 있나요?” 많은 분들은 궁금증을 가집니다. 자녀 네 가족과 우리 내외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한가 봅니다. 호기심으로 묻는 분도 있고 부러워하면서 묻는 이도 있습니다. 성질 급한 분은 당장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도 합니다. 나는 이런 급한 질문을 받으면 좀 당황스럽습니다. 달리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라 단시간에 단 몇 마디 말로 설명을 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글 이근후(李根厚·이화여대 명예 교수) 요즈음 우리 사회는 핵가족도 모자라 일인 가정으로 살아가는 인구도 참 많아졌습니다. 교과서적인 가족의 개념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학 교과서에 실린 가족의 개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확대가족이란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핵가족이란 개념입니다. 확대가족은 농경사회에서 경험했던 가족구조입니다. 3대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삽니다. 핵가족이란 산업사회를 겪으면서 생긴 가족형태입니다. 가족 이동이 손쉽도록 기능적인 가족이 부부와 미성년 자녀들로 구성하는 가족형태입니다. 13가족 함께 한 지붕아래 산다 시대가 변하면서 대부분의 가족들은 핵가족 형태를 취합니다. 자녀가 결혼하면 곧바로 분가하여 자신의 핵가족을 이룹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서는 이런 고전적인 가족 정의를 설명할 수 없는 가족형태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회적 추세로 보아 우리 집은 13가족이 한 지붕아래 함께 산다고 하면 당연히 궁금증을 일으킬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씀 드리면 이렇습니다. 우리 부부는 2남2녀를 두었습니다. 그러니 모두 5가구 손자녀 합해 13명입니다. 함께 돈을 모아 빌라 형태의 집을 지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한 일은 아닙니다. 자녀들이 모여 그런 발상을 해서 내가 동참한 것입니다. 하향식이 아니라 상향식입니다. 필요에 의해 모였습니다. 1년 여의 의논과 1년 여의 설계를 거쳐 함께 모여 삽니다. 필요에 의해 모였다는 말은 자녀들의 요구와 우리 부부의 사정이 맞았다는 말입니다. 당시 현실적인 요구는 자녀들이 모두 전세를 살고 있어서 자기 소유의 주택을 갖지 못했습니다. 손자녀들이 어렸는데 그 부모들은 모두 직장을 가진 터라 육아에 손이 모자랐습니다. 우리 부부는 은퇴를 하여 상대적으로 시간여유가 있었습니다. 필요에 의해 모인 확대가족 이런 상황에서 모였으니 우리 가족은 필요에 의해 모인 확대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자녀들이 결혼하면서 신혼 6개월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분가를 시키면 남남이 될 것 같아서 서로 양해를 하고 6개월의 소통기간에 합의했습니다. 새로 우리 집에 들어오는 며느리나 사위도 우리 부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부부도 새로 들어오는 식구들의 진면목을 알아야 합니다. 결혼하기 이전 자라던 친가에서 하던 습관대로 행동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우리 부부도 새 식구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하던 습관대로 했습니다. 서로 눈에 거슬리는 모습이더라도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6개월의 학습동거 끝에 분가시켰습니다. 6개월 학습동거 끝의 분가 이후 이런 사정을 거쳐 서로 분가하여 살았는데 아무리 필요에 의한 재집결이긴 하지만 의논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필요에 의한 재집결의 아이디어는 큰며느리가 제안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의논하기를 우리 부부 중 누가 먼저 타계하게 되면 남은 부모를 모시기로 했답니다. 자녀가 넷인데 서로 역할을 나누어 모시면 어떨까라고 형제들 간에 의논을 했답니다. 그렇게 하자면 한 집에 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 아이디어를 내가 정년퇴임하는 시점을 맞추어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주 모여 어떻게 하면 필요성을 극대화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많이 의논했습니다. 부부간에 생각을 맞추어 살아가기도 힘든데 이런 대가족이 모여 살자면 의견이 다른 점도 많고 서로 부딪쳐 속상하는 일도 많을 텐데 어떻게 적응할까 많이 의논했습니다. 의논 끝에 찾아 낸 핵심적인 요체는 이렇습니다. “우리들은 각 가정이 고유한 가치관과 종교관을 갖고 간섭 없이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서로 같음은 나누면서 즐기고 다름은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침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모여 사는 동안 우리들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 노력을 하기 이전에 우리들이 깊이 생각한 하나는 가족 간의 거리입니다. 함께 한 지붕 아래 살고 있으니 물리적 공간과 거리는 매우 가깝습니다. 가까운 만큼 지켜야 할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정서적 거리도 중요합니다. 너무 가까워도 갈등으로 꼬이고 너무 멀어도 남남입니다. 얼마만한 정서적 거리가 필요할까요. 고슴도치를 생각했습니다. 서로 꽉 껴안으면 상처를 입습니다. 너무 먼 거리에서 바라만 보면 가족정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낱말이 정서적 안전거리 확보입니다. 이런 정서적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독립성의 유지와 간섭의 배제였습니다. 서로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 인정해 3세대 가운데 우리 부부가 그 약속을 지키기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자녀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성가하여 나름 가족을 형성했다고 해도 부모 눈엔 역시 어린아이로 보입니다. 이 위태한 아이(?)로 보는 시각은 머리로는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정서적으로 느끼기에 부족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습관이 변할 것은 아니지만 정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간섭을 하지 않으면 자녀들도 어린이가 아닌 이상 그들이 습득한 방법으로 가족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늘 이런 문제로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노력은 점차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걱정했던 것만큼 우리 부부의 손길이 없어도 잘 지냅니다. 되돌아 보면 기우입니다. 우리 부부의 간섭이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자녀들의 창의성이 넓어집니다. 자녀들도 제가끔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들이나 가족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을 것입니다. 크게 패가망신할 삶이 아니라면 어떤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꼭 부모가 살았던 방법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상호의존적인 삶이 모델입니다. 집 구조상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지만 법적으로 각기 소유로 등기되어 있으니 공동경비만 갹출해서 유지보수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 독립이 보장된 셈입니다. 정서적으로는 서로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으로 독립성을 유지하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이런 약속을 하고 산 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가장 혜택을 받은 층은 당연히 우리 부부입니다. 다음이 손자녀들입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자녀들은 샌드위치 신세입니다. 위로 부모를 모시랴 아래로 자녀들을 키우랴 눈코 뜰 사이가 없습니다. 우리 부부가 아무리 자녀들의 독립성을 유지시키고 간섭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부모라는 이름의 무게 그 자체 때문에 불편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공동체 언제까지 유지해야 하나? 이제 손자녀들도 자라 우리 부부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랐습니다. 처음 모여 살기로 했을 때 이런 약속도 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형태의 가족 공동체를 언제까지 유지해 나갈 것인가. 손자녀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하게 되면 그때 의논해서 새로운 출발을 하자고. 10년이 지나 보니 그런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자녀들이 집에서 꿈을 키우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 사회의 일꾼으로 자랄 것을 소원합니다.” 이 약속은 다섯 가지 약속 가운데 마지막 약속입니다. 이제 손자녀들이 결혼을 하여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면 그들이 함께 살았던 가족공동체 경험을 살려 또 다른 창의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상호 존중하는 독립성과 정서적 안전거리 확보는 미래의 가족들에게도 가치 있는 기준이 될 것을 확신합니다. 이근후 명예교수는 1935년생인 이근후 교수는 이화여대 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76세의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수석 졸업하면서 화제가 된 인물이다. 30년 넘게 네팔 의료봉사, 40년 넘게 광명보육원 아이들을 돌본 이유도 별 게 없다. 봉사를 하니까 인생이 더 즐거워졌다는 게 전부다. 그는 10년 전 왼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현재 당뇨, 고혈압, 통풍, 허리 디스크 등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임 후 사단법인 가족아카데미아를 설립하여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 교육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네 명의 손자 손녀가 그의 인생 후반부를 새롭게 쓰도록 해준다며 가족들의 인연이란 참으로 놀랍다는 걸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실감한다고 했다.
- 2015-06-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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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와 나 - PART4]DO 대화법 VS Do Not 대화법
- 누구나 자녀에서 부모로, 다시 조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을 밟는다. 삶의 종반부에서 맞닥뜨리는 조부모 단계는 인생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다. 실제 60대 부부와 아들 내외가 손녀 ‘애지’를 중심으로 즐거운 이야기, 우울한 대화를 나누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봤다. 손녀 애지의 여덟살 생일 아침 아들 내외 집에 갔다. 손녀 선물 사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애지를 위해 책가방 란도셀을 62만원 주고 샀다. 제 에미가 잘 기른 덕에 초등학교 1학년치고는 영어 실력은 좀 된다며 은근히 딸 자랑을 한다. 며늘아이의 맘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식자랑 한 번 못하고 일만 했는데. 국제시장 덕수마냥. 허허허. 제 자식 이쁘다면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만 손주는 참말로 이쁘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해피버스데이 투 유…나도 애지 사랑한데이.” 내 얼굴을 손녀가 만지고 부비고 뽀뽀를 하니 세상이 다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애지 키가 또 컸네. 할머니 키보다 더 크겠네. 에미 네가 참 수고한다.” 아내는 며느리를 먼저 칭찬한다. “네 동생 보고 싶지 않니?” 하며 둘째 낳을 생각 않는 아들만 서운한 듯 바라본다. “다 큰 자식 뭐라 한다고 듣기는 하겠어요?” 아내가 며늘아이 안 들리게 한마디 한다. “제놈두 아마 세월이 가면 늠름한 자식놈 앞세워 목욕도 가고 산에도 가고 운동도 하며 아들놈과 호연지기를 맘껏 펼쳐보고 싶을 텐데.” 아들놈은 아들을 낳으라는 압력을 못 알아들은 척 인상을 찌푸린다. 손녀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내 아이들을 키울 때 나는 어땠는지 생각하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솔직히 아내 혼자 아이들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만 하고 아이들과 대화로 해결한다고 하면서도 많은 것을 내 고집대로 결정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손자녀가 태어나 걷고 젖니가 빠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걸 보면서 내 아이들에게 잘 해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되살아나 꿈틀거린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똑같은 사건을 아이들이 나와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것이 놀라웠고,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나 나의 이면을 알게 된 적도 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이 든 부모가 장성한 자녀들과 소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이 들어 생기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거리감은 당연하다. “그래 이제 와서 내가 간섭한다고 한들 아버지 말을 듣겠니?” 장성한 자녀에 대해 10%만 알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부모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우선 중요한 것은 말을 거는 것이다. “요즘도 야근이냐? 종친회 모임이 이번 주에 있는데, 같이 갈 수 있니?” 아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본다. “바빠요, 아버지는 제가 싫어하는 종친회를 왜 가자고 하는지? 거기 가면 싸우고 선산이 어쩌고…….” 아무리 친구처럼 지내도 부모는 자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어릴 적 키울 때처럼 자녀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고 한다면 오히려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자녀는 불효자식이 되고 말 것이다. “할아버지, 왜 아빠랑 싸워?” “응, 괜찮아. 싸우는 게 아니고. 할아버지랑 아빠랑 의견을 나누시는 거야.” 며늘아이가 내 눈치를 보며 위로하듯 손녀에게 응대한다. 세대를 잇고 과거를 이해하게 만든 소중한 존재는 바로 손주다. 손주가 없었다면 서툰 부모로만 남았을 것이다. 사실 내 배가 좀 나왔다.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웃겼던지 손녀가 내 배를 두들긴다. 아프지만 손녀가 나를 좋아해줘서 흐뭇하다. 내 친구 손녀는 할아버지한테서 냄새가 난다며 얼굴도 못 만지게 한다는데. 혼자라서 지 멋대로 하는 손녀가 때로는 짠하다. 할머니 등을 때리고 가슴을 치는 일들이 생긴다. “할머니는 이것도 몰라?” 흔히 엄마들은 할머니가 아이 버릇을 망친다고 걱정하지만, 아이 버릇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엄마 아빠다. 손녀가 할머니에게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엄마가 아이에게 잘못을 알도록 호되게 꾸짖는다. “에미야, 애지가 요즘 투정이 부쩍 늘었어.” 이렇게 살짝 말하고 슬그머니 화장실로 자리를 피해준다. 떨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아이가 조부모와 깊은 가족애를 나누기 힘들다. 친밀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에게 화부터 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 같은 행동으로 인해 오히려 아이가 관계 형성에 부담을 갖고 피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손녀에 대한 일은 부모보다 앞서 나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조부모는 앞서가는 자리가 아니라 따르는 자리에 있어야 좋다. “애지 낳느라 고생이 많았다. 오늘은 애지 생일이지만 네가 축하 받아야 한다.” 며늘아이에게 가방 선물을 건넸다. 살짝 수줍어하며 “아버님, 뭘 이런 걸 다…….” 며늘 아이가 내 마음을 좀 알아주니 고맙다. “하나만 더 낳아다오” 하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아들, 딸 키우던 내 젊은 날엔 ‘먹고살기에 급급해 일만 하다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으로 무책임함을 덮어버린 채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주들에게만은 후회 없는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 내 인생 후반전은 손녀 녀석으로 너그럽고 풍요롭게 성숙해져가고 있다. 만화 보며 사춘기 손녀 마음 읽기 손자랑 가계도(족보) 써 보기 손자에게 신문 읽는 재미 알려주기 손자랑 야구(운동) 연습해보기 손자랑 서점 가서 책 보기 손자랑 창덕궁 관람하기 손자녀와 자원봉사 활동하기 손자 운동회 가서 늠름한 모습 눈에 담기 손자 학교 앞에 가서 군것질하기 손자녀랑 천체관측 데뷔하기 손자녀와 산에 가기 할아버지 할머니 인터뷰해보기 손자녀랑 1박 2일 캠핑 가기 손자녀의 부모가 좋아하는 일 해보기 손자녀와 커플룩 입어보기
- 2015-06-02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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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배우 예수정의 두근거리는 삶
- 화장기 없는 얼굴. 보송보송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칼. 한 떨기 수선화처럼 여리여리한 배우 예수정(芮秀貞·60). 수줍은 소녀 같았던 그녀와 대화를 할수록 소녀가 아닌 소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속에 석유통을 지니고 있다며 야무지게 쥐는 두 주먹. 연극을 이야기할 때 빛나는 눈동자. ‘5월은 역시 어린이달’이라며 개구지게 웃음 짓는 모습까지. 건강보조식품이 아니라 연극을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그녀. 그래서일까? 무대 위에서 더 건강하게 빛나는 배우 예수정을 만나봤다. 글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79년 연극 으로 데뷔, 그야말로 인생의 반 이상을 연기자로 살아온 예수정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내면 연기로 보는 이의 심장까지 쿵쿵거리게 만드는 그녀가 요즘 가장 설레는 일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서 실질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설레는 게 줄어서인지, 자연이 주는 설렘이 커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여명(黎明), 길을 나설 때 찬란한 햇빛, 이렇게 꽃이 핀다든지 나뭇가지가 새순 내느라고 그러는 것을 봐도 설레고요.” 조금은 의외의 답변이었다. 그래도 예수정 하면 ‘배우’라는 타이틀을 빼놓을 수 없는데, 작품 속 역할이 주는 설렘은 없는지 궁금했다. “어떤 역할을 맡아서 설레는 것보다는 어떤 작품을 대할 때 설레는 마음이 커요. 내 심장을 가장 뛰게 했던 작품은 2012년과 작년에 했던 이에요.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죠. ‘구조가 왜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가?’, ‘우리는 해방을 향하여 걸어나가야 한다.’ 등의 메시지는 평생 머릿속에만 있거든요. 실제로 내가 데모를 한 것도 아니고, 늘 삶의 과제처럼 남아 있는 거죠. 근데 작품에서는 액팅(acting)이 되어 있고 난 액팅 아웃(acting out) 하잖아요. 그런 작품을 만나면 피가 뜨거워지죠.”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무언가를 펼쳐낸다는 기분일까? 그녀는 그보다도 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표현했다. “펼쳐볼 수 있다는 말로는 모자라요. 그대로 행위하니까, 그때야말로 진짜 살아 있는 것을 느껴요. 평상시 제 삶은 고즈넉해서 뭔가 역동치는 것은 없거든요. 그런데 같은 작품을 만나면 굉장히 행동적으로 변하죠. 실제 삶 자체보다도 더 큰 의지를 갖고 한 발을 딱 내딛는 거예요. 언젠가 나도 내 삶에서 그 한 발을 분명히 내디딜 것을 희망하지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작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그 한 발을 내딛거든요. 사고가 현현화되고, 나의 이상이 현상화되는 순간인 거죠. 그래서 공연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배우로서의 삶이 어렵지만, 실제 삶은 굉장히 생생하고 풍부해지죠. 우리 딸도 연극공부를 해서 지금은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물론 고생할 게 눈에 선하죠. 하지만 내 경험을 통해서 분명히 아는 것이 있어요. 연극을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삶이 풍부해질 것이란 거죠. 그래서 딸에게도 ‘훌륭한 길 택했다’고 얘기해줬어요.” 내겐 참 고마운 직업 ‘배우’ 단순히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기한다’기보다는 한 인간이 거대한 사고를 이뤄내는 과정에 연기가 양질의 영양분을 더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녀에게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았다. “배우라는 직업이 무척 고마워요. 내 인생의 근본적인 목적을 향하는 길에 현재 내 직업이 절대 흠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온전히 만족하고 행복하죠. 직업과 내 인생은 서로 보탬이 돼요. 작품을 통해서 나 개인 예수정보다 더 나은 정신을 들여다보고, 그 정신을 들여다봄으로써 나의 삶이 더 좋아지는 것을 발견하죠. 사실 작품이 끝나면 배우는 다시 누추해지거든요. 그것을 인지하면서 덜 누추해지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되고, 그 노력한 만큼이 분명히 작품에 입혀진다고 봐요. 그런 과정에서 작품을 보는 여유가 생기고 그만큼 인생을 사는 폭도 넓어지죠. 이렇게 서로 도와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최고의 직업이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배우라는 직업이 숙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가 이 숙명을 직감한 순간은 언제일까? 그 순간 역시 운명과도 같았다. “대학교를 (고려대) 독문학과를 나왔는데, 그때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알게 됐어요. 브레히트의 ‘극장은 시민계몽의 공간이다’라는 말을 알고서는 ‘아, 내 평생 여기(극장)에서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라고 강하게 느꼈죠. 그 이후로 연극반에 들어갔고 엄마(배우 故 정애란) 몰래 연기를 시작했어요. 내가 고생할까 봐 연기하는 걸 반대했던 엄마의 마음도 이해했지만, 저 나름의 신념은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배우라는 것이 굉장히 소망이 가득한 일이라는 것 말예요.” 부끄러운 첫사랑의 추억처럼 살아 숨 쉬는 ‘열정’ 처음 배우를 꿈꿨던 그때의 열정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듯했다. 연기 인생 37년, 그때 가슴을 울렸던 그 결심이 현재는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물었다. “그 생각을 남 앞에서 이야기할 만큼 내 삶 자체가 계몽적이거나 혁명적이지는 못했어요. 때문에 입으로 말할 순 없지만 부끄러운 첫사랑의 추억처럼 가슴속에서 없어지지는 않죠.” 그동안 쌓아온 연기 내공이 있는데 나름의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은 분명할 것 같았다. 그런 기자의 이야기를 듣자 그녀는 ‘내공’이나 ‘연륜’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끄럽기만 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런 것까지는 없고요. 소신이라면, 내 사고가 계속 앞을 향해 걸어나가고 있는 한 이 직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나도 모르죠. 어느 순간 나 스스로 느낄 때 내 사고가 앞으로 걸어나가고 있지 않다고 느끼면 빨리 떠나야죠. 무대나 필름에 폐를 끼치면 안 되니까요. 그때는 무슨 사명감이나 소명의식 때문에 질질 붙들고 있지 말고 떠나야죠. 떠나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걸어나가야겠지만.(웃음)” 그녀의 말처럼 정년이 없는 배우로 살아가다 보면 쌓여가는 경력만큼 부담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부담을 설렘이라 표현하고 있었다. “이제는 어떤 작품이 나에게 왔을 때 내가 나이든 사람으로서의 그 특성을 얼마만큼 표현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겉으로 찌글찌글한 모습만이 나이든 사람은 아니거든요. 나 역시 뭔지는 모르겠으나 이만큼(60년)을 살아왔다면 중간에 실수도 있었겠지만, 단 1초라도 은총을 받아 한 발자국이라도 걸어나갔다면 그 흔적들이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 여태 먹은 끼니만큼의 밥값은 해야지 될 텐데, 그게 어떻게 묻어져 나올까? 나도 궁금해요. 그래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는 없어요. 어떤 역할이든 좋아요. 거기에 내 끼니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궁금하고 설레거든요.” 어떤 역할이든 좋다고 말한 그녀. 요즘 떠오르는 중년의 로맨스, 특히 젊은 남자배우와 중년 여배우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도 적지 않다. 유독 멜로물과는 거리가 먼 배우 예수정. 혹시 그녀도 그런 로맨스를 꿈꿔본 적은 없을까? “저는 뭐랄까. 사람이 참 건조해서. 아마 제가 만에 하나 그런 역할을 맡게 된다면, 그리고 그 역할이 제 피를 끓게 한다면 조금 또 다른 시각을 볼 것 같아요. 인생의 경험이 많아진 만큼 역으로 젊었을 때 청춘의 삶 속에 있었던 보석 같은 정서가 흐려졌을 수가 있죠. 어떤 젊은이를 만났을 때 남성이라서 끌리는 로맨스가 아니라, 그 젊은이를 통해서 다시 내 안에 생성되는 조금은 잊고 지냈던 그런 것들이 소생되면서 꽃처럼 피어나는 그런 거라 할까? 아, 소통하는 것. 그 노인 안에도 있는 젊음의 생기, 그 외부의 매개체와 함께 소통할 수 있다는 것 말이죠. 그런 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이 아닌 실제 그녀가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은 남달랐다. 아니, 오히려 방법이 없는 것이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그냥 친구처럼 지내요. 그게 아마 동지의식이 있어서인가 봐요. 같은 작품을 하다 보면 동료애로 만나게 되죠. 제자들이 스승의 날 이야기를 꺼내면 ‘야야, 친구의 날은 없니? 하긴 에브리데이 친구의 날이니 친구의 날은 없나 보다.’고 말하기도 해요. 저는 아마 ‘공연’이라는 분명한 매개체가 있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무대 앞에서는 다 같은 배우니까요.” 조금 전 이야기와는 다른 면모였다. 자신을 건조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친근한 사람이니 말이다. 그녀는 왜 자신을 건조하다고 생각할까? “옛날에 어떤 분이 날 표현하기를 ‘습기 없는 나무’ 같대요. 어? 이 사람 나를 참 잘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이 좀 촉촉한 느낌이 나야 로맨틱하고 그런데, 그걸 아마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고 사는지 몰라요. 스스로 습관들인 자신의 삶이 건조한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말하다 보니 그게 나만의 (실수하지 않으려는) 방어책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연극’을 먹어 건강하고, ‘연기’를 해서 행복한 그녀 그녀는 배우로 살아가며, 연극을 하는 것이 곧 삶의 행복이자 건강의 비결이라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건강한 에너지가 샘솟는 법. 그녀가 하고 싶은 역할은 무엇인지 물었다. “하고 싶은 역할이요? 다 해봤어요. 대학 때부터 굉장히 하고 싶었던 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한 여성이 굉장히 육체적으로는 쇠퇴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젊었을 때 순수성을 잃고 거기다 마약까지 하게 되죠. 그 여인은 자기가 본의 아니게 영혼, 정신, 육체가 다 망가진 삶 속에서도 순수함에 대한 동경을 놓지 않아요. 정말 감사하게도 그 역할을 두 번이나 할 수 있었어요.” 예수정의 데뷔작 의 연출을 맡았던 한태숙 감독은 당시 ‘예수정은 속에 불덩이가 있는 여자’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그 불덩이는 활활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제는 준비할 것도 없어요. 늘 내 속에 있으니까요. 없어지지 않아요. 넘칠 듯한 석유통을 품고 있거든요. 불은 언제나 붙어요. 오히려 그게 내 인생의 커다란 함정이랄까?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나를 건조하게 만드는지도 몰라요. 삶 속에서 그게 확 타버리고 난 다음에는 어떠한 고통으로 다시 그 열량을 채워가야겠죠. 배우는 숙명적으로 ‘고통은 성숙의 미로’라는 말처럼 그 고통에서 벗어나 한 송이 꽃을 피워내야 해요. 그 고통을 지나 아름다운 꽃을 피웠을 땐 ‘아, 이 고통이 결국 내 삶을 꽃을 피우는 대미지였구나’라는 것을 깨닫곤 하죠. 또 한 가지, 나는 연극을 먹고 건강해지는 사람이거든요. 연극이 날 건강하게 하고, 내 삶의 활력을 가져다주죠. 누구든 매 순간 충실하면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어요. 저는 연기가 생활이니까, 그걸 날마다 충만히 하는 가운데 늘 무언가가 채워지는 거죠. 그게 제겐 힘이 되고 행복인 셈이에요.” 예수정(芮秀貞) 1979년 연극 ‘고독이라는 이름의 여인’으로 데뷔, 1980년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대학원 문학석사, 1984년 독일 뮌헨 루드비히 막시밀리안 대학 연극학석사, 2004년 제5회 김동훈연극상, 2005년 제26회 서울 연극제 여자 연기상, 제10회 히서 연극인상, 제41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2006년 제1회 한국 여자 연극인상 등 수상.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19그리고 80’, ‘고곤의 선물’, ‘벚꽃 동산’, ‘허난설헌’, ‘바다와 양산’, ‘그린 벤치’, ‘손님’, ‘늙은 부부 이야기’ 등 주연.
- 2015-05-07 1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