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주의 ‘꽃 피는 봄’을 완성하는 뚜껑별꽃
- 화란춘성(花爛春盛)이라고 했던가요. 꽃이 만발(滿發)하고 봄이 무르익는 4월, 따듯한 남쪽 나라 제주도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발 닿고 닿는 곳마다 연분홍 벚꽃잎이 휘날리고, 노란색 유채꽃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발합니다. 아니 ‘춘사월(春四月)’ 제주도에선 벚나무와 유채가 아니라도, 풀이든 나무이든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꽃을 피우는 듯 섬 전체가 꽃으로 흐드러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데 그런 제주의 봄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하는 야생화가 따로 있습니다. 뭍에서는 만날 수 없는 꽃, 제주의 특산 야생화라 일컬을 수 있는 꽃, 하지만 너무 귀하지는 않아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꽃, 바로 뚜껑별꽃입니다. 해안이나 높지 않은 오름의 양지바른 풀밭에 자생한다고 하는데, 처음엔 뜬금없이 ‘저지곶자왈’ 주차장 길섶에서 뜻밖의 조우를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순간 강렬한 보라색 꽃 색에 넋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앙증맞은 생김새에 다시 또 기함했습니다. 개별꽃이니 쇠별꽃, 큰개별꽃 등 다른 ‘별꽃’들과 마찬가지로 뚜껑별꽃도 키가 10~30cm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뚜껑별꽃은 꽃 색이나 생김새가 유별난데, 석죽과에 속하는 다른 별꽃들과 달리 앵초과로 족보를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가지런히 돌아 나는 다섯 장의 꽃잎은 지름이 1cm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작지만, 독특한 보라색 꽃 색만은 단번에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꽃잎 중앙의 수술과 암술 둘레에는 흰색과 자주색, 진보라색의 띠가 2, 3중으로 둘러쳐지면서 노란색 꽃밥과 어우러져 멋진 색의 조화를 보여줍니다. 게다가 5개의 수술대엔 붉은색 잔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보면 볼수록 신비감이 들 정도입니다. 동그란 열매가 영글면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가운데가 갈라지면서 뚜껑이 떨어져 나가듯 벌어지고 별 모양의 꽃받침이 도드라지게 드러납니다. 꽃 피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열매 맺은 뒤의 이런 모습에서 뚜껑별꽃이란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독특한 꽃 색을 따서 보라별꽃으로, 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만큼이나 총총하게 핀다고 해서 별봄맞이꽃으로도 불립니다. 뚜껑별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려면 게으름을 피운다 싶을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갖고 다가가야 합니다. 학명 중 속명인 ‘Anagallis’는 ‘해가 뜨면 다시 핀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날이 저물면 꽃잎을 닫고 해가 중천에 올라올 즈음에야 다시 활짝 열리는 뚜껑별꽃의 속성이 그대로 담긴 용어라 생각됩니다. Where is it? 뚜껑별꽃은 전 세계적으로 24개 종이 온대와 열대에 분포한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추자도, 그리고 전남의 일부 섬에만 1개 종이 자생한다. 아직은 대륙성 기후에는 적응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남방식물, 남부 도서지방이 분포의 북방한계선인 아열대 식물인 셈이다. 제주도에서는 남쪽 바닷가의 현무암 틈새나 올레길 길섶 등지에서 비교적 흔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4월 서귀포의 명승지인 외돌개에 가면 현무암 바위틈 곳곳에서 풍성하게 꽃 핀 것을 만날 수 있다. 석양 무렵 외돌개에서 맞는 일몰(사진)도 일품이다.
- 2017-03-16 15:51
-
- 어머니의 콩 자루
- 이번 한 주 동안 꽃샘추위 최강한파가 몰려온다는 뉴스가 약간의 공포감을 가져다주었다. 굳이 ‘최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련만...... 여기서 ‘최강’은 추위를 대비하라는 경고성 예보라기보다는 이제 웬만한 자극적인 사건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완전 무장을 했다. 아파트 현관문과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는 불과 삼분 거리밖에 안되고 사무실 내 자리까지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외부를 거치지 않고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종일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두툼한 코트까지 걸치고 나섰다. 내 또래 사람들 중에 어릴 때 따뜻하게 살았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마는 어린 시절의 겨울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온 몸이 오그라든다. 방안에서도 하얀 입김이 나오고 윗목에 놓아 둔 물그릇이 밤새 꽝꽝 얼어버리던 추위였다. 그래도 방학 때는 이불 뒤집어쓰고 방안에서 지내면 되었지만 개학 즈음의 초봄이 괴로웠다. 집에서 먼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던 중학교 때 그 초봄 추위. 박박 깎은 머리에 교모 쓰고 면으로 만든 검은색 교복 하나 달랑 입고 새벽에 나서면 위아래 이빨이 다다닥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어릴 때 나는 몸도 약했고 혈액 순환도 잘 안 되는 체질이었다. 매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봄이 올 때까지 심한 동상에 시달렸다. 귀는 벌겋게 얼어서 주먹만 하게 커졌고 손가락, 발가락도 진물이 나고 퉁퉁 부었다. 발가락이 엄청 굵어져서 신발을 신기도 힘들었다. 동상은 아프기도 하지만 가려운 것이 더 괴롭다. 마땅한 동상약도 없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밤마다 콩 자루를 내 손과 발에 채워주셨다. 동그랗고 노란 콩을 반 쯤 채운 신발주머니 같은 자루에 손을 넣으면 팔목을 묶어 주셨다. 양쪽 발도 양말처럼 콩 자루를 신고 잤다. 내가 뒤척일 때 마다 그 동글동글한 콩알들이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면서 내 발과 손가락 사이로 굴러다녔다. 간질간질 거리던 콩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머니께서 자루에 담아주시던 콩알 숫자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손등은 주름이 많고 윤기도 없다. 요즘 어머니 손을 보면 오십여 년 전 내가 만지작거리며 놀았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뼈만 앙상하던 손. 검버섯이 핀 손등 피부를 들어 올려 꼭 접어놓으면 다시 내려앉아 펴지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던 할머니의 손...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자꾸 더 높이 들어 올리곤 했었다. 이제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되었다. 육십을 앞에 둔 내 손은 겨울마다 채워 주셨던 어머니의 콩 자루 덕분에 참 곱다.
- 2017-03-08 18:17
-
- 국립중앙과학관 체험
- 국립중앙과학관은 1990년도에 대전 대덕연구단지로 옮겨 확대ㆍ개편하였다. 이공학ㆍ산업기술ㆍ과학기술사 및 자연사 등 과학기술자료의 수집ㆍ보존ㆍ연구ㆍ교류 역할을 하고 있다. 새봄처럼 포근한 2월의 끝 휴일, 손주들을 데리고 국립중앙과학관으로 가족 나들이를 하였다. 전시관은 과학기술관과 놀이 체험공간인 창의나래관, 영유아를 위한 꿈아띠체험관, 생물탐구관, 최첨단 교통체험시설인 자기부상열차관체험관, 천체관 등이 있다. 전시품으로 달암석ㆍ공룡화석ㆍ동식물 표본류 등 자연사 117만여 점과 측우대ㆍ석각천문도ㆍ자기부상열차 등 과학기술사 및 이공학 자료 1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자연사 전시실에서는 공룡화석에 눈길이 모아졌다. 공룡을 장난감이나 그림으로 익혔던 아이들은 화석이 모제품이 아니고 대부분 실제라는 해설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큰 공룡화석을 보면서 이름 맞추기에 매우 열중하였다. 천체관은 돔형 건물로 6분할 디지털 플라네타리움 프로젝터 6개로 360˚ 스크린에 입체효과를 가미한 다큐멘터리 및 애니메이션을 상영하였다. 우주의 생성과 발달을 입체안경을 쓰고 감상하였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따뜻한 야외에서 쉬었다. 수십 년 전 서울의 그것처럼 넓은 공간이 여유롭다. 오전 입장 때 텅텅 비었던 주차장도 꽉 찼다. 유료 체험장에서는 줄을 서거나 예약 후 한참 기다렸다. 자기부상열차 체험이 백미였다. 프랑스ㆍ독일ㆍ일본ㆍ중국과 함께 자기부상열차 대열에 합류하였다는 이야기가 좋았다. 몇 백 미터 천천히 갔다가 뒤로 다시 오는 짧은 거리다. 잠깐이지만 교통선진국임은 자랑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어린이 놀이공간이 3층 건물에 넓게 마련되었다. 옛날 자동차 타기, 미션 실행하기 등 보호자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시설도 많다. 관람의 혼잡을 피하려면 코스별 예약이 필수다. 서울에서 수원 광명 고속도로와 국도를 이용하면 시간과 통행료 줄일 수 있다.
- 2017-02-27 11:20
-
- 공공장소의 예의
- 약속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 승객이 많아 좀 붐비는 상태였다. 사람이 많으니 늦게 탄 필자는 출입문 바로 앞에 서게 되었다. 잠시 후, 문이 반쯤 닫히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투박한 어그부츠 발을 문틈에 쑥 들이밀고 있다. 이미 문이 닫히기 시작했으므로 다음 차를 기다리면 될 텐데 굳이 거의 다 닫힌 문을 열겠다고 발로 버티는 여자가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한번 해 본 솜씨가 아닌지 그 여자는 계속 전철 앞쪽을 쳐다보며 발을 빼려 하지 않았고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렸다. 언젠가 전철을 탈 때 문이 닫히고 있는데 무리하게 손을 넣거나 핸드백이나 우산 등으로 닫히고 있는 문에 들이밀어 억지로 여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경고 안내 방송을 들은 적 있는데 오늘 딱 목격을 했다. 앞쪽 기관실에서는 문틈에 발을 들이민 사람이 보이나 보다. 그것을 아니까 그 여자는 열릴 때까지 한쪽 발을 문 사이에 끼우고 앞쪽만 계속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문이 열리니 그 여자와 일행 남자가 탔다. 그들 뒤편에 서 있는 필자 눈매가 곱지는 않았을 것이다. 닫히는 지하철 문에 발 한쪽을 탁 들이민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던 필자는 잔뜩 그들을 흘겨보다가 얼마나 바쁜 일이 있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이해해 보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는데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일본인이었다. 일본사람들은 공공장소에서는 예의 바르고 예절을 잘 지키기로 유명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남의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걸까? 며칠 전에 가회동에 있는 은행에 볼 일이 있었다. 가회동에 갈 때마다 필자에겐 별스럽게 보이지 않는 골목인데 대형관광 버스나 소형 버스에서 내린 외국 관광객들이 그 골목으로 구경하러 가는 걸 보면서 뭐 볼 게 있나? 했는데 얼마 전 정식으로 북촌 탐방을 해 보니 그 골목은 북촌 8경의 한 곳으로 참 아름다운 전통 한옥 골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통 한옥을 잘 느껴보기를 바랐고 우리나라로 여행을 와주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내리니 길 위에 한 무리의 일본인 여행객들이 아마 개인으로 놀러 왔는지 커다란 지도를 펼쳐 들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따로 없으니 아마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필자는 우리나라를 찾아 준 것이 고마워서 잠시 미소를 짓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고여덟쯤 되는 여행객들이 ‘스미마센’ 하면서 한옆으로 우르르 피해 주고 있었다. 아마 자기들이 필자가 가야 할 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필자는 좀 놀랐다. 그들이 필자를 방해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필자가 조금 옆으로 비켜 지나가면 될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일본어를 좀 할 줄 알았다면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도 있었을 텐데 몹시 아쉬웠다. 그런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 친절한 일본인도 있는 반면 오늘, 닫히는 지하철 문을 열겠다고 한쪽 발을 쑥 들이민 그런 일본인도 있는 것이다. 어느 나라든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필자부터도 행동에 조심하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 2017-02-13 10:51
-
- 누구나 약자가 된다
- 전국에 걸쳐 수많은 관람시설이 있다. 주로 실내 시설인 전시관, 박물관, 생태관, 환경관, 수족관 등이 있고 야외시설로는 식물원, 수목원, 생태원, 동물원 등이 있다. 이런 관람시설은 사립, 공립, 국립시설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 공립시설이 가장 많다. 요즘에는 특별한 주제를 특화한 사립시설도 많이 생긴다. 국립시설은 공립이나 사립시설에 비해 현저히 시설개소가 적다. 시설은 몇 개 안되지만 대부분의 국립시설은 공립이나 사립시설에 비해 그 규모가 매우 크다. 규모만큼이나 사업비가 많이 들어간다. 국립시설은 말 그대로 국가에서 사업비를 부담할뿐더러 대부분 입장료가 무료이거나 아주 저렴해서 관리 운영비도 국가에서 부담한다. 국가에서 부담한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국민세금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립시설은 사립과 달리 영업이익을 추구하는 시설이 아니다. 공익성 관점에서 봤을 때 그 가치가 충분하다면 세금을 써서 건립할 당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교육적이라든가, 보존이라는가, 혹은 미래를 위한 국가적 투자의 당위성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건립이유가 된다. 서천에 국립생태원이 있다. 당초 갯벌을 매립해서 산업단지를 조성하려고 하다가 갯벌매립을 포기하고 대안사업으로 국립생태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서천까지 가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립’이라는 시설의 위상을 잘 아는 관람객들이 큰 기대를 하고 이곳을 찾아간다. 서울에서 최소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일단 주차장에 도착하면 매표를 하고 코끼리 열차를 타야할지 그냥 걸어가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 코끼리 열차를 타도 매표소에서 그리 멀지않은 방문자센터까지만 갈 수 있고 그 다음부터 주 전시시설인 에코리움 까지는 걸어가야 한다. 봄가을 날씨가 좋은 때는 매표소에서 에코리움까지 산책하듯이 걷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습지를 채운 억새와 갈대를 보는 멋이 있다. 그러나 한여름에 매표소에서 에코리움 입구까지 걷는 것은 힘들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도 없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리면 피할 곳도 없다. 겨울에는 더 심각하다. 허허벌판에 몰아치는 바람을 마주하고 걸어야한다. 몸이 좀 불편한 사람은 이곳을 방문하기 곤란하다. 그런데 에코리움 내부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5대 기후관을 주제로 다섯개 동으로 이루어진 전시시설은 각 기후대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식물과 동물, 어류등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열대관에서부터 과연 이곳이 국립시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열대관을 들어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하나는 계단으로 내려가서 멋진 식물 사이로 걸으며 열대 밀림을 느끼는 것이다. 폭포도 있고 어류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계단을 오르면 구름다리를 건너며 밀림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문제는 보행이 불편한 사람은 이곳 열대림을 재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람객은 짧은 우회길로 다음 코스로 바로 이동하게 되어있다. 국립시설에서 장애인에 대해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생태원은 현상공모로 설계 업체를 선정했고 국내에서 내놓으라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당선되어 설계를 진행했다. 설계도 문제지만 선정에 참여한 심사위원들도 이런 중대한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니 어이가 없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세금을 할인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세금을 사용한 시설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비단 국립시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각 분야에서 우리는 약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러나 언젠가 약자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시간문제가 아닌가. 고령자가 된다는 것은 곧 약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17-01-25 17:46
-
- 기분 좋은 릴레이
- 이른 아침 창밖에 많은 눈이 내렸다. 위에서 내려다 본 주차장은 차 한 대마다 하얀 천을 덮어 놓은 듯하다. 방송에선 연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 한다. 그래도 차에 눈이라도 치우고 나가야겠단 생각에 빗자루와 쓸개를 갖고 내려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쪽 옆에 차는 없는데 내차에 눈이 말끔하게 다 치워져 있는 게 아닌가. 아래를 보니 옆 차와 내 차에서 치운 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옆 차 주인이 누구인진 몰라도 자신의 차 눈을 치우며 내 차까지 치워 주었나보다. 기분이 묘하다.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이다. 뭐라 할까 횡재했다는 생각은 전혀 아니지만 절대 나뿐 기분은 아니다. 생각치도 않게 아침을 이렇게 기분 좋게 만들어주다니 고맙다. 나도 이왕 눈 치우러 나왔으니 하는 마음으로. 옆 차 눈을 치워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차 눈 치울 때 의무감보다 더 기분 좋고 신이 났다. 하는 길에 내 차 눈 치워준 것으로 생각되는 텅 빈 옆 차 눈까지 2대를 치워줬다. 기분 좋게 눈을 치워서 그런지 시간도 내 차 한 대 치울 정도에 마쳤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그 분들도 나 같은 기분이 들겠지 하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늦을 걸 생각해 평소보다 일찍 나오는데 미리 겁먹고 차를 두고 나와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대로는 녹아있고 밀리지 않는 차들이 쌩쌩 달린다. 나이 들어 미끄러지면 큰일 난다며 아내가 챙겨준 아이젠이 제 힘을 발휘한다. 조심 또 조심하는 사람들을 패스하며 미끄러질 염려 없으니 어깨 펴고 신나고 당당히 힘차게 걸었다. 작은 배려 하나가 선물 받은 하루에 덤 주듯 선물하나 더 받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웃는 하루가 될 것이란 예감이다.
- 2017-01-23 09:29
-
- 동짓날 천년사찰 龍宮寺에서 팥죽 한 그릇의 추억
- 어제는 동지였다. 동지 하면 바로 팥죽이다. 예로부터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먹지 않으면 쉬이 늙고 잔병이 생기며 잡귀가 성행한다는 속신이 있어, 동지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팥의 붉은색이 양색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팥죽을 먹는 것이 악귀를 쫓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고향에 정착을 한지도 어느덧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고향의 중심에는 백운산이 있고 그 산 중턱에 천년고찰 용궁사가 자리하고 있다. 용궁사에 대한 추억은 어린 시절 봄이 되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봄소풍을 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올라가는 길 따라 벚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으며, 용궁사 경내가 가까워지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냄새가 매캐한 향냄새와 어우러져 황홀지경에 빠질 정도였다. 특히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이나 되어야 맛볼 수 있었던 사이다의 톡 쏘는 맛에 취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런데, 용궁사에서 동짓날 팥죽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현수막이 눈에 띄어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드디어 동짓날이 되어 어린 시절 친구에게 같이 갈 것을 권고하니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12시에 산 아래에서 만나 쉬엄쉬엄 백운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불과 20여분 만에 용궁사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아도 경내 주차장에 여러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절간 마당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팥죽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아는 사람들 몇이 그 곳에서 팥죽 봉사를 하고 있다가 필자를 보고는 반색을 하며 자리를 안내해 준다. 김이 설설 오르는 팥죽 한 그릇에 동치미까지 곁들여서 차려 내왔다. 시장하던 차에 게눈 감추듯이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나니 떡에 커피까지 대접을 받게 되었다. 뒤꼍으로 가니 커다란 솥에 불을 지피고 대형 주걱으로 팥물을 휘휘 저으면서 팥죽을 쑤고 있었다. 어찌 그냥 지나칠쏘냐. 대형 주걱을 받아들고 노력봉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팥죽이 끓으면서 솥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부지런히 주걱을 저어야 한다고 귀띔을 해주니 참으로 열심히 노력봉사를 했다. 덕분에 내려올 때에는 포장용기에 팥죽을 여섯 개나 선물로 받아 휘파람을 불면서 내려왔다. 동지 날에 먹는 팥죽은 잡귀를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지만 팥죽은 몸에도 좋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일석이조라고 할까? 동지에는 팥죽을 사람이 드나드는 대문이나 문 근처 벽에 뿌리기도 한다. 또한 팥죽을 먹는 풍습에는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짓날 우연히 천년사찰 용궁사에서 팥죽을 얻어먹었으니 이제 잡귀는 모두 물러가고 내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산새가 지저귀는 오솔길을 따라 내려왔다. 포근한 고향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동짓날이었다.
- 2016-12-22 15:59
-
- [제2인생] ‘산에서 살으리랏다’ 귀산촌을 아시나요?
- “산에 들어가 살아야지.” 중년이라면 한 번쯤 무심코 내뱉어봤음직한 말이다. 산속에서 사는 것을 상상해보면 멋진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된다. 새벽의 신선한 찬 공기와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 통나무집 식탁 위에 차려진 신선한 음식. 상상만 해도 뿌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 현장의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귀산촌은 냉정한 현실이라고. 영화 같은 낭만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귀산촌이 갖는 매력은 분명히 있다. 제대로 알고 도전한다면 귀농보다 더 다양한 재미를 느끼며 살 수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귀산촌을 알기 위해서는 개념부터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귀산촌은 다른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이 사유림을 구매하거나, 갖고 있던 사유림을 활용해 임업에 종사하며 새로운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귀산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유, 즉 내 산(山)이다. 기존에 임업을 하고 있지 않는 이상 귀산촌과 관련한 다양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산주가 되는 것뿐이다. 산에 들어가서 사는 것을 생각해보자. 산 깊숙한 곳에 들어가 움막이나 텐트를 짓고, 수렵이나 채집을 하며 원시인에 가까운 생활을 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산에서 생활하며 올릴 수 있는 소득과 내가 살 집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행히 이런 고민, 특히 소득과 관련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 있다. 바로 산림조합이다. 농촌에 농협이 있고, 어촌에 수협이 있는 것처럼 산에는 산림조합이 있다. 한때는 임업협동조합, 임협으로 불렸던 기관이다. 산림경영계획과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 임업 분야에선 산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 행위를 ‘산림경영’이라고 말한다. 내 땅을 어떻게 가꾸고, 어떤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어떤 시설을 지을지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땅의 종류에 따라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비닐하우스와 같은 생산 시설도 허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또 국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지원을 받으려면 산림경영계획이 필요하다. 또 전문가도 아니면서 계획 없이 무턱대고 덤비다가는 수익은커녕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이 귀산촌을 위해 땅을 사기 전에 미리 임업 전문가와 산을 둘러보고, 가치가 있는지, 어떤 사업이 적합한지 조언을 받으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산림조합중앙회 선도산림경영지도 팀의 민도홍 팀장은 귀산촌에 필요한 준비 과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산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그것을 산림경영계획이라고 불러요. 10년 단위로 수립한 산림경영계획을 산림청에서 인가받게 되면 산립사업비 보조나 융자를 지원받고 소득세, 상속세, 증여세, 재산세 등을 감면받을 수 있어요. 숲을 사업적으로 가치있게 만드려면 솎아베기와 같은 준비 작업이 필요한데, 산림경영계획을 인가받으면 정부와 지자체 지원만으로 할 수 있게 돼요. 이 밖에도 다양한 지원책들이 있는데, 결국 혜택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려면 산림경영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좋습니다.” 임업을 통해 수익을 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나무를 심은 뒤 목재가 될 만큼 자라면 벌목해 판매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관련 법규상 벌목할 수 있는 시기는 수종에 따라 30년에서 40년이 걸린다. 게다가 수익도 그리 크지 않아, 1ha당 200만~300만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이 ‘부수익’이라 말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버섯이나 나물 등 단기 소득 작물을 키워 판매하는 것이다. 산지축산이나 양계도 수익 방법이 될 수 있다. 최근 정부와 산림조합에서는 농·임업인들의 소득 확대를 위해 6차산업 육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임산물이 생산되면 이것을 단순히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가 생겨날 수 있도록 가공하고, 그 과정을 체험관광 형태로 관광객들에게 공개하는 방식이다. 체험형 농장이나 숲해설 프로그램, 숙박을 결합한 레저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땅을 살 때 고민해야 하는 것들 내게 어떤 임산업이 맞는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충분히 고민했다면 땅을 알아볼 차례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임지를 구매할 때 ‘경매’를 통한다. 경매 물건을 둘러보다가 괜찮은 땅이 나오면 누가 먼저 가져갈까봐 급한 마음에 덜컥 구매 결정을 내려버리기도 한다. 파주시 산림조합의 백철종 팀장은 가격만 보고 땅을 결정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간혹 어떤 땅인지, 거기서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고민도 없이 땅을 사시는 분들이 있어요. 평당 몇 만원이라면 공짜나 다름없다면서 말이죠. 하지만 이런 기준으로 땅을 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을 사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중에 알고 보니 맹지(길이 없는 땅), 골짜기 같은 땅이었다며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죠. 반대로 잘 알아보고 산다면 지적도 상에는 길이 없지만 실제로는 이전할 일이 없는 군부대가 사용하는 길이 있어 사실상 활용에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죠. 결국 본인이 현장을 충분히 확인하고, 그 땅을 사서 무엇을 할 것인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그는 귀산촌을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다면 여러 후보지를 놓고, 그 지역 산림조합을 찾아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예를 들어 도시에서 내려오는 경우는 농가주택과 주차장 부지도 함께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평균 경사도 18° 미만의 준보전임지가 좋고, 그렇지 않다면 약간의 농지가 붙어 있는 임지가 적절하다고 말했다. 도시생활 방식 답습하면 실패 정착도 문제가 된다. 귀산촌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산속에 나 홀로 사는 삶이 아니다. 결국 기존의 거주민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사느냐가 귀산촌의 성패를 가름한다. 거주민과의 불화는 전문가들이 꼽는 귀산촌 첫 번째 실패 이유다. 백철종 팀장은 거주민과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본적으로 마을과 붙어 있는 산은 그 마을의 공동 소유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산을 샀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가장 먼저 하는 게 측량이에요. 여기까지가 내 땅임을 확실히 구분하고 싶으니까요. 그러고는 울타리를 세우고 CCTV까지 달아요. 그러니 곱게 보기 어렵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면 그들이 울타리가 되고, CCTV가 되어줍니다. 임산물로 소득을 올리는 과정도 마찬가지예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조합 작목반에서 공동으로 활동하면 국가의 생산지원 예산배정 순위가 빨라지고 판로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활동하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해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죠.” 표고버섯 농사를 예로 들면 경작을 위한 원목부터, 비닐하우스 시설, 포장디자인 지원, 차량 구매, 건조시설과 저장창고까지 국고 지원과 융자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마다 배정된 예산이 한정되어 있고 우선순위가 있어 지역 내에서의 활동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수익은 어떨까? 민도홍 팀장은 산으로 얻는 수익은 유·무형의 것을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떼돈을 벌 목적이라면 귀산촌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도 가능하고 실제로 고소득을 올리는 분들도 적지 않아요. 은퇴자들 입장에선 등산이나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적 요인, 나무와 같은 후대에 산을 활용할 수 있는 가치, 산림을 개발해나가는 보람 등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 2016-11-28 08:55
-
- 경주 최 부잣집 가훈
-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주를 한 번쯤은 가봤을 것이다. 필자도 30대에 경주를 가봤다. 잘 보존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각종 유물과 시가지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왕릉은 신기함을 넘어 필자를 무아지경으로 몰고 갔다. 시니어가 되고 나서도 1년에 한 번쯤은 찾아가고 있지만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경주에서 지진이 난 후에 찾아간 유적지는 매스컴에서 방송되는 사실들과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일부 흙담이 진동으로 갈라지거나 떨어진 곳도 있었고 오래된 건물 지붕의 기와도 흘러내린 곳이 있었으나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해마다 가을 단풍이 물들 때면 경주 시내와 유적지는 밀려드는 차량과 여행객들로 혼잡했고 식당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진 여파인지 이번에는 문화 유적지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문화해설사의 안내를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해설사의 열띤 언변에 도취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보문단지를 지나 교리 한옥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도보로 교촌마을로 들어가니 그곳에서도 문화해설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교리 김밥집도 여행객이 없어서인지 문이 잠겨 있었다. ‘21세기의 최 부자로 살아가기’라는 스토리가 있어 최 부잣집을 둘러보았더니 최 부잣집의 가훈이 눈에 들어온다. 1. 흉년에는 땅을 사지 않는다. 흉년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부자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는 가진 사람이 할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고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부를 축적하지 말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인 것 같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반드시 끝이 있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동물이 인간이다. 다 같이 행복한 아름다운 사회가 지켜질 수 있도록 우리 시니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2.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조선시대에는 과객(나그네)이 부잣집에 들르면 며칠씩 혹은 몇 주일씩 묵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운송수단과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여서 과객을 통해 전국의 중요한 정보도 얻고 또 전국의 여러 곳에 그들의 인심을 전달해 중요한 일이 발생했을 때 좋은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단다. 최 부잣집에서도 1년에 소비하는 쌀이 3000석 정도였는데 그중 1000석은 과객을 대접하기 위한 쌀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이런 얘기를 듣기도 하고 글을 통해 보기도 했을 텐데 베풀기에도 인색한 그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 좀 묻고 싶다. 우리 시니어들은 부를 축적하기보다는 여생 동안 봉사를 생활화하면서 살아가면 좋겠다. 봉사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고 사회에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한다면 좀 더 멋진 노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2016-11-24 11:23
-
- 땅콩 주택, 노후 주거로 괜찮다
- 나이 들어가면서 중요한 삶의 요소 중 하나가 주거다. 어디에서 어떤 형태의 집에서 이웃과는 어떻게 지낼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다. 최근에는 주택의 형태 중 하나로 땅콩 주택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땅콩 주택은 하나의 필지에 닮은꼴의 주택 두 채가 들어서 있는 집을 말한다. 대문도 하나이고, 마당도 하나이지만 외부에서 보면 한 채의 집처럼 보인다. 땅콩 주택은 미국에서 시작된 친환경적 주택의 일종으로 듀플렉스홈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그 모양새가 마치 땅콩을 닮았다 하여 ‘땅콩 주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필자는 현재 땅콩 주택에서 살고 있다. 사람은 삶의 편리성과 경제적 가치를 자신도 모르게 따지며 산다. 개미가 가장 짧은 길을 찾아서 행군하듯 말이다. 주거는 우리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의식주’라 했다. 입고, 먹고, 사는 집이 삶의 필수요소인 것이다. 그런데 의식주의 형태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해왔다. 땅콩 주택도 이런 변화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주거 트렌트다. 현재 미국, 캐나다 등지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목조 주택으로서 친환경적이면서도 건축시간과 건축비가 절감되고 단열이 잘되는 게 매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건축가가 이 주택의 유용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짓기 시작했다. 적은 건축비로 지은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는 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2011년부터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땅콩 주택은 현재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특히 아토피 피부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젊은 세대들이 선호한다. 인간은 한 줌의 흙으로 빚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흙을 가까이 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주거에서도 흙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공간을 바라게 된다. 하지만 도심의 주거는 온통 콘크리트에 둘러싸여 있다. 시멘트나 아스팔트 포장이 아닌 길이 없을 정도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는 매우 삭막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콘크리트 감옥 속에서 산다는 말도 있다. 편리성과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환경이 가져온 피폐다. 주말이면 도심 주변의 온 산들이 인산인해가 되는 이유다. 도시인들은 유난히 흙을 그리워한다. 인간 본성의 발로라 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든 사람들은 더욱 흙을 그리워한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거나 남은 인생만큼은 전원주택에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건축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땅콩 주택은 건축비를 적게 들여서 지을 수 있다. 한 필지 위에 두 채의 집이 들어서게 되는 형태여서 건축비가 적게 든다. 대문이나 주차장도 하나이고, 정원도 하나라서 넓다. 이렇게 지으니 공사기간도 그만큼 단축된다. 또한 두 집이 한 건물에 있어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다. 이웃사촌이 자동으로 생기는 셈이다. 집을 비울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행을 간다든지 애완견을 키울 경우 옆집에 부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가스 불을 켜놓고 나왔는지 헷갈려서 걱정이 될 경우에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대처할 수 있다. 옆집에서 봐주면 해결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편리함과 장점들도 많지만 유의해야 할 점들도 많다. 땅콩 주택에 살 때는 이웃집과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한 필지 위에 하나의 건물로 지어지기 때문에 소유권도 공동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 소유권 행사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집을 팔 때나 수리할 경우에도 이웃집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각의 소유권으로 집을 짓고 있다. 최근의 모든 주택이 실수용의 개념으로 바뀌고 있지만, 땅콩 주택은 특히 부동산 투자의 개념이 아닌 주거의 질을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낯선 사람이 아닌 가족이나 친인척 또는 절친한 친구 등과 같이 평소 편안하게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다. 특별히 유의해야 할 점은 양쪽 집 부인의 성격이나 삶의 가치관 등이 서로 잘 어울려야 한다. 서로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면 가까운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삶이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땅콩 주택, 노후 주거의 형태로 생각해 볼만하다.
- 2016-11-04 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