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인생의 황금기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기반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시간과 금전 때문에 미뤘던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전문가로 우뚝 서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서기도 한다. 중년이 만족스러워 중년 예찬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다. 인생의 절정기여서 유혹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누가 기반을 잡지 못한 청년 혹은 활력이 떨어지는 노인을 유혹하겠는가? 성공한 사람은 권력, 명예, 재물, 이성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이 이성의 유혹이다. 가정 파괴와 가족 구성원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외도는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의 이성과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이다. 중년에 이성의 유혹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뭘까? 열심히 살아온 인생, 이제 좀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고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허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유혹은 이러한 틈새를 타고 시작된다. 외도를 해도 평생 들키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대가를 치른다.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부모님의 이혼으로 학창 시절을 힘겹게 보냈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안 올랐고 외톨이처럼 우울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당시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 알게 됐다. 의사로 성공한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한 뒤 재혼을 해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친구는 상당 기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실행이 어려울 뿐이다. 첫째, 유혹에 빠질 환경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인간은 약한 존재다. 백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한다. 은밀한 만남은 피해야 한다. 유혹을 받을 경우가 생기면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 그게 현명한 일이다. 둘째,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있지만 반드시 그 값을 치른다. 조금만 즐겨보자고 시작한 관계는 결국 인생을 망친다. 마약환자, 도박중독자도 다 그렇게 시작한다. 자신에게 그러한 결단이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빠져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은 위험하다. 순간의 유혹에 빠질 때는 달콤하지만 그 결과는 가혹하다. 유혹은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절세미인 황진이의 유혹을 견딘 서경덕은 얼마나 대단한가. 셋째,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나태해질 때야말로 유혹에 빠지기 쉽다. 다윗 왕이 부하의 부인인 밧세바와 불륜에 빠진 것도 전쟁터가 아닌 한가하게 낮잠 잘 때 발생했다. 넷째, 완전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최고의 이상형을 만난 것처럼 느껴져도 살다 보면 단점이 발견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상형을 택한 사람은 그래서 대부분 후회한다.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짧은 인생 한 사람만 죽도록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만약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 최고의 이상형과 사랑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필자는 다시 태어나도 아내와 같이 살기로 약속했으니 그럴 기회가 없지만 말이다.
중년에 어렵게 얻은 가치들을 외도로 날려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순간의 유혹들이 있어도 그때마다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유혹을 이겨낸 인생이야말로 멋진 인생이다. 자만심이나 공허감을 극복하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할 때 우리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또 좀 더 성숙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엄마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수많은 동년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20대에는 결혼과 출산, 30대와 40대는 지난한 육아, 50대에는 고장 난 몸과 싸웠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나이 앞자리는 6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수많은 58년 개띠처럼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장례식장, 예식장 빼고 거의 모든 자리에 입고 나간다. 뒷모습만으로는 우리 엄마와 남의 엄마를 구분할 수 없는 헤어스타일과 패션. 그렇다고 엄마의 지금 패션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엄마에게는 이름 석 자만큼이나 옅어져버린 ‘자신’. ‘패션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라는 말을 패션을 전공하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남들에게 말했다. 엄마의 이름 석 자와 엄마라는 육체와 정신을 쏙쏙 빼먹고 자란 나는 할 말이 없다. 지금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엄마에게 무작정, “엄마 그 오렌지색 점퍼는 정말 아니지 않아?”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 엄마와 수많은 남의 엄마에게 패션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자신을 찾는 법에 관한 지도를 내밀어본다. 우선 이 지도의 가이드로 적당한 4명의 인물을 꼽아봤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h98008272@gmail.com
◇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인생 철학이 녹아 있는 옷을 입어라"
“옷을 잘 입은 사람은 옷보다는 그 사람이 기억나요.” 몇 해 전 라는 영화가 개봉될 즈음 실제 주인공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노라노는 1947년 국내에서 출발한 두 번째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미국 유학을 간 신여성으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6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패션쇼를 열었으며, 기성복이란 제도를 프랑스보다 앞서 만들었다. 인터뷰를 했던 그때 이미 노라노는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였다. 노라노는 심플한 디자인의 캘빈클라인 시계를 차고, 어깨선에 딱 맞는 벨벳 재킷을 입고 있었다. 단정한 커트 머리에 보라색 아이섀도를 바른 모습에서는 바지런함이 느껴졌다. 잘 입었다, 못 입었다가 아니라 참 노라노답다는 생각이 인터뷰 말미에 들었다. 인생을 일부러 ‘루틴’하게 만들었다는 노라노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혹시라도 더 일찍 깨면 5시가 될 때까지 누워 있는다) 45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똑같은 식단의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동네 공원을 45분 걷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시까지 출근한다. 퇴근은 당연히 6시, 칼 같이 맞춘다. “시계나 다름 없죠. 세상에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생활을 이렇게 루틴하게 만들어놓으면 쓸데 없는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죠.” 그녀의 철학은 패션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스무 살부터 일을 했어요. 직장 여성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생활이 단순해야 일에 집중할 수 있어요. 패션도, 생활도,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요.” 머리를 짧게 유지하는 것도, ‘시그니처 룩’이라고 불릴 만큼 똑같은 스타일로 옷을 입는 것도 모두 이런 패션철학 때문이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는 말에 노라노만큼 적당한 사례는 없다. 멋지게 입고, 트렌디하게 입는 것이 답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철학이 스타일에 녹아 있으면 그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다.
◇ 사업가 겸 스타일리스트 린다 로딘 차라리 ‘안티’ 안티에이징
“난 60대가 될 때까지 늙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요즘에는 종종 젊은 사람들 위주로만 돌아가는 문화 때문에 힘들기도 해요.” 곧 일흔을 바라보는 린다 로딘은 여전히 주말이면 빈티지 시장을 돌아다니고, 종종 ‘중고장터’를 통해 자신의 옷과 탐나는 남의 옷을 교환해서 입는다. ‘패션은 여자들의 창의력을 강물과 같이 흐를 수 있게 도와주는 돌파구’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그래서 가끔 짧은 스커트에 타이츠를 신고(자신의 다리가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롤업 청바지를 애용한다. 부엉이처럼 큰 컬러 안경과 새빨간 립스틱도 즐긴다. 물론 한때 그녀도 하얗게 센 머리를 염색할까, 주름진 이마에 필러를 맞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필러를 맞고 마주한 제 얼굴은 제가 아니었어요. 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할머니가 보일 뿐.” 그녀는 차라리 ‘안티’ 안티 에이징을 외쳤다. 젊어 보이는 것에 포커싱되는 중년의 패션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젊은이들만의 소유물인 줄 알았던 ‘신선함’을 그녀에게 돌려줬다. 유니클로의 생지 데님을 툭툭 걷어 입고, 바삭한 화이트 셔츠에 빨간 플랫 슈즈를 신은 린다 로딘의 패션에서는 나이라는 코드가 읽히지 않는다. 그저, 린다 로딘이라는 여자가 있을 뿐이다.
◇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무언가를 기억하자
자신을 찾는 일에 불특정 다수, 즉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또 다른 정계 인물이 있다. 얼굴보다 구두로 첫 취임기사를 장식한 영국의 총리 테리사 메이. 그녀의 패션은 한마디로 멋지다. 20대 여자들의 트렌디함과 중년 여성의 묵직함, 워킹 우먼의 단호함이 한 벌에 담겨 있다. 한정판으로 출시된 구두를 사고(입술 모양이 그려진 앙증맞은 플랫슈즈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사이하이 부츠를 신는 과감한 여자다. “저는 늘 여성들에게 ‘고정관념에 맞추려 하지 말고, 당신 자신이 되라’고 말해요. 만일 당신 개성이 옷 또는 신발을 통해 보인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 바람에 테리사 메이의 연관 검색어에는 ‘슈즈 마니아’가 뜬다. 우리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했고, 벨벳으로 만든 무언가에 항상 반했다. 하지만 언제나 손에 들린 건 물세탁이 가능한 실용적인 옷이었다. 테리사 메이에게는 구두 쇼핑이 취미활동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창고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를 찾는 놀이였다. 내가 좋아했던 그 시절의 무언가를 떠올리자. 엄마에게 보라색 벨벳 슈즈가 필요한 것처럼.
◇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 ‘나’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자
흰머리에 쇼트커트, 수영으로 다져진 다부진 어깨, 조금의 경사도 느껴지지 않는 빳빳한 허리. 당당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이 프랑스 여자는 IMF 총재 크리스틴 라가르드다. 방탄 가공을 거쳤을 법한 그 단단한 사회의 유리천장을 뚫고 ‘최초’로 IMF 총재 자리에 앉았다. 줄곧 ‘남초’ 직장에서만 생활해온 그녀는 전쟁터 같은 직장생활에서 총을 잡기보다는 립스틱을 잡았다. 무채색의 팬츠 슈트로 넥타이맨들과 경쟁하는 대신 핑크색 스커트로 여자다움의 힘을 강조했다. “생각은 그만하고, 행동 좀 하시죠”라는 말을 자주 해 ‘아메리칸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행동파인 그녀 앞에서, “일이 힘들어서, 이게 편하니깐”이라는 말로 유니폼 같은 무채색 패션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워킹 우먼들은 용납이 안 된다. 그녀는 수년간 IMF 총재 역할을 해오며 능력마저도 스타일리시하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여전히 스카프 쇼핑을 즐기고 핑크색 트위드 슈트를 입고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60대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그녀의 지금 룩은 뚝심 있게 지켜온 자기 자신 그 자체다.
>>김민정 프리랜서 패션에디터
남성지 를 거쳐, 와 의 패션 에디터로 10여 년간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에디터로 패션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이루어지지 않아서 첫사랑’이라는 말처럼 첫사랑은 어쩐지 애틋하고 비극적이어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첫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은, 아름답고 슬픈 사연으로 각자의 가슴에 묻혀 간직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가끔 그날의 추억을 꺼내 그리워하면서 은근히 비밀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필자 마음을 설레게 하던 까까머리 중학생은 첫사랑이라기보다는 풋사랑이다. 언제 생각해봐도 웃음이 나고 장난스러운 추억이다. 그러니 첫사랑은 아닐 것이다.
마음을 아프게 한 남자, 그가 바로 필자의 첫사랑이었다. 필자는 좀 괜찮은 용모였음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몇 해가 지나도록 결혼을 못했다. 딸만 셋인 집안의 장녀로 27세가 되어도 사귀는 사람조차 없었으니 엄마의 걱정이 대단했다. 당연히 수없이 많은 선 자리에 끌려 나갔다.
지금은 없어진 광화문 국제극장 옆 골목 안에 ‘라라’라는 작은 레스토랑이 있었다. 어느 날 그곳에서 선을 봤는데 그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은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모처럼 마음이 활짝 열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같은 시기에 선을 본 다른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특히 엄마의 성화가 심했다. 필자가 마음을 굽히지 않자 그 사람을 집으로 불러 결혼해서 살 집은 있는지, 돈은 얼마나 있는지 속물 같은 질문을 해대며 모욕을 줬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그가 집을 나설 때 같이 따라 나가 서부역에서 일영 가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니면 세상 그만 살아도 좋다는 결심까지 했지만, 부모님의 큰 반대 속에 결국 엄마가 좋다는 남자와 결혼하게 됐다(이 글은 남편이 알면 곤란한 특급 비밀이다). 그렇게 첫사랑은 가슴에 묻고 평탄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몇 해 전 ‘싸이월드’라는 미니홈피가 유행처럼 퍼졌을 때 필자도 ‘싸이월드’에 사진과 글을 올리며 대학 동창들과 소통하며 지냈다. 그때 이름과 나이 정도를 입력하면 친구를 찾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어느 날 반신반의하며 첫사랑 이름을 입력해보았다. 순간 너무 놀라 필자의 눈을 의심할 뻔했다. 나이 들어 중년 아저씨가 된 그 사람의 사진을 보게 된 것이다. 비슬산이라는 설명이 달려 있는 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는데 필자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필자 모습이 변한 것도 잊은 채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렇게 샤프하고 매력적이었던 사람이, 헤어지면 죽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이제 저런 아저씨가 되어버렸다니 믿을 수 없었다. 괜히 찾아봤다는 후회도 살짝 들었다.
서로 각자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그냥 그 사람도 살아 있었구나 하며 마무리를 했다면 좋았으련만 필자는 사진 밑에 “비슬산이 어딘가요? 멋지네요”라고 다소 의미심장한 댓글을 남겼다.
다음 날 다시 홈피를 찾아가 보니 필자가 단 댓글 밑에 “과거보다는 현재의 삶이 중요합니다”라는 답글이 달려 있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아는 척을 왜 했을까 민망하고 후회스러웠다. 그냥 추억이 떠올라 한마디 써본 건데 그렇게까지 냉정한 반응을 보이다니…. 그 후 다시는 그 사람의 홈피를 찾지 않았다.
보고 싶었다는 반응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좀 실망스럽긴 했다. 지난 일은 그저 가슴에 묻어두고 아름다웠다고 추억만 하는 게 나았겠다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는 첫사랑의 한마디는 참 멋대가리 없는 말이었다.
72세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또 있을까? 연보라색 머릿결이 눈부신 고은아는 지금도 매력 발산 중이다. 여성의 미를 탐닉할 줄 아는 뭇 남성들이라면 그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몇 초간이라도 멈출 수밖에 없으리라. 고은아와 띠동갑(46년, 58년 개띠)인 한량 이봉규도 사무실(서울극장 7층)에서 그녀를 만난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고은아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에 놀란 표정을 감추기 급급했다. 필자의 이런 속내를 들킬까봐 재빨리 질문했다. “머리는 염색하신 겁니까? 연보라색 머리 색깔이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염색은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컬러린스를 사용하는데, 남대문 시장에 가면 살 수 있다”고 나름 비법을 공개한다. 머리를 감을 때 컬러린스로 행구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러면 사람에 따라 갈색이나 짙은 회색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녀는 신비하게도 연보라색으로 나온다니 머릿결마저도 축복받은 미인이다. 지금도 매력을 발산 중인데 하물며 꽃다운 22세 그녀를 사로잡아 결혼에 골인한 곽정환 감독은 최고의 행운아다. 나이도 16세나 많고 결혼했던 경력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2013년 하늘나라로 먼저 간 곽정환 감독 일생일대 최고의 성공 작품은 고은아와의 결혼일 것이다. 지금도 남편과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먹고산다는 그녀의 세세한 증언으로 미루어볼 때 고인 생전에 부부 금실이 얼마나 좋았을지 대충 짐작이 간다. 곽 감독은 친한 후배 김기덕 감독(1934년생, 대표작 의 결혼식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는 대학생 고은아를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곽 감독은 결혼 시나리오를 썼을 것이다. 그 후 자신이 대표로 있던 ‘합동영화사’의 작품에 여주인공으로 그녀를 발탁하고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합동영화사 사무실에서 개런티 협상을 할 때 그녀의 태도가 불만이었던 영화사 측 고위층은 당시 신인이었던 고은아에게 고성을 지르면서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신인인 주제에 너무 터무니없이 비싼 개런티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때는 매니저 없이 배우가 직접 협상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녀는 배우를 천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배우생활도 하기 싫어 이판사판으로 높게 불렀다고 한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그냥 고은아가 달라는 대로 줘!”라며 방금 전 자신을 윽박지른 남자에게 명령을 하더라는 것. 알고 보니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은 전무였고 문 열고 나중에 들어온 사람은 사장 곽정환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키다리 아저씨의 보살핌은 계속되었고 어느새 고은아의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곽 감독의 다음 작전이 펼쳐진 것은 그 무렵. 느닷없이 고은아의 집을 방문해 어머니에게 “따님과 결혼하겠습니다”라고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이다.
얼핏 봐도 나이가 많은 중년 신사가 느닷없이 찾아와 22세밖에 안 된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니 어머니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멍하게 있던 어머니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야?” 딸이 진정으로 이 남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지, 둘 사이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기 위한 질문이었을 것이다. 고은아는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어머니와 그 사람 둘 다 상처를 받지 않을까. 결국 그녀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라고 대답했다. 고은아의 지혜롭고 영특한 대답에 어머니는 금쪽같은 딸의 결혼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곽정환이 이미 수차례 프러포즈한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툭하면 밤샘 촬영을 해대는 고된 생활에 지쳐서 집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우면 어김없이 곽정환에게 전화가 왔다. 화술이 좋았던 곽정환은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고은아는 듣다가 그만 피곤해서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한참을 자다가 깨도 수화기 속에서 그의 음성이 계속 들렸다. 그럴 때면 비몽사몽간에 추임새처럼 “네~”를 연발하다가 또 잠이 들곤 했다. 당시 통화를 하면서 곽정환이 결혼하자고 여러 번 한 말을 그녀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잠결에 “네”라고 했는데, 곽 감독이 이를 프러포즈에 응한 것으로 알고 정식 허락을 받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갔던 것.
결국 그의 진심에 하늘도 감동한 듯 첫 대면에 어머니의 마음까지 녹였다. 고은아의 어머니는 경기여고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이런 어머니였기에 딸의 사랑을 존중해주고 16세나 나이가 많고 재취자리인 결혼을 흔쾌히 허락하지 않았을까? 결국 어머니의 판단은 옳았고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부부 금실이 좋을수록 한쪽이 먼저 가면 남은 사람은 금방 새살림을 차린다”는 어설픈 구전을 믿고 도발 질문을 던졌다. “100세 시대이고 아직도 아름다우시니까 다른 멋진 남성분과 제2의 인생을 살아도 되지 않나?”라고 따지듯 물으니, “남편은 여러 역할자로서 이미 제2, 제3, 제4의 인생을 살게 해주었다. 때로는 오빠로서, 때로는 친구로서, 낮에는 직장 상사로서, 밤에는 연인으로서 매순간 버라이어티하게 행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이성으로부터의 사랑은 필요치 않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터뷰하면서 그녀 사무실 벽면을 보니 각종 감사패와 트로피가 가득하다. 그동안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것을 여러 단체에서 알아준 결과다. 2003년부터 생명창고(현 행복한나눔) 대표로 활동하면서 기독교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데 앞장서 왔다. 또한 파키스탄, 북한, 인도, 아프리카 등 해외 긴급구호 봉사활동을 해왔다.
이토록 아름다운 여정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하나님의 간섭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아버지가 기도하다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만큼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를 둔 모태신앙인 고은아. 그러나 대체로 모태신앙인이 부모 따라 마지못해 교회에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언니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도원에 따라갔다. 그때 고은아는 대낮에 산속에서 벌어지는 기도원의 일련의 행태를 보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실망감에 기도원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데 그 순간 목사님이 반말로 “너 왜 가니?”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당시 꽤 유명한 영화배우였기에 “나를 몰라보는 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그녀는 이런 사람에게 자신의 머리를 내주고 기도를 받을 수가 없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몇 분이 흐른 뒤 어머니와 언니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할 수 없이 기도를 받았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번개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아! 내가 교만했구나! 내 인생 전체가 교만으로 얼룩졌구나!” 그러고는 처절한 반성과 함께 참회의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저의 ‘인기’라는 것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녀의 맹세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몇 달 후 기독교방송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직감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시작한 방송이 공개신앙고백 프로그램 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6년 정도 그 방송에만 몰두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충무로 영화계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은 남편의 유업인 서울극장 대표와 행복한나눔 이사장으로서 봉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몇 달 전부터는 첼로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72세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인생이 신앙과 봉사로 다져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의 본명은 이경희인데 영화계에 들어오면서 예명을 고은아로 지어준 분이 “일생을 내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아줘서 고맙다”고 했단다. ‘고은 아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앞으로도 그녀의 인생은 곱고 아이처럼 순수할 것이다.
과거 중년들이 생각하는 병원에 대한 개념은 한마디로 ‘어지간해서는 가지 않는, 가면 큰일 나는 곳’이었다. 내 가족을 위해 죽어라 일만 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병원은 적어도 선고 정도는 받아야 가는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세대에게 병원은 아파서 가는 곳이 아니라 친구 또는 가족과 이별하는 장소로만 각인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엔 세태가 달라졌다. 더 이상 자녀 손에 이끌려 가는 곳이 병원이 아니다. 미용실이나 목욕탕 가듯 필요하면 언제든 당당하게 병원을 찾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최근 ‘비즈니스 성형’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50대 전후 세대가 사업이나 사회활동에 도움을 받기 위해 진행하는 미용 성형 시술을 뜻한다. 면접 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취업준비생들이 선택하는 ‘취업 성형’과 비슷한 시술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인 아이디병원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 병원에서 주름제거 시술을 받은 40대 남성 비율은 2012년 3%에서 2013년 10%, 2014년 16%로 증가했다. 50대 이상 남성 역시 같은 기간 1%, 8%, 9%로 증가했다. 자신을 위해 병원을 찾은 중년 남성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병원에서 주름제거 시술을 받은 남녀 2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고경영자, 전문직, 자영업 종사자 등이 42%를 차지했다.
‘동안’에 대한 시니어의 욕구 증가
이런 변화에 대해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성형외과 박은수 과장은 “단지 사업을 위해서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 사회활동이 늘면서 다양한 대인관계를 위해 외모의 개선을 선택하는 시니어들도 적지 않습니다. 좋은 인상이, 나의 외모를 돌보는 것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시니어들도 깨닫게 된 것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시니어들의 ‘동안’에 대한 욕구 증가는 피부과에서도 실감하고 있다. 보톡스 등을 전문으로 하는 한 피부과 개원의는 “예전에 시니어들이 병원을 방문하면 대부분 결혼이나 취업을 앞둔 자녀를 위한 상담이 대부분이었어요. 본인의 피부관리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자녀와 함께 시술을 받기도 하고, 자신만을 위해 상담하는 시니어들이 크게 늘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성형외과, 피부과 등이 몰려 있는 강남 병원들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젊은이들이나 외국인들에 밀려 중년들은 ‘찬밥’ 신세였지만, 지금은 모시기 열풍이 불고 있다.
시니어들의 내 신체에 대한 관심은 ‘미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내 건강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지난 10월, 네이버 건강은 처음으로 사용자 대상의 건강 강연회를 개최했다. 헬스조선과 공동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치매를 주제로 진행됐는데, 시니어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네이버 건강 담당자는 “공고가 나간 당일에 400석 신청이 매진될 정도였습니다. 꼼꼼하게 메모하시는 분들이 많아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고, 최신 치료법이나 동향을 반영한 질문들도 많아 의학적 지식의 수준도 엿볼 수 있었죠. 건강은 네이버가 서비스하는 여러 분야 중에 구독 설정 사용자가 가장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고, 50대 이상 사용자 비율이 높은 분야입니다”라고 밝혔다. 시니어들의 적극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강연, 건강검진도 몸 돌보기에 필수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는 건강검진이다. 주요 종합병원들은 건강검진 프로그램에 시니어 대상, VIP 환자 대상의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구성해 운용하고 있다. 또 휴식과 검진의 개념을 결합시킨 1박 2일 코스의 숙박건강검진 프로그램의 도입도 늘고 있는 추세다. 서울대병원 헬스케어 강남센터에는 건강검진 결과를 특진 교수가 직접 설명해주는 2박 3일 프로그램도 있다. 검진료는 600만~900만원 수준이다. 서울아산병원 건강증진센터는 100명 회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치의 서비스와 건강검진 프로그램이 결합된 멤버십 서비스를 운용 중이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일부에선 고가 건강검진 서비스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몇몇 암이나 일부 질환은 고가 진단 방법을 쓰지 않으면 조기 발견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선량 폐 CT가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고가의 검진 프로그램이라고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꼼꼼히 따져가면서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 항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라고 조언했다.
5년 전쯤부터 필자는 미장원에 가지 않는다. 아 딱 한 번 아들 결혼식 날 화장부터 머리까지 미용실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가 미장원에 가지 않는 큰 이유는 격식을 차려서 나가야 하는 모임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작은 이유는 미장원 가서 머리를 해봤자 인물이 더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째 필자의 머리는 생머리에 단발이다.
오히려 이러고 다니니까 얼핏 볼 때 필자 나이보다 젊게 봐주기도 한다. 이런 점도 필자가 약간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대놓고 필자에게 뭐라 하진 않지만, 사람은 나이 따라 치장을 해야 하는 거라며 나이든 사람이 파마기 없이 생머리를 하고 다니면 초라해 보인다고 빗댄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필자 마음은 겸연쩍고 어색하다. 이런 친구들 때문이라도 이제 파마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다들 똑같이 파마를 한 둥근 머리 스타일을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짧은 파마로 우아하게 세팅해서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언젠가 TV에서 본, 버스 안에 나란히 앉은 예닐곱 명의 아주머니들 머리가 똑같은 파마머리여서 웃었던 적이 있다. 나이 들면 왜 모두가 그렇게 똑같은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파마 하지 않고 생머리를 해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파마 하라고 강요 안 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의상도 꽤 캐주얼하게 입는 편이다. 역시 격식을 따져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모임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내 다리에 꽉 붙는 레깅스에 어그 부츠를 신고 엉덩이를 덮는 셔츠와 겉옷으로 지낸다. 너무 젊은이들 의상 같지 않을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약간 염려도 됐지만 나름 편하고 필자 눈에는 보기 좋았다.
그런데 요즘 나이 든 여자들이 좀 더 젊게 보이고 싶어 샹그릴라 신드롬이 대세가 됐다고 한다. 샹그릴라 신드롬은 노화를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하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이 확산되면서 생긴 사회적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원래 샹그릴라는 1933년에 제임스 힐턴이 쓴 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곳인데 소설 속 샹그릴라는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지상낙원으로 표현되었다.
자기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 열풍에 얼짱, 몸짱, 동안 열풍 등이 샹그릴라 신드롬을 확산시키는 데 한몫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필자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어 치장하는 중년 여성이 예뻐 보인다. 전혀 주책스럽지 않다. 오히려 당당한 표현으로 보여 기쁜 마음이다. 필자도 언제나 젊게 살고 싶다.
한 의사의 말이 기억난다. 수술은 의사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이지만 환자에게는 평생 한 번 있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그 수술이 만약 내 혈육에게 장기를 받는 이식수술이라면 어떨까. 아마 더욱 잊을 수 없는 아픔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술이 두 번 반복된다면? 더욱이 그 대상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마치 통속적인 비극 드라마 같아 보이지만 현실이고, 비극도 아니다. 바로 경희의료원에서 만난 변은옥(邊銀玉·53)씨의 이야기다.
글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경희의료원 신장내과 임천규(任天奎·63) 교수는 처음 변은옥씨를 만났을 때를 기억했다. 당시 그는 젊고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 중 한 명이었다. 그때는 눈앞의 환자가 어떤 일들을 겪을지, 30년간 자신이 계속 돌봐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변은옥씨가 처음 왔을 때는 스물한 살의 꽃다운 나이였죠. 젊은 미혼 여성인데도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높았던 것이 기억나요. 악성 고혈압이었어요. 검진을 해보니 이미 신장기능이 약 15%정도밖에 기능하지 않았어요. 신장염에 의한 만성콩팥병이었어요. 사구체신염으로 부르는 이 병은 젊은이들이 잘 걸리는 병이죠. 보통은 급성으로 나타났다가 낫는데, 만성으로 진행되면 골치 아파지죠.”
변씨가 경희대를 찾은 것은 1984년 9월이다. 사실 그녀는 다른 병원을 먼저 들렀다 왔다고 했다.
“서대문구청에 취업한 지 얼마 안 돼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혈압이 너무 높다고 이상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근처에 있는 큰 병원을 갔는데 신장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얼마 못 살 것 같다고 하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는 것이 낫겠다 싶어 생각한 곳이 삼촌이 수술받았던 이곳이었어요. 임천규 교수님을 그때 처음 뵈었는데, 마음이 편안하도록 말씀도 잘해주시고, 용기를 낼 수 있게 응원해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요.”
처음 병원을 다닐 때만 해도 변씨는 몸의 이상을 크게 자각하진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점점 눈도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이명이 들리는 등 상태가 나빠지면서 실감이 났다고. 당시에는 잘 알려진 병이 아니어서, 주위에선 어차피 살 가망이 적지 않겠냐며 수술을 말리는 사람도 있었단다.
꽃다운 처녀에게는 힘든 수술
이식수술이 처음부터 결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효과로 따지면 신장이식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수술을 주저한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임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수술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큰 사건이었어요. 몸에 칼을 대버리면 흉터도 남고, 혼삿길도 영영 막혀버린다는 인식이 있었죠. 게다가 기증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어요. 요즘은 그래도 뇌사자 장기기증이 제도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인식도 좋아져서 기증자를 찾는 사정이 나아졌지만, 당시는 남에게 신장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그것이 큰 효과를 내지 못하자 투석을 시작했다. 하지만 투석은 새로운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변씨는 이야기했다.
“결핵이 있어서 그것을 치료해야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결핵이 나을 때까지 6개월을 투석했는데 살아 있는 기분이 아니었어요. 투석을 하고 나면 몸이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어요. 몸에 힘이 다 빠져버리죠. 제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어요.”
혈액 투석에 대해 임천규 교수는 “사실 혈액 투석은 정상적인 신장기능의 10~15% 정도만 대신할 수 있어요.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꼬박꼬박 투석을 받는다 해도, 혈액 속 노폐물은 늘 80% 이상 쌓여 있다는 얘기죠.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독만 제거하는 셈이에요. 신장이식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어 투석을 평생을 해야 하니 환자 입장에선 무척 번거롭고 힘들죠. 특히 젊은 여성에게는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내 딸 살리겠다는 어머니의 결심
“차라리 내가 죽고 말지, 너 죽는 꼴은 못 본다.”
변씨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건강한 신장이 두 개나 있는데, 당신 딸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선언한 것. 그렇게 이식수술은 결정됐다. 1986년 6월 9일이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수선하던 시기. 그녀도 그녀 나름의 치열한 투쟁의 시기를 수술대 위에서 맞이하고 있었다.
모두의 기대대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변씨는 당시를 “수술을 마치고 나서 눈이 떠지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었어요. 엄마의 것이 내 몸속에 있다는 느낌,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복잡한 감정이었죠”라고 회고했다.
사실 변씨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병을 심하게 앓았고, 몸에는 커다란 생채기까지 있었다. 아이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를 감히 남편으로 받아들인다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엔 예외가 없는 것인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아버지는 제 상태가 이 모양이니까 데릴사위라도 들일 생각까지 하셨어요. 그러다 남편을 만나 1년 연애를 했는데, 제 사정에 대해 모두 이해해줬어요. 애가 생기지 않아도 좋다고까지 얘기해줘서 결혼을 결심했죠.”
그리고 그 결실로 아들 김영수(金泳洙·26)씨를 얻는다.
30년 만에 다가온 또 다른 시련
평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볕이 좋은 날엔 빨래를 해서 널고, 점심 설거지를 끝내면 저녁 메뉴를 걱정했다. 모임에 나가 수다도 떨고, 특별히 기분 좋은 날엔 술도 약간 입에 댔다. 아들은 경찰을 꿈꿀 정도로 바르고 강직했으며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집안의 기둥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또다시 탈이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궁이 말썽이었다. 결국 5년 전 자궁을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 출혈이 많았던 탓일까. 신장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결국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임 교수의 입에서 나오고 말았다. 투석이었다.
“또다시 투석을 받아야 한다니 끔찍했죠. 하지만 다시 이식수술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1월에 투석을 위한 동정맥류수술을 하고 나서, 4월부터 투석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30년 전보다는 장비가 좋아져서 좀 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반대로 저혈압이 오고 몸이 빠르게 무너져버리더라고요.”
이 과정을 편치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한 사람이 있다. 이젠 성인이 된 아들 영수씨다. 그는 어머니의 간호를 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머니의 인터뷰를 곁에서 말없이 바라만 보던 그에게 질문을 하자 다소 상기된다. 젊은 혈기와는 다른 뜨거운 무엇이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환자인 어머니의 모습이 익숙했어요. 계속 봐왔으니까요. 그때부터 막연히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처럼 나도 어머니에게 신장을 드려야 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요. 다만 시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빨랐죠. 하지만 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다짐이라 문제가 생기고 나서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전혀 고민도 없었고,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신장이식 기증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수술 후기도 보고, 이식수술에 대해 직접 공부하면서 전혀 겁낼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랑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더라고요. 어머니 건강이 회복되시면 봄에 제주도에 같이 다녀오려고요.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을 많이 찍고 싶어요.”
네 개의 신장이 준 꿈과 희망
신장이식은 고장 난 오일필터를 교체하는 자동차 정비와는 다르다. 수명을 다한 부품은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지만, 신장이식은 원래의 신장을 떼어버리지 않는다. 기증받은 신장을 몸에 더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임천규 교수는 변씨의 경우 어머니의 것을 받았다가 다시 아들의 신장을 받았으니 4개의 신장을 몸에 지니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장이식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변씨의 경우는 이식 환자들 중에서도 오래 사용한 편이에요. 게다가 나이든 어머니의 신장을 이식받은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죠. 두 번 신장이식을 받는 케이스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이식을 받고 싶어도 몇 년이나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을 생각하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신장이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부분은 이식의 거부반응을 줄이는 면역억제제가 좋아져서 꼭 기증자가 가족일 필요도 없고 혈액형이 같을 필요도 없어요. 심지어 수혈이 불가능한 혈액형끼리도 신장이식은 가능해요.”
현재 대한고혈압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임 교수는 고혈압 환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고혈압은 신장질환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고혈압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신장의 소금배설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혈압이 높은 편이라면 신장을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식 환자들은 늘 불안하게 사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지 않았으면 해요. 무조건 재미있게 살고, 걱정하지 말고, 약만 제때 드신다면 몸은 나아질 겁니다.”
처음 신장이식을 받은 지 딱 30년이 되는 해인 2016년 9월 21일, 변씨는 두 번째 신장이식을 위해 수술대에 누웠다.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였다. 결국 아들의 성화에 그리고 투석의 고단함이라는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 결정을 내린 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변씨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질문을 던지러 왔는데, 꺼내기가 쉽지 않다. 아들의 신장을 받은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 가혹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제일 컸어요. 가족이라고 모두 신장을 선뜻 내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투석실에 앉아 있으면 자식을 원망하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보거든요. 그런데 아들이 먼저 수술을 하자고 적극적으로 권해줘서 새 삶을 얻을 수 있었어요. 수술을 여러 번 했는데도 별 탈 없이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느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분을 위해서 좋을 일 많이 하고 살 겁니다.”
어느 날 거울을 문득 바라본다. 젊었던 시절 아리땁고 고왔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예전에 강남 거리를 걸어 다니면 예쁘다,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한 번쯤 들었을 당신. 지금 그런 모습이 아니라서 속상하다면 참고하시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당신을 핫하게 꾸며줄 바로 그곳으로 안내한다.
남자들을 위한 공간, 남성 패션 편집숍
250년 된 해외 남성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서촌 ‘바버샵(Barbershop)’
통인시장을 지나 왼쪽 오르막길로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남성 편집숍인 ‘바버샵’이 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남자 이용객의 사랑을 고르게 받는 남성 패션 편집숍이다. 30대 고객들이 주로 이용하지만 나이가 적든 많든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에게 어필할 만한 세련된 액세서리, 구두, 옷, 가방이 매장 한가득 있다. 매장에서도 구매가 가능하지만 주 고객층은 온라인을 이용한다고. 옷은 외국에서 열리는 패션 트레이드 쇼를 통해 직접 제품을 보고 수입한다. 미국, 프랑스,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독일 등에 본사를 둔 브랜드 등 다양하다. 250년, 100년 역사를 가진 브랜드도 ‘바버샵’에서 만날 수 있다. 시니어들은 모자를 많이 찾는다. 니트는 나이와 상관없이 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www.barbershop.co.kr.
남자들이 편한 쇼핑 ‘알란스(Alan's)’
알란스는 란스미어(삼성물산) 전 브랜드 매니저였던 남훈 대표가 2014년 1월에 론칭한 브랜드로 강남점, 영등포점, 판교점 총 3개 매장이 있다. 20대에서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두루 이용하고 있다. 자체 제작 제품과 위탁 판매하는 국내 브랜드 그리고 이탈리아, 영국, 일본에서 직접 들여온 고급 브랜드를 만날 수 있다. 편안한 매장 분위기 속에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재킷 종류가 많고 50대 고정 고객이 많다고 한다. 신중년들은 가격보다는 스타일을 보는 편이고, 20~30대 젊은 이용객들은 디자인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을 선호한다. 강남점의 경우 1층은 캐주얼한 제품이 많고 2층은 수트 맞춤을 할 수 있다. 쇼핑시간이 길어지는 사람들을 위해 커피나 녹차 등도 제공한다.
굳이 살 필요 없다, 바람돌이 선물 같은 패션 대여 서비스
우아하게 백화점에서 빌려 쓰자! ‘살롱 드 샬롯(Salon de Charlotte)’
최근 롯데백화점이 패션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살롱 드 샬롯(Salon de Charlotte)’이라 이름 붙인 이 서비스는 드레스, 정장, 보석 등 자주 착용하진 않지만 가격대가 높아 구매하기 어려운 패션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빌려주는 매장이다. ‘살롱 드 샬롯’ 매장은 여성, 남성 및 아동을 대상으로 돌잔치, 결혼식 등 특별한 날에 입는 프리미엄 의류 상품을 대여해주고 있다. 주요 품목은 드레스, 정장, 보석, 선글라스, 핸드백 등이다. 이용객은 매장에 있는 옷이나 잡화 상품을 착용해본 뒤 대여를 결정할 수 있다. 가격은 2박 3일 기준으로 여성 드레스와 남성 정장이 각각 30만원대, 아동 드레스 및 잡화 상품은 10만원대다. 여행가방도 대여가 가능하다. 이 매장 이용자는 주중에는 30명, 주말에는 50명 수준으로 고객 수는 매달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드레스, 정장 등과 아동용 의류 상품이다. 핸드백, 보석 등 잡화 상품 대여 이용자도 점점 늘고 있다.
명품가방 하나쯤 들어볼까? ‘더 클로젯(The Clozet)’
특별한 날 딱히 들고 싶은 가방이 없다면 ‘더 클로젯’의 명품가방 대여 서비스를 이용해보시라. ‘더 클로젯’은 월정액만 내면 다양한 종류의 가방을 이용할 수 있다. 명품가방에 대한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 높은 관심과 인기를 끌고 있다. ‘더 클로젯’은 이용객의 높은 관심으로 최근 기존의 공개접수에서 사전예약으로 전환했다. 월 7만9000원으로 최대 세 번까지 원하는 가방을 이용할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 www.theclozet.co.kr/ 현재 모바일 서비스는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렌털한다 ‘프로젝트 앤(Project Anne)’
SK플래닛이 패션 O2O 서비스 ‘프로젝트 앤’ 사업을 시작했다. ‘프로젝트 앤’은 국내 최초로 해외 명품 브랜드와 국내 유명 브랜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다양한 최신 상품들 중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추천받고 원하는 옷과 가방을 골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마치 음악이나 영화 등을 다운받지 않고 모바일을 통해 스트리밍 방식으로 감상하는 것이 일반화된 것처럼, ‘프로젝트 앤’은 필요할 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골라서 입고 언제든 새로운 옷과 교환해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패션 브랜드는 물론, 국내 신진 디자이너의 브랜드와 패션 브랜드 등 100여 곳의 최신 여성의류 상품 1만2000여 점을 확보했다. 모바일 앱을 다운받아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전국 어디든 상품 배송이 가능하다. 의류 상품의 경우 한 달 기준, 한 벌씩 4회 이용할 때는 8만원, 두 벌씩 4회 이용할 때는 13만원의 월 이용권을 구매하면 된다.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knbae24@hanmail.net)
산업구조와 사회 상황의 변모,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 이혼·비혼 증가 등 사회, 경제, 문화적 요인으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발표한 ‘2016년 9월 주민등록 인구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2121만4428세대 중에서 1인가구가 738만8906세대(34.8%)로 가장 많다. 2인가구는 452만1792세대(21.3%)로 그 뒤를 이었고, 4인가구 397만1333세대(18.7%), 3인가구 391만8335세대(18.5%) 순이었다.
1인가구의 증가세는 최근 들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건강하고 행복한 솔로 생활에 대한 교육이나 정보 부재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제공하고 솔로 생활 풍속도를 보여줘 눈길을 끌고 있다.
연예인 역시 이혼, 비혼, 사별, 직업적인 특성 등의 이유로 1인가구가 많이 늘었다. 방송사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앞다퉈 혼자 사는 연예인, 특히 중·장년 연예인 1인가구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MBC의 , SBS의 , , 채널A의 등의 프로그램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을 통해 1인가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의식주와 생활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트렌드를 전달하고 있다.
1인가구 시청자들은 혼자 사는 연예인의 생활과 정보를 접하면서 실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는 방송인 전현무, 개그우먼 이국주 등 혼자 사는 유명인의 솔로 생활과 풍속도를 통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의식주와 인간관계 형성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요령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의 출연자 중 이혼 후 혼자 지내면서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중견 탤런트 김용건(70)은 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김용건은 의식주를 비롯한 기본 생활에서부터 취미, 사교활동, 문화생활, 건강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의상 구입에서부터 착용 방법에 이르기까지 패션감각이 뛰어난 패션니스타로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장·노년의 건강관리에 영향을 주는 음식 구매와 식사 잘하는 요령까지 알려준다. 또 행복한 장·노년 솔로 생활의 필수요소인 드라이브, 패러글라이딩, 록페스티벌 관람을 비롯한 취미생활과 지인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등 사교활동과 인간관계 유지법 등도 제공한다.
김용건은 “시대와 상황이 변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가족이 함께 살 때보다 혼자 살면서부터 패션에서 식사까지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 혼자여서 외롭다는 생각보다는 혼자여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며 생활한다. 긍정적인 생각이 행복한 1인가구 생활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예능인 김국진(51), 가수 강수지(49) 커플의 오작교 역할을 해 관심을 모은 SBS 은 중·장년 솔로 연예인들이 여행 등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혼자 생활하는 중·장년과 노년층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인간관계 단절에서 초래되는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여행과 이성 혹은 동성 친구와의 교제를 통해 잘 극복하고 즐거운 1인 솔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바로 이다. 김동규(51), 이연수(46), 김광규(49), 김완선(47), 김도균(52), 김국진, 강수지 등 이혼을 했거나 결혼을 아직 하지 않아 혼자 사는 중·장년 연예인들은 제주, 강원 등 전국 각지를 여행하며 서로 마음을 나눈다. 또한 솔로 생활의 어려움이나 외부의 시선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더 즐거운 1인가구 생활의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김완선 등 솔로 생활을 하는 연예인들은 결혼하지 않더라도 연인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등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에 출연하면서 연인이 된 김국진-강수지 커플은 “이혼 후 혼자 사는 생활을 오래 해왔다. 을 통해 서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도 연애나 교제 등을 통해 이성 친구를 만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외로움 극복은 물론이고 행복과 즐거움, 건강함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동성 혹은 이성과의 교제 외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극복하거나 가족이라는 연대감을 느끼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바로 반려견 등 동물 키우기다. 주병진(57)은 종편 채널A의 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개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활의 변화 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병진은 방송에서 “애완견을 키우고 함께 생활하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 식사하는 것부터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까지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애완견 등 동물을 키우면 삶과 1인가구 생활이 더 행복해질 것임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JTBC의 , tvN의 등 쿡방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김국진 등 혼자 사는 일부 연예인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1인가구 생활에서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건강 증진을 위한 요리법을 터득한다. 김국진은 “혼자 살면서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요리 만들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요리법을 배웠다. 혼자 사는 사람들도 요리법을 배우면 여러 가지 요리를 하며 건강을 챙기는 식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건모(48) 박수홍(46) 등 혼자 사는 중년 연예인의 생활과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들의 심경을 듣는 프로그램도 있다. 바로 SBS에서 방송하는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심경,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솔로 연예인들의 심경과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도 솔로 생활을 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경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과 오해가 존재하는 것이 보인다.
1인가구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부모 등 가족들이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이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솔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혼자 살면 외롭다거나 불행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가족들 때문에 갈등을 겪기도 한다는 1인가구 생활자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박수홍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 행복하고 혼자 살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가족과 가족 형태에 대한 생각과 인식도 많이 바뀌고 혼자 생활해도 결혼한 사람 못지않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혼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인가구로 혼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이들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연예인들의 솔로 생활을 보면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