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에 가장 무서운 건 뭘까? 어렸을 땐 호랑이가 가장 무서웠고 이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신이 무서웠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상상 속의 존재가 귀신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봤다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저 소설 속에서, 영화 속에서 본 것이 전부일 뿐이다. 실체가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시골집에 사셨다. 자식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우리나라 최초로 도마 종목에서 은메달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 여1, 여2를 개발해 한국 기계체조를 이끌어온 여홍철(呂洪哲·47). 그는 세상에 한국 기계체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체조를 안 했으면 조폭이 됐을지도 몰라요.”
1994년 세계체조선수권대회 도마 3위,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
삶에서 행복을 충전하는 최고의 방법은? 좋은 사람들과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라 한다. 그것을 다하며 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중견 여행사 ‘베스트래블’을 경영하는 음식·여행 칼럼니스트 주영욱 대표(57)가 그이다. 이외에도 사진가, 팟캐스트 DJ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노는 게 일이다. 그의 별명은 문화 유목민, 호모 루덴
동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지인이 아무개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좀 냉소적인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왜 입원했는데?”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몸이 가려워서 입원했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대답하는 지인의 목소리에는 부정적 음색이 뚜렷했다. 표정에도 몸이 좀 가렵다고 입원까지 하느냐는 핀잔이 완연히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 역시 중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싼 돈 주고 헬스장이나 요가, 탁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하는 것도 좋지만 평소 생활이 그대로 운동이 되는 생활운동이 좋다. 필자는 이런 지론을 살려 원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한다. 출퇴근길도 일부러 멀리 돌아서 다니면서 이런저런 세상구경을 한다. 직장에서도 특별히 바쁜 일이 없는 날은 눈치를 봐서 점심을 일찍
명절 연휴가 며칠씩 이어지다 보니 하루 세끼를 만들어내느라 매번 머리를 쥐어짰다. 가까운 큰 댁에 가서 잠깐 차례만 지내고 오다 보니 별달리 명절 음식도 없다. 잠깐 나가서 사 먹고 오자 하고 가끔 배달음식을 먹자고도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끼니 준비하는 게 귀찮고 성가시기 시작했다. 간신히 먹고 살 정도로 민생고를 해결하는
서둔야학교 학생 중 몇 명은 주로 인근에 있는 ‘푸른지대’로 일당을 받고 일을 다녔다. 푸른지대는 그 당시 딸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5월 말에서 6월 중순까지는 서둔벌이 온통 선남선녀의 물결이었다.
농대 후문에서 도보로 3분 이내 거리의 유원지로 개발이 잘된 푸른지대는 갖가지 수목이 우거졌는데 커다란 백합나무가 군데군데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빨갛게 핀
베트남 커피 진하게 한잔 내려서 거실 소파에 앉아 일간지를 펼쳐든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새벽녘 잠결에 ’받들어 버린‘ 마나님의 분부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엄명을 좇아 먼저 베란다 구석에 있던 큼지막한 빨래 통을 옮겨온다. 아내가 덮고 자는 흰 이불을 그 안에 담는다. 세재를 세 가지나 섞어 골고루 뿌려준다. 충분히 적실만큼 물을 쏟아 붓는다
지인들과 당구를 치고 나서 음식점에 들어갔는데 메인 메뉴 옆에 사리 종류가 있었다. ‘우동 사리’, ‘라면 사리’, ‘만두 사리’, ‘야채 사리’, 등이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돈을 더 내게 되어 있었다.
사리는 냉면 먹을 때 면만 추가로 더 주문할 때 사용했던 단어인데 만두 사리, 야채 사리는 맞지 않는 용법이 아닌가 해서 논란이 분분했다. 어떤 사람은
설날을 맞아 기쁘고 고마운 뉴스가 있어서 같이 기뻐하고 싶어서 올려 본다.
우리 집 도우미 아줌마(이모)의 큰아들이 한의사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개업비가 많이 드는 서울을 떠나 지방 청주에서 한의원 개업을 했다. 개업할 때는 물론 은행의 대출을 받고 곧 갚을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시작했는데 병원 운영이란 것이 임대료니 뭐니 해서 생각같이 쉽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