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은 원숙일까, 낡음일까. 누군가에겐 연륜으로 작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집불통의
외통수를 만들기도 한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영원한 젊음에 대한 집착’도 안쓰럽다. 또 ‘너희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로 나이를 계급장인 양 밀어붙이며 유세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여기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사는 진정한 ‘어른’이 있다. 바로 이길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명예이사장이다. 영원한 현역으로 산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정보화 사회의 키워드인 사이버는 그리스어 ‘키베르니테스(kybernetes)’에서 유래했으며 ‘키’를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원로가 젊은이와 다른 것은 인생에서 ‘가상의’ 키를 잡고 저어갈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길원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장(72)을 이 코너 인터뷰 대상자로 섭외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늘 젊은 친구가 모여들고, 일상을 놓지도 않고 꽉 움켜쥐지도 않은 채 여유롭게 ‘키를 제대로 잡고’ 지덕체의 균형을 이루며 사는 ‘어른’이라 생각해서였다. 처음 인터뷰 섭외를 청했을 때,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90까지는 활동해야 하는데 인생 은퇴가 어디 있느냐”며 “나는 영원한 현역이다. 단지 노는 물이 달라졌을 뿐이다”라고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박수칠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라는 것으로요. 옛날에는 인생을 2막으로 나누었지요. 30세까지의 준비기와 60세까지의 활동기로 양분했습니다. 이제는 90세까지 사는 세상. 저는 인생을 3막으로 구분합니다. 태어나서 20대 후반까지가 준비기, 그 이후부터 60대까지가 활동기 그리고 90대까지가 서드 에이지(third age)입니다. 서드 에이지 시기에도 마음먹기에 따라 하고 싶은 것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이길원 이사장은 장년기에는 성질이 불같아 아내와 티격태격 싸움도 자주 하고 밖으로 나돌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역시 배우자뿐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서로 등 긁어주는 배우자가 최고란 마음이 절로 들면서 부부금실도 좋아졌다고 털어놓는다. “건강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그는 아내에게 “아프면 범죄다.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라”며 오후 4시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잡고 꼭 헬스클럽엘 간다. 아내 역시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절정기”라며 행복해한단다. 자녀들도 자립했고, 이제는 스스로의 삶에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어 욕망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설명이었다.
회장님의 본업 내지 생업은 사업이십니다. 국제PEN클럽 이사장 등 활동을 활발히 하시면서도 시를 500편, 시집은 8권이나 발간하셨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제 본업은 시를 쓰는 일이고 생업이 사업이지요. 그런데 사업가와 시인은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사업이 인간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면, 시 쓰기는 인간을 탐구하는 작업입니다. 서로 통합니다. 제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쓰고 나면 짜릿한 쾌감을 느낀답니다. 시를 쓰면 사물이나 사람을 폭넓은 시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사업에도 도움이 됐습니다.”
국제PEN클럽 회장을 역임하셨지만 본래 특수인쇄업체인 스티커 회사 ‘태평양그랜드’를 창업, 38년간 운영해오셨지요. 오너 경영자들은 한결같이 스스로 현직에서 물러나기 쉽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내가 죽고 난 후 회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결론이 간단하더군요. 책상을 빼는 것이 회사 간판을 내리는 것보다 낫다.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성공한 기업이란 나 아니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나 없이도 잘 굴러가는 기업이라고 다시 정의를 내려봤어요. 저는 단계적으로 후계자 교육을 시켰습니다. 제 시대 땐 경영자 혼자 장군 멍군 다 일을 했는데, 아들에게 일을 시켜보니 팀워크로, 시스템으로 일을 처리해 나보다 더 잘해낼 것 같더라고요. 내가 며칠 걸려 조사한 일도 반나절에 해내는 걸 보고 물려줘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경영 승계 수업을 할 경우 아버지의 ‘질문’이 ‘심문’으로 변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던데요.
“묻고 기다려준 것이 내 나름의 비결입니다. 일찍부터 ‘너라면 이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 상대라면 어떻게 할 것 같으냐?’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했어요. 직원들에게나 고객들에게나 경영자로서 얼굴이 서려면 물려받아 얻은 게 아닌 나름의 업적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부담을 준 말의 전부일 겁니다. 실패를 했을 때도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며 못미덥다고 전권회수를 하기보다는 ‘내가 방풍벽으로 있을 때 실수를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실수도 경영 수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들들과는 편하게 술친구도 하지요.”
삼성 이병철 회장―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은 3대에 걸쳐 사업 교훈으로 ‘경청’을 물려주었다고 하는데요. 자제분들에게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지요.
“한마디로 신뢰입니다. ‘영업이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파는 것이다, 능력이 야 웬만한 사람들이 다 갖고 있지만 호감을 얻거나 신뢰를 받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사업의 기초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과 누가 사업 파트너가 되겠느냐, 사업의 핵심은 호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임기응변으로 얼렁뚱땅 넘기려 하지 말고 솔직해져라, 한 가지 거짓말을 덮기 위해서 백 가지 거짓말을 하게 되는 법이다’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했지요. 사업을 한 지 10년쯤 되자, 아버지 말이 무슨 말인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겠다고 하더군요.”
2선으로 후퇴해 이른바 ‘뒷방 노인’이 되면 심리적으로 외롭다고들 하십니다. 한 퇴직 오너분은 실무 경영에 참여하고 싶어도 ‘(현직 사장인) 아들이 부르기 전엔 절대 집무실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피눈물 나는 맹세와 마음수련을 거듭했다고 합니다.
“허허, 저는 할 일이 많아서인지 더 즐겁던데요. 일주일에 한두 번 회사에 나가면 직원들이 모두 좋아해요. 제가 수전노처럼 굴지 않기 때문이에요. 경영 승계를 한 후 부자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아버지가 손을 놓지 못하고 간섭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은 오히려 아들이 ‘너무 회사에 무관심한 것 아니냐’고 제게 불평할 정도입니다. 저는 문단활동, 국제PEN클럽 활동, 망명 북한작가 돕기, 시창작 강의 등 할 일이 많습니다. 돈 문제도 내가 버는 만큼이 내 돈이 아니라, 내가 쓰는 만큼만이 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밥 먹고 술 마실 때 쓸 수 있을 정도면 되지, 뭘 더 바라겠습니까.”
흔히 나이든 분들은 젊은이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그들이 어렵다며 피한다고 합니다. 젊은이들과 잘 어울리시는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나이를 먹으면 남을 통해 행복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돼야 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도 찾아야 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기도 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외로움을 즐길 줄 알아야 사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즐거워야 남도 즐겁지요. 안 그러면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거나 피곤하게 만듭니다. 나이 많다고 거들먹거리며 대우나 받으려 하고 폼만 잡으면 꼰대로 소외당하지요.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저는 모임에 나가면 대우받으려 하기보다는 사람들과 잘 적응할 방법을 찾습니다. 나이 든 선배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려고 하면 오히려 ‘식욕, 성욕 다 당신들 못지않다. 당신들보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젊다’고 농담을 하며 벽을 허물곤 한답니다.”
밥 잘 사고 젊은이들과 무람없이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해서 그를 ‘세상모르는 팔자 좋은 금수저 출신 어르신’이라고 보면 오산이다. 이길원 이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사업이 잘나갈 때는 있는 약속도 취소하면서 만나던 사람들이 사업이 어려워지자 없는 약속도 만들어 핑계를 대며 피했다. 이런 인간의 온갖 행태를 다 경험하고 목격했기에 그는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며, 조변석개의 인심을 겪으며, ‘사람은 누구나 제 입에 밥알 털어넣기 바쁘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터득했단다.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을수록 외로움을 덜 탄다. ‘자립심=사교심’이 그의 지론이다. 역설적이지만,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혼자서 버틸 줄 아는 내(耐) 고독력이 사교력과 모임적응력의 바탕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플루트를 새로 배우신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과학자가 되라고 강권하셔서 화학과로 진로를 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적성에 안 맞지 뭡니까. 또 사업을 할 때는 바빠서 악기를 배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때 풀지 못한 원을 고희가 지난 지금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지금 나이에 뭘 새로운 걸 배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날씬한 플루트 몸매는 내 손놀림에 따라 음계를 달리합니다. 낮은 음으로 속삭이다가 높은 비음으로 유혹하면 저절로 감성에 젖게 되지요. 게다가 휴대도 간편해 노후에 배울 악기로 딱 안성맞춤이라 생각합니다.”
이길원 이사장을 만나는 날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는데 그날도 플루트 레슨을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초보 수준이지만 프로 수준에 이를 때까지 꾸준히 연습할 생각”이라며 “손자들 앞에서 데뷔 음악회를 여는 게 향후 목표”라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인생 3막, 서드 에이지에 대해 쓴 시가 있는지 물어보자 그는 노년의 관조와 여유를 다룬 자작시를 나직하게 암송하기 시작했다. 때론 강한 목소리로, 때론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를 읽어나가는 그에게서 거친 파도와 싸우는 손마디 굵은 어부와 열정적으로 연기를 펼치는 배우의 모습이 느껴졌다. 낭만가객, 음유시인의 면모를 잃지 않고 고독하게 인생의 파도를 헤쳐 온 그에게 커튼콜의 힘찬 갈채를 보내고 싶어졌다. “브라보! 브라비시모, 유어 라이프!”
마침표 연습 2
이길원
내 연기(演技)가
비록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아이야
커튼콜하며 무대 비우는
배우에 갈채 보내듯 박수를 쳐라.
최선을 다한 나의 연기다
막이 내린다고 우는 사람 있더냐.
촘촘히 등 돌려 무대 내려오는 나는
박수를 받고 싶다.
내 서던 무대에 누군가 또 열정을 보일 것
이제는 너의 차례
신(神)이 누구에게나 한 번 주는 배역
비록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라
산다는 건
주어진 역할에 따르는
한 편의 연극 같은 것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졸업. 경영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겸임교수. 리더십 스토리텔러. 세계일보에서 CEO 인터뷰 전문기자로 활약했다. 세계경영연구원(IGM)과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 , 등이 있다.
설날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필자에게는 오랜 인고의 시간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8남매를 둔 처가의 셋째 딸로 고생 모르고 살다가 장남인 필자에게 시집온 이후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느라 힘들게 살았다.
요즘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보물처럼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달덩이같이 아름다운 나이에 월세 방에 사는 필자에게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두 시동생과 시누이 모두 넷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우리 집안을 화목하게 꾸려왔다.
결혼하고 10년 정도는 설날이나 추석날을 위한 음식 준비는 장남의 아내로서 당연히 자신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동서가 서울서 뒤늦게 내려와도 반갑게 맞으며 잘 지내왔다. 하지만 아내는 철인이 아니었다. 한창때는 젊음으로 버텨냈으나 명절 증후군이 해가 거듭될수록 심해져 허리에서부터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설날이 되면 다른 가족들도 하루 전에 도착해 함께 음식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서울서 필자가 사는 울산까지 오다 보면 차가 밀려 명절날 새벽에 도착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하루 전에 와도 별도로 식솔들의 음식까지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두 동생네 식구들이 가고 나면 이번에는 시집간 두 여동생의 식솔들을 맞이하느라 또 분주했다. 반갑기는 했지만 힘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미련한 남편은 그제야 아내의 고단함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집온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가사를 꾸려온 아내였다. 이 정도 세월이면 기계에도 문제가 생기는데 아내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내의 건강 문제를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형제가 돌아가면서 차례와 제사를 모시자고 아우들에게 제안하면 어떨까 하고 아내와 상의했더니 동서들이 먼저 그런 제의를 해오면 모를까 절대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말라고 펄쩍 뛰었다. 난감했다. 유산 한 푼 물려받지 못한 장남도 장남이고 장손의 아내이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어려운 숙제는 뒤늦게나마 아우와 두 제수씨의 배려로 해결되었다. 정년퇴직 후 필자가 서울에 직장을 잡아 임시 살림을 오피스텔에서 꾸리면서부터다. 좁은 곳에서 혼자 음식 준비할 여건이 안 되어 두 동서들과 분담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인간의 관습이란 정말 무서운 것 같다. 그 간단한 일을 해결하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인고의 세월 속에서 온갖 난관을 극복한 아내를 보니 향기로운 한 송이 국화꽃 같다. 아내가 너무 고맙고 필자 곁에 오늘도 있어줘서 행복하다.
5년 전쯤부터 필자는 미장원에 가지 않는다. 아 딱 한 번 아들 결혼식 날 화장부터 머리까지 미용실의 도움을 받았다. 필자가 미장원에 가지 않는 큰 이유는 격식을 차려서 나가야 하는 모임이 없어졌기 때문이고 작은 이유는 미장원 가서 머리를 해봤자 인물이 더 좋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째 필자의 머리는 생머리에 단발이다.
오히려 이러고 다니니까 얼핏 볼 때 필자 나이보다 젊게 봐주기도 한다. 이런 점도 필자가 약간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들 중에 대놓고 필자에게 뭐라 하진 않지만, 사람은 나이 따라 치장을 해야 하는 거라며 나이든 사람이 파마기 없이 생머리를 하고 다니면 초라해 보인다고 빗댄다. 그런 말을 들을 때 필자 마음은 겸연쩍고 어색하다. 이런 친구들 때문이라도 이제 파마를 해야 하나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다들 똑같이 파마를 한 둥근 머리 스타일을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짧은 파마로 우아하게 세팅해서 헤어스타일을 멋지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언젠가 TV에서 본, 버스 안에 나란히 앉은 예닐곱 명의 아주머니들 머리가 똑같은 파마머리여서 웃었던 적이 있다. 나이 들면 왜 모두가 그렇게 똑같은 파마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파마 하지 않고 생머리를 해도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니 파마 하라고 강요 안 했으면 좋겠다.
필자는 의상도 꽤 캐주얼하게 입는 편이다. 역시 격식을 따져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모임이 줄어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내 다리에 꽉 붙는 레깅스에 어그 부츠를 신고 엉덩이를 덮는 셔츠와 겉옷으로 지낸다. 너무 젊은이들 의상 같지 않을까,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약간 염려도 됐지만 나름 편하고 필자 눈에는 보기 좋았다.
그런데 요즘 나이 든 여자들이 좀 더 젊게 보이고 싶어 샹그릴라 신드롬이 대세가 됐다고 한다. 샹그릴라 신드롬은 노화를 최대한 늦추려고 노력하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중․장년층이 확산되면서 생긴 사회적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원래 샹그릴라는 1933년에 제임스 힐턴이 쓴 이라는 소설에서 나오는 곳인데 소설 속 샹그릴라는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지상낙원으로 표현되었다.
자기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건강을 중요시하는 웰빙 열풍에 얼짱, 몸짱, 동안 열풍 등이 샹그릴라 신드롬을 확산시키는 데 한몫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다. 필자는 조금이라도 젊게 보이고 싶어 치장하는 중년 여성이 예뻐 보인다. 전혀 주책스럽지 않다. 오히려 당당한 표현으로 보여 기쁜 마음이다. 필자도 언제나 젊게 살고 싶다.
젊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주관적으로 본인이 느끼는 감정의 젊음이 있고 모두가 수긍하는 객관적인 젊음이 있다. 객관적으로는 자기보다 나이어린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보통은 2~30대라면 젊다고 한다. 필자처럼 60대의 사람이라면 40대의 여성도 젊다고 본다. 필자가 말하는 젊은 여성은 40대다.
필자가 운동하는 스포츠 동호회에서 마라톤이나 테니스와 같은 격한 운동을 하는 여성회원들은 출산과 육아에 바쁜 30대는 거의 없다. 가정에서 한가한 시간이 나기 시작하는 40대가 주류를 이루고 일부는 50대 초반도 있다. 절대적 운동능력을 나이로 판가름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운동에서 나이는 체력과 관련이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테니스에서 나이가 들면 운동능력이 떨어진다. 첫째가 순발력이다. 날라 오는 공을 보고 떨어지는 낙하지점을 예측하고 방향을 틀어서 뛰어가고 적당한 거리에서 멈춰 공을 안정적으로 받아넘겨야 한다. 시각적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데 나이가 들면 점점 반응속도가 느려진다. 움직이는 공을 받아치는 타점의 포인트는 순발력이 빨라야 여유가 있고 여유가 있어야 정확하고 강력하게 공격을 할 수 있다. 순간이라도 늦으면 몸의 균형이 덜된 불안정상태가 된다. 결국 라켓과 공의 각도가 제대로 맞지 않아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두 번째가 체력이다. 운동하면 시간이 갈수록 몸은 지치기 마련이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같은 연령대라면 체력적으로 약하다 하지만 나이가 가미되면 남자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여성이 있다. 즉 젊은 여성과 나이 많은 남성이다.
마라톤에서도 나이가 많은 60대의 남자가 40대의 선두 급 여성주자와 어깨를 나란히 해서 달릴 수 있다면 나이를 떠나 체력적으로 젊은 남자다. 일정한 스피드로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마라톤에서 속도를 올리면 인체는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므로 숨이 가빠진다. 몸에는 활성산소와 피로물질인 젖산이 쌓이면서 인체는 지쳐간다. 나이가 들면 근육의 피로물질인 젖산을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빨리 지친다.
마라톤 주로에서나 테니스장에서 나를 뛰어넘고 앞으로 나가는 젊은 여자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용을 써보지만 이미 나의 운동능력을 뛰어넘은 여자들이 제법 있고 점점 많아진다는데 고민이 있다. 좀 더 분발해서 체력을 돋우고 하향곡선을 그리는 순발력을 평형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똑같은 연령대라도 건강관리를 잘해서 더 젊고 더 싱싱한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한다. 과식과 지나친 스트레스도 악영향을 미친다. 뼈의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근육은 나이와 무관하게 단련하면 강해진다.
젊은 여자를 이기고 싶다. 마음만으로도 젊어지는 기분이다. 사람은 목적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운동을 하니 더 열성적이 된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소리치고 땀을 흘리며 삶의 행복을 느낀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젊게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감각적인 패션을 추구하고, 자신을 가꾸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아재파탈’이라는 트렌드에서 보듯이 이러한 욕구는 나이와 상관없다. 의존형 소비패턴이 주체적 소비로 바뀌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깨는 것이다.
한국노년학회의 한 연구는, 액티브 시니어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를 3가지로 요약했는데 첫 번째는 외모와 육체적 나이, 즉 ‘신체적 젊음’, 두 번째는 ‘인지적 젊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패션 등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표출되는 ‘외양의 젊음’이다. 액티브 시니어들은 이러한 욕구를 바탕으로 균형 잡힌 여가활동과 사회 참여가 필요하다. 이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시니어 계층의 활동 욕구를 반영하고 이들이 가진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들 역시 활발하게 생겨나는 추세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복지관 예술 강사 파견 사업을 시작으로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생나눔교실’ 사업에 이르기까지 시니어 문화예술교육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인생나눔교실’은 시니어 계층이 멘토로 참여해 다른 세대와 교류하는 프로그램으로 이전의 수강형 교육에서 적극적인 의미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인들은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문화예술을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 전공자들과 소수만이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예술이 되어야 한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술이 대중화를 지향해야 하는 이유는 대중과의 소통, 교류,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예술이야말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창의적인 생각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활동은 확실히 자신의 정체성이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런 면에서 시니어들의 문화예술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작품 감상을 통해 서로의 관심사는 물론 외로움과 고독을 함께 나누고 문화예술에 대한 시니어들의 욕구를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이러한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얻는 위로와 기쁨들은 시니어들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여기서 현대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경영의 3대 기본 요소를 통해 액티브 시니어들에게 구체적인 인생 경영 요소를 제시할까 한다. 첫째는 수익 창출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입하고 그 일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둘째는 혁신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져 나태하고 재미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자신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혁신은 몸의 가죽을 벗기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삶의 혁신도 당연히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책임이다. 우리들은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구성원의 역할을 통해 그 사회에서의 존립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존립 근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도 사회에서 매장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니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한다. 자원봉사도 좋고 자신이 즐겁게 잘할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정체성을 찾고 활력을 찾아야 한다.
혼자 사는 시니어 싱글들은 팍팍한 현실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논하는 행위를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화와 예술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어쩌다 싱글, 액티브 시니어의 삶에 가깝다. 힘들고 고달픈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활력과 생기를 가져다주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특히 내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한 노래와 연극 한 편 등을 감상할 때 우리는 많은 위안을 받는다. 시니어들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먼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시니어들 삶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시니어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가족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해주며,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어 결국 삶의 질을 향상시켜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문화예술교육은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하고 파킨슨병 개선 등 건강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이처럼 시니어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은 전반적인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만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제 문화예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 체험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 어쩌다 시니어가 되고 어쩌다 혼자가 된 시니어들의 인생이 문화예술을 통해 ‘브라보(B: Bankable, R: Relation, A: Active, V: Value, O: Occupation) 마이 라이프’가 되길 기대해본다.
>> 진종훈
문화마케팅(경영학 박사) 전문가이자 문화평론가, 교수로 활동하며 문화로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 경영학부 교수이자 한국경영문화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며 , , 등의 저서가 있다.
서울에는 내사산과 외사산이 있다. 내사산은 조선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던 서울 4대문 안 4개의 산을 말한다.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이다. 한 바퀴 돌면서 건강다지기 딱 좋은 계절이다.
수도 서울의 유래
서울은 조선 태조 3년(1394) 10월 25일 지금의 수도로 정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년 세월이 지났다. 영역·규모·기능에 있어서도 많은 변천이 있었다. 이러한 변천을 평면적으로 보면 현재의 광화문 비각을 기점으로 하는 북위 37도 34분, 동경 126도 59분의 위치를 중심으로 방사선 상으로 확대·발전해왔다.
14세기 한양 천도 당시의 서울은 대체로 도성 내를 말한다. 이를 지형적으로 보면 북쪽의 백악산, 동쪽의 낙산, 서쪽의 인왕산, 남쪽의 남산, 이른바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서 약 500만평에 불과한 지역이었다. 광화문 비각을 중심으로 내사산은 반경 약 2㎞ 이내 지역이 된다. 내사산은 성벽으로 연결되어 서울 방어의 제1선이며 한강은 서울시의 동남쪽을 자연호와 같이 흘러 서울의 방어를 더욱 튼튼히 하고 있다. 서울이야말로 천연의 요새지인 것이다.
백악산은 흔히 말하는 청와대 뒷산이다. 한양의 주산으로 북악산이라고도 불리며 높이가 342m인 나지막한 산이다. 서쪽 인왕산은 자하문에서 연결된다. 경복궁역에서도 쉽게 갈 수 있으나 ‘신분증’이 있어야 출입할 수 있는 통제 지역이다. 338m 높이의 아름다운 산인 인왕산은 옛날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도 있다. 서쪽으로는 안산과 마주해 있고 동쪽으로 백악산과 연결된다. 능선 산행이 어려우면 둘레길 산책을 할 수도 있다. 능선 경비가 청와대 쪽 사진 촬영을 제지하고 있는 것이 ‘옥의 티’다. 수 킬로미터 밖 스마트폰 사진 하나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읽고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
125m 높이의 나지막한 낙산은 도심의 공원 같은 산이다. 성곽 바로 아래는 젊음이 넘치는 대학로다. 혜화역에서 바로 갈 수 있다. 관광명소인 남산은 265m의 나지막한 산으로 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이다. 남산타워와 광장은 주로 차편을 이용해 관광을 하는 곳이다,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장충단공원부터 성곽을 따라 순환로 걷기를 권장한다. 색다른 남산을 볼 수 있다.
싱글 남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8월 말부터 매주 금요일 모여 난타 연습과 스포츠 댄스를 배운다. 강남시니어플라자 대표 싱글 모임인 회원 중 8명. 11월 말에 있을 플라자 내 교육 프로그램 발표회에서 난타 공연을 할 예정이다. 싱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생기가 넘친다. 왠지 모를 자연스러움에 나이까지 잊게 만든다. 그렇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탐색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말이다. 격 있는 싱글들이 모인 김에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당신들의 속내, 지금 연애가 하고 싶습니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속사정
난타 소모임의 반장격인 이복자씨를 제일 먼저 만나 살아온 얘기를 들어봤다. 초등교사로 은퇴한 이복자씨는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무용을 공부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도 무용학교 입시 안무가로 젊은 시절 제법 잘나갔다. 스포츠 댄서로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하는 이복자씨. 그랬던 그녀는 재작년 황혼이혼을 했다. 작년 9월부터는 싱글의 몸으로 봄빛클럽 회원이 됐다. 지금은 나름의 재능을 살려 회원들에게 난타와 댄스스포츠를 가르친다.
이복자 황혼이혼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어요. 남편의 술버릇 때문이었죠. 젊을 때는 교사라서 못하고, 아들 결혼식에 빈자리를 만들기 싫었습니다. 결국 이혼했어요. 아들이 결혼하고 나서 호주로 떠났는데 제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웠어요. 자존심상 주위에 혼자된 사실을 알리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다가 봄빛클럽을 알게 됐습니다. 법적으로 혼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상담도 받은 뒤 회원이 되면 싱글들끼리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건전하고 나 또한 싱글이니까 마음놓고 얘기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봄빛클럽 안에 최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말 그대로 탐색 중이다. 그녀에게는 분명한 것 하나가 있다.
이복자 남자 경제력은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연금으로도 두 명 충분히 살 수 있거든요. 마음이 맞고 편한 상대를 만나고 싶어요. 사실 제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분에게 당신이 편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뭐 어때요? 여자라도 마음에 들면 말하는 게 맞죠. 말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웃음)?
하나, 둘 회원들이 모이고 왁자하게 웃음꽃이 폈다
난타 모임은 발표회를 위해 급조된 모임이다. 이곳에 모인 회원들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매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진 촬영을 위해 테이블 주위에 회원들이 오순도순 모였다. 봄빛클럽 단장이었던 이활주씨와 난타를 가르치는 이복자씨, 이영조·최연서·현정원·김순섬씨. 그리고 이복자씨의 댄스스포츠 파트너인 박노용씨도 나오지 않은 회원을 대신에 자리를 채웠다. 이날 모인 사람 중 유일하게 가정이 있는 남자다.
본격적으로 싱글 남녀와 대화를 열다
싱글이신데 젊었을 때와 지금 이성을 만나는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이영조젊을 때는 좀 화끈하잖아요. 그런데 나이든 사람들의 만남은 하루하루 만나면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서로가 함께 있으면서 취미를 공유하고 같이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봐요.
이복자 모여서 떠들면서 스트레스도 날리고 외로움도 해소하는 거죠.
최연서 젊었을 때의 연애는 쓰나미 같은 것이고, 지금의 연애는 밀물 같아요. 이 나이에는 쓰나미처럼 사랑할 수 없어요.
Q.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
최연서 우리 생각은 시시때때로 바뀌어야 맞잖아요? 다른 사람 보면 또 바뀌고 그래야죠. 우린 싱글이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만 좋아할 수가 있어요(웃음)?
이복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마음이 맞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요?
Q. 주로 어디서 만나시나요?
이영조사람이 그리울 때 저는 주로 저희 집으로 오라고 합니다. 집에 볼 만한 영화도 많고, 노래방 기계도 있어요. 그런데 전부 다 모여 먹고 마시다 보면 같이 영화 보고, 노래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음에 영화 볼 때는 몇 사람만 와서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때 갑자기 최연서씨가 이영조씨와 이복자씨가 함께 영화 을 봤다는 얘기를 꺼낸다. 야한 장면이 나오는데 둘이 괜찮았냐며 소녀처럼 묻는다.
이복자 문제는 그런 거를 같이 봐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는 거 아냐? 이제 완전히 고목이 됐나봐. 지금 연서씨가 얘기하니까 그런 게 있었나보다 하지. 이제는 그런 장면을 봐도 감정이 막 생기고 그런 게 없더라고요.
Q.댄스스포츠 같은 거 하다 보면 찌릿한 느낌 없나요?
최연서 그럴 만한 사람을 만나면 그렇겠죠. 그런데 친구 사이로 생각하는데다가 배우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잘 몰라요, 그런 거.
이복자 지금은 댄스스포츠를 배우고들 있으니까 배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라도 더 배워서 안 잃어버리려고 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은 잘하나 못하나 그거에만 신경을 쓰지 남녀라는 느낌이 없어요.
이영조 지금 자꾸 내용을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거 아닌가요?
수줍어서인지 즐거워서인지 다들 박장대소한다. 격조 있는 싱글들이 만났으니 뭔가 있을 거 같다고 느꼈다.
이활주 우리가 만나봐야 한 달에 번개까지 해서 한두 번 만나요. 좀 얘기하다가 식사하고 노래방 가고,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까 따로 시간 내서 한잔 더, 혹은 차라도 한잔 이런 걸 못 해요. 지금 그것을 파악하는 중이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됐어요.
Q.솔직히 말해보셔요, 다들 연애는 하고 싶으세요?
최연서 좋은 친구는 만들고 싶죠.
김순섬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요.
Q. 얘기가 잘 통할 때 연애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으신가요?
이영조 희망사항이죠. 문제는 생각하는 이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이곳에서 혹시 남녀가 불이 붙으면 이 모임에 나올까요(웃음)? 관둡니다. 그건 분명해요.
이복자 자기들끼리 만나야 하니까.
이영조 맞아요.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둘이 만나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Q. 혹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면 헤어졌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김순섬 다시 들어오지는 않겠지. 자존심이 있는데 헤어졌다고 들어오나?
이활주 사실 예를 들어 “나 누구하고 만난다”고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존심이고 뭐고 없어요. 시치미 떼고 다시 오면 오는 거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모임 회원 중 많게는 몇 사람 혹은 한두 사람은 서로 신상 탐색을 위해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Q. 이 모임은 싱글 모임인데 다른 모임과 차이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이복자 제 친구들 중에는 싱글이 많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친구들하고 모임을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바삐 집으로 가요. 남편 밥 챙겨주러요. 집안일이 그렇게 딱 걸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같은 싱글들은 집에 빨리 가야 하는 부담이 없어서 좋아요. 여기는 싱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위화감은 없어요.
Q. 싱글 모임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요?
김순섬 다른 내 친구들은 싱글이 아니니까 내가 만나고 싶을 때 못 만나요. 그런데 여기는 내가 전화하면 만날 수 있어요. 요즘 다른 친구들한테 자랑해요. 너희들 없어도 요새 나는 잘 놀고 있다고요(웃음).
Q. 같이 갔던 장소 중에 좋았거나 기억에 남는 곳이 있었나요?
현정원 춘천 갔을 때도 재밌었고, 대하도 먹으러 갔었어요. 11월에는 충남 태안에 천리포수목원으로 2박 3일 계획하고 있어요. 봄빛클럽에서 희망하는 사람들만 갑니다.
솔직하지 못한 싱글 남녀들의 머뭇거림에 이날 객원 멤버로 참여한 무용실 원장 박노용씨가 한마디한다.
박노용 너무 생각이 깊어요. 만나는 거 자체는 흥미롭고 좋은데 열지 못하는 거죠. 가정이 있는 제가 느끼기에도 몇 가지 장단점이 느껴집니다. 자유로운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 좋아 보이기도 하네요. 각자에게 주는 감정이 참 세밀합니다. 그런데 젊음이 떠나서 그런가 들이대는 게 부족해요(웃음).
이활주 그 말이 맞을 거예요. 다른 사람 눈치를 보게 돼요. 가족의 눈 등 일단 다른 사람들의 눈이요. 좋아하는 상대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알아가면서 좋은 감정을 만들 수도 있으련만.
최연서 자신에게도 신중해야 하고 남들도 생각해야 하고 젊었을 때랑은 다를 수밖에 없죠.
이복자 나이 들어보니 감정은 뒷전이고 이성적으로 이것저것 가리게 되니까 빨리 뭐가 안 이뤄지는 거죠.
박노용 남녀 간의 사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따뜻한 친구는 얻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싱글 모임이 좋은 거 같아요.
최연서 누군가 말하기를, 이성 친구는 딱 보고 1분 내로 결정하라더군요. 단 지성과 양심 중에 양심 쪽을 택하라고 하더군요.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은 만남이 달라요.
시니어 싱글 남녀. 이들도 결국은 진짜 사랑을 만나고 싶고, 지금까지의 삶을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사람들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내세울 수 없다. 삶에 대한 책임감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마음이 시니어들이 사랑을 생각하는 방식이 아닐까.
김장철이 다가온다. 배추와 무가 싱그럽게 쑥쑥 키를 키운다. 아침저녁의 손이 시릴듯한 날씨에 서서히 깊은 맛이 들어간다. 이웃 할머니가 가꾸는 마을 입구에 있는 밭의 무도 땅 기운을 받고 어제와 눈에 띄게 다르다. 지난봄 야외 사진 촬영을 나갔다가 들녘 밭에서 발견했던 또 다른 모습의 무를 사진으로 담았던 기억이 난다. 서두의 사진이 그것이다. 필자는 그 형상에서 인생 2막을 맞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진의 제목을 “자화상”이라 정했다. 베이비붐 세대와 그 이전 세대들은 자신을 늘 뒷전에 두며 싫은 일도 마다 않고 가족이나 직장을 위하여 헌신함으로써 등골이 다 빠졌다. 그 모습을 빈틈없이 닮았다.
사진의 대중화 시대를 살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폰에 카메라 장치가 들어가면서 대중화는 급속히 앞당겨졌다. 사용자의 편리를 위하여 놀라울 정도로 기능도 좋아져 더 그렇다. SNS, 즉 소셜 미디어 시대의 삶에 사진은 예술의 한 분야에서 영상언어로 발전하고 있다. 셔터만 누르면 사진은 찍힌다. 침팬지도 사진을 찍는다고 말할 정도다. 대충 찍을 수 있어도 어떻게 찍어야 좋은 영상언어가 될까를 고민함도 바람직하다.
사진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의도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 흔히 말하는 메시지 담기다. 필자는 사진을 찍으려고 준비할 때 먼저 생각하는 일의 하나다. 어떻게 보면 머릿속에 써 내려 가는 촬영 노트인 셈이다. 야외 촬영을 준비하면서 기획한 내용의 하나가 베이비붐 세대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해보자는 것이었고 그런 사진 한 장을 밭에 버려진 무에서 찾았다. 앞의 사진이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무엇으로 보입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 “연근”이라 답한다. 사실 그렇게 보인다. 듬성듬성 비워진 모습이 연근을 잘라 놓은 것과 흡사해서다. 농부가 수지가 맞지 않아 밭에 그대로 버려두어 한겨울을 지내면서 바람이 든 무의 중간을 뚝 잘라본 단면이다. 마치 인생 1막을 마감하고 인생 2막을 맞으려는 세대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일해 왔고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 가족에게 헌신하고 남은 내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같아서다. 자식의 교육이나 결혼자금 또는 자녀 사업자금으로 다 쓰고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등골까지 다 빨린 세대의 모습을 빼닮았다.
필자는 이 한 장의 사진을 대중과 공감하는 영상언어로 활용한다. 인생 2막에서는 비워진 그곳에 생업에 밀려 하지 못하였던 꿈을 이루는 자아실현으로 채워가야 함을 은근 슬쩍 강요하는지 모른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약속을 잡아 본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해 본 말이 “상상마당 앞에서 봅시다!”일 것이다. 2007년 문을 연 홍대 KT&G 상상마당(이하 상상마당)은 젊음의 거리를 대표하는 마루지, 그 이상의 공간이다. 젊은이의 무한상상을 응원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상상마당이다. 상상마당은 지하 4층부터 지상 7층까지 극장, 공연장, 갤러리, 다양한 문화강좌를 들을 수 있는 아카데미와 카페 등이 있다. 상상마당은 젊은 예술가에 대한 지원사업과 문화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곳. 시각예술 전시와 영화 상영은 물론 출판, 영화 제작 배급도 활발한 ‘문화발전소’라 칭할 수 있다.
상상갤러리
상상갤러리는 상상마당 2층에 있다. 상상마당 정면 오른쪽으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갤러리 입구. 이곳은 국내외 유명 작가의 작품 전시는 물론이고 상상마당이 발굴한 젊은 작가의 작품 전시 등 다채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0월의 상상갤러리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작업하는 젊은 작가의 교류와 협업 프로그램인 제3회 ‘KT&G 상상마당 다방 프로젝트 [Close Relation]전’이 열리고 있다.
상상시네마
지하 4층의 상상시네마는 대형 극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독립영화와 단편영화 등을 상영한다. 매주 화요일 오후 8시에는 달마다 주제를 정해 ‘단편상상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10월의 단편상상극장은 9월에 있었던 대단한 단편영화제 수상작들로 꾸며진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금관상의 와 은관상의 , 대단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상영되고 있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한 ‘대단한 단편영화제’는 ‘FILM LIVE: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6월)와 ‘CINE ICON: 배우기획전’(12월) 등과 함께 상상마당을 대표하는 연례행사다.
‘단편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 준다’는 취지로 매년 6월 한 달간 단편영화를 공모해, 예심을 거쳐 최종 25개작품을 선발하고 9월 영화제 기간에 상영한다. 금관상, 은관상, 대단한 배우상, 대단한 감독상 등이 수여된다. 상상시네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이 바로 로비 구석에 마련된 만화책 코너다. , , 등 유명 만화 시리즈를 비롯해, 마블코믹스와 시중에서 찾기 어려운 외국 일러스트 모음집 등이 꽂혀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이용이 가능하고 편히 쉴 수 있어 상상시네마하면 꼭 떠오르는 공간이다.
손성동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ssdks@naver.com
몇 년 전 모 대학 교수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평생교육원에 다니고 있는 남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누구일까? 옷 잘 입는 여성? 돈 많은 여성? 요리 잘 하는 여성? 셋 다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여성은 단연코 ‘예쁜 여성’이었다. 젊으나 늙으나 남자에게는 예쁜 여성이 최고다. 남자는 참 단순하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이 다른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그럼 평생교육원에 다니는 여성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은 어떤 사람일까? 잘 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근육질 남자? 모두 아니다. 여성이 가장 좋아하는 남성은 ‘연금 많이 받는 남자’다. 잘 생기거나 근육질 남성은 온전한 내 남자가 되기 힘들고, 돈 많은 남자는 자식들 차지이거나 분란의 소지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정경제를 꾸려온 사람들답게 여성들은 참 현실적이다.
상대적으로 이성을 지배하는 좌뇌가 발달한 남성은 감성에 휘둘리고, 감성을 지배하는 우뇌가 발달한 여성은 이성에 좌우되는, 남녀관계는 정말로 모를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실버파산, 노후파산이라는 단어가 사회적 화두로 등장했다. 노후에 생계를 꾸려갈 만큼 수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파산이라는 달갑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현실적인 여성들이 미리 냄새를 맡고 연금에 손을 들어 준 이유를 알 만하다.
연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후에 일정한 주기로 일정액의 현금이 내 통장에 꽂히는 것. 일정한 주기는 매달일 수도, 분기일 수도, 매년일 수도 있다. 물론 매달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연금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지만 사람마다 연금에 부여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세계적으로 유명인사인 오 노레드 발자크(1799~1850), 한스 안데르센(1805~1875),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878)를 통해 연금의 다양한 의미를 에이브러햄 매슬로(1908~1970)의 욕구 5단계설에 비춰 살펴보도록 하자.
오 노레드 발자크 : 절대적 생존 수단으로서의 연금
19세기 전반의 프랑스 소설가로 사실주의 선구자로 알려진 인물, 나폴레옹이 칼로 시작한 일을 자신은 펜으로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지닌 나폴레옹 숭배자, 이라는 90여 편의 소설로 구성된 소설 위의 소설을 구상한 혁신자, 짓누르는 눈꺼풀을 커피로 녹여 낸 커피 중독자…. 오노레 드 발자크를 지칭하는 말들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에서 발자크를 ‘현대 문학의 가장 위대한 노동자’ ‘환상적인 작업 기계’로 묘사한다. 사흘에 잉크병 하나를 비우고 펜 10개를 닳아 없앨 정도로 많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에 색다른 별명을 하나 더 붙이고 싶다. 바로 ‘연금 애호가 발자크’다.
발자크의 소설에는 유독 ‘연금’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언어학에서는 작가가 특정 주제에 관련된 어휘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이 곧 그 작품의 중심 테마일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에 ‘연금’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곧 ‘연금’이 소설의 중심 테마임을 의미한다.
발자크가 연금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잠시 엿보기로 하자. 에서 발자크는 연금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의 한가로움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묘사한다. 에서는 딸의 사교 비용을 대느라 연금증서까지 팔아 치운 나머지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고리오 영감의 마지막 절규를 숨 막힐 정도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대목은 에 나오는 하녀 나농의 이야기다.
“160㎝가 넘는 큰 키 때문에 키다리 나농이라 불리게 된 그녀는 35년 전부터 그랑데 집에 살고 있었다. 1년에 60리브르밖에 받지 못하지만 그녀는 소뮈르 지방에서 제일 부유한 하녀로 통했다. 35년 동안 60리브르를 차곡차곡 모은 결과 최근에 크뤼쇼 집에 4000리브르를 종신연금으로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오랫동안 이루어진 나농의 끈질긴 저축의 결과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보였다. 하녀들은 그것이 고된 노역의 대가라는 사실은 생각지 않고 60대의 노파가 마련해 놓은 노후자금에 질투심을 드러내곤 했다.”
위 구절을 보면 연금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과 당시 프랑스 사회를 읽어낼 수 있다. ①노후에 연금을 받으려면 오랜 기간 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야 한다. ②연금은 고된 노역의 대가다. ③연금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④유력 집안이 금융회사를 대신해 연금을 지급한다. ⑤여자가 160㎝만 넘으면 큰 키로 인정받는다. ④와 ⑤번을 제외하면 요즘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발자크가 그의 소설 속에 연금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집안 내력과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겪은 경험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지 않을까. 츠바이크의 에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래 살려는 그의 의지는, 가입자가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 연금이 덧붙여지는 이른바 톤틴식 연금에 들었다는 사정을 통해서 더욱 강화되었다.”
발자크는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연금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발자크는 젊었을 때 인쇄업과 활자제조업에서의 연이은 사업실패로 평생 빚더미에 짓눌려 살았다. 다시 츠바이크의 말이다. “3년 동안의 사업가 활동에서 얻게 된 10만프랑의 빚은 그에게 ‘시시포스의 돌’이 되었다. 그는 평생 근육을 거의 망가뜨리면서 이 돌을 꼭대기로 굴려 올리곤 했지만, 언제나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생애 최초의 이 잘못은 그를 언제까지나 채무자로 남도록 운명지었다. 자유롭게 창작하고 종속 없이 산다는 어린 시절의 꿈은 절대로 실현되지 않을 것이었다.”
발자크에게 연금은 생존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생존의 문제였다. 빚의 노예로 노동자처럼 소설을 써야 했던 그이기에 같은 사회성 짙은 소설이든 같은 연애소설에도 어김없이 연금이 등장한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설에 접목하면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안데르센 : 복합적 의미로서의 연금
한스 안데르센은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덴마크의 동화작가다. 하지만 안데르센과 관련하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바로 안데르센이 그렇게도 연금 받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안데르센은 젊은 시절 엄청난 고통과 각고의 노력 끝에 정상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정상에 오르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에 빈 곳이 있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경쟁자이면서 자신보다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은 연금을 받고 있는데,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실에 꽤 자존심도 상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데르센의 에 매료된 덴마크 총리가 그의 거처를 방문한다. 물론 안데르센은 그가 총리인지 모른다. 방문 목적과 자신의 신분을 밝힌 총리는 안데르센에게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는다. 이에 안데르센은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연금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국왕 면담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인 총리는 돌아가 덴마크의 유명한 물리학자인 외르스테드를 통해 국왕 면담을 주선한다. 국왕과 면담 후 안데르센은 그렇게도 원하던 연금을 받게 되었는데, 그 장면과 감정을 자신의 자서전인 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프레데릭 6세 때 이미 몇 년 전부터, 문학청년이나 예술가들을 해마다 선발해 여행 경비를 주는 제도 외에도, 이들 가운데서 이렇다 할 소득이 없는 사람들을 골라 많지 않은 돈이지만 연금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대부분의 유명한 시인들이 모두 이 보조를 받고 있었다. 욀렌슐레게르, 잉게만, 하이베르그, 카를 빈터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다. 헤르츠도 얼마 전부터 이걸 받고 있어, 그의 미래는 생계가 탄탄하게 보장되어 있었다. 나도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이 내 희망이자 소원이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프레데릭 6세는 내가 1년에 200릭스달러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나는 기쁘고 고마운 나머지 펄쩍펄쩍 뛰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단지 살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 몸이 아프거나 병에 걸려도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확실한 버팀목이 생긴 것이다. 늘 신세를 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바야흐로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었다.”
안데르센이 연금을 받고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온다. 안데르센이 연금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 하나는 안정적으로 창작활동에 몰두하기 위한 경제적 토대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여행을 매우 좋아했다. 당시 여행비용은 꽤 비쌌다. 여행을 통해 자신의 정신과 사상을 깊게 하고 넓혀 나갔던 안데르센은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영국 여행에서는 찰스 디킨스를, 프랑스 여행에서는 빅토르 위고와 발자크 등 세계적 작가들을 만나고 교류했다. 결국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더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경제적 안정 수단이었던 셈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설의 두 번째 욕망인 ‘안전욕구’였다.
“여행은 마법의 물약처럼 마음을 정화하고 육체에 원기와 젊음을 불어넣는다. … 나의 내면에 보석 같은 소재들이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이 보석들을 제대로 다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이 보석들을 정력적으로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다듬어 종이에 옮겨 놓기 위해서는, 정신을 신선하게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내게 있어서 여행은 정신을 정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는 늘 더 젊어졌고 더 강해졌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연금을 통해 국왕으로부터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명사의 반열에 오르고 싶은 욕구이지 않을까. 국왕과의 연결선이 없어 자신보다 못한 경쟁자가 연금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시샘하던 안데르센이 드디어 자신도 그들의 리그에 속하게 된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5단계 중 3단계인 ‘사랑과 소속 욕구’를 쟁취한 셈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확실한 기반을 구축하는 덤까지 얻었다. 5단계 욕구 중 4단계인 ‘존경 욕구’를 충족하는 기쁨까지 누리게 된 것이다. 이처럼 안데르센에게 연금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도구였던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정치 도구로서의 연금
비스마르크는 우리에게 독일의 철혈재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비스마르크가 철혈재상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근과 채찍을 효율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항상 한 손에는 채찍을,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들고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78년 10월 9일 공산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사회주의자법’ 제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여지없이 다음과 같은 당근책을 제시한다.
“나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개선하며, 노동자들에게 기업 이윤의 배당을 보장하고, 기업의 경쟁력과 시장상황을 고려한 범위 내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는 모든 계획들을 후원할 예정입니다. … 만약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성적인 방법으로 미래를 내다 보면서 노동자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한 긍정적인 방안을 제안한다면 나는 국가부조라는 이념을 염두에 두면서 자구책을 강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방안을 호의적으로 검토할 것입니다.”
1881년 3월 8일 산재보험법을 제안하면서는 “국가란 오직 유복한 사회계급의 보호를 위해서만 창안된 것이 아니다. 무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도 봉사하는 복지기구”라고까지 강조했다. 1881년 11월 17일 자신이 직접 작성한 황제교서에서는 “사회적 폐단을 단지 사회민주주의의 과격행위를 탄압함으로써만이 아니라, 노동자 복지를 적극적으로 도모함으로써 척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4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은 사회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비스마르크의 당근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다. 비스마르크에게 연금은 5단계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의 실현 수단의 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