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그녀를 만나기로 한 7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녘에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요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고 궂은날 설마 거리 캠페인을 나가겠어?” 약속을 취소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평택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냥 밥이나 먹고 오자”고 했다. 전에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평택 친
요즘은 장마가 계속되어 야외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 갑자기 스케줄이 취소되고 나면 막상 할 일이 없다. 아까운 하루를 그대로 보내고 나서 영화라도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메이저 상영관은 볼만한 영화가 없고 서울극장,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옥자’가 눈에 띄었다. 영화 배급사 넷플릭스와 국내 3대 메이저 상영관이 서로 갈등하면서
필자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입학시험을 치르던 1960년대 중반이었다. 시골이긴 했어도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때는 지역 내 4개 초등학교가 모여 경쟁을 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전체 차석(次席)으로 입학시험 결과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잠시, 8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인 필자가 입학시험을 치르던 해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지난 6월 22일 남부터미널역 ‘팜스 앤 팜스’에서는 계간 문학잡지 제 13회 신인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 자리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의 회원인 손웅익씨가 수필가로 등단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한마디로 겉모습도 속마음도 잘난 남자들을 좋아한다. 지휘자 중 가장 좋아하는 불세출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외모 자체가 명품이다. 이에 버금가는 손
그곳으로 가는 길은 분위기가 있다.
안개처럼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주어 아득한 바다가 마음을 더 흔든다. 그리고 빗방울 송골송골 맺힌 초록의 만좌모 벌판이 눈에 가득 들어와서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바다까지 보여주니 더 말해 무엇하리.
눈 앞의 바다에선 유유자적 뱃놀이도 한다. 멀리 해안선을 따라 멋진 리조트에서 쉬며 제대로 휴식하면 더 좋겠다. 그 드넓은
스위스 출신의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의 를 읽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만 생각해, 상대적 빈곤과 불행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장 지글러의 글은 깨달음 이상으로 다가오는 분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구별에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5월, 캘리포니아는 눈부시다. 겨울 내내 인심 좋게 내린 비에 캘리포니아는 몇 년째 심각했던 가뭄이 완전히 해갈됐다. 덕분에 온갖 풀이며 나무들이 싱그럽게 초록을 품었고 꽃들은 만개했다. 도저히 집 안에서는 감당이 안 되는 날씨. 꽃무늬 스카프라도 두르고 나서보기로 했다.
마침 시간을 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언젠가 ‘LA 인근 가볼
올해 5월은 공휴일과 주말이 겹쳐 징검다리 연휴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번 석가탄신일(3일)은 어린이날과 가까워 손주와 함께 나들이 갈 곳을 찾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와우정사에 들러보고, 인근 용인농촌테마파크까지 즐겨보는 것 어떨까?
세계 각국의 불상 3000여 점을 만나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와우정사(臥牛精舍)는 도심에서
부모님이 이 세상을 떠나 저세상으로 가시게 되면 우리는 어떤 옷을 입혀드려야 할까? 물론 수의를 입고 가시지만 때가 되면 갈아입으실 다른 옷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버지께서 당시에 공부만 하던 5남매를 이 세상에 남겨두시고 1976년 엄동설한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으니 올해로 만 41년이 된다. 중국의 천자가 쉬어갔다는 천자봉 아래 명당자리에 아버지를 모셨
서울이라는 ‘황야’를 누벼 먹이를 물어 나르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새벽 침상에서 와다닥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실려 가는 출근길부터가 고역이다. 직장에선 너구리 같은 상사와 노새처럼 영악한 후배들 사이에 끼어 종일토록 끙끙댄다. 퇴근길에 주점을 들러 소주병 두어 개를 쓰러뜨리며 피로를 씻어보지만, 쓰린 속을 움켜쥐고 깨어난 이튿날 새벽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