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선택은 누가 봐도 모험이었다. 준공무원급으로 평가받는 안정된 직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산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위험한 가장의 선택이었다. 그래도 그는 “조금 더 빨리 들어왔으면 어땠을까?” 하고 말한다. 경상북도 청송에서 만난 신왕준(申旺俊·53)씨의 이야기다.
신왕준씨가 고향인 청송 ‘부곡마을’로 돌아온 것은 2015년 3월.
작년부터 지인이 이 행사에 동호인 멋 겨루기에 출전한다며 오라고 했었다. 국악을 중심으로한 행사인데 3일간 축제 형식으로 열린다. 문제는 너무 먼 것이다. 차가 있으면 몰라도 대중교통으로 가자면 고생 깨나 해야 할 여정이었다. 그러나 마침 운길산 역에서 하룻 밤 잘 일이 있어 내친 김에 가볼 생각을 했다. 설악면에서 농장을 하는 다른 지인이 설악면으로 와서
늙음 뒤엔 결국 병과 죽음이 대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하나의 애환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울 때라도 살아갈 길은 있다는 뉴스는 비 오듯 쏟아진다. 비곗살처럼 둔하게 누적되는 나이테에 서린, 쓸모 있는 경험과 요령을 살려 잘 부릴 경우, 회춘과 안락을 구가할 수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삶의 후반전, 그 인생 2막을 열어 내딛는
‘고향 떠나 긴 세월에 내 청춘 어디로 가고 삶에 매달려 걸어온 발자취 그 누가 알아주랴 두 주먹 불끈 쥐고 살아온 날들 소설 같은 내 드라마…’ -케니 김 1집 ‘내 청춘 드라마’ 케니 김(70). 그는 LA의 트로트 가수다. 한국에서 온 연예인도, 주체할 수 없는 끼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소심한 성격에 낯가림도 심하던 그가 무대 위에서 그것도
친구와 그녀를 만나기로 한 7월 둘째 주 토요일, 새벽녘에 우르릉 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요란한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오고 궂은날 설마 거리 캠페인을 나가겠어?” 약속을 취소할 요량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평택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우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그냥 밥이나 먹고 오자”고 했다. 전에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녀는 평택 친
요즘은 장마가 계속되어 야외 활동이 제약을 받는다. 갑자기 스케줄이 취소되고 나면 막상 할 일이 없다. 아까운 하루를 그대로 보내고 나서 영화라도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메이저 상영관은 볼만한 영화가 없고 서울극장, 대한극장에서 상영하는 ‘옥자’가 눈에 띄었다. 영화 배급사 넷플릭스와 국내 3대 메이저 상영관이 서로 갈등하면서
필자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입학시험을 치르던 1960년대 중반이었다. 시골이긴 했어도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를 때는 지역 내 4개 초등학교가 모여 경쟁을 했다. 필자는 운 좋게도 전체 차석(次席)으로 입학시험 결과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잠시, 8남매 중 끝에서 두 번째인 필자가 입학시험을 치르던 해에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빚쟁이들이 몰려와
지난 6월 22일 남부터미널역 ‘팜스 앤 팜스’에서는 계간 문학잡지 제 13회 신인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이 자리는 한국시니어블로거협회의 회원인 손웅익씨가 수필가로 등단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한마디로 겉모습도 속마음도 잘난 남자들을 좋아한다. 지휘자 중 가장 좋아하는 불세출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외모 자체가 명품이다. 이에 버금가는 손
그곳으로 가는 길은 분위기가 있다.
안개처럼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주어 아득한 바다가 마음을 더 흔든다. 그리고 빗방울 송골송골 맺힌 초록의 만좌모 벌판이 눈에 가득 들어와서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바다까지 보여주니 더 말해 무엇하리.
눈 앞의 바다에선 유유자적 뱃놀이도 한다. 멀리 해안선을 따라 멋진 리조트에서 쉬며 제대로 휴식하면 더 좋겠다. 그 드넓은
스위스 출신의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의 를 읽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만 생각해, 상대적 빈곤과 불행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장 지글러의 글은 깨달음 이상으로 다가오는 분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지구별에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