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휴가에 펜션을 예약해 두었다며 동해안 바닷가와 설악의 계곡에서 보내자는 아들네의 전화를 받았다. 즐거운 제의다. 이제 아기들도 웬만큼 자라서 저희끼리 놀러 가도 될 텐데 엄마를 생각해 같이 가자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 냉큼 가겠다고 답하고 여행 준비에 나섰다. 딸만 있는 친구들이 들으면 또 눈치 없다고 핀잔할 것이지만 나는 모른 체 따라나서기로 한다.
막상 준비하려니 할 것이 없다. 그 옛날엔 휴가 가기 전 밑반찬부터 먹을거리 챙기는 게 일이었는데 요즘은 집 나서면서부터 무엇이든지 살 수 있으니 거추장스럽게 미리 음식준비는 하지 않는다. 그저 복용 중인 약과 화장품, 칫솔, 그리고 옷만 챙기면 되었다. 얼마 전 새로 산 레이스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바닷가에서 수영복 대신 입을 탱크톱과 짧은 바지도 잊지 않았다. 바닷가 해변에 서 있을 나를 상상하니 날아갈 듯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근래에 휴가는 그저 유명 휴양지의 호텔에서 보냈다. 손녀 손자가 어릴 때라 주로 호텔 내의 수영장이나 놀이시설을 이용해서 불편한 점 없이 놀다 왔었다. 올 휴가는 바닷가에 간다니 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젊은이에게는 낭만의 태양과 푸른 바다가 제격이겠지만 언젠가의 기억대로라면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은 나 같은 시니어에는 결코 낭만적이기만 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뜨거운 햇볕에 달구어진 모래사장에서 비치 파라솔까지 가는 것도 고역이고 쨍쨍한 햇볕에 가린다고 해도 탈 수밖에 없는 피부도 걱정이다. 또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온몸에 붙는 모래도 고민스럽고 협소하고 복잡한 샤워장도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는 바닷가의 풍경이다. 그러나 그런 소소한 불만보다는 멋진 해변의 낭만과 옛 추억, 넓고 푸르른 바다를 가슴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해변의 파라솔은 너무도 중요한 존재다. 아무리 햇볕이 따가워도 파라솔 아래 그늘은 바닷바람으로 부드럽고 시원하다. 그저 파라솔 아래 누워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아찔한 수영복의 선남선녀를 구경하며 즐기면 좋을 텐데 어린 손녀는 자꾸만 바다에 같이 가자고 손을 끌어당기니 나는 할 수 없이 손녀의 손을 잡고 바닷속으로 들어선다.
이번에 간 동해안의 중광정해수욕장은 작은 규모의 예쁜 해변이었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만 들어가는 해변과 튜브 타고 파도타기 하는 해변을 분리해 놓았고 모래도 매우 깨끗한 아이들이 함께 놀기에 좋은 바다였다.
개인이 가져간 파라솔을 펴는데 5000원, 파라솔만 빌리면 만 원, 평상의 파라솔은 3만 원으로 그렇게 바가지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빨간색의 예쁜 파라솔이 있지만, 그냥 3만 원을 주고 평상 파라솔과 노란색의 커다란 튜브를 만 원에 빌렸다.
천방지축 신난다고 뛰어다니는 손녀 손자에게 모래찜질로 인어 다리도 만들어주며 참으로 오랜만에 원시적인 피서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피곤하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고 모래밭을 오르내리는 일이 이 나이엔 어울리지 않는 피서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그 옛날 팔팔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어 즐거웠던 기분 좋은 피서 여행이었다. 이열치열 무더운 여름을 뜨거운 햇볕 아래 뜨거운 모래사장을 거닐며 보냈다.
예전에 키보이스라는 그룹이 부른 바닷가에 울려 퍼지던 ‘연인들의 해변으로 가요, 해변으로 가요~’멜로디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귀농·귀촌을 결심하기 전, 원하는 마을을 미리 둘러보게 될 것이다. 이왕 방문을 계획했다면 휴가를 겸해 마을의 명소와 맛집도 두루 즐기고, 다양한 농촌 체험도 맛보기로 해보자. 마을의 자연과 전통문화를 활용해 체험과 휴양 공간을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에서라면 가능하다. 지 단편적인 사례를 통해 귀촌·귀농의 성패 요인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 제공 및 도움말 웰촌
◇ 전북 고창군
‘구시포 해수욕장’은 해변이 넓고 완만해 아이부터 노인까지 안전하게 즐기기 좋은 피서지다. 이곳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의 ‘상하농원’은 이국적인 풍광과 더불어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최근 tvN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 알려지며 주목받고 있는 ‘고창 학원농장’은 한여름이면 해바라기가 만개해 절경을 이룬다. ‘미당시문학관’, ‘선운사’, ‘고창 고인돌유적지’ 역시 역사와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고창 여행 필수 코스 중 하나다.
체험 포인트>> 상하농원 상하농원에는 우유 제조공장 견학을 비롯해 머핀 만들기, 아이스크림 만들기 등 다양한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또 올해 7월부터 ‘파머스빌리지’를 열어 운영 중이다. 농원 식당과 테라스 룸, 패밀리 룸 등 숙박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여행 일정에 참고하자.
◇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두부, 묵, 배추전 등과 곁들여 먹는 막걸리 한 상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내성천이 휘감아 돌아나가는 ‘회룡포마을’은 육지 속 섬처럼 독특한 모습이다. 인근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은 예약을 통해 무료로 양궁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출렁다리마을’은 시골 인심 가득한 밥도 먹고, 다양한 농산물 수확 체험까지 즐기기 제격이다. 여행을 끝내기 아쉽다면, 마을에서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문경주조’에서 오미자막걸리 한잔 어떨까?
체험 포인트>> 삼강주막마을 50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지키고 있는 삼강주막마을에서는 떡메치기, 팥죽 끓이기, 양반 자전거 타기, 양반 과거길 체험 등을 경험할 수 있다. 하루 묵어갈 계획이라면 황토찜질을 겸하는 황토방과 한옥 스타일의 민박, 체험관에서 숙박도 가능하다.
◇ 경남 하동군
화개천 계곡을 따라 4.2km 이어지는 ‘서산대사길’은 실제 서산대사가 걸었던 길이다. 걷다 보면 그 끝자락에 ‘지리산역사관’이 보인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사는 마을로 유명해진 ‘의신마을’에서는 계절마다 다양한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이곳에서 하루 묵은 뒤 다음 날에는 ‘화개장터’로 향하자. 끝으로 ‘박경리문학관’과 소설 ‘토지’의 배경인 ‘최참판댁’에 들러 수시로 열리는 문화행사에도 참여해보자.
체험 포인트>> 의신마을(베어빌리지)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을 만나는 탐방 해설과 야생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리산 청정 지역에서 나는 산약초, 산나물 등을 직접 채취해볼 수 있다. 베어빌리지와 도서관, 놀이터, 캠핑장 등도 이용 가능해 손주와 함께라면 더욱 유익하다.
◇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과 감악산이 둘러싼 ‘산머루마을’은 계절에 따라 산나물 캐기, 요리체험, 문화답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1979년부터 머루 재배를 시작한 ‘산머루농원’에서는 머루 관련 체험뿐만 아니라 와인숙성터널 관람 및 머루와인 시음까지 즐길 수 있다. 파주 일대에서 가장 높은 감악산(675m)에는 국내에서 최장 길이의 출렁다리가 있다. 높이 45m, 길이 150m에 이르는 출렁다리를 건너다 보면 운계폭포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 법륜사가 나온다.
체험 포인트>> 산머루농원 ‘산머루 와이너리 투어’, ‘머루 수확 체험’, ‘나만의 와인’을 비롯해 ‘패키지체험’(머루 초콜릿, 머루 잼, 머루 비누 만들기, 와이너리 투어 및 시음)을 예약제로 운영한다. 와인을 즐기는 어른부터 달콤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아이까지 두루두루 유익하다.
◇ 충남 금산군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다녀가며 잘 알려졌다. 편백 숙소, 피톤치드 치유의 방을 비롯해 집라인과 글램핑장 등 레저 시설도 마련돼 있다. 휴양림 산책을 마친 뒤에는 ‘금산인삼약령시장’에 들러보자. 전국 인삼 생산량의 80%가 거래되는 곳으로, 각종 인삼류와 약초를 20~50% 할인한다. ‘조팝꽃피는마을’은 그 이름처럼 조팝꽃 자생 군락지가 유명하다. 대표 특산물 인삼과 각종 농산물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
체험 포인트>> 조팝꽃피는마을 희망센터캠핑장, 농촌인성학교 등을 운영하고, 여름에는 들깨 모종, 깻잎 따기, 매현천 물고기 잡이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볏짚 공예, 풍등 날리기 등 전통문화체험과 인삼 수확체험, 인삼콩 두부 만들기 등 인삼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인기다.
◇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성당’은 빨간 벽돌과 뾰족한 종탑이 어우러진 클래식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풍수원성당을 둘러본 후에는 ‘오마이갤러리’에 방문해 명화를 감상해보자. 트릭아트, 3D 입체 명화 등을 즐길 수 있다. 맛집과 체험을 모두 겸비한 오음산캠프는 산골 부녀회가 직접 나선 농가 맛집 ‘오음산 산야초밥상’과 농촌체험학교 ‘꿈꾸는풍뎅이’를 운영한다. 농촌의 계절 음식과 문화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귀농·귀촌을 염두에 둔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다.
체험 포인트>> 오음산캠프 오음산 산야초밥상은 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밥상을 즐길 수 있다. 해바라기 씨가 들어간 도토리묵과 매일 아침 만드는 손두부를 등 시골건강밥상을 내놓는다. 꿈꾸는풍뎅이 학교에서는 향토절기문화교육, 친환경 제품 만들기, 숲속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365일 즐기는 농촌체험관광 포털 ‘웰촌’
'웰촌' 웹사이트에서는 전국 농촌체험휴양마을이 등록돼 각종 정보 및 서비스를 살펴볼 수 있다. 특정마을 소개 및 체험 프로그램, 숙박·캠핑, 음식·특산물 등은 물론 인근 관광지와 맛집까지 소개한다. 사이트 내 추천 여행코스와 네티즌 여행코스를 참고하면 일정을 잡는 데 수월할 것이다. 나만의 색다른 여행코스를 만드는 서비스와 농촌여행 스탬프 투어 등 이벤트 소식도 제공한다.
완벽한 미모로 인해 연기력이나 지성이 과소평가되는 배우가 있다. 알랭 들롱과 마릴린 먼로가 대표적이다. 요즘에는 신도 질투할 미모와 아우라를 갖춘 완벽한, 배우다운 배우가 없어 스크린 앞에 앉을 때마다 불평하게 된다. “저 정도 용모와 연기력으로 감히 나의 귀한 시간과 체력을 소모케 하다니.” 정말 놀라운 건 요즘 젊은이, 심지어 영화 좀 본다는 이들도 알랭 들롱과 마릴린 먼로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름도 모른다고 답한다는 것. 물론 세계 각국 고전을 챙겨보는 게 어렵지 않은 요즘. 지금 한국의 젊은이, 영화학도는 고전을 찾아볼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지만.
여름이면 생각나는 배우 알랭 들롱. 아마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몰래 간 영등포 모 극장에서 ‘태양을 가득히’를 보고 온 다음 날, 1교시에 들어온 영어 선생님을 보고 경악했다. 넓적한 얼굴이 늘 술 마신 것처럼 불콰해서 ‘음주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선생님. 그날따라 어찌나 못생겨 보이던지. 칠판 꼭대기 판서가 불가능한 작은 키, 어벙한 양복 차림에 오버랩 되던 알랭 들롱의 푸른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세련된 양복 차림. 선생님이 조금만 잘 생겼더라면 영어를 작파하기로 결심하진 않았을 텐데.
1988년 프랑스를 여행하며, 거리 청소부도 알랭 들롱처럼 잘 생겼다는 걸 알게 되긴 했지만, 내 마음속 알랭 들롱은 여전해서, 그가 세상을 떠나면 ‘제라르 필립-장 가방-이브 몽탕- 알랭 들롱’으로 이어진 프랑스 남성 스타 계보는 사라질 테니, 무슨 재미로 프랑스 영화를 보나 싶다. 그런저런 사연으로 15년 전이던가, 한국영상자료원에 비디오테이프를 수백 점 기증할 때, 큰돈 주고 어렵게 구한 귀한 한국 영화는 기꺼이 내주었어도, 알랭 들롱 출연작은 단 한 편도 내주지 않았다.
알랭 들롱을 향한 시시콜콜 연모를 드러낸 것은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다시 본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 ‘한밤의 암살자’(Le Samourai, 1967) 때문이다. 알랭 들롱 주연의 범죄 영화는 과묵하고 대부분 그가 죽는 것으로 끝나지만, ‘한밤의 암살자’는 그 절정, 궁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속 제프(알랭 들롱)는 말이 없고 주도면밀한 암살 전문가다. 자신을 사랑하는 고급 매춘부 제인(나탈리 들롱)과 알리바이를 약속한 후, 나이트클럽 사장 살해 지령을 수행한다. 수많은 용의자 중 제프를 의심하는 수사반장(프랑소와즈 페리에르). 그러나 유일한 목격자인 나이트클럽 피아니스트(캐시 로지에르)의 거짓 증언으로 풀려난다. 불안한 암살 고용주는 또 다른 암살 전문가를 보내 제프를 죽이려 한다. 제프는 경찰과 킬러에게 쫓기며 고용주를 알아내려 한다.
정면에 창문이 보이긴 하지만, 어두운 방 벽을 배경으로 크레디트만 떠올라, 침대에 누운 제프가 내뿜는, 희미한 푸른색이 감도는 하얀 담배 연기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흑백영화인가 할 정도다. 도입부에서 마지막까지, 영화는 프렌치 누아르 고전 수작답게 흑백 분위기로 일관한다. 마침내 일어선 제프가 거울 앞에서 연갈색 더블 코트에 같은 색 모자를 쓰고 모자 끝을 매만져 단장을 끝낸 후 방을 나선다. 알랭 들롱 미모에 누를 끼쳐선 안 되니, 옷차림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더블 코트, 혹은 양복과 모자, 구두 디자인과 색감까지 신경 쓴 완벽한 남성 패션을 자랑한다.
집 앞 골목에 세워진 자동차를 훔칠 때, 주머니에서 꺼내는 열쇠꾸러미는 마치 대갓집 마나님이 속곳에서 꺼내는 열쇠처럼 묵직하다. 철사로 꿴, 최소한 100개는 돼 보이는 열쇠를 하나하나 끌러 시동을 걸어본다. 아, 아날로그 범죄의 침착하고 여유 있는 행동이라니!
훔친 차를 몰고 사람도 집도 보이지 않는, 자잘한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을 달려, 셔터 올린 창고로 단번에 들어간다. 감독 멜빌은 제프가 훔친 차를 몰고 좁은 골목을 달려 곧바로 창고로 들어가는 장면을 “자르지 않고 어찌 찍을까?” 걱정했는데, 알랭 들롱은 이를 한 번에 해냈다고 한다. 자동차 정비공이 차 번호판을 바꾸어주고 총을 주고 서류와 돈을 주고받을 때까지, 정비공과 제프는 눈빛으로만 소통한다.
제인의 아파트 방 앞. 인기척도 없건만 직감적으로 일어난 제인이 “제프?”라고 묻기까지, 9분 58초. 음악도 없다. 경제적인, 절제된, 영화 본질은 말이 아닌 행동 심리라는 걸 웅변하는 잊을 수 없는 도입부요 스릴이다. 모름지기 ‘싸나이’ 영화는, 범죄 스릴러는, 필름 누아르는, 알랭 들롱 영화는 이래야 한다.
완벽한 미남 스타 알랭 들롱이 거처하기엔 누추하고 초라한 단칸방. 변변한 가구도 부엌 도구도 없는 방 한복판에 새장 속 새 한 마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유일한 생명체인 새가 얼마나 영리하게(새의 변화를 알아보는 예민한 관찰력의 제프, 암살자가 대단한 거지만) 정보를 주는지. 인간은 머리를 굴리며 배신하지만, 새는 스스로 기진해 죽어가면서 먹이를 준 고독한 암살자에게 충정을 바친다.
살림살이랄 것도 없는 집이라 식사는 어찌 해결하는지. 알랭 들롱은 특히 범죄 영화에서 밥 먹는 걸 보여준 기억이 없다. 잘 생겼으니, 식사 따위 일상은 연기하지 않아도 된다. 담배 하나면 되니까.
멜빌 감독이 알랭 들롱에게 스크립트를 건네자, 알랭 들롱은 제목을 뭐로 할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멜빌은 ‘사무라이’라고 답했다. (국내에선 ‘한밤의 암살자’, ‘사무라이’, ‘고독’ 등으로 소개되었다) 알랭 들롱이 멜빌을 따라 그의 침실로 들어가자, 거기엔 오직 가죽 소파와 벽에 걸린 사무라이 칼이 있을 뿐이었다. 멜빌의 미니멀한 취향이 영화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음을 알게 하는 일화다.
멜빌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왜 제프는 암살자가 되었을까?, 이런 물음 따위는 거두절미 성가실 따름이다. 불친절한 영화라 이야기에 구멍이 많다는 불평을 하고픈 관객이라면, 멜빌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 주인공의 설명 없는 행동, 목숨 건 결단에 빠져들면 된다. 제인 역시 제프에게 일방의 복종과 숭배에 가까운 사랑과 신뢰를 바치며, 왜냐고 토를 달지 않으며 명령에 다름 아닌 부탁을 수행한다.
멜빌 영화 주인공은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거나, 마치 죽음을 유도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한밤의 암살자’의 마지막, 제프는 피아니스트를 겨누지만, 형사들이 들이닥쳐 그의 등에 총을 쏘아댄다. 제프의 총에는 총알이 없는데. 물론 제프는 자신을 쫓는 경찰이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손님 많은 클럽에 당당히 들어왔다.
오프닝 시퀀스에 격언을 새겨 넣길 즐긴 멜빌은 ‘한밤의 사무라이’에서도 출처를 니토베 이나조의 명저 ‘무사도’라고 밝힌 글을 올렸다. ‘무사도’는 일본인에게 수치와 명예를 알린 책으로도 유명하다. “There is no solitude greater than a samurai's, unless perhaps it is that of a tiger in the jungle.”(정글의 호랑이가 아닌 이상,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다) 도입부 인용문은 멜빌의 창작이라 한다. 유명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런 작은 불만에도 에버트는 자신의 ‘Great Movies’ 목록에 ‘한밤의 암살자’를 올렸다. 평론가 스티븐 스나이더도 저서 ‘죽기 전에 봐야 할 1001편의 영화’에 영화 ‘한밤의 암살자’를 수록했다.
‘한밤의 암살자’는 장 피에르 멜빌 영화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5가지 특징이 다 적용된다. 범죄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알랭 들롱과 같은 프랑스 유명 스타를 캐스팅했다. 오랫동안 대사가 없는 장면이 많다. 주인공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매무새를 살핀다. 나가기 전 방을 둘러본다.
1930년대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와 하드보일드 영화를 좋아했던 멜빌이지만, 그의 프렌치 누아르는 역으로 많은 현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 짐 자무쉬 감독은 ‘한밤의 암살자’를 리메이크한 ‘고스트독-사무라이의 길’을 발표했고, 쿠엔틴 타란티노는 ‘저수지의 개들’이 ‘한밤의 암살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마이클 만의 ‘콜래트럴’도 마찬가지다. 오우삼 감독도 편애하는 영화로 꼽았는데, 주윤발 주연 홍콩 누아르 중 ‘첩혈쌍웅’의 주인공 이름이 제프일 정도다.
우수와 비정 분위기로 프렌치 누아르에 한 획을 그은 멜빌 감독은 ‘Jean-Pierre Grumbach’가 본명이지만,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을 존경해 장 피에르 멜빌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1973년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14편을 연출했을 뿐이다.
지구 끝이라니 생각만 해도 멀고 먼 땅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상 가보면 그리 멀기만 한 곳도 아니다. 남극 바로위 남아메리카의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친 일부지역을 칭하는 파타고니아라는 명칭은 등산복 브랜드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마젤란과 그의 원정대가 거인족이라고 묘사했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파타곤(patagón)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 남반구에 위치하여 우리와 계절이 정반대인 이곳은 연중 기온이 낮아 11월에서 3월이 여행적기이며, 이때 간다 하더라도 사람을 지구 밖으로 날려버릴 기세로 불어대는 토레스 델파이네의 바람을 피할 방법은 없다. 자연은 냉혹하여 불평을 허락하지 않는다던가? 절대적 힘 앞에서 작은 불평 따위는 내동댕이쳐버리게 되는 곳이 파타고니아가 주는 힐링의 힘이다. 그러니 이곳에서라면 바람을 피하기보다는 바람을 기꺼이 마주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 쪽이 낫다. 사람은 40m/s를 넘으면 날아갈 수도 있다는데, 이곳은 최대 풍속이 60m/s를 넘는 일도 많아서 영국 탐험가 에릭 시프턴(Eric Shipton)은 '폭풍우의 대지'라 불렀다는 곳. 그렇다면 우린 왜 이렇게 혹독한 곳에 가려하는 것일까?
나만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결행
1989년 1월, 48세로 요절한 브루스 채트윈은 의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93세의 디자이너 아일린 그레이를 인터뷰하러 갔다가 그녀가 그린 파타고니아 지도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아일란은 자신은 이미 늙어 갈 수 없다며 브루스 채트윈이 대신 그곳에 가줄 것을 부탁했다. 얼마 후 브루스는 다니던 신문사에 ‘파타고니아로 떠남’이라는 짤막한 한 을 남긴 채 지구 반대편 파타고니아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쓴 책 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였다.
“제가 늘 저지르겠다고 협박했던 일을 드디어 결행했습니다. 오늘밤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납니다. 거기에 살면서 저 자신만을 위한 이야기를 쓰려고 합니다.”
문명의 이기는 거리감각을 바꿔놓았다
우린 이제 단 두 시간에 비행기로 목적지에 갈수도 있고, 수 십 시간을 버스를 달려 육로를 통해 목적지에 닿을 수도 있다. 효율성과 비효율성사이에서. 속도와 비속도 사이에서. 빠름과 느림 사이에서. 우린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행기로 단 두시간만에 갈 수 있는 길을 버스로 온종일 달려서 간다. 느린 것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30시간의 버스여행이 쉽지 않다. 그래도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가로지르는 파타고니아 땅만은 꼭 육로로 달려보고 싶었다.
그래야 지도로서가 아니라 온몸으로 이 땅덩어리가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을 테니까. 30시간을 달려도 피곤함보다는 오랜 상상이 실현되는 기쁨에 잠을 이룰 수 없어 창밖의 변화를 지켜본다. 그 길이만큼이나 버라이어티한 땅덩어리. 사막에서 툰드라로, 와이너리가 펼쳐진 녹색의 땅으로, 그리고 바다와 산맥, 파타고니아 빙하에 이르기까지.
이름 모를 도시에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내리고 또 타고 손님을 끝없이 바꾸며 TUR 버스는 달려간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 직진으로 난 길. 고속도로 휴게소엔 먹을게 별로 없고, 떡복이와 오뎅, 우동 생각이 간절하지만 그저 커피한잔과 웨하스 과자로 허기를 달랜다. 간간이 노점상이 차에 오르기도 하는데 먹을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파타고니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다섯배 크기. 우리나라 북쪽끝에서 남쪽 끝까지 달려봐야 고작 5시간인 곳에 살던 나는 그저 한도시에서 옆 도시로 가는데 30시간이 걸리는 이 나라에 와서야 우리나라 땅덩어리가 얼마나 작은지를 실감한다.
파타고니아의 비경을 잇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루트 40!
이곳에 오면 마음을 방해하거나 어지럽게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땅. 오로지 자신의 마음만을 명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같은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왜곡되지 않은 정직한 선.
가다가 얽히거나 꼬임이 없이 그저 올곧게 이어지는 선을 보며 굽혀진 마음을 조금은 펼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없어 무엇이 더 아름답다는 것이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내지만 땅보다 더 큰 면적으로 다가오는 광활한 하늘은 늘 빌딩에 가려져 그 모양을 알 수 없었던 구름의 존재를 각인시켜준다.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과 페리토모레노 빙하!
파타고니아를 대표하는 곳을 꼽는다면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과 아르헨티나의 페리토모레노를 비롯한 약 50개의 빙하국립공원이다. 3개의 화강암 봉우리를 비롯해 해발 2천5백미터의 설봉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토레스델파이네는 남미 최고의 풍광으로 눈이 닿는 곳마다 광고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봉우리를 지나 길고긴 잿빛 모래를 한참을 걸어가서야 만난 그레이 빙하(Grey glacier)는 이름처럼 짙은 회색빛을 띠고 있다. 거대한 빙하를 마주보며 다가가는 길, 어디선가 우루루쾅쾅 땅이 갈라지는 듯한 들리더니 바로 눈앞에서 거대한 빙하 한조각이 떨어져 내린다. 지구의 한끝이 닳아 없어지는 듯 가슴속이 철렁해져 온다.
아르헨티나 빙하 국립공원의 북쪽 입구라 할 수 있는 엘찰텐에서는 모든 등반가들의 꿈이라 일컬어지는 피츠로이산(3,405미터)을 등반할 수도 있다. 모레노빙하의 관문이라할 수 있는 엘칼라파테 마을은 가장 번화한 곳으로 오랜만에 쇼핑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아르헨티나산 말벡 와인한잔에 스테이크의 호사를 누리며 쌓인 피로를 씻어보는 것도 좋다. 30킬로미터 길이에 5킬로미터의 폭, 60미터 높이의 얼음덩어리 펠리토모레노 빙하는 남극과 북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빙하 중 가장 아름다운 빙하로 꼽힌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수천년된 빙하위에서 빙하조각을 넣은 위스키한잔을 마셔보자!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빙하를 보는 또 다른 방법중 하나는 배를 타고 돌아보는 것으로 웁살라(Upsala)빙하크루즈는 세계최대의 빙하와 수많은 빙산을 크루즈로 돌아볼 수 있다. 빙하라고 하면 무척 추울 것 같지만 맑은 날씨엔 후드티 하나만으로 충분할만큼 그곳 여름의 날씨는 그리 춥진 않다.
파타고니아엔 크고 작은 빙하가 50개 이상이 있으며, 남극과 그랜란드 다음으로 양이 많다. 안데스 산맥에 내리는 많은 비가 빙하를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난빙하에 속하는 이 지역의 빙하는 빠르게 순환하는 것이 특징인데, 여름과 겨울의 이동 속도는 다르지만, 연간 평균 100m에서 200m 사이의 속도로 움직여서 육안으로도 빙하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빙하크루즈나 트레킹 중에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빙하붕괴현상을 목도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도 있다.
지구 최남단마을, 우수아이아(Ushuaia)
파타고니아 여행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몇 번씩 오가는 여행이다. 아르헨티나의 엘찰텐, 엘칼라파테, 모레노빙하를 만나고 칠레의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을 왔다가 다시 아르헨티나의 땅끝 마을을 향해 달려간다. 12시간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고, 마젤란 해협을 웅장한 크기의 배, 파타고니아호를 타고 건넜다. 심한 바람엔 장사 없는 듯 그 큰 배도 휘청대고 약간의 배 멀미도 났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바다건너서 도착한 우수아이아. 우수에 찬 듯 보이던 그 곳. 사람들이 왜 이곳을 지구의 끝. 핀 델 문도(FIN DEL MUNDO)라 했는지 몸으로 와 닿는다. 남극을 제외하고 인간이 모여 사는 최남단 마을인 우수아이아는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아래쪽에 설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항구마을이다. 먼옛날 대항해시대엔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건너가는 많은 배들이 대자연의 재앙 앞에 침몰했다고 전해지는 곳. 마젤란 해협을 바라보며 경사진 언덕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1년 내내 세상의 끝을 느끼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남극으로부터 불과 1000km 떨어진 곳. 핀델문도(땅끝)박물관에는 찰스다윈이 비글 해협을 항해할 때의 항해일지와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으며, 이곳까지 온 수고로움을 치하해주듯 여권에 스탬프도 찍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엽서를 보낼 수 있는 파란 우체통도 마련되어 있다. 장거리버스와 배 멀미로 지쳐있던 나는 한글로 주소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버리고 말았는데,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 엽서를 친구가 받았단다. 대한민국 만세라는 문자가 왔다. 정말 대한민국 만세다.
Travel tip
◆가는 법: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방법은 항공으로 편하게 가는 방법(란항공(http://www.lan.com)과 버스를 타고 육로나 배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시간과 체력을 절약하고자 한다면 항공이 좋겠지만 남미의 어마어마한 대지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2층침대 버스가 의외로 편리하므로 육로이동도 고려해볼만 하다.
◆꼭 방문해야할 주요도시 및 장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엘칼라파데. 엘찰텐, 피츠로이, 페리토모레노빙하, 마젤란해협. 우수아이아, 핀델문도박물관. 칠레 산티아고,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
◆여행적기 및 기온: 파타고니아는 우리와 정반대로 우리가 겨울일때가 그곳의 여름이다. 2월에 방문하면 그곳의 여름에 해당하지만 빙하라고 해서 생각한만큼 춥진 않고 18도 정도의 기온이지만 바람이 부는 토레스델파이네는 파카가 필요할만큼 춥기 때문에 사계절 옷이 다 필요하다.
자두는 대부분의 과일이 그렇듯이 비타민 C가 많고 특히 비타민 A가 많아 눈 건강에도 좋다. 그 외에도 변비 해소, 갈증 해소, 항산화 물질도 많다. 자두의 빨간 껍질에 하얀 분가루 같은 것이 가리고 있으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육즙이 많아 한 입 베어 물면 단물이 흠뻑 나온다.
자두는 여러 종류가 있으나 일단 가장 흔한 자두는 6월 중순에 나오는 ‘대석’이다. 처음에는 알이 작은 것부터 출하되는데 며칠 단위로 크기가 점점 더 커진다. 대석 다음으로는 ‘후무사’가 나온다. 7월 중순에 나오며 대석보다 알이 2배 정도 크다. 값도 비싸다. 육질이 대석보다 단단하지만, 맛도 좋다. 그 외에 ‘피자두’, ‘수박 자두’, ‘추희’ 등 여러 종류의 품종이 있다. 크기도 다르고 출하 시기도 다르다. 당연히 맛도 다르다. 요즘은 저장 기술이 발달하여서 한 여름 내내 자두를 맛볼 수 있다.
필자가 갓 결혼하고 직장에서 전세 버스로 만리포로 첫 여름 여행을 갈 때의 일이다. 용산우체국 앞에 버스가 기다리고 있고 필자는 다른 준비로 바빴다. 아내에게 시장에서 과일을 좀 사 오라고 했더니 참외만 사 온 것이다. 참외는 먹기도 나쁘고 맛도 별로라서 자두를 사와야겠다며 용산시장으로 가서 자두를 있는 대로 모두 샀다. 당시만 해도 냉장 시설이 시원치 않았고 자두도 끝물이라 신선도가 신통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집결 장소에 와보니 버스가 이미 떠난 것이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어 연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감했다. 일단 택시가 더 빠를 거라며 택시를 잡아타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달려갔으나 허탕이었다. 버스도 논스톱이라 이미 지나간 모양이었다. 톨게이트에는 대중교통을 탈 수도 없어 부랴부랴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로 갔다. 만리포까지 가는 고속버스가 없어 만리포와 가장 가까운 홍성까지 갔다. 홍성에서는 에어컨도 없는 시외버스를 타고 만리포까지 가야 했다. 만원 버스라서 앉지도 못하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한 손에는 자두 봉지를 들고 차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니 자두가 다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버릴 수는 없었다. 만리포에서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자두를 꺼내보니 이리저리 부대끼다가 껍질이 다 까진 상태로 죽이 되어 있었다.
지금도 자두 철이 되면 동네 자두 가게 자두를 싹쓸이한다. 그리고 자두의 새콤달콤한 맛을 즐긴다. 얼마 전 중국에 갔을 때 맛본 중국 자두는 맛이 없었다. 가이드도 자두를 무슨 맛으로 먹으려 하느냐며 말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 과일이 당도도 높고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한여름 후쿠오카 날씨는 한국과 다름없다. 35℃를 넘나드는 찜통더위에 10분 만 걸어도 땀이 주르르 흐른다. 모든 곳을 걸어서 이동해야 하는 여행자에게 한여름 여행은 고역이다. 하지만 일본 텐진에서는 더운 날씨에도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다. 지하로만 다녀도 볼거리, 먹거리가 넘쳐난다.
텐진은 지하철 텐진역과 텐진 미나미역, 니시테츠 후쿠오카역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다. 니시테츠 후쿠오카역 위층엔 텐진고속버스터미널도 있다. 또한, 미츠코시, 이와타야, 다이마루 등의 유명 백화점과 파르코, IMS, 솔라리아 등 쇼핑몰이 밀집해 있어 큐슈 최대의 쇼핑가로 손꼽힌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말고도 톱 브랜드부터 100엔 가게까지 19세기 유럽 콘셉트의 상가들이 지하에 들어서 있어 굳이 쇼핑하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백화점과 쇼핑몰 지하에 있는 음식점들도 여행자에겐 흥밋거리다. 전통적인 맛집이나 SNS에서 '핫'한 식당들은 어딜 가나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굳이 지도를 들고 찾아다니지 않아도 텐진에서 이름난 맛집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파르코 지하에 가면 겉만 살짝 익혀 나오는 고기를 뜨거운 철판에 익혀서 먹는 햄버거 스테이크집 ‘키와미야’를 찾을 수 있다. 온종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 여행객들 사이에서도 이름난 맛집으로 가격에 비해 질 좋은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먹어야 한다는 불편한 점이 있다.
햄버거 스테이크 먹으러 갔다가 줄이 너무 길다 싶으면 옆집 ‘테츠나베’를 선택해도 좋다. 야끼만두와 야키소바로 이름난 곳으로 군만두에 생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단품은 430엔, 밥과 약간의 반찬이 포함된 세트는 680엔에 맛볼 수 있다. 겉은 바싹 하고 속은 부드러운 만두는 생각보다 작다. 만두 만으로는 1인분이 훨씬 못 미치는 양이니 배가 출출한 사람은 세트로 시켜먹을 것을 권한다.
파르코 지하에 있는 ‘우오스케’ 식당은 회를 산더미처럼 쌓아 먹을 수 있는 회덮밥 식당이다. 식당 앞에 걸린 사진만으로도 반한다. 대, 중, 소 밥공기를 고르고 계산을 하면 공기에 밥을 담아준다. 그 위에 회를 쌓아 올리면 된다. 예전에 피자헛에서 샐러드를 좀 더 많이 쌓기 위해 갖은 신공을 펼치던 일이 떠오르는 식당이다. 회를 높이 쌓느라 야단법석인 사람들을 보는 것도 유쾌하다.
배불리 먹고 나면 지하상가 끝에 있는 생활잡화점 내추럴 키친에 들러 보자. 식기나 주방용품, 인테리어용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100엔 가게로 가벼운 선물 고르기에 좋다.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에선 현란한 일본 도시락과 식자재를 둘러보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위한 과자 선물 까지 장만하면, 텐진 지하상가에서 완벽한 여름 여행이 완성된다.
자동차의 성능과 고장은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여름철의 더위는 차량에 매우 가혹한 조건이 된다. 차량의 세심한 관리로 성능 저하 및 고장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휴가철 장시간 운전은 운전자뿐만 아니라 차량에도 무리가 간다. 때문에 쾌적한 운행을 위해선 여름철 차량관리가 필수다.
에어컨 관리
차량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는 미세먼지가 증가한다. 그러므로 차량의 바닥의 청결과 에어컨 필터를 정기적으로 교체(대략 2년 정도 혹은 주행거리 1만∼1만5000㎞)한다. 외부 미세먼지 농도가 심할 때는 차량의 순환 공기를 내부로 설정하여 외부 공기의 유입을 차단한다. 에어컨 사용 요령은 시동 후 최대한 Hi 쪽으로 올리고 차량 실내 온도가 내려갔을 때 적정한 곳에 위치시킨다. 운행이 끝나면 에어컨을 끈다. 시동을 걸 때 에어컨이 켜져 있으면 엔진에 무리가 간다. 에어컨 냉매는 에어컨 순환 라인에 이상이 없을 때는 누출이 없으나 순환 라인의 불량으로 냉매가 부족하면 에어컨을 작동시켰을 때 시원하지 않으므로 점검한 후 냉매를 보충한다.
냉각수 점검
엔진 내부에서 연료를 압축해 폭발시킴으로써 힘을 얻어 차량이 운행되기 때문에 많은 열을 발생한다. 그 열을 냉각수와 엔진오일이 엔진 내부를 순환하면서 냉각시켜준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철에는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냉각수 점검사항
1 냉각수 보조 탱크에 냉각수의 양이 Max와 Min 사이에 있어야 한다. 냉각수 보충과 교환은 깨끗한 물(증류수) 혹은 물(증류수)과 부동액을 5:5 정도 비율로 섞는다. 여름철에 물(증류수)만 보충했다면 겨울철에는 부동액만 보충하여 비중을 조절해 준다.
2 냉각수 온도가 갑자기 상승하면 운행정지 후 점검을 한다. 라디에이터 뚜껑을 열고 냉각수 부족 시 보충한다.
3 냉각수가 정상인데 냉각수 온도가 Hi 일 때 냉각팬과 워터펌프, 팬 벨트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점검한다. 냉각팬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퓨즈를 확인하고 퓨즈에 이상이 없다면, 팬 모터나 수온 센서, 수온 조절기 고장이 원인이다.
배터리 점검
여름철에는 에어컨 사용으로 인한 전기소모가 많아진다. 오래 사용했거나 방전된 적이 있는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다면 장거리 여행시 교환한다. 시동이 잘 안 걸린다고 무리하게 키 스위치를 작동시키면 기동 모터가 타는 수가 있으므로 10∼15초 이상 계속 작동시키지 않는다. 배터리 수명은 보통 2.5∼4년 정도이다. 단거리 주행으로 시동을 자주 켰다 껐다 할 경우, 전기적 소모가 많을 땐 수명이 단축된다. 최근에는 내비게이션, 블랙박스 등 전기적 소모가 많으므로 예전보다 배터리 수명이 짧은 편이다.
브레이크 점검
여름철 장거리 운행 전 브레이크 장치를 점검한다. 뜨거운 노면 위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자주 밟으면 브레이크 패드와 라이닝이 가열되어 브레이크 작동이 잘 안 되거나 평상시보다 제동거리가 길어지므로 사고의 위험이 크다. 운전자뿐 아니라 차량도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용품 준비
비가 오면 시야가 좁아져 위험한 상황이 초래하므로 와이퍼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여름 장마철 와이퍼 불량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와이퍼 브러시의 마멸로 유리창을 긁는다거나 잘 닦이지 않으면 여행 전에 브러시를 교환한다. 그 외 비상 퓨즈, 전구류는 물론 사고나 고장에 대비해 삼각대. 플래시도 준비한다.
타이어 점검
장거리 운행 전 타이어의 공기압과 타이어 상태를 확인한다. 적정 공기압은 연료의 절감뿐 아니라 타이어의 수명을 연장한다. 적정 공기압은 타이어 측면과 자동차 운전석 문틀 부에 부착되어 있다. 타이어를 사용한 지 오래되어 타이어 사용 한계가 지났으면 꼭 교환한다. 고속으로 주행 시 사용한계가 지난 타이어는 타이어 펑크 그리고 빗길에 미끄러져 대형 사고를 발생시킨다.
자동차 실내 확인하기
여름철에 차량의 문을 닫았을 때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실내에 발화성 물체를 두지 않도록 한다. 특히 어린아이를 실내에 두고 떠나지 않도록 한다.
나의 운명을 누군가가 알려준다면 인생이 편할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에게 자신의 운명을 점지 받았다. 무녀가 아폴론 신을 대신한다고 철저하게 믿었던 것은 그 시대의 역대 왕들은 물론 소크라테스 등 철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500여 년이 지난 지금, 델포이 마을에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파르나소스 바위산과 올리브 나무가 지천인 첩첩 산골마을 델포이. 아름다운 풍경과 정겨운 주민들은 떠나는 여행객의 옷깃을 자꾸만 부여잡는다.
2500여 년 동안 델포이를 지킨 유적지
델포이(오늘날은 델피로 불린다)는 BC 8~6세기 무렵만 해도 아테네보다 훨씬 번성한 도시였지만 현재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길을 묻지 않아도 “뭘 도와줄까?” 하고 말 걸어오는 정겨운 사람들이 있다. 델포이 여행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 느릿느릿 천천히 돌아다니면 된다. 델포이 마을 주변에는 2500여 년 전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유적지는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산허리를 가르는 도로를 기준으로 위쪽은 신성 지역이고 아래쪽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이 자리한다. 마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은 신성 지역이다.
우선 입구에서 박물관도 함께 볼 수 있는 통합 티켓을 구입한 뒤 고대의 시간이 멈춰버린, 유적지 안으로 들어선다. 아폴론 신전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종교 용품과 생활 용품을 거래했던 아고라(시장), ‘블레우테리온’이라 불리던 델포이 의사당, 여러 도시 국가에서 보내온 보물을 보관해놓았던 보물창고 등 흥미로운 유적들이 부서진 채로 흩어져 있다.
옴파로스에 앉은 여 사제
아폴론 신전 앞에는 ‘대지의 배꼽(옴파로스)’이라는 돌이 있다. 이 돌 밑에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가 ‘델포이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표시한 것이다. 신화에 따르면, 어느 날 제우스는 자신이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들이 다시 만난 곳이 델포이의 파르나소스 산(Parnassos, 2457m) 정상이었다. 제우스는 아들 아폴론을 이곳에 머물게 했다. 아폴론은 파르나소스 산의 코리시안 동굴에 살던 거대한 구렁이 피톤을 죽이고 신탁소(神託所, oracle, 신이 여 사제를 통해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답하는 일)를 열었다.
아폴론 신이 사는 곳이라 알려지면서 델포이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당시 델포이 신탁소는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했다. 아폴론은 신이었기 때문에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여 사제 피티아(Pythia)를 통해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정갈하게 한 뒤 듣고 싶은 내용을 남자 사제에게 말하면 남자 사제가 피티아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피티아는 그 내용을 아폴론 신에게 전달해 답을 받아 다시 전달했다. 신탁비로 펠리노스라 불리는 세금을 받았고, 제단에 동물을 바치도록 했다. 델포이 신탁소에는 왕은 물론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철학자들도 찾아와 무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 리디아의 크리소스 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해서 진 이야기와 소크라테스가 무녀의 말을 듣고 탐구의 길을 떠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렇게 번성하던 신탁소도 서서히 쇠퇴했다. 392년, 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교숭배 금지령을 내리면서 델포이는 역사의 페이지를 마감했다. 문득 생각해본다. 현실에서 신이 미래를 점지해준다면 삶의 갈등이 줄어들까?
델포이 원형극장과 스타디움
아폴론 신전을 지나 보물창고를 거쳐 더 위로 오르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델포이 극장을 만난다. BC 4세기에 건설된 델포이 극장은 35단의 관람석이 있어 5000명이 동시에 음악이나 연극 등을 관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넓은 원형 극장과 부서진 유적들 밑으로 시야가 확 트여 눈이 시원하다. 뒤로는 파르나소스 암산이 턱 버티고 있고,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 밑으로는 울울창창 올리브 나무가 경사진 터를 장악한 풍경이다. 골이 깊어 마치 강이 흐르는 듯한 전경도 장관이다.
극장에서 언덕을 따라 조금 이동하면 온통 침엽수로 둘러싸인 곳에 경기장이 있다. 델포이 제전이 개최되던 경기장이다. 바위를 깎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만든 경기장은 길이가 200m, 폭은 50m에 달한다. 델포이 제전은 아폴론이 구렁이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BC 8세기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시와 음악에 관한 행사를 중심으로 8년마다 개최되던 제전은 AD 582년부터 육상과 말타기 기술, 마차경주 등이 더해지면서 4년마다 열렸다. 델포이 제전의 흔적은 김나지움과 마르마리아 유적지로 남아 있다. 김나지움은 그리스어로 ‘운동하는 곳’이고 마르마리아는 아테나 여신의 신전과 성역이다. 델포이 신탁소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렀던 곳으로, 부서진 아테네 신전과 BC 4세기경에 지어진 원형 건축물인 ‘톨로스’ 등의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특히 톨로스는 현재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 건축물 가운데 가장 독특한 유적으로, 그리스를 소개하는 포스터와 책자에 자주 등장한다.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
노천 유적지를 다 보고 나면 델포이 고고학 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1902년에 개관한 이 박물관에는 델포이 유적지에서 나온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내부 전시관은 기원전으로 시대가 돌아가 있다. 1896년에 발굴된 청동상과 작은 도상들, 아르카이크 시대에서 로마 시대까지 시대별로 그리스의 발전사를 볼 수 있다. 눈여겨볼 것으로는 아르카이크 시대에 만들어진 은판으로 된 황금머리 황소, 낙소스 인의 작품인 스핑크스, 대지의 배꼽이라는 옴파로스, 전차를 모는 청동 마부상,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 무희의 기둥 등이다. 또 마을 안쪽 끝으로 올라가면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1884~1951)와 에바 팔머(1874~1952)의 축제 박물관이 있다. 이들은 1927년, 델포이에서 고대 그리스 비극 공연을 기획했다. 세계 각국의 유명한 극단이 모여 벌인 연극 축제였다. 현재도 7~8월의 휴가철이 되면 음악과 고대 드라마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Travel Data
항공편 그리스 직항편은 없다. 프랑크푸르트, 파리, 로마, 이스탄불, 두바이 등을 경유해 아테네로 가면 된다.
현지 교통 아테네 리오시온(Liossion) 버스터미널에서 델포이로 가는 버스가 1일 2~3회 운행된다.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맛집 정보 고급 식당보다는 일반 식당인 타베르나(Taverna)가 인기다. 카페에서도 피자는 물론 전통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숙박 정보 대부분의 숙소는 가정집을 개조해 만들었다. 조식이 제공된다. 카스탈리아 부티크 호텔, 레토 호텔, 이니오호스 호텔이 상위 순위에 있다. 대부분 4~5만 원 정도면 이용 가능하다.
날씨 정보 그리스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지닌 나라다. 6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평균기온은 25℃ 이상. 7월은 30℃를 웃돈다. 델포이는 첩첩산중이지만 부서진 유적지는 나무가 없는 노천이라서 뜨겁다. 여름옷은 물론 파라솔, 모자는 필수다. 고온이긴 해도 습도가 낮아 불쾌지수는 거의 없는 편.
물가와 화폐 정보 물가는 한국과 비슷하다. 유로 사용.
인터넷 정보 대부분의 식당이나 숙소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시니어 여행 포인트 델포이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번잡스럽게 움직일 필요 없이 천천히 즐기면 된다.
우리 인생을 1막, 2막, 3막으로 나눌 때 각자의 기준이 다르다. 정년까지 일하는 시기를 1막으로 잡는 것은 대부분 비슷하다. 55세에서 60세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거나 봉사하는 시기를 2막으로 잡는다. 60세 이상 70세까지로 본다. 인생 3막은 유유자적하며 사는 시기로 70세 이상부터 죽을 때까지이다.
필자는 인생 1막을 잘 보냈고, 인생 2막에서도 약 20년간 ‘액티브 시니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했다. 봉사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시니어 활동도 열심히 했다. 특히 댄스는 현역 선수로 눈부신 업적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산다는 데에 이젠 좀 지치기도 해서 여러 가지 공직도 다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인생 2막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인생 3막의 시작이다. 이제껏 잘 나가지도 않던 지역 문인협회에도 나가기 시작했다. 별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참석만 해주면 되는 쉬운 일이다. 패키지여행도 자주 다닌다. 그동안 발목을 잡던 댄스 교실도 그래서 접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 어울리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소개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이름을 말한다. 그러나 음향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장소나 잡담하는 사람을 통제하기 어려운 분위기상 잘 안 들리고, 들린다 해도 금방 까먹는다. 현역 때 직장 얘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인생 2막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특기가 있는지 얘기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자는 무엇을 특징적으로 내세울 것인가 고민했다.
인생 2막의 화려했던 활동을 대부분 접고 나니 필자 소개를 할 만한 재료가 빈약해졌다. 온종일 뒷방에 처박혀 있는 ‘뒷방 노인’은 아니고, 아무것도 안하고 놀러 다니는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성의해 보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특기 분야에서 ‘댄스’와 저서 ‘캉캉의 댄스 이야기’라는 책이다. 댄스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분야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이 댄스 하는 사람이다. ‘댄스 강사’에 ‘현역 선수’라고 하면 반응이 요란하다. 춤 솜씨를 보여 달라며 시끄럽다. 더구나 기네스 기록이 될 만한 두꺼운 분량의 4310페이지 책 ‘캉캉의 댄스 이야기’ 저자라고 하면, “설마?” 하며 그 자리에서 바로 스마트 폰 검색을 해본다. “책을 몇 권 냈소!”라고 하기보다 이 책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다. 책 이름이 ‘캉캉의 댄스 이야기’이니 외우기 어려운 실명 대신 ‘캉캉’이라는 닉네임까지 한꺼번에 소개한 셈이다.
사실 댄스는 그만두었지만, 댄스를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패키지여행 때 일찍 호텔에 들어가는 날은 할 일이 없다. 시골이라 호텔 밖에 나가봐야 들판이고 날씨도 안 좋으면 호텔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여름철 유럽은 백야 현상으로 밤늦도록 하늘이 훤하다. 그럴 때 호텔 세미나실을 빌려 댄스 강습을 하는 것이다. 1시간 정도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열심히들 댄스를 하고 나온다.
인생 3막은 남들과 어울리되, 구속력이 없는 모임에 나가는 것이다. 무거운 책임감이 뒤따르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나가면 좋고 안 나가도 좋아야 한다. 패키지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음 여행 때 다시 보는 일도 있지만, 드물다. 그래서 부담이 없는 것이다.
‘랜드 오브 베어스’(2014, 프랑스)는 러시아 극동에 있는 캄차카반도를 배경으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야생 불곰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캄차카반도는 지도(아래 이미지)에서 보다시피 러시아 동쪽에 위치해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가봐야 할 여행지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블라디보스토크와도 멀지 않은 거리다.
영화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고지대 야생의 땅에서 태어난 새끼 곰으로부터 시작된다. 새끼 곰은 태어나 3년간은 어미 곰의 보살핌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한다. 자식을 지켜내고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의 투쟁을 벌이는 어미 곰의 모습은 처절하다.
캄차카반도의 고지대 굴속에서 겨울을 보낸 불곰들은 본능적인 배고픔이 먼저인지, 봄이 돌아옴을 인지하는 감각이 먼저인지 모르지만 봄이 오면 대지를 뚫고 나오는 풀의 새싹들을 찾아 저지대로 이동을 한다. 잡식성인 불곰은 겨울 동안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풀의 새순과 추위를 이겨낸 열매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그러다 여름이 오면, 산란을 위해 북태평양 바다에서 비스트라야 강으로 헤엄쳐오는 연어를 만나게 된다.
연어떼 역시 서생지였던 북태평양바다를 두고 종족번식을 위한 산란지 비스트라야 강으로 목숨을 걸고 헤엄쳐 오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굶주린 불곰들과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이 사투에서 살아남은 연어들만이 산란을 하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불곰들 또한 연어를 포획하여 겨울을 이겨낼 식량으로 섭취하고 새끼들을 생존시켜야 한다. 이에 불곰 무리 사이에서도 적나라한 생존 경쟁이 처절하게 펼쳐진다.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철저히 고독해야 한다. 연어를 잡기 쉬운 길목에서는 경쟁자인 형제나 동료와 함께할 수 없다. 오로지 돌보아야할 새끼 곰만이 곁에 있을 뿐이다.
먹이사슬의 투쟁이 끝난 뒤, 가을이 오면 산란에 성공한 연어는 그곳에서 일생을 마치고 불곰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그들만의 영역인 캄차카반도 고지대로 다시 이동한다.
이렇게 3년을 반복하면 새끼 곰도 성장하여 짝짓기가 가능해진다. 그때가 되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살아온 어미 곰 앞에서 짝짓기를 한다. 새로운 가족을 이루기 위해 어미 곰을 떠남과 동시에 새끼 곰에게도 역시 어미 곰의 숙명이 시작된다.
독립 생명체가 되면 형제조차도 생존경쟁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기 때문에 지구상 몇몇 동물들과 달리 그들에게 영원히 가족공동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처절한 생존투쟁 뒤에 존재하는 것과 영광이란 무엇인지, 어미 곰의 숙명과 그들의 삶의 순환이 처연하기만 하다.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 TV 영화 채널을 돌리다 눈에 들어온 ‘랜드 오브 베어스’. 포스터 속 곰들만 보고는 동화 같은 곰 가족의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린 외손주들에게 추천할 요량으로 보았던 영화는 나에게 참 많은 생각을 안겨 줬다.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 곰...’
생각을 떨치고 외손주들 얼굴을 생각하며 잠을 청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