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었다. 의대 입학을 준비하던 사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의대에 진학한다 해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나야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하루는 남자가 한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6년 후면 난 마흔네 살이 돼! 너무 늦지 않을까?”
“늦는다고? 의대를 다니지 않는다 해도 6년이 지나면 자넨 결국 마흔네 살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스크루지 영감이 떠오른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려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좀 구두쇠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간다. 그래서 반성도 하며 교훈을 얻어 지침으로 삼는다. “그 친구를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어. 처진 어깨 다독여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거였어.” 특히 이 구절을 늘 가슴에 품고 지낸다.
아
야간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시절 통금이 해제된 크리스마스는 젊은이의 가슴에 불을 댕겼다. 통금해제 크리스마스이브 인파에 밀리고 진눈개비에 눌려 아내에게 선물할 우산은 이미 부서져버렸지만 그래도 선물은 선물이었다.
야간통행금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실시되던 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민심회유책으로 해제할 때까지 엄격하게 시행되었다. 위반자는 파출소에 연행되어
세월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마는 크리스마스 날이 예전과 다르게 이렇게 조용하게 변할지는 몰랐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이브는 무조건 교회 가는 날이었다. 교회 가는 목적은 단 하나, 종이봉투 속에 빵과 사탕 몇 개를 담은 선물 봉지를 받고 싶어서다. 그 당시 시골 아이가 크림이 들어 있는 단맛 나는 빵과 알록달록한 사탕과 과자를 얻어먹는다는 것은
글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 knbae24@hanmail.net
2016 병신년(丙申年). 올 한 해 새로운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가 등장했다. 디지털과 컴퓨터, 통신기술의 발달과 1인가구의 증가 등 사회적인 변화 등으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는 2016년 대중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먼저 실감(實感) 콘텐츠의 강세가 뚜렷하
“다시, 다시, 다시!” “그러니까 연습하는 거야. 해남아, 해남아. 연주하다가 틀리잖아? 그럼 다시 해야지 고쳐져. 그냥 지나가면 안 돼!”
학예회(?)를 일주일 앞둔 아현초등학교 졸업생들의 연습실은 시끌벅적했다. 기타와 바이올린, 하모니카 소리와 노래 소리, 키득키득 웃는 소리, 와글와글 수다 떠는 소리에 정신이 없다. 이들 행동과 말투 그리고 동심
크리스천으로 생활한 지 40년이 넘다 보니 크리스마스 하면 교회 성탄절 행사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교회에서 예배드리다가 성탄절에 맞는 성찬식은 의미가 있었다. 성탄절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어서 즐겁게 보냈다. 어릴 적에는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받는 즐거움도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몰래 선물 준 일도 기억이 난다.
1971년 크리스마스이브.
제대 후 복학하고 처음 맞는 성탄절이다. 통행금지도 없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의기투합해 생일을 따져 의형제를 맺은 동갑내기 형과 아우가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각자 장래를 약속한 여인들까지 여섯이서 만났다. 어쩌면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성탄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이른 시간에 만나 함께 온종일 몰려다녔다.
예수님이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언제나 교회로부터 시작한다. 정기적으로 점집을 드나드는 어머니와 굿, 고사 등에 익숙하던 필자가 교회에 다니게 된 것은 미션스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어려서 필자에게 각인된 교회 이미지는 색색으로 물들인 부활절 삶은 달걀과 화사한 크리스마스트리 그리고 함박눈이 쌓인 뾰족한 첨탑의 이미지와 함께 온다.
중3 때 크리스마스도 그렇게 흥청거리
필자가 잘하면 세상살이가 다 잘될 줄 알았다.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필자가 모범을 보이고 반듯하게 살아가면 저절로 식구들이 따라오고 가정은 화목하고 만사는 형통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필자가 정한 룰(rule)대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필자만 외톨이가 되어 있었다. 입을 닫아버린 아내와 반항하는 아이들에게 배신감을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