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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금융 소외? 은행이 쉬워진다
- 평균 수명이 길어지며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는 가운데 시중은행들이 시니어 고객 확보를 위한 서비스 강화에 나서 관심이 집중된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시중은행은 최근 시니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고령층의 눈높이에 맞춘 비대면 방식의 서비스를 출시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은행권의 이 같은 움직임은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오팔 세대’의 등장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958년 전후에 출생해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fe) 세대라 불리는 이들은 전쟁과 혹독한 불경기가 지난 뒤 태어나 사회적·경제적 성장을 이끈 베이비붐 세대가 주축을 이룬다. 경제력을 갖춘 이들은 은행의 주요 고객으로 꼽힌다. 또한 은행들은 고령층 고객 확보를 위해 다양한 금융 교육과 편의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오팔 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니어 세대를 아우르는 고객 확보 전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은행들이 어르신에게 원활한 금융 상담과 거래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는 등 유형별 맞춤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다란 글자와 쉬운말 음성으로 은행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문은 ‘비대면 서비스’ 강화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방식의 금융 상담과 거래가 요구되는 가운데, 방문 거래가 대부분이었던 시니어 고객을 잡기 위해 은행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 스마트 기기 등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을 위한 맞춤 혜택은 이제 은행이 제공하는 필수 서비스가 됐다. 먼저 인터넷뱅킹 이용 시 ‘큰 글씨 뱅킹’ 등을 제공한다. KB국민은행은 저시력자 고객을 위한 큰 글씨 조회와 이체 서비스를 준비했다. 비대면 채널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이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을 때 스마트폰 화면에 ARS 메뉴가 자동으로 표시되는 음성·화면 동시 서비스를 제공한다. 폰뱅킹 자동응답시스템(ARS)도 어르신들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서 느린 속도로 안내한다. 하나은행도 어르신 고객을 위해 큰 글씨와 음성전환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또한 저시력자 고객이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할 때 화면확대 기능버튼을 누르고 큰 글씨 화면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했고, 폰뱅킹 이용 시에도 일반코드표를 1.5배 크기로 제작해 가독성을 높였다. 상품 홍보물의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해 어르신들이 금융상품 전반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히 안내하는 서비스도 준비했다. 우리은행 역시 인터넷뱅킹 이용 시 모든 메뉴화면의 글자를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스마트뱅킹 시에는 큰 글씨로 된 메인 서비스를 적용했다. 또한 폰뱅킹 이용 시 안내멘트 후 버튼 입력까지 충분한 시간(10초)을 주고, 이용빈도가 높은 항목의 주요 메뉴와 업무를 화면을 보면서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모바일 교육부터 전담 직원까지 스마트폰을 활용한 금융 거래가 어려운 어르신을 위한 안내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신한은행은 시니어 고객의 디지털 금융 소외를 막기 위해 모바일 사용설명서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튜브 채널에 송출 중이다. 이 동영상에서는 다양하고 편리한 모바일뱅킹 금융서비스 활용법을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춰 안내한다. 우리은행도 모바일 보안프로그램 설치방법, 보안사고 사례 교육과 파밍, 스미싱 등 신종 금융사기 예방 교육 등 어르신을 위한 안전한 스마트폰 활용법을 알려준다. NH농협은행은 농촌·독거 70세 이상 노년층에 고객행복센터 상담사가 매주 2~3회 전화로 안부 인사와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대응법을 소개한다. 시니어 고객이 부득이하게 은행을 찾아가야 하는 경우 상담과 방문 예약을 할 수 있는 서비스도 마련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어르신 전용 상담전화를 운영한다. 전용번호로 65세 이상 고객이 발신 시 ARS 메뉴선택 없이 바로 상담직원과 연결되는 서비스다. 신한은행은 은퇴상담 예약 전용 콜센터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니어 고객을 대상으로 방문이 편한 시간대와 영업점을 선택해 은퇴상담을 예약하는 전용 콜센터다. 영업점에는 시니어 고객의 빠른 금융 상담과 거래를 위해 전담 직원을 뒀다. 하나은행은 행복동행 금융 창구 담당자를 배치했다. 전 영업점에서 각 1명을 임명해 어르신에 대한 우선 금융 상담과 서비스를 지원한다. 우리은행도 영업점에 고령자 전담 창구를 마련하고 담당 직원을 지정해 운영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디지털 금융 확대에 따라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시니어에 대한 권익보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어르신 고객을 위한 친화적인 금융 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이슈인 만큼, 은행들은 앞으로도 다양한 시니어 서비스를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2020-07-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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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노키오의 새로운 모습 보기, My Dear 피노키오
- My Dear 피노키오展, 아무런 정보 없이 가서 봐도 친근한 전시 제목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말이 진실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래서 정직함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게 했던 이야기 ‘피노키오의 모험’.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콜로디의 동화로 탄생했고 우리에게는 월트 디즈니가 각색하고 제작한 '피노키오의 모험'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더 익숙하다. 착한 목수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를 깎아 만든 피노키오 인형 이야기는 동화나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지금껏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가까운 벗처럼 친숙한 캐릭터인 피노키오를 주제로 한 전시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동안 책이나 영화 등에서 봐왔던 것과는 달리 쉽게 접하지 못했던 관련 희귀 도서나 소품들도 진열되어 있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크다. 특히 국내외 작가들의 독창적인 해석으로 표현한 피노키오 작품 173점도 전시돼 있다. 환하고 밝은 분위기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첫 번째 섹션 '서막: 피노키오의 모험'을 관람할 수 있다. 이 섹션의 작가는 카를로 콜로디.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누구나 유명 작가들의 피노키오의 해석을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플래시 없이 대부분 촬영도 가능하고 군데군데 쉴 수 있는 곳도 마련되어 있다.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영상이나 나무로 설치된 작품과 소소한 소품 전시가 계속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촬영을 할 수 없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 작품 위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나무토막으로부터 학교에 다닐 즈음의 나이로 만들어진 피노키오는, 유아기를 지나며 성장하는 과정 없이 그렇게 곧바로 세상 속으로 던져졌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많은 작가가 피노키오 캐릭터에 집중할 때 피노키오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작품 속에는 피노키오의 성장 스토리가 녹아들어 있다. 마을이나 마을 사람들, 시대적 풍경이 피노키오의 유년기를 떠올리게 했다. 화풍은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소박하고 적막한 골목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앤서니 브라운, 제럴드 맥더멋, 마우리치오 콰렐로 등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션 거장들이 그려낸 개성 넘치는 피노키오를 볼 수 있도록 몇 개의 전시관이 이어져 있다. 국내에서는 민경아, 조민서 작가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독특하고 현대적인 감성으로 우리가 몰랐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풀어놓아 시종일관 흥미롭다.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그림과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영상 역시 재미있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완성도 있는 관람을 시도해 눈길을 끈다. 시간 맞춰 도슨트 해설을 들으면 이해도 쉽고 몰랐던 사실까지 알게 된다. 다양한 콘텐츠로 구성된 복합 전시 'My Dear 피노키오展'이다 전시장에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주부가 유난히 많았다. 피노키오라는 동화적 특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작가 콜로디는 동화를 쓰면서 "어른들은 즐겁게 해 주기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작가들의 동화적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기성세대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준다. 전시장 입구부터 노랑과 분홍, 파랑 등의 밝고 과감한 색감이 압도한다. 그림동화다운 따스하고 서정적인 느낌 속에 푹 파묻혀 작품을 구경하다 보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낄 것이다. 전시기간: 6월 26일~10월 4일 관람시간: 10시~19시(매표 및 입장 마감 오후 6시) 매주 월요일은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입장료: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 원 ★ 그림자 극장: 토․일요일 11:30 / 13:30 / 16:00 (선착순 20명) ★ 도슨트 해설: 화요일~일요일 11:00 / 13:00 / 15:30 / 17:00 ★ 구연동화 : 피노키오의 오리지널 이야기(화요일~금요일 14:30 / 16:30)
- 2020-07-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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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화 안질환 증가, 인공망막 효율향상 가능성 찾아
- 평균수명 증가로 인구구조가 고령화되면서 안질환을 겪는 고령층도 늘고 있다. 특히 안구의 망막 중심부 황반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저하되는 노인성 황반 변성 질환을 호소하는 고령층이 많은데, 국내 연구진이 인공 망막 장치 이식의 효율을 놓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눈길을 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마이크로시스템연구단 임매순 박사팀은 하버드 의과대학의 쉘리 프라이드(Shelley Fried) 교수팀과 공동연구를 통해 망막 질환의 진행 정도에 따른 인공 시각 신경 신호 변화 특성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망막 색소 변성 및 노인성 황반 변성 같은 망막 변성 질환은 망막에 있는 광수용체 세포들을 변성시켜 시력을 잃게 만드는 질병이다. 복잡한 신경 조직인 망막은 치료가 어렵고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이식이나 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망막의 광수용체 세포들은 안구로 들어온 빛을 전기화학적 신경 신호로 바꿔 준다. 망막 변성이 일어나도 광수용체 세포 뒤에서 신경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신경절 세포’들은 살아남는다. 때문에 안구 내에 마이크로 전극을 이식하고 전기적 신호를 보내면 ‘인공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로 동작하는 인공 망막 장치는 망막 변성 질환으로 실명한 환자들의 시력 회복 방법이다. 이 치료법의 한계는 이식받은 환자마다 큰 성능 차이를 보이는데 그 원인을 알지 못해 일반적 적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공 망막 사용자 간의 성능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사람의 망막 색소 변성과 비슷한 양상으로 실명하도록 유전자 조작된 쥐가 실험에 이용됐다. 실험을 통해 각 신경 세포에 동일한 전기 자극을 여러 번 반복했을 때 발생하는 신경 신호가 서로 얼마나 비슷한지 살폈다. 정상 망막에서는 신경 신호가 매우 비슷해 높은 일관성을 보였으나 망막 변성이 진행됨에 따라 일관성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다. 임매순 박사는 “인공 시각장치 이식을 위해서는 망막 변성 진행 정도를 면밀히 살펴 이식 대상 및 시기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변성이 많이 진행된 망막에서도 우수한 인공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 신경 신호 일관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다방면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2020-07-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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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주식투자 한번 해봐?
- 얼마 전부터 지인이 하는 경제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다. 말은 그렇지만 지인 중에 주식 고수가 있어 한 수 배워 주식투자를 해보려는 스터디다. 주식시장에 입문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녀는 처음 한동안은 손실이 많았지만 3년쯤 지나 수익으로 돌아서 요즘은 교사인 남편보다 수입이 많다고 했다. 무턱대고 주식시장에 뛰어들면 대개 손실을 보고 접는다는데 조심조심 따라가면 괜찮겠다 싶어 안심이 된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다른 모임을 통해서다. 4시 이후로 일정을 잡아야 편하다는 그녀의 말에 개인투자자라는 걸 알았다. 장이 열리는 시간에는 모니터에 집중한다는 그녀. 중요하게 외출할 일이 생기면 미리 적정가에 매도 혹은 매수를 걸어둔다고 했다. 심심풀이로 하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는 하나의 직업인 셈이다. 돈 많이 벌었다며 밥을 사준 적도 있다. 현재 스터디 인원은 나를 포함해 다섯이다. 첫날은 경제 관련 영상을 함께 보고 주식투자를 하기 위한 앱 설치를 했다. 알고 보니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미 앱을 통해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제 막 발을 들인 나와 달리 손실 없는 투자를 하기 위해 스터디에 참여했다고 할까. 앱을 열자 말로만 듣던 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숫자들은 저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돈이 일하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수십 년 전 은행을 통해 공모주 청약을 하던 때가 생각났다. 경쟁률이 엄청났던 그 청약에서 배당받았던 한국전력 주식을 중간에 팔아버렸는데 지금까지 갖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주식을 투기로 생각해 그동안 눈길 한 번 안 줬는데 실력이 검증된 지인을 통해 경제 공부를 하면서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주식의 매도 혹은 매수 시점을 안다는 것은 전문가라도 쉽지 않다. 상한가에는 더 오를 것 같아 쥐고 있다가 매도시기를 놓치고, 하한가에는 더 내릴 것 같아 망설이다 보면 다시 상한가로 돌아서 원하는 가격에 사지 못하고 만다. 시기를 모르면 매수하자마자 바로 하락세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스터디를 통해, 일단 주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슈가 되거나 등락폭이 심한 종목을 관심목록에 올려두고 주가 변동을 확인했다. 등락이 큰 이유에 대해 듣다 보니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당 가격 최대 1만 원대의 종목을 선택해 5만 원에서 최대 10만 원어치를 매수하거나 매도해봤다. 분할 매수와 분할 매도 방법도 터득했다. 가격이 오르락내리락해도 큰 액수가 아니라 평정심을 지키며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수업을 위한 것이니 많이 오를 것 같아도 최대 10만 원 단위로 끊어 매수하라고 했다. 주식시장에서 성공하려면 전반적인 경제의 흐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미 가격이 형성된 것보다 미래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종목을 찾아야 하는데 안목을 기르려면 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주린이(주식에 막 입문한 어린이라는 뜻)지만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 노후에 소소한 용돈벌이는 하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을 꿔본다.
- 2020-07-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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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티는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영화
- “숙면 외에 또 다른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인생” 영화 ‘세상의 모든 계절’ 도입부에서 심리상담사 ‘제리’와 불면증과 우울증을 앓는 ‘자넷’이 대화하는 중에 나온 말이다. 자넷은 행복했던 삶의 기억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둠 속에서 사는 60대 언저리의 여자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삶도 소중하게 가꾸지 못하는 현대인의 허기진 영혼을 본다. 이 영화는 현대사회의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문화를 비판해온 영국 감독 ‘마이크 리’가 만든 또 하나의 걸작이다. 영화 제작 당시 60대였던 마이크 리 감독은 같은 60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카메라는 지질학자인 톰과 심리상담사인 제리 부부를 따라가 어느 한 해에 생긴 일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런던에 사는 60대의 노부부 ‘톰과 제리’는 내면의 진실에 귀 기울이며, 주변 사람들을 존중하고 안아주며 살아간다. 톰의 어릴 적 친구 켄은 은퇴 후 닥쳐올 외로움이 두려워 술에 의지해 살아간다. 제리의 친구 메리는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불안과 고독에 휩싸인 채 지내는 불안정한 독신이다. 영화 내용은 이들이 아픔과 결핍을 끌어안고 각자의 안테나로 세상과 관계하면서 만들어내는 삶의 순간들로 채워진다. 생에 대한 어떤 정의나 교과서적인 메시지는 없다. 그저 강약 없이 희미하게 인물들의 살아가는 시간을 나열한다. 인생을 살면서 ‘내 삶’과 ‘내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 사이에 거리 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 영화는 영감을 준다. 메시지 전달의 매개는 주로 대사로 이루어진다. 영화에서는 두 곳의 중요한 공간이 나온다. 한 곳은 ‘톰과 제리’ 부부의 이상적인 삶을 상징해 보여주는 주말농장이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과 계절을 보여주는 장치로도 사용된다. 다른 한 곳은 ‘톰과 제리’의 집이다. 두 사람이 쉬고 위로받고 소통하는 공간이며 삶의 빛과 그림자를 보듬어주는 곳이다. 나아가 타인을 위로하고, 사랑하며, 세상의 모든 길이 막혔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벗이 되어주는 장소다. 영화의 주 무대인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치유의 공간이 된다. 초반부터 긴장하고 보게 만드는 인물은 ‘자넷’이다. 얼굴 표정과 시니컬한 대화 내용이 이 영화를 끌고 갈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처음에 얼굴을 보여준 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넷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강렬했던 자넷의 얼굴 표정은 메리의 신들린 연기로 이어진다. 감독은 메리에게로 바통을 넘기며 그녀가 서사를 끌고 가게 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넷의 표정과 비교되도록 수십 초 동안 정지된 프레임으로 메리의 얼굴을 보여준다. 감독이 의도해서 보여준 메리의 표정 변화와 눈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해석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등장인물들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된다는 데 있다. 메리에게서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그녀의 외로움, 좌절, 질시, 공허는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켄의 이야기에는 아픔과 연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또 상실의 슬픔조차 보이지 않는 로니의 눈길을 보면 살며시 다가가 어깨를 감싸주고 싶어진다. 몇몇 사람들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버티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을 돌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조건 없이 사랑하고, 계약 없이 사랑하고 싶은 작은 꿈이 피어오른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힘이다. 감독 ‘마이크 리’는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배우의 연기력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는 평판이 자자하다. ‘레슬리 맨빌’(메리 역)은 이 영화로 미국과 영국의 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다. 그녀가 두 눈으로 보여주는 연기가 이 영화의 진가를 알렸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끝나고 난 뒤에도 우리 삶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가 특히 그렇다.
- 2020-07-1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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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함께 돌자 지구 한 바퀴
- 등산의 바이블로 통하는 미국의 등산 도서 ‘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의 부제는 ‘산에 자유가 있다’이다. 이 제목을 빌려 필자는 ‘트레킹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트레킹은 등산보다 난이도가 낮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나 아름다운 자연과 교감하며 걸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가. 트레킹을 즐기려면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트레킹이 등산과 다른 점, 건강에 좋은 이유, 철학자들의 트레킹 예찬론, 시니어들이 즐길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아보자.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 언택트 시대에 트레킹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비교적 감염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트레킹은 느리고 고지식한 여행이다. 일반 여행은 차를 타고 여러 관광지를 찍고 다니지만, 트레킹은 온전히 두 발로 길을 여행한다. 속도가 느리기에 길에서 만난 새와 나무, 풀 한 포기와도 친구가 된다. 자연과 호흡하며 걷다 보면 느린 속도에 적응되고,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치유는 트레킹이 은밀하게 건네는 선물이다. 느린 여행, 트레킹의 매혹에 빠지다 트레킹의 사전적 정의는 다소 애매하다. 백과사전에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여행 또는 산과 들과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목적지 없이 바람 따라 떠나는’ 트레킹은 없다. 트레킹은 목적이 뚜렷할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나름대로 트레킹에 대한 정의를 내려봤다. 일반적으로 등산은 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 트레킹은 정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정상을 대신하는 새로운 목적을 찾아야 한다. 산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런 이유로 트레킹의 영역은 무한히 확장된다. 개인 취향에 따라 꽃길, 물길, 단풍길, 눈길, 강길, 섬길, 문학예술, 유적답사 등 다양한 목적과 테마를 잡을 수 있다. 그래서 트레킹은 육체적 행위이며 상상력이 강조되는 정신적 행위다. 트레킹은 걷기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 유산은 인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꾸준히 걸으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쓰여 있다. 우리 선조들은 걷기의 위대함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예방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인간은 걸으면서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발을 다양한 교통수단이 대신하고 있다. 프랑스의 작가 다비드 르 브르통은 자신의 저서 ‘걷기 예찬’을 통해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주장했다. 걷기를 통해 느끼는 행복한 감정은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깨닫는 과정이다. 걷기를 삶의 모토로 삼고 불꽃처럼 살다 간 사람은 19세기 철학자 니체다. 그는 우울증을 걷기로 치유했다. 스위스 엥가딘 고원의 실스마리아(Sils Maria) 마을에 방을 얻어 지내며 호수를 걸었다. 이곳에서 역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탄생했다는 건 널리 알려졌다. 니체는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작품을 걸으면서 완성했다. “앉아서 지내는 삶은 성령을 거스르는 진정한 죄악이다. 걷기를 통해 나오는 생각만이 어떤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어디 니체뿐인가. 칸트, 루소, 디킨스 등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가 걷기를 예찬했다. 시니어 트레커들이 주의해야 할 점 필자는 모험적 트레킹을 즐긴다. 모험은 인간의 피를 뜨겁게 하는 힘이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목표를 이뤘을 때의 느끼는 희열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모험의 목표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체력과 능력에 맞게 정하면 된다. 북한산 또는 지리산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백운대나 천왕봉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면 된다. 북한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완주는 더없이 훌륭한 목표다. 몇 년 전 필자는 오랫동안 꿈꿨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왔다. 포터 없이 홀로 히말라야를 자유롭게 걷자는 목표를 세웠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의 무게와 고산병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도 넘겼지만, 끝내 목표를 달성했다. 이른 아침 맑은 공기를 마시며 병풍처럼 둘러싼 설산을 향해 걸어갈 때 느꼈던 행복함과 충만함은 아직도 깊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산속 어느 로지에서 만난 5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혼자 온 트레커들이었다. 한국, 미국,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국적도 다양했다. 트레킹을 좋아해 세상 구석구석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들과 밤새 수다를 떨었다. 나는 한국의 제주 올레길을 추천했고, 그들에게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러시아 등의 알려지지 않은 코스를 알려줬다. 10년 후에 알래스카에서 만나자는 우리의 두루뭉술한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시니어들이 트레킹을 즐길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체력과 건강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고는 무리하고 얕잡아볼 때 나온다. 자연 앞에서는 겸손하고 솔직해야 한다. 관절이 안 좋으면 스틱을 사용해 무릎이 받는 하중을 줄이는 게 필수다. 스틱은 관절이 받는 하중의 30%를 줄여준다. 트레킹 코스는 무리하게 짜지 말고 여유롭게 움직이는 게 좋다. 걸을 때는 되도록 술을 마시지 말자. 술은 과음을 부르는 법이고, 취하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 술은 걷기를 마치고 마시는 걸 원칙으로 정하자. 트레킹에는 등급이 없다. 걷기를 통해 행복을 즐기는 자가 최고의 트레커다. 지구 한 바퀴의 거리는 약 4만 ㎞다. 하루에 11㎞ 정도를 1년쯤 걸으면 약 4000㎞다. 10년쯤 걸으면 지구 한 바퀴 거리다. 그 과정에서 얻는 건강과 반짝반짝 빛나는 사유는 보너스다. 그렇게 꾸준하게 걷다가 하늘이 부르면 미련 없이 떠나자. 나의 묘비명은 이렇게 쓰이면 좋겠다. ‘열심히 걷는 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진우석 시인이 되다 만 여행작가, 걷기 달인으로 통한다. 학창 시절 지리산 종주를 시작으로 20년 넘게 걸었다. 저서로 ‘대한민국 트레킹 바이블’, ‘해외 트레킹 바이블’ 등이 있다. 현재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두발로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 2020-07-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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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쇼핑 '큰손' 60대 여성… 화요일 밤에 자주 이용
-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주 고객층이 젊은층에서 고령층으로 확산되고 있다. 고령층 중에는 60대 여성의 온라인쇼핑 활동이 두드러졌으며, 화요일 밤에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카드는 최근 온라인마켓 이베이코리아와 함께 운영하는 ‘스마일카드’ 회원 90여 만 명의 올 1분기 이용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1인당 결제금액은 40대 남성과 30대 남성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인당 월간 이용건수는 60대 여성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온라인쇼핑 이용 연령대가 젊은층에서 60대 이상으로까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며 “스마일카드가 온라인 신청만 가능한 기업전용 카드상품인 점을 감안할 때, 온라인에 익숙한 60대 ‘충성 고객’의 활발한 소비성향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20대 회원들의 온라인쇼핑 결제액 증가세도 눈길을 끌었다. 1분기 20대 남성의 스마일카드 결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배 늘었다. 20대 여성은 2.5배 늘면서 전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온라인쇼핑이 가장 활발한 시간대는 ‘화요일 밤’으로 조사됐다. 요일별 사용 금액을 보면 화요일(19%), 월·수요일(17%), 목요일(13%), 금·일요일(12%), 토요일(10%)로 집계됐다. 주말보다 주초에 온라인쇼핑이 더 활발했으며. 특히 화요일 밤 10∼12시가 다른 시간대 이용금액보다 평균 2.7배에 높았다. 카드 회원들은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가공식품과 주방가전을 주로 구매했다. 이들은 가공식품과 건강식품, 노트북·PC, 생활·미용가전, 신선식품, 주방가전, 커피·음료, e쿠폰·상품권 등을 많이 구입했다.
- 2020-07-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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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층 정신질환 10분 만에 선별 가능
- 노년층에게 흔히 나타나는 4가지 정신건강질환을 약 10분 만에 선별할 수 있는 ‘초간단 선별척도’가 개발돼 눈길을 끈다. 최근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창형·손상준 교수, 노현웅 임상강사 연구팀은 노년층에서 흔한 치매, 우울증, 불면증, 화병 총 4개 질환을 한 번에 선별할 수 있는 ‘초간단 선별척도’(BS4MI-Elderly)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이번에 개발한 초간단 선별척도는 치매, 우울증, 불면증, 화병 증상에 대해 각 3문항씩, 그리고 질환의 경과와 기간에 대한 질문 2개를 추가해 총 14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검사시간은 기존 검사들에 비해 약 4분의 1로 줄었지만, 선별 정확도는 우수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노년층 정신건강질환의 특징 중 하나는 치매와 우울증, 화병과 불면증 등 2개 이상의 정신건강질환이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검사 시 어떤 척도가 가장 적절한지 선택이 어려웠다. 또 2개 이상 질환이 의심돼 여러 척도를 시행할 경우 고령 환자들이 긴 검사시간을 힘들어하고, 집중도도 떨어져 오히려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연구팀은 오랜 기간 고령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이런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새로운 척도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지난 12년 동안 수원시 지역사회에서 노인정신건강센터를 운영하며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새로운 검사법을 내놓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단순히 검사 시행에 그치지 않고, 검사 결과에 따라 △정상군(그린 라이트) △고위험군(옐로 라이트) △질환군(레드 라이트) 총 3개 군으로 분류해 실제 지역사회 노인정신건강사업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가운데 증상이 가장 심한 ‘질환군’에 속하는 어르신은 추가 면담을 실시해 보다 정확하게 상태를 확인 후 필요한 경우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정신건강질환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다. 노현웅 임상강사는 “이번에 개발한 초간단 선별척도는 ‘건망증으로 냄비를 10회 이상 태우거나, 비밀번호를 10회 이상 잊어버림’처럼 쉽게 답할 수 있는 내용과 최소한의 문항수로 구성해 어르신들이 검사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2020-07-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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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를 가려내 증오하라
- 임철순 언론인ㆍ전 이투데이 주필 6월 1일에서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는 올해 6회 화봉학술문화상 수상자인 김영복 케이옥션 고문의 ‘서여기인’(書如其人)전이 열렸다. 수상자의 소장 고서 100점을 전시하게 돼 있는 제도에 따라 그가 선보인 것은 추사 글씨와 각종 희귀본 족보 등이다. 당파별로 혼맥(婚脈) 관리를 위해 작성한 ‘잠영보’(簪纓譜)와 혼맥을 정리한 ‘인척보’(姻戚譜), 원수 집안의 목록을 묶은 ‘수혐보’(讐嫌譜) 등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나는 가서 보지 못했지만 뒤늦게 수혐보에 관심을 갖게 돼 좀 알아보았다. 수혐은 원수처럼 미워한다는 말이다. 표지에 ‘수혐록’(讐嫌錄)(필사본 1책)이라고 씌어 있는 이 고서는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원수 집안의 계보를 수록한 책이다. 당쟁과 사화로 피해를 본 가문이 사건의 전말과 배후 인물을 정리해 그 집안과 혼인을 금하는 것은 물론 후손들이 잊지 않게 하려고 제작했다. 노론계 집안에서 만든 듯 남인과 소론계 집안이 거의 수록돼 있다. 오랜 세월 척진 집안을 혐가(嫌家)·수가(讐家)라고 부르면서 대를 이어 혼인은 물론 교류도 하지 못하게 해온 세혐(世嫌)의 원인은 당쟁이나 사화만이 아니었다. 조상을 모욕했다는 시비와 묫자리를 둘러싼 산송(山訟), 학문상의 견해차가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경우 등 다양하다. 기록으로는 남기지 않았지만 구전돼온 ‘블랙리스트’도 있다.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가문의 산송은 1614년에 시작돼 400년 가까이 지난 2006년에야 해결됐다. 여진 정벌에 공을 세운 윤관(尹瓘, ?~1111) 장군의 파주 묘역 바로 뒤에 청송 심씨가 묘를 쓰면서 빚어진 분규는 영조까지 친히 나서 중재하고 귀양 보내고 했으나 해결되지 않았다. 통혼은 물론 교류도 하지 않던 두 문중은 2005년 8월 청송 심씨 종중 묘 19기와 신도비 등을 파평 윤씨 문중이 제공하는 땅으로 이장키로 합의하고, 이듬해 4월 합의 사실을 공개했다. 이들은 합의서에서 “조상을 바로 섬기려는 신념에 의한 것이었으나 세상에는 자칫 곡해될 우려가 있어 대승적인 결정으로 400년간의 갈등을 해소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의 대립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과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회니시비(懷尼是非)에서 비롯됐다. 회니시비는 우암의 집이 회덕(지금의 대전 읍내동)이고 명재의 집이 니성(지금의 논산시 노성면)이어서 생긴 말이다. 당초 사제관계였던 두 사람은 명재가 부탁한 아버지의 묘갈명을 우암이 성의 없이 쓴 데다 고인을 비난하기까지 해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다. 둘의 대립은 급기야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서는 상황으로까지 번졌다. 지금도 두 가문은 불편한 관계인 것 같다. 우암을 송자(宋子)라고 부르면서 거의 성인으로 떠받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노론에 의해 권력을 잃은 남인의 근거지인 경상도에서는 성인은커녕 사람대접도 하지 않았다. 개에게 노론의 영수 우암의 이름을 붙여 ‘시열’이라고 부르며 발로 차고 괴롭히기도 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과 창애(蒼厓)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은 원래 친한 사이였지만, 연암이 창애의 문장을 인정하지 않고 비웃은 데다 1802년에 일어난 포천의 묫자리 분규로 인해 두 집안이 원수가 되고 말았다. 연암의 차남 박종채(朴宗采, 1780~1835)는 아버지의 행장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서 두 집안의 시비는 전적으로 젊었을 때 연암이 창애의 문장을 인정하지 않은 데 앙심을 품은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자는 우리 집안 백대의 원수다[此吾家百世之讐]”라고 써놓았다. 반남 박씨 집안과 기계 유씨 집안은 1871년에야 극적 화해를 했다. 홍문관 대제학이었던 연암의 손자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창애의 5대손인 유길준(兪吉濬, 1856~1914, ‘서유견문’의 저자)을 집으로 불러 화목하게 지내기로 한 것이다. 유길준은 당시 향시(鄕試, 지방 과거시험)에서 장원한 15세 소년이었다. 다른 가문에 대한 수혐은 자기 가문의 정체성과 자존감, 단결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국가·사회적으로는 큰 적폐이며 손실,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붕당정치의 폐해가 얼마나 컸던가. 지금도 증오와 배제의 정치는 여전하지만, 이런 개인들의 사사로운 원한 말고 옳은 것을 위한 의분과 공적 증오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어린 딸이 “국가 원수가 뭐야?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원수야?”라고 묻자 아빠가 “아니, 국가 원수가 아니라 국가의 원수야”라고 대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옳지 않은 일을 거듭 행하고 수치를 모르면서 자리나 탐내며 자기들끼리 공정하지 못한 짓을 자행하는 자들은 사실 다 국가의 원수다. 요즘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잡것들의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 자들과 그런 자들의 행위를 원수처럼 공명정대하게 증오하는 게 필요하다. 청마(靑馬) 유치환(柳致環, 1908~1967)의 시 ‘일월’을 옮겨 읽으며 그의 메시지를 다시 새긴다. 나의 가는 곳 어디나 백일(白日)이 없을쏘냐. 머언 미개(未開)적 유풍(遺風)을 그대로 성신(星辰)과 더불어 잠자고 비와 바람을 더불어 근심하고 나의 생명과 생명에 속한 것을 열애하되 삼가 애련(愛憐)에 빠지지 않음은 그는 치욕임일레라. 나의 원수와 원수에게 아첨하는 자에겐 가장 옳은 증오를 예비하였나니. 마지막 우러른 태양이 두 동공에 해바라기처럼 박힌 채로 내 어느 불의(不意)에 짐승처럼 무찔리기로 오오, 나의 세상의 거룩한 일월(日月)에 또한 무슨 회한인들 남길쏘냐.
- 2020-07-0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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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 기점·소악도 ‘순례자의길’
- 전남은 섬 부자다. 우리나라 3300여 개 섬 중 2165개가 전남에 있다. 그중에서도 신안군에 1004개가 모여 있다. 신안군을 천사 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2019년 10월 신안군 기점·소악도에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개가 지어졌다. 아무 볼 것 없던 섬에 천사의 은총이 내린 듯했다. 갯벌을 건너는 섬티아고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는 병풍도,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병풍도를 뺀 나머지 다섯 섬을 한데 묶어 기점·소악도라 부른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은 노두길로 이어져 있다. 노두길은 섬과 섬 사이를 잇는 길을 말한다.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는 드러난다. 오래전 섬 주민이 갯벌에 돌을 던져넣어 만든 것이다. 지금은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를 덮어 포장했다. 썰물이 되면 노두길이 드러나 기점·소악도가 하나로 이어진다. 서너 시간 뒤 밀물이 찾아오면 노두길이 사라져 다시 다섯 섬이 된다. 자연이 매일 하루에 두 번 이 신비한 마술을 부린다.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다만큼 넓은 갯벌이 나타난다. 바닷물에 말갛게 씻긴 갯벌은 곱디곱다. 짱뚱어, 칠게, 달랑게, 다슬기가 바빠지기 시작한다. 귀여운 갯벌 생물들을 구경하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드넓은 갯벌과 섬 문화인 노두길을 품은 기점·소악도는 2018년 전라남도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었다. 섬마을 가꾸기 사업의 목적으로 한국, 프랑스, 스페인 건축미술가 열한 명이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 열두 개를 지었다. 기점·소악도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인이고, 증도면이 한국 기독교 최초의 여성 순교자인 문준경 전도사와 관련된 것에 착안했다. 열두 개의 아름다운 건축미술 작품을 찾아 걷는 길을 ‘순례자의 길’이라 이름 붙였다. 스페인 산티아고를 본떠 ‘섬티아고’라 부르기도 한다. 한 사람을 위한 작은 예배당 열두 개 예배당은 예배당이라 불리지만 특정 종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누구라도 종교와 상관없이 묵상, 기도, 명상, 쉼을 할 수 있는 휴식처다. 예배당마다 고유번호가 있고, 모양이 모두 다르다. 공통점은 예배당 안에 두 명만 들어가도 꽉 찬다는 것. 1인용 예배당인 듯 작다. 예배당을 지은 작가들은 이곳을 찾은 이들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바랐던 것일까. 순례길을 걸을 때는 보통 번호 순서대로 걷는다. 기점·소악도 중 면적이 가장 넓은 대기점도에 1번부터 5번까지의 예배당이 있다. 순례길은 약 12km다. 부지런히 걸으면 4시간 남짓 걸린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이지만, 걷는 중에 밀물이 되어 노두길이 사라진다면 서너 시간 동안 썰물이 되길 기다리거나 섬에서 하루 묵어야 한다. 순례길을 걷기 전에 배 시간과 물때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 섬 여행을 할 때는 이런 불편함을 오히려 즐긴다. 당일치기가 가능해도 섬에서 하룻밤 묵었을 것이다. 마지막 배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떠나면 섬은 고요해진다. 호젓한 이 시간이야말로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때다. 갯벌 위로 떨어지는 붉은 해, 밤새 섬을 휘감은 회색빛 해무, 푸른 밤 노두길을 비추던 하얀 보름달, 산책길에 동행해주었던 민박집 강아지 복실이가 삼삼하다. 어쩌면 섬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울지도. 걸어도 자전거를 타도 좋을 순례길 원래 계획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려고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대기점도 민박집에서 묵었다. 지나고 보니 더 잘된 일이다. 민박집 음식이 아주 맛있었다. 이번 여행에선 여행 당일 물때와 민박집 위치 등을 고려할 때 순례길을 거꾸로 걷는 게 나았다. 송공항에서 배를 타고 12번 예배당이 있는 소악도에 도착해 순례길을 걸었다. 첫날 여덟 개 예배당을 둘러보고, 이튿날 민박집 근처에 있는 나머지 예배당을 찾아다녔다. 소악도와 모래 해변으로 연결된 딴섬에 12번 ‘가롯 유다의 집’이 있다. 몽쉘미셀의 성당이 연상되는 예쁜 예배당이다. 처마에 순례길 완주를 알리는 종이 달려 있다. 소악도 진섬 솔숲 해변에서 만난 11번 ‘시몬의 집’은 가운데에 통로를 내어 솔숲과 바다를 예배당 안으로 불러왔다.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소악도 둑길 끝에서 찾았다. 프로방스풍의 오두막이 생각나는 예배당이다. 나무문과 스탠드글라스 지붕의 조화가 아름답다. 소악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두길에서 만난 8번 ‘마태오의 집’은 멀리에서도 존재감을 뽐냈다. 갯벌 위에 세운 이 예배당은 러시아 정교회를 닮았다. 양파 모양 지붕이 오후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다. 소기점도 게스트하우스 뒤편 언덕에 있는 7번 ‘토마스의 집’은 흰색 외벽과 파란 나무문이 돋보인다. 바닥에 별과 달 모양의 색유리를 박고, 내부에 손바닥 크기의 성경책을 두어 동화 속 집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소기점도 저수지에서 만난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호루라기 모양이다. 저수지 위에 지어 출입할 수 없었지만, 저수지에 비친 고운 반영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섬마을 이야기를 담은 예배당 소기점도에서 대기점도로 넘어가는 노두길 입구에는 지붕이 요정의 고깔처럼 생긴 5번 ‘행복의 집’이 자리했다. 물고기 비늘 모양의 목재를 하나씩 붙여 지붕을 완성했다. 대기점도 남촌마을 팔각정 근처에는 염소 조각상이 지키는 4번 ‘요한의 집’이 있다. 문 맞은편 벽에 세로 구멍을 뚫어놓았는데, 구멍 사이로 무덤 한 기가 보였다. 이 예배당에는 무덤 주인을 기리는 누군가의 맘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별장처럼 생긴 3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대기점도의 논두렁과 연못을 지나 숲으로 가는 길에 보였다. 문에 거울을 붙여놔 내 모습이 비쳤다. 잠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기점도 북촌마을 언덕에 있는 예배당은 2번 ‘안드레아의 집’이다. 고양이 조각상과 양파 모양의 민트색 지붕이 눈길을 끌었다. 북촌마을에 길고양이가 많아 고양이 조각상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예배당 옆 정자에 오르면 대기점도와 병풍도를 잇는 노두길이 훤히 보인다. 1번 ‘베드로의 집’은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풍의 건물 양식이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렸다. 화장실을 갖춘 유일한 예배당이다. 예배당 위치가 신의 한 수처럼 보였다. 곡선으로 휘어진 방파제 끝에 그림처럼 서 있다. 국내에 이보다 아름다운 선착장이 또 있을까. 1번 예배당에는 순례길의 시작점을 알리는 종이 달려 있다. 여행자들이 이 종을 울리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다. 나는 기점·소악도를 떠나기 전에 순례길 완주를 기념하며 종을 쳤다. 선착장에 따라온 복실이의 배웅을 받으며 배에 탔다. 기점·소악도에 다시 올 때는 복실이가 털갈이를 끝냈기를. ◇ 여행 정보 ◇ 기점·소악도 숙소 민박집이 있으니 잠자리는 걱정 없다. 순례자의 길 중간 지점인 소기점도에는 마을기업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061-246-1245)가 있다. 식당도 함께 운영한다. 코로나19 때문에 문을 열지 않을 수 있으니 반드시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대기점도 북촌마을에는 대기점민박(010-9226-2093), 노두길민박(010-3726-9929) 등이 있다. 대기점민박 주인장의 음식 솜씨와 인심이 매우 좋다. 식사는 생선, 나물, 장아찌, 해산물로 구성한 8000원짜리 백반이 기본이다. 식사 예약은 필수. 건물은 노두길민박이 더 깔끔하다. 교통 신안군 압해도 송공여객선터미널에서 대기점도까지 차도선(천사아일랜드호)이 운항한다. 송공항에서 출발해 당사, 매화, 소악, 소기점, 대기점, 병풍, 소악, 매화, 당사도를 거쳐 송공항으로 돌아간다. 송공항에서 대기점도까지 70분 정도 걸린다. 배 시간은 계절과 물때, 기상 상황에 따라 수시로 바뀌므로 반드시 미리 확인해야 한다. 배 예약: https:// island.haewoon.co.kr / 송공여객선터미널: 전남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 718-64 / 문의 해진해운 061-279-4222 기점·소악도 전기자전거 투어 소악도 선착장과 대기점도 선착장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전기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반납할 때 대여한 곳 또는 반대편 대여소에 반납하면 된다. 이용료는 1일 5000원이며, 반대편 대여소에 반납하면 1만 원이다. 순례길이 대부분 평지 포장도로이므로 자전거로 돌아보기 좋다. 전기자전거로 오르막도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대여 문의: 010-6612-5239
- 2020-07-03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