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 패션부문의 이익이 둔화됐지만 제조부문에서 선방하고 있는 코오롱인더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특히 아라미드(산업자재)는 코오롱인더를 제외하고 큰 규모의 증설이 제한된 상황에서 5G 광케이블, 미국·유럽 신규 방탄 입찰 증가 등 수요 증가로 수급 타이트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 2만5000톤의 생산능력이 추가될 예정이라 투자심리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된다.
◇부정적 변수에도 견조한 이익 실현
코오롱인더의 올 1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36% 증가한 265억 원을 기록했다. 부문별로는 산업자재 152억 원(+210%), 화학 201억 원(+76%), 필름 54억 원(+29%)으로 성장했으나, 패션부분에서 적자 전환을 나타냈다. 코로나19 확산의 부정적인 변수에도 패션을 제외한 제조부문에서 견조한 이익을 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코오롱인더의 이 같은 성과는 △특수필름 판매량 증가에 따른 이익 개선 △타이어코드의 연초 계절적 비수기 영향과 아라미드 이익 흐름 호조 △화학부문 투입 원재료 하락 등의 요인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패션부문은 브랜드 노후화 및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인한 수요 심리 위축으로 적자를 시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스판본드(산업용 부직포) 생산라인을 마스크용 MB-필터 스판본드로 전환하며 공급량 부족에 대응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 2분기 역시 국내외 마스크 수요 증가로 코오롱인더의 스판본드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코오롱인더의 △산업자재 경쟁력 회복 △특수필름 출하량 증가 △자회사 적자 축소를 제시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완화되며 주력 제품 출하량 증가, 특수필름의 안정적 마진 확보를 투자 포인트로 판단했다.
또한 신한금융투자는 코오롱인더가 패션부문 적자 영향으로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 성장한 1773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화학은 경쟁사 진입에 따른 경쟁심화에도 고부가 제품 판매확대에 따라 전년과 유사한 실적을 예상했다.
이진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필름부문의 경우 하반기로 갈수록 CPI 판매 확대가 기대된다”며 “원가 절감효과와 제품 믹스 개선으로 올해 가장 큰 폭의 실적성장을 보여줄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연구원은 “아라미드 실적 모멘텀 등을 감안 시 과도한 저평가 구간이라고 판단한다”고 분석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코오롱인더에 대한 투자의견 ‘매수’를 유지하고, 업종 멀티플 상향 등을 반영해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메리츠증권은 투자의견 ‘매수’와 적정주가 6만2000원을 제시했다. 키움증권은 목표주가 5만6500원을 내놨다. 전 거래일인 지난달 29일 코오롱인더의 주가는 종기기준 3만3200원이다.
애꿎게도 흰머리는 그동안 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처지가(?) 좀 달라졌다. 해외 유명 배우, 모델 등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까지 독보적인 백발 스타일을 소화하며 패션의 일부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노화의 선물이자 시니어의 전유물로서 그야말로 백발이 빛 발하는 시대가 왔다.
# 예수정
나이가 들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배우 예수정. 백발 여배우를 보기 드문 국내에서 그녀의 캐릭터는 단연 독보적이다.
# 테리사 메이(Theresa May)
'옷 잘 입는 정치인’으로 유명한 그녀. 센스 넘치는 패션에 흰 단발이 카리스마를 더한다.
#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
CNN의 간판 앵커인 그의 백발은 냉철한 저널리스트의 면모와 중후한 멋을 동시에 살려준다.
# 야스미나 로시(Yasmina Rossi)
새하얀 장발과 비키니 몸매로 주목받은 모델 야스미나 로시. 그녀의 긴 백발은 마치 여신의 머릿결처럼 신비롭다.
# 박호산
40대 후반의 배우 박호산은 다소 이른 나이에(?) 무성하게 흰머리가 났지만 염색 없이 당당히 백발을 드러내며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사라 제인 애덤스 (Sarah Jane Adams)
보석 디자이너 사라 제인 애덤스는 개성 넘치는 패션 감각을 뽐내며 SNS 스타로 등극했다. 그녀의 백발이야말로 최고의 패션 액세서리다.
# 메이 머스크(Maye Musk)
‘테슬라’의 CEO 엘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70대 현역 모델인 메이 머스크. 트렌디한 그녀의 스타일링에 백발은 훌륭한 패션 아이템이다.
# 박정자
원로배우 박정자는 오는 2월에 개막하는 ‘노래처럼 말해줘’의 포스터에서 고혹적인 백발을 드러냈다. 하얗게 쌓인 세월의 흔적만큼 농익은 연기를 펼칠 예정이다.
# 제이미 리 커티스(Jamie Lee Curtis)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할로윈’ 시리즈의 히로인 제이미 리 커티스. 그녀의 쇼트 백발은 중성적인 매력과 당찬 여배우의 카리스마를 잘 보여준다.
# 팀 쿡(Tim Cook)
‘애플’의 CEO 팀 쿡은 전 CEO 스티브 잡스 못지않은 경영 철학과 유연한 리더십으로 주목받고 있다. 캐주얼한 차림에 어울리는 짧은 은발이 인상적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Christine Lagarde)
국제통화기금의 첫 여성 총재 타이틀에 이어 현재 유럽중앙은행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세련된 정장과 스카프, 우아한 은발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 조성하
‘꽃중년’ 배우 조성하는 OCN 드라마 ‘구해줘’에서 백발로 변신했다. 본래 흰머리는 아니지만 탈색한 백발 스타일링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였다.
# 배디 윙클(Baddie Winkle)
비비드 컬러의 의상을 즐기는 1928년생 패셔니스타 배디 윙클. 그녀의 새하얀 머리칼은 알록달록한 패션 속 더욱 돋보인다.
# 에이든 쇼우(Aiden Shaw)
백발과 더불어 풍성한 흰 수염으로 중후한 남성미를 자아내는 에이든 쇼우. 젊은이들은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로 패션 업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국의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Paul Smith)는 “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명품 옷이든 구제 옷이든, 입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서 옷의 진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니어는 노화에 따른 심리적, 신체적 변화로 자꾸만 움츠리게 된다. 게다가 대부분의 옷들이 스타일보다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어 미적 요소가 결여된 의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더는 걱정하지 말라. 기능과 스타일까지 살린 세계의 패션 브랜드와 아이템을 소개한다.
시니어숍, 집 앞에서 편안한 쇼핑을
온라인 쇼핑몰은 집에서 간편하게 옷을 주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거나 익숙지 않은 시니어에겐 곤욕이다.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날, 당신의 집 앞에 의류 매장이 직접 찾아온다면? 먼 곳에 있는 의류 매장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에서 옷을 고르고 입어보며 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상상 속 이야기처럼 생각되겠지만 실제로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 바로 스웨덴의 ‘시니어숍(Senior Shop)’이다.
시니어숍은 1996년, 스웨덴 헬싱보리 오픈을 시작으로 유럽 6개국에서 60개 이상의 이동식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고품질의 편안하고 세련된 의류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방문 신청은 무료이며 방문 당일 바로 구매할 수 있는 1000여 가지 옷이 준비되어 있다. 사이즈도 S에서부터 3XL까지 다양하다. 20m 이상의 전시대와 거울, 직접 입어볼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어 여느 옷가게 못지않다. 요청에 따라 패션쇼를 기획하기도 한다. 편안한 쇼핑과 이색 이벤트로 시니어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는 시니어숍은 현재 북유럽 국가 전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담토모코, 굽은 허리도 우아하게
일본의 고령 여성복 브랜드 ‘마담토모코(マダムトモコ)’는 등이 굽은 여성 시니어가 편안함과 옷맵시를 모두 살릴 수 있는 옷을 만들었다. 상체가 구부러진 사람이 입어도 등 쪽의 옷감이 당겨져 올라가지 않도록 주름을 넣어 조정한 상의와 하의를 개발한 것이다. 최숙희 교수(한양사이버대학교 시니어비지니스학과)가 쓴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칼럼에 따르면, 이 제조법은 특허를 받은 공법으로 편안함은 물론, 굽은 등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자랑한다. 허리가 맞지 않는 옷 수선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담토모코는 계절에 따라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꾸준한 노력을 통해 일본에서만 2만 명 가까이 되는 두터운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치코스, 중년 여성의 개성을 살리는 패션
치코스(Chico’s)는 미국 중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의류 및 패션 아이템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600개 이상의 매장과 121개의 아울렛 매장을 운영 중이다. 물론 온라인 쇼핑도 가능하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의류 가격을 한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치코스의 경영 철학은 여성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감과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기계 세탁이 가능하고, 뒤집어 입을 수도 있고, 더 부드러운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옷의 기능에 대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치코스의 매력은 개인 스타일리스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데에도 있다. 비용은 무료이며 전화상담도 가능하고, 매장을 방문해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쇼핑을 즐길 수도 있다. 홈페이지에선 연중무휴 24시간 상담도 가능하다.
노화의 상징 NO, 패션 아이템 YES!
지팡이는 거동이 불편한 시니어에게 없어선 안 되는 도구다. 하지만 의료용 기구로 인식되고, 신체적 결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기에 사용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 ‘옴후(OMHU)’는 이런 시니어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지팡이를 개발했다. 덴마크어로 ‘아주 조심스럽게’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테일한 미적 감각을 자랑하는 패션 지팡이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제품은 견고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충격에 강하고, 손잡이는 감촉이 부드러운 나무를 사용해 오래 쥐어도 불편함이 없다. 또한 손잡이 부분에 미끄럼 방지 처리를 해 벽에 세워둬도 넘어지지 않는다. 길이가 3가지 종류로 나눠져 있고 색상도 6가지나 돼 소비자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미국의 ‘엘더럭스(Elderluxe)’도 다양한 디자인의 지팡이를 판매하고 있다. 가죽 지팡이, 스와로브스키 보석이 박힌 지팡이, 접이식 여행 지팡이 등 252개의 지팡이를 만나볼 수 있다.
국내에도 시니어를 위한 특별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 바로 주얼리 돋보기를 제작해 판매하는 ‘이플루비(efluvi)’다. ‘efluvi’라는 회사 이름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고자 스페인어 ‘efluvio(자연의 향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일반 돋보기는 굴절이 심해 오래 사용하면 어지럼증과 두통을 겪지만 이플루비의 돋보기 렌즈는 왜곡이 없는 독일 칼자이스 광학렌즈를 사용해 이러한 불편함을 없앴다. 또 목걸이형 손잡이형, 문진형 돋보기를 직접 디자인해 휴대성과 심미성을 높였다. 주얼리 돋보기 외에도 브로치, 안경줄 등 시니어를 겨냥한 세련된 패션 아이템도 많다.
4)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1954~1992년)
화가, 사진작가, 영화제작자, 공연예술가, 에이즈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가족에게 정신적,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에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했다.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했고 샌프란시스코와 파리에서 몇 달간 살다가 1978년에 이스트 빌리지에 정착했다.
이스트 빌리지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첫 멤버로 1980년대 초에 시빌리안 워페어, 클럽 57, 그레이시 맨션, 패션 모다, 림보 라운지 같은 전설적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1985년에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청되어 ‘그라피티 쇼’를 했고, 미국을 포함한 유럽 등지에 그의 작품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38세에 에이즈로 사망했는데, 투병 중에도 도발적인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었다.
5) 쳉 퀑 치(Tseng Kwong Chi, 1950~1990년)
홍콩에서 태어나 16세에 캐나다로 이주했다. 파리 명문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1년 공부한 후 사진으로 전공을 바꿨다.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해 에이즈로 40세에 사망하기까지 이스트 빌리지에 거주하며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키스 해링의 ‘절친’인 그는 해링의 부탁으로 4만 장의 ‘키스 해링 아카이브’를 제작했다.
챙 퀑 치는 뉴욕에서 경험한 다민족주의, 대량 소비문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애매모호한 외교관’을 예술적 페르소나로 설정해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작업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작업한 ‘서양과 만난 동양’ 또는 ‘탐험 연작’은 서양이 아시아에 품는 순진무구한 선입견과 무지를 조롱하고, 서구라는 근대적 구성물이 동양과 어떤 연관 속에 구성되는지, 서구라는 상상 개념이 상징 지위를 확립하기 위해 어떻게 동양을 신비화하고 배제했는지를 묻는다. 챙 퀑 치는 중국인임을 적극 강조했지만 중국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다.
6)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년)
‘뉴욕타임스’는 바스키아를 가리켜 “흑인으로서 최초로 성공한 천재 아티스트, 검은 피카소”라 표현했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과 함께 3대 팝 아티스트로 불리며, 한때 마돈나의 연인으로도 유명했다. 1980년대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자신을 인정해줬던 앤디 워홀 사망 후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27세에 짧은 생을 마감했다.
바스키아는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여 어머니가 미술 전문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7세 때 어머니의 우울증으로 인해 부모가 이혼하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15세 때부터 가출을 반복하며 거리 생활을 했다. 뉴욕 거리와 지하철에 낙서화를 하며 이스트 빌리지의 신표현주의 경향을 주도했다.
노숙자들과 공원 벤치에서 숙식하고 구걸하고 마약을 거래했다. 작업 초창기에 손으로 그린 엽서와 티셔츠를 뉴욕 거리와 상점에서 1~3달러에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명성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7장의 엽서 시리즈 ‘무제(안티프로덕트 엽서)’는 이 시기의 작품이다. 바스키아의 엽서 시리즈는 앤디 워홀이 구매했는데, 당시 워홀과 함께 있던 뉴욕현대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엽서를 사지 않았다가, 훗날 바스키아에게 그림을 달라고 애걸하는 처지가 됐다고 한다.
7) 버스터 클리브랜드(Buster Cleveland, 1947~1998년)
소호 거리에서 우표 크기의 콜라주 작품을 판매하다 리무진을 빌려 소호 거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리무진 쇼’를 열어 유명해졌다. 가난과 무명이 창조력을 발휘한 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앤디 워홀의 영향을 받아 장난감, 자동차 후드 장식품 등 일상 재료를 이용한 콜라주 작품을 우편으로 보낸 ‘메일아트’가 그것이다. 메일아트는 가난한 예술가가 기성 제도권 전시 공간인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벗어나 대안 네트워크 공간에서 대중과 소통하면서 작품을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이자, 국가나 기관으로부터의 검열을 피할 수 있었던 방식이기도 했다.
그가 애용한 재료는 미술잡지 ‘아트포럼’ 표지였다. 또 벼룩시장에서 싼값으로 구매한 제품들,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 이스트 빌리지 작가들 사진, 담뱃갑, 거리에서 주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은 재료 특성에 따라 변주됐는데, 누구든 월 구독료 100달러 혹은 평생구독료 1000달러를 내면 우편으로 그의 작품 ‘Art For Um’을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전시장은 월요일 휴관한다. 현대미술은 도슨트 설명 없이는 온전한 이해가 어렵다. 도슨트 해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확인하고 가길 권한다.
‘이스트 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전시기간: 2018년 12월 13일~2019년2월24일)
‘반항의 거리, 뉴욕’(전시기간: 2018년 12월 21일~2019년 3월 20일)
‘키스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전시기간: 2018년 11월 24일~2019년 3월 17일)
‘케니 샤프, 수퍼 팝 유니버스‘(전시기간: 2018년10월 3일~2019년 3월 3일)
새로운 다짐과 희망으로 가득한 1월 한 해를 시작하며 읽을 만한 신간을 소개한다.
◇ 딸기색 립스틱을 바른 에이코 할머니 (가도노 에이코 저ㆍ지식여행)
30년 넘게 전 세계인에게 회자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의 원작자인 아동작가 가도노 에이코의 에세이다. 2018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국제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그녀는 여든이 넘은 현재까지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책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인생을 살기 위한 에이코 할머니만의 비법들을 담았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빛나는 자신만의 멋과 철학, 나이가 들어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패션, 오랜 세월 즐겨온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그릇들, 딸기색 벽을 가득 채운 수많은 책 등 그녀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 마흔 이후 빨간색 옷이 잘 어울린다는 칭찬 한마디에 ‘딸기색’을 자신만의 색깔로 삼은 저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예쁘게 꾸미고 싶은 마음을 간직한 채 매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옷장 속을 살피고 싶다”며 아름다운 삶의 비결과 꾸미는 즐거움에 대해 말한다.
◇ 같이 읽고 함께 살다 (장은수 저ㆍ느티나무책방)
10대 여고생부터 80대 할머니까지, 함께 책을 읽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30년 넘게 맥을 이어온 ‘할머니 독서모임’, 귀촌자가 모여 만든 ‘남원북클럽’ 등 저자는 전국 독서공동체 24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기록했다.
◇ 비가 와도 꽃은 피듯이 (노신화 저ㆍ포레스트북스)
말기 암과 치매를 앓는 시한부 아버지와 그 곁을 지키는 딸의 마지막 76일을 그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가족의 질병이 갈등과 붕괴가 아닌 치유와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저ㆍ다산책방)
‘뉴욕타임스’, ‘가디언’이 추천하고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유럽 소설의 새로운 목소리’로 주목받는 톰 말름퀴스트의 소설. 갑작스러운 아내의 죽음으로 평범한 일상이 파괴된 한 남자의 비극을 담담하고 직설적으로 풀어냈다.
◇ 왕초보 책과 글쓰기 도전 (가재산 외 공저ㆍ노드미디어)
100세 시대를 맞아 시니어들이 쉽게 도전해볼 수 있는 책과 글쓰기 방법에 대해 정리했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자료를 수집하고, 문서를 정리하는 등 글쓰기에 효율적인 스마트폰 활용 노하우를 친절하게 소개한다.
5월 5일 저녁 7시 삼성역 코엑스 D홀에서 2018 제13회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이 열렸다. 각종 미디어 업체의 촬영 팀들과 패션 업체의 관계자들, 일반 관객들로 인해 행사장은 열기로 넘쳤다.
'문명의 꽃' 최첨단 디지털 세상에서는 무대를 꾸미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재원이 필요하지 않았다. 컴퓨터만 있으면 해결되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처리한 배경화면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커다란 건물 어디에 내가 찾는 장소가 있을까? 코엑스 갈 때마다 헤맨다. 그러기에 코엑스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나가야만 한다.
D홀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큰 키에 킬 힐을 신고서 몸매가 젓가락 수준의 모델들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헤맬 일이 없었다. 그들만 쫓아가면 되니까. 유럽에서는 깡마른 모델들을 퇴출한다고 하는데 아시아는 아직 아닌가보다. 모델과 발레리나들은 옷맵시는 나는데 가까이서 보면 그녀들의 몸매는 볼륨감이 없이 밋밋하다. 불쌍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그녀들은 거의 샐러드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엄격하게 절식을 한다고 하였다. 발레리나들은 무거우면 '파드데'를 출 때 파트너인 발레리노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고 모델들은 옷맵시에 목숨을 거니 이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60여 개 아시아 국가의 모델들이 각기 자기 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했다. 나라마다 고유의 색깔과 디자인이 아름다웠다. 다채로운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은 모델들이 한껏 옷맵시를 뽐내고 있었다. 연예인과 모델들은 끼를 타고나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끼는 관객들에게 훨씬 커다란 즐거움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인도 사람들은 의상에 엄청 신경을 쓰는 듯하다. 그들은 대체로 화려한 색상의 실크 의상을 즐겨 입는다. 색감이 가장 발달한 나라가 이태리인데 인도 사람들의 색감도 장난이 아니다. 인도 의상이 가장 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보는 것도 배우는 것이다. 시니어 모델로서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눈여겨 보았다. 젊은 모델들은 몸매가 아름다워서 옷맵시가 훌륭했다. 모델 조건이 느슨한 아마추어 시니어 모델들과는 확실히 차별화가 되었다.
성인이나 현자들이 하나같이 사막이나 황야를 찾아간 것은 그곳이 ‘비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비어 있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많은 사람이 해오는 질문 중 하나는 가봤던 여행지 중 한 곳만 추천한다면 어디를 꼽겠느냐는 것이다. 장소마다 느낌이 다른데 그런 데가 어디 있냐며 웃어넘겼지만 결국 꼽은 곳은 모로코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진기한 것들로 가득한 곳. 정비된 수도 라바트와 천년 미로의 도시 페스, ‘본 아이덴티티’를 비롯해 온갖 영화의 배경이 된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들이 있는 항구도시 탕헤르, 이름만 들어도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낭만 가득한 카사블랑카도 좋지만 역시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야시장이 열리는 마라케시와 별이 쏟아지는 사하라 사막의 야영이라 하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대고 며칠간 제대로 씻을 수도 없지만 밤이 되면 500만 개, 아니 5000만 개의 별을 이불 삼아 잘 수 있는 곳. 사하라 사막의 하룻밤은 세상 어느 5성급 호텔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모로코의 심장, 마라케시
카사블랑카를 지나 기차를 타고 모로코의 심장이라 불리는 마라케시(Marrakesh)로 간다. 밤이면 세상에서 가장 큰 포장마차촌이 펼쳐지는 제마엘프나(Djemaa el-Fna) 광장과 미로로 된 장터 수크(souq)가 있는 곳. 가게마다 손님을 불러 세우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 안 사도 좋으니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말을 걸지만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이곳에선 귀찮지 않다. 모로코 사람들 특유의 유머와 밝음 때문이다.
이곳에선 반드시 흥정을 해야 한다. 함께 여행한 유럽 친구들은 평소엔 콧대 높게 굴다가도 수크에 갈 때면 한껏 낮은 자세로 함께 가줄 것을 청했는데 그들에겐 흥정 문화가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단 80%는 후려치고 들어가며 흥정하는 내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난 마치 묘기라도 부린 듯 으쓱해진다. 그들은 왜 정찰제가 아니냐고 투덜대지만 이런 맛이 있어야 장터이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아 민트차를 마신다. 제대로 씻지 않은 민트 잎에 뜨거운 물만 부었는지 흙이 우적우적 씹힌다. 포장마차가 열리기 전 낮의 빈 광장에선 세상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진기한 묘기를 볼 수 있다. 젤라바(모로코 전통의상)를 입고 춤을 추는 마라케시의 명물 물장수를 비롯해서 뱀 부리는 사람, 약 파는 사람, 헤나 타투를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수백만 명이 들끓는 광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보는 것 같다. 저녁 무렵이 되니 목욕탕도 아닌데 거대한 광장에 일제히 연기가 피어오른다. 낮 동안 비어 있던 광장이 거대한 포장마차촌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다닥다닥 붙은 포장마차에서 타진, 하리라, 쿠스쿠스, 케밥, 에스카르고 등 갖가지 산해진미에 취해본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 여행이 시작되는 므하미드로!
마라케시에서 뭉친 일행은 미니버스를 타고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 사막 캠프가 있는 므하미드(M’hamid)로 향했다. 베르베르족들의 터전이기도 한 므하미드 사막 캠프의 숙소는 진흙으로 된 카스바다. 카스바라니? 가요에서나 듣던 카스바가 정말 존재한다는 말인가? ‘카스바(casbah)’는 ‘요새’라는 뜻으로 주로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도시의 방어를 위해 시가지의 일부 또는 그 외곽에 세워지는 성을 말한다. 붉은 사막 한가운데 미로처럼 붙어 있는 성안에 있는 집에서 민트차를 마셨다. 므하미드엔 사막 캠프가 여러 개 있다. 혼자서 온 여행객도 이곳에서 사막 투어를 예약하면 안내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럴 경우 차 한 대와 부대비용을 혼자서 다 감당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이 있다. 사막 투어는 혹시 모를 위험도 있어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함께하는 것이 재미도 있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사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3대의 지프차에 나눠 타고 자동차 경주대회인 다카르 랠리가 열리는 길을 따라 에르그 시가가(Erg Chigaga)로 들어갔다. 열린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용광로처럼 뜨겁다. 모로칸들은 머리엔 터번을 쓰고 젤라바라 부르는 긴 가운 같은 것을 입는데, 패션이라기보다는 이곳의 기후에 최적화된 의상이다. 어느 나라의 패션이든 그렇게 입고 다니는 이유가 다 있다. 사막에서 하는 스카프는 장식용이 아닌 것이다. 모래바람을 막아주고, 살을 몽땅 태워버릴 듯한 50℃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주는 필수품 중의 필수품이다.
사막 중의 사막, 사하라!
사막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붉은 모래사막을 떠올리지만 흰색과 핑크색의 소금사막부터 잡초가 자라는 사비나 사막, 이집트의 흑사막과 백사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막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사막 중 사하라(Sahara)만 한 게 있을까. ‘사흐라(Sahra, 불모지)’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사하라는 사막 중 가장 규모가 큰 사막으로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비롯해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걸쳐 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끝없이 굴곡을 달리하는 사하라의 듄(Dune, 모래언덕)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막의 이미지는 바로 사하라다. 낮 동안 달궈진 사막은 걸어 다니기가 힘들지만 이른 아침의 사막은 밤 동안 식어 맨발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때 발끝에 느껴지는 시원한 감촉은 두고두고 기억될 만큼 감미롭다. 인간의 기억 중 가장 오래가는 감각이 촉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해가 지자 사막은 변화무쌍하게 변했고 곧 밤이 찾아왔다. 모로코 전통의상 젤라바를 두른 사막 캠프 주인 하산과 운전기사는 음악을 크게 틀더니 “밥 먹으러들 내려와~” 하며 손짓했다. 언제나 유쾌한 모로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 짓게 하는 매력덩어리들이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에서 즐기는 야영
사막 야영을 갈 때는 운전사와 요리사가 함께 간다. 일행이 사막을 보며 광분하는 동안 그들은 텐트를 치고, 저녁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한다. 사하라 사막의 밤, 전갈이 있다 해서 높은 매트리스를 깔았다. 무수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이 지붕이다. 새벽 무렵 사막을 덮어버릴 듯 쏟아져 내리던 별들. 그 향연을 잊을 수 없다. 낮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모래 위에 발을 얹어본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 밤새 식어버린 곱디고운 사하라 사막의 모래 위를 맨발로 걸어 아름다운 듄에 호젓하게 올라본다. 최고의 명상이란 바로 이 순간이 아닐까. 고요함 속에서 붉은색 모래 평원을 보니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하다. 가늘고 긴 모래가 발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달콤한 오르가슴이다. 겹겹이 쌓인 산맥처럼 듄과 듄 사이를 너머 시야를 넓히니 멀리서 부지런한 이탈리아 친구가 벌써 산책 중이다. 모래 위에서 잠을 자던 운전기사 모하메드와 요리사 알리도 어느새 일어나 메카를 향해 절을 올리고 있다.
검은 옷의 카스바 여인!
사막을 나와 낙타를 타고 카스바 마을을 지나는데 단체로 어디를 다녀오는지 검은 옷을 입은 카스바 여인들이 지나간다. “살람 알레이쿰(당신에게 알라의 평화를)!” 하고 인사를 하니 “봉주르~” 하고 답한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은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프랑스어를 공용어처럼 사용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로코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에사우이라 등지에 별장을 사두고 바캉스 시즌이 오면 차를 몰고 온 가족이 내려와 한 달간 머물다 돌아가곤 한다. 사막에서 돌아온 밤, 숙소에서 생존을 축하하며(?) 하산이 열어준 모로칸식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마치 현실의 시간이 아닌 듯 몽롱했다. “별밤에 더워서 잠도 안 오는데, 이렇게 공연을 보며 놀지 뭐.” 멋쟁이 프랑스 언니 오빠는 흥에 겨운 듯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렇게 아름다운 밤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Travel tips
■항공편
인천공항에서 카사블랑카까지 직항이 있으며, 여기서 기차로 이동하면 된다.
■ 추천 숙소 및 카페/ Hotel & Guest House
Marrakech 추천숙소: Hotel Ryad Mogador(tel: 024-43-8646)
Earth cafe website: www.earthcafemarrakech.com
매혹적이다. 그러나 불편하다. 이 찰나의 간극 속에 그의 ‘붉은 산수’가 있다. 하고많은 색깔 다 놔두고 하필 붉은 풍경이라니… 어디서도 마주친 적 없는 역설이다. 사람들은 그의 ‘산수’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디스토피아를 본다. 그가 장치한 은유와 비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탐을 내는 작가 이세현(李世賢·51). 이탈리아 유명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가 러브콜을 보내고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가 그를 만나러 영국까지 날아갔다. 붉은색을 화두로 삼은 뒤의 이야기다.
그는 파주 출판단지에 자리한 로우 갤러리(Raw Gallery)에서 보자 했다. 후배들을 위해 자신의 작업실 한쪽에 마련한 비영리 문화공간.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냥 놀이터다. 오후의 햇살을 잔뜩 빨아들이고 있는 ‘RAW’라는 글자가 문패처럼 달려 있었으므로 헤맬 일은 없었다. 저 ‘날것(raw)’의 의미는 그의 ‘붉은색(red)’과 또 어떤 방식으로 한바탕 내통하는 걸까. 느닷없는 상상을 하며 갤러리 안으로 들어섰다.
‘붉은 산수’와 맞닥트렸을 때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인지 꼼짝없이 포위당한 느낌이었다. 매혹적이었지만 속수무책의 버거움도 몰려왔다. 그것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과 두려움이었다. 잠시라도 놓여나기를 바라는 사이 이세현 작가가 나타났다. 그를 따라 작업실로 들어갔다. 화가들이 붓질하는 공간이 대개 그러하듯 캔버스와 수백 장의 밑그림, 물감, 붓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그가 데려온 자연이 ‘붉은 산수’로 다시 태어나는 방이었다.
‘비트윈 레드(Between Red)’라는 제목으로 ‘붉은 산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영국 유학 시절이다. 2004년, 서른아홉에 유학을 떠났다. 꽤 늦은 나이였다. 무엇이 그를 충동질했을까.
“20대에는 학원 강사로 지냈고, 30대에는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작업도 하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회화, 설치미술,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실험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작품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한 무명작가였죠. 그러다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건 그림인데, 그래서 하기 싫은 일도 하는데,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가혹하게 물었습니다. 예술가 흉내나 내면서 적당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결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타성에 젖은 나날이었다고 표현했지만 그는 자신과 끊임없이 불화한 듯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청산하듯 전세금 뺀 돈 6000만 원을 쥐고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친 듯 그림만 그려보고 싶어서였다.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그림
영국에 도착해 런던 첼시디자인아트컬리지에 입학했다.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그만큼 간절했을 유학생활. 하지만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다.
“입학하자마자 영국 학생들 앞에서 내 작품을 슬라이드로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눌한 영어로 들뢰즈의 철학을 들먹이고 라캉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내 모습에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러웠어요. 반대로 생각해봐요. 서양 학생이 동양 학생들 앞에서 공자 왈, 맹자 왈 하면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릴 하는 건지 우습지 않겠어요? 순간 식은땀이 났고 더 이상 아무 말 못하겠더라고요. 그날을 계기로 제 그림들을 다시 들여다봤어요. 서양의 저 거대하고 찬란한 현대미술은 그동안 내 것이 아니었구나, 뼈저리게 느꼈죠.”
낯선 땅에서 사고방식이 다른 서양인들을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깨달았다. 그들의 아류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쭙잖게 흉내나 내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이후 작업 방식도 바뀌었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때만큼 고민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매일 묻고 또 물었죠. 결국 동서양의 차이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환경과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그리고 내 뿌리가 되어준 것들을 새로운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작업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우리의 전통음식, 제사상, 돼지머리 등을 소재로 삼아 변화를 모색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군 복무 시절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비무장 지대의 풍경이 불현듯 떠올랐다. 충격적일 만큼 아름다웠지만 온통 붉어 두려움과 공포감마저 들게 했던 우리의 산하. 야간 투시경 속 산하는 그렇게 ‘비트윈 레드’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붉은 산수’를 본 사람들은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런던에서 졸업을 앞두고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려대던 날. 하루는 스위스에서 온 여자가 우연히 그가 그리고 있던 붉은 산수를 보고 마음에 든다며 작품이 완성되면 자기가 꼭 구입하고 싶다 했다. ‘붉은 산수’ 첫 번째 작품을 손에 넣은 사람은 버거 컬렉션 대표 모니카 버거였다.
그 뒤 그의 이름은 유럽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졸업전시회 때 내놓은 작품도 평론가와 수집가들에게 모두 팔려나갔고 여기저기서 전시 제의도 들어왔다. 이후 미국 페이스 갤러리, 프랑스 페로탱 갤러리 등에서 손을 내밀었고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유명 기업들도 그의 작품을 사갔다.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 울리 지그는 런던으로 직접 찾아와 그림을 사갔다. 외국에서 인기가 더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붉은색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요. 이데올로기적 트라우마도 있고요. 또 집에 걸어두고 감상하기 편한 그림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외국 사람들은 취향이 다양해요. 작품에서 드러나는 철학과 시대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도 많아요. 울리 지그가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 그림은 분단과 같은 한국 문제를 다루고 있어 참 좋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묵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름답다, 물론 다른 훌륭한 한국 작가들도 많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당신 작품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림이다’라고요. 그의 말에서 큰 답을 얻었습니다.”
어머니, 다비화실, 12색 모나미물감
전통 산수화의 다시점과 서양화의 묘사 방식을 통해 그가 재해석해낸 자연의 풍경은 겸재 정선과 같은 진경산수화 대가들의 정신을 더듬으며 다양한 변주의 과정을 거친 듯 보인다. 자연은 눈에 보이는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체험과 만나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이세현 작가에게 자연은 삼라만상이다. 인간사, 세계사와 분리될 수 없는 풍경이다.
자연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군 복무 시절 돌아가신 어머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짧은 생이었다.
“어머니를 화장하는 동안 벌판에 앉아 있는데 들꽃 향기가 났어요. 그만 슬퍼하라고 어머니가 주시는 마지막 선물 같았어요. 순간, 지나온 시간들이 아득해지면서 자연이 다르게 보였어요. 아름다운 풍경 뒤로 삶과 죽음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더군요. 어머니의 유해는 원하신 대로 처녀 적 살았던 통영의 작은 마을 해안에 뿌려드렸어요. 그런데 유학을 떠나기 전 그곳을 다시 찾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제2거제대교가 생기면서 마을이 통째로 없어졌더라고요. 어머니를 한 번 더 잃은 것처럼 슬펐습니다.”
온 나라가 개발의 신열에 들떠 있던 시대였다. 통영에도 관광지 개발 바람이 불면서 어머니에게로 가는 길은 끊겨버리고 말았다. 어린 시절이 몽땅 추방당한 듯했다.
거제도에서 태어난 이세현 작가는 부모를 따라 부산, 통영, 울산 등지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아버지의 나전칠기 사업이 망해 도시빈민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도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허약한 몸이었지만 닥치는 대로 일했다. 결국 건강이 더 나빠진 어머니는 통영 이모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됐고 어린 그는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자신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쩌다 용돈이 생기면 문제집을 사서 공부했어요. 대학을 가야 집안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나봐요. 미대를 가고 싶어 고등학교는 전통공예학교로 들어갔어요. 회화반이 있었거든요. 학교에 가보니 미술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태반이었어요. 나는 그런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고, 그때까지 12색 모나미물감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어느 날 학교에 가져가 자랑스럽게 펼쳐놓았는데 다른 애들은 전문가용 물감을 내놓더라고요. 기가 팍 죽었죠.(웃음)”
그래도 그림 그리는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고1 때부터 운 좋게 미술반 청소를 담당하게 되어 선배들 그림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면서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려댄 그림은 100장이 되고 수백 장이 되었다. 그만큼 실력도 늘었다.
고3이 되면서 대학 진학을 결정해야 했다. 집안 형편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무턱대고 학력고사를 봤다. 성적이 괜찮게 나왔지만 철없다는 소리나 들을 게 뻔해 몰래 홍대 미대에 입학원서를 내고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다른 학생들은 학원에서 특강을 받는 등 분주해 보였다. 학원은 꿈도 못 꾸는 상황에서 그들과 경쟁할 생각을 하니 초조했다. 가난한 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문득 후배가 다니던 다비화실이 생각났다.
“어머니 몰래 쌀을 훔쳐 학원으로 들고 갔어요. 돈이 없으니 쌀이라도 받고 그림을 좀 봐달라고 했더니 학원 선생님이 어처구니없어 하더라고요. 기특하면서도 맹랑한 놈이라 생각했겠죠.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그래, 한번 해보자!’ 하더군요. 옛날이니까 그게 가능했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당장 그날부터 차가운 평상에 스티로폼을 깔고 함께 먹고 자면서 실기시험 준비를 했어요.”
결과는 합격. 게다가 장학생으로 붙었다고 하니 집에서도 서울 유학(?)을 더 이상 말리지 못했다.
계속 이어질 캔버스 속 이야기
이스라엘의 유명 아트딜러인 세르주 티로시는 이세현 작가의 작품에 대해 “매우 독특하면서도 세계 미술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국내외에서 핫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스위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국 등지의 유명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갖는 등 빡빡한 일정을 보냈고, 2015년에는 이탈리아 유명 패션 브랜드 페라가모가 협업을 요청해와 스카프, 머플러, 블랭킷 등을 제작해 선보이기도 했다. 1월에는 홍콩문화원 개관전 기획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란 듯 보인다. 지금까지 그린 대부분의 ‘붉은 산수’를 해외 컬렉터들이 구입해갔다니 놀랍다. 캔버스 속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나이 듦에 대해 물었을 때 예술가는 뭔가 다르게 대답할 줄 알았다.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이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어요. 오해받는 것도 불편하지 않고요. 아, 또 하나 있네요. 포기할 줄 아는 것.”
얼마나 명료한가. 아무런 기교도 필요치 않은 저 투명한 각성은.
올해 주목해야 할 사회 현상 중 하나는 은퇴 세대의 폭발이다. 우리 사회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1955년생부터 정부의 출산억제정책이 본격화한 1963년까지 9년간 태어난 이들이다. 정부의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숫자는 약 711만 명으로 전체 인구수의 14.3%에 달한다. 이들이 한꺼번에 은퇴자 인력시장으로 몰리면서 평생 겪었던 경쟁 속으로 다시 뛰어들게 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니어에게 제2, 제3의 직업을 찾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가 됐다. 새롭게 떠오른 무술년 새해 우리는 새로운 직업을 위해 어떤 분야를 주목해야 할까.
‘세대융합창업’ 안 되면 함께하라
최근 정부가 내놓은 창업지원정책의 핵심을 요약하면 ‘세대융합창업’으로 귀결된다. 세대융합창업은 경험이나 자본력은 있지만 창업의 핵심인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첨단기술에 취약한 시니어와 새로운 기술 분야에 능숙하고 여러 가지 영감이나 발상은 많지만 맨몸뿐인 청년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시너지를 얻는 창업 형태를 의미한다.
정부 입장에선 은퇴한 시니어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고, 창업으로 몰고 가기엔 창업 성공률이 높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중소기업청이 2003년부터 2009년까지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사업 창업의 생존율은 6년 차에 32%까지 떨어졌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대융합창업.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젊은 창업자들에게 마케팅이나 재무관리 등 취약 부문에 대한 은퇴자들의 멘토링이 이미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위한 정부의 태도는 적극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 11월 중·장년과 청년의 매칭창업을 지원하는 세대융합창업 캠퍼스를 전국 6개 권역에 신설했다. 이를 통해 선정된 창업 팀에게는 총사업비의 70% 이내에서 최대 1억 원까지 마케팅 등의 사업비와 창업 공간이 무상 제공된다.
경험자들은 젊은 세대를 수평적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것이 창업 성공률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조언한다. 지난 12월 리스타트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인코어드테크놀로지스 최종웅 대표는 “글로벌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공동 창업한 젊은 파트너의 조력이 컸다”며 “구성원을 선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고 강조했다.
성장동력 여전한 ‘4차 산업혁명’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분야는 올해도 여전한 인기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3D 프린터나 드론의 경우 올 한 해 대중화를 통해 폭발적 성장세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4차산업 분야는 주요 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하다 보니 시니어들에게 다소 어려운 것이 사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직접 기술개발에 참여하지 않아도, 본인이 평생 해온 분야를 바탕으로 대중화한 솔루션을 이용한다면 4차산업 분야에서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패션디자인이나 봉제업에 종사하던 은퇴자가 3D 프린터를 통해 액세서리를 만들거나, 은퇴 건설업자가 드론으로 건축물 균열 검사 등을 하는 식이다.
공유경제 역시 마찬가지. 부동산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공유 경제는 시니어에게 안성맞춤인 분야다. 숙박 공유 대표 기업 에어비앤비 조재은 팀장은 “기존 숙박공유에 참여하는 시니어 호스트의 증가는 지속되고 있는 상태”라 설명하면서 “가이드의 경험과 생활을 공유하는 ‘트립’ 서비스에도 그 특성상 시니어 가이드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 위한 ‘건강과 음식’
고령화와 관련한 건강, 음식에 관한 시장은 고령화 시대에 가장 유망한 분야 중 하나다. 고령자를 위한 건강음식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틈새를 공략할 여지는 충분하다.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슬로푸드에 대한 요구와 기능성 식품의 대중화도 이에 한몫하고 있다.
실제로 액티브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러한 경향이 잘 타나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한국리서치와 2016년 액티브 시니어 70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액티브 시니어들은 비싸더라도 유기농·친환경 제품을 사 먹고(26.9%), 몸에 안 좋은 음식은 먹지 않으며(39.0%), 음식 성분을 따지며 가려 먹는다(42.3%)고 답했다. 비싸더라도 분위기 있는 음식점을 선호한다는 응답률도 31.3%나 됐다.
특히 유가공이나 농산물의 가공제품 상품화는 ‘귀촌’에 맞물려 은퇴자들의 블루오션으로 손꼽힌다. 수원시 창업지원센터 최봉욱 센터장은 “올해 시니어들에게 유망한 분야는 4차산업과 함께 건강이나 바이오 관련 분야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고령화로 인한 사회 변화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식이 바뀌면 시장이 열린다 ‘웰다잉’
우리 사회의 죽음에 관한 인식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수동적으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후 벌어질 일들을 미리 준비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달 시범사업이 끝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관련한 부분. 일반인은 관여하기 어려운 의료 부분에까지 고인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죽음학 혹은 죽음준비학의 대중화 역시 우리 사회의 ‘죽음 준비’를 시기적으로 앞당기고 방식도 다양화하는 초석이 됐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소비시장을 만들어냈다. 수의나 봉안당의 사전 준비와 같은 전통적인 분야 외에 엔딩노트 작성, 유품 정리, 디지털 유산의 상속과 관리, 애완동물 신탁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노령화 속도에 비해, 국내 웰다잉 관련 시장의 다양성이나 규모는 아직 부족한 형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국내 웰다잉 관련 산업이 종활(終活)로 대표되는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고 전망한다.
인구절벽 속 귀촌, ‘6차산업’ 노려라
귀농과 귀산촌, 귀어촌을 포함한 귀촌은 ‘편의점·커피숍·통닭집 창업’만큼이나 시니어에게 노후를 보내는 가장 흔한 선택지 중 하나였다. 새로운 직업을 찾기보다는 휴양이나 도피의 개념이 컸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귀촌 지역 원주민들과의 갈등. 전문가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귀촌인은 조력자나 협력자이기보다는 ‘투자 여력 충분한 동일 업종의 경쟁자’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한다. 마을 일이나 지역 산업에 보탬이 되지 못하면,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으로 자리 잡게 돼 귀촌 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귀촌을 할 때는 지역 특산품이나 관광자원을 바탕으로 상품화를 진행하는 ‘6차산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역 산림조합중앙회 관계자는 “6차산업은 농작물을 경작하는 1차산업과 이를 가공하는 2차산업, 서비스업이 중심이 되는 3차산업을 결합한 형태의 산업을 의미한다”면서 “지역민들에게 귀촌인이 환영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일각에서는 인구절벽으로 고민하고 있는 지자체를 귀촌 지역으로 노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구절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자체의 경우 작목반이나 어촌계 가입비 무료, 거주지 지원 등 여러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가? 한여름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캘리포니아의 반쪽 모습만 알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와인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와인 주산지다. 북가주 나파 밸리와 소노마 카운티를 비롯해 중가주 파소 로블스와 샌타바버라, 그리고 남가주의 테메큘라 밸리까지,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이 중 테메큘라 밸리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그래서 더욱 호젓한 멋과 낭만이 있다. 10월, 캘리포니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포도 향 가득한 테메큘라 밸리 와이너리를 목록에 넣어두자. 포도 수확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탐스런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빈야드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함께 와인잔을 기울일 오랜 친구가 동행한다면 더없이 좋겠다.
“어디? 드라큘라?”
테메큘라를 처음 듣는 사람은 독특한 이름 탓에 십중팔구는 이렇게 되묻는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이들도 그랬다. 카메라와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나를 대신해 와인 테이스팅에 참여해줄 두 친구였다. 다행히 나보다 주량도 세고 와인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니 이보다 좋은 길동무가 있을까.
LA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곳,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 테메큘라는 해발 1500피트의 낮은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다.
테메큘라라는 이름은 인디언 원주민어인데 ‘물안개 속의 햇빛(Sunshine through mist)’이라는 근사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아침이면 바다에서 불어온 물안개가 온 땅을 덮었다가 낮이 되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테메큘라의 독특한 날씨를 의미한다. 포도 산지로는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곳, 테메큘라 밸리
10월의 테메큘라 밸리는 아름답기 그지없다.남가주에서 가장 큰 규모인 3만3000에이커(약 4000만 평)에 달하는 포도재배구역(Temecula Valley American Viticultural Area) 은 농업 보존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목가적인 정취를 더한다.
테메큘라 올드타운을 지나 동쪽으로 10분 정도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끝없는 포도밭이 펼쳐지면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 드는데, 바로 여기서부터가 ‘테메큘라 밸리 와인 컨트리’다. 현재 테메큘라에는 40여 개의 와이너리가 있는데 이들은 스스로 조합(Temecula Valley Winegrowers Association)을 만들어 각종 이벤트와 투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남가주 최고의 와인 산지이지만 사실 테메큘라 와인의 역사는 불과 40여 년에 불과하다.
1969년에 지어진 캘러웨이(Callaway)를 제외하고는 거의 80년대에 생겨난 젊은(?) 와이너리들이다.
이곳의 매력은 각각의 와이너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와인 맛도 다르다는 것이다.
시골 마을 소박한 농가 같은 와이너리가 있는가 하면 최고급 리조트까지 완비한 곳도 있다.
대부분의 와이너리에서는 평소 10~20달러(약 2만원)에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데 작은 와이너리에서는 인심 좋은 주인이 무료 와인을 대접하기도 해 깜짝 재미를 더하기도 한다.
이날 우리가 선택한 곳은 테메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캘러웨이’와 신흥 주자로 무섭게 부상하고 있는 ‘몬테 데 오로’였다.
테메큘라의 자부심, 캘러웨이
캘러웨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테메큘라 대표 와인이다. 역사도 가장 오래되었고 브랜드 파워도 갖추었다. 골프 산업의 황제 엘리 캘러웨이가 설립, 유명한 양조 장인(匠人) 로버트 페피가 합세해 유럽의 와인 명가에 맞설 만한 명성을 만들어냈다. 캘러웨이 와인은 한국에도 지난 2012년 진출한 바 있다.
유럽의 와인에 비해 미국의 와인은 실용적이고 대중적이다. 때문에 이지와인, 골프와인 등으로 불리는데 이 또한 캘러웨이의 공이 크다.
1976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에딘버러 공작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 만찬에 등장한 것이 캘러웨이 카베르네 소비뇽과 샤도네이였고 이후 여왕과 공작이 골프 라운딩을 마칠 때마다 캘러웨이 샤도네이를 마셔 골프와인으로 불려졌다는 일화가 있다.
여왕이 즐겨 마신 화이트 와인이라니…. 41℃에 육박하는 더위에 전열을 가다듬고 샤도네이를 맛보기 위해 캘러웨이 와이너리로 향했다.
테메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다는 캘러웨이 와이너리는 과연 명성대로 우아한 자태다. 현대적인 양조기술, 능숙한 매니지먼트 등 모든 것이 똑 떨어지는 느낌이다.
중국인 매니저 ‘킴’의 안내로 들어간 곳은 와인 저장소.
수백 개의 와인 배럴이 있는 거대한 창고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는데 사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얼음창고 같은 시원함이었다(기억해달라. 바깥 기온은 41℃였다).
발효 탱크에서 발효를 마친 와인들은 오크(참나무) 배럴로 옮겨지게 되는데 이곳에서 숙성 과정을 마쳐야 진정한 와인으로 거듭난다. 팀의 설명에 따르면 배럴은 온도보다는 숙성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아주 조그마한 것 하나가 와인의 맛과 향, 색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와인은 정말 신비하다. 포도의 종류뿐 아니라 포도나무의 나이, 오크의 종류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린 포도나무에서는 과일 향이 강하고 나이가 많은 포도나무일수록 흙냄새와 같은 깊고 묵직한 맛이 난다. 또 아메리칸 오크에서 숙성시키면 카라멜 향이, 프렌지 오크에서 숙성시키면 바닐라 향이 배어난다.”
배럴 창고에서 나오려는데 유난히 로맨틱하게 보이는 촛불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온다. 알고 보니 이 창고는 와이너리 결혼식의 피로연 장소로도 쓰인다고 한다. 수백 개의 오크 배럴이 있는 와인 창고에서의 결혼 피로연이라니…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다음 결혼은 꼭 여기서 하자는 실없는 농을 주고받아본다. 드디어 여왕의 와인, 샤도네이를 맛볼 시간. 캘러웨이 메인 테이스팅 룸에는 패션모델 같은 금발 미녀들이 삼삼오오 모여 와인을 즐기고 있다.
옅은 황금 색상의 2013 스페셜 셀렉션 샤도네이는 알콜도수 13도로 레몬, 파인애플, 배, 사과 및 바닐라 향이 나며 입안을 감도는 활발한 긴 여운이 일품이다. 단연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것이 팀의 설명. 평소 와인 애호가인 친구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많은 분들이 가장 좋은 와인을 추천해달라고 하는데 사실 가장 좋은 와인은 개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좋은 와인은 유명한 와인도, 비싼 와인도 아닌 나에게 맞는 와인이 가장 좋은 와인이죠.”
신흥명가, 몬테 데 오로
와인 밸리 초입에 있는 캘러웨이를 나와 다시 동쪽으로 달리면 밸리 끄트머리에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와이너리가 나온다. 지난 2009년 오픈하고 이듬해 첫 수확을 낸 후발주자이지만 최근 월드 와인 챔피언십을 비롯한 유수의 와인 어워즈에서 1등 상을 휩쓸고 있는 ‘몬테 데 오로’ 와이너리다. 사람 좋아 보이는 매니저 제리는 반갑게도 한국어로 제작된 안내서를 가지고 우리를 맞이했다.
최근 한국인 방문객이 늘어나 아예 한국어로 제작을 했다는 것이다.
몬테 데 오로의 주 종목은 레드와인이다. 카르베네 소비뇽, 템프라니요, 시라 등 10여 개의 레드와인을 선보이고 있는데 100% 이곳 빈야드에서 수확하는 포도만으로 제조하고 있다.
제리를 따라 검붉은 포도송이들이 달려 있는 빈야드로 나갔다. 검푸른 빛의 자그마한 포도 알맹이들이 탐스럽다. 한 송이를 따 입에 넣으니 꿀송이를 넣은 듯 달콤하다. 강한 태양빛에 자연적으로 건포도가 된 것들도 있다. 자연 건포도를 따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도가 높은 포도가 좋은 와인이 된다. 당분이 이스트에 의해 발효되면서 열이 나고 알코올도 변하기 때문이다. 발효 시초에는 산도(pH)를 조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계속해서 적정 산도를 조정하고 있다. 그게 우리만의 양조기술이다.”
프랜치 오크 배럴에서 최대 28개월 동안 숙성된 레드와인은 보틀링(bottling, 병에 담는 과정) 후 다시 4~6개월 숙성한 뒤에 비로소 세상에 나오게 된다.
몬테 데 오로는 메인 테이스팅 룸을 비롯해 다양한 사이즈의 프라이빗 룸을 보유하고 있어 소규모 모임부터 단체 워크숍까지 맞춤 이벤트를 제공한다. 빈야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가 딸린 프라이빗 룸에서 점심을 겸한 와인 테이스팅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근사했다.
치즈와 과일 플레이트와 토마토 소스 미트볼과 함께 우리가 이날 선택한 와인은 2013년산 시라와 2012년산 시라. 제리가 강추한 와인들이다. 와인잔을 바닥에 놓은 채 원을 그리듯 흔들어 공기와 접촉시킨 후, 먼저 향을 맡고 입안에 조금 머금었다가 삼켜야 한다고 알려주는 친절한 제리씨. 이에 화답하듯 친구의 즉석 품평이 이어진다. 맛이 묵직하고 진하면서도 떫은 맛이 강하지 않고 과실 특유의 향이 혀끝을 감도는 맛이 아주 훌륭하다는, 결론은 ‘그레잇’이다. 분위기 탓이었을까 시장기 때문이었을까. 매혹적인 레드와인과 함께 입안에서 녹아 없어지는 블루 치즈가 지친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곧 사진기를 내려놓고 친구들과 둘러앉아버렸다. 깊어가는 테메큘라의 가을, 향 좋은 와인이 있고 더 좋은 친구가 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