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혈성 뇌졸중(뇌경색)이 발생해 치료한 후에는 충분한 운동과 신체활동을 유지해야 심뇌혈관질환 재발 및 사망 위험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김원석·백남종 교수팀(제1저자 강성민 전공의)은 건강보험공단 데이터를 분석, 2010년에서 2013년 사이 허혈성 뇌졸중으로 입원한 20세~80세 환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같은 결과를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뇌졸중 재활 저널'(Topics in Stroke Rehabilitation)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허혈성 뇌졸중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총 31만1178명 중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있으면서 신체활동 여부와 수준을 묻는 설문에 응답한 3만424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허혈성 뇌졸중 후 장애등급 1-3급에 해당해 자가 보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 환자는 연구대상에서 제외됐다.
연구팀은 ‘사망’, ‘뇌졸중 재발’, ‘심근경색 발생’이라는 세 가지 변수를 분석했으며,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발생한 ‘복합결과(composite outcome) 변수’도 함께 설정해 뇌졸중 후 신체활동이 건강결과에 미치는 연관성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 총 3만4243명의 환자 중 약 21%인 7276명만이 충분한 수준으로 운동과 신체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충분히 신체활동을 수행한 경우 사망, 뇌졸중 재발, 심근경색, 복합결과 등 모든 변수에서 발생 위험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위험은 29%, 뇌졸중 재발 위험은 11%, 심근경색 위험은 21%, 복합결과 발생 위험은 15% 수준으로 발생 위험도가 줄었다.
또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 충분한 강도와 시간 동안 신체활동을 유지한 환자 중에서 뇌졸중 발생 이후에도 계속해 충분한 신체활동을 유지한 환자는 약 38%밖에 되지 않았고, 뇌졸중 발생 이전에는 신체활동 수준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뇌졸중 발생 후에 충분한 신체활동을 실천한 사람은 약 17%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원석 교수는 “충분한 신체활동은 뇌졸중 이후에 또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뇌졸중 재발, 심근경색, 사망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뇌졸중 환자는 규칙적인 운동, 적정체중 유지, 그리고 건강한 생활습관을 통해 심뇌혈관질환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점점 신체활동이 줄어들고 있는데, 가급적 집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시간을 줄이고 마스크 등 개인 보호를 하고 가볍게 산책하거나 움직이면서 신체활동을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뇌졸중 환자들은 빠르게 걷기, 오르막길 걷기, 실내 자전거 타기 등 약간 숨이 찰 정도의 유산소 운동을 하루 30분, 일주일 5일 이상 실시해 주는 것이 좋다. 또 일주일에 2회 이상은 팔‧다리의 큰 근육 위주로 근력운동을 함께 해줘도 도움이 된다.
35년간 암을 연구해온 암 과학자 김규원(金奎源·68) 서울대학교 약대 명예교수. 그는 2006년부터 투병해온 암 환자이기도 하다. 김 교수에게 암은 한때 동료처럼 친근했지만, 하루아침에 어둠 같은 존재로 돌변했다. 그러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자 몸과 마음이 공명하기 시작했고, 육체적 상실은 정신적 자유로 승화했다. 아직 암은 완치되지 않았지만 그는 ‘미로 속에서 암과 만나다’를 통해 어둠 속 암에 작은 희망의 등불을 비춰보고자 한다
단순 비염으로 여기고 이비인후과를 찾았던 김 교수. 얼마 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비강상악동 미분화암종’이라는 희귀 암 진단을 받은 것. 암 연구자답게 그는 관련 문헌부터 찾아봤다. 자료에 따르면 극히 희귀한 암으로, 증식 속도가 매우 빨라 판정 후 생존기간이 수개월에 불과하며 뚜렷한 치료법도 없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암들은 치료 방식이 확립돼 있어 대부분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제 경우엔 워낙 희귀 암인 데다가 몇 개월 안에 사망한다니 무척 막막하더라고요. 그동안 쌓아온 암에 관한 지식도 그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더군요. 관념적으로만 대해왔던 암과 실제는 천지차이였죠. 온통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휩싸였고 모든 게 다 멈춰버린 듯했어요.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딸과 아내에게 유서도 미리 써둘 정도로 불안했었죠. 당시 딸아이가 고1이었는데, 대학 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더라고요.”
몸과 마음의 공명으로 찾은 평안
다행히 그는 투병생활을 잘 견뎌냈고, 간절했던 소원도 이뤘다. 또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저서 ‘미로 속에서 암과 만나다’도 펴냈다. 같은 처지의 암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더 빨리 선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간 두 번이나 재발이 됐고 후유증 치료를 하느라 시간이 부족했어요. 중간에 전공 관련 서적을 출간하긴 했지만, 이번 책은 암 환자와 그 가족들을 염두에 두고 쓴 거라 의미가 다르죠. 전반부에는 당시 수기로 적어뒀던 투병일지를 실었고, 후반부에서는 항암제와 암의 역사를 짚어봤어요. 제 경험을 통해 공감과 위로의 말씀도 드리고자 했지만 암 연구가 나아갈 길을 논함으로써 보다 실질적인 희망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만큼 의연해진 모습이지만, 김 교수 역시 처음엔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사라질 수 있게 하는 죽음이 눈앞에 와 있다는 공포가 가장 컸다.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에 힘을 얻기도 했지만, 충격의 나날들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동료나 제자들이 와서 긍정적인 말을 해주면 잠시 기운이 나요. 그러다 혼자일 땐 피할 수 없는 두려움과 마주하곤 했죠.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어느 누구도, 가족조차도 내 앞에서는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어요. 저 혼자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던 거죠. 초반엔 죽음만 떠올리면 마음이 확 얼어붙었어요. 굳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 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면서부터였죠.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다 죽는다, 누구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생성된 모든 것은 변화와 소멸을 겪는다, 나도 마찬가지, 암도 마찬가지…. 명상을 통해 그런 생각들에 집중하다 보니 차차 덤덤해지고 편해지더군요. 그렇게 얼어 있던 마음이 녹아 흘러가고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안을 되찾으려 애쓰고, 명상으로 마음이 아물어갔지만, 몸 곳곳엔 암이 휩쓸고 간 흔적이 뚜렷했다. 후각과 미각, 그리고 청각 대부분을 상실했고, 괴사가 일어난 얼굴엔 눈에 띄는 구멍까지 생기고 말았다. 2년 5개월에 걸친 11차례의 성형수술 끝에 구멍은 다행히 메웠다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을 터. 혹시 외적인 변화로 인한 상실감에 우울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히 상실감이 컸죠. 암이 제일 큰 원인이지만 노화로 인한 변화도 있었어요.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생성된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겪습니다. 나이가 들고 병이 생기니 당연히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건강하던 젊은 시절에 매여 있는 건 집착이죠. 몸의 흐름에 마음이 따라가면 되는 거예요. 달라져가는 모습에 상실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내면의 소리에 따라 몸과 마음이 공명하면 금방 적응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야로 바라보는 암과 약
김 교수는 몸소 암을 겪으며 외부 대상에만 비췄던 연구의 관점이 자연스레 스스로를 향하기 시작했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그에 따른 감각, 감정의 흐름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더불어 고통을 겪는 환자 등 주위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의 폭도 넓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투병 과정을 통해 암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현재까지의 암 연구는 세분화에 집중해왔어요. 크고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않고, 암 세포나 유전자 등 세밀한 영역으로만 파고들었던 거죠. 가령 암 분야에서 가장 해결이 안 되는 게 ‘전이’입니다. 암이 전이되려면 림프계나 면역계, 순환계 등을 거쳐야 하는데, 어떤 이유로 우리 몸의 시스템이 전이가 가능하게 놔두는 것인지, 몸속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어떻게 암세포와 상리 공생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데, 그 해답에 대한 실마리를 찾으려면 암을 조금 멀찍이 두고 봐야 한다는 거죠.”
김 교수는 2017년 정년퇴임 후에도 서울대학교 약대 명예교수 겸 석좌교수로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제2인생에 대한 계획을 묻자 그는 별다른 재능이 없어 전공의 연장선에서 일궈나갈 생각이라고 답했다. 스스로 지은 아호 ‘약산’(藥山)처럼 그야말로 약학 분야의 외길을 걸어가는 셈이었다. 그런 그가 향하는 약산의 정상은 어떤 모습일까.
“약학 분야에서 큰 공적을 쌓아 산을 이루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산처럼 높은 곳에 올라서서 보면 약학 분야를 좀 더 넓고 깊게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호도 그리 지은 거죠. 의약품으로 사용되는 항생제는 10~20%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농축산물이나 어류 양식장 등에 쓰이죠. 그런 항생제의 남발로 지구상의 수많은 미생물과 생태계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 우리는 인간 중심적으로만 약을 대해온 것 같아요. 이제 약의 용도가 뭔가를 죽이고 박멸하는 기능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의 지평을 넓혀가야만 현재 인류가 겪는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TV 예능프로그램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다섯 남자의 지식여행 프로그램 이 화제다.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 그러나 들어보면 솔깃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이 프로그램의 주를 이룬다. 이러한 잡다한 지식은 건강이나 병원 관련한 분야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당신을 위한 건강의 ‘알쓸신잡’ 무엇이 있을까.
전국 응급실 한자리에서 파악
집 안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환자를 병원으로 옮길 생각을 가장 먼저 한다. 환자를 택시로 옮기거나 차를 운전해 이동시키는 장면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럴 때 필요한 정보를 모아둔 곳이 바로 중앙응급의료센터의 E-Gen(www.e-gen.or.kr)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서 응급실 검색을 하면 내 주변 어디에 응급실이 있는지, 해당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과목은 무엇인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 또 실시간 정보상황판을 들여다보면 응급실 내 병상의 여유까지 알 수 있다. 때문에 좀 더 여유 있는 응급실을 골라서 갈 수 있다.
집에 환자가 있거나 응급상황에 대비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특히 자녀나 손주가 어리다면 소아치료가 가능한 응급실을 파악해놓으면 편리하다. 응급상황 시 대처요령, 명절이나 연휴 때 문을 연 약국을 찾는 데도 유용하다. 그러나 급박한 상황에서 이런 정보를 모른다면 무작정 환자를 옮기려 하지 말고 119에 신고하는 것이 가장 좋다. 119에서는 응급실별 치료 가능한 질환의 범위까지 고려해 최적의 응급실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이다.
치과도 별개의 응급실이 존재한다. 전국에는 11개 치과대학과 부속병원이 있는데 대부분 응급실을 갖추고 있어 야간치료도 가능하다. 밤새 치통에 시달리는 상황이라면 참지 말고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이 낫다.
인턴·레지던트와 친해져라
대학병원에는 인턴과 레지던트가 있다. 사람들은 나이 어린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학생으로 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국내 의사들은 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가 되면 거의 대부분 전문의 과정을 밟는다. 우리가 잘 아는 내과, 외과, 안과, 비뇨기과 등 전문 과목을 선택해 흔히 대학병원으로 불리는 수련기관에서 의사생활을 하면서 전문 분야의 수업을 듣는다. 이때 전공 분야가 정해지지 않은 1년 차 전공의를 인턴, 전공 분야가 정해진 2년 차부터의 전공의를 레지던트라 부른다. 이들은 전문의 자격 취득 후에 펠로우(전임의) 자격으로 병원에서 진료하다가 일부는 부교수, 교수의 과정을 밟게 된다.
인턴과 레지던트가 좀 어려 보여도 그들은 분명히 의사다. 오히려 병원 내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어 솔직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수술이나 특진을 받을 교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면 이들과 친해져 추천을 받는 것도 괜찮다.
동네 병원을 들러야 하는 이유
국내 의료기관은 크게 입원실이 없는 의원급의 1차 의료기관, 특정 과목을 진료하면서 병상을 갖춘 2차 의료기관, 종합병원이라고 부르는 3차 의료기관으로 나뉜다. 보통 동네 의원부터 절차를 밟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동네 의원에서 정확한 진단 후 치료를 위한 진료과를 파악한 뒤 상위 병원으로 가면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닐 필요가 없고 예진을 생략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오히려 시간이 절약된다.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바로 가면 국민건강보험의 혜택을 못 받는 일이 있어 경제적인 손해를 볼 수도 있다. 3차 의료기관에서 국민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1차·2차 의료기관의 진료 의뢰서가 필요하다.
해외여행 가기 전 들러야 할 곳은?
전염병 안전지대라 여겼던 우리 국민들에게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유행은 커다란 충격을 줬다. 메르스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외에서 조심해야 할 현지 풍토병들은 다양하다. 최근 시니어들의 해외여행이 늘면서 현지에서의 질병 감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럴 때 꼭 들러야 할 곳이 병원이다. 최근 일부 대학병원과 의료기관에서는 여행자 클리닉을 개설하고, 방문지역에서 대비해야 할 질병에 대한 안내와 함께 감염을 막기 위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여행자 클리닉이 개설된 의료기관은 국립중앙의료원을 비롯해 세브란스,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가천대 길병원 등이 있다.
여행자 클리닉에서는 예방접종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시 필요한 의약품, 여행지에서 필요한 건강 정보 등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창의적 시대가 대세이다. 누구나 창조적인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면 성공을 기대할 수도 있다. 그것은 피나는 노력의 대가이고 사람들을 감동시켜주기도 한다.
사람들의 문화 수준이 놀라울 정도로 변화되어간다. 먹고살기 위한 의식주를 넘어 이제는 여가와 각종 기념일들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없던 날들도 만들어 별별 축하 날들이 생겨났다.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생동감의 일상은 현재에 머무를 줄을 모르고 고공 행진을 한다.
필자의 작은 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가족 모임이 있었다. 결혼을 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기념일이다. 필자는 집에서 준비를 하고 싶었으나 시간들이 맞지가 않았다. 사위도 딸도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두 부부가 이제 1년 차 전공의 의사이니만큼 서로 시간이 자유롭지가 않았다.
큰딸은 시내의 한복판 호텔 레스토랑에 예약을 했다고 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걱정을 했으나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니 따르기로 했다. 선물을 준비해야 했다. 부모라고 받기만 하는 것보다 뭔가 특별한 장만을 해야 했다. 이것저것 생각을 해봤으나 새 신부에게는 현금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아 필자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큰딸은 동생에게 케이크를 준비한다고 했다. 필자는 비싼 호텔에서 그것도 준비해주지 않느냐고 물었다. 큰딸은 특별한 선물이라며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 케이크는 미리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며, 생일 당사자 사진도 보내야 한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그때는 아무 느낌 없이 대답만을 했다. 다만 가격을 말할 때는 눈이 휘 동그래졌다.
비록 필자가 부담하지는 않았지만 아깝다는 생각에 한마디를 했다. 쓸데없이 낭비를 한다며 몇 마디 잔소리를 했더니, 큰딸은 들을 척도 하지 않고 방으로 휑하니 들어간다. 요즈음 다 큰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귀담아들을 리가 없다. 현실이 그렇게 변해만 가니 어이가 없다.
호텔에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모처럼 단란하게 식사를 마치고 케이크가 올라왔다. 커다란 뚜껑을 여는 순간 감탄이 흐른다. 온 가족의 눈동자가 한 곳으로 향했다. 우아하게 앉아있는 작은 딸의 모습이 선명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캐릭터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케이크 옆에 다소곳이 앉혀놓았다.
작은딸도 사위도 입이 코에 걸렸고 환희가 넘친다. 물론 필자 부부도 한참 동안을 들여다보며 신기함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케이크 자체도 일반 것들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 사진을 그대로 만들어 그 위에 장식 한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 생일 케이크 하나로 온 가족은 행복함으로 가득하며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참으로 훌륭하고 멋있는 케이크가 그만한 가치가 흘러넘쳤다. 평범하고 단순하게 촛불을 켜고, 다시 불어서 썰어먹는 것이 아닌, 작품 감상의 시간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대단히 멋지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큰딸은 자기의 선물이 최고라며 자랑을 과시한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필자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불끈 들어줬다. 그 빵집은 지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하는 곳으로 주인장은 일부러 초상화를 배우며 밤낮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선물이란 말 그대로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이다. 작은딸은 대 만족이라고 했다. 가족들은 아까워서 함부로 먹어 보지도 못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작은딸은 먹고 남은 것을 고이 모시고 집으로 가지고 갔다. 자기 모습이 살아있는 그대로를 몇 날 며칠 동안 간직하며 아주 흡족 했다고 했다.
각고의 노력이 함께한 장인정신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누군가의 '작은 아이디어가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와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가족들을 모처럼 웃음바다로 만들어주었다. 사람이 만들어낸 창조의 힘은 위대하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가격을 떠나 감동을 주는 기발한 아이디어의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또 하나의 행복이다.
김갑식 산과 사람 편집장
자, 독자 여러분!
상상의 나래를 펴보시라.
지금 당장 당신에게 1000만원의 공돈이 생겼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답을 내놓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하고 싶은 일로 여행을 꼽았다. 그만큼 여행은 공통적인 관심사이며, 하고 싶은 일 가운데 맨 앞줄에 놓여 있다.
실제로 여행이라 하면 왜 사람들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까. 왜 은근한 기대감과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일까.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사실 누구에게나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일의 뿌리는 매우 깊다는 게 사회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만큼 인간은 누구에게나 여행의 DNA가 핏속에 흐른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유희)’에 두고, 인간의 행위 양식의 본질을 ‘놀이’로 규정했다. 물론 유인원과 일부 고등동물들에서도 놀이와 유사한 모습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이는 인간의 놀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놀이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정서적이고 반복적인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펴낸 는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 인류의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을 추적한 기념비적 저서이다.
하위징아의 견해에 공감하는 대다수 사회학자들은 놀이의 최상의 위치에 여행을 두는 데 동의한다. 모든 놀이가 그렇듯 여행은 즐거움이 수반되는, 그러나 비용이 드는, 그럼에도 기회가 닿는다면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경험과 체험
여행의 매력은 오히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복병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솔직히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여행 중독 같아요. 매년 한두 차례씩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거든요.”
외국문학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3년 전 정년을 맞고 나서 홀가분하게 명예교수직에 있다며 자신이 여행을 떠나는 솔직한 이유를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오래전부터 학회일로 일년에 한 차례씩 유럽에 가곤 했는데 정년 이후부터는 해마다 두 번씩 나갔다며 안 가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 같아 ‘중독’이라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그러나 이 대학교수의 경우 ‘여행 중독자’라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여행 자체가 어느 정도 중독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여행을 좋아한다고 중독자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여행을 즐기는 일이 바로 인생을 즐기는 일
여행을 자주 하는 것이 오히려 평상심을 무너뜨리고 균형감을 상실케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행은 불꺼진 창에 불을 밝히는 일이고 차갑게 식은 가슴에 불씨를 당기는 일이지요.”
지금까지 수십년간 국내외 여행을 즐기며 살아왔다는 환갑이 지난 한 여성 CEO는 자신은 일 목적이 아닌 여행을 할 때 분명한 구분을 지으며 여행한다고 말한다.
“저는 여행을 즐기는 일이 바로 인생을 즐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인생이 바로 여행 아니겠어요?”
그녀는 그러면서 여행의 매력 포인트는 ‘우연’이라고 주장했다.
“우연, 필연이 아닌 우연이라는 데 여행의 흥미와 쾌감이 깊은 것 같아요.”
그녀는 여행을 하다 들르는 숙박시설, 식당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밀란 쿤데라는 이라는 책에서 우연의 강렬한 기능과 역할을 이야기한다. 일상적으로 기대되고 반복되는 모든 일은 하나같이 침묵하는데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주장이다.
남, ‘금강산도 식(食)후경’ 여, ‘금강산도 숙(宿)후경’
한 여행사가 50대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행 중 가장 많은 경비를 지출하는 것은 어떤 항목인지를 묻는 질문에서 남자의 35.2%(176명)는 ‘식비’를 꼽았다. 그 다음으로 남자가 지출을 많이 하는 것은 ‘숙박비’로, 31.6%(158명)가 잠은 좋은 곳에서 자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여자는 36.2%(181명)가 숙박비를 가장 많이 지출하는 것으로 꼽았으며 29.8%(149명)는 ‘식비’라고 답해 그 뒤를 이었다. 남녀 모두 지출의 3위를 차지하는 것은 박물관, 미술관, 뮤지컬 관람 등 문화 관련 비용으로, 남자는 9.2%(46명), 여자는 13.8%(69명)가 이를 택했다.
남자는 먹는 것을, 여자는 잘 곳을 우선시한 것이다. ‘금강산도 식(食)후경’은 남자들이, ‘금강산도 숙(宿)후경’은 여자들이 택한 것.
여행은 자신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건강하게, 단조롭고 나른한 일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야 한다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 후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후회나 미련이 남아서는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할 것이다.
여행이 끝난 뒤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과 그리움이 남아 있다면 그 여행은 성공적인 것이겠지만, 그렇지 않고 오히려 일상을 흔들고 평상심을 무너뜨린다면...
이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은 독자인 당신의 몫이 아닐까.
>> 김갑식 산과 사람 편집장
1954년생. 고려대국문과 졸업. 계간 에 중편소설 을 발표하며 문단에 기별을 보낸다.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등 월간지 기자, 편집장을 거쳐 현재 창간멤버였던 월간 의 운영본부장 겸 편집장으로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지방대생의 한탄이 이어진다.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2년 넘게 100번이 넘는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면접을 본 것은 5번 이하였고, 최종 면접에서 다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요즘 기업들이 인문계 학과를 선호하지 않으며 지방대생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50명을 뽑는 대기업 경쟁률이 400 : 1이라고 한다.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400 : 1이 아닌 1만9950명의 탈락과 50명의 합격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기업의 채용 프로세스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 서류전형, 인·적성 검사, 면접, 신체검사이다. 서류전형은 원하는 기업에 주어진 기일 안에 입사지원서를 제출한다. 많은 기업들이 스펙을 보지 않는다고 하지만, 입사지원서를 통해 지원자가 어떤 성장 과정을 겪었고, 무슨 경험을 했으며, 자신의 기업의 인재상이나 핵심가치에 부합되는가를 확인한다.
인·적성 검사는 지원과 동시에 실시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그러나 S그룹처럼 자신들이 개발한 검사지를 통해 별도 일시를 정해 인·적성 검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서류전형과 인·적성 검사를 통해 최종합격자의 5배수 정도를 면접대상자로 선정한다. 앞 기업의 경우, 2만 명이 지원하여 1만9950명이 이 과정에서 떨어진다. 면접은 1:1면접, PT면접, 집단토론, 최종 임원진 면접으로 이루어지고, 합격자에 한해 신체검사를 실시하여 이를 통과한 사람이 최종합격하게 된다. 50명 안에 들기 위해 치열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성장 시대인 1980년대와 저성장 시대인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1950~1960년대에 태어나, 1970년 말과 1980년대 대학을 졸업한 사람의 비율은 결코 40%를 넘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 대학에 입학하는 비율은 90% 수준이다. 1970~1980년대는 성장 시대였다. 지금은 저성장 시대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자신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를 골라 가던 행복했던 시절은 지났다. 기업이 원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시대이다. 요즘 채용 트렌드를 보면 크게 6가지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이다. 스펙을 안 본다고 하지만, SKY, 포항공대, KAIST출신은 여러 회사에 합격한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의 학생들도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고 있으며, 지방대생은 100번 넘게 떨어졌다는 하소연을 한다.
둘째, 이공계 특정학과 편중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화학, 기계, 전기, 전자, 건축 등 일부 이공계 학과는 독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공계와 인문계 비중이 1970~1980년대에는 인문계가 더 높거나 50 : 50의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이공계와 인문계 비중이 80~90 : 20~10 수준에 있다. 인문계가 선호하는 지원 부서까지도 이공계가 차지하는 경향이 있다. 인문계 비경영과의 경우, 고민의 정도는 심해진다.
셋째, 인턴제도의 확대이다. 회사가 면접을 통해 입사 지원자를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을 넘기 어렵다. 한 사람의 인성이 안 좋은 직원이 미치는 영향이 갈수록 크다 보니, 사전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입사 여부를 판단하는 인턴제도를 선호한다. 과거에는 특별한 일이 없이 인턴 제도를 운영했다면, 요즘은 도전과제를 부여하고 다각적 측면에서 함께 할 사람인가를 평가한다.
넷째, 면접의 강화이다. 1980년대에는 일반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직무보다는 회사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입사지원자 입장에서는 그 회사와 하고 싶은 직무에 대해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다. 1980년대 초에 입사한 사람들은 PC가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지인들을 통해 귀동냥으로 들은 수준의 지식으로 면접에 임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취업동아리를 만들어 개인면접, PT면접, 집단토론에 임하는 예상 질문을 만들어 완벽하게 외운다. 어느 지원자는 예상 문제 100개를 선정하여 답안을 작성하고 외우면서 어떤 표정을 지을까를 생각했다고 한다. 모의 면접도 수차례 실시했고, 같은 회사를 희망하는 지원자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등의 많은 노력들을 한다. 면접을 하다 보면, ‘내가 면접관이 아니고 지원자였다면, 나는 100% 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요즘 지원자는 면접에 대한 엄청난 준비를 하고 온다.
다섯째, 경력사원 채용의 확대이다. 내 후배는 내가 채용하여 내가 키운다는 순혈주의 생각은 갈수록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일정 기간 회사와 직무를 경험하여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들을 회사가 선호한다. 저성장이고 치열한 경쟁 하에서 백지 상태인 신입사원을 채용하여 2~3년 가르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입장이다.
여섯째, 직무 중심의 채용으로 심화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대학에서 배운 전공의 깊이는 법대 출신이 법전을 빨리 찾는 수준으로, 회사에 와서 대부분 새롭게 업무를 배웠다. 회사가 필요로 하면 그곳에 배치 받아 일했다. 지금은 직무 중심의 채용이 늘고 있다. 이 직무를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과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 기준이 아니면 지원 자체가 안 되게 하는 곳도 있다. 산학협동 등을 통해 특정학과 출신들을 ‘선확보’ 개념으로 뽑는 곳도 있다. 직무를 수행하기 위한 일정 수준의 사전 지식을 대학에서 습득해야만 한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고 입사했다 할지라도 신입사원 입문과정, 수습기간이라는 혹독하고 타이트한 심사기간을 설정하여 적응하지 못하는 사원은 걸러내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선택한 요즘 젊은이들이 힘들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들ㆍ딸들에게 무엇을 조언할 것인가?
취업이 어렵다. 그렇지만 취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많은 기업들이 취업공고를 하고 신입사원들을 채용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너의 인생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기에는 그들의 어깨는 무겁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자녀들에게 3가지 조언을 해주길 바란다.
첫째, 먼저 자신이 원하는 회사와 직무를 확실하게 선정해 놓으라고 조언해야 한다. 3박 4일의 중국 여행을 위해 한 달을 준비하면서, 인생 3분의 1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기업과 직무의 선택을 임박해서 결정한다. 심한 경우에는, 아무 회사나 지원한다. 회사 홈페이지 보고, 저장해 놓은 입사지원서를 수정해 전송하고는 떨어졌다고 힘들어 한다. 자신이 원하는 회사와 직무를 사전에 정했다면, 3~4학년 때 인턴이나 아르바이트를 그 회사에서 하고, 그 회사를 방문해 충분한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
둘째, 절박하고 악착같아야 한다. 자녀들이 노력한다는 것은 알지만, 절박하게 노력하는가, 악착같이 준비하는가를 물어 봐라. 발레리나 강수진 씨는 매일 15시간 이상 연습을 하며, “내가 이 정도가 됐다고 생각할 때, 내 예술 인생은 끝이다.”라고 다짐한다고 한다. 한 지원자는 클리어 파일에 그 회사의 자료를 100매 이상 준비해 완벽하게 외웠다고 한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그 회사와 원하는 직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것으로 했다고 한다. 내가 지원한 회사가 내 회사라는 생각을 갖고 회사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조언해야 한다.
셋째, 실패를 통해 인생을 배우며 긍정적 사고를 습관화하라는 조언이다.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슬프고 아쉽고 힘들겠지만,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인생을 길고 멀리 보라며 어깨를 두드려 줘라.
'내 후배는 내가 채용하여 내가 키운다'는 순혈주의 생각은 갈수록 희박해져 가고 있다. 일정 기간 회사와 직무를 경험시켜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사원들을 회사가 선호한다.
“이(異) 길에 답이 있다”
이 한마디에 협업(Collaboration)의 핵심이 담겨 있다. 다름과 만나 세상을 보라, 그리고 미래를 열라는 뜻이다. 두 개 이상 개체의 결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은 비단 기술에 인문학을 입힌 애플의 성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상생과 동반성장이 화두가 된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물결이기도 하다. ‘협업은 축복이다’라며 협업 문화 전파에 앞장서고 있는 윤은기(尹殷基)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을 지난 1월 7일 만나봤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etoday.co.kr 사진 이태인기자 teinny@etoday.co.kr
윤 회장은 협업을 대학병원에서의 협진을 예로 설명했다. 서로 다른 전공의들이 만나야 협진이 이뤄지는 것처럼, 앞으로는 서로 다른 분야가 만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융·복합돼야 협업의 가치가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그는 다름이 아니면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여 지내서 동지, 동포, 동료, 동창생 등 같은 것에는 익숙하고 편안함을 느끼지만 이교도, 이문화, 이단, 이민족 등 다른 것은 가차없이 배척했다. 이에 중앙공무원 교육원 원장을 역임한 윤 회장은 한국사회의 운명을 바꿀 만한 의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협업’에 주목했고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해 사람들을 만나 협업에 대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전국을 돌며 1달에 보통 10번에서 많게는 20번가량 강의했고 그러다보니 처음엔 협업이란 단어를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포털사이트에 협업 관련 콘텐츠들이 꽤 많아졌고 ‘협업’검색에도 그의 이름이 상당히 등장하게 됐다.
그와의 일문 일답이다.
지난해 매우 바쁘게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2015년은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지난해 1월 협회장에 취임하고 한해 동안 협업문화의 원년으로 삼고 강의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015년은 협업문화 확산의 해로 정해서 더 활발히 활동할 생각이다. 1월 말에는 직접 쓴 협업관련 도서도 나올 예정이다. 번역서는 있지만 한국인이 협업에 대해 쓴 첫 책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셈이다.
협업 전도사로서, 협업을 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를 꼽는다면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서로 협력을 해야 협업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한다. 지금까지는 ‘동’의 시대였지만 앞으로는 ‘이’의 시대라고 본다. 그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문화 자체가 달라지는 이 시대에서는 ‘포’자 붙은 두 가지가 있으면 지혜롭게 살 수 있다. 포옹력(抱擁力)과 포용력(包容力).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더 끌어안아주는 포옹력, 서로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데는 포용력이 필요하겠다. 혹시 엉뚱한 데 가서 포옹하는 건 성희롱이니 조심하고.(웃음)
올해 64세로 누구보다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시고 있다. 100세 시대, 행복한 노후를 위해 무엇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첫째는 건강, 둘째는 적절한 경제력, 셋째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나 놀이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친구, 선배, 후배 상관없이 격의 없이 속마음을 나누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삶의 동반자는 있어야 100세 시대를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이유는
매력적인 시니어가 없는 사회는 선진 사회가 아니다. 닮고 싶은 시니어가 있다는 것은 참 행운일거다. 60이 넘어서부터 진짜 인품이 나타나는 것이고 진면목이 보여지는 시기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멋지게 나이 먹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우 유쾌하시다. 즐겁게 나이 먹는 비결이 있나
보통 청소년기 꿈을 이루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이라는 말을 하지 않나, 나는 그때 꿈이 소설가였다. 심리학과도 그래서 갔고, 비록 현재 소설가의 길을 가고 있진 않지만 단 한 번도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없다. 나는 지금도 70세 전까지는 전업작가로 데뷔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어서 늘 소설가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또 한국문단의 대표적 작가인 ‘객주’의 김주영 선생도 꾸준히 만나 뵈면서 꿈을 가꿔나가는 중이다. 물론 연애소설은 이미 틀렸겠지만(웃음), 아마 자전적 소설을 쓰게 되겠지. 워낙 다양한 분야에 몸담아왔던지라 쓸 게 많지만 그냥 사실을 쓰는 게 아니라 소설로 다듬을 생각이다. 소설을 쓰겠다는 꿈, 그것만으로도 나는 즐겁다.
보물 1호가 있나
내가 가장 많이 가진 물건은 책이다. 하지만 가보 1호는 따로 있다. 내가 5개월 훈련받고 만 4년간 공군장교로 근무했는데, 그때 입었던 정복 한 벌은 지금도 깨끗하게 손질해 보관하고 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소중히 챙겨가지고 다니니 아내도 의아해한 적이 있는데, 나는 공군장교 시절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서, 그때 입었던 이 군복이 내 정신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마침 지난해에는 내가 근무했던 부대를 찾아가는 국방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때 정복을 입어봤는데 다행히 20대 때 입던 게 잘 맞아서 입은 채 출연할 수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아, 언젠가 KBS에서 방송작가가 연락이 와서 가보를 묻길래, 이 정복 얘기를 했더니 진품명품이라며 당혹스러워하더라, 그런데 이 정복이 나에게는 몇 천만원짜리 도자기보다 더 소중하다.
그러고보니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서울 과학종합대학원 총장, 국가브랜드위원회 글로벌시민분과 위원장, 명강사 등 워낙 다양한 길을 걸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학계, 재계, 관계, 문화예술계 그러니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봤다. 안 해본 건 정치인데, 지금도 정치는 안 하기 진짜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안 해봐도 좋은 게 있는데, 나에겐 그게 정치다.
늘 청춘처럼 왕성하게, 나이를 잊고 도전하시며 살아오신 것 같다
진짜 간단하게도, 아내의 말이 부드럽게 들릴 때, 내가 진짜 어른이 됐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강의하고 책도 쓰고 심리학도 공부했고 그러다보니 젊었을 땐 이론적으로 따지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서로 누구 말이 맞느냐 논쟁을 많이 했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다보니 아내 말이 들릴 때가 있더라. 내 말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그 말을 하는 심정을 헤아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영역에서는 OX나 사지선다형이나 과학적 정답 같은 걸 뛰어넘는데 그 말들이 들릴 때 우리는 어른이 되는 것 같다. 젊을 때는 모르던 세계가 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책이 있다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나는 그 책을 읽고 다니던 종합무역상사를 그만두고 여행 다니다가 정보전략연구소(?)를 차렸으니까. 남들은 그냥 재밌다하고 말았는데 나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아내가 1주일간 여행을 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중년 남성들의 로망인데
내 서재에 책이 한 천 권 이상쯤 있는 것 같다. 종종 정리해서 줄이는데도 그 정도. 평소에는 그중에서 경영, 심리학 관련 책들을 주로 본다. 만약 아내가 여행을 간다면 소설책을 꺼내 쭉 읽게 되지 않을까. 아무래도 소설책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니까.
자녀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인지 궁금하다
나는 아주 담백한 아버지다. 엄하지도 않고 잔소리도 하지 않고 살갑지도 않은, 그냥 수채화나 담담한 가을날 같은 아버지다. 내가 밖에서 너무 교육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심리학, 경영학하고 대학 총장에 방송에 강의도 많이 했으니까. 근데 집에서도 그러기 시작하면 이건 부자관계가 아니라 사제관계가 돼버리는 거다. 그래서 집에서는 절대 스승노릇은 안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내는 좀 아쉬워하기도 하지만 나는 가장 평범한 부자관계, 부녀관계를 맺고 싶다. 그리고 유수의 심리학자들도 실수하는 게 있는데, 심리학에서 배운 걸 그대로 자식에게 적용하는 것, 대개 망친다. 우리나라 성공한 사람들도 가정에서는 비슷한 실수로 관계를 망친다. 그냥 아들, 딸이 보고 알아서 느끼면 좋겠다. 나는 철저하게 스승 사절, 존경받는 아빠도 사절이다. 그냥 인간적으로 멋있게 살다 간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다.
살다보면 무수한 선택들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선택은
일단 심리학과에 진학한 것, 심리학을 원해서 지원했고 여전히 좋다. 또 공군장교 된 것과 현재 아내와 결혼한 것. 내 아내는 멋있는 사람이다. 부드럽고 여성적이면서도 매우 정의롭고 바른 길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이건 당신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부드럽게 나를 설득해준다.
다양한 길을 걸어오셨다. 마지막으로 성공의 기준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세상은 넓다. 한 우물만 파지 마라. 많이 싸돌아다녀라. 우리 세대는 한 우물만 파면 먹고 산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랬지만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많이 싸돌아다니고 시야를 넓혀라. 60세 넘어서 제일 안타까운 모습이 맨날 노인정만, 청계산만 왔다 갔다하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더 가면 춘천도 남해도 동남아도 있다. 나이 들어서 가장 멋있는 건 많이 싸돌아다니는 거다. 아내에게도 그런 거 제한하지 않는 편이라, 다음주에는 친구랑 베트남에 간다고 하더라. 가라고 적극 지원해줬다.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평등이다. 비록 현실적 조건으로 인해 평등은 제약이 있겠지만 자유는 최대한으로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2차 집단 휴진’ 고비를 넘겼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와의 협의 결과를 수용해 오는 24~29일로 예정됐던 집단 휴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의협은 20일 낮 서울 용산구 이촌로 의협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7일부터 이날 정오까지 진행한 회원 투표에서 전체 투표 회원의 62.16%가 집단휴진 유보를 택했다고 밝혔다.
‘의·정 협의안 채택’과 ‘집단휴진 강행’ 여부에 대한 이번 투표에는 의협 시·도의사회에 등록된 회원(6만9923명)의 59%인 4만1226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이에 따라 의협은 지난 16일 발표된 의·정 협의 결과를 수용하고 24일로 예정된 집단휴진을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정부와 의협은 협의를 통해 원격진료 △선 시범사업 실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구조 개편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의 내용에 잠정 합의한 바 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이번 투표 결과는 철회가 아니라 유보”라며 “국민에 위해가 되는 정책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고 나간다면 의사협회는 언제든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기 위해 사명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가 20일 회원 투표를 통해 2차 집단 휴진 방침을 철회함에 따라 다행히 우려했던 ‘의료대란’ 사태는 피할 수 있게 됐다.
의료계도 원격의료 시범사업이나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결정 체계 등과 관련, 지금까지 정부와의 협상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데다 “국민 건강을 외면한 밥그릇 싸움”이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며 휴진을 감행하는데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의정 협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위원 배분’ 문제 등을 놓고 양측이 다시 충돌할 가능성도 있어 의·정 갈등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또 의협의 바람대로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인상이 수월한 방향으로 건정심 구조가 개편될 경우, 수가 증액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건강보험료 인상 등이 불가피해져 결국 이번 사태의 후유증으로 국민이 부담을 떠 안게 될 수도 있다.
◇ 원격의료 도입 발표부터 1차 집단휴진 강행까지 이번 의·정 충돌의 가장 직접적 계기는 지난해 말 정부의 ‘원격진료 도입’ 발표였다. 이미 현행 법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의 의사가 다른 의료인에게 지식이나 기술을 자문해주는 의사-의료인간 원격진료는 가능하지만, 진단·처방을 포함해 의사와 환자간 원격진료가 도입되는 것은 처음이다.
의협은 ‘진료의 기본은 환자와 마주한 대면 진료’라는 명분을 내세워 이 같은 정부 방침에 반발했고, 특히 개원의들은 실제 수입과도 직결된 문제인만큼 민감하게반응했다. 일단 지금은 정부도 관련 의료법 개정안에서 ‘의원급’으로 원격진료 가능기관을 제한하고 있지만, 점차 규제가 풀리면 결국 원격진료 시설 투자 여력이 충분하고 장기 관리가 필요한 수술 건이 많은 대형 병원들에 더 환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슷한 시기 정부가 내놓은 투자활성화 방안에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되면서 의·정 갈등의 쟁점은 ‘의료 민영화’라는 큰 화두로까지 번졌다.
결국 의협은 집단 휴진을 결의했고, 의·정이 파국을 막기 위해 1월 중순 이후 약 한달 동안 의료발전협의회를 구성,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결렬돼 실제로 지난 10일 1차 집단 휴진이 강행됐다.
다행히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속한 의사들의 호응이 거의 없었고, 동네 의원급의 휴진 참여율조차 20% 남짓(정부 집계)에 불과해 큰 불편과 혼란은 없었지만, 24~29일로 2차 집단 휴진이 예고돼 환자와 가족들이 불안해 했었다.
◇ 정부, 원격의료 입법전 시범사업·건정심 개편 등 ‘당근’으로 2차 휴진 피해2차 휴진을 막기 위해 다시 정부와 의협은 대화에 나섰고, 지난 16~17일 밤샘 협의 끝에 사실상 정부가 의협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17일 정부와 의협이 발표한 ‘중간 협의안’에 따르면 의협이 그동안 대정부 투쟁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웠던 원격진료 도입의 경우, 양측은 의협의 주장대로 국회관련법 처리에 앞서 시범사업(4월부터 6개월간)을 시행해 문제점을 파악하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기본적으로 우선 원격의료 도입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후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자는 입장이었으나, 의료계의 반발에 부딪혀 한 발 물러선 셈이다.
또 정부는 의협이 항상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해온 수가 결정 구조 개편도 약속했다. 해마다 의협은 건강보험공단과 자신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대가, 이른바 수가를 얼마나 올릴지 협상한다. 이견이 커 협상이 결렬되면 공적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이 표결로 조정 폭을 확정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의협은 건정심 위원들 중 중립적 시각으로 판단해야할 공익대표 8명에 정부측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계속 지적해왔고, 정부도 이 같은 의료계의 불만을 받아들여 개선안을 내놨다. 공익대표(현재 8명) 가운데 복지장관 등 정부가 추천해오던 몫(현재 4명)을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협 등 공급자가 같은수로 추천하도록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집단 휴진에 가장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전공의들을 달래기 위한 ‘당근’들도 제시했다. 정부는 지침상 ‘최대 주당 88시간’으로 규정된 전공의 수련 시간을 유럽(48시간)·미국(80시간)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축소 조정하고, 전공의 재수련(유급) 조항도 폐지를 사실상 약속했다.
이처럼 진통 끝에 마련된 의·정 중간 협의안에 대한 17~20일 투표에서 과반의 의사들이 결국 ‘찬성’표를 던지면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만에 ‘의료대란’이 재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게 됐다.
◇ 의-정, 건정심 개편 협의문 놓고 다른 해석…수가·건보료 도미노 인상 우려도 그러나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추후 건강보험법 개정 과정에서 수가 등을 결정하는 공적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개편 방향을 놓고 양측이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와 의협은 중간 협의안 원문에‘건정심 공익위원을 가입자와 공급자가 동수로 추천하여 구성하는 등 건정심 객관성을 제고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은 연내 추진한다’는 문구를 넣었으나, 벌써부터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협의안에 대해 복지부는 “현재 정부만 추천하는 공익대표(현재 전체 공익대표 8명 가운데 4명)를 앞으로는 가입자측과 의협 등 공급자측이 같은 수로 추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라며 “필요에 따라서는 추천을 통해 선임되는 건정심 위원 수 자체를 조정하거나 전체 건정심 구조 개편도 논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꿔말하면 공익대표(현재 8명) 가운데 가입자·공급자측 추천 인사를 포함시켜정부의 영향력을 줄일 수는 있지만, ‘정부 추천’이 아닌 ‘정부 관계자(복지부·기재부·건보공단 등)’ 몫 자체를 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건강보험료와 정부 세금이 들어가는 건강보험제도 관련 주요 의사 결정을 하는데 당연히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고, 이 부분은 협상 당시 의협도 인정한 부분이라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반면 노환규 회장 등 의협측은 “정부 관계자를 빼고 공익대표 모두(현재 8명)를가입자·공급자가 반씩 추천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의협은 투표 결과인 ‘휴진 유보’ 발표에 앞서 정부측에 건정심 개편안에대한 정부의 입장을 다시 확인했고, 이 때문에 결과 발표 시간이 10분 정도 지연됐다. 의협의 질의에 복지부는 “혼란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건정심 구조와 관련, 공익위원의 범위와 수, 선정절차 등은 앞으로 정부와 의료계 등이 협의하여 마련하기로 했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했다.
하지만 양측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건정심 개편안 협의 규정은 앞으로도 의정간 대화에서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동시에 만약 의협의 주장대로 건정심에 의협 등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영향력이 커지면 현재 ‘자신이 제공한 서비스의 질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의 불만에 따라 수가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건강보험공단이 더 많은 수가를 의료인에게 지급하려면, 당연히 공단은 더 많은돈을 가입자로부터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최근 몇년간 공단이 흑자 상태로, 수 조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는 있지만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보장 강화, 비급여 항목 건강보험 제도 편입 등의 굵직한 의료정책을 실행하려면 앞으로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언제까지 연 보험료 인상 폭을 1~2% 수준에서 억제할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다.
당장 이날 건강세상네트워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한국노총·민주노총 등이 참여한 ‘건강보험가입자 포럼’은 서울 마포 건강보험공단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부는 의료계 달래기용으로 국민 보험료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수가와 건강보험료를 결정하는 건정심에 의료계를 확대하는 방안에 합의해줬다”고 비난하며 이번 의·정 협의안을 ‘야합’으로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