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한 노신사가 신문에 난 부음을 보고 빈소가 마련된 우리 집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대한민국 초대 공보처장을 지낸 이철원 박사였다. 그는 아버지 생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며 이를 잊지 못하여 찾아왔다고 말하였다. 그제야 나는 아버지가 어릴 때 우리 형제들에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손우현 한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달갑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하는 행동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목적이라 해도 수억 원의 금액을 기부하고, 장기를 기증하고, 머나먼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가는 것은 일반인에게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최근에는 팬클럽 회원들과 봉사활동을 하거나, 목소리 재능기부,
2010년 발간된 에는 김일(金一)과 김기수가 별도의 항목으로 실려 있다.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총본산인 대한체육회의 역사서에 프로 선수가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1980년대 들어 프로화가 된 야구와 축구 등의 국제 대회에 출전한 프로 선수들 이름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두 스포츠 스타가 활동한 시기는 1960년대이고 이때는 아마추어리즘이 철저하게
이제 치과 분야에서 수입제품이 아닌 국산 임플란트를 사용하는 것은 상식이 됐다. 임플란트 보급이 시작될 무렵 치과의사들은 유럽산 임플란트를 보며 열광했지만, 2000년대 초반 국산 임플란트가 하나둘씩 등장하더니 이제는 외국산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 마치 삼성과 LG가 꿰찬 휴대전화 시장 같은 분위기다.
국내에는 약 40여 개 이상의 임플란트 제조사가 활
1960년대 당시 유행하던 음악 중에는 미국 팝송같이 많지는 않았지만 샹송이나 칸초네, 그리고 라틴음악도 있었다. 필자가 샹송을 처음 접한 것은 1962년 9월쯤이었나, 당시 대한무역진흥공사 이사로 근무하시던 선친과 명동 국립극장(현 예술극장)에서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의 공연을 본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그녀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혼’, ‘
글 황경춘 전 외신기자클럽 회장
하모니카는 서민들에게도 친숙한 가장 대중적인 악기 중의 하나입니다. 가격이 적당하고, 배우기 쉽고, 그러면서도 오묘한 트레몰로(tremolo)음을 내어 음악 애호가를 매혹합니다. 게다가 100세 시대를 지향하는 요즘의 노인들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한때 침체했던 우리나라 하모니카 동호 운동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습니다.
원로가수 명국환(82)의 명함은 상당히 단순하다. 한문으로 원로가수 明國煥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덩그러니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뒷면에는 데뷔연도와 히트곡 4곡이 적혀 있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무심함 속에 보이는 원로의 품격은 비로소 말을 해보니 알 수 있었다.
지난해 12월, ‘2014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장에 눈썹이 짙은 노신사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김운용(金雲龍·85) 전 IOC(국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다. 정치인과 관료, 경제인이 올림픽 조직위원회를 거쳐 갔지만 유치 준비부터 폐막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이는 김 전 부위원장이 유일하다. 김 전 부위원장은 서울올림픽을 광복 이후 ‘6·25전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
언제부터인가 필자에게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필자의 집에는 영국의 B사 제품인 Wave 라디오가 2대 있다. 이 라디오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당시에는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1년 초 청계산 추모공원 관련 자료 수집 및 시찰로 미국 LA에 갔을 때 이 라디오
부부 생활에서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같다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돈독하고 행복한 부부생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명한 기술이 중요하다. 여기 사회생활 ‘만점’, 가정생활 ‘빵점’이었던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현재 가정 행복코치라는 이름으로 많은 부부들에게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