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익 소리판 대전 공연이 있던 날. 대전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인터뷰에 앞서 도리였다. 노래가 전부라는 사람, 장사익(張思翼·68). 작년 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성대결절 수술대에 올랐던 그는 8개월 뒤 불사조처럼 힘차게 일어섰다. 공연을 보지 않고서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나.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진 소리가 가슴을 뒤흔들었다. 음악 안
‘50년의 무뎌진 칼날을 다시 세우는 시간’, ‘꼰대를 졸업하는 것이 목표였던 수업’, ‘남편을 후배로 만들고 싶은 학교’. 서울50플러스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시50플러스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졸업생들의 반응이다. 겉치레로 끝나는 은퇴 수업이 아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교육의 현장, 그곳의 중심에 정광필(鄭光弼·60) 학장이 있다. 가르
따로 산 지 11년 됐다. 남편은 경기도 파주에, 아내는 서울 이태원에 산다. 딱히 언제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지만 만남의 장소는 남편이 사는 파주 집이다. 그곳에 아내가 오면 남편은 그냥 왔나보다 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내려 함께 마신다. 언제 떨어져 살았냐는 듯 이 부부의 행동은 무척이나 다정다감하고 여유롭다. 도대체 별거는 왜 하십니까? 별거
필자는 지금도 명동을 좋아한다. 젊었을 때 필자의 메카는 명동이었다. 명동은 대학 시절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는 종로와 광화문이 좋아서 많이 쏘다녔다. 6명의 친구가 모여 만든 클럽 ‘디지 걸’이라는 모임도 있었다. ‘dizzy’는 어지럽다, 아찔하다는 뜻인데 깜찍한 친구들이 ‘우리는 아찔하게 멋진 애들’이라는 의미로 의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쳐 15년간 학창 시절을 보낸 뒤였다. 이제 제대하면 학창 시절이 1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것도 후회됐다. 그래서 남은 1년은 열심히 공부해서 후회 없는 학창 시절을 마무리하자고 다짐했다.
제대하자마자 복학했을 때는 이미 취업한 학생들이 많아 수업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수 십장의 연하장이 날아왔었다. 연말연시에 지인들로부터 받은 연하장을 책상과 책꽂이 턱에 죽 진열 해 놓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 안에 있는 그림도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내용도 한결같이 감사와 희망을 담고 있다. 그 연하장 중에는 가까운 지인들의 정성담긴 손 편지도 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의 감사 인사도 많았다. 자
2017년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 밝았다. 어수선하고 복잡했던 일들이 올해는 꼭 정리되고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렇다면 우리 시니어 세대의 마음은 어떨까? 새해를 여는 시니어들의 마음도 한번 열어보았다.
취재협조 강남시니어플라자
은막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서임철(서대문구 홍은동·76)
저는 시니어 배우입니다. 서울노인영화제에 제가 출연한
1957년생 장은숙은 1977년에 데뷔해 1995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장은숙은 고독한 생활을 즐겼다. 고독했기에 행복했고 그래서 늙지 않는 것일까. 무엇보다 그녀의 가수 인생은 파란만장했지만 고독했기에 노래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것. 시집 한 번 안 간 그녀는 요즘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마시
‘생식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수경(金秀經·75) 박사는 식품기술사, 이학박사로서 1988년에 처음으로 케일을 동결건조, 생식제품을 만들었다. 이후 생식 전문기업 ‘다움생식’을 만들어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를 집필하고 있으며 중국 쪽과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팔순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이이지만 여전히 건강을 지키며 의욕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
새해가 밝으면 저마다 새로운 계획과 소망으로 기분이 들뜨곤 하지만, 고은(高銀·84) 시인은 인생에 해가 더해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가 살아온 80여 년의 세월 동안 먼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넋들과 앞으로 생을 이어가며 맞이하게 될 죽음들에 대한 가책과 슬픔이 늘 그의 세상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생과 사의 엇갈림 속에서 살아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