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도 매우 쾌청해서 여행 떠나기 딱 좋은 날이다.
군산은 얼마 전 다녀온 곳이지만 두 번 세 번 가보아도 볼거리와 느낄 점이 많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과 군산의 밤을 체험하게 되어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찾아보기로 했다.
군산은 한편으로는 슬픈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비옥한 우리 땅에서 나는 곡물과 물자를 자기네 나라로 수탈해 가는 통로로 군산을 발전시켰고 많은 일본인이 들어와 살았기 때문에 일본의 가옥이나 문화가 많이 남아 있기도 하다.
그런 근대화의 아픈 역사를 없애지 않고 잘 보존하여 더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다짐한다는 의미로 일본의 잔재인 세관이나 조선은행 등을 근대건축관이나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하여 역사를 보존하고 잊지 않는다는 취지를 가졌다니 멋진 도시이다.
2017년 10월 28일~29일은 군산의 축제로 근대역사박물관과 월명동 일원에 '가을밤, 근대문화유산은 잠들지 않는다' 는 슬로건으로 군산 야행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야밤에 본 문화유산의 모습들은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곳곳에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밤 나들이 나온 군산시민의 모습이 매우 화목해 보였다.
여러 곳에서 음악콘서트의 흥겨운 노래가 들리고 광장에선 가족끼리의 투호 게임도 벌어지는 등 축제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근대역사박물관과 구 군산세관, 조선은행 군산지점, 근대미술관이 된 일본 은행 건물이 아름답게 조명되었다.
뒤쪽으로 군산항의 뜬다리 모습도 예쁜 불빛으로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필자와 친구들은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쪽으로 따라서 길 건너 축제 장소로 이동했다.
그쪽에는 잘 보존된 일본식 절인 동국사와 신흥동 일본식 가옥, 그리고 한석규와 심은하의 아름다운 동화 같았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 사진관도 찾아볼 수 있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골목마다 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거리 축제가 진행되고 많은 관광객과 군산시민이 어울려 밤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긴 골목 끝까지 예전에 있던 학교나, 관공서, 병원, 정미소, 경찰서, 주막 등 여러 임시건물을 지어놓고 관광객에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이벤트도 하는 등 군산시에서 이번 축제에 매우 공들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에선 '소리나무'라는 연주 팀의 고운 선율이 우리를 붙잡아 한동안 몇 곡을 감상하고 박수를 보내주었다. 참으로 낭만적인 밤이다.
일본가옥에 도착하니 실내를 보려면 줄을 서야 했고 긴 줄에도 우리는 기다렸다가 일본가옥의 내부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당한 부잣집이었던 듯 규모가 매우 컸는데 일본인의 생활상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예전 어렸을 때 우리 외갓집도 일본인의 적산가옥이었다. 패망으로 돌아가는 일본인의 집을 외할아버지께서 매입하셨다는데 그 집은 지금 생각해도 나에게는 꿈의 동산이었다.
집안 구조도 재미있었지만, 앞쪽의 넓은 정원이 아름다웠다.
일본인 특유의 정원문화로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정도의 동산이 있고 돌다리가 걸쳐진 연못도 있었다.
돌로 만든 거북도 있고 쭉쭉 늘씬하게 피어 있던 보랏빛 난초도 잊히지 않는다.
군산의 일본인 가옥을 보니 옛 외갓집과 많이 닮아 불현듯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군산 야행의 밤이 깊어갔다.
이런 축제로 인해 군산이라는 도시를 좀 더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떠나기 좋은 가을이다. 모두들 문화가 있는 곳으로 한 번쯤 다녀오기를 권한다.
어느 날 인생 이모작을 잘 준비했다는 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부분이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또 죽을 때까지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는 것. 하기 싫은 일이나 시험을 위해 하던 공부에서 해방되었으니 허락된 시간을 누리자는 생각이었다.
인문학 책을 함께 읽고 나눌 그룹을 찾다가 독서클럽은 아니지만, 글 쓰는 훈련을 하는 그룹이 있어 탐색 겸 백화점 문화센터에 갔다. 보통은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 모두가 말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 글은 좋은데 강의는 엉망인, 작가 반열에 오른 분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잠깐 들어본 강의가 맘에 척 달라붙어서 계속 듣게 되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주옥같은 박식함이 무슨 보석처럼 인생의 경험에 녹아 나오면 수업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강의를 경청하곤 했다. 3개월 12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주 1회 1시간 30분씩 듣는 강의였다.
수필을 쓰고 퇴고를 거치며 글쓰기를 연마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며 경험하는 솔직한 표현들이 좋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따스함으로 가만가만 스밀 때는 저절로 눈이 감긴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수필을 외워서 문학회의 ‘연간 행사’로 무대에 올라 낭송하게 되었다. 원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처음엔 외운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요령은 그냥 반복해서 읽는 수밖에 없다. 어느 단계가 되면 저절로 외워진다. 외우다 보면 작품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고 또 독자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좀 힘들어도 얻는 것은 그 이상이다. 좋은 작품을 외우게 되면 글쓰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부수적으로 발성, 호흡에 대해서도 기본 훈련을 하게 되어 발음이 정확해진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느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고, 무대 울렁증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열심히 외웠어도 보통 7분 정도 소요되는 중간에 잊어버리거나 어색해져서 진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한번은 남여 듀엣으로 아포리즘 고전 수필 낭송을 했었다. 조선 인조 때 문신으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신흠’의 아름다운 수필이었다. ‘숨어 사는 선비의 즐거움’으로 한가로움과 풍류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필자와 남자는 함께 호흡과 감정을 조절하며 연습을 여러 번 했다. 작은 몸짓까지도 맞추며 우린 무대 위 완벽한 커플로 탄생할 참이었다. 그는 감청색 양복을, 필자는 양반가의 여인답게 하늘색 모시 저고리와 연청색 모시 치마를 기품 있게 받쳐 입고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무대에 섰다. 인사도 맵시 나게 연습한 대로 잘했다.
이제 마이크를 숨소리 같은 부담스러운 잡음이 나지 않도록 조절하며 낭창거리는 소리로 낭송을 시작했다. 그와 필자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선비의 멋스러움과 풍류를 살려가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갔다. 필자의 대사가 끝나고 그가 할 차례가 되었다. 시작을 잘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이상하게 같은 대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두 번쯤 그러더니 소리가 끊겼다. 난감했다. 필자는 그의 대사까지 외우지 못했다. 스토리가 연결되는 글은 잊어먹어도 비슷한 내용으로 이어나갈 수 있지만 이런 수필은 단락이 끊어져 있어 외우기도 어렵고 중간에 잊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20개 정도의 단락을 각자 외우고 있었는데 단락의 시작을 찾아야 꼬이지 않고 술술 나오게 되어 있다. 그는 순간 당황했는지 단락의 처음부터 다시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을 맺었지만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혹시 잊었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해도 사람들은 반복이겠거니 생각하기도 한다. 당황하지만 않으면 그럴 일은 별로 없다.
묵독이 아닌 낭독의 문화 즐기기
시는 글이 짧고 은유가 많아 청취자에게 전달이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수필은 작가의 체험에서 나온 글이라 이해가 쉽고 공감이 잘된다. 그 대신 시보다는 외워야 할 분량이 많다는 어려움이 있다. 시와 비교해서 감정을 잘 살리면 즐거운 시간이지만 아니면 지루한 시간이 되기도 쉽다.
작품에 따라 무대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효과음악을 고르고 표정과 작은 몸짓도 연구하고 무대에 오른다. 작품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마치 새로운 연인을 만나듯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
필자는 4년째 기획, 연출, 낭송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함께하는 회원(10명)과 1년에 두 번씩 공식무대를 만들고 외부 초청 낭송에도 응한다. 작가의 강연 때 그의 작품을 낭송해 강의를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꼭 문학단체가 아니라도 격조 있는 모임에서 옛 선비들이 시조를 읊듯 시나 수필 낭송을 원할 때도 있다. 종종 감동한 관객이 끝나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람이다. 얼마 전 어떤 문학회 출판기념회에서 초청, 낭송을 했는데 70명 정도 모이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그 모임 지도교수님의 대표작 낭송이 끝나자 교수님은 벌떡 일어나 젖은 눈으로 다가와 필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 잘했다, 문우들은 그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작품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낭송하는 시간은 마치 앞에 앉은 사람이 필자에게 눈을 맞추고 자신의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듯하다. 그래서 몰입하면 깊은 내면을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입은 낭송 작품당 보통 20~30만원을 받는다.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을 생각해서 그리 주시는 것 같다. 필자는 현재 두 개의 작품이 예약되어 있다. 하나는 피천득 기념 강좌에서 선생님의 작품 ‘보스턴 심포니’를 낭송하고, 또 하나는 일현수필문학회 송년회에서 손광성 선생님의 ‘누나의 붓꽃’을 낭송하기로 되어 있다.
우리 엄마는 충남 예산 사람이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일찍이 고향을 떠나 사셨기 때문에 엄마가 충청도 사람이란 걸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충청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가끔씩 엄마 손맛이 떠오르는 밥상을 받게 되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추석연휴를 마무리 하면서 충남 아산 외암민속마을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한 건 외암마을에서 먹은 시골밥상이 생각나서였다.
외암마을에 들어가려면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야 한다. 표를 끊으며 보니 '외암민속마을을 재밌게 관람하는 방법'이 쓰인 안내판이 보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측으로 쭈~욱 가서 홍보관 영상 보고 상류층, 중류층, 서민층 가옥을 둘러본 다음 자연미 넘치는 돌담을 따라 걸으며 마을 정취를 느껴보길 권하고 있었다. 안내문에 써진 대로 좌측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아빠 무등을 탄 꼬마나 나이 든 부모님이나, 나들이 나온 사람들은 즐겁게 전통가옥을 구경하였다. 담 너머에서 들리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에 옛 추억이 생각난 사람들은 다듬이 체험장에서 신나게 방망이를 두드렸다. 어린 아이들에게 다듬이질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들도 신이 나 보였다.
전시관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면 진짜 마을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고즈녁한 동네가 나온다. 명문 고택과 초가로 된 농가가 한데 어울려 있는 소박한 마을이다. 마을은 온통 돌담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 돌담의 길이가 무려 6,000m에 이른단다. 집 안이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낮게 만든 돌담은 제주도 돌담과는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했다.
돌담길을 걸어 찾아간 곳은 이 마을 유일한 밥집인 신창댁이다. 밭에서 직접 길러 만든 반찬으로 된장찌개나 청국장을 먹을 수 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1인분에 5,000원이니 시골인심이 듬뿍 느껴진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신창댁 아주머니는 가는 길에 먹으라며 막 쪄낸 옥수수를 싸주었다. 내가 미안해 하자 '여긴 아직 촌인심이 살아있다'고 선하게 웃던 아주머니가 생각났다. 아주머니를 위해 달달한 파운트 케익 하나를 준비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구수한 청국장찌개를 먹는 동안 아주머니는 방 안에서 빵을 드셨나보다. 밥을 다 먹었을 즈음, 빵이 너무 맛있다며 밥상도 물리지 않은 상에 다가오셨다. 아주머니와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시부모님 몰래 밤 마실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오려고 하니 시아버지 방에 불이 켜있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쩔쩔 맸던 옛날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었다. 밥도 맛있고 커다란 대청마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것도 즐거웠다. 마치 시골 친척집 아주머니집에 다니러 온 것 같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여유로운 농촌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이 요즘 여행의 트렌드다. 잘 여문 벼들과 감나무, 밤나무, 고염나무 열매가 풍성한 가을날, 외암민속마을을 거닐며 보는 풍경은 한없이 정겹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다. 게다가 외암민속마을 주변에는 현충사나 공세리성당,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즐길거리도 풍성해 당일여행으로도 매력적이다.
10월 21일부터 11월 25일까지 가을여행주간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와 민간기업이 함께하는 국내여행 특별 주간으로, 여행주간 기간 동안은 정부의 지원 아래 지자체, 관광업계가 협력해 전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숙박ㆍ편의시설, 입장료 등을 무료 혹은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가을여행주간(fall.visitkorea.or.kr) 사이트를 둘러보고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러 떠나보면 어떨까.
대중가요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다. 같은 4분의 4박자에서 댄스 곡이든 트로트 곡이든 발라드 곡이든 템포가 좀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가끔 4분의 3박자의 왈츠 풍도 있기는 하다.
댄스를 해보면 초보자들은 3박자의 왈츠는 상당히 어려워한다. 좀 빠른 템포의 왈츠인 비에니즈 왈츠도 마찬가지이다. 3박자에 발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발을 모으고 나면 그 다음 스텝이 어느 발이 나가야 할지 헤맨다. 물론 체중을 3박자로 놓는 연습이 숙달되고 나면 잘 한다. 3박자로 발을 모으면서 체중 이동을 하는 것이 요령이다.
댄스도 대부분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다.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자이브, 룸바, 차차차, 퀵스텝, 폭스트로트가 4분의 4박자이다. 삼바와 파소도블레, 탱고가 4분의 2박자이지만, 왈츠처럼 홀수 박자가 아니고 짝수 박자이다.
왜 노래에 4분의 4박자가 많은지 명확한 이론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사람은 두발로 걷고 짝수 박자로 걸을 때 편안하다. 생각해 볼 것도 없는 것이다. 걸을 때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오른발 왼발이 저절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홀수 박자라면 머릿속으로 염두에 두지 않으면 스텝이 꼬인다.
군대시절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을 하거나 구보를 할 때 졸리거나 몸은 지쳐서 기진맥진해도 다리는 왼발 오른발이 교대로 자동적으로 나가는 것을 체험했을 것이다. 짝수 박자로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해보면 왼발 오른발 교대로 짝수로 발이 나가고 짝수로 호흡을 해야 한다. 홀수로 호흡을 한다면 굉장히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잘 하는 월드컵 응원구호는 ‘대~한민국’ 4박자에 박수 다섯 번‘짝짝~짝~짝짝’하며 엇박자의 비밀이 숨어 있다. 이 때문에 4박자에 익숙하던 서양 선수들이 홀수 엇박자가 나오는 이 구호에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꼈다는 보도가 관심을 끌었다.
필자는 발라드 곡을 좋아한다. 대부분 느린 4분의 4박자이다. 그런데 박자 맞추기가 만만치 않다. 이은미의 ‘녹턴’이나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들어 보면 가사가 잔잔하게 많고 계속 이어지는 편인데 피아노 소리가 오히려 박자를 헷갈리게 한다. 발라드 곡은 한 마디 안에 첫 박자와 세 번째 박자에 액센트를 주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 박자 맞추는 요령이다. 소리로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부르는 사람이 1, 3 박자에서 조금 더 힘을 주면 박자를 타기 좋다.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 명이 여행을 기면 한 사람은 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 셋 중 둘은 가까운데 그러다 보면 한 사람은 처지는 것이다. 그러나 짝수로 여행을 가면 그런대로 둘 씩 보조를 맞춘다. 단 둘이 갈 때는 물론 잘 맞는다.
나이가 들수록 조용한 여행이나 고요한 곳을 찾고 싶어진다. 요사이 조심스럽게 시도하는 것이 있다. ‘혼자 여행하며 얼마나 외로운지 반대로 얼마나 자유로운지 체험해보자’는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선망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정말 쉽지 않다. 천성이 게을러서 일수도 있고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남들은 아무도 내게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그래서 연습할 겸해서 모르는 사람 사이에 끼어 강화도를 택했다. 외세에 항쟁으로 대적한 곳으로 마치 내가 지금 두려움과 싸우듯 그곳을 택했다.
이전에도 2번정도 강화도에 갔었으나 운전할 때는 내비게이션에 길을 맡기고 가느라 지리를 모르겠고, 얻어 타고 갈 때도 얘기하느라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엔 완전 자유로운 몸과 정신으로 떠나면 다르리라 기대한다.
관광안내소 지도를 따라,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도착하니 바로 초지진 앞이었다. 바다로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해 구축한 요새인데 진에는 배 3척과 군관 11명 사병 98명과 돈군 18명이 배속되고 돈대 세 군데를 거느리고 있었다고 한다. 돈대는 지금의 초소와 같이 감시와 공격을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진 아래 돈대가 있는 것이다
이곳은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의 격전지다. 1875년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기 위해 파견한 운요호의 침공은 고종 13년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략의 문호가 개방되기 시작했다.
초지진의 이끼 낀 성벽을 따라 걷고, 폭격을 몸으로 막아낸 노송의 상처를 눈으로 어루만지며 광성보로 향한다. 보 아래 진이 있고 진 아래 돈대가 있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세아함대가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 450명의 육전대가 초지진에 상륙하였다. 이때 구식 무기를 갖고 최신 무기와 대적하느라 군기고, 화약창고 등의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광성보에는 흰옷의 시신, 조선백성들이 거리에 뒹구는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국군은 10명의 병사가 전사했으나 우리 군은 전원이 몰살할 정도로 포로가 되느니 죽기로 항쟁했고 그래서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어재순을 비롯한 군관, 사졸 53인 전원이 순국하였다. 51인의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나누어 합장하여 ‘신미순의총’이라 하고 어 장군 형제의 ‘쌍총비각’을 세워 충절을 기리고 있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 해병대가 약탈했다가 2007년 대여 형식으로 반환한 어재연 장군의 수帥 자기 및 각종 무기류가 전시된 강화 전쟁박물관에서 무기와 갑옷을 보며 속이 불편했다.
열악하고 부족한 상황에서 오직 몸으로 막아낼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 그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방법 외에 무엇이 있었을까. 도망치지 않고 숨지 않고 비굴해지지도 않고 용감하게 싸운 그들이 애처로웠다.
이런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똑똑한 지도자를 보내주기를 지금의 상황에서도 기도하고 싶다.
강화도의 치열했던 전투 현장에 서니 통치자를 잘 못 만나 고통스럽게 죽어야 했던 백성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가슴이 아팠다.
조용한 여행은 사람을 사색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행동이 자유롭다기 보다 마음이 자유롭다. 그래서 역사를 되짚어 보게 되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긴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시간이라고 했다. 패션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여행의 빛나는 하이라이트는 떠나기 전날 짐을 꾸릴 때다. 여행지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지는 짐을 싸는 그 순간 결정된다. 자, 자신의 여행 트렁크를 떠올려보자. 당신은 히말라야 등반을 가는 것도 아닌데 편하다는 이유로 등산화를 챙기고, 쌀쌀한 날씨를 감안해 등산 점퍼를 챙기고, 또 막 입어도 좋다며 등산 바지를 챙겨넣을 것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배낭과 스포츠 선글라스, 아웃도어 모자까지 넣다 보면 지구 어디로 떠나든 트렁크 속은 비슷해진다. 하지만 당신의 여행 티켓에 적힌 목적지는 등반을 위한 곳이 아니라, 유럽의 화려한 도시나 동남아시아의 평안한 휴양지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부터 여행은 꼬이게 된다. 배경만 다를 뿐 속리산 관광객과 똑같은 복장의 사진으로 도배될 것이고, 여행의 특별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영화 은 노년의 영국인 주인공들이 인도여행을 즐기는 내용이다. 최근 2편까지 나온 이 영화는 노년기의 사랑과 삶에 대해 다루고 있다. 머리가 백발이 된 배우들은 인도와 잘 어울리는 실크 아우터나 린넨 원피스, 스카프 등으로 차려입고 나오는데, 그 모습이 인도의 아스라한 배경과 어우러져 감동을 배가시킨다.
당신은 여행을 떠나며 목적지와 어울리는 옷에 대해 고민해본 적 있는가? 여행 패션의 기본은 편안함이지만 스포츠웨어 같은 방식의 편안함은 아니다. 테크니컬한 기능이 들어간 옷보다는 여행지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패션이 필요하다. 요즘 숙박 광고의 카피처럼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일상을 간접체험해 봄으로써 쳇바퀴 같은 삶에서 탈출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백미다. 그 속에서 패션은 아주,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 이제 다시 트렁크를 싸는 여행 전날로 돌아가보자. 당신의 목적지가 도시인가? 그렇다면 편안한 소재에 실루엣이 여유로운 옷을 고르자.
어떤 상황에도 어울릴 옷으로 여자는 롱 드레스, 남자는 면 재킷과 스웨터를 추천한다. 휴양지로의 여행이라면 썬 드레스와 하와이언 셔츠처럼 비치와 잘 어울리는 아이템을 고르자(아웃도어를 입고 바다로 뛰어드는 꼴불견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목격했던가!)
여행 짐은 많을수록 독이다. 우선 어떤 스타일링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기본 아이템 위주로 챙기자. 그러고 나서 한국에서는 입지 못했던 혹은 잘 입지 않았던 가장 화려한 옷도 한 벌 넣자. 여행지에서는 남들 다 가는 패키지 코스를 벗어나 저녁에는 근사한 레스토랑도 가고, 우아한 공연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결코 즐길 수 없는 시간을 그곳에서 만들자. 그 시간을 대비한 갖춰진 옷이 필요하다. 진주 귀고리나 목걸이, 브로치도 챙기자. 남자라면 한국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보타이나 스카프 같은 액세서리도 준비하자. 분명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네일숍은 여행 전 꼭 추천하고 싶은 코스다. 타지에서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탈을 해보자. 튀는 컬러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립스틱도 가장 화려한 것으로 준비하자. 네일 컬러 하나만으로도 기분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패션에 신경 쓴 당신의 여행은 등산복과 함께할 때보다 다채로워질 것이고, 여행 중 남기는 사진 역시 평소와는 다른 당신을 기록할 것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라고 했다.
패션에 대한 당신의 생각도 이젠 변화가 필요하다. 여행 전날 밤, 가져갈 것과 남겨놓을 것을 챙겨보며 담아올 것과 버리고 올 것을 생각하는 시간. 그때가 바로 여행의 빛나는 하이라이트다!
5070세대는 먹고살기 힘들었던 헝그리(hungry) 세대다. 악착같이 모으고 아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신보다는 가족, 소비보다는 저축이 몸에 배어 있다.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아까운 줄 모르지만 ‘나’를 위해 쓰는 것은 몇 번이나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5070세대다. 필자의 부모님도 평생 자신을 위해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은 적이 없는 분들이다. 어쩌다 자식들이 좋은 옷을 선물로 드리면 “이건 얼마짜리냐?”, “환불은 안 되냐?” 하며 자식들 눈치를 본다.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 소비하는 것에 인색하고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5070세대가 모으고 아끼고 저축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투자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누리면 어떨까? 이에 이번 호에서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이하, 나·행·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 원칙을 살펴보고자 한다.
소유가 아닌 경험을 위해 소비하라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호 교수는 “행복의 기준이 과거에는 돈을 어떻게 버느냐에서 이제는 돈을 어떻게 소비하느냐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비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소비는 크게 ‘소유를 위한 소비’와 ‘경험을 위한 소비’로 나눌 수 있다. 과거 5070세대는 소유하기 위한 소비가 대부분이었다. 가령 자동차, 집, 옷 등을 소유하고 사용하면서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소비의 행복감은 단발적이고 일시적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위한 소비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령 학습하며 강의를 듣는 것, 여가활동,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체험하며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소유보다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훨씬 행복감이 크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경험은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가장 선호하는 여행([자료1] 참조)을 예로 들어보자. 여행을 떠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왜 그럴까?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는 경험을 통해 나만의 이야기가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5070세대에게 ‘경험하고 체험하는 소비’는 익숙하지 않다. 경험을 위한 여가활동은 기껏해야 TV 시청 정도뿐이다. 5070세대가 성장해왔던 과거 1970년대에는 마땅한 여가 활동도 없었다. 화투 정도가 전부였고 1980년대에 와서야 도심에서 탁구, 당구, 볼링, 테니스 등을 즐겼다. 최근에는 골프와 캠핑 등도 여가활동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경험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여가활동이나 여행일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좌표를 배움에서 찾는 5070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 60세 이상 학점은행제 등록자는 2만2915명(대학학점인정 과정 기준)이며, 55~64세의 평생교육 참여현황은 OECD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교육과학기술부 국가평생교육 통계조사). 또한 지난 2013년에는 1972년 방송통신대 개교 이래 최고령자인 정한택(입학 당시 91세)씨가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5070세대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비’를 위해서는 ‘갖고 싶은 것’에서 ‘하고 싶은 것’으로 소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서도 여가활동의 주역이 10대에서 60대 이상으로 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생산성본부에 따르면, 고수입의 활동적인 70대가 레저시장의 주도세력이다.
유병장수시대 행복하게 하는 소비
과거 학창 시절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을 기억할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 따르면, 사람은 의식주와 안전의 욕구가 해결되면 상위 욕구로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받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궁극적으로 꿈꾸고 싶어 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욕구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이론이자 경험론이다. 나·행·소 관점에서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1단계 생리 욕구는 의식주 관련 소비로, 2단계 안전 욕구는 건강 예방을 위한 소비로, 3단계 소속감 욕구는 친구/동호회 활동을 위한 소비로, 4단계 존경 욕구는 학습/교육 활동을 위한 소비로, 5단계 자아실현 욕구는 여행을 위한 소비로 매칭할 수 있다([자료2] 참조).
앞서 필자는 ‘경험을 위한 소비’가 나·행·소 첫 번째 요소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매슬로우 욕구 이론에 따르면 모든 5070세대가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제아무리 빼어난 경치라도 당장의 배고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은퇴생활을 하는 5070세대의 소비 성향과 욕구도 동일하지 않다. 은퇴 후에 소득이 중단되어 의식주 관련 소비가 전체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자료3] 참조). 여기에 의료, 간병을 위한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경험을 위한 소비’는 사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5070세대가 나·행·소를 위한 소비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소비욕구 5단계에 따르면 1, 2단계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화와 건강과 관련된 소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은퇴재무설계 관점에서, 자산을 모으는 웰스(wealth)가 아닌 건강을 지키는 헬스(health)에 관심을 갖는 50대가 많아지고 있다. 건강이야말로 최선의 노후대책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아닌가. 건강하지 못하면 노후생활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준비된 노후자산은 조금 부족해도 몸이 건강하면 긴 노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산의 품질이 아닌 몸의 건강품질을 높이는 소비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어쩌면 건강은 목표가 아닌 수단이 될지 모른다. 건강을 통해 더 젊게 살고, 더 즐겁게 살며, 더 행복하게 사는 궁극적 가치에 한발 다가서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잘 먹고, 건강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비야말로 나를 지키고 행복하게 하는 소비가 아닐까?
Clean & Dress up 소비에 인색하지 말라
몇 년 전 개봉한 라는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퇴직 후 은퇴생활을 즐기다 시니어 인턴으로 일하는 70세 노신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주인공(로버트 드 니로)은 다운타운에 방 여럿 딸린 자택을 소유한 나름 성공한 중산층이다. 비록 아내와 사별했지만 자녀도 별 탈 없이 잘 자라 독립했고, 취미로 요가나 화초 재배를 하며, 가끔 손자 재롱 보는 것을 삶의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평범한 은퇴세대다.
주인공은 혼자 사는 은퇴세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소 옷매무새 하나도 빈틈이 없다. 그는 언제나 젊은 사람보다 더 깨끗하고 말끔한 시니어다. 옷차림새뿐만 아니다.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한다(Clean up). 수십 년 직장생활에서 비롯된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 경험은 CEO뿐만 아니라 젊은 직장 동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액티브시니어들도 나이가 들수록 옷차림에 더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옷은 비즈니스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편한 게 좋은 것이여!”라며 집에서도 외출할 때도 늘 입는 아웃도어 복장은 아닌지 살펴보라. 이왕이면 깔끔하게 잘 갖춰 입고(Dress Up) 다니자. 나이 들수록 깨끗하게 잘 차려 입어야 한다.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반듯하게 차려 입은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손주들도 좋은 향기가 나는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 무엇보다 잘 차려 입은 옷은 자신감을 더해준다. 그러므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Clean & Dress Up 소비’에 절대 인색하지 말자.
여기에 잘 웃는 부부가 있다. 남편의 인상은 얼핏 과묵해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빙그레 슬며시 웃는 얼굴이다. 아내의 얼굴은 통째로 웃음 그릇이다. 웃음도 보시(布施)라지? 부부가 앉는 자리마다 환하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귀농을 통해 얼굴에 정착한 경관이라는 게 아닌가.
엎치락뒤치락, 파란과 요행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라는 미스터리 극이다. 조물주는 낮잠을 주무시다 깨어 심심하면 인간을 공깃돌처럼 가지고 논다. 이랬다저랬다, 줬다 뺐었다, 횡포가 심하다. 그러나 인간은 뜻밖에도 견고한 작품이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고도 멀쩡한 사람이 있다지 않은가. 지금 내 앞에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곽성진(75)·이옥희(71)씨 부부 역시 일종의 날벼락을 맞은 바 있다. 그러나 끄떡없다. 쌩쌩하다. 도시라는 정글을 벗어나 참신한 시골생활을 누리고 있다. 산봉우리들이 덩실덩실 강강술래를 하는 소백산 자락, 옴팡진 산촌에 산다.
전남 여수에서 태어난 곽씨는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으며, 결혼을 했으며, 사업으로 오랫동안 승승장구했다. 선박부품업체를 경영했었다. 알아주는 눈들이 많은 사장이었다. 그러나 인간사가 흔히 그렇듯, 그가 구가했던 꽃길은 어느 사이 가시밭길로 바뀌었다. 졸지에 파산하면서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길바닥에 나앉아야 할 지경이었다지. 곽씨의 얘기를 들어볼까.
“완전한 추락이었어요. 그렇다고 주저앉아 굶을 수는 없는 일이라서 리어카를 장만해 포장마차를 차렸어요. 부끄럽습디다. 아내가 용기를 주더군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해야 한다고…. 아내는 안주를 만들고 저는 손님들 시중을 들었어요. 다행히 장사가 잘됐어요. 잘나가던 시절에 일식집을 수시로 드나들던 가락을 살려 일식집 스타일의 안주와 술을 내놓았는데, 그게 적중했어요. 단기간 내에 소문이 좋게 났죠. 제법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그 자금으로 통닭가게를 인수해 운영했고, 그 역시 매우 번창했어요. 이후 아내는 일식집을 개업했고, 저는 건축업에 나섰어요. 그런데 이 건축업에서 다시 철저하게 무너졌어요. 두 번째 도산을 경험했던 겁니다.”
온탕과 냉탕을 거듭 넘나들었구나. 그 와중에 세월이라는 도적은 곽씨에게서 젊음을 앗아갔다. 쓸쓸하고 스산한 황혼의 동구에서, 그는 황급히 다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초원을 뒤덮은 풀처럼 수북한 걱정과 불안이 주야간에 어깨를 짓눌렀을 것이다. 이때 그의 등을 툭툭 치며, 임이시여, 걱정 마소서, 까짓것 다시 시작하면 그만 아니겠소, 라는 투로 당차게 재기를 독려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 이옥희씨였다. 시골로 가자고, 농사를 짓자고, 소박한 낙원을 일구자고, 아내는 그리 주동했다. 곽씨는 선선히 응했다. 강인한 기질과 낙천적 근성을 겸비한 아내의 민첩한 상황 판단력을 믿어서였다. 부부는 즉시 귀농을 결행했다. 그게 10여 년 전의 일. 결과는 성공적. 비결은 근면 혹은 부부애. 옛일을 회고하는 곽씨의 언사는 수굿해 온순한 성정이 묻어난다.
군내에서 손꼽히는 강소농(强小農)
“여기 예천군 은풍면 산촌은 원래 아내의 고향입니다. 아내에겐 유난한 향수가 있었어요. 늘그막엔 고향에 돌아가 살자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사업 파산이 결국 아내의 숙원을 이루게 한 셈이니 사람의 일이라는 게 참 묘하죠. 물론 부담이 없지는 않았어요.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가, 게다가 모든 걸 잃은 빈손으로, 과연 시골 정착이 가능할지 불안했어요. 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거처를 마련하는 일, 농지를 구하는 일, 뭐 하나 만만한 게 없었겠죠?”
“아내의 친지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덕분에 자립이 가능했어요. 특히 처남이 집과 배 과수원을 빌려주고 농사를 도와줘 비교적 순탄하게 자리를 잡아나갈 수 있었죠.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사기술을 부지런히 배우기도 했고. 주 작목은 배였어요. 생과 상태로 출하하기도 했지만, 배즙 가공이 그보다 세 배쯤 소득이 높다는 걸 알고 배즙 생산에 집중했죠. 요즘은 칡즙, 양파즙, 가시오가피즙, 헛개나무즙도 생산합니다.”
“판로 확보는 어떤 방식으로 했죠?”
“미국의 자동차 판매왕 조 지라드의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게 주효했습니다. 그는 한 개인이 평균 250명 정도와 인맥을 형성한다고 봤습디다. 여기서 그의 성공철학인 1대 250 법칙이 만들어집니다. 한 사람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그와 연결된 250명에게 호감을 사는 것과 같다는 논리죠. 공감이 됐어요. 그래서 제 주변의 친척, 친지, 친구 등 지인들과의 유대 형성에 공을 들였어요. 그게 판매망이 되었어요. 현재 제 핸드폰엔 2300명쯤의 고객명단이 입력돼 있습니다.”
곽씨는 이른바 6차 농업을 구현하고 있다. 1차 농업은 생산을, 2차는 가공을, 3차는 체험이나 관광 농업을 말한다. 이 셋을 통합한 게 6차 농업이다. 그의 농장 ‘소백산 웰빙농원’은 예천 군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소농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이는 거저 얻어진 성취가 아니다. 지진을 겪은 사람은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지진이 우리의 발밑을 서성거리는 걸 안다. 심혈을 기울이고서야 재앙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곽씨 내외는 온몸을 써 농사에 매달렸다.
내외가 농장에 쏟은 비지땀이 몇 드럼에 달할지는 뒷산 신령에게 물어보면 알 일이다. 땀뿐이랴. 부단한 열정, 상황을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정신, 패잔병처럼 여기는 눈총을 감수하는 뱃심까지 가세했을 테지. 예순이 넘은 빈털터리 늦깎이로 농사에 입문, 마침내 기세를 돋운다는 건 아마도 거의 이변이다. 곽씨는 은연중에, 노년의 귀농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대단한 소득을 올리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농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비유하자면, 작은 옹달샘 하나를 팠는데 거기에서 사시사철 샘물이 찰랑거린다 할까? 이 옹달샘은 계속 퍼 써도 마르질 않아요. 계속 샘물이 솟구치니까. 덕분에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어요. 큰 분의 뜻이리라. 제가 천주교인입니다.”
“머리 좋고, 의식 있고, 신념 강한 젊은 사람들조차 고전하는 게 귀농생활이라고들 해요. 정착 과정에서 가장 힘든 건 어떤 점이었나요?”
“초기엔 괜히 왔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어요. 농사에 문외한이었다는 것, 그게 가장 난처했어요. 눈앞이 캄캄하더라고. 그러나 일단은 생계 문제가 워낙 다급해서 잡념을 거두고 일에만 몰두했죠. 실로 앞만 보고 달려왔어요. 만만한 게 하나 없었지만 다 헤쳐 나왔어요. 사실, 맨손으로 시작했지만 겁날 건 없었어요. 왜냐면, 형편이 더 나빠질 수는 없었으니까(웃음).”
자연과 교제하며 산촌을 노니는 부부
사람의 난제는 대체로 시간이 해결해준다. 슬픔도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적응된다. 그러나 생계의 문제는 질이 다르다. 굴러떨어진 밑바닥 자체를 디딤돌로 삼아 기어이 뛰어올라야만 한다. 귀농은 그에게 비상 발령이었으며, 결과는 승전이었다. 도시에 버텨 재기를 꾀하기란 어려웠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에게 도시와 시골의 장단점을 묻자 돌아오는 답이 이렇다.
“온갖 상품 시장과 문화가 구비된 도시의 편리성에 비하자면 시골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게 사실이죠. 가령,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선 수십 리 먼 길을 달려 나가야만 하니까. 그러나 시골에선 자연과 동화하는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명백한 장점이 있죠. 반면에 도시는 주로 인간끼리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고 말이죠. 경쟁과 소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골에 비해, 물적 조건이 중시되는 도시에선 정서적 안정을 취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대한 단점이라 봐요. 경제상의 기회가 많다는 건 도시의 최대 장점이겠고.”
“시골의 자연이 좋다지만, 날이면 날마다 이어지는 적막 속에 사는 일은 때로 고역이지 않을까요?”
“단골 고객이라든가 도시의 지인들이 스스로 찾아와 식사와 대화를 즐기고 돌아갑니다. 그리운 벗들을 불러들여 회포를 푸는 일도 낙이에요. 고즈넉한 산촌에 살지만, 나름의 사교가 적절히 이뤄지는 것이죠. 갑갑증을 느끼진 못하고 살아요.”
“마을 주민들과의 소통에 잡음은 없었나요?”
“이곳이 아내의 고향이라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에 용이했어요. 아내가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맹활약을 하기도 했죠. 농토에 질긴 애착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원주민들에겐 특유의 자기 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존중해야 할 대목이라 봐요. 과거의 시골 정서라는 게 붕괴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죠. 그러나 음식을 이웃과 나누길 즐기는 풍습은 여전합니다. 몸에 밴 나눔의 문화랄까. 이런 면은 꾸준히 지속되고 전승되면 좋겠어요. 그런데 남모를 고독을 느끼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호남 태생인 제가 영남에서 산 세월이 55년인데 아직도 호남사람이라며 은근히 무시한다는 거! 선거철엔 아예 입을 봉하고 살아요. 무시무시한 분위기라서(웃음).”
산등성이를 올라 사과 농장으로 들어선다. 사나운 8월의 폭염이 사과나무 잎사귀에 쏟아진다. 나무 아래론 푸른 그늘이 짙어 땀을 씻을 만하다. 재기를 목표로 삼아 귀농, 어언 70대 복판에 접어든 부부는 여전히 일벌레다. 그러나 사람이 일만 하면 무슨 재미? 여흥과 일락(逸樂)이 없다면 반쯤은 허사다. 부부는 자연과 교제하는 일로 산촌을 노닌다. 아침 햇살에 새벽안개가 어떻게 해산하는지를, 밤이면 별들이 모여 무슨 잔치를 벌이는지를 유심히 관람하겠지. 감관이 열리고, 촉수가 파랗게 서겠지. 그것으로 어쩌면 범람처럼 덮쳐오는 노년기의 우수를 능히 해치울 수도 있으렷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너럭바위, 사계 내내 짙푸른 솔숲에 번번이 눈이 가고 마음이 움직여요. 나 같은 노년에도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귀농으로 얻은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에요. 그럼에도 이즈음엔 다 부질없다는 허무감이 듭니다. 애초의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는 만족감 뒤에 찾아오는 허탈과 허무. 무엇으로 그걸 극복할지, 요즘 자주 생각에 사로잡혀요. 제가 말이죠, 사후 묘비명을 정해두기도 했어요. ‘여기 아내를 몹시 사랑하다가 떠난 사람이 묻혀 있다.’ 이게 제법 근사해 보였어요. 그러나 그마저 부질없다 느껴지는, 이 허무감의 정체는 무엇일꼬.”
인생의 황혼에 귀농이라는 새벽길을 훤하게 열어젖힌 사람의 눈가에 그늘이 서린다. 허무의 심연을 무슨 수로 건너나. 그는 화두 하나를 집어든 셈이다. 파란하늘에 뜬 흰구름 몇 조각, 당싯당싯 산을 넘는다.
박원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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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문예창작과에서 배운 작가. 오랫동안 자연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을 좋아할수록 아득해지는 미스터리가 늘 그를 궁리하게 만든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안목을 얻는 일의 요원함을 실감한다. 그가 즐기는 것은 산촌의 적막, 암자의 풍경소리, 낯선 여행지의 선술집, 우연한 만남 등이다. , , 등의 저서가 있다.
작품을 보면 화가의 심성을 짐작하게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화가 중엔 단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나 에드바르트 뭉크(Edward Munch, 1863~1944)가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이들의 작품은 ‘미술 심리’, ‘미술 치료’ 분야에서 연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종교화가 아닌 작품에서 따뜻한 이해와 배려를 고스란히 담은 화가가 있으니, 바로 우리네 풍속과 풍광을 작품에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 1887~1956)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직후 우리 땅을 밟은 키스는 많은 작품과 함께 소상한 인상기도 남겼다. 그중 3·1 독립선언서에 대한 글을 보면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독립선언서에서 발췌한 다음 글은 성명서라기보다는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인류애의 깃발 아래 목숨을 바친다.
구름은 검어도 그 뒤에는보름달이 있나니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약속하도다.
Under humanity’s flag let us perish.
Shadowed from the great black cloud is perfect round moon
Which to us great hope will show.
에서 발췌
그리고 그는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라는 글을 여러 번 남겼다. 또한 키스는 일본,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를 여행하며 각 나라의 문화를 고루 체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작품과 글을 통해 한국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분명하게 표출한 것은 참으로 놀랍다.
키스의 작품 중엔 ‘종묘 제례 관리’란 제목을 붙인 그림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바로 그 선비에게서 ‘의젓한 몸가짐’을 보았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 속에서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느낀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는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을 사랑한 엘리자베스 키스는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작품에 담아냈다.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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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
나는 굽이굽이 숲 속 사이에 자리 잡은 공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붉은 화로가 이어진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짙푸른 나무 숲, 맑은 물, 흐르는 산골 출신이라 생각할 테지만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 도시로 이사한 이후에도 이모가 살고 계신 그곳으로 방학 때가 되면 찾아갔다. 내 고향 공장 근처 저수지에서 죽어 있는 물고기들을 발견했고 다시는 그 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푸른색 자연이 전부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사라지는 자연을 목격하다
태생적으로 자연에 관한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20대 초반 환경단체의 일원이 됐고 잠시나마 단체의 간사로 활동했다. 쓰레기를 줄이는 것 말고도 환경을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고, 보지 않으면 모를 사회문제를 하나씩 알게 되면서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중·고등생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새만금간척사업의 당위성은 정당하지 않았다. 뉴스도 믿을 게 못 됐다. 누군가 사실을 왜곡하고 포장해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자연에게 해 왔다. 자연이 사라진 첨단 미래 도시가 멋질 것이라 상상하고 꿈꿨던 어린 시절이 부끄러웠다.
환경단체 회원과 간사로 마주했던 과거의 환경 관련 사업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치열했던 순간인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과 지율스님의 기나긴 단식으로 기억되는 천성산 도롱뇽 소송, ‘녹조라떼’ 논란 4대강 사업 반대운동 등이 있었다.
‘환경을 보호하자’, ‘자연을 살려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 사업을 막아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새만금에 살던 백합조개는 물길이 막혀 죽었고, 철새들은 내려서 쉬고 먹을 공간을 잃었다. 도롱뇽이 살던 곳에는 큰길이 뚫렸고, 4대강 사업은 새 정부가 전면 재조사 방침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자연은 이미 훼손됐다. 자연은 끝 모르는 발전 욕구,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는 조급함이 각인된 이들에게 아주 쉽게 숨통을 조일 수 있는 상대였다.
순간적으로 몇몇 소수는 이득을 봤다. 국민들은 개발 주체들이 내놓은 청사진에 환호하다 사업이 미진하다 싶으면 이에 화내기는커녕 잊기 바빴다. 현재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혹여 어떤 이는 내 일이 아니니 괜찮다고 할 것이다. 과연 남의 일일까? 국책사업에 들어간 돈은 우리 모두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매일 중요 뉴스로 보도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 관련한 갑론을박, 끝난 줄 알았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재점화, 밀양 송전탑 문제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이 이 나라 주인 우리의 일이다.
옥자, 미자 그리고 나
영화 는 마치 고향 산천과 공장,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의 허황된 탐욕 덩어리인 슈퍼 돼지 ‘옥자’를 스리슬쩍 무공해 자연에 옮겨놓은 모습이 산속 연기를 뿜던 공장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지금까지도 자연은 도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인공 자궁 역할을 강요당하고 있고 결국 남은 것은 폐허뿐이다. 정복하고 착취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겠지만 후회해도 다시 예전으로 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살아서 숨 쉬는 모든 자연은 존엄하다. 사람 또한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눈 딱 감고 뺏고, 쉼 없이 사용하고, 버렸다. 자연은 점점 사라졌고 자취를 감출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멀어지고 사라져 버리는 자연을 제자리에 놔두고 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고민이 모여 생겨난 것이 바로 환경단체다. 영화에서 옥자를 구하는 ‘ALF(동물해방전선)’처럼 적극적인 행동으로 환경 문제에 파고드는 것뿐만이 아니다. 환경과 관련해 시민 참여를 일깨우고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행동들을 보급하고 알리는 역할도 환경단체의 중요한 임무다. 각 단체의 크고 작은 실천 운동은 정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도시 텃밭과 장터, 빈 그릇 운동, 환경 관련 실태 등을 조사하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생명을 지켜가는 녹색연합
녹색연합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반대의 중심에 서 있는 박그림 공동대표와 함께 백두대간과 서울 주요 등산로 실태조사를 실시해왔다. 걷기 열풍으로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수용 한계에 다다른 전국의 등산로는 깊게 패여 몸살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녹색연합이 조사해 알렸다.
산양보호운동 또한 녹색연합 활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 통해 경북 울진 지역 주민과 소통을 해오다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을 정착시켰다. 예약탐방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방문 전 인터넷을 통해 예약해야 숲길을 이용할 수 있다(uljintrail.or.kr). 지역주민 해설사와 반드시 동반 탐방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환경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주는 좋은 사례다. 녹색연합의 홍보모금 담당 부서의 상상공작소 박효경 팀장은 ‘불편해도 괜찮은 여행법’이라는 가이드를 만들어 자연을 대하는 기본 예의를 정리해 주었다.
‘불편해도 괜찮은 여행법’
1. 여행의 기본은 텀블러와 에코백.
2. 환경에 무해한 세제 사용. 비누, 치약, 자외선차단제 중 하나라도 친환경용품 준비.
3.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시설과 음식 선택. 여행지의 문화를 깊게 체험하고 지역경제에 도움을 줄 것.
4.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만나자. 렌터카 이용 시 소형차나 하이브리드차를 고르자.
5. 외출 시, 전등과 냉난방 꼭 끄기.
6. 희귀 동식물로 만든 기념품은 사지 않고, 보신 음식은 먹지 않는다. 야생동물이 있는 숲에서는 조용히 걷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잠시 머물다 온다.
여자라면 꼭! 알자!-여성환경연대
여성환경연대는 여성생태학적(에코페미니즘) 관점에서 모든 생명과 환경을 바라보는 곳이다. 지금 이곳에서 펼치고 있는 운동 중 여성 생활과 가장 밀접하고 친밀한 것이 월경문화캠페인 ‘나는달’과 ‘화장품 다이어트’다.
과거에 당연하게 여겨지던 생리대인 면 생리대가 ‘대안 생리대’로 불리면서 다시 세상에 돌아온 이유는 시중에 판매되는 일회용 생리대 속 성분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일회용 생리대에 포함된 성분을 표기하는 ‘전성분표시제’가 현재까지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플라스틱 소재를 쓰고 있는 일회용 생리대는 통풍이 되지 않아 피부가 짓무르거나 체온으로 인해 세균 번식이 쉽다. 13세에서 50세까지 약 37년 동안 여자는 약 1만1100개의 생리대를 사용한다. 이는 매년 여의도만 한 숲을 파괴해야 가능하단다. 여성환경연대는 최대한 면 생리대를 삶아 쓰는 것을 권하고 있으나 그게 어렵다면 적어로 향이 없는 제품을 고르기를 권한다. 향이 있는 제품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수치가 높다.
화장품 다이어트의 기본은 천연 제품을 사용하고 불필요한 기초화장 단계를 줄이고 적게 씻는 것이다. 기초화장은 천연비누로 세안 -> 토너 -> 로션/에센스/크림 (중 하나만) -> 자외선 차단제 4단계로 충분하다. 폼 클렌저, 클렌징 오일 등 클렌징 제품으로 화장을 지운 다음 이중 세안은 진한 색조화장이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다고.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화해’를 통해 화장품 전 성분 표시를 확인하고 화장품을 사용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되도록 무향, 무색소 제품과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을 이용할 것과 영·유아에게 탈크가 함유된 파우더 사용하지 않기 등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을 안내하고 있다.
화장품 다이어트의 각질 제거 TIP!
베이킹소다 혹은 곡물가루 이용한다. 일주일에 1~2차례 소다(탄산수소나트륨 혹은 베이킹소다)나 쌀겨를 물에 적셔 얼굴에 바르고 부드럽게 마사지 한 후 미지근한 물로 헹군다.
당신 손 안의 스마트폰 오래오래 소중하게 다루세요.-그린피스
그린피스에서는 이제 실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스마트폰 등 IT 관련 분야에 관해 접근하고 있다. 애플사에서 2007년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았을 당시 손 안의 혁신을 가져다 준 창조적 결과물에 감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사람은 쓰고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안 쓰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2G 핸드폰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했고 아이폰과 삼성 갤럭시의 신모델이 출시돼도 프로그램이 안정적이지 않다며 초기 모델을 선호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다가왔다. 이상한 것은 과거에는 가능했던 스마트폰의 기능이 현재는 사라지고 있다. 메모리 카드로 저장 공간을 확장을 못하고 배터리도 본체와 일체형이라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교체할 수 없다. 기계의 결함과 고장, 침수 등 고장이 났을 때도 수리를 맡기지 않고 새 상품을 갈아타버린다.
매년 출시되는 신모델에 발맞추다 보면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스마트폰을 대세에 떠밀리듯 바꿔버린다. 제품 수명이 줄어들면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제조업체사다. 무엇보다 충분한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기계를 자주 바꾸면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된 자원, 에너지, 인력 등의 낭비가 가속된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를 채굴하기 위해 콩고의 가난한 광부들은 지도나 안전장비 하나 없이 깊은 땅속에서 질식과 매몰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2년 2개월이며 18세에서 35세 사이 연령층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90%를 넘어섰다. 우선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품과 부속을 재사용하고 폐기된 기기에서 가능한 새로운 제품의 원료로 많이 재활용해야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그린피스는 재생가능에너지로 제조하는 것 또한 자연을 위하고 자원을 낭비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