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필자에게는 오랜 인고의 시간과 이를 극복한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8남매를 둔 처가의 셋째 딸로 고생 모르고 살다가 장남인 필자에게 시집온 이후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느라 힘들게 살았다.
요즘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보물처럼 사랑스럽기 짝이 없다. 달덩이같이 아름다운 나이에 월세 방에 사는 필자
사별한 김준기(79)씨는 15세 차이 나는 아내와 1995년 재혼했다. 현재 결혼생활 22년,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직 신혼이나 다름없다. 김준기씨는 평생을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힘들고 고단한 농촌계몽운동, 야학, 4-H연구회 등 사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내와의 일상에 대해 묻자 그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가득해진다.
재혼한 부부에게 ‘가족’이
직장 후배가 내가 퇴직을 했는데도 해마다 우체국에서 구입하는 새해카드를 보내오는데 해마다 보내오는 정성도 고맙지만 그 귀한 카드를 어디서 구해오나 하고 카드 뒷면을 살펴보니 우정국 카드다. 지금은 IT산업의 발달로 다양한 그림과 문자를 카톡이나 메일로 주고받으며 종이로 된 옛날식 카드는 보기도 귀하다. 세상이 너무 급변한다. 몇 년 전만해도 년 말이면 크리
1977년 10월 24일 김포공항.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기.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생이별을 앞둔 인파로 가득했다. 한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형제, 자매와 조카까지 모두 공항에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힘줘 잡은 두 손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곧 먼 이국의 땅으로 떠날 파독(派獨)광부들을 환송하는 자리. 그 자리에는 만삭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병신년 원숭이해가 저물고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으면 희망과 포부를 이야기하며 덕담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인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블렉시트나 미국의 대선으로 야기된 세계정세의 변화와 유래 없는 국내 정치의 혼란, AI로 인한 농가 피해가 사상 최대에 이르는 등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2017년 새해에도 걱정이 줄
지방 근무할 때 퇴근 후 무료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위해 어학원을 다녔는데 어학원에는 필자의 딸 나이와 버금가는 20대의 여성공무원이 같은 수강생이 있었다. 내친김에 실전경험을 쌓기 위한 개인교습도 받았는데 여성공무원과 단둘이 희망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같이 수업을 받으니 자연스럽게 많은 대화를 하면서 신상파악을 할 수 있었다. 예쁘고 활달하고
성탄절 낮의 종로 3가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잔잔한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울려퍼지는 전철역에는 구세군 냄비소리가 요란했다. 필자는 북적이는 인파를 비집고 부지런히 약속 장소로 향했다. 종로 3가 전철역 1번 출구 앞에서 아내와 만나 꼬불꼬불한 먹자골목으로 들어가 안쪽에 위치한 보쌈집으로 갔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벌써 와서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
연극 연출가 김정숙(金貞淑·56)에 대해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녀를 존경해”, “멋있어”, “사랑해”.
‘김정숙’이란 이름이 거론되면 하나같이 천사를 만난 경험담(?)을 쏟아내곤 했다. 한 번쯤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기회가 없었다. 새뮤얼 베케트의 연극 에서 끝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씨처럼. 만나보자.
예전 같으면 대한늬우스에 나올 만
맛있는 음식이 있을 때 맛난 음식부터 먹고 나서 다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맛난 음식을 제일 나중에 먹는 사람도 있다. 필자는 후자에 속한다. 각자 음식에 대한 자기 철학이 있으니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요즘 ‘휴가’라는 단어는 ‘여름 휴가’를 줄인 말처럼 사용된다. 7월 말에서 8월 초에 사람들은 메뚜기 떼가 이동하듯 도
김진 세계문학사 편집장
비로소 편안해졌다
20대, 30대의 소위 결혼 적령기를 지나 40대에 이르도록 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결혼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혼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자리에서나 ‘남자’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고, 나는 원하지 않는 대답을 강요받아야 했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지? 그래도 결혼은 할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