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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가 준 선물
- 교직생활 33년 동안 많은 제자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문학과 음악을 좋아하는 필자와 감성이 잘 통해 따르는 제자들이 여럿 있는데 희영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제자다. 1997년 4월, 필자를 무한히 감동시킨 제자는 바로 희영이다. 햇님이 사랑스런 4월 하순 무렵이었다. 손에 꽃을 한아름 안고 희영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아니 희영이가 웬일이니? 그 바쁜 고3 학생이." "집에서 공부를 하다가 밖을 내다보니 꽃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문득 꽃을 좋아하는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그래서요. 조금 있으면 꽃이 질 거잖아요. 꽃이 지기 전에 선생님께 예쁜 들꽃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입시공부를 하고 있던, 일분일초가 아쉬운 고3 제자가 하던 공부를 뒤로 하고 필자를 위해 만든 꽃다발이라니…. 그것은 마음으로 만들어진 꽃다발이었다. 수줍게 꽃다발을 내미는 19세 소녀의 예쁜 얼굴은 살포시 웃고 있었다. 흰색, 분홍색, 노랑, 보라 등 다양한 색상의 꽤나 묵직한 꽃다발을 받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냉이꽃, 라일락, 아이리스, 배꽃, 애기씨꽃, 살구꽃, 민들레꽃, 제비꽃 등 완전 봄꽃의 향연이었다. 일반 꽃다발과 꽃의 구성이 많이 다른,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희영이표 꽃다발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예쁠 수가!" 꽃들을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찾아 다녔을까! 필자를 위해 값진 시간을 내준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기에 코허리가 시큰했고 가슴에 기쁨의 물결이 넘실댔다. 이제까지 받아본 꽃다발 중 단연 으뜸인 이 꽃다발은 필자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는 최고의 소중하고 향긋한 꽃다발이다. 요리는 사랑이고 정성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만드는 요리는 예술이 된다. 2년 전 우리 집에 찾아온 희영이에게 필자는 닭볶음탕과 주꾸미볶음 등을 정성껏 만들어 대접했다. 필자가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희영이를 집으로 불렀다. 필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직접 만든 음식부터 먹이고 싶어 한다. 음식 맛은 정직하다.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쓰고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면 맛있게 되어 있다. 필자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고 행복이었다. 향긋한 국화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서양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한 희영이는 그동안 플로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같은 관악구에 살고 있어 올봄에는 맛있는 상추를 한 보따리 갖다 주었다. 주말농장에서 무농약으로 직접 키운 로메인이라는 상추는 아삭아삭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희영이가 필자에게 준 것들은 항상 최고였다. 학창 시절에 갖다 준 배 맛도 잊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삭아삭 달콤한 즙이 가득 찬, 완전 꿀맛이었던 그렇게 큰 배는 처음 보았다. 과수원집 딸인 희영이는 아마도 제일 좋고 맛있는 것을 필자에게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싶다. 희영이가 갖다 준 상추를 마트나 백화점, 재래시장 등 여러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어디에도 없다. 배도 그렇게 맛있는 배는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것들이 사랑스러운 제자 희영이가 필자에게 준 아주 소중한 선물들이었다.
- 2018-02-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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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밤에 쓰는 편지
- 문형! 독하게 추운 겨울입니다. 한파가 그야말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수도가 얼고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도 성장을 멈추어 서민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이은 화재 참사도 한파 이상으로 춥게 합니다. 기후 온난화를 꽤 걱정했으나 올겨울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입춘 절기가 코 앞인데 추위는 물러갈 줄 모릅니다. 예전부터 입춘 추위가 있다 했으니 봄기운은 더 멀리 머물고 있나 봅니다. 이런 겨울이면 지리산 청학동 계곡 언덕배기 자그마한 마을 초가집에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 방문 틈새로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막기 위하여 문풍지를 달곤 했습니다. 요즘 같은 좋은 바람막이가 아닌 종이를 잘라 풀로 붙여 칠흑 같은 자정이면 고요를 타고 문풍지를 울리며 찬바람이 새어들기 마련이었습니다. 문형! 집 안에 도배해 본 경험이 있나요? 저는 도배를 많이 해 보았습니다. 요즘엔 도배 전문가에게 맡깁니다만, 예전엔 직접 했습니다. 저 같은 촌놈은 대부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쉬울 것 같아도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살던 마을은 정말 심심산골이었습니다. 반듯한 집이 아닌 허술한 초가집으로 요즈음 그림에 나오는 운치 있는 모습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곧 쓰러져 갈 것 같았고 기둥들이 곧지 못하여 방의 벽은 평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황토벽돌을 만들어 사용하지 않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넣은 대나무 거푸집에 잘게 썬 지푸라기를 넣어 반죽한 황토를 채워 벽을 만들었습니다. 으레 벽면이 울퉁불퉁해서 도배는 쉽지 않았습니다. 칼바람이 윙윙대는 깊은 겨울 저녁이면 그런 시절이 생각납니다. 나이가 들어감은 추억을 되돌려보며 나름의 행복에 젖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어린 시절에 살던 초가집은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정성껏 지었으나 설계도나 자재가 오늘날 같지 않아 방안이어도 찬바람이 귓전을 때리기 예사였습니다. 외풍이라 했습니다. 차가운 공기는 내려앉고 따뜻한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과학이 외풍을 설명합니다. 외풍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도배가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인테리어 측면도 있으나 당시는 벽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흙 부스러기를 막고 찬바람을 다소라도 줄이는 방편이었습니다. 도배한 방은 그렇지 못한 방보다 훨씬 따뜻했습니다. 도배는 우리를 따뜻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스며드는 찬바람을 막아주고 보기 흉한 부분을 감춰주기도 했습니다. 도배는 삶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도배라는 말에 정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문형! 저는 신혼 살림집의 도배와 페인트칠을 안사람과 함께 직접 했습니다. 그 버릇이 남아 어지간한 집안의 페인트칠은 직접 합니다. 전문 일꾼들에게 비할 수는 없어도 돈이 덜 들기에 그렇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하찮고 옹색해 보이기도 했으나 힘이 들어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지 싶습니다. 문형! 밤이 깊어 갑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 별이 총총합니다. 자연과 함께함이 좋아 전원에 작은 집을 짓고 삽니다. 이 마을에도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저런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때론 잘못도 저지르고 죄인이 되기도 합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의 노여움을 사기도 합니다. 지나 놓고 보면 내가 잘못하였다는 후회가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흔 살에 가까워지니 깨닫고 반성하고 그러면서 세월을 가꾸어 가는 것이 인생살이란 생각이 더 들어갑니다. 젊은 시절의 나의 아집이 부끄러워지기도 하니 이제 철드나 봅니다. 차가운 겨울날씨만큼이나 세상도 어려워 보입니다. 정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국민 대통합을 이끌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말 어려운 국면에 놓여있지 싶습니다. 한때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방법은 없을까요? 어떤 정치인은 입만 열면 모든 것을 촛불에 대입하고 있어 걱정됩니다. 왜냐하면, 그 반대쪽에 섰던 사람들을 또다시 내모는 표현으로 들려서 그렇습니다. 통합의 의지가 아닌 배척의 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거에서는 편이 갈릴 수 있으나 선택된 지도자는 양편을 다 끌어안아야 바른 지도자가 되어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 오늘날 새겨 보아야 할 금언입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요? 상처를 받은 이웃들의 뚫린 마음에 몰아치는 찬 바람을 막아 줄 도배가 필요합니다. 비뚤어진 마음의 벽에도, 외풍이 심해 찬바람이 쌩쌩 이는 냉랭한 분위기의 방에도 따사한 기온이 감도는 여유로운 무늬의 도배지를 바르고 싶습니다. 문형! 지난번 만났을 때 얘기했듯이 올해엔 행복은 덧셈, 나이는 뺄셈, 재물은 곱셈, 기쁨은 나눗셈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가끔 거닐던 산언저리에 쌓인 눈이 녹고 봄기운이 도는 춘삼월의 따뜻한 봄날을 택해 빈대떡에 소주 한잔 기울입시다. 그때까지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이에 건강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세상과 싸우지 말고 자아실현을 해야 할 시기입니다. 미끄러운 길은 특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 2018-02-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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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하는 시인과 '동무생각'을 만나다
- 노래하는 시인 김광석! 마침내 그를 만났다. 지난 해 11월 25일 대구 김광석 거리에서였다. 그는 시인이다. 노랫말이 아름다우면서도 곡은 애잔하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 5년 전이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듣던 필자가 우니까 아들이 필자를 안고서 등을 토닥토닥 다독여줬다. 아직도 감성적인 60대 엄마가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울음이 터지니 30대 아들이 달래줬던 것이다. 그의 노래를 알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동료 국어선생님들 덕분이었다. 평택여고 국어선생님들은 '일어나',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필자는 잠자고 있던 감성을 마구 휘저어놓는 그들이 참 좋았다. 그의 노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였고 가슴을 저미게 하는 슬픔이 있었다. 이슬처럼 맑은 그의 영혼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노래로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소탈한 모습의 그는 노래 부를 때는 열정적인 사나이가 되어서 떠나간 여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힘없이 체념해버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는 왜 그렇게 세상을 일찍 떠난 것일까? 여린 그의 영혼이 견디기에 지구의 삶이 너무 버거웠던 것일까? 아쉽고 또 아쉽다 우리 곁에 오래 머물러서 더 많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만들어서 불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청라 언덕에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한 고색창연한 고딕양식의 교회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청라언덕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청라언덕은 담쟁이가 무성했던 언덕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 했다. '청라'에서 '청'은 '푸를 청' 자이고 '라'는 '담쟁이 라' 자라고 문화해설사가 설명해주었다. 새로운 지식은 늘 흥미롭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이었는데 감성적인 해설사의 해설 또한 아주 맛깔스러웠다. 그녀의 지도로 우리들은 청라언덕에선 '동무생각'을 노래하고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곳에서는 '대한독립 만세' 삼창을 했다. 우리들은 '날씨와 사람' 두 가지 행운을 다 누렸다. 가곡 '동무생각'에 얽힌 스토리에 눈물이 났다. 3년 전에도 이 노래비에 얽힌 스토리에 눈물이 났었는데 또 눈물이 났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님의 러브 스토리 때문이다. 대구 계성고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경북여고 여학생을 연모했단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에 끝내 말 한 마디 못하고 가슴에 그 사랑을 묻어버렸다. 몇 년 후 그는 같은 학교에 근무하던 이은상 시인께 자신의 애달픈 사연을 들려줬다. "잊지 못할 그 소녀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곡 안에 담아두면 박 선생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 "가사를 써줄 테니 곡을 붙여보겠나?” 이은상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써서 건넸다고 한다. 박태준 선생님의 첫사랑은 '동무생각'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리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마음이 쓰이고 가슴이 아픈 걸까? 사랑! 여느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아름다움이겠지만 나는 아니다. 아프고도 슬프다.
- 2018-02-02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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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내 응축된 생명의 물, 고로쇠 약수
- 매년 2~3월은 고로쇠 약수를 채취하기에 좋은 시기다. 고로쇠나무뿐 아니라 자작나무, 다래나무, 대나무 등 다양한 나무의 수액을 사람들은 마신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중국, 소련, 일본, 캐나다 등에서도 나무 수액을 채취한다. 여기에도 좋고 저기에도 좋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로쇠나무 수액은 어떤 약효를 지니고 있는 걸까? 나무의 일생은 진액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겨우내 나무뿌리에 응축되어 있던 진액은 봄이 되면 스프링처럼 솟구쳐 오르며 풍성한 새싹과 잎을 밀어낸다. 여름의 진액은 꽃의 꿀로 변하고, 가을에는 과즙으로 변하며, 겨울에는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즉 나무의 1년은 뿌리의 진액이 가지로 올라갔다가 다시 뿌리로 되돌아오는 순환일 뿐이다. 이때 각 시기의 진액은 각각 다른 운동에너지(vector)를 갖는다. 고로쇠 약수를 비롯한 봄철의 나무 수액은 솟구쳐 오르는 진액이다. 일교차가 심할수록 이러한 작용이 활발해져 효과가 더 좋다. 고로쇠 약수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경칩에서 곡우 사이에 채취하는데, 일교차가 심할수록 많은 양을 얻을 수 있다. 또 이 시기를 지나면 수액의 양이 급격하게 줄면서 가지 끝으로 올라가 순식간에 싹을 틔워낸다. 봄기운을 머금은 고로쇠 약수는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기를 북돋워준다. 기운이 없고 입맛을 잃는 춘곤증도 치료해준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 박사의 물 입자 사진을 보면 환경에 따라 물 입자가 늘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기와 방향을 가진 운동에너지와 비슷한 개념으로 시간과 장소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 이슬은 상기된 기운을 가라앉히고, 봄비는 처진 기운을 끌어올려준다. 입춘에 봄기운을 받은 고로쇠 약수는 떨어진 기운을 끌어올려주는 작용을 하므로 어지럼증, 기력 저하, 위장 장애 등의 병증에 좋다. 특히 고로쇠 약수의 단맛은 위장병 치료에 좋다. 우리나라는 연교차와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일교차 때문이다. 국기에 단풍 문양이 들어갈 정도로 단풍이 유명한 캐나다 동부지역 역시 일교차가 큰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설탕단풍나무의 수액을 받아 말려 단풍나무시럽(maple syrup)을 만든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같은 효능을 발견한 것이다. 생물이 단맛을 갖는 것은 변화가 잦은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서 잡힌 물고기가 맛있듯, 계절 변화가 심한 곳에서 자라는 생물들이 맛있다. 단맛은 소화를 돕고 기력을 끌어올려주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해준다. 고로쇠 약수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무는 겨울을 나기 위해 수액을 응축시키고 당분, 미네랄, 아미노산 등을 만들어 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봄에는 이러한 영양분을 위로 끌어올려 싹을 틔우는 데 쓴다. 따라서 고로쇠 약수는 미네랄이 풍부한 이온음료라 할 수 있다. 2~3월에 고로쇠나무의 수피(樹皮)에 상처를 내면 수액이 뚝뚝 떨어진다. 고로쇠 약수는 물보다 흡수가 빠르고 배설도 빠르다. 이러한 작용으로 몸의 독소를 없애준다. 실제로 고로쇠 약수 5리터를 마시면, 물 5리터를 마셨을 때보다 자주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몸이 정화되는 것이다. 고로쇠 약수가 부종, 술독 등의 해독에 좋은 것은 그 때문이다. 통일신라 말 도선국사가 오랜 좌선 끝에 득도했을 때의 일화다. 이른 봄 좌선을 끝내고 일어서던 도선국사는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려 했으나 그만 가지가 꺾어지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때 도선국사는 꺾인 나뭇가지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목을 축였는데, 신기하게 그 물을 마신 후 무릎이 펴지면서 몸이 개운해졌다. 이에 도선국사는 그 나무를 뼈에 이롭다는 의미로 골리수(骨利樹)라 불렀는데, 이 나무가 바로 고로쇠다. 고로쇠 약수를 마시면 등짝이 시리면서 온몸의 뼈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뼈는 찬 기운을 접하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고로쇠 약수는 뼈가 약해진 경우나 관절염, 골다공증 예방 등에 좋다. 나무의 수액은 인체의 진액과 혈액에 해당해 부족한 진액을 보충해준다. 고로쇠 약수뿐 아니라 자작나무와 대나무 수액, 알로에 즙 등에도 이러한 효능이 있다. 고로쇠 약수는 빈혈과 변비, 피부 건조증에도 좋다. 고로쇠 약수로 몸을 정화하려면 많이 마셔야 한다.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면서 몸의 진액이 변하는 것을 느낄 정도로 마셔야 한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 2018-01-3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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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치의 힘
-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인물도, ‘힙’이 터지는 젊은 패셔니스타도 브로치에 자신을 투영한다.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하고, 어떤 액세서리보다 의미 있는 브로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주얼리의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남편이 처음으로 사줬던 목걸이, 아들이 선물한 귀고리, 시어머님이 물려주신 브로치 등등 이야기가 담긴 주얼리는 패션의 영역을 넘어 주술과 같은 의미로 우리와 함께하게 된다. 그중 목걸이와 반지처럼 옷 속에 감춰지는 은밀한 주얼리와 달리 대놓고 자신의 존재감을 풍기는 브로치가 다시 트렌드의 쳇바퀴를 돌아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어느 때보다 젊어진 모습으로 말이다. 브로치가 말하는 것들 패션 디자이너 서정기는 한 인터뷰에서 브로치에 대해 정의하길, “브로치는 옷 위에서 ‘나를 봐주세요!’,‘나는 이런 취향을 가졌어요!’라고 외치죠. 고상하게도, 천박하게도, 화려하게도, 얌전하게도, 크게도, 작게도, 엄청 비싸게도, 싸게도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이 브로치 입니다. 브로치는 개성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죠”라고 했다. 브로치는 자신이 어떤 취향의 사람인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때때로 말보다 더 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까만 드레스 위로 ‘Time’s Up’이란 브로치를 단 여배우들이 등장했다. 이 브로치는 직장 내 성폭력과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타임스 업(Time’s Up)’ 캠페인을 의미한다. 또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는 말처럼 종종 정치인들은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암시적으로 전달한다. 미국의 전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퇴임 후 ‘내 브로치를 읽어보세요’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까지 열 정도로 브로치 정치의 대가였다. 그녀를 비롯해 IMF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힐러리 클린턴 등 브로치를 패션 그 이상의 의미로 이용하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다. 스타일의 방점, 브로치 최근 하이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앤아펠은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보그의 전설적인 에디터이자,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뮤즈인 카린 로이펠드와 함께 브로치 스타일링법을 소개하는 ‘브로치 더 서브젝트(Brooch The Subject)’를 기획한 것. 몇 개의 하우투(How to) 영상과 사진으로 이뤄진 이 기획은 브로치에 대한 생각의 틀을 넓혀준다. 브로치의 자리를 으레 가슴쪽이나 스카프 위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린 로이펠드는 클래식한 반클리프앤아펠의 브로치를 평범한 블라우스의 깃(칼라의 뾰족한 부분)이나 스커트 벨트 라인, 원피스의 어깨 부분에 살포시 얹었다. 아무것도 아닌 옷을 일순 특별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다. 화장대 구석에 방치해둔 오래된 브로치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드는 매력적인 스타일링법은 무엇을 입느냐보다, 어떻게 입느냐가 더 중요한 요즘 시대에 딱 알맞다. 특히 옷장을 열면 한숨만 나오는 이들에게 옷에 대한 스타일링의 영역을 우주만큼 확장해준다. 브로치를 고리타분한 액세서리의 자리에서 ‘힙’, ‘핫’ 같은 요즘식 형용사를 붙이게 만드는 것은 비단 이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고전으로 불리는 버버리 프로섬 역시 이번 시즌에 얼굴만 한 사이즈의 브로치를 선보였다. 어떤 주얼리보다 화려한 버버리 프로섬의 ‘왕’ 브로치는 스트리트 감성이 풍만한 젊은 세대들을 동하게 만들었고, 그들의 액세서리 리스트에 브로치 영역을 추가하게 만들었다. 이토록 젊어진 브로치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패션을 신선하게 만들어준다. 다가올 설, 철 지난 한복이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브로치의 힘을 빌려보자. 하나도 좋지만 여러 개의 브로치를 레이어드하면 또 다른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이때 유색과 무색의 조합을 적절히 이용하면 촌스럽던 한복도 한결 세련돼 보일 것이다. 또한 브로치를 옷이 아니라 진주목걸이 위에 연결해 펜던트로도 활용해보자. 심플한 니트에 브로치를 더한 진주목걸이는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다가올 봄, 좀처럼 생기가 돌지 않는 패션을 위해 브로치 처방을 내려보면 어떨까. 그것도 당신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로치라면 금상첨화겠다.
- 2018-01-2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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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를 전원처럼
- 서울 일부 지역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정부의 부동산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젊었을 때 입주하여 산천이 세 번 넘게 바뀌도록 이사 한번 안하고 관악구 같은 집에서 산다. 이때쯤 관악에서 사는 아유를 밝힐 때가 되었다. 몇 년 전 사회은퇴를 앞두고 오랜 도시생활을 벗어나 전원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을 하였다. 전원이주 지인들을 살피면서 취향은 맞는지 환경변화는 어떠한지 검토하였다. 취향과 성격에 어울리는지가 제일 큰 문제였다. 전원은 어릴 적 추억일 뿐, 이미 도시민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젊었을 때 휴가철이나 휴일에 짬짬이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즐겼다. ‘아! 아름답다. 또 와야지’ 감격을 먹고 다시 올 것처럼 다짐을 하였으나 같은 곳으로 또 갔던 기억은 거의 없다. 추억은 얼마 지나면 잊어버리고 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이 더 즐거웠다. 한 곳에서만 꼼작 못하고 살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전원으로 이주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편리한 도시에서 살면서 쾌적한 전원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전원이 그리울 때는 주말농장을 찾으면 되었다. 서울 어디서든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관악·북한·청계산은 우리의 전원이다. 수도권 전철 경춘·중앙·경강선을 타면 가는 곳마다 명승지다. 매주 친구들과 서울근교·원거리 산행을 즐기고 있다. 봄꽃·여름녹음·가을단풍·겨울함박눈 따라 학교동창·자원봉사동료·사회평생교육동기들과 산행을 즐긴다. 각자의 신체조건에 맞춰서 산을 찾으면 바로 그곳이 전원이다. 관악전원마을에서 즐겁게 사는 이유다. 첫째, 관악산이 포근히 감싸는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관악산은 관악구를 포근히 감싸고 있다. 연주대 정상에 오르면 암자가 추녀 밑 제비집처럼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서울둘레길·관악산둘레길이 잘 정비되어서 등산을 하거나 산책하기에 편리하다. 관악산 계곡과 도림천은 여름철 물놀이 천국이다. 잣나무 삼림욕장은 천혜의 치유광장이다. 어디서나 몇 십 분이면 관악산에 연결된다. 아침마다 뒷동산 체육공원에서 건강을 다질 수 있다. 울창한 숲 덕분에 여름철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다. 둘째, 관악은 교육특별구다. 집주위에는 초·중·고등학교가 연이어 있고,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있다. 한곳에서 오래 사는 덕분에 아들과 딸은 전학 한번 없이 교육을 마쳤다. 결혼 후에는 가까운데서 살고 있다. 쌍둥이 손녀와 손자가 아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다닌다. 아들과 손주는 도시에서 보기 드문 ‘초등학교 부자동문’이 되었다. 앞으로 오래도록 관악에서 더 재미있게 살아야할 이유다. 손주를 정성껏 돌보자. 올바른 시민으로 기르는 인성교육 첫걸음이다. 셋째, 오순도순 분위 좋은 전원마을이다. 관악구청·평생학습관·문화원에서 열리는 사회교육이 활발하고, 도서관 운영은 최고수준을 자랑한다. 청운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가 많아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늦었던 사회개발도 경전철 등 지역발전에 불을 댕기고 있다. 골목길·고갯길·사이길 등 도시화가 덜 된 ‘시골길’이 많다. 정이 넘쳐 활기 찬 골목길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뜸해 정을 그리워하는 고갯길도 있다. 도심 같지 않는 포근한 사이길이 있다. 다른 곳에서는 주민 간 통행 문제로 다투는 일이 종종 있으나 이곳은 오히려 이웃과 상생하는 정이 넘치는 곳이다.
- 2018-01-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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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기억한다, 푸른 세월을…
- “58년 개띠입니다.” 어느 모임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첫마디다. 개띠의 당당함과 그들의 파란만장한 세월이 그 한마디에 포함되어 있다.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아기가 많이 태어났는데 그 절정기가 1958년이다. 개띠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뺑뺑이 추첨으로 배정받아 들어갔다. 58년 개띠라는 말은 사회 여러 방면에서 이전 세대와 차별되고, 이후 세대와도 분명하게 구분되어 생긴 용어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운동장에 가득했다. 교실이 모자라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었다. 필자는 비 오는 날 잠시 낮잠을 잤다가 오후반 등교가 늦어 엉엉 운 적도 있다. 그 시절은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가난한 집 아이가 꽤 많았다. 대부분 도시로 나가 공장에 취직했고, 여자들은 식모살이를 했다. 그러나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은 과외도 했다. 필자는 학교가 너무 멀어 쌀 두 가마니를 주고 친척집에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 펜팔을 했다. 단양 골짜기에 사는 소년에게 줄곧 편지를 써댔다. 엄마가 공부에 지장이 있다며 편지가 오면 아궁이에 집어넣곤 했다. 그 일로 엄마에게 대들던 사춘기가 떠오른다. 펜팔은 얼굴도 모르는 누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누군가에게 솔직한 말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서울에 사는 준이라는 소년에게 편지질을 했는데 아침이 오면 지난밤에 쓴 편지가 너무 유치해서 박박 찢어버릴 때가 많았다. 저 별은 나의 별, 이 별은 너의 별. 별과 달을 자주 글 소재로 써먹었다. 편지를 자주 쓰다 보니 글 솜씨가 좋아져 친구들 연애편지를 대필해주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얻어먹기도 했다. 당시 수학여행을 가면 다른 학교 남학생들이 주소가 적힌 쪽지를 여학생들에게 던졌다. 누구를 지정해서 쓴 쪽지가 아니라 줍는 사람이 그 쪽지의 임자.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다가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필자가 아는 사람 중에도 있다. 그 부부는 딸이 “엄마 아빠는 어디서 어떻게 만났어?” 하고 물어볼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한다. “커피 한잔 하실래요?” 누가 뒤를 바짝 따라오며 말했다. 누군가 필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게 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일단은 “왜 이러세요” 하며 튕겼다. 예전에는 대부분 남자가 프러포즈를 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스무 살 봄, 이종사촌과 잘 알던 그는 계속 필자를 따라다녔다. ROTC 복장을 하고 자주 필자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 시절은 주로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부담했다. 돈이 없을 때는 전당포에 손목시계를 맡기기도 했다. 주로 만나는 장소는 다방이었고, 커피 한 잔을 시켜 둘이서 나눠 먹기도 했다. 가끔 이종사촌 커플과도 만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필자는 예술을 좋아했다. 한눈에 그에게 반해서가 아니라 외로움 때문에 가까워진 것도 같다. 만남은 운명이다. 필자는 말라버린 우물가에 누워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평생 동안 그 순간이 그 낯선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그가 속내의를 사서 아버지를 찾아왔던 일, 아버지와의 어색한 만남, 죄책감에 당황스러워하던 그의 표정. 아버지는 서너 달 후 뇌졸중이 와서 길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돌아가셨다. 그는 장례식에 참석했다. 필자는 숙명으로 결혼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판돈으로, 대우에서 나온 컬러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샀다. 컬러텔레비전은 그 해 혼수품으로 처음 나온 제품이었다. 시어머니는 밤색 모직코트 옷감을 혼수함에 넣어주었다, 양장점에 가서 모직바지와 코트를 맞춰 입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남아 옅은 밤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신혼여행을 가야 하는데 입고 갈 마땅한 옷이 없었다. 그 시절의 결혼 예복은 긴 소매 옷, 앞이 막힌 구두가 상례였다. 신혼여행을 안 가면 남들 보는 눈도 있고 후회도 될 것 같아 아산 현충사로 갔다. 하룻밤 있었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젊은 날의 쓸쓸함이여! 그때 그 얇은 마음이 얼마나 외로움에 떨었을까. 결혼을 후회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썼다.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필자는 늘 동생들에게 모범이 돼야 했다. 지금은 홀가분하다. 58년 개띠 인생. 이제부터는 자존감 회복에 중점을 두고 싶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사랑하자. 그래야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더불어 살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
- 2018-01-22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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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송화는 피고 지는데…
- 몇 년 전이었더라. 베란다 창밖 난간에 매달린 선반에 기다란 화분이 두 개 있었다. 봄이면 베고니아처럼 자잘한 꽃들을 몇 포기씩 사다가 나란히 심었다. 아주 예쁘게 잘 자라 봄에서 가을까지 꽃을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가끔 고추나 체리토마토 모종도 몇 포기 심어봤는데 역시 잘 자랐다. 빨간 토마토가 앙증맞게 방울방울 달리고 크진 않았지만 고추도 몇 개씩 달려 푸른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물과 햇살만으로도 잘 자라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심지도 않은 채송화 싹이 나오더니 얼마 안 돼 꽃들이 정신없이 피어났다. 우리 가족은 환호했고 그 신기한 모습을 다투어 보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어떤 인연으로 우리 집까지 날아온 씨앗일까.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은 피고 지면서 눈을 호강시켜줬다. 그리고 해마다 포기가 점점 늘어나 화분에 가득 찼다. 채송화가 그렇게 강한 번식력과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정은수. 내 짝꿍 은수네 집은 채송화가 아주 많이 피어 있었다. 마당 한쪽 꽃밭이 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송화로 덮여 있었다. 봄이었는지 여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은수 엄마는 채송화 캔 것을 양동이에 한가득 담아 학교에 가져오셨다. 그리고 교실 앞 화단에 조용히 앉아 촉촉해진 땅을 호미로 파 채송화를 심으셨다. 당연히 교장실 앞 화단에도 정성껏 심곤 하셨다. 선생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채송화보다도 더 예뻤던 은수 엄마의 마음을 필자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은수네 집에 놀러갔을 때 필자에게도 뿌리째 캐어 한 소쿠리 담아주셔서 아침에 세수하려고 우물가에 앉으면 활짝 핀 채송화랑 눈이 마주쳤다. 우리 집 꽃밭 채송화도 어느새 꽃밭 둘레를 가득 채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은수와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이사를 가버렸는데 그 뒤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 필자는 어느덧 여고생이 되었다. 문득문득 은수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은수를 보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3학년을 보내면서 어쭙잖게 규율부 활동을 했는데 등굣길 아이들을 지도한다는 명분하에 교문 앞을 지키고 서 있을 때 놀랍게도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은수를 보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렀는데도 예전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봐도 분명 은수였다. 너무 반가워서 “은수? 은수지?” 했더니 나를 알아보고 조금 웃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필자만큼 반가워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그렇게 몇 번 더 마주쳤는데도 역시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필자는 슬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은수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1년을 쉬었다가 다시 진학을 해서 필자보다 학년이 하나 아래였다. 선후배를 유난히 따지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은수는 필자를 보면 오히려 슬그머니 피하는 것 같아 너무 서운했다. 그래도 필자가 씩씩하게 다가갔다면 좋았을 텐데 바보처럼 씩 웃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필자가 먼저 학교를 졸업하면서 단짝 은수와는 그렇게 또 헤어지고 말았다. “채송화가 무척 많이 피었어” 하면서 손을 잡아끌던 은수의 모습을 떠올리면 바보 같았던 필자 모습이 오버랩된다. 우리는 왜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걸까. 꽃이 필 때마다 서로를 추억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위한 통과의례일까. 오늘은 필자의 마음속으로 싸아~ 하니 박하향 같은 바람이 분다.
- 2018-01-0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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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필 사진, 이렇게 만들자
- 자기를 소개하기 위한 문서들이 많다. 자기소개서, 이력서, 포트폴리오 등이 있고 프로필 사진도 그중에 하나다. 동년 기자라면 응당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위 증명사진보다 자기의 특징이 잘 표현된 프로필 사진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자기 홍보 시대를 살고 있어서 더 그렇다. 프로필 사진은 단정한 정면 얼굴을 찍은 ‘증명사진’이 기본이다. 여권이나 운전면허 시험 입학원서, 입사지원서 등에 주로 사용된다. 상반신만을 찍거나 전신 또는 정면과 측면을 촬영하기도 하며 특정 동작을 하거나 소품을 활용한 모습을 담기도 한다. 프로필 사진이 쓰일 곳, 즉 용도에 맞게 준비하면 좋다. 사진을 다시 만드는 불편함 때문에 늘 사용하던 한 가지를 쓴다면 성의가 없어 보릴 테고 시선을 끌지 못한다. 개성을 살린 좋은 사진이어도 용도에 맞지 않으면 평범한 사진보다 못할 수 있다. 어떤 프로필 사진이 좋을까? 자기에게 맞는 콘셉트나 사진의 용도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산다. 홈페이지, 카카오톡, 페북, 블로그, 카페 등의 SNS 개인 매체에 사용하는 프로필 사진은 자연스러운 사진을 쓰는 게 시선을 끌 수 있다. 연필로 그린 듯한 형태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사진 공동작품집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나오는 경우는 다른 사람과 유사한 형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좋다. 설명을 붙인다면 모두 단정한 모습인데 혼자만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면 전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단정한 모습으로 찍는 정면 사진에는 어떤 헤어스타일과 옷이 잘 어울릴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신이 나오는 사진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해보며 자기에게 맞는 콘셉트를 정한다. 콘셉트가 정해지면 촬영할 때 입을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을 확인한다. 여러 종류의 촬영을 할 경우에는 스튜디오를 찾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좋다. 사진 촬영을 잘 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만들 수도 있다. 필자는 사진작가여서 주변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 주곤 한다. 때로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하며 손쉽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특히 스마트폰에서 편집을 할 수 있는 뛰어난 기능을 가진 애플리케이션이 있어 촬영과 동시에 편집까지 손가락 하나로 완성할 수 있다. 프로필 사진의 크기나 용량이 크지 않아도 되어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해도 문제가 없다. 카메라 앞에 서면 누구나 긴장하고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콘셉트에 어울리는 소품을 들고만 있어도 한결 자연스러워진다. 필자는 사진작가이기에 카메라를 들고 찍기를 좋아한다(앞의 사진 참조). 사진 촬영 이전에 거울을 보며 표정과 자세를 연습해봄이 좋다. 몸 자체의 상태도 최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맑은 눈을 강조하고 싶다면 눈이 피로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촬영 후에 포토샵을 활용하여 수정, 보완할 수 있으나 잘 찍은 원본이 전제되어야 한다. 프로필 사진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대충 만들어도 되나 한 장의 사진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상대방에게 신선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도구로 여긴다면 많은 신경을 써서 만들어야 한다. 다만, 포토샵을 이용하여 원래의 모습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편집함은 주의해야 한다.
- 2017-12-1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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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나라에도 우체통이 있어요?
-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돼서 마음만 동동 구르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의 문을 두드려주셔요. 이번 호에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김형석 교수님께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애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얘기를 하곤 했는데, 요사이는 내가 늙어가는 것을 보면서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2018년에는 내 나이가 우리 관례에 따르면 99세가 됩니다. 10년 전에는 미수(米壽)의 나이라고 해서 미국에 다녀왔어요. 같이 가기로 했던 둘째 딸네는 집 일 때문에 못 가고 혼자이지만 가서 ○혜, ○애, ○순 세 딸들과 여행도 했어요. 막내인 ○순이가 벌써 대학 교단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세월이 많이 지났네요. 애들과 당신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엄마와 같이 고생하던 옛날이 가장 행복했다 말하며 다들 공감했어요. 가난한 세월에 전쟁까지 겪었으니까 우리들의 생애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지요. 그래도 사랑이 있는 고생이어서 행복했어요. 사랑이 깊을수록 행복은 더욱 커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그 시절이 제일 좋았을 것입니다. 내가 구십이 되던 해에는 미국의 애들도 한국에서 다같이 모여 5일간 제주도 여행을 했고요. 여행을 끝내면서 당신이 잠들어 있는 산소에도 다녀왔고요. 막내가 “이다음에 나도 한국에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누우면 안 돼?”라고 해서 내가 “신랑과 애들이 허락해줄까?”라고 했어요. 막내는 큰애들보다 부모와 머문 기간이 짧아서 그런 생각을 하는 모양이지요? 못했던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내가 2011년 봄에 ○진이가 교수로 있던 한림대학교에서 주는 일송(一松)상을 받았어요. 그때 여러 사람이 주는 꽃다발을 받았는데, 강원도 양구의 군수님이 주는 꽃다발도 받았어요. 뜻밖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에 알고 보니까, 양구의 뜻있는 분들이 나와 안병욱 교수가 50여 년 가까이 사회를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실향민이어서 갈 곳이 없으니까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양구로 모시자는 협의를 본 것입니다. 둘 다 구십 고개를 넘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고마운 뜻을 전달하기 위해 군수가 직접 수상식에 와 꽃다발을 주었던 것입니다. 양구는 북녘땅과 가장 가깝고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파로호를 둘러싸고 있는 풍치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그 호숫가에 있는 공원에 나와 안 선생을 위한 기념관을 건설하고 우리 둘을 모시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안 선생은 93세에 세상을 떠나 기념관 옆에 잠들고 계십니다. 부인께서도 세상을 떠나면 안 선생과 함께 잠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안 선생의 안식처 옆자리에는 내가 당신과 함께 잠들 자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호숫가이기 때문에 기념관에 온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고 가족들도 찾아오기 편한 곳입니다. 기념관 안에는 나에 관한 사진들과 기념품이 진열되어 있고 가족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어요. 당신에게 보여주지는 못했으나 나보다 더 고맙게 만족할 것입니다. 서울에 사는 가족과 친지, 제자들은 물론이고 캐나다나 미국에 있는 이들도 한국에 오면 들러보곤 합니다. 다행히 내 건강이 허락하기 때문에 벌써 4~5년 동안 그 기념관에서 양구의 여러분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강좌를 개최해 3년간 직접 강의도 하고 후배와 제자 교수들이 도와주기도 합니다. ○진과 ○우도 다른 강사들과 함께 강의를 돕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두 과정을 진행해왔는데, 내가 마지막 특강을 맡아주기도 했어요. 둘이 같이 잠들 곳이고 옆의 기념관에는 많은 사람이 참관해주겠기에 감사한 마음을 함께해줄 것으로 압니다. 또 한 가지 약간 놀라워할 사실을 얘기해야겠네요. 내가 당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 1960년 초부터 30여 년간 많은 일을 했지요. 그중에서도 라는 책이 나온 후부터 10여 년은 전국적으로 나와 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관심을 받기도 했지요. 그 후부터는 비교적 조용히 일하면서 꾸준히 저서도 남기고 강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정초에 KBS1 프로그램 에 나가 한 시간 동안 행복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큰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같은 방송국에서 한 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이 방영되었습니다. 내 생애에 관한 기록 다큐멘터리였지요.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하니까 다른 TV 방송에서도 여러 차례 초청을 해와 내가 사양할 정도로 바빴습니다. 마치 행복을 알려주는 멘토 같은 대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 그 방송들을 계기로 조선일보에서 두 차례, 동아일보에서도 두세 차례 내 얘기가 보도되었고 문화일보와 매일경제신문에서도 큰 비중으로 소개되는 기사가 실리곤 했습니다. 그 때문에 김 교수가 아직 살아 있고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캐나다의 교포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의사 방군은 옛날부터 잘 아는 제자였지요? 한국까지 찾아와 큰절로 인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 간접적인 영향으로 과거에 썼던 책들 와 가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종교 분야의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가 다시 출간되었고 몇 권의 수필·수상집이 새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새로 나온 책들 가운데서 라는 책은 널리 알려진 출판사에서 나온 것도 아닌데 말년에 다시 한 번 장·노년층을 상대로 한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애독자가 생겼습니다. 그 책 때문에 청탁이 들어와 강연회도 몇 해 동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2017년에도 한 달에 평균 15~16회의 강연에 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애가 전화를 걸어서, “아들과 사위들이 다 정년으로 쉬고 있는데 아버지 혼자서 일하시네요?”라면서 다른 애들과 같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내 남편이 최고!’라면서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함께 지낼 때는 내가 교만해질 것 같아 “당신보다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했지만 지금의 내 나이를 보면 당신도 감탄할 것입니다. 어머니와 당신이 있다면 내놓고 칭찬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자랑하고 칭찬해줄 사람이 옆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 가지 더 추가할까요? 내가 2016년 말에는 ‘도산인상 교육상’ 받았고요, 금년에는 유한양행에서 주는 ‘유일한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가을에는 동아일보에서 주는 ‘인촌상’까지 받았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세 분을 기리는 상을 다 받았습니다. 상금도 당신은 상상 못할 정도로 많았고요. 이제는 더 준다고 해도 사양할 정도로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식 때 ○예가 당신 대신 자리를 채우곤 했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예를 보고 사모님이 젊고 아주 미인이라고 부러워했어요. 사실은 당신이 더 아름다웠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요. 어제도 지방에 강연을 갔는데, 사람들이 김 교수가 얼마나 늙었는가 보러 가자고 해서 왔는데 이전보다 강연이 더 좋았다며 감사하다는 겁니다. 여보!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대놓고 자기자랑을 하네…. 그러지 마세요. 다른 누구보다도 당신에게는 얘기하고 싶은 것을 참았어요. 믿기 어려우면 주어지는 시간에 우리 함께 갈 양구의 기념관 ‘철학의 집’에서 내가 다 설명해줄게요. 무어라고 끝을 맺을지 모르겠네요. 보고 싶어요! 왜 눈물이 나지요? 많이 사랑했는데….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 -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길렀고 지금은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30년 전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수영을 하고 아침식사로 계란, 사과를 먹는 게 건강 비결이다. 후배들과 신촌 카페에서 담소를 즐기는 따뜻하고 다감한 한국 철학계의 아버지다.
- 2017-12-04 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