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익산 관광 때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유적을 둘러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발굴 중이라 땅만 파놓았지 막상 볼 것이 없어 실망했다. 제대로 보려면 익산까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공주 부여를 돌아봐야 한다고 들었다. 검색으로 공주는 볼 것이 그리 많지 않고 부여에 유적지가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부여로 향했다.
폭염의 날씨라 목적지는 실내 위주로 짤 수밖에 없었다. 첫 목적지는 부여 박물관이었다. 경로 우대를 생각하고 갔는데 무료입장이었다. 입구의 어린이박물관은 백제문화를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게 잘 꾸며놓았다. 백제시대의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데 이 또한 무료였다. 바로 옆에서 왕흥사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본관으로 들어가니 천장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스카이라이트 지붕 아래 커다란 돌그릇이 있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 시대별로 그릇, 무기의 변화를 유적으로 잘 전시해놓았다. 이 박물관의 대표 유물은 황금대향로였다. 백제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라 그런지 특별실에 따로 전시되어 있었다. 발굴 당시 얼마나 큰 감동이 있었을까 상상이 되었다. 크기로나 모양으로나 과연 대단한 보물처럼 보였다.
백제문화는 너무 오래된 역사이기 때문에 친숙하지 않다. 더구나 한성백제 500년도 있어 분산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본 문화가 백제의 영향을 받았고 한때는 한반도를 지배하기도 했던 백제였으므로 재조명을 해볼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낙화암에 갔다가 실망하고 온 적이 있다. 3천 궁녀가 신라의 침략에 강으로 투신했다는 야사만 기억에 있지, 정작 볼 것은 없다는 기억에 날씨도 더워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동네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부여 박물관 인근에 있는 신동엽문학관을 찾아갔다. 39세에 요절한 민족 시인이란다. 대표작으로 ‘껍데기는 가라’가 있다. 범상치 않은 외관이어서 알아보니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바로 옆에 있는 생가에 육필 원고와 신동엽 평전 등 관련 책자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궁남지였다. 7~8월이 절정이라는 연꽃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연못이며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군에서 인근 논밭을 사서 계속 궁남지를 늘려간다고 했다. 과연 사람 키보다 더 큰 연꽃잎과 탐스러운 연꽃들이 볼만했다. 인근 음식점에서는 연밥을 팔고 있었다. 잡곡밥을 연잎에 싸서 내오는 것인데 다른 반찬은 평범했다. 원래 충청도 음식은 별 특징이 없다.
백제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도자기류다. 백제요 등 도자기 굽는 가마가 근처에 있다 해서 찾아가 봤다. 거대한 가마가 공룡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30분마다 버스가 있고 두 시간이면 도착한다. 유적지가 많아 당일로는 좀 빡빡하다. 여름은 너무 더우니 서늘한 봄가을에 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몽골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둥글다. 난 몽골에 와서야 하늘이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하늘이겠거니 하며 지나쳤다가 고개를 대강 한 바퀴 돌려봤다. 그런데 하늘은 그렇게 성의 없이 볼 대상이 아니었기에, 맘먹고 목에 힘을 줘 360도를 확인해보고 어지럼증에 초원 한복판에 등을 대고 누웠다. 이렇게 편히 하늘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펼쳐진 하늘에 구름! 아무리 봐도 멋지다. 보고 또 봐도 다시 보고 싶다. 이와 다른 구름에 대한 기억이 내겐 있다.
오래전 구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이다. 처음 그곳에 가는 날 후배는 배웅을 나왔다가 굳이 버스를 함께 탔다. 마장동에서 탄 시외버스는 일동, 이동을 거쳐 화천, 화지리를 지나 다목리 종점에 이르렀고, 버스에서 내려 후배랑 헤어져 대성산을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그렇게 구름 속에서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넘게 걷다보니 안개와 구름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구름에서 안개로 다시 안개에서 구름으로 자리 바뀜을 몇 차례 혼돈하다 보면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스친다. 이내 그 하늘이 눈에 꽉 차며, 내 턱과 코 아래에서 흩어지며 휘날리는 구름이 보인다. 차츰 조금 더 멀리 멀리 시야가 트이고, 운해라는 말이 꼭 어울리는 구름바다를 뚫고 솟아난 봉우리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여기저기 보이는 거기부턴 다른 세상이다. 하늘빛이 다르고 해가 다르다. 마시는 공기의 밀도도 다르다. 내 발이 딛고 있는 능선만이 가늘게 이어진다. 저긴 아직 비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뽀송뽀송한 날숨과 들숨이 다르게 거긴 지금 내 옷처럼 눅눅할 것이다.
며칠째 구름과 하늘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 바람의 변화와 물의 균형을 보여줬다. 그런 구름과 하늘의 조화에 내 생각과 기준이 흔들린다. 그리고 구름이 바람과 물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형태에 머무르지 않는 물과 바람의 조화가 새삼스럽다. 그런 구름에 비교해 표현할 말을 지금도 못 찾겠다. 그러던 날 아침, 바람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오성산이 보이는 북쪽에 가득한 구름이 내가 앉아 있는 능선을 경계로 남쪽 계곡을 타고 수십여 길이나 쏟아진다. 흩어져 내리던 구름이 주먹만 하게 손바닥만큼 저 아래 모이는 게 보인다. 소리까지 내며 쏟아지는 구름의 위세가 차츰 커진다. 구름이 만들어내는 폭포의 줄기도 이내 굵어진다. 손바닥만 하던 구름이 꾸역꾸역 모여 두 손을 가리고 몸을 가리고 마을을 가리고, 구름으로 차는 데 거의 반나절이 걸렸는데도 난 시장기를 느끼지 않았다.
세상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다니는 일이 직업인 사진가는 소문난 곳을 많이 방문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과 문화가 있는 풍광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다닌 행로를 따라가 보니 세계 전도가 그려진 지 오래다. 그리고 이제 하늘이 보인다. 목적을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다닐 때도 수시로 하늘에 감동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배경일 뿐이었다. 이제는 하늘과 구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그 구름이 무엇을 닮아서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그러나 이젠 무엇을 닮지 않아도 그냥 구름이 좋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어떤 극적인 색을 띠지 않아도 구름만으로 충분히 좋다.
그래서 최순우 선생님의 말이 번득 이해가 되었다.
모든 청자는 백자가 되고 싶은 꿈을 꾸었다.
>>함철훈(咸喆勳) 사진가·몽골국제대학교 교수
1995년 민사협 초청 ‘손1’ 전시를 시작으로, 200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 2012년 이탈리아 밀란시와 총영사관 주최로 전을 FORMA에서 개최. 2006년 인터액션대회(NGO의 유엔총회)서 대상 수상. 저서로 , 등이 있다.
각자 사는 지역사회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배움이 될수도 있고,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면서 보람과 함께 주민의식을 느낄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서울시청엘 가면 시민청이 있다. 그곳에서 시민작가들이 해마다 도시사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시대를 담는 최고의 사진작가와 함께 하는 도시사진 멘토링 워크숍이라는 이름아래 과거에서 현재까지 다양한 서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작업이다.
매년 1회씩 진행하는데 올해가 4회째다. 도시사진전은 공지를 통해 모집을 하는데 서류선발이다. 물론 사진실력이 있는 사진작가들도 있고, 대부분 취미로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알고보면 모두 숨은 실력자들이어서 선의의 배움이 될수 있어서 좋다. 또한 무엇보다도 내가 사는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심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내 작은 힘이 도움이 되고 싶다면 참여해 볼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3회에 걸쳐 서울의 역사를 찾아보는데 집중했다. 필자가 참여한 4회째인 올해는 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4개월 동안 재개발이 되면 마지막이 될 , , , 을 탐사촬영을 했다.
멘토링 워크숍은 출사전에 먼저 시민청 강의실에서 사진을 통한 수업이 의미있다. 실력있는 멘토작가님의 강의와 사진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했고 렌즈를 통해 그 마음을 담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땀흘리는 열정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함께했던 시민작가들과 포장마차에 모여 사진토론에 열올리며 막걸리 한 잔 나누던 시간도 잊을 수가 없다.
기록의 방법은 다양하다. 평소에 대부분 아름다운 풍경이나 독특한 이미지 사진을 담느라 바빴던 시간이었다면 이번엔 다르다. 렌즈 저편 대상과의 관계형성이 따뜻이 흐르는 시간을 경험할 것이다. 프레임 속에는 느리게 흘러가는 삶이 있었다. 그리고 수십년을 살아왔지만 비로소 함께 나누는 마음으로 나만의 서울을 여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멘토작가인 성남훈 사진작가는 말한다.“요즘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사랑한다. 이제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사진이미지가 소비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의미의 사진의 기록성과 공공성을 담보하는 사진행위의 전형이 서울시가 마련한 도시사진전이라 생각한다. 참가자 스스로 서울 역사의 한 모습을 아카이브하는 의미로운 사진의 공공의 장이 많이 열렸으면 한다.”
뜨겁던 한낮에, 비 내리던 주말에도 카메라를 들고 그 골목을 누비고 그 비탈길을 오르내리던 4개월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이 모여 지금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서울시민들에게 전시되고 있다. 시민작가들의 땀과 애정이 담긴 다양한 시선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민으로서 이런 의미를 되새기고 공감과 소통에 참여했다는 것이 스스로 뜻깊다.
이번 기회로 비로소 필자가 살고 있는 서울 하늘아래 모든 사물들이 더욱 애틋해졌고 새삼스럽게도 서울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기회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듯이 의외로 삶의 마음가짐도 조금 달라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타성에 젖은 듯 무심히 지내왔던 시간들을 추스르고 다시금 활기를 얻기도 한다.
도시는 언제나 변하고 있다. 서울을 기록하는 도시사진 멘토링 워크샵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 exhibition
보그 라이크 어 페인팅: 사진과 명화 이야기
일정 10월 7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창간 125주년을 맞은 잡지 의 아카이브에서 엄선한 이미지들로 패션 사진과 명화의 관계를 재조명한다. 세계 3대 패션 사진작가로 불리는 파울로 로베르시, 피터 린드버그, 어빙 펜 등의 작품들을 통해 고흐, 달리, 클림트 등의 명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사진의 대상이나 구성, 기술은 피카소의 입체파 회화에서 앤디 워홀의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장르를 아우른다. 특별 섹션으로 마련한 ‘보그 코리아’에서는 전통 수묵화의 절제미와 여백이 드러나는 패션 이미지들을 소개한다.
김영태의 편지들: 문인교신전
일정 7월 12일까지 장소 영인문학관
초개 김영태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았다. 아울러 시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이들의 자료까지 대여받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 문인들의 편지인 데다가, 두 사람 간 주고받은 편지가 모두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그 의미와 특별함을 더한다. 특히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는 160통에 달한다. 안수길, 어효선, 김구용, 박재삼 등 작고한 문인들의 편지뿐만 아니라 초개 선생이 직접 그린 이병주, 최인훈, 최인호 등의 캐리커처까지 만날 수 있다.
◇ book
인생의 재발견(바버라 브래들리 해거티 저·스몰빅인사이트)
탐사 전문기자로 30년간 지낸 저자가 중년을 둘러싼 8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직접 파헤친다. 심리학, 생물학, 사회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인터뷰와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중년 이후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전문가와 함께 준비하는 스마트 라이프 디자인(삼성생명 은퇴연구소·미래의창)
연금, 재테크, 상속 문제에서부터 건강, 여가, 관계,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노후 대비에 관련한 전반적인 정보를 담았다. 중장년은 물론 2030세대에게도 도움이 되는 전문가의 현실적인 조언이 실려 있다.
◇ movie
플립(Flipped)
를 연출한 롭 라이너 감독이 2010년 미국에서 발표했던 영화로, 네티즌의 성원에 힘입어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다. 공식 개봉 전부터 네이버에서 영화 평점 10점 만점의 9.45점을 기록하는 등 호평을 얻었다. 포스터 속 ‘누구나 일생에 한 번 무지개처럼 찬란한 사람을 만난단다’라는 문구는 영화 속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는 대사로 애틋한 감성이 묻어난다.
개봉 7월 13일 장르 로맨스 감독 롭 라이너 출연 매들린 캐롤, 캘런 맥오리피, 존 마호니 등
프란츠(Frantz)
상실을 경험한 독일 여자와 비밀을 간직한 프랑스 남자 사이의 거짓과 진실, 용서와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그렸다. 프랑스와 독일이 겪은 전쟁의 아픔을 실질적으로 담아내는 등 리얼리즘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고 깊이 있게 표현한 여주인공 폴라 비어는 이 영화로 2016 베니스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았다. 흑백과 파스텔 톤으로 담아낸 영상은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봉 7월 20일 장르 드라마 감독 프랑수아 오종 출연 피에르 니네이, 폴라 비어 등
◇ stage
김씨네 편의점
캐나다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미스터 김’의 인생 후반전과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자식을 통해 이어지길 바라는 부모 세대, 그리고 그런 부모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살고자 하는 자녀 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나간다.
장소 백성희장민호극장 일정 7월 13~23일 연출 오세혁 출연 장용철, 최현미, 이화정 등
나폴레옹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제핀, 노련한 정치가 탈레랑, 세 사람을 주축으로 한 나폴레옹의 웅장한 여정이 펼쳐진다. 객석과 무대에 40문의 대포가 설치될 ‘워털루 전투’, 다비드의 명화 ‘나폴레옹의 대관식’ 등 역사적 사건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장소 샤롯데씨어터 일정 7월 15일~10월 22일 연출 리처드 오조니언 출연 임태경, 한지상 등
캣츠
화려한 무대와 음악으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뮤지컬 의 오리지널 팀이 내한한다. 이번 공연은 더욱 역동적인 군무와 더불어 의상의 색깔이나 패턴, 헤어스타일 등이 업그레이드돼 이전 공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장소 국립극장 해오름 일정 7월 11일~9월 10일 출연 맷 안토누치, 애덤 배일리, 로라 에밋 등
1945
동아연극상에 빛나는 작가 배삼식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위안소를 탈출한 명숙과 미즈코의 역경을 통해 요동치는 시대 속 민족의식과 생존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이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장소 명동예술극장 일정 7월 5~30일 연출 류주연 출연 박윤희, 김정은, 성여진 등
동대문 DDP에서 루이비통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6월 8일부터 8월 27일까지 무료 전시다. 그런데 명품 브랜드라고 유난히 유난을 떤다. 전시회 관람을 하려면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현장에서 신청을 할 수도 있으나 주말에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평일은 사람이 없는 편이라 현장 신청도 별 문제가 없다. 가방은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가야 하며 사진촬영도 가능하다. 보기 나름이겠지만, 전시품이 많은 편이라 한 시간가량은 잡아야 한다. 파리 루이비통 박물관에 있던 전시품들을 실어온 모양이다. 나무 포장박스를 스탠드로 하여 그 위에 전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루이비통은 서울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다 하여 ‘3초 백’으로도 유명한 브랜드다. 의류, 시계, 향수, 가방을 생산 판매한다. 원래는 가방으로 출발한 회사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루이비통 가방을 동경하는 젊은 여성들이다. 그러나 핸드백 종류는 많지 않다. 이번 테마가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이어어서 그런지 여행용 대형 트렁크가 많다. 혹시 루이 비통 가방 하나 살 수 있을까 해서 간 사람들은 실망한다. 마지막 전시실에 매장이 있긴 한데 루이비통에 관한 책, 향수, 액세서리 종류 정도만 판다. 단체 여행할 때 여행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네임택이 25만원, 작은 수첩도 25만원이다. 가죽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연필 두 자루에 25만원이라 해서 좀 의아해했더니 연필 겉을 가죽으로 둥글게 둘러쌌다고 설명한다. 비싸다는 반응을 보이면 루이비통 전시회에 올 자격이 없어 보일지 몰라 고개만 끄덕였다.
전시장에는 1906년 여행용 트렁크부터 전시되어 있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흔히 보던 평범한 사각의 트렁크다. 그런데 루이비통이 유명해진 것은 명품으로 정성껏 제대로 만들었기 때문이란다. 프랑스에서 온 장인이 가죽을 직접 다루는 모습도 보여준다. 가방의 용도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이라 견고해야 하고 운반도 해야 하니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루이비통은 그 목적에 잘 맞춰 만들어진 덕분에 오늘날 명품의 반열에 올랐다.
원래 루이비통은 산골 소년이었다. 목수 아버지 밑에서 어깨너머로 목수 일을 배웠다. 그러다가 산골에서 일생을 보내기는 싫어 집을 나와 파리까지 걸어서 한 달 만에 도착한다. 파리에서 가방가게에 취직을 한 그는 가방 가게에서 가방을 파는 일뿐 아니라 여행을 떠나는 부유층의 짐을 대신 싸주는 일도 했다고 한다. 루이비통은 수납 정리에도 소질이 있어서 나폴레옹 3세의 황실에까지 스카우트되어 간다. 그가 33세 되던 해 황실의 외제니 황후가 파리에서 가방가게를 해보라며 지원해준다. 그 무렵 기차, 배, 비행기, 자동차 등으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여행객들이 많아진다. 여행 가방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루이비통의 가방 가게도 날개를 단다.
이번 루이비통 전시관에 나온 제품들은 주로 여행용 가방이다. 핸드백을 연상하면 안 된다. 의상이 구겨지지 않게 옷걸이까지 있는 트렁크, 화장품과 화장 도구들이 깨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수납 칸을 만들어놓은 가방도 있다. 음악가들에게는 악기를 담을 수 있는 가방을 맞춤제작해주기도 한단다. 막상 보면 별것도 아닌데 명품이라며 열광하는 이유가 뭔지 보러 갔다. 갖다 오니 루이비통 가방의 역사만 기억에 남는다.
하루해가 참 길다. 새벽 4시 반 무렵이면 훤해져 저녁 8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하루해가 가장 길다는 절기 하지가 6월 21일이었다. 특별한 취미활동이나 소일거리가 없는 시니어는 잠을 깨는 순간부터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를 걱정하기도 한다. 특히 날씨마저 흐리면 더 그런 생각을 한다. 이런 날이면 움츠리고 앉아 있기보다 바깥나들이를 하면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 금상첨화지 싶다. 나이 든 사람에게 많이 권하는 운동이 걷기다. 둘레길이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져 많이 활용된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삭막한 도심의 길을 걷기보다 바람과 속삭이는 숲과 물과 산새 소리 들으며 걷는 자연 속의 걸음은 한결 가볍고 여유로운 시간이 될 터이다. 아울러 문화산책도 곁들이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이룰 수 있어 좋지 싶다.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곳으로 석파정 산책 코스를 권하고 싶다.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다. 전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 옆길을 돌아 자하문 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좌측 언덕배기에 보인다. 석파정은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보존이 잘 되어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 26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립 미술관인 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석파정이 있는 지대가 미술관에 달린 사유지이기에 그렇다. 그 미술관도 여느 미술관과 다른 점이 있어 전시되거나 소장된 그림을 감상하는 문화 나들이도 되지만, 전시관 곳곳에 이벤트성 볼거리, 쉼터가 있어 관람을 여유롭게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예쁘게 만들어 놓았다. 영상과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감상실, 영화를 볼 수 있는 영상 상영 코너도 마련해두어 재미를 더해준다. 현재 “신사임당, 그녀의 화원”이 관람객의 관심 속에 9월 3일까지 특별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3층 옥탑을 거쳐서 외부로 나가 만나는 석파정 일원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쉼터와 힐링의 장소로 등장한다. 옥상 잔디정원에서 조각품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도 새롭다. 선이 아름다운 대원군의 별장 기와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둘러 서 있는 산책로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듬성듬성 만들어 둔 벤치에 앉아 중간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를 배경 음악 삼고 새소리 들으면 그곳이 낙원 같다. 가파르지 않은 산책길을 따라 느리게 느리게 걸으면 자연의 소리에 취할 수 있다. “물을 품은 길”이라 이름 붙여진 좁은 산책로 또한 정겹고 주변 곳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문구의 팻말이 인생을 배우게 한다. 그 문구 중의 하나인 기욤 뮈소의 에 나오는 구절이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우리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미술관 관람과 힐링의 산책을 하며 하루를 너끈하게 그리고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곳이지 싶다.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 옆에 있는 사람 냄새 나는 통인시장에 들러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면 행복한 하루가 되지 싶다. 필자는 올봄에 고등학교 후배인 대학교수이자 화가인 고등학교 후배의 안내로 처음 이곳을 다녀왔다. 너무 좋다는 생각이 들어 안사람과 함께 친구와 가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필자에게 사진촬영법과 활용기술을 배우는 남녀 어르신 11분과 다녀왔다. 모두 즐거워하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하루가 되었다고 했다.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아우를 수 있는 서울미술관과 석파정 산책 코스를 걸어보면 어떨까?
사진작가! 멋있게 들린다. 아름다운 물체나 풍경을 향하여 진지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그들이 만들어 낸 사진에 몰입하기도 한다. 사진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은 사진작가가 되어 나름의 멋진 작품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근래엔 이름만 거명하여도 잘 알 수 있는 명성을 얻었던 사람들이 사진취미에 흠뻑 빠지거나 사진작가가 되어 그들이 만든 작품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참 멋있게 은퇴 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 한번 도전해 봄도 좋지 싶다.
사진의 전성시대다.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취미로 사진을 하는 것도 좋지만 더 전문적인 작가로의 인정을 받는 것도 여가 생활이나 은퇴 후의 시간을 보다 보람 있고 재미있게 끌어갈 수 있는 자기계발의 하나다. 사진작가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도약 점이 될 수 있고 사진을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본적 소양과 지식을 갖추는 단계로 볼 수 있다. 또한, 사진작가가 됨으로써 사진 촬영DMF 신중하게 된다.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된다. 자신의 또 다른 경력이 되고 그 경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가르침의 기회도 얻을 수 있고 재능기부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정성 들여 만든 작품은 자기의 분신이 되어 세상에 남겨질 수도 있고 작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사진작가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일 것이다. 사진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다 사진작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소설을 쓰고 시를 지으면 소설가나 시인이라고 부르지만, 특정의 절차에 따른 문단의 등단으로 작가의 이름을 얻는다. 사진작가도 일정의 절차가 있다.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사)한국사진작가협회의 회원이 됨으로써 사진작가의 이름을 얻는 방법이다. 소정의 입회 자격 요건을 갖추어 이 협회에 등록을 신청하면 일정의 심의를 거쳐 입회를 허락하고 사진작가 이름을 붙여준다. 협회가 인정하는 사진강좌 3회 수료가 필수이고 공모전(촬영대회 3회 이상 필수)에 출품하여 입선(1회 2점)이나 입상을 하여 얻은 점수나 기타 공모전이나 개인 사진전시회 개최 등으로 인정하는 점수가 제시하는 점수에 다다르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사)한국사진작가협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사한 기관으로 한국디지털사진가협회도 있고 이곳에서도 사진가 명함을 달 수 있는 길이 있다. 취미 생활에서 그런 제도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어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듯이 남과 차별화하거나 전문가 자격을 갖추는 일은 곧 자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일이다. 요즘은 자격과 인증의 시대다. 자격증과 인증서를 갖는 것도 자신의 경력을 쌓는 중요한 일이고 자기의 쓰임새를 키우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카메라 장비도 예전과 달리 싸면서도 편리하게 만들어져 사용하기가 편해졌다. 사진작가 도전이 어렵지 않다. 사진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주변에 많다. 후반생의 새로운 여가활동으로 한번 도전해 봄도 좋지 싶다.
2017년 5년30일부터 8월1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은 올해 열리는 전시 중 손꼽히는 주요 전시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하는 필자의 전시 도슨트를 원고로 옮겨, 현장감을 느끼며 작품 감상을 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글 옥선희 동년기자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프랑스의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소장전은 서울시립미술관과 끼르티에 현대미술 재단의 공동 기획전입니다. 즉 까르티에 재단 작품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까르티에 측 제안을 받고 2015년부터 전 과정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참여하여 기획된 전시입니다.
카르티에 현대 미술재단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은 까르티에라는 명품 기업 후원으로 출발했지만, 100% 독립된 비영리 재단입니다. 프랑스에서 현대 미술을 지원하는 첫 기업 재단으로 출발했습니다. 설립자이자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는 알랭 도미니크 패랭이 프랑스 문화부 의뢰로 만든 기업의 미술 후원 보고서 초안 ‘레오타르법’이 현재 프랑스에서 공식적인 예술 후원법 기초가 되었습니다.
기업 메세나의 혁신적 모델인 재단은 1984년 베르사이유 궁 근처 조각공원에서 다양한 전시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작가 지원 프로그램)을 10년 간 운영했다. 젊은 작가 발굴 - 지속적 지원 - 세계적 작가로 키우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페이 다웨이, 후 한루 같은 큐레이터와 비평가 배출/ 학제적(學際的) 접근, 즉 다양한 분야 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을 꾀했는데요. 전시 디자인을 일러스트레이션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식이 그것입니다. 이번 서울전은 이세영 -논 스탠다드 스튜디오가 전시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재단이 출범한 1984년은 백남준 작가가 3부작 위성 시리즈 첫 작품 을 선보인 기념비적 해입니다. 은 파리 퐁피두센터에서도 생방송 중계되어, 비서구권 미술, 타자가 서구에서 가시화되는 출발선이 되었습니다. 주목하지 않았던 비 유럽계 작가에게 전시 기회를 주고, 전시를 갖지 못했던 젊은 작가가 방향을 설정하도록 도와온 재단 출범 년도가 1984년이란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합니다.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천안문 사태 발생 등으로 젊은 작가의 분출은 가속됩니다.
재단 건물 1994년 몽빠르나스14구 라스파일 대로에 재단 건물을 지어 이전했는데,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 Jean Nouvel이 설계한 재단 건물은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절제미와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나무가 무성한 중정을 품은 강화 유리와 메탈로 지어진 사각형 건물로, 1층은 정원으로 완전히 열려 있으며, 천정 높이가 7미터에 이르는 모듈 형식이라, 프로젝션이나 비디오 설치 작업을 위해서는 공간을 어둡게 조정할 수도 있고, 대작 전시도 가능합니다. 유리로 된 구역을 옆으로 밀어 시야를 트이게 만들면, 건물이 정원 쪽으로 열린 경사로에 놓인 거대한 구조물로 변형됩니다. 건물의 유리 표면을 통해 전시 중인 작품을 볼 수 있게 하였고, 반대로 구름이나 도시 공간을 반사시켜 시간대에 따라 건물이 변화하게 만들었습니다.
‹밤까지› 전시의 경우 건물 전체가 검게 덮였고, ‹자연으로 존재하기› 전시 기간에는 완벽하게 투명함을 유지했으며, 이세이 미야케는 건물을 거대한 디스플레이 윈도우로 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인공과 자연과 변환 가능한 건축미를 높이 사 1995년, 이탈리아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 이어 독일 중견 빔 벤더스가 완성한 옴니버스영화 에서 장 르노의 저택으로 등장했습니다.
1994년 부임한 에르메 샹데스 Herve Chandes 관장이 현재까지 관장 직을 유지하고 있는데요. 긴 재임이 말해주듯 큐레이팅도 직접 하는 문화 권력이자, 외교관이라는 평판을 듣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작가나 주제를 선택해 작가에게 시각화해달라고해서 독창적인 커미션 작품을 탄생시키고 전시 기획, 최종 소장 결정까지 하는 것이지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시각화해달라고 주문하는 커미션(commission) 방식은 까르티에현대미술재단의 특징입니다. 작품 의뢰에서 완성품까지 3년 정도 기간을 주고 5억원정도를 지원하는 등, 기간과 제작비 구애를 받지 않도록 자유를 주며,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가족 개념으로 관계를 유지합니다. 즉 경매를 통한 구입이 아닌, 직접 작가 발굴과 작품 의뢰를 통해 수집품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1년에 다섯 번 정도 큰 전시가 있는데요. 개인전과 기획전을 번갈아 여는 데 디자인, 사진, 회화, 비디오아트, 조각, 설치 , 미디어아트, 패션, 퍼포먼스 등 현대 예술의 창조적 분야와 장르를 아우릅니다.
인문과학, 환경, 생태학, 도시학, 경제, 생태, 이주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시 청각화하므로 미술가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대중음악가, 도시학자, 생태음향가, 디자이너, 과학자, 사상가, 철학자, 인류학자, 수학자, 사회학자 등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유지합니다. 1층에서 보게 될 작품 처럼, 도시학자의 아이디어를 디자인 건축가 그룹이 시각화하는 식입니다.
30년 간 200회 전시를 열어 전 세계 350여명 작가의 1,500점을 소장하고 있는데요. 작품 소장 기준은 엄격함과 탁월함의 결합/ 풍부한 독창성과 위험 감수 성향 고려/ 평범하고 예견가능하며 상식적인 가치 대신 전 방위적 개방성을 추구합니다. ‘흥미로운 현대 예술 작품으로 전시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세계를 향해 질문 던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전시 작품을 봐주었으면 한다’는 것이 까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디렉터 그라치아 콰로니 Grazia Quaroni의 전언입니다.
서울 전시작은 사라 지, 론 뮤익, 뫼비우스 등 재단을 대표하는 작품은 물론 국가, 인종, 젠더를 초월하는 공통 관심사를 반영한 사회 현상을 다룬 100점을 골랐습니다. 한국을 위한 특화된 선택 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장 미셀 알베롤라와 마크 쿠르티에 등이 내한하여 직접 벽면 작업을 했습니다. 아시아 투어 중 서울에서 처음으로 열게 되었고, 내년 초 상하이, 홍콩을 거쳐 도쿄 올림픽에서 마무리 될 예정입니다.
자연의 조화는 언제 보아도 신비스럽다. 사람의 힘과 손놀림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조각이나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러한 모습을 발견한 순간은 늘 기쁨이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샘솟는다. 때로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충청북도 단양지역의 천동동굴(충청북도 기념물 제19호) 관람 여행에서 최초로 발견한 구석기인(舊石器人)을 닮은 형상(사진) 또한 그렇다. 이 형상은 동굴 관리기관에서 이미 발견해 놓았거나 다른 사람이 이미 찾은 형상이 아닌 처음 발견이다. 동굴 현장이나 안내 유인물에도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단양지역은 선사 문화의 발상지로서 여러 동굴과 유물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다. 중기 구석기 시대부터 철기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유물들이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남한강 일원에서 발견되고 있고 그 유물들을 “수양개 선사유물 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석회암이 발달하여 만들어진 동굴은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거주 공간이었다고 한다. 동굴 속에서 돌로 ‘주먹 도끼’나 ‘주먹 찌르개’를 만들고 있는 모습의 구석기인을 빼닮은 이 형상은 선사 문화와 연결하여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료임엔 틀림이 없기에 제보하여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 형상은 일반인의 평범한 시각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 즉 앵글을 달리하여 보면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사진작가로서 자연이 빚은 형상을 찾아 촬영하기를 좋아하고 실제로 많은 종류의 형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중 일부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필자는 하나의 피사체를 촬영할 때도 여러 각도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기를 즐겨 한다. 구석기인의 형상 역시 그런 행동의 결과에서 얻은 사진이다. 카메라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썼다.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사진에서도 적용된다. 다시 보아도 여지없는 구석기인 형상으로 자연이 빚은 조각품이다.
코엑스몰이 달라졌다. 지난달에도 왔던 것 같은데 못보았던걸까, 코엑스몰 한복판에 ‘별마당도서관’이란 이름의 대형도서관이 새로 생겨났다. 입구에서부터 안내판이 줄줄이 붙어있어 도서관을 찾아가려 애쓰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동선은 도서관으로 이어졌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천장과 맞닿은 커다란 책꽂이 3개가 시선을 빼앗았다. 5만 여권의 책이 한 눈에 보이도록 진열돼 있어 들어서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개장 이틀째를 맞은 도서관엔 책을 읽는 사람 외에도 호기심에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공간이 워낙 넓어서인지 혼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책은 인문, 경제, 교양, 취미 등 카테고리 별로 나눠어져 있고, 이곳저곳에 책읽기 좋은 공간들이 많아 도서관이라기 보단 서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도서관이지만 정숙함이 요구되는 공간은 아니어서, 커피 한 잔 들고 와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다케오시립도서관이 언뜻 떠올랐다. 규모는 다케오 도서관에 비해 매우 컸지만 시선을 압도하는 책꽂이나 분위기가 그 도서관을 닮았다. 사진 몇 장을 찍어 딸에게 보내니 “오, 거기 어디야? 다케오 도서관이랑 비슷한데”
라는 문자가 왔다.
별마당도서관이 다케오시립도서관과 비슷한 건 이유가 있었다. 신세계그룹이 코엑스몰에 문화체험과 휴식이 가능한 오픈라이브러리를 기획하며 다케오시립도서관을 모델로 삼았다.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다케오의 다케오시립도서관은, 누구나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열린 도서관 컨셉으로 리뉴얼 한 후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도서관 안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올레길을 걷느라 더위에 지친 땀을 식혔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도서관 문턱이 높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평생토록 도서관 근처에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도서관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멋진 도서관이 강남 한복판에 생겼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오픈을 했지만 공연이나 북콘서트, 시낭송회 등 다양한 책관련 전시회나 문화행사도 많이 계획돼 있었다. 내가 찾아간 날에도 지하 1층에서 작은 공연이 열렸다. 귀에 익숙한 피아노 소품 위주의 연주가 진행됐다. 박수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1층 테이블에 앉아 잔잔하게 들리는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며 책을 읽었다. 앞으로 강남에서 친구를 만나려면 여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