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만 절이랴. 터로만 남은 폐사지도 절이다. 전각이며 석물 따위는 이미 스러져 휑하지만 오히려 절의 본질이 느껴진다. 삼라만상은 변하고 변해 마침내 무(無)로 돌아간다. 제행무상이다. 절은 그걸 깨닫게 하기 위해 지은 수행 도량이다. 그렇다면 무위로 잠잠한 폐사지 역시 통째 경전이며 선방이다. 가장 적나라한 절집의 한 형태다. 흔히 폐허 이미지에서
인공지능(AI)이 음악도 만들고, 그림도 그린다. 인간 고유의 재능으로 여겨졌던 ‘창작’이라는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AI가 더욱 고도화될 거라는 건 정해진 미래다. 사람들이 ‘어떻게 AI를 활용할 것인가’ 고민할 때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변호사가 있다. 아니, 그는 소설가다.
장편소설 ‘밤의, 소설가’는 “AI와 공동 집필에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니며 여행의 묘미를 깨달은 시니어들이여, 이제 고수로 발돋움할 때다. 여행 고수란 비단 위험하고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사람을 지칭하지 않는다. 자신의 취향과 색깔을 갖고 ‘나만의’ 여행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시니어 여행 고수들의 이야기를 통해 레벨 업을 해보자.
여행은 모름지기 자는 곳과 먹는 것
국내에서 자유여행을 성공적으로 만끽했다면, 이제 해외로 향할 차례다. 저마다 마음속에 품어본 곳들이 있을 테다. 화보로만 봤던 광활한 대자연, 영화 속 주인공이 거닐던 이국적인 거리, 죽기 전 꼭 먹어야 한다는 세계 3대 디저트…. 로망으로만 간직했던 모든 것을 ‘자유’의 날개를 달고 펼쳐보자. 이제 막 해외 자유여행의 첫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학창 시절 내내 읽고 들으면서 살았다. 직장 생활 할 때도 그랬다. 지금은 듣거나 읽은 걸 말하고 쓰면서 산다. 읽고 듣는 만큼 말하고 쓴다. 말하기와 쓰기가 내 삶에 비중 있게 자리 잡았다. 또한 말하고 쓰려니 읽고 듣지 않을 수 없다. 읽고 듣기만 하면서 살 때보다 읽기와 듣기가 더 소중해졌고, 더 많이 읽고 듣는다. 이로써 읽기, 듣기와 말하기, 쓰기
글쓰기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분량의 문제다.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싶은 만큼 쓰면 못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정해진 분량만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원고지 10매 분량을 써야 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이는 원고지 10매가 너무 많아 부담스러울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하고 싶은 말에 비해 분량이 너무 적어 글을 쓰기 어려울 수 있다.
“아따, 엄마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여든셋의 어느 날. 달력 뒷장에 무심코 사과 한 알을 그렸다가 아들의 칭찬을 들었다. 어쩐지 기뻐 읍내에 나가 스케치북 두 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것저것 그려서 벽에 붙였더니 사람들이 또 “잘 그렸다”고 했다. 그게 좋아서 그리고 또 그렸다.
나는 1928년 일본 오사
조선 가사문학의 대가이자 정치가였던 송강 정철(1536~1593)의 생애는 극적이었다. 삶 전체가 한 편의 파란만장한 인간극장이자, 장면에 따라서는 야유가 쏟아지는 별점 5개짜리 장편영화였다. 생존 당시는 물론 사후까지 부정적이거나 엇갈린 평가가 따라붙는 송강의 캐릭터는 정말이지 독특하다. 그의 문학은 빼어나 찬사가 쏟아졌지만, 정치 측면에선 잔혹해
농사는 흙에 땀을 쏟아 결실을 거두는 일이라는 점에서, 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나 햇빛의 동향과 긴밀하게 연관된 일이라는 점에서 신성한 직업에 속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하지만 농사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기는 쉽지 않다. 귀농의 경우는 더욱 버겁다. 자칫하면 풍랑을 만나 표류할 수 있다. 올해로 귀농 5년 차에 이른 김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린다’ 싶은 사람이 주변에 한 명쯤은 있다. 10여 년간 정리수납 컨설턴트로 일한 정희숙 대표는 수많은 장소를 재구성하며 소위 ‘잘되는 사람’의 철학을 몸소 느꼈다. 그들의 공간에는 삶의 품격이 묻어난다. 신간 ‘잘되는 집들의 비밀’에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좋은 집 이야기가 담겼다.
정리수납 컨설턴트. 물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