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세의 ‘젊은 철학자’ 김형석 교수는 본지와 인연이 깊다. 2016년 가화만사성에 대한 기고와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의 발행에 맞춰 진행된 인터뷰로 독자들과 만났고, 본지 창간 1주년 행사에서는 특강도 맡았다. 창간 당시 초대 미래설계연구원장이자 72세 현역 언론인인 임철순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에게 김 교수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아 창간 10주년 특집 기사를 써줄 것을 주문했다. - 편집자 주
철학자이자 교육자·수필가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우리 나이로 106세가 됐다. 그런데도 건강하고 활기차다. 김 교수는 대학 강단을 떠난 뒤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앉아 있으면 학생이 되고 서 있으면 선생님이 된다’는 신념으로 사회의 강단에서 젊은이들 이상으로 활발한 강연과 기고 활동을 해왔다.

2017년 1월 유한양행은 제12회 유일한상(柳一韓賞)을 수여하면서 “김형석 교수는 평생 학자와 교육자의 투철한 사명을 바탕으로 철학을 통해 한국의 교육과 문화 발전에 헌신해온 선각자이자 철학계의 아버지”라며 “그 정신은 이 시대의 등불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표가 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금도 등불처럼 나무처럼 우뚝하게 서 있는 분이다.
학창 시절 제자와, 책으로 사숙한 애독자들이 2017년 11월에 김 교수를 기리는 ‘송촌문화모임’을 만들면서 아호를 지으라고 하자, 김 교수는 유년기를 보낸 평안남도 대동군 송산리(1947년 이후 평양시로 편입)의 송(松)자와 제2의 고향인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의 촌(村)자를 합쳐 송촌(松村)이라고 지었다.
두 글자에 다 들어 있는 것은 나무다. 김 교수는 나무도 그냥 나무가 아니라 키가 8m 이상 자라고, 곧은 줄기와 뻗어나간 가지가 명확히 구분되며 중심 줄기의 생장이 뚜렷한 교목(喬木)이다. 송촌이라는 청청한 ‘소나무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이 그 밑의 그늘에서 쉬며 나무의 신선한 향취를 호흡하고 있다.
영문학자 이양하(李敭河, 1904~1963)의 유명한 수필 ‘나무’는 “나무는 덕을 지녔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송촌 선생의 덕은 많은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삶에서 지향할 바를 알려주는 자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산다”
이제 나이를 생각하지 않는 나이에 이른 김 교수는 지팡이를 짚지 않는 ‘지팡이’다. 그 나이에도 건강하게 연간 200회 이상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하고, 신문 칼럼을 집필하고 있다. 귀가 좀 어둡지만 지팡이도 짚지 않고, 계단도 잘 오르내린다.
아침 식사는 항상 똑같다고 한다. 우유 반 잔에 호박죽 반 잔, 반숙한 작은 달걀 하나에 생채소 샐러드, 여기에 토스트와 찐 감자를 하루씩 번갈아가며 먹는다. 식사 후에는 간단한 과일과 아메리카노 반 잔을 마시는데, 몸이 좀 안 좋다 싶으면 커피를 3분의 1잔으로 줄인다.
점심은 주로 바깥에서 생선이나 고기 위주로 영양가 있게 먹는다. 점심이 생선이면 저녁에는 고기, 점심이 고기라면 저녁은 생선, 이런 식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다. 특히 저녁은 점심보다 적게 먹는다.
일어나는 시각은 매일 아침 6시. 체조까지는 아니라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몸을 푼 뒤 10분가량 기도를 한다. 고용한 아침에 자신과 대화하는 명상의 시간이다. 노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데,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사귐이 끊어졌을 때 느끼는 마음의 상태가 고독이다. 늙은 뒤의 고독은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 수 있다.
건강 유지에 큰 도움이 된 것은 50대에 시작한 수영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김 교수의 저서 ‘인생문답’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100을 할 수 있다 해도 90에서 멈춥니다. 오래 사는 사람은 절대 무리를 안 해요.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오래 사는 게 아니고, 무리하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는 것과 함께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배우며 일을 하는 것이다. “봄이 온다 하는 것은 시간의 빈 그릇이 내 앞에 오는 것이다. 빈 그릇이 오는데 거기에 무엇을 채워 가지고 갈 것인가, 그건 내가 해야 한다.” 또 새봄을 맞은 노학자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김 교수는 노력만 하면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하면 몸이 정신을 따라온다는 것이다. 100년을 살아보니 일하는 사람이 건강하고 노는 사람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알게 된 김 교수는, 취미도 일 가운데 하나이니 무엇이든 배울 것을 권한다.

신앙인으로 진리 찾는 ‘젊은 삶의 철학’
1920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을 거쳐 제3공립중학교를 졸업한 김 교수는 일본 도쿄의 조치(上智)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고향에서 해방을 맞았으나 1947년 38선을 넘어 남한에 정착한 김 교수는 부양가족 11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서울중앙중·고교에서 교사로 일했고, 연세대 철학과에서 30여 년간 후학 양성에 힘썼다. 미국 시카고대, 하버드대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대강의 학력과 경력은 이와 같다.
강원도 양구 인문학박물관 2층은 김형석 교수와 그의 동갑 친구 안병욱(1920~2013) 전 숭실대 교수, 두 분을 조명하는 전시실로 꾸며졌다. 김 교수를 ‘진리의 별을 찾는 언제나 젊은 삶의 철학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는 타고난 약골에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갈 희망도 없었다.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나한테 건강을 주시면, 어른이 될 때까지 살게 해주시면 나를 위해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다.” 그의 저서 ‘예수’에 의하면 숭실중 1학년 때 일생을 하나님께 맡긴 이후 하루도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순간이 없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해 자퇴를 하고 1년간 집에 있을 때 독서를 많이 하면서 ‘철학을 공부해 정신적 지도자가 되자!’라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 무렵 같은 학교에서 만난 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1945), 소설가 황순원(黃順元, 1915~2000) 등이 ‘시인과 소설가로 인생을 끝내겠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을 알고 ‘나는 철학을 공부하며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특히 학교에 안 가는 동안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의 나라 사랑 강연을 듣고 두 가지를 다짐했다고 한다. 첫째는 사상가가 되겠다는 것. 두 번째는 철학을 공부해 정신적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
37세에 고등학교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김 교수는 사람을 키우는 일을 계속해왔고, 65세에 은퇴하고 나서 더 많은 일을 했다. 두 차례 세계 일주를 하고 캐나다에서도 강의했다.
김 교수는 ‘철학 개론’, ‘철학 입문’, ‘종교의 철학적 이해’ 같은 철학서 외에도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와 같이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과 논문도 많이 냈다, 60년도 더 전에 나온 에세이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김 교수의 철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멀리 떨어진 영원과 사랑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함께 있는 영원과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일상적인 일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제자인 박순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송촌 김형석 교수의 철학 체계를 논한 글에서 “김 교수의 철학은 실천철학 분야에 속하지만 형이상학적 이론철학을 제일로 삼았던 강단철학과 달리 종교와 역사, 윤리와 도덕을 제일철학으로 삼았다”고 정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목적이라는 가치관과 사랑의 질서를 정착시키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철학자로서 김 교수가 지향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생명력이 여전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대산문화재단(대표 신창재)은 매년 그해에 탄생 100년이 되는 문학인들을 조명하는 기념행사를 한다. 2020년에는 조지훈,․한하운,․김상옥,․조연현 등과 함께 김형석 교수의 수필을 분석했다. 생존 문인이 이런 기념행사의 대상이 된 건 김형석 교수가 유일할 것이다.
‘수필의 시대: 1960년대 수기, 수상, 에세이’라는 논문에서 박숙자 서강대 교수는 1920년생 동갑이었던 김형석,․안병욱,․김태길의 수필을 분석했다. 김 교수의 경우 1955년 ‘절망을 넘어서’, 1960년 ‘고독이라는 병’, 이듬해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잇달아 내면서 1960년대의 대표적 수필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가족적․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고독’으로 응축함으로써 독자들의 다양한 고통에 응답하는 글로 공감의 폭을 넓혔다. 베스트셀러 저자로 한 해 6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적도 있다.
그의 수필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독’을 키워드로 삼아 삶의 부박함을 응축해내고, 이 삶을 어떻게 견디면서 더 나은 삶으로 승화시켜나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글이다. 박 교수는 자기 체험을 통해 고통을 객관화한 뒤 타인들의 아픔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드러내는 것이 김형석 수필이 설득력을 얻는 요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1960년대에 한정된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적 궁핍과 고독은 그때보다 훨씬 더 심대하고 깊다. 김 교수의 요즘 글과 강연은 그래서 생명력과 설득력이 크다.
김 교수는 “내가 살던 시기는 힘든 시기였지만, 보람되게 살았다”고 말한다. 고생이 있었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하며, 사랑한 만큼 인생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15년 12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창간 1주년 행사 때 특강을 하면서 “10년 후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했다. 창간 10주년호에 김형석 교수를 집중 조명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일러스트 윤민철)김형석 교수 해적이
*해적이는 연보를 뜻하는 우리말임
2022~2023 ‘100세 철학자의 행복론’ 1,2 출간
2022 ‘김형석의 인생문답’ 출간
2021 ‘백년의 독서’ 출간
2019 제자·후학들의 문집 ‘영원과 사랑’ 출간, ‘인생의 열매들’ 출간
2018 안중근 국민대상(교육부문),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출간
2017 인촌상(교육부문) 수상
2016 도산인상, 유일한상 수상, ‘유일한의 생애와 사상’ 출간, ‘백년을 살아보니’ 출간
2015 ‘예수’ 출간
2012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강원도 양구) 개관
2008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 출간
2006 ‘인생이여 행복하라’ 출간
2004 ‘나의 인생 나의 신앙’ 출간
2000 팔순 기념 논집 ‘역사와 이성’ 출간
1985 국민훈장 모란장
1981 김형석 회갑기념 논문집
1980 ‘국민과 윤리’ 출간
1964~1985 연세대 철학과 교수
1961 5.16 군사쿠데타, ‘영원과 사랑의 대화’ 출간
1961~62 미 하버드대, 시카고대 연구교수
1960 4.19 학생혁명, ‘고독이라는 병’ 출간
1959 ‘철학개설’ 출간
1956 ‘죽음에 이르는 병’ 출간
1950 6.25 한국전쟁
1947~1953 서울 중앙고 교사
1947 월남
1945 해방
1943 일본 조치(上智)대 철학과 졸
1934~38 평양 숭실중 거쳐 제3공립중 졸
1920 평안북도 운산군 출생
생명력이 여전한 ‘영원과 사랑의 대화’
대산문화재단(대표 신창재)은 매년 그해에 탄생 100년이 되는 문학인들을 조명하는 기념행사를 한다. 2020년에는 조지훈,․한하운,․김상옥,․조연현 등과 함께 김형석 교수의 수필을 분석했다. 생존 문인이 이런 기념행사의 대상이 된 건 김형석 교수가 유일할 것이다.
‘수필의 시대: 1960년대 수기, 수상, 에세이’라는 논문에서 박숙자 서강대 교수는 1920년생 동갑이었던 김형석,․안병욱,․김태길의 수필을 분석했다. 김 교수의 경우 1955년 ‘절망을 넘어서’, 1960년 ‘고독이라는 병’, 이듬해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잇달아 내면서 1960년대의 대표적 수필가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가족적․사회적 관계의 해체를 ‘고독’으로 응축함으로써 독자들의 다양한 고통에 응답하는 글로 공감의 폭을 넓혔다. 베스트셀러 저자로 한 해 60만 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적도 있다.
그의 수필은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고독’을 키워드로 삼아 삶의 부박함을 응축해내고, 이 삶을 어떻게 견디면서 더 나은 삶으로 승화시켜나가야 하는지 제시하는 글이다. 박 교수는 자기 체험을 통해 고통을 객관화한 뒤 타인들의 아픔까지 따뜻한 시선으로 드러내는 것이 김형석 수필이 설득력을 얻는 요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1960년대에 한정된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적 궁핍과 고독은 그때보다 훨씬 더 심대하고 깊다. 김 교수의 요즘 글과 강연은 그래서 생명력과 설득력이 크다.
김 교수는 “내가 살던 시기는 힘든 시기였지만, 보람되게 살았다”고 말한다. 고생이 있었지만 사랑이 있는 고생은 행복하며, 사랑한 만큼 인생은 행복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15년 12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창간 1주년 행사 때 특강을 하면서 “10년 후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했다. 창간 10주년호에 김형석 교수를 집중 조명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김형석 교수 어록- 2022년 2월에 출간된 ‘김형석의 인생문답’은 삶의 지향점을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들은 물론 제2의 삶을 꾸려야 하는 시니어들이 꼭 읽어야만 할 책이다. ‘100명의 질문에 100년의 지혜로 답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토대로 김형석 어록을 만들어보았다.
- 나는 나이가 많은 편이지만, 새해가 되면 ‘금년에는 어떤 일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이 연장되는 것이다.
- 60세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 다른 사람을 따라가거나 믿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다. 쭉 반성하고 종합해보니 60세에서 75세까지가 제일 좋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 75세까지 모든 게 성숙하고, 내가 나를 믿고 살 수도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만한 나이가 되니 이 기간이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 노년이 행복하려면 1)무조건 공부하라 2)절대로 놀지 마라 3)취미활동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계속한 사람은 보람과 행복을 누리고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이웃과 더불어는 즐거움을, 사회적으로는 고마움을 받으면서 살 수 있다.
- 수입을 위해 일할 때는 수입과 더불어 일이 끝난다. 그런데 일의 가치를 찾아서 하니까 그 일이 또 다른 일을 더 많이 만들더라. 돈을 위해서 일할 때보다 일을 위해 일할 때 수입도 더 올라갔다.
- 다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얻은 것에 일의 목적을 둔 사람은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된다. 남들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 젊을 때는 그런대로 즐겁게 살았고, 교수 생활 할 때는 나름대로 성공했고, 늙어서는 그래도 사회에 무엇인가 조금씩 주고 있으니 행복하다.
- 삶의 가치를 높일수록 인생이 귀하고 영광스러워진다.
- “왜?”라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청소년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는 뚜렷한 목적과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이 성공도 빠르고 행복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 나의 스승으로는 중학교 때 만난 간디와 톨스토이, 나라 사랑을 가르쳐준 도산 안창호 선생, 큰 산과 같았던 인촌 김성수 선생,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칸트·헤겔 등 철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스승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스승이 된 게 아닌가 싶다. 강조하고 싶은 건 학자가 누구를 연구했다고 해서 거기에 빠지지는 말라는 것이다. 내가 나를 찾고 내 사상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사는 게 제자로 출발해 스승이 되는 길이 아닐까.
-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난 내 아내는 20여 년 긴 기간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이 가고 나면 싸우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함께 사는 동안 열심히 싸우고 열심히 화해하라. 잘 싸우는 부부는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
- 노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자기 자신과의 대화와 사귐이 끊어졌을 때 느끼는 마음의 상태가 고독이다. ‘나 혼자 남겨두고 다 떠나가는구나’ 하는 공허감도 크다. 고독하고 외로울수록 친구를 만나 우정을 살려야 한다. 특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 말고 내가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과 우정을 나눠야 한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면 더욱 좋다.
- 60대 이상에서는 독서를 하고 안 하는 것이 인생의 아주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60세가 넘어서도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성장하고 존중받는다. 독서는 나의 행복의 원천이며 사회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 100년을 살아보니 고생이 있는 행복이 제일 큰 행복이고 고생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고생이 인생’이라고 나는 믿는다. 사랑 없는 고생은 의미 없는 고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