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는 사전 예매만으로 30만 장 이상의 티켓이 판매되었다. 이번 단독 회고전은 2007년, 2012년에 이어 세 번째 열리는 전시로, 그의 10년간의 예술 세계를 연대기 순으로 탐험할 수 있는 기회다.
전시는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파리, 아를, 생레미,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총 다섯 시기로 나뉘어 있다. 특히 정신적 위기를 맞이했던 생레미 시기(1889~1890) 작품들은 강렬한 색감과 물결치는 붓질 속에서 그의 불안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마지막 오베르 쉬르 우아즈 시기.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생의 마지막을 암시하는 듯한 작품들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다섯 시기의 여정을 따라가며 고흐가 예술과 삶에 쏟아부은 열정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오털루의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뮐러 미술관은 반 고흐 미술관과 함께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다. ‘해바라기’ 시리즈나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대표적인 작품을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다. 대신 그동안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그의 초기 드로잉 작품들과, 존경했던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한 그림 등이 전시된다. 특히 반 고흐 최고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으로 ‘착한 사마리아인’ 원화는 그의 강렬한 붓질과 색채가 돋보이는 걸작이다.
전시장을 나서며 생각한다. 생전엔 단 한 점의 작품만 팔았던 그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반 고흐의 유명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닌, 그의 예술적 성장과 실험 정신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촬영은 불가능하지만,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이제 여러분도 반 고흐의 시간 속으로 떠나볼 차례다.
주요 작품

파리에서의 야망 – ‘자화상’
고흐는 1886년 파리로 이주한다. 예술가들과 교류하게 된 파리 시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전보다 훨씬 밝고 부드러운 색조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시기 초상화 화가로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을 품었지만 모델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얼굴을 그리며 연습을 이어갔다.

존경하는 화가의 작품을 재해석하다 – ‘착한 사마리아인’
고흐는 정신적 위기를 겪은 후,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다양한 작품을 모사하며 자신만의 색채와 해석을 더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을 기반으로 그렸지만, 단순한 모사가 아니다. 좌우 반전된 구도와 특유의 강렬한 터치는 고흐의 해석이 녹아든 새로운 창작물로 재탄생했다.

농민의 삶을 그리다 – ‘감자 먹는 사람들’
고흐의 초기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은 어둡고 작은 캔버스 위에,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농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당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그의 마음이 드러난다.
‘나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길 바랐어. 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땅을 일구고, 그 손으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며, 그렇게 정직하게 음식을 벌어들였다는 것을 말이야.’

감춰진 비밀 – ‘들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화’
1974년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소장한 이후 진품 논란이 일었던 ‘들꽃과 장미가 있는 정물화’. 기존 고흐 작품들과 크기와 화풍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2012년 최첨단 연구 기술을 통해 그림 아래 숨겨진 작품이 밝혀졌다. 엑스레이 분석 결과, 캔버스 아래에는 두 명의 레슬링 선수가 그려져 있었다. 이는 고흐가 한 작품을 완성한 후 새로운 그림을 덧칠하며 끊임없이 실험하고 변화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