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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특집] 손주와 함께 하는 문화 나들이
- 이번 추석 연휴는 바로 뒤에 주말이 있고, 그 전 주말과 연휴 사이에 낀 이틀만 휴가를 내면 9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다. 쉬는 날이 많으면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장기 일정을 잡기도 하지만, 여름휴가를 길게 다녀왔다면 어쩐지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집에만 앉아 쉰다면 손주들은 지루해 몸이 근질근질할 테니, 그럴 땐 아이들을 위해 잠시 나들이 삼아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장 등을 찾아가 보는 것 어떨까? 글 이지혜 jyelee@etoday.co.kr 판타스틱 뮤직 어드벤처 감독과 제작진이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 추석 당일 개봉한다. 뮤지션이 되고 싶은 주인공이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위해 상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음악을 주제로 한 만큼 신나고 활기 넘치는 영화 삽입곡들이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개봉 9월 14일 감독 애시 브래넌 목소리 출연 J.K. 시몬스, 루크 윌슨, 에디 이자드 등 창덕궁 속 달빛 세계의 문이 열렸다! 우연히 창덕궁 속 환상의 세계인 ‘달빛궁궐’로 들어가게 된 소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았다. 개봉에 앞서 8월 29일 국내 최초로 창덕궁에서 야외 시사회를 가져 화제를 모았다. 개봉 9월 7일 감독 김현주 목소리 출연 김서영, 이하늬, 권율, 김슬기, 신용우 등 동물들 섬에 갇힌 인간의 생존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엔웨이브 픽처스의 신작이다. 동물만이 살고 있는 무인도에 갇히게 된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기를 그렸다. 를 모티브로 귀엽고 개성 넘치는 동물 캐릭터가 등장해 재미를 더한다. 개봉 9월 8일 감독 벤 스타센, 빈센트 케스텔루트 목소리 출연 유리 로웬탈, 데이비드 호워드, 콜린 메츠거 등 위기에 빠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장난감들이 깨어나며 벌어지는 모험 이야기다. 이미 해외에서는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뉴욕 국제 어린이 영화 축제 대상을 받은 기대작이다. 국내에서는 컬투(김태균·정찬우)가 더빙을 맡았다. 개봉 9월 8일 감독 후앙 호세 캄파넬라 목소리 출연 니콜라스 홀트, 아리아나 그란데, 케이티 홈즈 등 미술관 속 모래사장에서 발견하는 관찰 놀이 ‘관찰놀이터(Seek&Find)’ 기술의 발달로 직접적인 소통과 접촉에 소홀해진 시대에 ‘관찰’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전시다. 모래사장을 콘셉트로 꾸민 전시장에서 삽으로 모래를 파내어 숨어 있는 작품 이미지를 발견하는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아이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 ‘관찰과 발견’도 함께 운영한다. 일정 9월 18일까지 장소 블루메 미술관 ‘파리도서전’에 간 우리 그림책 130권을 만나다 ‘7가지 마음의 모양’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파리 도서전에서 선보인 한국 대표 그림책 130권을 살펴볼 기회다. 기쁨과 즐거움, 노여움과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과 연민, 미움, 욕망 등 7가지 주제로 나뉜 그림책과 그림으로 표현한 마음의 모양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같은 주제의 프랑스 그림책 130권도 함께 전시해 의미를 더했다. 일정 10월 30일까지 장소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상상 속 자동차를 현실에서 체험하다 ‘브릴리언트 키즈 모터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현대자동차가 함께 어린이들이 상상한 자동차를 실제 자동차보다 작은 크기의 모형으로 제작해 전시했다. 펭귄을 도와 얼음집을 지어주는 이글루 자동차, 조개를 연료로 하는 수중 자동차 등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상상 자동차 그림 공모전을 통해 7300여 점 중 선발한 15개의 작품이다. 전시된 자동차는 어린이들이 직접 타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정 2017년 4월 14일까지 장소 DDP 배움터 4층 디자인놀이터 창의력과 꿈을 키우는 국내 최대 어린이 실내 놀이터 ‘텔레몬스터 대모험’ MBC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꾸며진 어린이 실내 놀이터로 1만3072㎡(약 4000평) 규모의 체험전시장이다. TV, 컴퓨터 게임 등에서 벗어나 신체 발달 및 지능 발달 놀이 등 아이들의 건강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놀이 테마존 30여 개가 설치돼 있다. 매일 2~3회 마술, 비눗방울, 풍선 공연이 열리고, 각 체험장에서는 미션을 수행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제공한다. 일정 9월 18일까지 장소 킨텍스 제2 전시장 부산에서 만나는 신비한 동물 여행 ‘판타스틱 애니멀’ 쉽게 만나 볼 수 없었던 희귀 동물들의 생생한 표본 216점을 전시하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체험과 놀이를 통해 동물을 이해하는 ‘사이언스 존’, 흔히 만나는 동물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동물원 존’, 생명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사파리 존’ 등 세 가지 테마관으로 구성된다. 척추동물 해부학모형 체험, 동물 페이퍼토이 제작 등을 즐길 수 있다. 일정 9월 23일까지 장소 벡스코 제1전시장
- 2016-09-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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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특집] 추석에 가볼 만한 곳, 친지들과 연휴 나들이하세요
-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명절 중 하나인 추석. 이때가 되면 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차례상에 올라갈 밤을 깎고, 전 부치고, 이런저런 요리를 계속해서 나른다. 밥을 먹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밤이 되면 송편 만들기에 돌입. 힘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은 오랫동안 쌓아두었던 수다로 이겨 낼 수 있다. 이렇게 음식이 차려지고 조상님 만나고 나면 헤어지기 아쉽다. 못다 한 이야기를 좀 더 하고 싶다면 친지의 집에서 가까운 멋진 장소를 찾아가자.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북촌한옥마을(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울의 600년 역사와 함께한 전통 거주 지역이다. 두 궁궐 사이에 전통한옥이 밀집해 있다. 옛 골목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역사 도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전통 문화체험관이나 한옥 음식점 등으로 활용되는 곳이 많아 간접적으로나마 조선시대 생활상을 느껴 보기 좋다. 북촌한옥마을이 지속 가능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침묵 관광을 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침묵 관광’이란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권과 환경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큰소리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여행하는 관광형태를 말함. 관광코스 안내 도보관광코스(3시간 30분 소요) 안국역 → 북촌문화센터 → 가회동 11번지 → 한상수자수공방 → 가회민화공방 → 북촌생활사박물관 ‘오래된 향기’ → 안국동 윤보선가 → 안국역 예약신청 인터넷(dobo.visitseoul.net) 예약 / 관광일 기준 3일 전까지 신청 문의 02-6925-0777 www.bukchon.seoul.go.kr 제비원 석불이라 불리는 ‘마애여래입상’(경북 안동시 이천동) 경북 안동과 영주 사이를 지나는 이천동 길에는 자비롭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석불을 만날 수 있다. 일명 ‘제비원 석불’이라고도 불리는 마애여래입상이다. 불두는 큼직한 육계가 표현된 소발(素髮)의 머리와 얼굴을 각각 다른 돌에 새겨서 조립했는데 미끈한 얼굴의 질감과는 달리 거칠게 표면 처리한 머리를 이마 위에 얹어 놓아 멀리서 보더라도 뚜렷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풍만한 얼굴의 미간에는 백호(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를 큼직하게 새겼다. 수평으로 길게 뜬 눈 위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깊게 파인 눈썹과 날카롭게 우뚝 솟은 코가 이어져 있다. 붉게 채색된 도톰한 입술은 굳게 다물어 강한 윤곽으로 표현한 얼굴과 함께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강한 각선으로 조각된 환조(丸彫)의 머리와는 달리 장대한 신체는 선각으로 처리됐다. 불두를 따로 제작하여 불신이 새겨진 암벽 위에 얹는 형식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는 형식이며,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11세기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여래입상 옆에는 연미사가 있으며 최근 주위를 공원으로 조성해 쉬기 편하다. 만약 공원까지 갔다면 마애여래입상 앞에 꼭 가보시라.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 예술마을은 예술인들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며 만든 곳이다.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300여 명이 모여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을 세워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했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농요 '헤이리소리'에서 따왔다고. 각종 문화예술의 창작 공간, 전시 공간, 공연 공간, 축제 공간, 교육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헤이리 마을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설계를 지향하며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 전시장으로, 건물 자체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 예술작품이며 자연 친화적인 공간이다. 휴무일 대부분의 작업장이 매주 월요일 휴무(각 전시장, 작업장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음) 체험안내 헤이리 마을 내 다양한 체험 코너 마련 이용가능 시설 전시장, 박물관·공연/소극장, 아트 숍, 서점, 공간대관, 레스토랑 및 카페, 갤러리, 게스트 하우스 등 이용시간 09:00~20:00 (전시 공간별로 다름) 죽녹원(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전남 담양군이 조성한 죽녹원은 죽림욕장으로 인기가 높다. 관방제림과 영산강의 시원인 담양천을 끼고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곳이 죽녹원이다. 입구에서 돌계단을 하나씩 밟고 오르면서 굳어 있던 몸을 풀고 나면 대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청량감을 불어넣어 준다. 죽녹원 안에는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한다. 죽로차 한 잔을 마시고 죽림욕을 즐기며 하늘 높이 솟은 대나무를 올려 보라.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매력과 함께 대나무와 댓잎이 뿜어내는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대나무 숲 외에도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도 연결돼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시간: 3월 ~ 10월 09:00 ~ 19:00 (입장마감 18:00) 입장료 어른(단체요금) 3000원 (2400원) 청소년/군인(단체요금) 1500원(1000원) 어린이(단체요금) 1000원 (600원) 천리포수목원(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천리포수목원은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불렸던 故민병갈(미국명: Carl Ferris Miller) 설립자가 40여 년 동안 정성들여 일구어 낸 우리나라 1세대 수목원이다. 1962년 부지를 사들여 1970년부터 본격적인 나무 심기를 시작한 수목원은 교육 및 종 다양성 확보와 보전을 목적으로 관련분야 전문가, 후원 회원 등 제한적으로만 입장을 허용했다. 2009년에 일부 지역이 일반에 공개됐다. 56만1000㎡(17만평)에 이르는 수목원 호랑가시나무, 목련, 동백나무, 단풍나무, 무궁화를 중심으로 1만3200여 품종이 식재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식물자원이 심어져 있다. 故민병갈 설립자는 식물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평생 동안 전 재산을 들여 민둥산을 지금의 수목원으로 만들었다. 탐방 소요시간약 1시간 30분 개방 구간총 7개 지역 중 밀러가든만 개방 홈페이지 천리포수목원www.chollipo.org
- 2016-09-08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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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온가족과 유럽 미술관을 순례한 미술평론가 이주헌
- 20여 년 전, 미술평론가 이주헌(李周憲·55)은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 미술관을 순례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은 그동안 14만 부가 넘게 팔리며 대중에게 꾸준히 사랑받았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지만, 당시 기저귀조차 떼지 못한 한 살, 세 살배기 아이들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났던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1993년 언론사 기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무렵, 그는 미술평론가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을 만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관련 학위를 더 쌓아 대학교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었지만, 그는 ‘책’이 그 자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술평론가로서 활동하려면 기반이 되고 신뢰하게 할 만한 계기가 필요했죠. 때마침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졌는데, 국내에는 서양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 단 한권도 없더라고요. 그 전에 일본 서점에 갔더니 그런 책이 10~20권 정도 있었어요. 우리나라 대중에게도 그런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 해외에 가면 유명한 미술관을 안 들를 수 없는데, 그러면 아무런 정보 없이 가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좋거든요. 그런 면에서 해외 미술관 관련 책을 사람들이 선호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책을 쓰기 위해서라면 혼자 가거나 미술 관련 전문가와 함께 가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함께, 그것도 한 살, 세 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데리고 생고생(?)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여행 가는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에 대한 책을 쓰더라도 막상 독자가 미술을 어렵고 낯설게 느낀다면 책에 손이 덜 가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미술에 대한 관심은 음악에 비할 수 없이 낮았죠. 무엇보다 미술을 쉽게 접하도록 해야 했고, 그러려면 책을 부드럽게 꾸며야 했어요. 젊은 아빠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배낭여행을 가면 당연히 좌충우돌 사고가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누구나 예상하고 재미를 느낄 만한 에피소드들을 넣어 준다면 쉽게 책을 다 읽어낼 수 있고, 다 읽고 나면 미술을 어렵지 않게 느낄 것 같았죠. 물론, 바삐 살며 가족에게 소홀했던 것을 만회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요.” ‘미술’, 공부하지 말고, 친구처럼 다가가라 그가 일종의 모험을 감수하며 자신의 체험을 통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는 대중이 미술에 친근하게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에게 그는 두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미술을 알려고 하지 말고 먼저 느끼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느낌이에요. 대부분이 오해하는 게, 예술적 지식이 없으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공부부터 시작하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맞지만, 그렇다고 아는 만큼 꼭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이들이 어른보다 지식이 모자란다고 해서 덜 느끼는 것은 아니잖아요. 길가에 핀 꽃을 보고도 어른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 꽃을 보고 강렬한 느낌을 받아 꼼짝을 못할 수 있어요. 아주 좋아할 수도, 슬퍼할 수도 있는데 그게 바로 감상이거든요. 감상이란, 느낌을 얻는 거예요. 내가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지각해서 내 마음에서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는 미술 감상은 지식을 넓히기 위한 행위가 아닌 느낌을 얻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지식을 넓히려면 지금 당장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책에 밑줄 긋고 열심히 공부하면 그만이라는 것.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친구가 되는 것이 다르듯, 미술을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며 그는 줄곧 미술을 ‘친구’에 비유했다. 미술을 친구 사귀듯 하라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조언이다. “세상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미술 작품도 다 알 필요 없어요. 아무리 인기 있는 사람이라도 내가 끌리지 않으면 사귀지 않잖아요. 피카소나 고흐의 작품처럼 유명하다 해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굳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먼저 내가 어떤 그림에 끌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죠. 풍경화든, 추상화든, 인물화든 좋아하는 게 뭔지 알고 그 위주로 즐기고 보면 돼요. 그러면서 내가 공부를 안 해도 점점 아는 것들이 생겨요. 그러다 관련된 글을 읽거나 책을 보면 확 이해되고 더 깊이 알게 되죠. 유사한 작가나 작품도 찾게 되고요. 깊어지면 넓어지는 건 순간이거든요. 미술은 그렇게 다가가고 공부하는 거예요.” 그는 책을 보고 하는 미술 공부는 관념의 연장선이지만, 그림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은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중·장년에게 미술 감상은 친구를 사귀는 것과 같다고 한다. “좋아하는 작품을 발견하는 건, 친구가 생기는 거예요. 나이 들수록 나를 든든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친구잖아요. 대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힘들고 슬플 때 음악을 듣죠.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예술의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고 하면 그건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전환되는 것처럼 좋아하는 그림을 보면 힘이 나고 위로받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그림 전시가 열리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가서 보고, 해외여행을 할 때도 멀리 사는 친구를 보러 가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가 보면 반갑고 즐거워지죠. 저도 힘들 때 마티스나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보면서 용기를 얻곤 해요.” 20년 후, 여섯 가족이 함께한 유럽 미술관 여행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미술은 그야말로 ‘절친’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그 못지않게 미술을 가장 친한 친구로 만든 이들이 있으니, 바로 그의 아들들이다. 20년 전 함께 여행을 다녀온 두 형제와, 그 이후 태어난 셋째까지 세 아들은 모두 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책이 나오고 20년 후, 세 아들과 아내, 그리고 막둥이 딸을 데리고 다시 유럽 미술관 순례 길에 올랐다. 늘어난 식구만큼이나 이전과는 사뭇 다른 여행이었다. “가자마자 달라진 걸 느꼈죠. 예전에는 제가 짐을 가장 많이 들었거든요. 젖병, 기저귀, 유모차까지 보통 짐이 아닌 데다가, 아이들 자체도 짐이나 다름없었죠. 근데 이번에 가보니 애들이 크고 힘도 세져서 제 짐도 들고 다니고 알아서들 잘 다니니 아주 편했어요. 스마트폰 지도 앱을 보고 저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전에 갔을 때는 밤 문화라는 것을 상상도 못 했는데, 이번엔 유명한 펍(pub)이나 바(bar)에 가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즐기니까 진짜 여행 온 기분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아이들이 나와 아내를 케어해 주니까 도움이 많이 됐고, 여행의 질 자체가 달라졌죠.” 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한 번쯤 그처럼 온 가족이 유럽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생각해 볼 것이다. 경험자로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를 부탁했다. “가족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워크’와 ‘프로그램’이에요. 어디를 가서 뭘 즐길 것이냐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없다면 의미 없는 여행이 되고 말죠. 가족끼리 가는데 무슨 프로그램을 짜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들이 크고 나면 각자 취향에 따라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다를 거거든요. 사전에 가족끼리 합의하고 배려해서 프로그램을 짜면 수월한데, 막상 가서 정하려고 하면 밥 한 끼 먹는 거로도 트러블이 생길 수 있어요. 현장에 가서 이러자 저러자 하지 말고, 미리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서로를 배려해 플랜을 짜면 기분 좋게 여행을 즐길 수 있죠.” 미술관을 테마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면 유명한 명소보다는 작고 한적한 곳을 찾아갈 것을 추천했다. “루브르처럼 유명한 곳을 가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 보면 미술관의 참맛을 느끼지 못할 수가 있어요. 관광객이 몰려 복잡하고, 입장하는 데만 시간도 한참 걸리기 때문에 정신없이 관람하고 지치기 일쑤죠.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미술관을 가족과 산책하는 기분으로 간다면 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최근 자동차 테러가 있긴 했지만, 제가 가장 추천하는 곳은 프랑스 니스예요. 니스에 가면 마티스나 샤갈미술관도 있고 인근에도 좋은 미술관이 많아요. 주변 풍경이나 밤바다도 참 아름답죠. 반대로 조금 복잡하더라도 비엔날레 기간엔 베네치아에 가면 시끌벅적하지만 워낙 보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는 시기니까 한 번쯤 가보면 좋아요.” 그는 유럽 어느 지역을 가도 가 볼 만한 미술관 몇 곳은 있기 때문에 미술관을 테마로 계획을 짜면 여유롭고 감성적인 여행을 즐길 수 있으리라 추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을 권하는 데는 ‘편안함’에 있었다. 가족과 떨어져 여행을 가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는데 그런 염려 없이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에게 언제 또 온 가족이 여행을 갈지, 그리고 10년 후에도 책의 개정판이 나올지를 물었다. “글쎄요. 10년 뒤에도 개정판이 나온다는 게 쉽지 않으리라 보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또 다른 방향으로 꾸며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그 자체로도 무척 고마운 일이고요. 가족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해야겠죠. 근데 아이들이 크고 나니까 각자 바빠요. 친구들과 여행도 가야 하고 자기 계획이 있으니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죠. 그래도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또 떠나게 되지 않을까요?”
- 2016-08-3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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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15) 디즈니랜드의 추억2
- 여행은 언제나 기쁨을 안겨준다. 생소한 곳을 처음으로 체험하는 것은 신세계이기 때문이다. 필자 가족의 첫 디즈니랜드 여행은 잊지 못할 고통의 얼룩진 추억이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또한 귀한 삶의 깊은 체험이었다. 긴 하루의 일정에 몸과 마음이 지쳤으나 정신은 말똥거렸다. 아마도 디즈니랜드의 신비한 것들을 체험한 여운이었나 보다. 그러나 웬걸 남편은 또 실수를 저질렀다. 허둥지둥했으니 후리 웨이에서 들어오는 입구를 잘못 탄 것 같다. 집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거의 30분은 달린 것 같았는데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이다. 어쩌란 말인 가. 다시 내려서 돌아가는 길 밖에는 없었다. 남편은 길눈이 어두웠다. 잠깐 필자가 딴청을 하면 다른 길로 빠져서 다투기가 일쑤다. 더구나 정신없는 하루에 그럴 만도 하기는 했지만, 화가 치솟았다.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를 낼 수도 없고 필자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다시 내려서 한 바퀴를 돌아 집 방향으로 향했다. 필자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으나 남편은 거절을 했다. 하는 수없이 두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몰아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하루의 긴 일정에 정신이 없으니 생각조차 못 했다. 갑자기 남편이 큰일 났다며 필자를 쳐다보면서도 말을 꺼내지 못 했다. 너무나 엄청나니 본인도 감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나 보다. 잃어버린 열쇠 꾸러미에 집 열쇠와 세탁소 열쇠 몽땅 다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잠이 홀딱 달아나 버렸다. ‘그렇지 맞아! 까마득히 생각을 못했네. 어떡하지?’ 필자는 어이없어 중얼거렸다. 방법은 없었으나 일단은 집으로 향했다. 남편과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겨우 집 앞에 왔으나, 불 꺼진 아파트 창문은 그림의 떡이었다. 열쇠가 없으니 들어갈 수가 없어 차 안에서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뒤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리저리 엉켜져 골아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깰 가 봐 조심스럽게 내려서 방법을 궁리했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어왔다. 날이 새도록 차 안에만 있을 수 없으니, 남편은 이리저리 다니며 집으로 들어갈 궁리를 했다. 얼마 후에 남편은 방법이 있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굴뚝을 타고 올라가 지붕으로 가서, 다시 2층 필자의 아파트 베란다로 뛰어내려 창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필자 생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자칫 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고, 또 지붕에서 떨어지면 더 큰일이라 강력하게 반대를 했다. 잔디밭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피로는 몰려오는데,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않고 밤 시간은 아주 길기만 했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어 다시 차 안으로 살짝 들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누군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남편의 환한 미소가 필자를 깨우고 있었다. 드디어 문을 열었으니 아이들을 깨워서 집으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일단은 나오라고 했다. 새벽 5시 반, 아이들은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겨우 일어나 투덜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가 궁금해서 조용히 물었다. 남편은 끝내 혼자서 아까 말한 방법대로 했다는 것이다. 엄청난 일이었지만 우선은 문이 열렸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역시 책임감 강한 남자였고, 든든한 가장이라는 마음에 남편이 다시 보였다. 필자는 걱정이 살짝 들어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었다. 이제 곧, 아침이 오면 세탁소 문 열 일이 또 다른 비용 고통으로 걱정은 되었지만, 일단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로 했다. 걱정을 하기 시작하면 산 넘어 산이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열쇠에 대한 강박관념이 필자를 사로잡았다. 필자 부부에게는 커다란 트라우마가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대체로 한인들은, 더구나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디즈니랜드를 몇 번씩은 다녀온다. 대 어둠의 추억이 남겨진 여행 이후에도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여러 번을 더 다녀왔다. 필자도 손님이 올 때마다 가이드를 해주었다. 어쩌다 가끔씩은 또 가서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곳이었지만, 남편은 몸서리치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댔다. 비록 진한 여행의 고통은 남겨졌지만, 어려운 초기 이민 시기에 잊지 못할 가족여행으로 필자에게는 영원한 추억이 되어 남아 있었다. 언젠가 한번 또 가서 신나게 놀면서 젊은 하루를 즐기며 만끽하고 싶다.
- 2016-08-11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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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 엄마의 미국 이민이야기] (14)첫 디즈니랜드의 추억
- 미 서부에는 유명한 여행지가 참 많았다. 온 가족이 처음으로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전 세계인의 가족공원이자 놀이공원인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했다. 그곳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적 역사 유적지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먹을 것과 음료수를 챙겼다. 미국은 물값도 비쌌기 때문에 간단한 것들은 배당안에 챙겨 준비를 했다. 너무 무거우면 힘이 드니 꼭 필요한 것만 넣었다. 더구나 온 가족의 화려한 외출 경비는 한 달 치 생활비에 가까웠으나 큰맘을 먹고 한탕 쏘기로 했다. 가족들은 파란 하늘 아래 달려가는 모처럼의 나들이에 온통 마음이 들떠있었다. 미키 마우스로 유명한 디즈니랜드까지는 씨미 벨리에서 약 1시간 20분 가량 걸려 달려야 했다. 오렌지 카운티의 에너지임이라는 곳에 위치한 그곳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 공원이었다. 넓은 주차장에는 이른 오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미리 온 차들로 북적거렸다. 온통 여러 나라 언어로 떠들어대는 셔틀을 타고 입구 매표소로 향했다. 입장료도 매년 올라 네 식구 가격은 만만치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궁전 같은 시설의 어마어마한 광경이 시선을 제압해왔다. 전 세계 사람들로 가득한 매표소는 이미 길다랗게 줄을 서야만 했다. 큰딸은 하루 안에 모든 것들을 다 볼 수가 없다며 머리를 짜며 연구를 했다. 공원 안에는 입구에서부터 1890년대의 미국 마을의 멋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었다. 보통 한 가지만 체험하는데도 2시간 남짓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인기가 있는 곳은 줄 서는 시간만도 대략 4~50분은 기다려야 하니 짜증이 난단다. 인내와 함께 한 군데를 신나게 보고 나면 누군가 한 사람이 미리 뛰어가서 다음 코스 줄을 서있어야만 했다. 필자 가족은 가장 먼저 열대 정글과 무시무시한 고대 신전 및 타잔, 스릴 넘치는 체험을 할 수 있는 모험의 나라로 가기로 했다. '인디아나 존스 어드벤처'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무시시한 동굴을 거쳐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형 인간들을 만나면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그 옛날의 탄광용 기차를 타고 덜컹거리며 동굴 속의 더 깊은 곳으로 구불구불한 모험의 길을 달리면 그 이상 실감 나는 체험이 따로 없다. 아주 자세하게 만들어져 실감 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거대함에 관광객들은 탄성과 함께 입이 벌어져 닫을 줄을 모른다. 다음으로, 개척의 나라로 들어서면, 서부극의 복장 및 증기선, 골드러시 현장 등을 깊이 체험할 수가 있었다. 시원하고 울창한 정글 크루즈에서는 실제같이 만들어진 강을 따라, 배를 타고 열대의 맹수들과 눈싸움을 벌린다. 더구나 통나무로 만들어진 배를 타고 언덕 위에서부터 굽이치는 강물을 타고 순식간에 떨어져 내려온다. 스릴 만점이고 입고 있는 옷들은 온통 물로 다 젖어지지만 기분은 짱으로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기자기한 동화의 나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인형들이 사람들을 소녀의 감성으로 만들어준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있는 성의 성문을 지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피터 팬 등이 반갑게 맞이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간들이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나라에서는 공상과학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미래에 대한 어마어마한 볼거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세계 최고의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입장료가 결코 아깝지 않았다. 하루를 구경거리로 만끽하고 저녁 9시쯤이 지나자 온 가족은 얼굴에 피로가 몰려왔다. 지친 발걸음도 무겁다며 모두가 그만 집으로 가기를 원했다. 하기야 집 떠나온 지 12시간이 넘었다. 서둘러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다시 셔틀을 타고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차 앞으로 왔을 때,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남편은 열쇠가 몽땅 사라졌다는 것이다. 앞이 캄캄해왔다.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땅바닥에 덥석 주저앉았다. 겨우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남편은 안절부절 뛰어다니며 방법을 궁리했다. 도대체 그 넓은 땅 어디로 가서 찾는단 말인 가. 얼마 만에 공원을 순찰하는 경찰을 만났다. 달려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니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린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열쇠 공을 부르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기다려 보라고 사라져버리더니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다. 시간은 자꾸 흘러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이들은 땅바닥에 앉아 몸을 차에 기대고 눈을 껌뻑 거리니 필자는 가슴이 답답했다. 1시간쯤이나 지나 열쇠 공 연락처를 알았으나 쉽게 연락이 되지를 않았다. 두어 군데 몇 차례에 걸쳐 겨우 연결이 되었다. 시간은 어느새 밤 12시를 넘기고 있었다. 거의 1시가 될 즘에야 열쇠 공에 의해 드디어 새 열쇠를 넘겨받을 수가 있었다. 졸지에 가난한 이민 살림에 거금 200달러가 나갔다. 그러나 다행이라는 생각만으로 겨우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후리 웨이를 탔다. 기가 막혀 탈진한 필자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흘끔거리며 눈치만을 보고 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남편은 혼자 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정글 크루즈에서 신나게 배를 타느라고 정신이 없었는데 그때 빠진 것 같네.’라고 했다. 웃을 수도 없는 어이없는 모습에 그저 무거워진 눈을 감았다. 깊은 밤, 집으로 달려가는 후리 웨이의 캄캄한 LA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있었다. 낯선 땅에서의 첫나들이가 또 하나의 얼룩진 추억으로 밤하늘에 수를 놓고 있었다.
- 2016-08-08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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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속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한 여행 처방전
-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건강하고 활기찬 생활을 위해서 숙면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수면의 양은 전 생애를 통하여 점차 감소하며, 65세 이상의 과반수가 얕은 수면 또는 불면증을 경험한다. 불면증의 원인이 정서적인 문제에서 온다는 걸 떠올려 보면, 불면증을 치료할 방법 또한 정서적인 해법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숙면을 갈구하는 이들을 위한 마음 테라피, 여행 솔루션을 제안해 본다. 글·사진 제공 에어비앤비 불면을 겪어본 사람은 그 무의미함과 피로감에 진저리 칠 것이다. 그런 괴로운 경험이 일상이 된다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나이가 들수록 수면의 질과 양을 동시에 잡아야 하는 게 중요한 이유다. 좋은 잠은 평온과 즐거움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 신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여행’이다. 그러나 촘촘하게 일정이 계획된 여행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여행을 휴식이 아닌 의무와 업무로 변하게 만들 수 있다. ‘꿀잠’을 위해서라면 일상처럼 느긋한 여행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숙소 주변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기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전경을 바라보며, 신선한 산지 식재료를 수확할 수 있는 여행, 모든 걱정을 훌훌 털어 버리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영혼의 휴식이 그 답이다. 이제 좋은 숙면 환경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는 편안한 에어비앤비 숙소 4곳을 소개한다. 1.산책 : 일본의 뒤뜰에서 만나는 멋진 자연 일본의 도보 여행 코스는 전 세계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기에 흔치 않은 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뒤뜰로 나가면 숲 한가운데 멋진 폭포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며 아름다운 산과 호수, 계곡을 따라 한적하게 걸어보는 일상으로서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끼가 많은 숲으로 유명한 규슈(九州)의 야쿠시마(屋久島)를 거닐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일본 나가노 natural life at tiny cottage www.airbnb.co.kr/rooms/2207040 2.요가: 발리에서의 나마스테 요가와 휴가는 공통점이 많다. 두 가지 활동 모두 삶의 균형을 회복해 주고, 전환의 계기가 되며,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해 준다는 점에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발리라는 최적의 여행 환경 속에서 요가 수행자와 살아보며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전문가가 알려주는 요가 팁을 전수받고 요가 수업을 들어보자. 온 몸의 기가 순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발리 #2A UBUD VIBE KOMUNITY,YOGA STUDIO www.airbnb.co.kr/rooms/4533055 3.아름다운 전경: 바다로 가요! 깨끗한 백사장과 맑은 바닷물을 보면 없던 병도 나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보내는 휴가를 좋아한다. 눈부시도록 흰 모래가 에머럴드 빛 바다와 대조를 이루는 뉴질랜드에서의 휴식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뉴질랜드 아히파라만을 바로 앞에 두고 위치한 이곳에서는 천혜의 자연 환경이 주는 상쾌한 공기와 따스한 햇볕을 매혹적인 바다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뉴질랜드 노스랜드 Manaia Room www.airbnb.co.kr/rooms/4318287 4.신선한 음식: 멋진 풍경에서 즐기는 산지 음식 뉴욕 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고 있었을까? 뉴욕 북쪽에 위치한 이 숙소에는 뒤뜰에 아름다운 산지 식재료를 기르는 공간이 있다. 신선한 산지 음식, 요가, 목가적인 전원의 삶을 특징으로 하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공동 공간을 체험할 수 있다. 미국 뉴욕 Farm&Yoga Retreat-Walk to Train www.airbnb.co.kr/rooms/1709012 에어비앤비 200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에어비앤비(Airbnb)는 전세계에 독특한 숙소를 가진 사람들과 숙박할 곳을 찾는 사람들을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연결해 주는 신뢰할 수 있는 커뮤니티 장터다. 아파트를 하룻밤, 성을 일주일, 별장을 한 달 빌리고 싶을 때처럼 특별한 여행 경험을 각자 예산에 맞게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장터인 에어비앤비는 현재 190개 국가 3만4000개 이상 도시의 여행자 숙소 정보를 사용자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고객 서비스와 회원 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남는 공간을 가장 쉽게 홍보할 수 있는 사용자 커뮤니티로서도 유명하다. 에어비앤비 코리아 press-kr@airbnb.com 홍보대행사 브라이먼커뮤니케이션스 airbnb@briman.co.kr
- 2016-08-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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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염 피하기 좋은 곳 베스트 3
-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폭염주의보까지 내렸으니 함부로 외출하는 것도 겁난다. 그러나 찜통더위에 에어컨 밑에만 있자니 전기료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덥다고 집에만 가만있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어디 더위를 피할 만한 마땅한 곳이 없을까 제일 먼저 추천하고 싶은 곳은 관악산 계곡길이다. 관악산 하면 보통 가파르고 험한 산을 생각하지만 등산로와 달리 계곡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이 잘 닦여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걷기 좋다. 실제로 관악산에 가보면 등산복을 잘 차려입은 등산객들도 많지만 반바지에 샌들, 혹은 유모차를 밀고 산책 나온 주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관악산 입구에 들어서면 한창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시간에도 울창한 숲 속이라 시원하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바위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 사람, 계곡에 발을 담그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물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걷다 보면 이보다 더 좋은 피서법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관악산엔 100m나 되는 천연 계곡에 물놀이장이 운영되고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도 좋다. 서울 도심에서 더위를 피해 쉴 곳을 찾는다면 청계천 옛 한국관광공사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K-스타일 허브 한식문화관을 추천한다. 한식을 직접 즐기고, 맛보고,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은 관광객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한식체험관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가면 한식을 맛볼 수 있는 널찍한 식당 안에 사람들이 가득하다. 강된장비빔밥이나 콩비지, 쌈밥, 묵 등 정갈한 한식 외에도 예쁘게 만든 전통 과자와 떡, 약과 등의 디저트, 전통차를 맛볼 수도 있다. 영화배우 송중기가 만들었던 개성약과도 예쁘게 개별포장해 판매 중이다.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 혹은 전통주를 곁들인 주전부리 하나 시켜놓고 다음 스케줄을 짜보는 것도 좋겠다. 직접 한식을 만들어 보는 한식배움터도 인기다. 이곳에서 불고기, 잡채, 김치 등 우리나라 대표 한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40명이 한꺼번에 요리할 수 있는 주방에서 사전 예약을 통해 유료로 진행된다. 이외에도 한식의 재료와 특징, 철학적 가치를 설명해 주는 한식전시관도 있고, 2층엔 관광안내센터가 자리하고 있으니 서울 여행에 필요한 정보나 지도도 구할 수 있다. 이것저것 다 귀찮을 땐 도서관이 최고다. 잘 살펴보면 집 가까이에 작은 도서관들이 많이 있다. 관악구에 있는 ‘용 꿈꾸는 도서관’은 늘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게 사람들로 붐빈다. 70석의 좌석에 1만7000여 권의 장서를 갖춘 작은 도서관은 이용자들로 가득하다. 관악구청 1층에 자리해 접근성이 좋은 데다가 카페 분위기의 인테리어 덕분에 어린아이에서 70~80대 시니어까지 여기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시원한 실내에서 하는 독서는 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준다. 아이스 커피 한잔 마시며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도 폭염을 피하는 좋은 방법이니 집 가까운 곳에 작은 도서관이 있나 둘러보자. 폭염이 이어지며 사람들이 더위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이럴 땐 집안에만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더위를 피할 방법을 찾아보자. 관악산 계곡길을 걷거나 한식문화관을 찾아 한식을 즐기든, 가까운 작은 도서관에서 독서의 즐거움에 빠지든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여름 무더위를 지혜롭게 이겨보면 어떨까.
- 2016-07-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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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남과 금성 녀가 천륜이 되기까지
- 수술실에서 나온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몽롱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의식을 느끼며 무거운 눈을 겨우 추켜 올렸다. 뿌옇게 보여오는 세상이 살아 있음을 확인해주었다. 몇 번을 깜빡거리다 다시 눈을 감으려 하자 누군가 볼 따귀를 마구 때렸다. 어렴풋이 정신 차리라는 소리로 들려왔다. 깊게 눈을 감았다가 힘을 내서 희미한 세상을 올려다보았다. 15시간 만에 깨어난 것이었다. 운명적 만남 첫 번째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자기 얼굴보다 커다란 군인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까맣게 타올라 알 수 없는 모습이 필자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공군 훈련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눈앞에 와 있는 것이다. 웬일인가 싶어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갑자기 죄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워졌다. 옛말에 고무신 거꾸로 신으면 죄받는다는 말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그때,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야만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족쇄가 되었다. 다른 어떤 생각도 그 사람과 헤어지면 마치 벼락이라도 맞을 것만 같았다. 필자는 입학하게 된 대학교가 영 마땅치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마지막 날에 늦게나마 막 떠나려는 전철에 올라탔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고, 그 남자는 같은 학교 3학년 선배였다. 그렇게 만난 사람과 캠퍼스 커플이 되었고, 필자가 3학년이 될 즘에야 그 사람은 공군 장교를 선택했다. 군 입대를 하면서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살아온 환경과 성격이 너무나 달라 결혼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긴 세월에 걸쳐 제대할 때까지 그 사람만을 기다리기가 힘들 것 같아, 필자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 사람은 결국 군 입대 원서를 찢어버렸다. 방황의 순간 입대하는 날 새벽 아침에 그 사람 친구들은 스카치테이프를 구해서 너덜너덜 해진 입대 원서를 붙여 주었고, 필자가 비굴한 용서를 빌면서 그는 군 입대를 할 수가 있었다. 6개월 장교 훈련 기간이 있었다. 대학 입학 후 미팅이라고는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던 필자에게 그 사이로 다른 남자와 만남의 기회가 주어졌다. 드디어 처음으로 그룹 미팅을 하게 되었고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남학생들의 소지품으로 뽑기를 하고 일대일로 멋진 한 남자를 만났다. 신비로움과 함께 흥미진진한 대화를 하던 중에 살금살금 배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만남을 방해하는 배를 움켜쥐고 참으려면 더 아파졌다. 모처럼의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아 억지로라도 웃어가며 꾹 참았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고, 끝내는 파트너와 함께 응급실로 실려갔다. 급성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대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학 졸업을 하고 그 해 5월 다소곳이 필자는 그 사람 공군 중위와 결혼을 했다.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의무감 만으로 한 것 같기도 했다. 아옹다옹 4년이라는 세월의 교제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성격적 엇갈림은 이미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따로 없었다. 그 갈등이나 다툼은 잠시도 멈추지를 않았고 그 사람이나 필자나 똑같이 개성이 강해 늘 요란한 평행선이었다. 한 사람은 무조건 고기를 좋아했고 한 사람은 채식을 즐겨 했다. 필자는 칼국수를 선택하면 그 사람은 설렁탕을 먹자며 칼국수는 입에도 대지를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필자는 정리 정돈을 잘하고 아기자기한 편이었으나 그 사람은 정리된 것들을 홀 가닥 뒤집어 놓는다. 한번 외출하고 돌아와 보면 도둑이 들어왔다 간 것처럼 온 집안이 난리가 나있다. 놀란 가슴에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얄팍한 거짓말을 해서 꼭 필자에게 들키곤 한다. 아무것도 아닌 듯했지만 늘 사소한 것들로 싸움은 끝이 없었다. 그때마다 체념도 하고 포기도 하고 가끔씩은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만 의지하며 그렇게 지냈다. 그리고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는 다시 배움의 만학 도가 되어 학교생활에 몰두하면서 그 고통의 힘겨운 시간들을 버틸 수가 있었다. 남편보다는 천륜 서로가 관심을 갖지 않기로 하고 새로운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갈등의 아픔을 치유해 나갔지만, 남편은 점점 더 함정의 수렁으로 빠져들며 필자를 힘들게만 했다. 저질러진 뒤처리는 모두 필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 돌아왔다. 남이 아닌 남편을 외면할 수가 없다면 차라리 자신을 위하여 품어야만 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필자의 품에서 떠나면서 말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없으면 맨날 싸워서 어떻게 사느냐고 걱정을 했다. 물론 염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다. 나이 먹고 몸은 점점 고장이 나고 자식들은 곁에 없었지만, 결국 남는 것은 두 부부뿐이었다. 세월 속에 힘들고 병들어 의지할 곳 없을 때, 끝내는 두 사람 밖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슬픈 어느 날에 드디어 뼈 속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부부 싸움도 젊고 힘이 남아 돌아가니 싸우는 것이었다. 무조건 자기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개성 강한 두 사람은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삶에 지혜가 생겨나고 뭔가 터득해가는 나이가 되어보니 곁에 있어서 참고 살아와준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필자가 숙연해지면서 철이 들고 있었다. 상대를 인정하며 모든 것은 자신으로부터 크라고 마음먹으며 내려놓으니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왜 진작에 풋풋한 젊은 날에는 그런 것들을 인식하지 못 했을 까. 인생 반 고개를 훌쩍 넘어가려 하니 이제야 자신을 성찰하며 깨우치고 알 것만 같다. 그래서 옛말에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는 것인가 보다. 결국 인생이란 참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와 순리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조물주는 극과 극의 사람이 만나 부딪치며 터득하고 참아가면서 그 속에서 인간이 되라고 인연을 맺어 준 것만 같다. 미운 정 고운 정 아쉬움 정까지 다 들어버린, 이제 남편보다는 아이들의 아빠이자 소중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미치도록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하듯,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동반자인 그 사람과도 영원히 함께하는 삶의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야만 할 것 같다. 가족이라는 위대한 천륜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어찌 남편이라는 말로만 외면한단 말 인가. 이 날까지 함께 함을 깊이 감사하며 곁에 있을 때 더욱 잘해야 하겠다.
- 2016-07-0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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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이주! 찬성 VS 반대] 제주가 병들고 있다
- 필자는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제주 가족여행이었다.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다 보니 국내 안 가본 곳들을 가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제주는 수학여행지나 신혼여행 중심지이기도 했다. 환상의 꿈으로 가득했던 천혜의 보물섬이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건강과 힐링이 대세인 요즈음에 제주 이주 열풍은 폭발적이다. 힐링의 성지로 떠오른 제주로 남은 시니어 인생을 보내려 하는 분위기도 급기야 찬반을 묻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제주는 공기가 청정하고 투명한 바다로 둘러싸여 자연환경이 단연 우리나라 최고라고 할 수도 있다. 사실상 세계인의 관광지 명소가 되어 이제 명실공히 국제적인 유산이 되었다. 제주는 올레길, 둘레길 등 미음완보를 실행할 수 있는 천혜의 도보여행 코스를 지니고 있다. 미음완보(微吟緩步),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천천히 보고 겪고 생각하며 걷는 것이다. 제주의 도보 여행은 복잡한 삶의 경쟁에서 한발 물러나 휴식과 치유를 체험함으로써 제주의 매력을 보다 더 상승시켜 준다. 현재 다른 지역에서도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제주는 이미 즐거움과 치유의 걷는 도시로 확고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골목길인 올레길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넓이로 제주인의 삶의 방식이 녹아 있고, 사람이 주체가 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도로 개설과 확장으로 자동차가 통행의 주체가 되고, 사람들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이제 몇 년 사이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연간 10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으로 제주공항은 온종일 북새통이다. 약 200㎞의 일주 해안선은 이미 숙박업체들의 난장판이 되었고, 중국 고객을 상대로 한 부동산 개발로 하루가 바쁘다.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서서히 전통적인 제주도 흔적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외국의 낯선 붐 타운을 연상시킨다. 부동산 투자에 머리가 잘 도는 사람이 아니고는 외지인이든 토박이든 온통 혼란스럽고 불편하기만 하다. 조용하고 아름답기만 했던 섬의 분위기가 전혀 동떨어진 이상과열 현상에 날개를 치고 있다. 전통적 삶에 안주해오던 제주도 토박이 주민들도 이러한 현상이 사회 경제적 압박 요인으로 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제주로 이주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일 까. 나름대로 저마다의 사연은 있겠지만 결코 진정한 삶의 해답은 아닐 것이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고, 여행을 하다 보니 라는 다양한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부럽기에 앞서 안타까움마저 들기도 한다. 더구나 이주 이유 중 가장 많은 선호도가 연예인처럼 세컨 하우스를 짓고 올레 길 주변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하기 위해서라고도 한다. 이러한 꿈 같은 이유가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책 없이 제주 이주를 꿈꾸게 하고 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도 포화상태고 낭패를 본 이주자들 그들을 일컬어 “눈먼 외지인”이라고 까지 하며 그들 또한 엄청 많다고 한다. 이웃들이 너나 없이 간다고 해서 무작정 특별한 목적과 철저한 계획 없이 따라 하는 행위는 깊이 생각해봐야 할 그 첫 번째 반대이유가 된다. 바람도 많고 비도 많은 제주는 섬이라는 특성이 있다. 제주는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뉘어 지역마다 생활방식이나 환경차이가 크다고 한다. 사투리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고 주민들의 성향도 각각 다르다고 했다. 더구나 바람과 습기의 영향으로 거주의 쾌적함은 많이 떨어 진다고 한다. 잘 지어진 멋들어진 이층집이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속안으로 들여다 보면 부딪쳐 겪어야 할 많은 삶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국은 주거이동으로 지역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치를 회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꼭 이주를 해야만 하는가? 왜 제주도 이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제주의 이주자들은 보다 나은 인생을 즐기며, 자연 속에 단순하고 느린 삶의 근사함으로 과연 무엇을 얻을 것 인가. 때가 되면 연어라는 물고기도 고향으로 돌아가 알을 낳듯이, 사람들의 삶은 더 편리하고 화려했지만 어디에서도 인간은 진정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쉽게 내 고향을 등지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이다. 제주도 시골 아줌마들도 90년대 강남 식 재테크에 몰려든 강남 아줌마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가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시장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불확실하다. 지역 정치 지도자들의 눈에 부동산가격 상승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지역발전은 부동산 붐을 유발할 수밖에 없고 주민들에게는 지역의 가치 상승효과를 느끼게도 한다. 그러나 크게 본다면 우리나라 제주도의 가치는 이 섬의 고유성과 아름답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토박이는 물론, 제주로의 꿈을 갖는 외지인과 외국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싶다. 이제 내려 놓아야 할 시니어의 삶들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맞물려 돌아가고 순진했던 해녀들이 무분별한 투기에 관심을 쏟는다면 아름답던 섬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마지막 제주 이주 반대이유이다. 제주 남쪽바닷가에 사는 멋쟁이 한 사람은 말한다. 그는 제주이주가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왔던 모든 이력서를 버리고 과감하게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러나 제주도에서 사는 것을 부디 2박3일 단순여행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걷고 마시고 느끼고 얼마든지 우리나라 청정지역, 미음완보로 갈 곳은 여기저기 많이 널려있다.
- 2016-06-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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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 자서전] 실개천의 삶
- 필자는 1944년 2월 16일 태어났다. 당시는 각박한 삶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여명이 바로 문밖인 시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로 일제가 최악의 모습을 보였던 시기라 민간의 식량이 부족할 대로 부족했기 때문에 산모가 영양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했다. 애를 낳았는데 자라지 못하여 큰 쥐만 하더라”는 말을 곧잘 했다. 좋은 점이라면 출산이 무척 쉬웠다는 것이다. 돌 지나고 6개월이 되어 나라를 되찾았는데 우후죽순의 지도자들과 새로운 정치ㆍ사회 조류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급변하는 시대에 걸맞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의 시대였다. 우선 산다는 것으로도 허덕이는 서민의 삶은 더 어렵고 고달팠다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있다. 특히 대구의 10.1사건 때는 좌파의 폭력을 피하여 한적한 곳으로 피신하는 아버지를 따라 거처를 옮겨야 했었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 해에 병사하고 말았다. 취학 전 여자 아이부터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두 딸 아이에 필자까지 네 명의 자녀들이 일터 없는 어머니에게 맡겨진 부양가족이었다. 대구 중심가에서도 더러더러 초가지붕이 보이는 시절 기와집이 필자 집이라 가난에 대한 물질적인 아픔은 없다. 필자의 가난은 끼니를 거르는 가난은 아니었고 문화 욕구에 대한 가난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낀다, 절약한다, 쓰지 않는다는 방어소비에 집착했다. 세금, 교육비, 식비 외에는 돈을 쓰지 않았다.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지팡이는 자녀를 지켜내야 하는 모성본능과 체면과 자존심뿐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돈 안 드는 놀이로 우리와 시간을 보냈다. 작은 돌 주워 하는 공기놀이, 반들거리는 흙마당에 가느다란 선을 귿고 하는 땅뺏기, 선교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탄력성 있는 공으로 삼박자 노래 부르며 다양한 모양으로 공차기 등이었다. 다만 책에는 아끼지 않아 집에 책이 풍부했다. 그래서 필자는 동화책은 물론 소설책도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소공자’, ‘소공녀 같은 외국의 책들도 그 무렵에 읽은 것 같다. 책 내용 가운데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는 게 태반이지만 독서는 지루한 시간을 즐거운 시간으로 바꿔주는 마법 상자이었다. 언니는 ‘태양계’란 이름의 동네 구멍가게 겸 책대여점에서 부지런히 신간잡지를 빌려왔다. 필자는 이것도 열심히 탐독했다. 10대를 위한 잡지 ‘학원’은 한 회도 빠지지 않고 읽었다. 연재된 조은파의 ‘얄개전’은 익살스런 행동이 얼마나 기발했던지 지금도 흥분이 느껴진다. 익살의 세상이 휴전 직후의 가난과 닫힌 사회에 답답해 하는 청소년에게 스트레스 분출구 역할을 했다. 이상스러운건 대구 시절 어떻게 넉넉한 책이 주어졌던가 하는 것이다. 한참 성장기의 아동이었을 때 세 끼니의 밥만으로 채울 수 없는 이채로운 먹거리에 대한 허기가 가끔 기억나지만 놀이와 독서에 대한 허기는 없었다는 기억이다. 특히 필자 집은 새 책 살 형편이 아니었는데 무슨 돈으로 책을 샀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시절은 격변의 시기다. 3.15부정선거를 고등학교 1학교, 4.19혁명을 고등학교 2학년, 5.16군사쿠데타를 고등학교 3학년에 맞은 것이다. 특 ,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일사천리로 대학입시제도를 무 토막내듯 확 바꾸어버렸다. 국가고시 점수를 개별 대학 입시에 100% 반영하고 각 대학은 오로지 체력장과 면접만 시행했다. 그런데 필자는 제도 변경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체력장의 한 과목에서 완전히 빵점을 먹은 것이다. 할 수 없이 대구 한 대학의 약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서울로 진학하고 싶어하는 열망은 잦아들지 않았다. 결국 다음 해에 서울 연세대학으로 튀었다. 약학과 팔촌쯤 되는 화학과였다. 필자는 18년 동안 내륙의 소도시 대구서 살았다. 어디 여행간 적도 없었다. 그러니 대처에 대한 선망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원래 가족과 함께 대구의 교회를 다녔는데 서울로 옮기면서 교회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교회를 옮기자 가슴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필자는 YMCA에서 하는 ‘대학생을 위한 기독교 사상 강좌’를 들었고 일요일에는 연세대학 교회를 출석했다. 당시 필자는 서울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가슴 벌렁거렸다. 기독교가 기성복이 아닌 시대별 노력과 아픔 및 정서를 담아 걸어왔다는 것, 큰 테두리에서 문화와 사회 및 역사를 배경에서 성장했다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이 이해는 인간,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을 안겾줬다. 또 종교와 인간관계,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인류 복합체로서의 인간, 생각하는 존재로의 인간 등 참으로 많은 분야의 인문학적인 호기심도 갖게 했다. 전공이 화학인데 인문학에 홀딱 반하였으니 이 노릇을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고 또 전공을 바꿀 수도 없다. 이미 약학과에서 화학과로 한 번 바꿔서다. 덕분에 대학의 전공 성적표는 엉망이다. 이 성적표 때문에 졸업 후 20년 동안 대학을 말하지 않는 결백증이 있었다. 71년 4월 5일 식목일 공휴일에 결혼했다. 그리고 80년엔 아프리카 수단에서 1년 간 살게 된다. 고온 건조한 나라 수단은 정부의 정체가 공산국가인지 자본주의 국가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없는 산업의 불모지대다. 수단은 남북한 공관이 공존하는 나라다. 포장되지 않은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소나 양같은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은 모습을 쉽게 보는데 단 시간에 건조되어 부패하지 않고 박제가 된 모양을 본다. 중동에서 제왕이라도 죽으면 그날로 매장하는 문화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그 척박한 땅, 공기 중에도 물기라고는 없는 갈증의 땅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초록의 생명체를 볼 수 있는데 생명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하였다, 생명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다. 사람은 태양열에 지치고, 영국의 지배 200년 동안 문명인의 안면무치 이기심에 착취당하면서 비옥한 땅이 물을 만나지 못하여 석녀처럼 생산이 불가능한 지독한 가난으로 기력이 없다 아이들의 손으로 밀쳐도 무너질 것 같다. 개를 싫어하는 무슬림의 나라에서 들개들은 늘씬하게 잘난 모양이고 기름기까지 돈다. 떼 지어 다니는데 들개 떼가 수단인보다 더 위풍당당해 보인다. 우습게도 한 대접의 물로 목욕하는 물이 귀한 나라, 상수도도 전기도 없는 그 곳에서 필자는 공짜로 미터기 없는 전기 물 풍족히 쓸 수 있었다. 핫(hut)이라는 원두막만한 집에서 살고 있는 원주민의 땅에서 필자의 사택은 큰 저택쯤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필자 아이들은 수단에서 살았던 집이 가장 훌륭한 집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이태리 가구를 갖추고, 에어컨이 방마다 있으며, 냉장고에 냉동기까지 구비한 그 사택은 원주민의 생활상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주거환경이었다. 필자가 근무한 곳은 나일의 지류인 백나일의 물을 인공수로로 끌어들여 사탕수수 농사를 짓고 설탕까지 생산하는 그 나라 기간산업체였다. 인공 수로에서 쉽게 낚시한 물고기로 회도 뜨고 매운탕도 만들어 먹었다. 한국인들이 낚시하는 것을 보고 수단인들도 낚시하기 시작하였는데 수단인들의 극성스런 낚시가 시작되고 두어 달 지나니 수로에는 거의 고기가 낚여지지를 않았다. 무계획 노획이 자연을 해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이어 미국에서 이민생활이 시작됐다. 우선 유학이 아니고 이민으로 미국 땅을 밟는다는 것부터 필자 속은 무척 상했다. 그리고 미국은 필자 꿈 실현의 땅이 아닌 생존의 땅으로 전락했다. 선배들이 버리라는 학력, 경력, 배경이 낯섦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유효한 수단인 것도 알게 됐다. 필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육체노동의 미숙함이다.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였다. 바느질이 필수인 세탁소를 인수했을 때도 필자는 재봉틀에 실 꿰는 법도 모르는 상태였다 인계한 전 주인이 어쩌려고 무조건 가게를 사느냐고 더 걱정을 하였다. 기술을 쉽게 익히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가스실로 데려갔다는 유대인 집단수용소 체험기가 필자를 독려했다. 하지 못하면 죽으리로다란 명제 앞에 누군들 해내지 못하겠는가. 두 아이들의 똘망거리는 눈망울도 필자의 용기에 보탬이 되었다. 덕분에 필자는 주민의 95%가 백인인 부촌에 세탁소를 소유하게 되었다. 다는 아니지만 미국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도 많았다. 특히 한 남자 단골손님은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일하는 필자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우호적이었다. 필자 글씨체와 암산 실력이 학력을 증명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손님에게서 “네 나라에서는 화이트칼라 잡을 가졌을 거야”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남편과 큰 소리로 다툼하는 현장을 본 이 손님은 남편에게 “ 내 아내는 일하지 않으면서 가사 도우미를 두는데 하드워킹 아내에게 무얼 불평하느냐” 하는 내정간섭에 가까운 일격을 날리기도 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교육 수준이 높든 아니든 미국 남자는 여자와의 다툼은 꺼렸다. 일종의 배려였다. 이런 작은 차이가 신사문화를 이루는 근본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오랜 동안 일만 하자 피로가 누적되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아침 일어날 때의 피로는 첫 손님이 내미는 달러에 확 가셨다. 난산의 아이도 돈을 보이면 달려 나온다는 유머가 생각났다. 1994년 남편이 준비도 이별사도 없이 떠나버렸다. 시폰처럼 흰 눈이 투명한 3월의 어느 일요일, 늦은 기상을 하고 나와 대화를 나누는 중 목이 깔깔하다고 물 가지러 간 사이 심장마비의 공격을 받고 평화의 나라로 갔다. 필자는 남들의 두 배에 이르는 노동에 시달렸으니 10년 미리 은퇴하여 문화적인 욕구를 채우리란 약속을 자신과 가족과 하였다. 그러나 남편 떠나고 4 년 후에야 가게를 팔았다. 남편 보내고 금방 가게 처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놈의 돈 때문이다. 가게 처분하고 파트타임 일했다. 여유 시간에 시립대학에서 강의도 들었다. 이런 학구적인 활동이 경직된 내면을 많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머리가 멈추고 손발만이 분주하였던 시간이 머리와 손발이 함께하는 시간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필자가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바로 그 시기에 영원히 걸 프렌드를 못 만날 것 같던 두 아들이 차례로 결혼했다. 드디어 형식도 내용도 필자 혼자가 된 것이다.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은퇴 후 제주도로 갔다. 역이민이라고 말하는데 필자는 그냥 이사한 기분이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마이너리티인 필자에게 어디고 완전한 행복의 파라다이스는 없다. 두 땅 서양과 동양의 지구촌 마을이 필자의 삶터다. 더 넓어 좋고, 더 다양하여 좋고, 더 배워야 하여 좋다.
- 2016-06-24 1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