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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읽기] 10월의 추천 전시ㆍ도서ㆍ영화ㆍ공연
- ◇ 전시 덴마크 디자인 전(DENMARK:DESIGN) 일정 11월 20일까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카레 클린트(Karre Klint), 한스 베그너(Hans J.Wegner) 등 11명의 거장 디자이너 작품을 만날 기회다.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뱅앤올룹슨(BANG&OLUFSEN)을 포함한 11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덴마크 왕실 도자기, 케네디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브릭아트의 대명사 레고(LEGO) 등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인 작품 200점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덴마크 근대 디자인의 황금기라 불리는 20세기 이후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The History of Korean Abstract Art) 일정 10월 29일까지 장소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발굴, 수집하여 제반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아카이브 전시다. 1957년 이후 연대별로 최근 추상미술 전시와 단색화에 대한 관심까지 아우르며, 미술에 대한 관념과 형식을 뛰어넘고자 한 한국 추상미술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추상미술 단행본, 도록, 팸플릿, 주요 전시 기사, 평론, 포스터, 사진, 작품 등 각종 실물자료를 다양하게 마련했다. ◇ 도서 여행자의 하룻밤 (이안수 저·남해의봄날)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촌장인 저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북스테이 ‘모티프원’에서 일어난 10년간의 에피소드를 담았다. 모티프원에서 하룻밤을 지낸 여행자들이 풀어놓은 진심 어린 이야기가 책에 온기를 더한다. 전 세계 방문객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을 나누는 경험을 ‘글로벌 인생학교’라 부르며 인생의 공감과 영감을 자아낸다. 마르지 않는 붓 (자유칼럼그룹 저·두리반) 지난 10년간 자유칼럼그룹이 발표한 3000여 편의 글 중에서 24명의 필진이 추린 74편을 담은 칼럼집이다. (재)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인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추천사를 썼다.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제목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붓, 평생 녹슬지 않는 펜을 들고 살아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이 이사장의 추천사에서 따왔다. ◇ 영화 박카스 아줌마의 인생 딜레마 개봉 10월 6일 장르 드라마 감독 이재용 출연 윤여정, 전무송, 윤계상 등 종로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가난한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게 잘하는 여자’로 통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주인공이 사는 게 고통스러워 ‘죽고 싶은 고객’들을 도와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지는 주인공 역에 배우 윤여정이 캐스팅돼 기대를 모았다.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등에 초청돼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마음이 먼저 가 있는 곳 개봉 9월 29일 장르 다큐멘터리 감독 이소현 출연 박삼순, 이소현, 장춘옥 등 어린 시절 함께 살던 할머니의 자살 시도 소식을 들은 손녀가 다시 할머니 집에 들어가 동거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감독인 손녀가 담아낸 할머니와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로 ‘제41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으며 호응을 얻었다. 투박하지만 정겨운 할머니 집을 배경으로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할머니와 손녀가 서로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애틋함이 묻어난다. ◇ 공연 국화꽃 향기처럼 아련한 첫사랑 일정 10월 1~23일 장소 충무아트센터 소극장 블루 연출 이성모 출연 박형준, 장덕수, 서지유, 정서희, 황정윤 등 2000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하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2014년 이후 1년 8개월 만에 선보이는 이번 공연에서는 여주인공의 입장에서 고민이 극대화됐던 이전 무대와는 다르게 남주인공 ‘승우’의 시선과 심리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왕비의 얼굴 일정 10월 11~23일 장소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출 이지나 출연 김선영, 조풍래, 정원영, 박영수, 이창엽 등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가무극이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고종과는 달리 명성황후의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와 가상의 인물이 주는 신비감을 더했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일정 10월 26일~11월 6일 장소 LG아트센터 연출 장우재 출연 이호재, 오영수, 윤상화, 최광일, 이명행 등 조선시대 문인 성현(成俔)이 쓴 기행문 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작품으로, ‘기지’와 ‘경숙’이라는 두 대감이 왕의 질문을 갖고 금강산으로 떠나는 여정을 그렸다. 장우재 연출은 “제목처럼 어두운 세상을 뒤집어 밝게 보려는 마음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햄릿으로 태어나 줄리엣을 꿈꾸다 일정 9월 30일~10월 1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연출 김광보 출연 강신구, 최나라, 이지연, 윤나무, 황성대 등 셰익스피어의 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여자 햄릿’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연극이다. 기본적인 가족 구도와 인물 관계는 유지하면서 햄릿의 고독과 남성적인 복수극 뒤에 숨어 있는 섬세한 여성성에 주목했다.
- 2016-10-12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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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 무서워요.
-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져온 출산 관련 표어 내용이 재미있다. 전쟁 후 우리나라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국가에서는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가난한 나라에 인구가 늘어나니 고민도 컸을 것이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가 있었고 곧이어 “둘도 많다, 하나만 낳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표어도 등장했다. 그 후부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자녀를 낳지 않았는데도 공무원들이 피임을 계몽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의 저출산이 큰 문제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2750년도에는 인구가 없어 대한민국이 없어진다는 기사를 읽었다. 휴~ 올해가 2016년이니 2750년이라면 700여 년 후의 이야기다. 700여 년 후라면 필자는 당연히 이 세상에 없고 우리 아들 세대와 꽃처럼 예쁜 우리 손녀 세대도 다 떠난 아주 먼 훗날의 일이라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우리나라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봐 두렵고 한숨이 나온다. 물론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좋은 방안들이 나올 것이고 대처 방법도 생겨서 나라가 통째로 쉽게 없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한 집에 자식이 보통 열 명은 되었다. 충남대학교 교수이셨던 외할아버지도 우리 엄마를 장녀로 삼촌 4명과 이모를 두셨고 어려서 잃은 자식도 있었다 하니 열 명에 가까운 자녀를 낳으신 셈이다. 친할아버지댁도 장남인 우리 아버지를 시작으로 삼촌 세 분과 고모 네 분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양쪽 집이 다 대가족이었다. 식구가 많은 게 부담스러웠는지 우리 부모님은 딸 셋만 낳으셨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장남인 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엄마는 시댁으로부터 은근한 핍박을 받으셨던 것 같다. 작은아버지가 당신 아들을 우리 집에 양자로 주겠다는 제의까지 있었지만 아버지가 딸 셋으로 충분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아 필자는 딸 셋인 집의 장녀가 되었다. 필자는 아이를 하나만 낳았다. 물론 당시 유행하던 슬로건 때문은 아니다. 그냥 하나만 낳아 잘 키워야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너무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았으므로 자식이 하나라는 게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필자처럼 외동으로 끝난 집은 별로 많지 않다. 거의 두 명 이상의 형제나 자매를 두었다. 그래서 다들 필자에게 자식이 하나여서 얼마나 외롭겠냐, 아이도 쓸쓸할 거라고 걱정들을 했다. 그러나 필자는 아들이 하나인 것에 만족했고 아이도 밝고 명랑하게 자라서 그런 걱정들은 정말 기우에 지나지 않는 말들이라고 생각했다. 불만 없이 잘 자랐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 필자는 하나만 키워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들 며느리는 둘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마 우리 아들이 형제 없이 혼자 자란 게 그리 좋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졌다. 요즘은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니 속으로 하나만 낳아 잘 기르기를 바랐는데 이런 이기적인 생각도 저출산의 원인이어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는 셈이다. 너무나도 귀엽고 예쁜 손녀가 네 살이 되었을 때 동생이 생겼다. 저출산 시대에 너도나도 자녀를 하나씩만 갖겠다고 하는데 우리 며느리는 칭찬해줄 만하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많이 낳아 700여 년 후에 우리나라가 통째로 없어지는 재앙은 막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2016-10-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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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러브레터를 쓴다
-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첫째 딸은 현재 LA에 살고 있고 딸만 한 명이다. 둘째 딸은 쌍둥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 그룹의 호주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가 호주에서 4년 동안 살다 얼마 전에 귀국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호주로 떠난 손주들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서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귀국하기 전 4년 동안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손주들과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다. 세상이 참 좋아져 무료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손주들을 향한 내 사랑 휴가 때면 한 달씩 서로 오가며 만나기도 했지만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것은 그때였다. 내 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손주들이다. 내 자식 키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랑이 솟는다. 내 자식 키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커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손주들하고 대화할 때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또 손주들이 내 집을 방문할 때는 옛말로 표현해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긴다. 손주들이 네댓 살쯤 되었을 때는 손주들 키에 맞춰 앉아 신발도 직접 벗겨줬다. 올망졸망한 발을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나는 손주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비해놓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연휴를 맞아 함께 임진강 근처로 놀러갔다. 오가는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여서 둘째 딸이 간식을 준비해 왔지만 나도 차 안에서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내가 늘 먹을거리를 준비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손주들은 교외로 나갈 때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무엇을 싸오셨을까?’ 하고 소풍 도시락 열어보듯 설레어한다. 내가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손주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땀 뻘뻘 흘리며 과일 잼도 직접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 얼마 전에 손주들한테 용돈을 줘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용돈을 줄 때마다 새 지폐를 마련해 반드시 짧은 글이라도 써서 깨끗한 봉투에 넣어서 준다. 헌 돈과 새 돈의 가치는 똑같지만 시장에서 거스름돈으로 더럽혀지고 심하게 구겨진 돈을 받았을 때는 새 돈을 받았을 때와 기분이 다르다. 은행이 막 찍어낸 듯한 빳빳한 새 돈을 받으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돈처럼 귀중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용돈을 줄 때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손주들이 어려서부터 돈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주들이 용돈 봉투를 열고는 “와~ 새 돈이다!”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그래서인지 손주들도 내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예의를 갖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느낌과 강도가 다르다. 손주들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말은 그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편지로 정성스럽게 표현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손주들 책갈피에서 종종 다시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내가 써준 편지들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참 행복하다. LA에 사는 손녀는 멀리 있어 행여 할머니 사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서울에 올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붓과 책 등의 물건들에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글을 몰래 남기고 가는 것을 보면 기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돌아간 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손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짠해진다. 그리고 LA로 돌아가 정성을 다해 쓴 ‘할머니의 Love Letter’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곧 답장을 보내올 손녀가 그때부터 그리워진다. 손주를 예뻐하느니 홍두깨를 예뻐하라는 옛말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 그 순간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그저 순간순간 느끼면 되고 그 순간이 쌓이면 한 권의 아름다운 책만큼 풍성한 이야기들이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훗날 추억을 더듬듯 그 책을 살며시 펼쳐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사랑하는 정민, 지민, 성수, 멀리 바다 건너에 살아 자주 볼 수 없는 솔라야 예쁘고 바르고 씩씩하게 성장해줘서 참 고맙다!!!
- 2016-10-0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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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상에 걸인 아가씨가 있다니
- 경의선 전철 안 입니다. 작은 키에 통통한 30대 초반의 젊은 여인이 구걸 전단지를 돌립니다. 한 눈에 봐도 병색이 있습니다. 우선 예감에 아이가 큰 병이 들어 병원비를 구걸하나보다 했습니다. 젊은 여자가 구걸을 한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도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자칫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나도 이렇게 구걸하는 젊은 여자는 처음 봅니다. 내 무릎에도 전단지를 놓습니다. 대부분 승객들은 전단지를 무슨 전염병 병균인양 기피 합니다. 그래도 사람이 그건 아니지 무슨 사연인지 들어는 봐야지 하는 심정으로 찬찬히 읽어봤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불행하게도 머리를 다쳐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취업을 해보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아무도 써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 봐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고 사랑으로 저에게 동정을 해 달라는 글입니다. 글 내용으로 보아 결혼도 안한 아가씨입니다. 전단지를 돌리고 나서는 연신 고개를 크게 숙여 절을 하는데 참 마음이 아픕니다. 예전에도 어른들이 늙거나 병신인 거지가 오면 불쌍하다고 밥을 주지만 젊은 거지가 오면 사지가 멀쩡한 놈이 일은 하지 않고 얻어먹으러 다닌다고 배척했습니다. 지금은 사지가 멀쩡해도 취업을 못하면 굶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정상인도 취업이 어려운 판에 장애인이 취업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걸 누구나 공감합니다. 누가 걸인 아가씨에 동전이라도 던져주나 하고 눈여겨보니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서야 쓰나 하는 심정에서 5천원 지폐를 줬습니다. 걸인 아가씨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큰돈을 받는 눈치입니다. 순간 짧게 기쁜 표정을 짓습니다. 어느 분이 가난한 집 아이를 데리고 슈퍼마켓으로 가서 바구니를 쥐어주며 돈은 걱정 말고 갖고 싶은 것을 다 담아 오라고 했답니다. 한참을 마켓을 돌면서 이것 들었다 놓고 저것 들었다 놓더니 겨우 500원짜리 과자 두 봉지를 담아오더랍니다. 아이가 자기가 갖고 싶은 속마음보다 그 돈을 지불해줄 사람의 주머니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여겨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합니다. 다시 아이들을 내 몰며 돈은 걱정 말고 맘껏 담아오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속으로 한마디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단 하루 만이라도 행복을 맞보고 죽어야지’ 사람이라면 단 하루만이라도 걱정근심 없이 행복하기만 한 날이 있어야지요. 너무 큰 걸 바라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가짜 걸인도 많다고 합니다. 걸인 아가씨가 용돈이 궁해서 쇼를 한 것이라면 정말 다행입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가 너무 어려운 현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강화도의 장애인들이 키우는 콩나물 공장과 전기제품 나사 조이는 공장을 견학 한 적이 있습니다. 불과 몇 십 만원의 봉급을 주는데도 취업 희망자가 줄을 선다고 합니다. 콩나물만 키우지 말고 두부공장도 함께하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제조 공정이 어려워 장애인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볼트 조이는 곳도 두세 곳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 되면 어려워합니다. 지적장애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세상에 거지 없는 나라가 없고 가난은 나라임금도 어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고 사회복지국가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서 가난하지만 사람답게 살게는 해 줘야 복지국가입니다. 걸인에게도 아주 가끔은 소시민도 따뜻한 손을 내밀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 2016-09-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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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잊어버리기
- 치매가 아니어도 점점 기억력이 깜박깜박할 때가 많아 실수 하지 말아야한다. 가족이 여러 명 살 경우 서로 서로 챙기지만 필자의 경우에도 두 아이가 모두 결혼하여 출가한 상태이니 모든 생활에서 신혼 때와 마찬가지로 단출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둘만 혹은 혼자만 사시는 어르신들은 마음은 청년이라고 해도 실제 생활에서는 난감한 부분들이 많으니 모든 생활 속에 유비무환정신을 적용해야 할 일이 많다. 조심해야할 부분, 기억해야할 부분이 많다. 필자가 처음 아파트 분양받아 이사했을 때 불이 났을 때처럼 온 아파트에 경계의 사이렌이 울리는 경우가 있었다. 연세 드신 분이 외출하시면서 가스불위에 뭔가를 올려놓고 나가셔서 자욱한 연기와 냄새로 주변이웃에서 119에 신고하고 사이렌을 관리실에서 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소방관이 문을 따고 들어가서 가스차단하고 난감한 불나기 직전의 상황 종료시킬 때 할머니께서 어딘가에서 아무생각없이 귀가하다 당신의 댁에서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고개도 못들고 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적이 있다. 바라보던 여러 명의 이웃들의 혀를 차는 장면 지금도 기억난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매월 해야 할 일/매일 해야할 일을 적어서 부착해 눈에 띄는 곳에 해놓는다. 매월별 작성할 일 생일이나 미리 연락받은 결혼식에 깜빡 잊고 못가거나 꼭 해야 할 일을 잊지 않도록 적어놓는다. 매달 나가야할 비용은 자동으로 이체하여 가산금을 물지 않도록 한다. 매일 해야 할일 가전제품 특히 타이머가 부착 안된 가전제품이나 가스사용제품을 점검한다. 외출할 경우 공교롭게 배터리가 방전되기 전에 꼭 충전을 충분히 해놓는다. 외출후 귀가할 때는 모든 주머니내용물을 일정한 곳에 꺼내놓아 꼭 챙긴다. 일기예보 확인하여 날씨에 맞추어 우산 등을 챙기도록 한다. 당뇨환자의 경우 외출 시는 물론 가정에서도 주스나 캔디등을 준비해둔다. 대중교통이동시 차량의 손잡이 잡고 하차하고 계단도 언제나 가장자리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위치에서 오르내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한다. (계단몇개 건너뛰어 무릎이나 발목 다치면 아주 기동력 떨어진다.) 기타 해야 할이나 기억할일 도장 잘 잃어버리는 사람의 경우 인감 아무나 못 떼도록 본인외 발급중지를 해놔야한다. 주방 옆에는 부착형 소화기를 부착해놓는다. (만일에 사태를 대비하여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시니어 분들 단출하게 자동문의 경우 배터리를 준비해둔다. 휴대전화를 긴급통화버튼을 급히 연락해도 될 곳으로 우선적으로 저장해둔다. 와인따개등 어쩌다 사용하지만 꼭 필요한 제품의 경우 따로 서랍 속에 챙긴다. 집안 인테리어를 안전한 스타일로 하도록 한다. (젊은 취향으로 아일랜드식탁의 의자를 들여놓았다가 허리를 다친 분을 봤다.) 밤은 물론 낮에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날 때 조심해서 이동한다. (갑자기 서두르다가 다친 분들 자녀들도 게속 입원하니 짜증내는 것도 목격했다.)
- 2016-09-2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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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부탁해 PART11] 우리들의 숙면 비결 공개
-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①]발가락 박수까지 총동원 박미령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쟤는 잠들면 업어 가도 몰라. 여자애가 그래서 쓰겠니? 쯧쯧.” 어려서 외할머니에게서 귀가 닳도록 듣던 질책이다. 그 뜻도 모르는 채 잠드는 것이 부도덕한 일로 여겨져 ‘너무 깊이 잠들면 안 되는 거구나. 어떻게 하면 잠귀가 밝을 수 있을까’ 같은 얼토당토않은 고민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늙으니 꿀잠을 자던 시절은 훅 가고 오히려 잠이 안 와 고통 받을 때가 많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업혀 가도 좋으니 푹 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코를 기관차 지나가는 소리처럼 화끈하게 고는 남편과 사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그가 친정에 가서 자던 날 친정 식구는 모두 날밤을 새웠다. 물론 모두 각자의 방에서 잤지만 기관차 소리는 밤새 쉴 새 없이 달려 각 방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베개만 대면 잠을 자서 남편 바로 옆에서 30년 동안 자도 그가 코 고는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평생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자는 그 친구가 부럽다. 불면의 밤엔 시계 소리도 고통 어쩌다 ‘불면의 군단’에게 공격이라도 받은 날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며 양을 수없이 세도 효과가 없다. 그리고 시계 소리는 갈수록 더 크게 들린다. ‘묵음 시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요즘은 좋아하는 커피도 오후에는 겁이 나서 못 마신다. 물론 오후에 커피를 삼가도 잠 안 오는 날은 여전히 있다. 궁리 끝에 어디선가 주워들은 불면증을 없애는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우선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한 컵씩 마셔 보았다. 약간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그 방법은 필자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었다. 빼도 시원치 않은 살이 푹푹 찌는 것이었다. 바로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음은 머리맡에 양파 반쪽을 놓고 잠을 청하는 방법이다. 이것도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있었다. 온몸에서 양파 냄새가 진동했다. 향수는 뿌리지 못할망정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찾아보니 술을 약간 마시는 방법도 있다. ‘아하! 그럼 이왕이면 몸에 좋다는 적포도주를 마셔 봐야겠다. 이건 일거양득이네! 바로 이거였어’ 했다. 이것은 효과가 꽤 있었다. 그러나 잠드는 술의 양이 처음에는 3분의 1잔이었으나 점차 2분의 1잔, 1잔 이런 식으로 점점 늘어가니 원하지 않은 술고래가 되기 십상이었다. 술고래는 한 집에 남편 한 명으로 족하지 않은가. 양쪽 발가락 부딪치면 특효 다음 시도한 것은 우연히 요즘 유행하는 1인 방송 ‘팟방’에서 들은 어느 명상전문가 여박사의 불면증 해소법이었다. “양쪽 엄지발가락 부딪치기를 1000번 하면 잠이 와요.” 필자는 ‘아니 1000번을 어떻게 해. 앓느니 죽겠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똑딱이는 시계 소리 들으며 새벽 3시까지 있다 보니 슬그머니 두 발가락을 맞대고 부딪치기 시작했다. 1000번이 되기 전 언제 잤는지 모르게 스르르 잠들고 말았다. 그래서 요즘은 이 방법을 쓴다. 또 한 가지가 있다. 이것도 지나가다 방송에서 들은 것 같은데 검지와 중지 사이 손바닥 부분을 양손 모두 지압하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가 필자가 잠이 안 올 때 100% 효험을 보는 방법이다.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②]미루었던 일 하는 날 최갑숙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필자에게 불면의 밤은 드물다. 태생적으로 잠꾸러기이다. 초저녁 일찍 잠들면 이른 아침에 기상한다. 잠버릇으로는 올림픽 금메달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마셔 본 첫 커피로 밤잠을 자지 못한 적은 있다. 그 밤이 보름밤이라 마당 가득히 내려앉아 있는 월광이 마치 북극권 백야같이 비치는 신비한 세상을 만들었는데 커피와의 상승효과로 불면의 밤을 보낸 적이 있다. 잠 때문에 부부싸움 불면 대처법을 두고 필자 부부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어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편이 피로가 쌓이거나 감기몸살을 앓아 개고생할 때면 필자는 수면이 치유의 첩경이란 판단으로 편안한 잠자리 제공한다. 그러나 남편은 언제나 아플 때는 잘 먹어야 병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보다는 입맛을 잃어 식욕이 감퇴한 상태에서 먹지 못하면 병을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없다는 강박증으로 필자를 들볶으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요구한다. 필자는 이왕 입맛도 없으니 잠이나 푹 자자는 주장이다. 자고 일어나서 병기가 꺾인 후엔 입맛이 살아날 것이고 그때 잘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먹는 것은 평소에 잘 먹어 면역력을 강화해 놓아야지 병이 든 후에는 장기 투병하여야 하는 병이 아닌 바에야 임시로 먹는 것이 면역력을 더 강하게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우선 병을 이기기 위하여 에너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에너지 생산의 원천은 수면이 아니겠는가. 아프면 필자는 무조건 수면부터 취한다. 수면은 쌓인 피로도 해소해 주면서 힘을 주어 병을 쉽게 털어 버리게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플 때도 필자는 업어 재우는 데 치중했다. 반면 남편은 아이에게 먹이려고 하지 않고 업어서 재우려고만 한다고 성화가 대단하였다. 늘 필자 판단과 방법이 훨씬 효과가 있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남편은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고집한다. 장롱 정리는 잠의 보약 아무리 잠꾸러기이고 불면은 문제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가끔 불편스럽고 고통스러운 불면의 밤은 있다. 갑자기 심한 일을 하였다거나 잠자는 시간을 놓쳤거나 무거운 고민거리가 머리를 짓누르면 잠은 멀리멀리 달아나 버린다. 필자가 정서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 잠드는 시간이 길게 늘어지면서 머리가 띵하고, 몸은 나른해지며, 삶의 무게도 천근만근이 되어 버린다. 이런 날 필자는 그 시간이 오밤중이든 새벽이든 가리지 않고 미루어 두었던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한다. 일단 벌떡 일어나 커피부터 진하게 블랙으로 한 잔 마신다. 그리곤 미뤄 두었던 장롱 정리를 한다. 때로는 주위를 소란하게 하는 소음을 만드는 일을 할 때도 있다. 가령 덜커덕덜커덕 시끄럽게 가구를 옮기고, 책장 정리를 하며, 물소리 시끄럽게 내면서 손빨래를 한다. 일부러 필자 자신이 몸과 소리에서 피로감이 들도록 몸을 움직인다. 필자가 사는 집은 차곡차곡 아래, 위, 옆이 이어져 소리의 이동이 쉬운 집단 주거단지가 아니라 소음을 불평할 사람이 없다. 잠을 자기 위해 책을 읽거나 조용히 사색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잠이 오지 않으면 첫 증상이 머리가 맑지 못하고 정신 집중이 되지 않으니 그런 일들은 할 수가 없다. 팔다리를 움직여 하는 일이 몸을 피로하게 만들어 달아난 잠을 불러온다. [동년기자들이 전해주는 비결 ③]막걸리 한 사발이면 업어 가도 몰라 백외섭 동년기자 bravopress@etoday.co.kr 이른 새벽 마을 체육공원에서 운동하는 시니어가 많다. 이들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잠을 잘 자지 못해 운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잠 잘 자는 필자에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항상 잠을 잘 잤던 것은 아니다. 잠을 그르친 날도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시도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막걸리 한 사발이 만병통치약임을 알게 됐다. 그것은 필자에겐 지리상 대발견에 버금가는 역사적 발견이었다. 전전반측 불면 극복작전 불면증은 대입 준비에 바빴던 고교 시절에 시작되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하여 생각을 깊게 할수록 잠은 저 멀리 도망갔다. 그렇게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면 그날은 공부나 컨디션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불면증은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필자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체질에 맞는 잠 잘 자는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마인드컨트롤, 따뜻한 물로 목욕하기, 책 읽기, 땀 흘려 운동하기 등 좋다는 방법을 총동원하였으나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막걸리 한 잔에 잠이 잘 든다는 것을 터득하였다. 막걸리 한 사발이 확실한 수면제! 강원 원주시의 모 부대에서 3년 복무하였는데 황당하게도 막걸리 한 잔 마실 수 없는 금주 부대였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사회에서 막 배우기 시작한 막걸리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지휘관 눈을 피해 그 맛난 술을 마실 방법을 찾고 찾았다. 그런데 한 방법이 있었다. 농가 가게와의 내통이었다. 부대 철조망 가까운 곳에 조그만 농가 가게가 있었는데 돌멩이를 슬레이트 지붕에 던지면 가게주인이 얼굴을 내밀어 소주를 건네는 것이었다. 물론 소리를 내면 걸리기 때문에 주문은 수신호로 이뤄졌다. 큰 원을 그리면 큰 병, 두 팔을 높이 들면 중간 병, 한쪽 팔만 들면 작은 병을 의미했다. 필자와 동기 서너 명도 이 방법에 따라 소주 한 병을 획득했다. 갖은 노력끝에 얻은 소주는 입에 착착 감겼다. 하지만 별 안주도 없이 마시니 몇 잔 들이켜지도 못하고 눈이 감겼다. 이런 필자를 고참이 아니라 항우장사도 깨울 재주가 없었다. 아내와 40년 넘게 사는 동안 투정을 딱 한 번 들었었다.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다. 신혼 시절 가까운 친구 모임을 이 집 저 집 돌아가면서 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큼직한 식당을 열었다. 당연히 일당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고, 방 하나는 철야 놀이터로 사용됐다. 우리는 그 방에서 잔을 연신 비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이 스르르 감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당시 있었던 ‘통행금지’가 막 해제될 때였다.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상황 끝이었다. 연년생 아이들을 도닥거리면서 뜬눈으로 기다리던 아내가 “전화라도 해주면 걱정이라도 않지”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전화할 정신이 있었으면 집에 오지”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료했지만 잘못한 것은 필자가 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엔 술은 매우 조심스럽게 마신다. 하지만 불면증이 깊어져 도무지 안 되겠다 싶으면 막걸리 한 사발 정도 마신다. 이렇게 하면 눈이 감기고 잠이 들어 아침까지 세상 모르게 잔다.
- 2016-09-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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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장 3kg가 공짜?
- 길을 지나다 보면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양손 가득 똑같은 화장지나 꾸러미를 들고 가는 걸 볼 수 있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실상을 알고부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재미있게 해 준다며 불러 모으고는 값싼 물건을 비싸게 팔아먹는 사기꾼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인 대상의 사기가 넘쳐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보다는 대부분 아주머니나 할머니가 대상이다. 며칠 전 TV에서 할머니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해주다가 값싼 물건을 고가로 팔아먹은 사기꾼 일당 이야기를 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자리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우리를 재미있게 해주고 마음씨도 착한 사람들을 왜 못살게 구느냐면서 항의를 했다 한다.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재미있게 해주었다는 이유로 사기꾼들을 두둔까지 하셨을지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난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 동네 사는 수영이 엄마가 필자를 붙잡았다. 지금 안 바쁘면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한다. 별일은 없었지만 나갔다 오는 길이라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는데, 그래도 잡아끄는 대로 이끌려서 동네 입구의 어떤 건물 지하에 가게 되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꽤 넓은 공간이 있었고 그 안에 아줌마들이 바글바글 모여 앉아있었다. 필자가 여기 왜 따라왔나 생각해 봤더니 수영이 엄마가 같이 오면 고추장 3kg을 공짜로 준다고 해서였나 보다. 그런데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뉴스에서 본 대로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 몇 명이 앞에서 아줌마들을 선동하며 게임도 시키고 노래도 부르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무것도 안 사도 된다고 수영이 엄마는 말했지만, 그 남자들은 이런저런 물건을 소개하며 구매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쪽 팀 저쪽 팀 나누어서 경쟁을 시키니 아줌마들이 비싼 냄비며 건강식품들을 마구 주문하는 것이었다. 결국, 수영이 엄마도 냄비세트를 구매했다. 필자는 정말 민망했다. 사고 싶은 물건도 없었고 필요한 물건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살 생각이 없었다. 직원은 그래도 괜찮다며 참가했으니 선물을 준다면서 고추장 3kg 들은 플라스틱 통을 주며 출석카드 한 장을 건네주었다. 내일 또 오시라며 웃는 앳된 청년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그 후로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는데 거기 모인 아줌마들 대부분이 매일 출석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재미있다고들 말하고 있었는데 필자는 그곳에 있는 시간이 재미있지도 않았으며 유치한데다 사기성이 농후해 보였는데도 다들 즐거워하고 있었다. 할머니도 아닌 아줌마들도 외로워서 그런 행사에 참여를 하는 걸까? 직원인 그 남자들이 내일도 또 오라고 하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빨리 벗어나고만 싶었지 또 갈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물건을 사지 않는 민망한 시간을 버틴 대가로 고추장 3kg을 받아서 잘 먹긴 했다. 너무나 민망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음엔 아무리 잡아끌어도 다시는 따라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했다.
- 2016-09-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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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금이 뭐길래
- 살면서 참 잘한 일이구나 생각되는 일이 있다. 10여 년 전 어느 날 국민연금 가입하라는 안내장을 받았다. 연금의 개념도 잘 몰랐고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닌 주부의 입장에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쓰기에도 바쁜데 매달 일정한 금액을 10년간 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워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위층 사는 선배 언니가 가입해 놓으라고 권했다. 직장인으로 수입이 있는 사람만 가입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경제생활 하지 않는 사람도 들을 수 있으니 가입해 놓으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는 조언이었다. 필자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런데도 참 경제 활동엔 무심해서 별로 달갑게 들리진 않았어도 언니의 조언대로 가입신청을 했다. 처음엔 5~6만 원대로 시작했었지만 해가 갈수록 금액이 늘어나 마지막 몇 년간은 매달 10만 원가량을 내야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 더는 돈을 내지 않게 되었는데 필자가 60세 되는 해부터 연금이 나왔다. 얼떨떨하기도 하고 공돈이 생긴 것 같아 매우 기분이 좋았다. 적은 금액을 냈었기 때문에 많이 나오진 않지만 30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필자가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다니 연금이란 제도가 참으로 고맙다. 그런 만큼 연금에 얽힌 이야기도 많이 있고 연금 사기라는 말도 들어 보았다. 필자는 미드(미국 드라마) 마니아다. 예전에 TV라면 KBS, MBC, SBS, 그리고 EBS밖에 몰랐는데 위성방송을 설치하고부터는 몇백 개나 되는 채널이 방송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 번도 안 본 채널이 대다수이고 선호하는 채널이 몇 개 생겼다. 그때부터 손쉽게 미드를 보기 시작했는데 CSI 범죄 수사 시리즈물부터 인기 있다고 소문 난 미국 드라마를 열심히 찾아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가 위기의 주부들이다. 미국 부시 대통령 시절 영부인이 인터뷰하다가 위기의 주부 할 시간이라며 자리를 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드라마이다. 게브리얼, 브리, 수잔, 르넷 등 매력적인 4명의 주부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우리 정서와는 다소 맞지 않고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가 나를 사로잡았다. 위기의 주부들은 시즌 8로 종영되었으니 내가 다 본 에피소드는 100여 편이 넘는다. 다 통쾌하고 재미있지만, 그 중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동네 아이들이 숨바꼭질하다가 이웃의 매클러스키 할머니 집의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아이스크림이라도 꺼내먹으려고 냉동기를 열어보니 그 속에 할아버지 시체가 냉동되어 있었다. 살인자인 줄 알았는데 경찰에 잡혀간 할머니에 의해 밝혀진 진실은 20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혼인신고를 못 하고 살아온 할머니는 연금을 받을 수 없는 게 두려워 남편이 죽은 사실을 숨기고 20년간을 냉동된 남편과 살며 연금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때는 그 할머니가 살인자가 아닌 것에 안심했고 불쌍하다고 생각되어 이해를 해주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있다고 한다. 신문에 보니 유령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부산의 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3년 가까이 남편의 사망신고를 안 하고 연금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드라마에만 있는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있다니 놀라웠다. 그런데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새 나가는 세금의 액수가 엄청나서 각종 복지비를 지급하는 기관이 유령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부정으로 받은 돈은 환수한다고 한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심란하다. 안됐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법을 어겼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할지...물론 잘못한 일이니 바로 잡아야 하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를 튼튼히 해서 미리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드라마로는 재미있었지만 참으로 씁쓸한 연금에 대한 이야기다.
- 2016-09-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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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자식이 보험이 아닌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 인생후배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노후준비는 빠를수록 좋다. 필자는 늙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필자가 젊은 시절 연세 드신 분들의 모임에 가보면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져서 왠만 하면 가기가 싫었다. 무언가 칙칙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저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가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아니 젊은이들이 볼때는 필자도 불편한 존재가 이미 되어있다는 것이다. 요즘 의학적으로 수명연장에 대한 연구가 많아져 얼마전 백세인생라는 노래가 유행하면서 이미 100세 시대는 당연하게 인지되고 있다. 살고 있는 동안 더 의학연구가 이어져서 120세까지 살아갈 준비를 해야 된다고 말이 돈다. 우리의 세대까지는 시간과 물질과 정성으로 부모를 봉양한 세대이지만, 막상 우리의 노후는 이제 우리세대 스스로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에 서 있다. 자녀가 곧 보험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큰아이가 막내학비를 해주면서 키우다 시피 하는 시대가 이미 아닌 것이다. 과거 봉지 쌀을 사먹고 연탄으로 난방과 식사준비를 하고 전화있는 집이 부의상징이 되던 그 오래전 시대에 비하면 지금 우리나라는 방방마다 tv가 있고 가족수만큼 휴대전화도 있는 아주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환갑잔치 요즘 안한다. 이미 80세어르신들도 많기에 환갑나이는 청년이라고 하면서 아예 자녀들도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여느생일 때처럼 지낸다. 65세가 되면 전철무료로 탈수 있고 기초노령연금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으로 다 노후생활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노후에 왜이리 경조사문자와 카톡은 날아오는지 먹고 사는 것보다 사람노릇하고 살기가 더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도 큰아들때는 알렸던 하객을 지난주 결혼시킬때는 100명이나 줄여서 초대했다. 시니어들의 부담을 드리기 위해 부르지 않은 것이다. 어떤시니어분이 빈봉투만 내고 식권타고 어울리고 간뒤에 보니 죄송합니다. 라는 멘트만 봉투속에 펼지로 있었다는 이야기가 시니어들사이에 돌정도이니 그 심각성을 알만하다. 많은 시니어분들이 그중에 남성어르신분들이 일하고 싶은 이유중에는 아내분인 할머니에게 뭔가 일하고 있는 모습과 매끼니 집에서 먹는 것이 미안해서이고 손자손녀에게 용돈도 주는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한다. 노후준비 하루라도 빨리하라고 인생후배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 2016-09-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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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의 쟁취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 학교 동창회에 나가보면 학교 다닐 떼는 공부도 별로고 집안 형편도 그저 그렇던 동창이 몇 십 년이 흘러 지금 보니 비까번쩍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 10년이면 산천도 변한다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몇 십 년이 흘렀으니 산천이 바뀌어도 몇 번이나 바뀔 시간이다. 하물며 살아있는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정말 좋은 쪽으로 많이 변했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함께 직장생활을 했는데도 결과가 다른 사람이 있다. 같이 입사해서 급여도 비슷하게 받았고 퇴직한지도 몇 년의 차이에 불과한데 발 빠르게 제2의 인생에 성공해서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는 일 없이 여기저기 기웃기웃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직장에서 같은 삶을 산 것처럼 보여도 물밑에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A씨는 나와 비슷한 연배지만 늘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아주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집이 서울인 사람이 제주도로 발령이 났다면 일부는 좌천되었다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경치 좋은 곳에서 구경이나 실컷 하겠다고 주말이면 한라산이나 오름도 오르고 이곳저곳관광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다. 또 더러는 객지생활에 한 가지라도 이루겠다고 육지보다 비용이 저렴한 골프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에 올인 하는 사람도 봤다. 어떠한 경우에도 전화위복의 정신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결국 성공을 쟁취한다. A씨도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제주도에 왔으니 제주도에만 가능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제주도 사투리를 열심히 듣고 토박이한테 배우며 제주 말을 기록해 나갔다. 제주도 토박이 할머니 말은 육지 사람들은 알아듣기 어렵다. 토박이 할머니의 전화가 오면 얼른 제주 토박이 직원에게 전화를 바꾸어 주는데 A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상대의 말을 받아 적으며 어렵게 통화를 이어갔다 제주 사투리 모음집을 발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다. 육지 사람이 이해 못하는 제주도 말이 많다. 한라산을 오르는 시작점인 성판악 가게의 간판이 “옴팡 속았수다.”라고 표기되어있다. 처음엔 물건을 잘 못 사서 ‘완전히 바가지 썼다.’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아니다. ‘대단히 수고 하셨습니다.’ 라는 뜻이란다. 나도 40대의 술집 여주인이 제주도 토속 노래를 부르는데 한마다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억양으로 말이 참 아름답구나 하는 느낌은 받았다. 글자와 말은 다르다. 사투리의 억양을 그대로 글로 옮겨도 육지사람이 발음하면 어색하다. 발음의 강약이나 장단에 따라 뜻이 다른 말이 있다. ‘밤’이라하면 글자는 같아도 깜깜한 밤도 있고 먹는 밤도 있다. 발음을 제대로 표기하며 적는 것이 어렵다. A는 노력은 하였지만 처음 의도한 제주도 사투리 해설집 발간은 실패했다. 그의 실패의 변으로는 육지로 발령을 받아 다시 나오게 된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A씨는 화재사고 현장에서 화재원인 조사업무를 담당했다. 이것이 발전되어 조선시대에는 사망사고가 발생되면 어떻게 수사를 하고 분류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기시작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단편글로 여러 편을 쓰기도 했다. A씨는 지금 화재원인 조사 분야에서 대우 받아가며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누구나 좀 다르다. 결국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한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이 결국 성공한다.
- 2016-09-19 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