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노후에 작물을 기르며 텃밭을 가꾸고 싶은 작은 소망이 하나씩 있다. 밥상 위에 놓을 야채 몇 가지가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좋고, 주변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더 좋다. 여기에 약간의 용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현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그렇다고 집을 등지고 시골로 내려가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잘만 하면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다.
“라디오코리아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989년 2월 1일, LA의 한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라디오를 틀었는데 한국어가 나오고 한국 노래가 나왔던 거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한인들을 울렸던 목소리는 지금도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흘러나온다. 28년 동안, 그가 마이크를 놓았던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저 방송
흔히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한다. 멀뚱멀뚱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기도 하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려보지만 세상은 아직 단잠에 코골이 중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일찍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다정한 목소리가 있다. “안녕하세요. 박영주입니다.” KBS 1라디오 의 박영주(朴英珠·57) KBS 아나운서가 그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97
어려서부터 ‘오지라퍼’ 기질을 보인 필자는 그냥 지나쳐도 좋을 일에 몸을 던지는 적이 많았다. 예컨대 동네를 지나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싸우고 있으면 꼭 참견해서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누가 옳고 그른지 끝까지 판단해주고 심판관 노릇을 자임했다. 그들은 대부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일단 싸움을 그치게 했다는 사실에 늘 의기양양해했다.
이런 버릇
며느리가 어쩌다 다리를 다쳤다. 유아원에 다니는 4살 손자, 6살 손녀 둘을 할아버지가 자동차로 등하교 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며느리 입장에서야 시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식으로 들락날락 아이들 돌보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에게 SOS를 보내는 것은 마땅히 도움 청할 곳도 없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시아버지
망망대해에 고깃배 한 척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떠 있다. 주변에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바다에 튕겨 하늘로 솟아오르는 빛의 잔치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배를 때리는 파도소리만이 심해와 같은 적막에 미세한 균열을 내고 있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이 바다놀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팽팽한 긴장감으로 서늘한 느낌마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영화와 공간: 홍콩’이라는 주제로 홍콩 영화 수작들을 상영했다. 상영작 중 두 편이 허안화 작품이었다.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허안화(쉬안화, 許鞍華)의 작품들은, 일상을 통해 인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깊이를 안겨준다. 현실에 발 디디고 사는 서민의 삶을 그려내는 감독 중 허안화만큼 진실한 감독도 드물다
한때 홍콩 감독 허안화(1947년~)에 관한 국내 평가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실망과 환희를 동시에 안겨주는, 높낮이가 심한 연출자”였다. 그러나 필자는 (1997)과 같은 범작에서도 실망한 적이 없다. 서극, 담가명 등과 함께 1980년대 홍콩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드라마에서부터 액션, 시대극, 멜로를 아우르며 홍콩과 홍콩인이 처한
‘닭님에게 손수 밥을 만들어서 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흔히 우둔함의 대명사로 꼽는 닭을 ‘닭님’이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비범하다. 경기도 여주군 도리마을 외딴집에서 700여 마리의 닭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홍일선(洪一善·67) 시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1980년 여름호를 통해 등단해 , 등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인 홍
언제부턴가 TV를 틀면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젊은 댄스 보컬 그룹들이 자주 보였다. 바로 10대 스타 ‘아이돌’이다. 이제 단순한 인기를 넘어 우상화되고 있는 아이돌의 팬들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아이돌의 시초라 할 수 있는 ‘H.O.T.’부터 최근 방송을 통해 국민투표로 뽑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