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중학교 3학년 국어시간의 일이다. 국어선생님은 머리가 하얗고 이가 몇 개 빠진 할아버지였고 성함은 ‘김이홍’이었다. 당신 이름에 세 가지 성씨 즉, 김씨, 이씨, 홍씨가 들어있다고 자주 자랑하셔서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내재되어 있던 작문 소질
그 날 국어시간에는 작문을 하라고 하셨다. 작문의 주제는 ‘국어 선생님’이었
삶의 변화가 되는 한권의 책이 여러 권이 될수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 영어교과서에 나오는 단어하나 때문에 고르게 된다.
영어교과서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어하나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말로 싸우다보면 절대로 승부가 결정이 안 나고 진흙탕인생이 될것이라는 상상이 되는 인생 환갑까지 오다보니 그 여고시절 영어선생님이 사투리가 섞인 악센트로
말씀
어린 시절 뒷동산 고갯마루에서 꿈을 키웠다. 성년이 되어서는 대도시 고갯마루를 찾았다. 어머님 품 같이 포근한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활력을 얻었다. 가는 곳마다 필자의 아지트 ‘고갯마루’이다.
◇시골 뒷동산으로 가출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계셨다. 할아버님께서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고 할머님은 항상 업어주셨다. 그때까지 아버님,
활발한 성격인 필자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장비를 늘어놓고 하염없이 물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즐겨야만 하는 낚시는 필자의 성질에 맞지 않았다.
정적인 우리 남편은 취미가 식물 가꾸기와 낚시이다.
한창 젊었을 때 남편이 낚시를 즐기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낚시터 동행을 하기도 했다.
낚시터는 대부분 경치가 좋은 곳에 있어 꼭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1983년 2월14일.밸런타인 데이라는 걸 나는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여자 아이들이 자꾸자꾸 늘어가고 수군덕거리는 소리들과 함께 우리 집 둘레를 맴도는 날이었다. 우리 두 녀석들은 올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집에 안 돌아오고 여자 아이들은 두 줄로 서 있고 몇 명은 자전거를 타고 수십 번을 왔다가 가길 반복했다. 오후 4시가 가까워 오자 밖이 더 더욱
오산중고 뒤편 운동장은 필자 세 자매의 아지트였다. 노을빛이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필자는 서울 변두리의 용산구 보광동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들은 모두 다 보광동에 묻어 두게 되었는데, 그 보광동의 중심에 오산중고가 우뚝 서 있다. 오산중고에 오랜 세월 가보지 않아
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장, 졸업장, 수료증, 자격증 등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거추장스럽고 보관해 두기에 왠지 불편해서 요즘은 40장짜리 파일에다가 모두 다 모아서 보관해두고 있다. 필자의 인생 전부가 담긴 이 파일을 한장 한장 넘겨 볼 때가 있는데 맨 첫 장이 성경암송대회 상장이고, 두 번째 장이 바로 ‘교회 주일학교 졸업장’이다. 어릴 적, 언제부터인지
아지트란 사전적 용어는 좌익운동 과정에서 관헌의 눈을 피하기 위하여 항상 이동하며 소재를 모르게 하고 비밀지령을 발하는 지하운동의 집합소이다. 러시아어로는 원래 아지트풍크트(agitpunkt)라는 선동본부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 운동 과정의 특성을 반영하여 이동본부, 지하본부, 비밀본부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우리생활공간에서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스트레스
필자는 더는 책을 모아 애지중지 보관하지 않는다. 책의 편리한 이용을 위하여 디지털화하였다. 책은 기증하여 후세대에 공헌하기도 한다.
◇이사 때마다 속절없이 사라지는 책
젊은 시절 지금처럼 이삿짐센터가 있지도 않았고, 실어 나를 짐도 많지 않았다. 휴일을 잡아 친구끼리 품앗이 이사가 당시의 풍속이었다. 가까운 곳은 손수레로, 먼 곳은 삼륜차에 짐과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