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의 삶을 조명한 연극<길 떠나는 가족> 지난 9월 10일부터 25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됐다. 이번 공연은 이중섭 탄생 100주년과 연희단거리패 30주년 기념, 올봄 세상을 떠난 <길 떠나는 가족>의 극작가 김의경을 추모하는 무대였다. 김갑수(1991년), 지현준(2014년)에 이어 연희단거리패의 새로운 간판 남자배우로 자리 잡은 윤정섭이 이중섭 역을 맡았다. 윤정섭은 말 그대로 ‘무대 위에 이중섭을 올려놓았다’는 평을 들으며 매 공연을 흥분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동년기자단은 공연 첫날 공연을 관람하고 관극 소감을 나눴다. 비전문가 시니어의 입장에서 공연에 관해 순수하게 나눈 대화 내용임을 밝힌다. 편집자 주
동년기자단 김종억, 백외섭, 최원국, 전용욱, 장영희
<길 떠나는 가족 줄거리>
이중섭의 생애와 화가로서의 활동에 드리운 한국 현대사의 비극, 가난, 이데올로기 문제가 교직된다. 고향 원산에서 조선의 황소를 민족 혼으로 여기며 소나 한국의 자연을 그리던 중섭은 스승의 권유로 동경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일본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연인 마사코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찾아와 결혼식을 올린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형이 공산당에 끌려가 처형당하자 어머니와 헤어져 가족들을 데리고 월남한다. 궁핍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예술정신을 고집하는 중섭 때문에 가족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게 되고, 마사코는 애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중섭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르며 그림에 몰두하지만 가난에 시달리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가 죽음을 맞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장영희 연극 시작할 때 화가 이중섭이 언제 태어났고, 어떤 일이 있을 겪고 살아왔다는 것을 극 초반에 보여주는 장면이 멋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중섭 일대기를 표현하게 위해 사용된 소품과 음악 등이 감동이었습니다. 이윤택 연출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연극 곳곳에서 느꼈어요. 아주 작은 것들도 이렇게 세심하게 볼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김종억 맨 처음에 연극 제목인 <길 떠나는 가족>과 연극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연출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말했을 때 이중섭 화가의 그림을 보고 제목을 정했다고 해서 고민해 봤는데 저는 그 제목의 의미를 마지막 장면에서 찾았습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이중섭의 죽은 영혼이 먼저 간 첫째 아들의 손을 잡고 먼 길을 떠난다. 그래서 길 떠나는 가족이구나라고 이해했습니다.
전용욱 저는 이 연극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중섭의 가족이 다 나타났다가 일제강점기 유학생활로 한국을 떠나는가 싶더니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태어나 살아왔던 원산을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모두 떠나가잖아요? 이중섭 삶 자체를 가족이 흩어지고 모이는 상황을 하이라이트로 묶은 것 같습니다. 가족이 헤어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추고 아이를 만나서 이승을 떠나 가족들한테 떠나는 과정 아닐까요?
김종억 그렇게만 설명을 하신다면 일반 평범한 사람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특별히 이중섭이라는 화가의 삶에 집중을 하고 조명을 했다는 것은 그렇게 현실적으로 길을 떠나는 것에만 조명한 것만이 아닙니다. 그 작가의 일대기를 통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고뇌를 하고 또 그 속에서 화가로서 살아온 이중섭을 표현했다고 봅니다. 그냥 길만 떠나는 건만 생각했다면 일반이랑 똑같은 거잖아요.
장영희 저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중섭이 원산에서 어머니를 떠나오고, 부인인 남덕이 일본으로 가버리면서 상당한 외로움을 느끼죠. 그러면서 자기의 성기에 소금도 바르고 안타까운 장면들이 나왔잖아요. 마지막에 하늘로 가는 장면에서는 아들과 함께 가요. 어머니, 남덕이, 아들들과의 이별로 인해 굉장한 상처를 받았구나. 그 의미에서 길 떠나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데 정말 가슴이 설렜어요. 이중섭이라는 영혼을 만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아주 기분이 묘했습니다. 두 시간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연극을 기다렸습니다.
전용욱 이중섭 보다 더 많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이 시대의 아픔을 간직해왔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고 그 사람을 택했기 때문에 극화해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던 거라고 봅니다. 사실 나이 들어보니까 젊은 시절을 살아봐서 그런 건지 저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장영희 첫째는 이중섭이 화가로 살면서 돈이 없었죠. 일본에 갔더니 장모는 자기 딸만 지키겠다고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잖아요. 이중섭 평전을 읽은 뒤 연극으로 봐서 그런지 실제 이중섭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해하면서 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길 떠나는 가족>에서 이윤택 연출가가 큰 아들을 목각인형으로 만들어서 표현한 마지막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해요. 연극이라는 특유의 매체를 통해서 우리한테 들려주고자 했던 것을 확실히 보여준 것 같아요.
김종억 누구나 결국에는 가야하는 곳이잖아요. 이중섭이 자기 부인을 사랑해서 일본으로 가고 싶어 했지만 결국은 “나는 여기 고향, 흙이 땅이 있어야 자기 작품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막상 못가는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고향, 땅, 어머니 이런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서를 예술가는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나도 수필을 쓰는데 결국은 글의 밑바탕에는 어린 시절 고향이 깔릴 수밖에 없더라고요. 어린 시절 시골집이 지금의 인천 공항이 있는 곳이에요. 지금 내 마음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어요. 언젠가 제가 미술을 배우면 상상 속에 있는 내 어릴 적에 집을 좀 그려보고 싶어요.
전용욱 유년기 땅, 우리 동네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소중하고 오래가는지 알 수 있는 거죠. 이중섭의 땅도 그렇게 밖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최원국 저는 연극이 예술가로서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조명하는지 알았는데 예술가라면 어떻게 하면 예술가로서 성공했다 이런 것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인간 이중섭만을 다뤘더라고요.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을 거 같다고 느꼈습니다. 일본에서 딴 화가의 그림을 모방했다고 했을 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생각했습니다.
백외섭 연출가 설명 중에 미술은 연극에서 표현을 할 수 없으니까 7분 동안 그린 것이고 무대를 하나의 그림처럼 표현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솔직히 연극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사실 적응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이중섭에 대해서는 알고 있고 좀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연극에 익숙하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눈이 번쩍 뜨이는 무대가 좀 더 있었으면 했습니다. 연극을 좀 더 많이 보면 이해할까요?
장영희 저는 이 작품에서 핵심만 얘기했다고 생각해요. 연극에서 잘 표현했고 전달했어요. 그 사람의 고뇌, 사상, 왜 제목을 길 떠나는 가족이라고 지었어야 했는지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중섭의 생애에 대한 정보를 조금 알고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종억 인간적인 고뇌가 결국 어떻게 녹아서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됐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천상병 시인도 말입니다. 그 분 또한 남겨진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삶을 조명해보면 술을 한시도 입에서 떼지 않으시고 사시다 생을 마감했잖아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족적 남길만한 시를 남겼잖아요. 그런 삶의 과정 속에서 글을 남길 수 있다. 예술가의 현재성이 말할 수 있죠. 맥락에서 보면 이중섭도 정말 평탄한 집안에서 잘 만나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가세가 기울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등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좋은 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유추 해석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용욱 순탄한 삶을 살아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예술가가 드물잖아요. 이중섭도 기복이 크고 힘든 삶을 살았던 거죠. 그랬기 때문에 시대에 남는 강렬한 작품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