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
아이들이 어릴 때였다. 안방 한쪽에 ‘생각의 의자’라는 것이 있었다. 이유 없이 떼를 쓰거나, 자매끼리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그 의자에 앉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했다. 그럴 때면 왜 화가 났는지, 울어야 했는지 억울한 얘기도 들어주었지만, 이기적인 마음도 내려놓게 다독이며 두 손을 잡아주곤 했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자라 기억이나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
눈을 떠보니 여린 햇살이 수줍게 인사를 한다. 어느새 베란다 너머로 선선한 바람이 고통스럽던 여름의 이별을 고한다. 오고 가는 계절, 또 보내려니 아쉬움도 곁든다.
또다시 찾아온 새 달의 첫날 아침이다. 엊그제까지도 그렇게 숨통을 조이더니 잘 참아온 덕에 겨우 살만하다. 참기 힘들었던 시간들만큼이나 새 아침에 햇살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창문을 활짝 열
테레사 수녀의 통신에 따르면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다. 덧없고 허무한 게 삶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렇지 않던가? 부평초처럼 떠돌다 허둥지둥 저승에 입문하기 십상인 게 삶이다. 그저 따개비처럼 견고하게 들러붙은 타성의 노예로 간신히 살다가 파장을 보기 쉽다. 어이하나? 저마다 나름의 대책과 궁리가 있을 터인데, 백발의 사진가 이종원씨(72
나만의 아지트로 가는 길은 누구도 눈치 채기 어렵다. 아니 길이 없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북한산 좁은 등산로를 오르다가 오 부 능선 어느 지점에서 등산로를 살짝 빠져서 큰 나무 사이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약간 경사가 있는 비탈길을 내려간다. 그 비탈길은 나무가 빽빽해서 주변 지형과 하늘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조심조심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마
한 농부가 있었다.
그가 수확한 옥수수는 품질이 뛰어난 농산물 박람회에서 늘 1등을 차지했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 했다.
그런데 그는 이웃 농부들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씨앗을 나눠 주었다.
그것도 공짜로, 놀란 이웃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다 나 잘되자고 하는 일이지요. 바람이 불면 꽃가루가 날리지 않습니까?
두 질문의 답은 우리 민족 고유의 운동인 씨름과 씨름 선수다.
최근 급격하게 인기가 떨어졌지만 1980~90년대,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있는 체육관은 연중 열리는 민속 씨름 경기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짧은 시간에 불꽃같이 피어오른 민속 씨름 인기의 중심에 ‘만 가지 기술’을 구사한다는 이만기가 있었다.
민속 씨름이라는 이름은 19
2012년 대한민국 전역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가뭄은 농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인 ‘마실 물’의 부족이었다. 당시 가뭄과 극심한 더위로 팔당호와 북한강에 남조류가 대량 번식하면서, 이곳의 물을 수원으로 사용하는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엔 ‘수돗물이 정말 안전할까?’하는 의문
드물디드문 ‘90대 철학 교수’이자 글로써 1960~1970년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김형석(金亨錫) 연세대 명예교수는 요즘 활발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통해 그야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최근에 100세를 바라보며 만든 책 (덴스토리 펴냄)를 출간한 김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겪은 다양한 경험과 깨달음에 대한 자신의 소회를 담담하게 펼쳐놨다. 결
두부는 꾸밈없는 모양새에 맛도 심심하여 어느 요리에나 잘 어울리고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흔히 만나는 식재료이지만, 제대로 된 두부 맛집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투박한 두부처럼 편안하고 진실한 맛을 자부하는 두부 전문점 ‘황금콩밭’을 찾아갔다.
이지혜 기자 jyelee@etoday.co.kr
방마다 고가구들 정겹게 느껴져
서울 마포구 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