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섬에 가고 싶지 않은가? ‘그 섬에 가고 싶다’란 말에는 막연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던 섬이 다리가 놓이면서 바퀴가 달린 탈 것으로도 갈 수 있게 된 곳이 많아졌다. 접근은 쉽고 섬이 주는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그곳이 강화도다.
봄이 채 오지 않은 겨울 끝 무렵에 서울에서 멀지 않은 강화도로 향한다. 섬이지만 섬이 아닌듯한, 역사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강화도에서 어렴풋이 남아있는 섬이 주는 그리움과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역사의 자취를 만나볼 것이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가 놓인 후에는 섬이 섬답지 않아졌다. 이것을 아쉬워해야 할 것인가, 기꺼워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개인의 몫이다. 어찌 되었든 다리가 놓여 섬 주민들의 생활이 한결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다.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섬 나들이가 한결 편해졌다. 초지대교를 지나 강화도에 입도한다.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연륙교는 두 개다. 처음으로 연륙교가 놓인 때는 1969년이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듯 다리는 노후되었고 1997년에 재시공하여 만들어진 다리가 지금의 강화대교다. 김포시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와 강화대교 외에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 2017년에 개통된 석모대교까지 합치면 네 개의 다리가 강화도를 사통팔달로 연결하고 있다.
강화도가 육지와 연결된 지는 어언 50년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섬이 육지가 되다시피 한 후 많은 시간이 지났다. 섬이라기보다는 육지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 느낌이 남아있는. 그래서일까? 강화도를 제2의 터전으로 삼으려는 이들이 많다. 가까운 이도 강화도에 집을 짓고 강화도 자연을 해설하며 활기찬 인생을 살고 있다. 역사의 섬 강화도에는 휴식과 새로운 용기가 꿈틀거린다.
강화도가 섬이라는 사실은 초지대교를 건널 때 실감한다. 마니산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마니산은 일종의 전망대다. 여유만 된다면 꼭 올라보길 추천한다. 전체 전경을 확인하려면 전망대에 올라가야 하지 않는가. 마니산 능선을 타면서 만나는 경치는 삭막함이 진을 치고 있는 이런 계절에도 충분히 경이롭다. 근육처럼 뻗어 내린 산줄기가 서해바다를 향해 두 팔로 벌리고 있고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이런 풍경만으로도 오를만한 가치가 있지만 정상에 있는 첨성단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면 흘린 땀방울이 아깝지 않다.
첨성단은 고조선 시대 단군이 제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진다.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는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왕들과 고려의 제관과 왕 그리고 조선시대에까지 국가적으로 단군왕검에 대한 제를 이곳에서 지내왔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현재에는 둥근 기단 위에 네모난 제단의 형태로 되어있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현재에도 개천절에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제단과 함께 눈여겨볼 것은 제단을 지키기라도 하듯 서 있는 소사나무 한 그루다. 유난히 바람이 센 정상, 돌 틈 사이에 뿌리를 내린 150년 된 소사나무는 지금도 의연하다. 천연기념물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마니산의 첨성단은 강화도 역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을 지나 근세기에 이르는 역사의 자취를 따라서 강화도를 한 바퀴 휙 돌아본다.
강화도의 굴곡 진 역사를 만나기 전 바다가 보고 싶다면 동막해변부터 가보자. 해변 가까이 분오리둔대에서 바라보는 서해 풍광은 시름을 잊게 할 정도로 시원하면서도 애잔하다. 서해바다가 갖는 먹먹함 때문이다. 갯벌에서 느껴지는 끈끈한 바다의 흔적을 삶의 흔적인 양 곱씹으며 강화도 대표 사찰인 전등사로 향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전등사는 그리 화려하지 않으나 시간의 결을 품고 있다. 대웅전 앞 느티나무가 현실의 위태로움을 잊고 쉬어가라며 부른다. 전등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절이다. 명부전에서 100m 정도 오르면 정족산사고터가 나온다. 초지대교가 보이는 너른 풍경을 앞에 두고 잠시 쉬어 가도 좋다.
전등사를 주변으로 삼랑산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삼랑산성은 삼국시대에 쌓았던 토성이다.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했던 5세기경부터 백제, 고구려, 신라가 번갈아 가며 강화도를 점령하였고, 강화도에 요새를 설치하였다. 강화도는 한강을 낀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39년간 몽골에 대항하였고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5진, 7보, 54돈대를 설치하여 외세의 침입을 막고자 하였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 돈대 같은 군사 시설이 강화도 곳곳에 남아있다. 조선말 병인양요, 신미양요가 강화도를 무대로 벌어진 전투다.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추천하는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등이 있다. 송림 사이를 지나 용두돈대까지 이어지는 길은 사계절 언제 걸어도 좋은 산책로다. 길 끝, 좁은 강화 해협을 향해 용머리처럼 쑥 튀어나온 돌 위에 서 있는 용두돈대는 천연방어지다.
시대를 거슬러 삼국시대 이전의 유적인 강화도 부근리 고인들을 만난다. 강화도 북부에 위치하여 이동 경로에서 뒤로 밀린 때문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무덤이다. 부근리 고인돌은 규모가 워낙 커서 무덤이 아니라 제단이 아닐까라는 의견도 있다. 두 개의 굄돌 위에 53톤에 달하는 덮개돌이 얹어져 있는데 그 옛날 이 돌을 옮기기 위해 동원되었을 사람 수를 떠올려 보면 이것이 과연 믿음의 힘인지 권력인지 궁금해진다. 부근리에 16기의 고인돌이 있고 오상리에 탁자식 고인돌 군락지가 있어 청동기시대의 주 생활무대가 이곳 강화도였음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현장을 짚어가며 나름 알찬 여행을 했다 싶다. 이제는 추억의 소환이다.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를 지나 대륭시장으로 간다. 제비집이 처마 끝에 붙어있고 고개를 쳐들지 않아도 시장통이 눈에 들어오는 키가 작은 시장이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옛날식 다방에 앉는다. 달걀 동동 쌍화차에 옛 기억을 앞에 두고 겨울 볕을 쬔다. 좁은 골목길은 꽈배기 도넛 하나에도 웃음이 스민다. 교동도는 강화도 섬 속의 섬, 당신의 옛 시간을 만나게 해주는 여행지다.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선사유적부터 고려, 조선의 문화재가 즐비하다. 섬을 빙 둘러 53개의 돈대가 자리하고 있고 어느 돈대나 조망이 시원하다. 최근에는 강화 나들길이 인기다. 해안 절경을 끼고 오르는 고려산, 마니산 산행도 해볼 만하다. 요즘 여행을 자제하는 분위기 탓에 식당이나 여행지가 한산하다. 달리 말하면 여행을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시기라는 이야기다. 주변 환경에 주눅 들어 있기보다는 겨울 햇볕을 쬐며 기지개를 켜 몸과 마음을 쫙 늘인 뒤 단단하게 움켜쥐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강화도 한 바퀴에서 답을 찾는다.
그 외 가볼 만한 곳
정수사
마니산 자락에 호젓한 분위기의 정수사는 강화도의 대표 사찰인 전등사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이곳에서 마니산 첨성단까지 오를 수 있는 짧은 산행코스가 있다. 자그마한 절, 정수사는 여행의 호흡을 가다듬기에 좋은 소박하면서 고즈넉한 산사다.
연미정
고려시대에 지어진 정자로 월곶돈대 앞 물길이 제비꼬리 같다고 하여 이름이 연미정이다. 정자에 서면 확 트인 전경이 눈길을 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에는 북녘 땅과 파주시, 김포시가 선연하게 보인다. 두 그루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멋스럽다.
강화 추천 살 거리
순무김치
순무김치는 매콤하면서도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다. 비타민 함량이 높고 소화를 촉진하는데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관광지 앞에서도 구입이 가능하나 강화풍물시장에 가면 맛을 보고 입맛에 맞는 것을 고를 수 있어 좋다. 순무김치는 처음 담갔을 때보다는 익었을 때 더 맛있다. 잘 익은 순무김치는 무와는 다른 쫀득하게 씹히는 아삭거림과 혀가 아리다 싶게 톡 쏘는 맛이 난다. 한번 맛을 들이면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강화도 먹거리
밴댕이회무침
가장 인상에 남는 맛은 강화풍물시장 2층에 있는 식당에서 먹은 밴댕이회무침이다. ‘서울식당’에서 투박하지만 찰진 그 맛을 처음 보았다. ‘밴댕이 가득한 집’, ‘밴댕이로 왕창 잘되는 집’이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시장에서 먹는 것도 좋지만 포구에서 여유롭게 밴댕이 맛 탐방을 즐겨도 좋다. 다양한 밴댕이 요리와 찬거리가 강화도 만찬으로 기억될 만한 후포항의 ‘청강횟집’을 추천한다.
먹는다는 게 요즘처럼 소란스러웠을 때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방송마다 먹방이 지천이고 숱한 맛집 정보와 요리 프로그램이 판을 친다. 셰프들이 방송 채널만 돌리면 나타난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니 요리 얘기가 더욱 늘어난다. 지난 가을 코엑스몰 메가박스에서 봤던 세계적인 셰프의 영화가 떠올랐다.
... ‘알랭 뒤 카스: 위대한 여정’ ....
이 영화의 주인공 알랭 뒤 카스는 프랑스의 셰프다. 요리 프로그램으로 많이 알려진 박준우 셰프의 말을 빌리자면 “프랑스와 양식 문화를 얘기할 때 ‘알랭 뒤 카스’를 빼놓고는 진행할 수 없는 큰 존재”란다.
‘최연소 미슐랭 3스타 획득’, ‘최초 트리플 3스타 달성’ 등 화려한 미슐랭 스타 이력만 보아도 호기심이 당겨지는 인물이다.
최정상에 올라서도 요리를 향한 끊임없는 탐구와 세상의 모든 맛을 보려는 집착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 남부 농가에서 태어난 알랭 뒤카스는 요리 재료 본연의 맛, 자연주의를 지향한다.
최고의 요리를 시식한 후 그는 말한다. "완벽하다. 그러나 그 완벽을 넘어서는 맛을 내야만 한다... 맛의 확실한 한 방이 필요하다. 디테일이 모여 전부가 된다" 라고 촌철살인의 평가를 한다. 최고는 완벽함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완벽을 뛰어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만족하지 못하는 장인 정신이 깃든 그의 선구자적 집념은 날마다 고군분투하며 산다.
2015년 9월 프랑스 정부가 베르사유 궁전을 두고 호텔 사업자 공모전을 열었다. 프랑스 국내외에서 20여 개 업체가 참여했고 호텔 레스토랑 운영권은 ‘알랭 뒤카스’에게 돌아갔다. 셰프 필생의 프로젝트를 맡게 된 알랭 뒤카스는 2년간의 준비에 돌입한다.
자연 가까이에서 구한 로컬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그는 영화 속에서 최고의 재료로 맛있는 추억을 선사하는 ‘파인 다이닝’을 선보이고자 미식 로드 트립을 떠난다.
런던, 홍콩, 베이징, 도쿄, 마닐라, 파리, 뉴욕, 리오, 몽골 등 미식 여행의 행보가 다양하다. 그 여정 중에 그의 철학과 예술적 표현, 미식 탐험의 집념을 보여주는 요리 천재의 면모를 보게 된다.
텃밭에서 들판에서 바닷가에서 제철 식재료를 즉시 냄새를 맡고 질감을 느끼고 날 것을 그대로 씹어먹어 보며 세상의 모든 맛을 본다. 더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자연 풍경이 힐링 미식 여행으로 데려가 주는 볼거리이기도 하다. 그렇게 직접 경험을 통해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요리의 거장답게 세계적인 수뇌부들과 함께 있어도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아우라가 있다. 대통령과 함께 있어도 밀리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 멋지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프로페셔널은 거장이라는 호칭이 잘 맞는다
날카로운 칼로 철갑상어의 배를 가르며 복권을 긁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요리하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다. 또한, 누구도 감히 가 볼 수 없는 세계 최고 식당의 건축현장을 보는 건 마치 궁전을 짓든 지나칠 정도로 거창하다.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부분. 알랭 뒤 카스의 사생활을 가려준 것은 그렇다고 쳐도 셰프의 이야기인 만큼 요리와 요리하는 모습과 맛있게 먹는 화면이 적어서 조금 아쉬웠다. 기대한 것이 많아서인지 80분은 너무 짧았다.
그런 아쉬움이 있어도 여전히 그 화면들이 내내 떠오른다. 여운이 긴 영화다.
조금 일찍 찾아온 여름 때문에 봄이 짧아졌다.
맑게 갠 파란 하늘 아래서는 아카시아 향기가 희미해져 가고 장미는 못 참겠다는 듯 붉은 아름다움을 터트린다. 연녹색 나뭇잎을 타고 구르는 물방울이 싱그럽다. 이토록 푸르른 날 자연을 담지 않는다면 내 카메라에 미안한 일이다. 가방을 메고 나섰다.
신록의 기운을 하나 가득 받기 위해 찾아간 곳은 강화도다. 강화도에는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가 있는 걷기 여행길이 있다. 총 20개 코스가 강화도, 교동도, 석모도, 볼음도, 주문도의 5개 섬에 ‘강화 나들길’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돼있다. ‘강화 나들길’은 코스마다 해당 코스를 상징하는 이름이 있다. 그 중 ‘호국돈대길’이라는 이름의 제2코스를 걸었다. ‘돈대’란 성벽 위에 석재 또는 벽돌을 쌓아서 망루와 포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높은 누를 말한다. 강화도가 근대사에서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잘 반영한 이름이다.
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김포와 마주 보는 해협을 따라 있다. 초지진에서 시작해 덕진진, 용두돈대, 광성보, 오두돈대, 화도돈대, 용당돈대, 용진진을 거쳐 갑곶돈대까지 가는 17km의 거리다.
김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서자마자 오른편에 초지진이 있다. 초지진은 병인ㆍ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 근대에 가장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다. 해상으로 침투하는 적을 막기 위해 조선 효종 7년(1656년)에 구축한 요새다. 민족 시련의 역사적 현장이었던 이곳을 호국정신의 교육장이 되도록 성곽도 보수하고, 조선군이 쓰던 대포도 전시해 놓았다.
‘강화 나들길 2코스’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자전거 여행자들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전용 도로가 길옆으로 잘 만들어져있다.
걷다가 바라본 파란 하늘 아래 길가에 은행나무 연두색 잎이 너무나 싱그러웠다. 왜 이즈음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논에서는 모내기를 끝낸 후 뿌리가 자리를 잘 잡으라고 물을 대주고 있다. 갓 심은 모의 푸르름도 이즈음에 맞는 연녹색의 향연이다. 그 잔칫상으로 하얀 백로들이 날아왔다.
덕진진은 강화도 12개 진․ 보의 하나로 강화 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다. 덕진돈대 앞에는 흥선대원군이 ‘어떠한 외국 선박도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당시 쇄국 의지를 나타낸 경고비가 있다.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서 해협을 따라 길게 쌓았던 성이다. 이를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다. 이곳에 당시 전사한 무명 용사들과 어재연 장군의 전적비가 있다. 그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일 년에 한 번 ‘광성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 주변에 가볼 만 한 곳
ㆍRose Bay: 초지진에서 덕진진 가는 길에 있는 아름다운 커피 숍이다. 커피와 갓 구운 빵은 물론이고 도자기와 다육식물을 전시, 판매하는 온실도 있다.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든은 덤이다.
ㆍ대명항 포구: 초지대교 김포 방면. 5~6월은 병어, 밴댕이 회 철이다. 현대식 시설로 깨끗한 환경을 갖춘 젓갈 시장도 있다. 5~6월은 황석어, 밴댕이 젓갈 철이다.
토요일 이른 아침. 새벽 공기 헤치며 곳곳에서 달려온 이들이 ‘책’을 들고 하나둘 모여 앉는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를 기대하며 기분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독서포럼 양재나비’에 오는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꿈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모자람을 채우는 소중한 시간. 그들에게 아침은 멋진 삶을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열쇠다.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의 3P자기경영연구소. 전국 각지로 퍼져 있는 ‘독서포럼 나비’의 본부 격인 ‘양재나비’가 매주 토요일 이곳에서 모임을 갖는다. 일상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오전 6시 40분부터 오전 9시까지가 정해진 독서 토론시간. 전국의 ‘독서포럼 나비’가 모두 ‘양재나비’의 토론시간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시간에 토론을 하는 곳도 있다.
‘독서포럼 나비’는 자기계발과 성장을 연구하고 강연도 하는 3P자기경영연구소 강규형(56) 대표가 만든 작은 독서 모임이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변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두 명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400여 개 모임으로 늘었다. 이외에 나비의 독서법을 따라서 독서모임을 하는 모임도 상당수다. 미국, 브라질, 몽골에서도 ‘독서포럼 나비’라는 이름으로 독서모임이 생겨났다. 현재는 사단법인을 설립해 따로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평일에 받은 피로를 풀어도 모자란 천금 같은 주말 아침에 굳이 일어나 책을 읽고 왜 토론하는 것인가. 그리고 독서모임 중에서도 사람들이 ‘독서포럼 나비’를 찾는 이유가 있을까? 첫 번째 이유는 분위기가 활기차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오면 간식 준비나 테이블, 의자 정리 등을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한다. 흥미로운 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호칭은 다 ‘선배님’이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배움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 초·중등생이 참여하는 ‘주니어 나비’의 학생들에게도 예외 없이 선배님이라고 칭한다. 10대에서 시니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과 지역,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들지만 이 모든 편견의 갈래를 넘어서 따뜻하고 기운찬 아침을 함께 맞이한다.
두 번째 이유는 토론장 테이블 위에 책과 함께 올려진 ‘바인더’가 독서뿐만 아니라 자리관리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하게 해주는 일종의 시스템 다이어리다. 강규형 대표가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시간관리를 위해 사용해온 방법이 바인더였다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는 바인더가 자신에게 스포츠업체 대표, 수억 원 연봉의 보험설계사 등의 이력을 만들어줬다고 수많은 강의를 통해 설명해왔다. 성공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의 시스템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임에 녹아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니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그렇게 ‘양재나비’는 10년 세월 동안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독서모임이 됐다.
오전 6시 40분에 만나는 사람들
20년째 사업을 하고 있다는 오용운 씨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했던 직원의 소개로 ‘양재나비’를 알게 됐다. 노는 것도 좋지만 진지한 토론이 그리울 때가 있다고. 그때마다 찾는 곳이 양재나비다. 밝은 에너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끔이라도 족적을 남기려고 한다. 사실 이날은 책도 읽지 않았는데 꼭 참석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고. 역시나 좋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법무사인 박희봉 씨의 경우 혼자 하는 독서에 회의를 느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독서를 그렇게 많이 하시면서 왜 달라지는 것이 없냐”는 아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사람들과 함께하는 독서모임을 찾다가 이곳까지 왔다. 책을 읽어야 하니 자연스레 술 약속도 안 하게 됐고 다이어트 효과까지 봤다. 독서 정리를 위해 쓰기 시작한 바인더도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자세 교정 트레이너로 활동 중인 최준섭 씨는 평생 봤던 책보다 ‘양재나비’에서 읽은 책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책을 통해 얻는 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곳에서 받아가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 삶의 큰 방향을 찾은 느낌이다. 이날 가장 멀리에서 왔다는 강주광 씨가 사는 곳은 경상북도 안동시. 지난 겨울방학을 제외하고 작년 3월부터 1년여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독서토론을 위해 달려왔다. 시간 맞춰 오려면 새벽 3시 반에는 출발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서울까지 오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안동 지역에서 독서모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무엇보다 이곳에서 받아가는 기운이 남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송병훈 씨는 5학년 아들의 독서토론을 위해 따라왔다가 자신도 참여하게 됐다면서, 예전에는 소극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자평했다. 안동에서 온 강주광 씨처럼 먼 곳은 아니지만 꽤 거리가 있는 지역에서 첫차를 타고 혹은 자가용을 이용해 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
‘양재나비’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최근에 책까지 냈다는 남윤희 씨, 잘나가는 유튜버를 꿈꾸는 부동산 중개업자 박병오 씨, 초등학교 선생님, 탈모 전문가, 금융전문가, 편입을 준비하는 청년 등 정말 많은 사람이 아침 독서토론을 통해 자신감은 물론 행복한 에너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신나고 행복한 사람들의 기를 받고 싶다면? 새벽바람 마시면서 ‘독서포럼 양재나비’에 가보시라!
우리에게 익숙한 학(鶴)은 두루미목(目), 두루밋과(科)에 속하는 대형 조류다. 겨울이면 북녘 시베리아, 중국 동북부, 몽골에서 날아와 한반도나 일본 홋카이도 등에서 겨울을 나는 전형적인 철새다. 몸무게는 6500~9500g, 몸길이는 135~145cm로 몸집이 비교적 크며, 다리는 회색이다(‘한반도 조류도감’, 송순창·송순광, 김영사, 2005).
그런데 학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새가 아니다. 독수리처럼 무섭지는 않은데 어딘지 접근하기가 녹록지 않다. 자태가 조금은 ‘거만’하면서도 우아한 것을 높이 여겨서인지 오래전 우리 선조는 학을 우리가 사는 지상과 하늘 사이를 오가며 메신저 역할을 하는 영(靈)적인 새로 생각했다. 이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고려시대 청자다. 구름 사이를 오르내리는 학 무늬를 상감으로 매병에 새겨 넣은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瓷象嵌雲鶴文梅甁)’이 바로 그것이다(사진 1).
이와 관련해 필자는 구름 사이를 평화롭게 오르내리는 학을 보면서 머리에 붉은 모자(cap)가 없어 늘 아쉬웠다. 왜냐하면 학을 영문으로 표현하면 ‘Red Crowned Crane’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려 11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연 전시회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보지 못했던 ‘붉은 모자’를 쓴 학을 보았다(사진 2).
물론 조선시대 그림에서는, 특히 병풍(屛風) 화폭에서 ‘붉은 모자’를 쓴 학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도자기에서는 ‘붉은 모자’를 쓴 학을 보기 어려운 걸까? 이는 도자미술사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여하튼 ‘진짜 학’을 만나 기쁜 전시였다.
믿음은 생각이 되고, 생각은 말이 된다.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된다. 습관은 가치가 되고, 가치는 운명이 된다. 자기 분야를 구축하고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사람들, 이른바 인생의 고수들을 끊임없이 만나면서 그런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
인터뷰 기자로 살면서 우리 사회의 삶의 모델이 될 만한 각계각층 수많은 인물의 꼭꼭 숨어 있는 속마음 밑바닥까지 들어갔다 나왔다. 그동안 만난 1000여 명의 사람들 중에서도 한 분야에서 ‘고수’의 영역에 있는 이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 희생도 없다는 것. 시기가 문제일 뿐 노력의 대가는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직장에서 돈으로 보상받거나, 사회에서 명예를 얻는 등의 대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무심코 꾸준히 행하는 일상의 소소한 습관과 실천도 그것이 오랜 시간 쌓이고, 다져지다 보면 아무나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나름의 목표와 도전정신까지 더해진다면 고매한 고수의 길에 오른다. 필자가 만났던 몇몇 인생 고수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고수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
서울 지하철 군자역 인근에 위치한 쉐보레 동서울대리점 박노진(64) 대표는 자동차 영업계의 살아 있는 신화다. 1979년 대우자동차(현 한국GM)에 입사해 자동차 영업을 하면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11년 연속 판매왕 기록을 세운 ‘발품의 고수’로도 알려져 있다. 2010년 직접 대리점을 낸 그는 “자동차 판매는 발뒤꿈치에서 나온다”는 인생 노하우로 여전히 발로 뛰며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영업 철학을 ‘콩나물시루에 물주기’로 비유했다. 만나서 거절당하면 또 만나고 설득하기를 반복한다. ‘거절’은 콩나물을 키우는 물과 같아서 물이 시루 밑으로 다 빠져도 콩나물이 자라듯, 거절을 당하면 남는 게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그 안에서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논리다. 어느 분야이든 미리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제나 성공의 길은 열려 있음을, 그는 오늘도 발로 뛰며 입증하고 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베이비부머 1세대인 1955년생 신종훈 시니어가 대표적이다. 그는 그야말로 ‘배움의 고수’다. 대기업에서 35년을 근무하는 동안, 그리고 2015년 정년퇴임 이후에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8개 학과를 전공하면서 평생학습을 실천해왔다. 현재 9번째 학위 취득을 목표로 상담심리치료학을 공부 중이다. 2018년 이미 108개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평생학습 끝판왕’으로도 불리며 자격증 숫자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단순히 그가 맹목적으로 학위나 자격증 취득에 열을 올린다고 해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1998년부터 연간, 월간, 주간, 일일 계획을 세워 목표 관리를 하고 ‘플래너’를 써왔다. “성공은 습관이고, 좋은 습관이 인생을 변화시킨다”가 그의 인생 좌우명이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운 노후를 맞이하기 위해 지금도 매일의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1959년생 베이비부머 신용선 씨. 그는 ‘자기계발의 고수’다. 베이비부머 중에는 ‘한 우물’을 팔며 살아온 이가 대다수다. 때문에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자기가 해오던 분야에서 재기하려는 경향이 주를 이룬다. 신용선 씨의 경우 계속되는 사업 실패 속에서도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방향 틀기를 계속해나갔다.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선 그에게 필요한 건 용기였고, 잇따른 실패 속에서 필요한 건 희망이었다. 그렇게 용기와 희망의 씨앗은 도전이라는 싹을 여럿 틔웠고, 최근 그 열매를 속속 수확하는 중이다. 2018년은 더욱 각별했다. 생애 첫 도전으로 직접 저술한 책 두 권을 펴냈고, 늦깎이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모두 수석으로 마쳤다. 덕분에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경영 지도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사업가로도 스리랑카 한국 현지 기업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올해는 몽골 국립대학교 겸임 교수직까지 맡게 돼 ‘글로벌 경영의 고수’로 활약할 전망이다.
고수를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고수
위에서 소개한 시니어뿐만 아니라 노인은 누구나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와 경륜이 있다. 거칠고 험한 세상을 저마다의 ‘견딤’으로 살아냈음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처한 상황은 다를지라도 치열한 생존경쟁 속 성공과 실패를 오가며 인생살이의 고수가 되어간다. 물론 누군가는 ‘이만큼 살다 보니 고수가 되었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했을 뿐 다 그만한 노력과 희생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고수가 될 수는 있어도, 이를 유지하거나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일시적 고수’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정상에 오르기는 힘들지만 지키는 건 더 어렵다. 성공에 도취하면 위기가 오고, 위기에 도전하면 기회가 온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도 운도 따른다. 정상에 올라섰다가도 나락으로 추락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처참하게 무너졌다가도 피나는 노력으로 재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인생의 희로애락, 흥망성쇠를 겪어내며 어엿한 자신의 삶을 일군 이들이야말로 견딤의 고수, 노력의 고수, 도전의 고수이며, 그 노력을 멈추지 않고 갈고 닦을 때 진정한 ‘인생 고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겨울 철새들이 제철을 만났다. 우리나라에도 철새도래지가 몇 군데 있어서 일몰 무렵이면 새들의 화려한 군무를 보기 위해서 찾아가는 탐조객들이 많아졌다. 불그스레 빛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날아오르는 엄청난 철새들이 산하를 휘젓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남쪽 지역의 특성대로 겨울에도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어서 겨울 무렵이면 철새들이 이동해오고 있다. 또한, 지자체에서도 겨울 철새들의 서식환경을 보호하고 조성하느라 시책을 준비한다.
어둠이 풀리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도착한 12월의 주남저수지는 생각만큼 춥지는 않다. 저수지 주변과 둘레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새벽 공기의 싸늘함이 기분 좋다. 길가의 채소밭과 풀잎에는 빳빳한 서릿발이 새하얗다. 서리꽃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멋을 볼 수 있는 겨울 아침은 상쾌함 그 이상이다.
물 논에 큰기러기들이 먹이를 쪼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간간이 두루미가 살짝 날갯짓한다. 큰 고니의 도움닫기도 구경하고 휴식을 취하던 쇠기러기는 가끔 고개 숙여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모습이다. 노을 무렵 떼 지어 날아가는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은 볼 수 없으나 군데군데 다정하게 무리 지어 있는 아침 풍경이 평화롭다.
건너편 산등성이 너머로 하늘에 조금씩 붉은빛이 번진다. 그리고 빠르게 해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붉은 하늘에 무리 지어 나는 철새들의 비행이 여유롭다. 물 논에서 노닐던 원앙과 백로가 아침 해를 받아 붉은 반영 속에 잠겨있다. 온 산하가 일출의 붉은 기운을 받아 설렘을 준다. 한바탕 일출의 잔치를 즐기고 나면 행복해진다.
몽골 북부와 시베리아에서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온 철새는 월동한 뒤 다음 해 3월이면 다시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되면 해마다 3만여 마리가 찾아와 겨울을 난다. 철새들이 월동하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몫이다.
이제는 주남저수지 탐방 둘레길을 따라 억새를 보며 걸어볼 수 있다. 둘레길은 전체 7.5km 코스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척박한 땅에 소박하게 피어나 가을을 멋지게 보내고 겨울 길을 지키는 억새 길은 지루하지 않다. 요즘 걷기 열풍에 힘입어 주남저수지 탐방 둘레길이 10월의 추천 길로 선정되기도 한 걷기 좋은 길이다.
한참을 걷다 보면 주남 돌다리가 나온다. 800여 년 전 강 양쪽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만든 돌다리인데 자연 속에 그대로 스며드는 아련한 풍경이다. 걸으며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225호다.
주남저수지는 철새들이 연출하는 날갯짓과 군무뿐 아니라 돌아볼 것들이 많다. 입구의 람사르 문화관과 주남 생태관이 있어서 습지 보전의 중요성과 주변 생태 환경을 자세히 이해할 기회다. 자전거 대여도 하고 마라톤 코스도 있어서 골라서 즐겨볼 만하다.
새벽부터 주남저수지의 아침 공기 속에서 사진 촬영도 하고 둘레길 걷기도 하면서 보낸 시간은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누리게 해 주었다. 일출과 일몰 속에서 화려하게 비상하는 철새들의 군무는 겨울에 더욱 즐길만한 풍경이다.
카자흐스탄이 수도를 아스타나로 옮기기 전 수도는 알마티(1929~1997)였다. 지금도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로 손꼽히는 알마티는 카자흐스탄어로 ‘사과’를 의미하는 알마(Alma)와 ‘아버지’를 뜻하는 아타(Ata)가 합쳐진 말로 ‘사과의 아버지’라는 뜻을 지닌다. 예전에는 사과나무가 많아 개울에 사과가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도심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가옥을 에둘러 싸고 있어 마치 심산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 ‘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멋진 ‘톈산’이 있다. 고개만 들리면 도심 어디에서나 시원한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 한여름, 한낮의 강렬한 햇살도 비껴간다.
알마티는 나무들 천국
필자는 6월 말, 4개월의 동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4년 만에 또 길 위에 서 있다. 첫 여행지는 카자흐스탄 남동부에 위치한 알마티(Almaty). 이곳은 단지 러시아를 가기 위한 스톱오버를 활용한 기점지다. 여행 시작부터 행운이 따른다. 출발 하루 전, 후배에게 현지민보다 알마티를 더 잘 아는 한인을 소개받는다. 그녀는 이 나라에서 25년을 살았고 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스컴에 무수히 소개된 유명인. 생판 모르는 나라, 도시에서 의지할 곳이 생겨서인지 사르르 긴장감이 떨어진다.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한 ‘호사’이니 얼마나 좋은가? 알마티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안에서 만난, 카자흐인 여학생의 도움을 받는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살고 있다는 여학생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미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멋진 고리키 바르크(중앙공원) 공원 안에는 스타디움과 호수를 비롯해 테니스 코트, 동물원, 야외수영장, 카페 등 다양한 놀이 시설들이 들어서 있어 볼 만했다. 판필로프 28인 공원은 더 매력적이다. 이 공원에는 이슬람 국가에서는 보기 드문 ‘젠코브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다. (구)소련 시대에 폐쇄됐다가 1995년, 러시아 정교회로 반환된 후 1997년부터 다시 성당의 위치를 찾은 곳. 못 하나 사용하지 않았어도 1904년의 대지진을 견뎌냈다. 이 성당은 세계 8대 목조 건축물로 꼽힌다. 또 이 공원에는 제2차 세계대전 순국용사를 위한 ‘꺼지지 않는 불꽃’과 ‘28인의 청동조각상’이 흩어져 있어 소련의 잔재를 느끼게 한다. 옛 러시아의 건축 양식으로 만든 ‘카자흐 민속 악기 박물관’도 눈길을 끈다. 그런데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이 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기가 매우 탁하다. 눈으로 볼 때만 싱그러울 뿐 대기가 탁한 이유는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 때문이다. 아무리 나무가 많다 해도 매연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1960~70년대의 우리나라도 이런 환경이었을까?
알마티의 알프스 톈산의 심블락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주요 여행지는 일레 알라타우 국립공원(Ile-Alatau National Park)이다. 언어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알마티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 교환학생으로 있었다는 20대 여성과 동행한다. 알마티에서 남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메데우(카작어로 Medeu, 러시아어로 Medeo) 빙상장까지 택시로 이동한다. 해발 약 1500m에 위치한 메데우에 가까워지자 도심에서는 못 느꼈던 바람과 공기가 싱그럽다. 부자들이 산다는 전원주택 단지들도 모습을 드러낸다. 택시가 멈추는 곳, 눈앞으로 만년설이 펼쳐진다. 한여름에도 녹지 않은 채로 눈이 남아 있어 ‘카자흐스탄의 알프스’라 불리는 톈산 산맥(天山山脈, Tian Shan)이다. 중국의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자치구에서 키르기스까지 뻗어 있는 길이 2000km, 넓이 400km의 매우 긴 산맥. 톈산의 최고봉이 포베다(7439m) 산이니 그 높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알마티는 칸텡그리(Kan Tengri, 6995m) 산맥의 일부다. 산 이름은 몽골어에서 나왔는데 칸(Kan, Khan 또는 Han)은 ‘왕’이라는 뜻이고 ‘텡그리(Tangri)’는 ‘영혼’을 의미. 즉 ‘영혼의 왕’이라는 뜻을 지녔다. 현지인들은 ‘피의 산’이라는 의미로 ‘칸투(Kan Too)’라 부르기도 한다. 해가 질 때면 산의 북벽이 붉은색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들 대부분은 메데우에서 곤돌라를 타고 심블락(카작어로 Shymbulak, 러시아어로 침블락Chimbulak) 스키장까지 올라 만년설을 보고 내려온다. 메데우에서 스키장까지는 약 4.5km. 곤돌라 안의 발아래로 메데우 댐과 세계 최고 높이에 있는 빙상 경기장이 보인다. 2011년 동계 아시안게임, 2012년 반디 세계 챔피언십, 2017년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개최된 곳이다.
질료니 바자르에서 만난 고려인들
심블락에서 다시 시내로 돌아와 국립박물관, 공화당 거리 등을 욕심 없이 둘러보고 찾은 곳은 질료니 바자르(Zelyony Bazar)다. 질료니는 러시아어로 ‘초록’을 의미한다. 과거에 야채와 과일을 주로 판매하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채소 코너에서는 필자와 똑같은 얼굴을 한 아주머니와 맞닥뜨린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똑같은 얼굴. 파장을 준비하는 그녀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 고려인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육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말 그림이 그려진 정육 코너에는 순대를 닮은 소시지가 많다. 다양한 치즈와 젓갈류 등을 구경하면서 도착한 반찬가게. 그곳에 고려인 상인들이 여럿 있다. 얼굴은 분명 한국인인데 러시아말을 구사하는 고려인 2세 혹은 3세들. 두어 명은 몇 마디 한국말을 구사한다. “아바이가 했던 말인데 난 모르오”라며 무뚝뚝한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 손맛을 인정받았는지 얼굴색 전혀 다른 사람들이 고려인 할머니가 만든 김치를 잔뜩 사들고 떠난다.
사실 알마티에서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모습을 한 사람들을 아주 많이 만나게 된다. 카자흐스탄은 130여 개의 민족이 살고 있는 나라다. 분명코 칭기즈칸의 정치적인 영향이 현재로 이어진 것일 게다. 고려인들은 이 도시의 소수민족. 알마티에는 한국인이 약 700명 정도 살고 있으며 이동 인구까지 포함하면 1000명가량 된다고 한다. 동족이라는 본능 때문이었을까? 고려인들을 만나니 눈물이 팽그르르 돌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쨌든 필자는 현재 러시아 여행 중이다. 두 번째 방문한 러시아. 다음 호에는 이 매력적인 나라에 대한 소식을 길 위에서 전하리라.
Travel Data
찾아가는 방법 아시아나 항공이 직항(매주 화, 금)한다. 또 카자흐스탄 항공사인 에어 아스타나(월, 목)가 있다. 편도 6시간 이상이다.
현지 교통 알마티에는 버스, 트램, 지하철의 대중교통 수단이 있지만 대부분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택시 표시가 없어도 길에서 손을 들으면 어김없이 차가 서는데 운전사와 교통비를 흥정해야 한다. 필수적으로 알고 가야 할 ‘어플’이 얀덱스 택시(Yandex. Taxi)다. 가격이 표시되니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택시 운전자의 바가지 상흔을 피할 수 있다. 러시아 권역에서는 거의 통용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음식 정보 주민들 대다수가 이슬람권이어서 돼지고기는 거의 안 먹는다. 양고기와 말고기 등을 주로 먹는다. 꼬치구이인 샤슬릭, 수블리카가 대표 메뉴이고 그 외 스프, 메밀밥, 소고기 구이 등등이 맛있다.
언어 정보 카자흐스탄어가 있지만 대부분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영어 소통이 매우 어렵다.
치안 정보 길에서 경찰들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만큼 치안이 안전하다.
날씨 정보 4계절이지만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다. 여름에는 30℃를 웃돌 정도로 덥다. 그러나 기온 차가 크니 걸칠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몽골의 정식 명칭은 몽골리아다. 면적은 156만7000㎢로 한반도보다 7배 정도 크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거주자는 124만 명이다. 인구 밀도는 1.78명/㎢이고, 평균수명은 65.2세로 남자 62.9세, 여자 67.6세다. 몽골인들은 주로 염소, 양, 소, 말, 낙타 등을 키운다. 가축 수는 총 3270만 두에 이른다. 몽골인의 90%가 라마불교를 신봉하며, 이슬람교도가 5%를 차지한다. 그리고 1990년 이후 개신교 및 가톨릭 등이 전파되어 기독교 신자가 약 2%(약 4만 명 추산)에 이른다. 나머지 3%는 무신론자다. 몽골의 국화가 연꽃인 것도 불교의 영향이다.
몽골 표준시는 한국보다 1시간 느리고, 한국과의 거리는 약 2000㎞다. 인천공항에서 울란바토르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몽골 정보
국명 몽골(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
위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 북방에 위치
면적 156만 7000㎢, 세계 19위
민족 할흐 몽골족(90%), 카자흐족(5.9%), 브리야트계(2%) 등 17개 부족
언어 할흐 몽골어 90%, 키릴문자, 문맹률 5% 이하
종교 라마불교 53%, 무교 39%, 이슬람교 4%, 기독교 4%
기후 건성 냉대기후
인구 약 300만 명, 세계 138위
수도 울란바토르(Ulan Bator)
국가 형태 공화국
정부 형태 의원내각제적 성격이 강한 대통령 중심제와 내각책임제의 중간 형태
국내총생산 (GDP)US$ 102억(2012년), 1인당 국내총생산 US$ 3575(2012년)
화폐단위 투그릭(Tg, Tugrik), 1미국달러 = 2458투그릭(2018년 6월 기준)
독립일 1921년 7월 11일(중국으로부터 독립)
국가선포일 1924년 11월 26일
몽골의 날씨 6~8월 몽골 여행의 베스트 시즌. 초원에는 풀이 자라고 맑고 쾌적한 날씨가 계속된다. 한국의 화창한 가을날과 유사한 날씨로 낮에는 해가 강하지만 그늘은 시원하다. 습도가 매우 낮은 여름의 몽골은 고온 다습한 한국의 여름을 피하기 가장 좋은 피서지다. 일교차가 심하고 한여름에도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므로 반드시 두꺼운 파카가 필요하다. (평균기온 최고 30℃ 최저 15℃) 9~10월 몽골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보다 일찍 찾아온다. 약간 쌀쌀하지만 여름 성수기를 지났기 때문에 여행자로 북적이지 않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중부지역과 남쪽 고비 사막 지역의 경우 9월 말까지도 여행이 가능하지만, 추위가 일찍 찾아올 경우 북부 홉스골 지역은 여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승마와 트레킹에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몽골의 기념품
캐시미어 의류 캐시미어용 염소(산양)의 털을 빗겨 채취한 최고급 100% 캐시미어는 국내 시중가의 절반 가격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목도리, 니트류, 숄, 양말 등이 인기가 많다. 고비 팩토리숍, 국영백화점 2층, 서울의 거리 로드샵에서 구입할 수 있다. 여성용 목도리는 한화 약 3만~5만 원 정도. 제품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다.
펠트 소품 양털을 압축한 펠트로 만든 컵받침, 몽골인형, 열쇠고리 등 제품이 다양하다. 국영백화점 6층 기념품 숍에서 개당 한화 3000~7000원 정도다.
보드카 몽골 북부 셀렝게 지방의 질 좋은 밀로 만든 몽골 보드카는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여행자 인기 품목이다. 700ml 1병에 한화 약 2만 원가량 하며, 소욤보, 칭기즈칸, 벌러르 같은 브랜드를 추천한다. 그러나 매월 1일은 몽골 전 지역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에 여행기간 중 매월 1일이 포함되어 있다면 사전에 구입하길 추천한다. 또한 국내 입국 시 1인당 휴대품 면세 범위 규정에 따라 주류는 1인 1ℓ 1병까지만 허용되니 이 점도 유의.
초콜릿과 과자류 단것을 좋아하는 몽골인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초콜릿과 과자가 많다. 특히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초콜릿 등은 선물용으로 좋다.
차가버섯 건강식품류 몽골에서 생산되는 차가버섯을 이용한 차, 분말 등의 건강식품도 최근 들어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좋다. 몽골의 드럭스토어인 모노스 숍에서 판매한다.
립밤, 수분크림 등 보습제품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는 다양한 보습 제품이 한국보다 저렴하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히말라야 립밤, 수분크림 등은 국내 시중가의 절반 정도다.
테를지 국립공원
테를지 국립공원은 힌티 산맥 산기슭에 위치한 몽골 최고 휴양지로 울란바토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과 기암괴석, 숲, 초원,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툴 강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관을 이룬다. 여름철에는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각양각색 야생화가 피어난다. 말타기 체험, 야생화 트레킹 등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거북바위
테를지 국립공원의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거북바위는 이름 그대로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 웅장한 규모의 거북바위 주변에는 항상 관광버스와 단체 여행객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도 있으니 한 곳쯤 들러 맛보길 권한다. 테를지 최고 관광지답게 여름 성수기에는 소매치기가 많으니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엘승타사르하이
엘승타사르하이는 멀리 남고비 사막까지 가지 않아도 대규모 사구 지역을 볼 수 있다. 사막 체험을 할 수 있어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모래 사막은 약 70km에 걸쳐 뻗어 있으며 특이하게도 초원, 실개천, 사막 지형이 한데 섞여 있는 풍광을 자랑한다. 사막 주변으로는 낙타, 염소, 양을 키우는 유목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지천으로 핀 에델바이스를 만끽할 수 있다.
천진벌덕 칭기즈칸 대형 동상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울란바토르에서 100k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천진벌덕이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볼 수 있다. 칭기즈칸 대형 동상은 최근에 생긴 몽골 랜드마크 중의 하나이며 40m 높이의 초대형 동상이다. 칭기즈칸 거대 동상은 고향 힌티 아이막을 바라보고 있다. 내부에서는 칭기즈칸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전망대를 관람할 수 있다.
몽골의 예술문화
몽골 전통 공연에는 한국 탈춤과 비슷한 ‘참(Tsam)과 오직 사람 목청만으로 소리 내 연주하는 ’흐미(Khuumii)‘가 있다. 전통 악기로는 마두금이 대표적이다. 현이 2개인 찰현악기로 우리나라 전통 악기인 해금과 같은 방식으로 연주한다. 현 위쪽 끝에 말 머리 모양을 새겨놓아 마두금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친애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독자 여러분. 저는 바상자브 주한 몽골대사입니다. 지난 5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한국·몽골 공동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한 ‘칸의 제국 몽골’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몽골 제국의 역사와 유목문화를 주제로 기획되고,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전시된 유물들을 소개합니다. 몽골의 유물들을 경험하는 이번 전시와 더불어 한국의 많은 분께서 몽골을 더 친근하게 이해하도록 몽골 여행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몽골은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4시간 정도면 수도 울란바토르에 도착합니다. 인구는 312만 명이 넘습니다. 한국에서 ‘몽골’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정식명칭은 몽골리아(Mongolia(영어), МОНГОЛ(몽골어))입니다. 몽골어를 사용하며 표기는 키르문자(러시아 알파벳)를 사용합니다.
몽골의 환경과 역사
몽골인들은 동서로는 다싱안링(大興安嶺) 산맥에서 알타이 산맥, 남북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만리장성 사이의 땅을 주거지로 살아왔습니다. 북쪽은 자작나무 숲이 빼곡한 시베리아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갈수록 삭막한 고비 사막에 다다릅니다. 그 중간에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를 무대로 유목 생활을 꾸려왔습니다.
석기시대 유물
80만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구석기, 중석기, 신석기의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기원전 3000년 후반부터 청동기 흔적이 있는데 이 시기에 사용하던 청동기에서 보이는 특징은 여러 동물 형상을 표현합니다. 히르기수르와 판석묘 등의 무덤에서 사슴돌이 발견되고, 바위에도 다양한 동물의 형상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유목 제국
기원전 3세기 무렵 흉노(匈奴)가 최초로 국가를 세웠고, 이어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와 유연(柔然)이 활동했습니다. 6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는 돌궐, 위구르, 키르기스가 세운 국가들이 몽골 지역을 지배했으며, 10세기 초부터 거란이 등장합니다. 여러 유목 국가 가운데 흉노 제국(BC 3세기~AD 1세기)과 돌궐 제국(AD 552~745)의 유적이 최근 활발하게 조사되고 있습니다.
흉노는 중국 진(秦)나라(BC 221~207) 및 한(漢)나라(BC 202~AD 220)와 맞선 강력한 나라로 동서 문명을 이어주며, 다양한 유적을 남겼습니다. 돌궐은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한 거대 유목 제국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만든 제사 유적 중 고대 돌궐 문자로 쓴 기록 등은 돌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과 그 후예들
몽골은 13~14세기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역사상 유례 없는 초거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수많은 국가와 종족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Kharakhorum)과 타반 톨고이(Tavan Tolgoi)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원과 유물
티베트 불교는 16세기부터 널리 퍼졌는데, 정주(定住) 생활과 불교 사원 주변의 도시화한 모습은 대승 운두르 게겡 자나바자르(Undur Gegeen Zanabazar, 1635∼1723)가 세운 사원과 여러 작품에서 이전의 불교와 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몽골의 민족의식과 근현대사
14세기 중반을 전후해 붕괴된 몽골 제국은 초원으로 후퇴하고, 17세기에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에 복속됩니다. 이후 1912년 청나라가 몰락할 즈음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에 대한 몽골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1917년 러시아 제정이 무너지자 몽골은 다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1921년에 완전 독립을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많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중 최초로 탈사회주의 선언 후 1992년 이원집정부제의 신헌법을 제정합니다. 1996년 총선으로 1997년 바간반디 대통령이 선출되고, 2000년 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으로 2004년 연립내각이 출범했습니다. 현재 2017년 당선된 바툴가 대통령과 후렐수흐 총리가 임기 중입니다.
몽골에 남은 독립운동가 이태준
이태준은 1914년 몽골 고륜에서 동의의국(同義醫局) 병원을 개업합니다. 그는 몽골인들에게 근현대 의술로 유명해졌으며, 몽골 왕국인 보그드 칸(Bogd Khan)의 어의(御醫)가 되는 등 몽골 왕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습니다. 1919년 보그드 칸이 이태준에게 ‘귀중한 금강석’이란 뜻을 가진 ’에르데니-인 오치르’라는 명칭의 제1등급에 해당하는 국가훈장을 수여합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이태준 기념공원이 있습니다. 몽골 정부가 부지 2200평을 제공하고 연세대학교 의학과, 몽골연세친선병원, 주한국 몽골대사관의 노력으로 기념공원과 기념관이 탄생했습니다. 현재는 이태준기념공원 보존회도 만들어져 한국인들에게 몽골 여행 필수 코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우리 몽골에서 많은 사람에게 의술을 선보이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이태준 선생의 지난 세월과 신념을 되새기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몽골과 한국
1990년 수교 이후 양국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호교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와 대외관계에서도 동반자적 문화, 인적 교류가 점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서울글로벌센터와 몽골 대사관은 새응배노(‘안녕하세요’의 몽골어) 학교를 열었습니다.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난 몽골 출신 어린이들이 모국어 교육을 통해 미래 한-몽골 문화, 경제적 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인재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최근에도 앞서 소개한 ‘칸의 제국 몽골’ 전을 통해 한국과 몽골의 역사와 문화의 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