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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선조들이 찾았던 불멸의 맛 ‘복어’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대한, 스스로 미욱하게 풀어낸 해답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부족한 재주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틀릴 수도 있다. 여러분의 올곧은 지적도 기대한다. 복어? 오해투성이다. 누구나 복어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지만 오해가 많다. 복어에 대한 환상(?)도 많다.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는 표현은 널리 쓰인다. 이 말도 틀렸다. 세상의 어떤 진미도 사람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다. 유독 복어에 대해서만 유난스레 과한 표현을 쓴다. 필자도 복어로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전복을 복어로 오인했다. 조선시대 문종 때의 이야기였다. 국왕이 서거하면 그날의 왕조실록에, 돌아가신 국왕에 대한 조사(弔詞)를 기록한다. ‘관례상’ 내용 대부분이 찬사다. 효자였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식이다. 문종도 마찬가지. 1452년 음력 5월 14일, 문종이 39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이날의 조사 중에 복어(?)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 세종(世宗)께서 일찍이 몸이 편안하지 못하므로 임금이 친히 ‘복어’(鰒魚)를 베어서 올리니 세종이 맛보게 되었으므로 임금이 기뻐하여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아뿔싸, 이 글에 나오는 ‘복어’는 전복이다. 복어는 ‘하돈’(河豚)이라고 표기했다. 강에 사는 뚱뚱한 돼지 같은 녀석이다. 당뇨로 고생하는 아버지 세종을 위해 세자 문종이 이른 아침부터 직접 ‘복어’(전복)을 요리하도록 관리해서 올렸다는 내용이다. 당시 복어, 전복, 하돈 등을 혼동했다. 전복을 복어로 알고 글을 썼다. 누군가 지적하기에 자료를 다시 봤더니 복어가 아니라 전복이었다. “실수를 했다”고 다시 글을 썼더니, 희한한 반응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조선시대에도 복어를 먹었어요?”라는 질문이다. 또 “복요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퍼뜨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지는 않다. 한반도 남부 지역인 김해 등의 패총에서 졸복 등의 뼈가 발견되었다. 한반도의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복어를 먹었다. 소동파의 ‘복어 찬미’는 과하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 오히려 지금보다 오래전에 복어를 더 즐겨 먹었다. 소동파(1037~1101년)는 11세기 사람이다. 조선시대 문인, 관리들은 소동파의 글을 죄다 읽었다. 복어를 모를 리 없다. 소동파는 여러 편의 ‘복어 찬미’를 남겼다. 이런 글을 읽고, 복어의 존재를 알고도 조선의 선비들이 복어를 먹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 조선시대 초기의 기록 중, 성종 24년(1493년) 4월, 경상도 관찰사 이계남이 조정에 보고하는 내용이 나온다. 웅천(진해)에 사는 주민 24명이 해산물을 먹고 죽었다는 것. 당시 이계남은 “공약명 등 24명이 굴과 생미역을 먹고 죽었다. 인근 주민들의 해물 채취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보고했는데 조정의 반응이 놀랍다. “사람들이 굴과 생미역을 먹고 죽는 예는 없다. 반드시 복어[河豚, 하돈]를 먹었을 것이다”라고 답한다. 섣불리 복어를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1741~1793년) 가족은 모두 ‘복어 식용 반대론자’였다. (전략) 왕고(王考)인 부사공(府使公)의 유훈에, “백운대(白雲臺)에 오르지 말고, 하돈탕(河豚湯)을 먹지 말라” 하였는데, 우리 제부(諸父)들이 그 유훈을 삼가 지켰고 나의 형제들 대에 와서도 역시 지킨다.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中 이덕무의 왕고(할아버지)는 이필훈이다. 유훈이 “위험한 복어 먹지 말라”다. 청장관의 아버지 통덕랑(通德郞) 이성호도 마찬가지. (전략) 흡연(吸煙)을 가장 싫어하고 하돈(河豚)을 들지 않았다. 항상 하돈 먹는 사람을 경계하기를 ‘어찌 구복(口腹)을 채우기 위하여 생명을 망각하랴’ 하였다. (후략) ―‘청장관전서’ 中 ‘구복’(口腹)은 입과 배다. 맛있게 먹거나 배를 채우려고 생명을 망각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청장관 이덕무는 할아버지, 아버지의 유훈을 잘 지켰다. 복어에 대한 오해들 일본은 오랫동안 복어 채취를 금했다. 중앙 정부 격인 바쿠후(幕府, 막부)는 늘 사고를 일으키는 복어의 채취, 식용 모두를 금지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지방분권의 나라다. 중앙 바쿠후의 말을 듣지 않는 ‘항’[藩, 번]도 있다. 복어를 먹지 말라는 바쿠후의 명령을, 시모노세키(지금의 야마구치 현) 등 조슈 번(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큰 번)이 어긴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조슈의 정치가들이 일본 중앙 정계로 진출한다. 이들이 복요리를 유행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다. 복요리를 특별히 좋아한 그가 메이지 유신 이후 전국적으로 퍼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인들이 ‘복어는 시모노세키의 특산’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복어에 대한 환상’의 시작은 소동파다. “죽음과도 바꿀 맛”이라고 표현한 것은 과장된 주장이다. “물쑥은 땅에 가득하고 갈대 싹은 짤막하니, 지금이 바로 하돈이 올라오려는 때로다. (하략)” 소동파 시 ‘혜숭춘강만경’(惠崇春江晩景)의 내용 중 일부다. 복어를 특별히 좋아했으니 이런 시를 남겼을 것이다. 복어에 대해 소동파만 찬사를 남긴 건 아니다. 송나라 매요신(梅堯臣, 1002~1060년)도 복어를 주제로 한 시를 남겼다. 내용은 소동파의 시와 비슷하다. “봄 물가에 갈대 싹 나오고, 봄 언덕에 버들개지 난다/하돈이 이때를 만나면, 귀하기가 생선, 새우에 비교하랴? (하략)” ―‘범요주좌중객어식하돈어’ (范饒州坐中客語食河豚魚) 中 매요신의 시가 오히려 복어 맛을 더 강조하고 있다. “복어는 생선, 새우보다 더 귀하다”고 분명히 밝힌다. 매요신은 소동파보다 30년 정도 앞선 시대 사람이다. 이 시대에도 복요리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복어, 봄철, 소동파, 죽음과도 바꿀 맛’의 키워드는 황복(黃鰒)이다. 복어에 대한 오해는 대부분 ‘소동파의 황복’에서 시작된다. 소동파와 매요신 모두 ‘갈대 싹이 물가에 올라올 때’를 복어 먹는 계절로 여겼다. 갈대 싹은 민물 강가에서 자란다. 더러 복어를 ‘담수어(淡水魚)’라 말한다. 틀렸다. 우리가 알다시피 복어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다. 민물고기로 여긴 이유는 간단하다. 황복은 이른 봄,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산란하기 위해서다. 소동파 시대에는, 멀고 깊은 바다로 나가서 어로작업을 할 선박도 없었고, 그물도 성겼다. 무동력선으로 깊은 바다에서 생선을 잡기는 어려웠다.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생선만 건졌다. 이때 만만한 게 바다에서 민물로 거슬러 오는 생선들이다. 복어, 위어(葦魚) 그리고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로 돌아가 산란하는 뱀장어 등이다. 이른 봄에 강화도 일대에서 위어[熊魚, 웅어]를 건져서 왕실로 보낸 이유다. 소동파의 복어는 황복이었을 것이다. 황복의 실체도 애매하다. 임진강 등으로 거슬러 오는 산란기 복어는 흰 배 부분이 노랗다. 그래서 황복이다. ‘황복의 전설’은 배나 그물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생긴 것이다. 황복과 오늘날 우리가 즐겨 먹는 복어는 다른 게 아니다. 복어는, 생긴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눈다. 우리는 까치복, 자주복(참복), 졸복, 은복, 밀복 등을 주로 먹는다. 까치복처럼, 1년 내내 즐겨 먹는 종류가 있고, 겨울철에 많이 생산되고 맛이 좋은 것들도 있다. 황복은 어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의 ‘봄철 특산물’이다. 중국은 황복이 멸종되었는지 혹은 널리 먹지 않아서인지 복어에 대한 별다른 이야기가 많지 않다. 일본과 한국은 복어 혹은 황복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인다. 과연 황복은 가격에 걸맞은 맛을 지니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동해안에서 널리 먹는 참복, 까치복, 밀복 등은 마리당 가격이 1만~2만 원 선이다. 황복은 수십만 원 혹은 그 이상의 가격을 요구한다. 황복이 수십 배 혹은 백 배 이상의 맛을 지니고 있을까? 황복의 맛, 가격은 ‘전설’이다. 멸종 위기에 처하니 귀하다. 귀하니 가격이 높다. 멸종 위기종, 천연기념물이 반드시 맛있다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목숨과 바꿀 맛은 없다.
- 2020-02-10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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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무지를 장엄한 자연 정원으로 바꾼 40년
- 나무를 좋아해 나무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았다. 늘 나무를 심었다. 애지중지 가꾸고 돌보고 어루만졌다. 몸뿐인가. 마음까지 나무에게 바쳤다. 그 결과 들판 가운데에 있던 황무지가 장엄한 숲으로 변했다. 거대한 정원이 태어났다. 들어보셨는가. 나주시 금천면에 있는 죽설헌(竹雪軒)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한국화가 박태후(64). 사건? 그렇다, 가히 ‘사건’이라 할 만하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초대형 개인정원을 만든 게 아닌가. 정원 면적은 자그마치 14만㎡(약 1만2000평). 대략 축구장 6개를 합친 크기의 정원이다. ‘이 사람은 금수저를 물고 나와 팔자 좋게도 평생토록 정원을 즐기나보다.’ 그렇게 지레짐작을 하는 이도 있을 테지. 돈이면 무엇이건 다 해낼 수 있다는 미신이 만연한 세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박태후는 가난한 농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간신히 밥 먹고 자랐다. 줄곧 손에 거머쥔 것 없이 살았다. 맨땅에 헤딩하듯, 무모하게도 거대한 정원 조성에 인생을 던졌다. ‘개성적인, 너무도 개성적인!’ 죽설헌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 무엇으로 개성적인가? 일단 줏대 넘치는 정원이다. 전국 곳곳엔 개인이 조성한 화려한 정원이나 수목원이 많다. 대체로 서양식 아니면 일본식 정원, 또는 이도저도 아닌 짬뽕이다. 박태후의 정원은 다르다. 한국 정원의 전통과 양식을 추구해왔다는 게 아닌가. 외제와 외풍과 외래종을 얕잡거나 싫어해서가 아니다. 본때 있는 토종 정원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정신과 고유성을 탐구해 나름대로 구현하는 실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 스스로 과제를 부여한 셈이며, 하나하나 풀어나가며 스스로 배웠고, 배운 대로 밀어붙였다. 줏대 아니면 푹 쓰러질 인물이다. “한국적인 정원의 특징엔 어떤 게 있죠?”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이 여실히 드러난 게 한국식 정원입니다. 서양식 정원은 달라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서구의 사고 전통이지요. 정원의 구조에도 정복의 정신이 고스란히 서려 있어요. 성(城)을 건축하듯이 과감한 기하학적 기법으로 정원을 만들어요. 일본 정원은 자연의 최대 축소치를 추구합니다. 자연을 넘어 우주까지를 축소시켜 집 안에 끌어들이고자 해요. 그 축소 노력을 통해 발달한 게 전지(剪枝) 기술이죠. 고도의 인위를 구사하는 겁니다. 반면 전래의 한국 정원은 나무를 가급적 있는 그대로 놔뒀어요. 자연스럽게 자라 어우러지도록 존중, 인위적 변형이나 관리를 자제하는 거죠.” “지친 마음을 나무 그늘 아래에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정원이지 않을까? 굳이 한국적 정원을 한사코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지 않겠어요? 조경이건 미술이건 뭐건, 세계 속에서 최고를 구가하려면 전통의 독창성과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일테면, 대통령 부부가 외국 순방을 할 때 한복을 입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마찬가지로 고유의 한국적 정원이 아닌 일본풍과 서양풍 일색으로 변한 조경 관습에 개탄을 금할 길이 없어요. 오늘날의 정원 99%가 남의 나라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이게 정상일까?” “말하자면 죽설헌이 한국적 정원의 본보기라는?” “아, 그렇진 않아요.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식 정원이지만, 온전히 규범적인 한국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요. 지향한다, 한국적 자연 정원을 지향한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만약 죽설헌을 전형적인 한국 정원이라고 내세운다면 학계로부터 쏟아지는 신랄한 비난을 면하기 어렵겠지요. 조경 학자들의 이론(異論)이 난무할걸요. 아마도 게거품을 물고 덤비지 않을까.(웃음)” 정원 조경의 실제 경험에 관한 한 박태후를 능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재야 조경가다. 고독한 고수다. 일쑤 삐딱한 눈총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는 언젠가 때가 오면 ‘대한민국을 통째 디자인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그런 박태후가 제도권 전문가들을 바라보는 태세에도 날카로운 게 들어 있다. “이론들끼리 기탄없이 다투어야 답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우리 원탁회의라도 열어 토론을 해봅시다! 제가 자주 그런 얘길 합니다. 그러나 아직 반향이 없다는 거. 오늘 저는 또다시 토론을 제안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요점이 뭐냐면, 대다수의 학자나 이론가들은 비원 같은 궁중정원이나 사대부들의 별서정원(자연에 귀의, 유유자적하기 위해 지은 별장에 딸린 정원)을 한국 정원의 원류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저는 서민들이 누린 토속적 정원에서 원형을 봐요. 장독대와 텃밭까지를 포괄한 자연 정원에 더 흥미와 애정을 느껴요. 정원을 일부 상층부의 전유물쯤으로 국한하는 견해에 동감할 수 없는 겁니다.” 모네의 정원 답사하고 감명받아 남도에 태풍이 스쳐지나가는 날이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죽설헌 숲이 출렁인다. 둥근 야산 하나가 통째로 몸을 떠는 것 같다. 개인 정원이 어이 이토록 동산처럼 방대한가? 한국적인 걸 지향하는 데에 규모화가 기본일 리는 없을 것이다. 방대할 뿐 아니라 어느 한구석 허술한 게 없으니 놀랍다. 나무에 최대한 손을 대지 않은 걸 원칙으로 삼았다지만, 정원다운 운치와 구성과 미학이 생동하니 손길과 숨결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 보인다. “처음부터 번듯한 정원을 만들 생각을 하지는 않았어요.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게 좋아 그냥 심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심으면 자라고, 가꾸면 꽃피어나는 식물들의 질서정연한 생리와 생태에 점점 빠져들었어요. 본격적으로 한국적 자연 정원이라는 것에 착안하고 올인하기 시작한 건 중년에 접어들어서였지요.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클로드 모네의 정원을 답사하고 깊은 감명을 받고서였어요. 같은 화가로서 강렬한 매혹을 느꼈어요. 비록 일본식 정원이었지만.” “처음 나무를 심기 시작한 건 언제였죠?” “제가 가정형편상 원예고등학교에 진학해 과수, 채소, 화훼 재배기술을 배웠어요. 재학 중에 이미 나무를 심는 재미를 알았지요. 저희 집 소유의 황무지에 틈만 나면 달려가 나무를 심었으니까. 그게 죽설헌의 시발입니다. 졸업 뒤엔 관공서 정원사를 거쳐 농촌지도소에서 근무했지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나무를 가꿨고요. 40대 초반엔 사표를 던졌습니다. 이후론 정원 가꾸기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죠. 낮에는 정원 일을, 밤에는 그림을. 이건 지금까지 사오십 년째 반복되어온 일상이에요.” 박태후는 제대 뒤 의재 허백련의 조카 허의득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우면서 한국화에 입문했다. 늦깎이로 미술 관련 석사학위도 받았다. 끔찍한 노력파다. 조경과 그림, 그 둘에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자기 자신에게 입증해 보인 열혈한이다. 정원을 산책해볼까. 폭염이 살갗을 굽는 여름 한낮이지만 정원의 공기는 서늘하다. 저녁 으스름처럼 어둑한 건 나무들이 허공을 가려서다. 박태후의 몸은 대나무처럼 늘씬해 나무숲에 어울린다. 잔인한 세월이 내려앉은 머리칼은 허옇지만, 자신의 평생 동행인 나무들을 바라보는 표정엔 온정이 가득하다. 백련이 벙그러지는 연못가. 못을 빙 에두른 노랑꽃창포 군락이 싱그럽다. 또 다른 연못가엔 왕버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수면에 어린 제 그림자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둘 다 박태후가 각별히 아끼는 초목이다. “5월이면 한 달 내내 노랑꽃창포들이 꽃피어 연못물마저 노랗게 물들입니다. 장관이죠. 저는 이 꽃을 ‘습지의 여왕’이라 불러요. 왕버들과 마찬가지로 물가에서 잘 자라고 병충해에도 아주 강합니다. 뿌리의 수질정화 능력도 탁월해요. 생태조경에 적격이죠. 이 좋은 노랑꽃창포가 예전엔 너무도 흔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어요. 그 바람에 요즘은 흔히 보기조차 힘들어졌어요.” “정원을 만들려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수종을 권한다면?” “최상의 정원수는 유실수예요. 감나무, 사과나무, 앵두나무, 살구 등등 꽃도 즐기고 과실까지 얻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열매를 쪼아 먹으려고 새들이 날아듭니다. 새들의 노래마저 즐길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 해야겠네.” ‘시행착오’가 가장 유능한 교사 죽설헌의 풍치엔 허전한 게 없다. 있을 게 다 있으니까. 200여 가지의 수종들, 수백 종류의 야생초들, 여섯 개의 인공 연못, 고와(古瓦)로 야트막이 쌓은 울, 숲의 사방으로 뻗어나간 산책로…. 가지를 잘라내거나 솎아주기를 극도로 삼갔으니 나무들은 자유롭게 자랐다. 저마다 길길이 가지를 뻗어 허공을 움켜쥔다. 나무 아래에선 꽃들이 병아리처럼 종종대며 형형색색의 물감을 짜낸다. 백련과 홍련이 맑고 고운 얼굴을 수줍게 드러내는 연못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련된 인공 정원이다. 그러나 인위가 세월에 발효되어 자연과 동화해서일까. 일부러 애써 꾸민 티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야생의 숲이라 해두자. 간섭받지 않고 성장한 나무들이 내쉬는 거친 숨소리, 자잘한 꽃들과 키 작은 음지식물들이 도란거리는 속삭임까지 귓가에 고이는 기분이다. 이토록 천연스런 숲 정원을 만든 건 여기가 피안이라는 뜻인가. “나무를 가꾼 지 반세기가 지났군요. 어떤 일이든 하나에 평생을 바쳐 열정을 쏟아 붓는다는 건 영혼이 움직이고서야 가능하겠죠. 죽설헌을 만든 당신의 가장 큰 비결은 무엇이라 보나요?” “시행착오. 바로 그거예요. 저는 전문적인 조경 교육을 받은 게 없이 일체를 혼자 해결해왔어요. 당연하게도 갖가지 오류가 빈발했죠. 쉬운 예로, 초기엔 외래종 화초와 토종 화초의 구분조차 하질 못했어요. 그걸 깨닫고 공부하며 초목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수시로 그런 식의 과정을 거쳤지요. 인생에서 시행착오보다 더 유능한 교사는 없다고 봅니다.” “이 너른 정원을 조성하기까지 막대한 자금이 소요됐겠죠? 자금 조달엔 문제가 없었을까?” “가장 난감했던 게 바로 그 대목이었어요. 수입이라곤 얼마 안 되는 연금뿐, 부부가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왔습니다. 감자나 참깨를 농사지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어요. 그러나 빚을 얻어 쓸 수밖에 없더라고요. 나무를 계속 심자면 주변 땅을 사들여야만 했으니까.” 어렵사리 터를 매입해 나무들을 심는다 해도 그게 끝이 아니었단다. 나무들의 키가 커지고 둥치가 불어나면 적절히 이식을 해줘야만 했다. 그러자면 다시 땅을 확보해야 했으니 주기적으로 자금난에 봉착했던 것 같다. 간벌(間伐)로 쉽게 처리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박태후는 나무를 베어내거나 파내는 행위를 금기로 삼고 있다. 나무와 혈맹조약을 맺은 것처럼. “저것들도 엄연한 생명인데, 저것들도 한번 살아보겠다고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베어낼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옮겨 심을 터 마련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당신, 욕심을 너무 부리는 거 아니야? 라는 투로 바라보지만 터무니없는 오해예요. 나무와 함께 살다 보면 나무에게 많은 이치를 배우게 됩니다. 세상을 진정 잘 사는 길을 숲의 자연 생태에서 깨닫게 되는 거죠. 이게 자연 정원을 가꾸는 최상의 목적이자 낙이에요.” 자연에의 외경을 지닐 경우, 교만과 허영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삶의 과욕과 과속은 마음속에 자연을 들여놓지 못해 생기는 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처럼 살기는 사실 어렵다. 사람이 나무처럼 살 수 있겠나. 가을마다 잎을 모조리 털어내는 나무의 허심을 흉내낼 수 있겠는가. 옷 한 벌 걸치지 않은 채 혹한을 묵묵히 견뎌내는 겨울나무를 시늉할 수 있겠는가. 박태후는 나무들의 생태에 인간사의 고통과 한계를 대입하고 그 치유책을 찾아 나선 사람이진 않을까.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바라보며 과욕이란 헛된 거라는 걸 자주 느껴요. 제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저승까지 가져갈 길이 있던가요? 결국엔 모든 걸 버리고 떠나야 한다는 명백한 진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사는 게 아닌가요?”
- 2019-09-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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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노인’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가 말하는 노후의 삶
-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 책 ‘탈출노인(脱出老人)’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처해있는 상황 등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 책은 다양한 목적을 갖고 필리핀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일본의 노인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는 논픽션 작가로 태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삶을 주로 다뤄왔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돼 후지TV를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제일교포 영화인으로 잘 알려진 최영일 감독이 참여했다.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은 충격적인 발표를 내놓았다. “60세에서 65세 사이의 직장이 없는 평범한 은퇴자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이외의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라고 발표한 것. 연금에만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고령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해외로 이주한 일본의 노인들을 다룬 책 ‘탈출노인’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높은 생활비로 악명높은 일본의 고령자들이 낮은 연금만으로 살아가기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탈출구로 해외 생활을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고령자의 해외이주 "만만치 않아" 이 책의 저자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필리핀으로 이주한 고령자의 삶을 통해 바라본 행복론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제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한 남성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일본에서 유행한 필리핀 술집에서 배우자를 만나 결혼한 사람들이죠. 그들이 이주를 선택했던 것은 따뜻한 기후와 낮은 물가로 대변되는 살기 좋은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대부분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만족해하고 있었죠. 그리고 일본의 북쪽 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오거나 치매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죠.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을 걱정해 이주한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필리핀 여성과 결혼한 일본 남성이 많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의 거품경제가 급격히 꺼지면서 일본인의 해외여행 역시 함께 감소했고, 동시에 해외여행을 대체하는, 필리핀 여성을 고용한 ‘필리핀 술집(フィリピンパブ)’이 전국적으로 성행하게 된다. 이 유행이 가장 왕성했던 2004년에는 공연 등의 목적으로 입국을 허가하는 흥행(興行) 비자로 일본에 입국한 필리핀 여성이 8만 명에 달했다. 이런 술집은 젊은 여성이 부족한 지방에서도 성행했고, 자연스레 수많은 국제결혼으로 이어졌다. 연금에 의존한 생활, 희망 줄어 그렇다면 필리핀은 일본인에게 이상적인 노후 주거지였을까? 그는 “꼭 그렇지는 않다”라고 말한다. “일부는 저렴한 가격으로 매일 골프를 즐기고, 친구들과 느긋하게 술을 마시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벽과 문화적인 격차, 생활시설의 부족 등을 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죠. 아내와 아내의 가족들로 인한 문제, 생활비 부족 등도 그들이 힘들어하는 주요 문제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본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필리핀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확률은 50대 50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미즈타니 다케히데는 “해외이주만이 노후 생활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책을 쓴 목적도 해외의 삶을 권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고령화 사회입니다. 일부는 연금만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죠. 특히 일본 정부의 ‘2000만 엔 노후 자금 필요’ 발표 이후에 이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고령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행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기 위함입니다.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해외이주 역시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입니다.” 노후에 중요한 것은 '가족'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노후를 위한 이상적인 삶의 터전은 무엇일까? 그는 중요한 요소로 ‘가족’을 꼽았다. “대부분 노후 준비의 요소로 돈을 꼽을 텐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죠. 가족 간의 유대가 긴밀하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죠. 고령화된 일본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가족의 유대감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고령자들의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만약 가족과 함께였다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노인을 위한 생활시설이나 요양시설의 문제점 중 하나도 그들이 느끼는 쓸쓸함을 어쩌지는 못한다는 것이죠. 결국, 노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입니다.”
- 2019-07-30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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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후, 어디서 어떻게? 고민하는 일본
- 노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낮아지는 소득 수준과 부담해야 할 집세, 건강으로 좁아지는 생활반경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연금삭감 논의와 함께 노후자금 부족에 대한 경고등까지 켜지면서 불안감도 생기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소득층을 위한 실버타운이나 고령자를 위한 여행 방법에 대한 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서점가에선 ‘탈출노인’ 인기 최근 일본 서점가에서는 신간 ‘탈출노인(脱出老人)’이 인기를 얻고 있다. 논픽션 작가 미즈타니 다케히데(水谷竹秀)가 쓴 이 책은 집세도 내기 어려운 부족한 연금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고 필리핀에 정착한 일본 중장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대기업 샐러리맨 출신이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방사능 걱정이 없는 필리핀으로 이주한 부부에서부터, 90세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여교사, 필리핀에서 만난 24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전직 경찰관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은 지난 6월 일본 금융청이 “평균적인 무직 60~65세 노인 부부가 약 30년의 여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금 외에 약 2000만 엔(한화 약 2억2000만 원)의 자산이 필요하다”고 발표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더욱 조명받았다. 이 논란은 소비세 인상과 맞물려 일본 국민의 시위까지 불러일으켰다. 필리핀은 물가가 낮고 체류가 쉬워 일본인들에게 노후를 보내는 곳으로 인기를 얻고 있고, 의료 인력도 풍부해 일본인 대상의 실버타운도 조성됐다. 일본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필리핀 체류 일본인 수는 1만6570명에 달한다. ‘탈출노인’은 인기에 힘입어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후지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토쿄 한복판 실버타운 입주비용은? 일본의 고급 실버타운은 어떤 모습일까? 8월 1일 도쿄 시부야 한복판에 새 실버타운이 문을 열었다.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실버타운 사업을 펼치고 있는 참·케어(cham·care) 코퍼레이션의 ‘참 프리미어 그랑 쇼토(松濤)’다. 이 회사가 최초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표방하며 건립한 이 실버타운은 모든 것을 최고급으로 갖췄다. 지상 3층 지하 1층에는 36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고, 입주자를 위해 직원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입주자와 직원 비율은 1.5대 1로 직원이 바빠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는 셈이다. 의대 협조를 통해 치매 개선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재활전문 의료법인과의 제휴로 다양한 재활 서비스도 이뤄진다. 식사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일식과 양식 이외에도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주문해 먹을 수 있다. 매일 직원들이 입주자의 산책을 돕고, 각종 취미활동이나 야외 활동도 지원한다. 문제는 입주비용. 월 30만2400엔에서 95만2400엔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약 330만 원에서 105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교통 약자 위한 ‘여행개조사’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국내 여행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꾀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말 그대로 교통 약자가 쉽게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각종 인프라를 개선하는 사업. 지난 6월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간호여행서포터즈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에는 여행사, 대학, 의료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고령자나 장애인의 편안한 여행을 위한 방안 마련 논의를 했다. 이들은 노인과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개선뿐만 아니라 ‘간호 여행’을 실현할 수 있도록 관련 인력이 양성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단체는 노인과 장애인의 여행을 돕는 도우미인 여행개조사(旅行介助士) 제도를 민간자격증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여행자의 보행 상태나 건강 등을 파악한 후 여행 기획부터 응급상황을 대비한 조사활동을 펼치고 몸이 불편한 고객의 여행 동행자 역할도 한다.
- 2019-07-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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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고 4인방의 좌충우돌 유럽 자유여행기
- 여고 동창생, 특히나 여고 졸업반 친구들은 아련하고 각별하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갈피갈피를 같이하는 게 고교 친구가 아닐까. 방과 후 수다를 조잘조잘 나누던 여고 동창생들이 이제는 며느리, 사위 볼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거울 앞에 선 누이’가 된 적잖은 나이이지만, 함께 모이면 여전히 단발머리, 교복 입었던 그 시절로 달음질친다. 추억은 돌아보는 것이지만 만들기도 해야 한다는 소신 하에 계를 부어 여행을 계속 떠나며 추억을 만들어온 지 어언 12년째다. 서로를 안 지 40년 남짓. 강산은 네 번이나 변했지만 우정은 한결같다. 도화진, 오은경, 이소윤, 김성회. 우리 4명의 가장 큰 공통점은 모두 헛똑똑이, 허당이라는 점. 방향 감각이 엄청 떨어지는 길치란 점도 그렇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같은 길을 몇 번씩 돌아갔다 원점으로 돌아올 때, 지하도 출구를 몇 번씩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할 때 서로를 보며 깔깔거린다. “어쩌면 우린 이런 것까지 똑같니? 요즘 세상에 이렇게 만나기도 힘들다. 이렇게 덜떨어진 우리 같은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은 우연이니? 필연이니?” 하면서. 우리 여고 동창들은 대학교 다닐 때 함께 국내 여행을 다니다가 해외로 여행 영역을 넓혔다. 지금도 그때 그 시절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서로의 옷을 바꿔 입고 나름 예쁜 척하며 바닷가에서 찍은 모습들이란… 촌스럽지만 풋풋하다. 이후 한 친구는 유학을 갔고, 한 친구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모두 모이지 못하는 소강기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마흔 넘어 비로소 네 명의 아귀가 채워질 수 있었다. 2010년 처음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고, 2013년엔 스페인으로 패키지여행을, 그다음 2016년엔 조금 더 용기를 내서 크로아티아로 에어텔을 예약,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5월 11~20일 네덜란드-벨기에로 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으론 네 번째다. 좌충우돌 알콩달콩 네덜란드-벨기에 자유여행 이야기를 공개한다. 3회로 나누어 연재할 예정이며 그 첫번째를 싣는다. 암스테르담 교외 전원마을 히트호른 직행 우리는 해외여행을 갈 때 되도록 밤비행기를 이용한다. 호텔비 1박을 아끼는 이점, 그리고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활동, 시차적응이 쉽다는 양수겸장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저녁은 간단히 먹고 기내식으로 푸짐하게 배를 채운 뒤 와인 한 잔까지 걸치고 푹 잤다. 좁은 이코노미석 새우잠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는 뒤척뒤척 잠을 못 이뤘다. 11시간의 비행 후 새벽 5시(현지 시간)에 네덜란드 스히폴공항에 도착했다. 높다란 천장, 히딩크처럼 큼직큼직 건장하게 생긴 외국인들…. 네덜란드에 왔음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공항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화장을 했다. 우리나라의 이마트쯤에 해당하는 알버트하인 마트에서 수프와 빵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곧바로 네덜란드의 동화마을 히트호른을 향했다. 히트호른은 염소의 뿔이란 뜻이다. 도착하니 오전 9시 30분가량. 거의 일착이다. 우리가 마을 전체를 완전 전세 낸 것처럼 고적해서 더욱 좋았다. ‘네덜란드의 베니스’란 별칭에 어울리는 강가에 예쁜 집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배들이 그림처럼 정박해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눈앞에 펼쳐진 쨍한 하늘과 전원, 강 옆의 억새지붕을 한 집들이 오순도순 동화처럼 아름답게 늘어서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창문에 스탠드이든, 인형이든 쌍으로 놓는 게 인테리어의 기본 법칙이다. 그래야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한단다. 반 고흐의 작품 ‘아를의 반 고흐의 방’을 보면 침대 오른쪽 벽에 그림액자 2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데 네덜란드의 독특한 풍속이 미친 영향이다. 집 앞의 강에는 집집마다 작은 배를 정박해놓았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청량한 공기…. 모두들 피곤함도 잊고 탄성을 연발하며 “이런 예쁜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가 급격히 말을 거뒀다. 햇빛이 아쉬운 네덜란드의 환경상, 이곳의 가옥구조는 한 벽이 다 창문이라 할 정도로 창문이 많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창문이 얼룩진 곳 하나 없이 반짝반짝한 게 아닌가. 또 집 안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구조다. 이런 집에서 살려면 늘 청결하고 인테리어도 안목이 있어야 할 텐데 자신이 없었다. 어쨌든 파란 하늘, 초록 풀밭, 흐르는 강, 그림 같은 집 등…. 네덜란드는 포토제닉 국가 그 자체다. 실제 풍경도 아름답지만 사진으로 보는 경치가 더 아름답다. 프리워킹투어+마차 관광과 숙박 암스테르담 시내는 프리워킹투어를 이용했다. 미리 한국에서 신청해놓아 만남의 장소인 담 광장을 향했다. 우리 팀을 인솔할 사람은 아랍인 용모를 한 중년 남자. 네덜란드로 이민 온 지 오래된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네덜란드 역사관광 가이드를 외국인이 맡은 것이 신기했다. 가령 경복궁 안내를 푸른 눈의 외국인이 안내하며 한국 역사를 설명한다면? 암스테르담이 이민자의 도시라서 가능한지도 모른다. 암스테르담 궁전, 벼룩시장 등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돌다가 자신이 아는 카페로 관광객을 인도, 아니 유도했다. 그리고 무료 관광이며 자신은 별도로 공공기관에서 돈을 받는 것도 아니라고 구구한 설명을 하며 팁을 유도해서 피곤했다. 더구나 행인들과 차가 다니는 길거리에서 영어 설명을 들으려니 청해는 고사하고 청취도 힘들었다. 중간에 들른 카페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간단히 요기를 한 후 “다음 일정이 바빠 어쩔 수 없이 중도에 빠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우리끼리 시내를 돌기로 했다. 우선 길을 다니며 조심해야 할 것은 자전거들. 자전거들이 씽씽 달려 부딪힐까봐 늘 경계해야 했다. 마침 우리나라 유학생이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던 중에 자전거와 부딪혀 크게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들어 더 긴장하고 조심했다. 종일 걸으니 다리가 아팠다. 길치라서 헤매는 거리까지 합하면 통상 표시된 거리의 1.5~2배. 만보계로 체크해보니 하루 평균 2만 보는 걸었다. 마차를 타고 암스테르담 시내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마차가 따각따각 소리를 내며 포장된 도로를 도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거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 흔드는 법을 연습해둘걸.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민망했다. 재미있는 것은 트램이나 자동차, 마차 모두 같은 도로를 이용한다는 것. 앞에는 마차가 달리고, 그 뒤에서 자동차가 천천히 따라오고…. 그런데도 클랙슨 한 번 울리지 않고 기다리는 게 신기했다.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주의할 것 중 하나는 커피숍과 카페의 구별이다. 카페는 우리나라에서처럼 커피를 마시는 곳이다. 그런데 커피숍 간판이 붙은 곳은 대마초를 피우는 장소란다. 어쩌다 간판만 보고 들어가면 큰코다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네덜란드의 커피숍(coffee shop)은 관용정책(gedoogbeleid)의 아편법에 따라 일정 금액의 판매 소지가 허용된 소프트 드러그(soft drug, 중독성 없는 마약)의 대마초를 포함한 제품을 판매하는 소매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마초를 공식 허용하는 정책이 오히려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덜 갖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네덜란드 교민은 “암스테르담에서 이런 곳을 출입하는 사람은 주로 외국인이지, 네덜란드인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네덜란드인은 보수에 가깝다”는 말을 들려줬다. 자유로운 사람이 오든, 오면 자유로워지든, 암스테르담은 자유인을 위한 도시다. 이곳은 물가가 비싸서 호텔은 역세권 아파트형 호텔로 정했다.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 아침, 저녁을 해결했다. 한결 비용이 절약됐다. 빵에 주스, 요구르트, 견과류, 과일을 곁들여 먹으니 특급 호텔 조식 못지않았다. 건축도시 로테르담과 마르크트할, 유로마스트 암스테르담을 떠나 다음 목적지인 로테르담으로 향했다. 산더미만 한 캐리어백을 낑낑대고 끌며 겨우 로테르담행 기차에 올랐다. 캐리어가 커서 객석으로 끌고 들어가기도 힘들고, 기차 선반에 올리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차 연결 부분에 짐칸이 있었지만 멀리 두자니 도난이 걱정됐다. 어쩔 수 없이 짐을 지키느라 짐칸 옆에서 한 명씩 돌아가며 경비(?)를 볼 수밖에 없었다. 짐을 끌며 역에 겨우 도착했는데 호텔 찾아가기가 난망이었다. 구글맵으론 도보 5분 거리라는데 아무리 뱅뱅 돌아도 나오지 않았다. 짐은 무겁고, 길은 못 찾겠고…. 이때 비로소 우리 여행은 심각한 갈등 속에 빠지기 시작됐다. 택시를 타자는 입장, 아니면 좀 더 찾아보자는 입장의 대립이었다. 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호텔을 찾아 예약하느라 애를 쓴 친구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택시기사는 호텔 이름을 듣더니 “아니 코앞인데 이곳을 택시로?” 하는 표정이었지만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가주세요” 했다. 그리고 호텔 고고(Go Go!!). 로테르담은 네덜란드 제2의 도시. 쭉쭉 올라간 고층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풍스런 암스테르담과 확 달라진 분위기. 오히려 우리 눈에는 낯설지 않아 서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공습으로 중심부는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전후의 부흥에 따라 현대도시로 재생됐다. 이곳의 명물인 큐브 하우스를 보고 마르크트할로 향했다. 큐브 하우스는 건축가 피트 블롬(1934~1999년)이 로테르담의 블락 역에서 광장을 가로지르는 보행자용 다리 위에 주택을 세운 것. 54° 기울어졌고, 바닥부터 위를 향해 육각기둥이 세워져 있다. 노란색의 추상적인 숲 형태의 집이다. 어떤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고 독특해 발상의 전환에 대해 경탄했지만 살고 싶지 않다는 데는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가파른 계단이 굽이굽이 달팽이 모양으로 설치돼 있어 오르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다. 경험 삼아 1박 예약도 고려했었는데 캐리어 들고 이 계단 오르락내리락했을 것 생각하니 보기만 해도 진땀이 주르르 흘렀다. 암스테르담에서 묵은 아파트형 호텔도 가파른 계단이었지만 옥외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곳은 그마저도 없으니… 우리 여기서 묵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곳 유스호스텔은 늘 예약이 꽉 차 있다니 그런 걱정은 기우인 셈이다. 역시 아름다운 것은 불편한 걸까? 로테르담 일정은 주로 도보관광으로 여유롭게 잡았다. 도서관을 구경하고 에라스무스 다리 등을 걸으며 유유하게 보냈다. 마르크트할에서 시장 음식을 조금씩 사서 주전부리로 먹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그다음은 네덜란드의 남산타워라 불리는 유로 마스트에서 정찬을 즐겨보기로 했다. 유로마스트는 로테르담을 한눈에 360° 전망할 수 있는, 높이 185m의 회전 전망대로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오후 7시 30분으로 디너 예약을 했다. 아줌마의 알뜰 본성을 속일 수 없어, 식사비 지출을 너무 하는 건 아닌지, 차라리 그 돈으로 마켓할에서 맛있는 음식 사먹는 게 낫지 않느냐며 난상토론을 벌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식사’였다. 네덜란드는 오후 9시는 돼야 해가 진다. 7시 30분에 예약한 덕에 해가 지기 전 경치와 일몰 풍경, 그리고 해가 진 후의 야경까지 두루 즐길 수 있었다. 안 오면 정말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와인을 곁들여 먹었는데도 4명 식사 총액이 170유로(한화 23만 원)밖에 안 나왔다. 우리나라의 호텔 식사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좋은 편이었다. 단, 서비스 속도가 느려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나오는 데 무려 3시간여가 걸렸다. 불덩이 같은 해가 지는 것을 보며 모네의 그림 ‘해넘이’ 풍경을 연상한 것도 잠시, 다시 도시의 야경으로 경치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360° 원형으로 바라보는 전경의 아름다움, 그곳에 온 선남선녀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앞 테이블의 노부부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서로를 부축해주며 일어나 옷깃을 매만져주는 모습을 보며 순간 뭉클해졌다. 다른 친구들도 같은 마음을 느꼈는지 “우리, 한국에 있는 식구들에게 문자 한번 보낼까?” 한다. 그래,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떠남 그 자체보다 현재를 되돌아보고 감사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여행도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 2019-07-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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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온보다 습기가 더 해로운 이유
- 올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한 달 넘도록 열대야와 40℃에 육박하는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폭염은 사람을 지치게 하고 열사병으로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매년 여름 이런 더위와 싸워야 한다면 서울 사람,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여름마다 이렇게 사람 지치게 하는 원인이 열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캐나다, 미국, 케냐, 호주에 가보면 기온이 40℃라 해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다. 당연히 열대야도 없다. 습기가 없기 때문이다. 습기는 열기나 한기를 더 잘 전파한다. 한국이나 일본은 여름에 그늘에 들어가도 덥다. 추운 날도 마찬가지다. 습기 많은 계곡을 가면 햇볕 속에 있어도 뼈가 시릴 만큼 춥다. 여름철에 대관령이나 태백 같은 고산으로 피서를 가는 것은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기 때문이다. 습기가 많은 물가에 살면 관절이 약해진다. 습이 몸의 순환을 막아 관절을 붓게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습기는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 힘들 때 우리는 몸이 마치 물먹은 스펀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기운이 순환되지 않고 정체되어 막히면 몸에 습이 쌓이기 때문이다. 습기는 바깥에서 들어오는 습이 있고, 인체 내부에서 생긴 습이 있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 이슬, 안개 등이 많으면 외부에서 습기가 들어오는데, 다리가 무겁거나 각기병이 생긴다. 이럴 때는 땀으로 습기를 배출해야 하는데, 오래된 습은 소변으로 빼줘야 한다. 날것, 습한 것, 밀가루, 유제품 등을 많이 먹거나 술을 자주 마시면 인체가 습해지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메슥거리며 온몸이 붓는다. 이때는 대소변을 통해 습을 제거해줘야 한다. 몸속의 습기를 제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주거 환경 개선, 음식 조절이 그것이다. 몸이 무거울 때는 대관령이나 태백, 백두대간 등 고산으로 가 쉬면 좋다. 습이 낮은 환경에 있어야 몸속의 습이 빠져나간다. 높은 산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개운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반대로 물가나 호숫가는 피해야 한다. 그러나 바닷가는 얼핏 보면 습기가 많은 것 같지만 소금기를 띤 습이라서 오히려 인체의 습을 제거해준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삼투압 때문에 몸의 수분과 습기가 빠져나간다. 그래서 장수마을이 고산과 바닷가에 많은 것이다. 습이 적어야 장수할 수 있다. 자연에서는 바람이 안개와 습기를 흩어지게 한다. 몸속에서는 향기가 바람의 역할을 하며 습을 없애준다. 술 먹은 다음 날 몸이 무거운 건 술로 인해 습이 몸속에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는 유자, 모과 등 향이 나는 과일이나 깻잎, 배초향 등 향이 강한 채소를 먹는 것이 좋다. 칡꽃, 팥꽃, 국화로 만든 차도 좋다. 귤껍질이나 허브티를 달여 마셔도 도움이 된다. 안개의 나라 영국에서 향기 좋은 커피와 홍차가 발달한 이유에는 이런 맥락이 있다. 중국의 사천 요리는 매운맛으로 유명하다. 사천 지방은 왜 매운맛을 즐겨 먹는 것일까? 중국 속담에 “촉나라의 개는 해를 보면 짖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다 해를 보게 되니 개가 이상해서 짖어댄다는 의미다. 촉나라는 사천 지방에 있던 나라인데, 이 지방은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해를 보기 힘들다. 당연히 습이 많고 이 습을 제거하기 위해 매운맛의 화초(花椒)를 이용한 요리가 발달한 거라 한다. 동남아 등 습도가 높은 지방에서도 향신료를 즐겨 먹으며 습기를 극복한다. 숙취를 깨기 위해 사람들이 얼큰한 해장국을 많이 먹는 이유도 매운맛이 술로 인해 생긴 습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덩굴 식물도 몸속의 습기를 잘 뽑아내준다. 술을 마시고 칡즙, 칡차, 수박, 키위, 방울토마토, 포도 등을 먹으면 습 배출에 효과가 있다. 식물의 넓은 잎도 습기를 제거해준다. 연잎밥이나 호박잎밥, 바나나잎밥, 쌈밥은 습기 제거, 특히 여름철 습기를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 몸속에 습기를 쌓이게 하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인공적인 식품은 대부분 습기를 조장한다. 미원 등 인공 조미료를 많이 넣은 음식을 먹으면 갈증이 나고 다음 날 몸이 찌뿌둥하고 소변을 봐도 시원치 않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음식, 정제 음식, 탄산음료, 튀긴 음식 등도 습을 조장한다. 또 음식이 아닌 에어컨이나 온풍기, 인공적인 빛과 소리도 몸속에 습을 조장해 몸을 무겁게 하고 머리도 띵 하게 만든다. 방 안에 숯을 갖다 두면 습 제거에 효과를 볼 수 있다. 음식은 담백한 것 위주로 먹고 먹을 때는 10번 이상 꼭꼭 씹어 먹는 것이 좋다. 음식을 너무 싱겁게 먹으면 습이 쌓이고 소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몸이 붓는다. 적절히 죽염으로 간을 해서 먹어야 습이 제거된다. 미역국, 다시마, 퉁퉁마디 등 해조류나 염생식물의 약한 짠맛은 습 제거에 좋다. 여름에 콩국수나 우뭇가사리를 먹는 것도 같은 이치다. 붕어, 잉어, 미꾸라지, 게, 조개류 등 연못이나 갯벌에서 사는 생물들도 습 제거에 도움을 준다.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동의보감약선(東醫寶鑑藥膳)’, ‘사람을 살리는 음식 사람을 죽이는 음식’
- 2018-08-2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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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전·후 시니어 재무 설계 키워드 21
- 노후의 삶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장수리스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준비 없이 맞이하는 긴 노년은 괴로움만 더할 뿐이다. 따라서 나이에 맞는 ‘생애자산관리’가 뒤따라야 하며, 은퇴 직전인 50대뿐만 아니라 30~40대부터 노후필요자산에 대한 적정성 점검과 자산 극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은퇴 이후에는 노후 기간을 세분화하여 자산의 적정한 인출과 소득의 보완에 신경 써야 한다. 금융업계 전문가들이 꼽은 시니어가 알아야 할 재무 설계 키워드를 은퇴 전·후로 나눠 정리해봤다. 도움말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PART1. 은퇴 전 시니어 재무 설계 키워드 ◇ By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김동엽 상무·은퇴교육센터장 #1 '5565'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기 직전 5년부터 퇴직한 뒤 5년에 해당하는 55세부터 65세 사이의 시기를 말한다.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는 시기로 매우 분주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인간관계 중심이 회사에서 가정으로 바뀌므로 회사형 인간에서 가정형 인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아울러 노후자금 관리도 돈을 모으는 ‘적립’에서 ‘인출’ 중심으로 변화한다. #2 임금피크 ≠ 인생피크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서 55세 전후로 임금피크를 실시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근무연한이 늘어나면 임금도 상승하는 연공서열방식 임금제도와 달리,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특정 연령부터 임금이 줄어든다. 임금이 줄어들면 덩달아 퇴직급여도 줄기 때문에 대응을 잘해야 한다. 기업에 따라 임금피크에 해당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사전은퇴 교육을 시행하는 곳도 있으니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노후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임금피크 전후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생 후반전이 달라진다. 자칫 이 시기를 무의미하게 보내면 임금피크가 인생피크가 될 수도 있다. #3 이중부양 은퇴를 앞둔 50대는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라는 두 가지 짐을 짊어진 경우가 많다. 그나마 현재 50대는 경제가 고도성장할 때 직장에 다니며 부를 축적하고 노후준비도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는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했다. 게다가 고도성장의 열기가 식으면서 그들의 자녀 세대 또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를 꾸려가기 힘든 상황이다. 부모봉양과 자녀부양이라는 이중의 짐이 50대 어깨 위에 얹혀 있는 셈이다. 게다가 자신의 노후준비까지 하려면 연금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기초생활비를 만들고, 여기에 개인연금과 주택연금을 더해 기본 생활비를 마련하자. ◇ By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명기 수석연구원 #4 퇴직금을 지켜라 우리나라 남성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6.7년으로 OECD 주요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평균 근속연수가 짧으면 이직 때마다 노후자금의 주요 축인 퇴직(연)금을 일시금으로 찾아 다른 용도로 활용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노후자금 축적에 큰 위협 요인이 된다. 따라서 이직 시 IRP(개인형 퇴직연금,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계좌에 이관된 퇴직금은 절대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말고, 55세 이후 5년 이상 연금으로 받는 것이 좋다. 이 경우, 퇴직금을 노후자금의 목적대로 보존할 수 있으며 퇴직소득세 감면 효과(30%)까지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하자. #5 자녀 리스크 회피 자녀 지원을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 부모 세대는 오랜 기간 자녀 리스크에 노출된다. 사교육비부터 결혼자금 지원까지, 생애 지출의 상당 부분이 자녀를 위해 쓰인다. 즉 소중한 자녀가 노후준비의 걸림돌이 되는 것. 2016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5년 내 자녀를 출가시킨 부모의 3분의 1은 결혼자금 지원을 위해 노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산(부채, 퇴직금, 개인연금 등)을 활용했다. 자녀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보다는 자녀에게 부담 주지 않는 독립적인 노후를 보내는 것이 결국 자녀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임을 명심하자. #6 연금라이프 점검 평균수명 증가로 은퇴기가 길어지면서 필요한 노후생활 자금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소득이 사라지는 은퇴기에도 삶의 질 하락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생활비’를 확보해두는 것이 핵심이다. 이때 필수생활비는 살아있는 한 꾸준한 소득흐름을 보장하는 연금으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본적인 국민연금 이외에 종신연금처럼 죽을 때까지 소득흐름을 보장하는 연금상품이 충분히 갖춰져 있는지 확인해, 필수생활비를 연금으로 충당하는 연금라이프를 누릴 수 있을지 점검해보자. ◇ By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박 진 소장 #7 집, 소유 말고 사용하자 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산을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선진국의 경우 가계의 부동산 비중이 약 50%이지만, 우리나라는 70%가 넘는다. 집은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사용하는 개념으로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집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기면 무리하게 투자해 집을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억짜리 집을 사기 위해 3억을 대출받는 것보다, 5억짜리 집에 살면서 2억을 연금보장형 상품 등으로 넣어두는 편이 낫다. 10억짜리 집을 사면 이자를 내야 하지만, 5억짜리 집에 살면 이자를 받는 셈인데, 이는 매우 큰 차이다. 여기서 나오는 이자를 노후자산에 톡톡히 활용할 수 있다. #8 자산관리 분배 원칙 '5533' 5: 총자산의 50%를 금융자산으로! 가계의 총자산 내에서 26% 수준에 불과한 금융자산의 비중을 큰 폭으로 늘리자. 노후에 필요한 것은 정기적인 현금흐름이고, 이를 만들어내는 금융자산을 최소 50%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좋다. 5: 금융자산의 50%를 투자형 자산으로! 저금리 시대를 맞아 금리연동형의 안전형 상품으로는 자산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없다. 40%를 훌쩍 넘는 예금자산을 줄이고, 20% 수준에 불과한 투자형 자산의 비중을 늘려보자. 3: 투자형 자산의 30% 이상은 해외자산으로! 투자형 자산에 투자할 때는 해외자산의 비중을 늘려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 증시는 전 세계 주식시장의 2%도 안 된다. 국내 종목에만 집중투자하기보다는 글로벌 분산투자의 개념에서 해외 종목을 30% 이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3: 연금자산은 총자산의 30% 이상으로! 100세 시대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자산은 결국 연금자산이다. 아무리 많이 잡아야 8% 수준에 불과한 연금자산을 최소 총자산의 30%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 By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황원경 센터장 #9 장기보장자산 마련 장기보장자산 마련을 위한 재무 설계는, 늘어난 노년기에 경제적으로 독립된 노후생활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주요 키워드가 될 것이다. 장기보장자산 마련을 위해서는 일정 소득을 제공하는 노후자금기본형성 계획과 인플레이션을 따라가면서 ‘인플레이션+α’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 확대 계획이 필요하다. 노후자금기본형성을 위해 개인형 IRP, 연금보험 등에 대한 이슈가 중요하며, 노후자금자산 확대를 위해 일정 부분 위험을 감수하는 자산관리 전략의 혼용이 필요하다. *경제활동기 이후 노후생활기 증가: 1985년 13.4년, 2016년 26.8세. 단순히 ‘노후자산관리’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엔 은퇴 이후, 즉 #10 '1세대가구형' 생존전략 가구에 대한 개념 변화와 기대수명의 연장, 부모에 대한 부양의식의 약화, 에이징인플레이스(Aging in Place)의 개념 등으로 은퇴 후 1인가구나 부부가구 증가가 예상된다. 전통적 방식의 2세대 이상 가구 유형(부모-자녀 세대)은 감소할 것이다. 특히 재무 설계의 목적을 설정할 때 1인 또는 부부가구 중심의 노후자금준비 목적이 이뤄지도록 반영해야 한다. 이는 1세대가구 생존을 위한 노후자금준비 목표에 대한 재점검과 자산관리 재조정으로 이어진다. * 부양의식의 변화: 부모부양 부담에 대해 가족의 책임 2002년 70.7%, 2016년 30.6%. * Aging in Place: 연령, 소득, 능력 수준에 관계없이 자신이 살던 집과 공동체에서 안전하고 자립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 PART2. 은퇴 후 시니어 재무 설계 키워드 ◇ By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김동엽 상무·은퇴교육센터장 #1 일병식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수명이 늘어났다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자 중 30% 이상이 와병 상태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나이가 들면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늘어난 수명을 병상에서 보내지 않으려면 건강관리에 매진해야 한다. 보통은 아무런 질병이 없을 때 건강을 돌본다는 의미로 ‘무병식재(無病息災)’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때는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과신해 별다른 준비를 안 하고 무리하게 된다. 건강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는 은퇴하고 나서 체력이 떨어지고 가벼운 질병을 하나 정도 갖게 됐을 때다. 이때부터라도 건강관리에 힘쓰면 장수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일병식재(一病息災)’라 한다. #2 평생월급 은퇴 후 삶의 시기를 크게 3단계로 나눠 정년퇴직 후 부부가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는 ‘평생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야 한다. 1단계는 정년퇴직 이후부터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수령할 때까지다. 월급이 끊긴 뒤 공적연금을 받을 때까지의 소득공백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퇴직금과 모아둔 금융자산으로 매달 얼마의 소득을 낼 수 있는지 점검해본다. 2단계는 공적연금수령 기간이다. 부부가 받는 공적연금으로 기본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주택연금을 받는 방법도 고려한다. 3단계는 독거생활 기간이다. 본인이 먼저 사망했을 때와 그 반대의 경우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본다. 이런 점검을 통해 퇴직 후 부부가 사망할 때까지 소득이 얼마나 확보되어 있는지 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며 평생소득을 만들어가야 한다. #3 딴 지붕 한 가족 자녀들도 나이 든 부모와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지만, 부모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반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주 먼 곳에 떨어져 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방금 끓인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에 떨어져 살면서, 프라이버시는 지키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부모·자식 관계가 일상화되고 있다. 한 지붕 아래서 얼굴을 맞대고 사는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벗어나, 다른 지붕 아래 살면서 보고 싶을 때만 보는 ‘딴 지붕 한 가족’이 보편화되고 있다. ◇ By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조명기 수석연구원 #4 '100세' 보장 민간 건강보험으로 탄탄한 의료비 보장을 해놓은 이가 많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연장돼 100세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며 과거에 해둔 보장이 불충분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비 보장이 80세까지만 되어 있는 경우다. 특히 고령화 후기로 접어들면 간병비도 늘어난다. 이에 10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비와 간병비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5 '4% 인출' 법칙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그동안 저축한 은퇴자산에서 자금을 찾아 써야 하는 은퇴자가 많아지고 있다. 은퇴자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는 평생토록 소득이 고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때 한정된 은퇴자산에서 매년 생활비로 인출할 수 있는 금액을 알려주는 법칙이 있다. 일명 ‘4% 법칙’이라고 하는데, 은퇴 직전 자산의 4%를 기준으로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금액을 더해 인출하면 평생토록 소득이 고갈될 우려가 없다는 법칙이다. 인출하고 남은 은퇴자산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소 달라지겠지만 은퇴자의 생활비 인출 범위를 대략적으로 가늠하는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6 버킷 전략 시니어도 젊은 시절에는 자산운용에 할애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은퇴 이후엔 투자 실패 시 만회할 시간이 부족해 적극적 자산관리를 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산관리를 소홀히 했다가는 보유한 자산이 생전에 고갈되는 장수 리스크에 빠지게 된다. 이럴 때 은퇴자산을 인출 시기별로 나누어 각각 달리 관리하는 이른바 ‘버킷 전략’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당장 써야 할 자금은 현금성 자산으로, 앞으로 10년 이내에 꺼내 쓸 자금은 각각의 인출 시기까지 운용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유한다. 나머지 자산은 향후 10년 이상 운용 가능하게 되어 더 적극적인 투자관리를 할 수 있다. 이 방법을 버킷 전략이라 하는데 최근 외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 By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박 진 소장 #7 장수리스크, ‘일’로 대비하자 오래 살게 되는 상황에 대한 리스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반드시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관계와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일’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전 세계 1위이고, 이 중 47%, 즉 둘 중 한 명은 절대빈곤을 겪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재능기부 등의 일이라도 하면서 지내는 것이 좋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가계에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다. #8 발품을 팔아야 한다 대부분 금융기관에서는 매월 시장의 동향과 좋은 투자 상품 등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 퇴직 후 시간이 여유로운 시니어는 이런 프로그램을 직접 찾아다니며 들어보고, 자신이 거래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담당 직원에게 관심을 가져볼 만한 상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고 정보를 얻어 활용해야 한다. 이때 투자 결정을 할 때는 한 사람에게 들은 정보만을 과신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 정보를 같은 기관의 다른 직원이나 타 기관 직원에게 반드시 크로스체크하자.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투자 종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담당 직원에게 “왜 올랐나요?”, “왜 떨어졌죠?” 등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다음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 By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골든라이프연구센터 황원경 센터장 #9 합리적 인출전략 기대수명 연장으로 늘어난 노후생활기, 에이징인플레이스의 확산 등에 따른 새로운 영역의 필요노후자금 등이 발생하면서 합리적 노후자금 인출전략 수립이 중요해졌다. 새로운 자산 증가나 소득 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 보유한 자산으로 여생을 살아가기 위한 인출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인출전략 수립에 앞서 보유자산 진단, 예상되는 자산 유출 진단, 노후 라이프스타일 결정 등의 과제가 선행되어야 인출전략 수립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10 은퇴 후 기간 세분화 100세 시대라 할 정도로 기대수명이 증가하고, 노후생활기도 늘어나고 있다. 시니어 재무 설계에 대한 접근이 바뀌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지금까지는 은퇴 후 기간을 하나의 통으로 보고 재무 설계를 추진해왔으나, 이제는 개인의 자산 현황, 활동성 정도, 인생계획 등이 반영된 기간 세분화가 필요하다. 재무 설계는 이러한 분석 아래 시도해야 하며, 아울러 노후자금 인출전략을 세울 때도 주요 자료로 참고해야 한다. #11 현금 가능한 고정수입 유동화 은퇴는 고정수입 창출에 큰 변화를 발생시킨다. 근로자의 경우 근로소득이, 사업자의 경우 사업소득이 발생하다가, 은퇴 후에는 초기 연금이나 금융자산의 이자소득 등으로 수입이 창출된다. 이후에는 금융자산, 부동산자산 순으로 유동화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가구주 연령 60세 이상 가구에서 부동산자산 비중은 80%에 이른다(2016년 3월 통계청 기준). 이를 노후자금으로 유동화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가구가 거치게 될 것이다. 자산 감소와 유동화 시기 점검으로 재무 설계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 2018-03-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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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의 악몽 노후 파산>
- ‘노후파산’이란 글자 그대로 ‘의식주 모든 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노인의 비참한 삶’을 말한다.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만든 책이다. 장수국가이고 노후 정책이 잘 되어 있다는 일본의 숨겨져 있던 현실이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원래부터 빈곤했던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열심히 살았고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수명이 늘어나다 보니 수입은 줄고 어중간한 상태에서 살다가 한계에서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아주 가난하면 국가에서 보조해준다. 그러나 이런 노인들은 집이 한 채 있다는 이유, 저축 잔액이 50만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국가 보조 대상에서 제외된다. 물론 밑바닥까지 가면 국가 보조를 받을 수 있지만, 보잘 것 없는 집 한 채와 약간의 저축액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다. 물론 집을 팔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추억이 깃든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기서 여생을 보내다가 집에서 죽고 싶은 것이다. 팔아 봐야 큰돈도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저축액을 50만 원 이하로 줄이면 보조를 받을 수 있으나 배우자의 장례비 등으로 준비하고 있는 돈이다. 그러므로 못 줄인다. 저축액이 제로가 되면 그야말로 절벽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므로 돈을 아껴서 쓰고 절벽에 가는 것을 늦춘다. 결국 돈만 있으면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그러나 노인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돈이 없어서 택시비가 무서워 못 타고 병원에도 못 간다. 돌봄 서비스도 충분히 못 받는다. 노후 파산이 겁나는 것이다. 그러다 죽는다. 또 하나는 노인 건강 문제이다. 노인들은 병을 안고 산다. 혼자 사는 노인이 병에 걸리면 돌봐줄 사람이 없다. 병원에 가면 치료비가 엄청나서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진다. 다행히 병이 낫는다 하더라도 병원비를 내고 나면 돈이 없으니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일찍 퇴직하면서 동반 파산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연금에 기대어 근근이 먹고는 살지만, 취업이 그리 쉽게 될 리 없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기생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다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나마 나오던 연금도 안 나온다. 노인도 되기 전에 파산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도 독거 노인 600만 명 중에 그나마 생활보조를 받는 사람은 70만 명 정도 되고 그 나머지는 연금만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들이란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할 때는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수술을 받거나 삐끗했다 하면 바로 노후 파산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부류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참으로 대단히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젊은 날 열심히 일해서 받는 돈이므로 떳떳하다. 만약 국민연금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자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것이다. 이미 투자한 원금은 다 까먹고도 죽을 때까지 물가상승률까지 감안해서 계속 나온다니 대박이 아닐 수 없다. 그 자금 조달을 보면 이미 자녀들 세대의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 2017-05-1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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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경고
- 일본경제신문 기자 출신으로 30년간 미국, 한국 등지에서 활동했던 타마키 타다시가 쓴 책이다. 현재 법무법인 광장에서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일본과 한국은 비슷한 점이 많고 일본이 앞서간 것을 한국이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3만2천 달러이고 한국이 2만7천 달러이니 14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일본이 한국보다 14년 앞서간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도체나 액정, 부문은 이미 한국이 앞서 있고 조선 등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부문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최근 한국의 저성장률, 고령화, 저출산, 디플레 등에서 일본이 겪은 고통을 답습하는 것 같아서 일본의 경험이 더 궁금했다. 일본은 앞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 고통이 터널을 겪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맹추격해서 격차를 크게 줄였으니 이제는 우리도 구조도 비슷하고 이미 여러 부문에서 그런 조짐을 보인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아파트 가격은 반 토막이 나고, 팔리지 않은 집은 많은 수가 빈 집이 되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다는데도 여전히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오르고 있다. 물론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하거나 재테크 수단으로 아파트를 청약하는 수요가 많아 가계 부채가 위험수준이라는 경고는 늘 있다. 필자도 현재 사는 집 외에 부동산을 언제 처분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일본과 같은 궤도로 간다면 당장 팔아야하지만, 한국은 일본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 망설이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귀중한 노하우를 쌓았다. 일본 물가가 싸다고 느껴지는 것은 환율의 변동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는 줄어들고 극심한 가격 경쟁 속에 가격 파괴 현상이 일어났다. 비싼 명품보다는 실용적인 가격에 고품질을 원하는 세태에 맞춰 등장한 ‘유니클로’가 성공한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 물가가 비싼 이유는 한국은 아직도 유통업이 공급자 위주인데다 가격 파괴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본다. 일본 기업들의 흥망성쇠도 참고할 만 하다. 카메라 필름 사업이 주 사업이던 후지필름이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도산의 위기를 맞아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는 많은 참고가 된다. 필름의 주원료가 콜라겐이라 안티 에이징 화장품을 개발했다든지, 필름 기술을 활용하여 평판 디스플레이 보호 필름을 개발한 일 등이다. 활발한 M&A를 추진하여 40여 개 사를 사들인 것도 새 출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사진 필름의 양대 산맥을 이루던 코닥이 도산하고 만 것에 비하면 회사의 대표 제품이 사라져도 살아날 길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20년에도 불구하고 GM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회사로 등극한 토요타 자동차, 미국의 일개 국가 체인으로 시작했지만, 경영난에 봉착한 미국 본사를 사들여 성업 중인 세븐 일레븐의 성공 사례 등도 참고할 만 하다. 소프트 뱅크는 스마트폰에 탑재하는 CPU나 통신용 반도체 설계회로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90% 이상이라는 영국의 반도체 대기업 암(ARM)을 한국 돈 약 35조라는 대규모 합병을 성사시켰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이런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정치에 발목이 잡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 2017-03-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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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 가이드① 왜 은퇴재무설계인가?
- 은퇴의 시작은 여행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사전 체크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김태우 한화생명 은퇴연구소 부소장 평균수명이 50세를 조금 웃돌던 1960년(남 51.1세, 여 53.7세)에 5070은 그야말로 뒷방 늙은이였다. 인생 100세 시대를 맞이한 지금 5070은 액티브 시니어로서 인생 황금기의 주인공들이다. 반백년 만에 완벽한 신분세탁이 이뤄진 셈이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는 라는 저서에서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올해 김형석 교수의 나이는 98세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 정도(78.3%)는 70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에 5070은 노년으로 넘어가기 전의 ‘신중년’인 셈이다. 지금의 5070세대는 그 전까지 일과 가족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을 살지 못했지만, 50세를 넘기면서 ‘신중년’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문제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경제적 토대다. 5070 액티브 시니어가 2040일 때는 월급이라는 끊이지 않는 현금흐름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아직 현역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5070은 여전히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겠지만, 이미 은퇴한 5070은 사정이 다르다. 안정적 현금흐름이 끊긴 상태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답습하며 모아놓은 돈을 빼내 쓰는 행위로는 평안한 노후생활을 장담하기 어렵다. 현역 시절 안정적인 생활이 노후에도 이어지기 위해서는 5070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특히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지위를 노후에도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재무설계는 재무 상황을 파악하여 관련 목표를 세우고, 이에 맞추어 구체적인 자금 준비 등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5070세대가 이전까지는 월급을 통해 재테크, 저축, 목돈 중심의 재무설계를 해왔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 가치관의 재무설계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5070세대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를 특별히 ‘은퇴재무설계’라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는 먼저 5070세대에게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은퇴재무설계’가 필요한 이유 5가지 첫째, 속성이 다르다. 재무설계 측면에서 5070세대와 2040세대는 그 속성이 다르다. 2040세대가 샘물이 계속 솟아나는 우물이라면 5070세대는 더 이상 샘물이 솟아나지 않는 우물이다. 5070세대가 자신의 우물에서 죽을 때까지 목을 축이기 위해서는 막혀버린 샘물이 다시 나오도록 다른 길을 뚫거나, 우물의 물이 썩지 않은 상태에서 고갈되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 속성이 다른 2040세대 때 해오던 재무설계를 5070에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패션쇼에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2040 시절에 고수익·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로 재미를 봤다고 해서 지금도 그렇게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5070 은퇴재무설계는 모아둔 자산을 어떻게 소비하고 지출할 것인가 하는 현금흐름 중심의 재무설계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현역 때인 2040 시절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음악이 바뀌면 춤도 바뀌어야 한다(When the music change, So does the dance)”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을 노멀(normal) 시대, 그 후부터는 경제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고 해서 뉴노멀(new normal) 시대라고 한다. 최근에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져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예측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뉴애브노멀(new abnormal) 시대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 5070세대가 살아왔던 노멀 시대는 어디에 투자하든 무슨 장사를 하든, 그리고 저축만 열심히 해도 돈을 불릴 수 있는 시절이었고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재무설계였다. 1980년에 시중은행의 평균금리는 24%였다. 5년 만기 재형저축상품의 금리는 무려 36%였던 적도 있다. 목돈을 만드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리는지를 간단하게 알아보는 방법으로 72법칙이 있다. 72법칙은 원금이 2배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계산하는 공식으로 ‘72÷금리=기간’으로 산출한다. 과거 금리가 24%였던 시절에 1억 원을 예금해두었다면 원금은 3년(72÷24=3) 만에 2배로 불어난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어떨까? 예금 금리를 2%로 가정하더라도 원금을 2배로 만드는 데 36년(72÷2=36)이나 걸린다. 예전처럼 예금으로 자산을 급속히 늘려가는 시대는 끝났다.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모아놓은 한정된 자산으로 긴 노후를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엔 은퇴 자금으로 제법 큰돈을 모아놓았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은퇴할 때 노후자금으로 3억원을 준비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은 매년 2400만원을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고, 물가상승률은 2%라 가정하자. 이 사람이 3억원에서 언제까지 노후생활비를 꺼내 쓸 수 있을까? 이는 3억원의 운용수익률에 따라 달라진다. 3억원을 예금도 적금도 아닌 자신의 금고나 장롱에 넣어두고 사용할 경우(운용수익률 0%) 약 11년이면 소진된다. 운용수익률이 2%일 때는 12년, 4%일 때는 14년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7%일 때는 약 20년으로 노후자금 사용기간이 늘어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요즘은 노후생활비를 이자로 조달하며 살아가는 금리생활자의 설 자리가 사라졌음을 뜻한다. 보다 적극적인 운용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셋째, 수명 증가 속도를 간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100세 이상의 어르신은 몇 명일까? 통계청(2016) 자료에 따르면 3159명이다. 90세 이상 인구는 이보다 약 50배 많은 15만 명 정도다. 100세 이상 인구는 5년 전에 비해 72%, 90세 이상 인구는 67% 증가했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대수명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1980년에 66.1세였던 기대수명은 2015년 기준으로 82.1세로 2년마다 기대수명이 1년씩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은 금세기 안에 인간의 평균수명이 120세, 심지어는 140세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5070세대가 2040 시절에 경험했던 것처럼 퇴직 후 10~20년을 더 산다는 전제로 노후를 준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5070세대 중 액티브 시니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의 기대수명은 더 길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서울대 의료관리학연구소와 건강보험공단 분석에 따르면, 소득이나 거주지역에 따라 기대수명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상위 20%에 속한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3.7세로 소득 하위 20%의 기대수명(77.6세)보다 6년이나 더 길다. 한마디로 부자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2011년에 상영된 이라는 영화를 보면 돈으로 인간의 수명을 거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위 1%의 부자들은 불로장생(不老長生)하고, 나머지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넷째, 가계 재무상태가 적절치 못하다. 5070세대는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 세대는 전쟁과 굶주림, 경제개발과 IMF 경제위기 등 롤러코스트와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고도 경제성장기에 축적한 자산은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다. 통계청 ‘가계금융조사(2016)’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자산은 4억4302만원, 부채는 8385만원으로 순자산이 3억5917만원이다. 60대 이상은 자산 3억6648만원, 부채 4926만원, 순자산 3억1722만원이다. 5070세대는 평균적으로 3억원 정도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지 않은 액수다. 문제는 자산의 구성이다. 50대는 전체 자산의 69%가 부동산이고, 60대의 부동산 비중은 79.1%나 된다. 60대 이상의 경우 금융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금융자산은 1656만원에 불과하다. 전형적인 ‘하우스 리치(house rich)’, ‘캐시 푸어(cash poor)’ 현상이다. 자산은 많으나 현금이 없는 것이다. 자산으로부터 현금흐름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그마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도 파산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어떻게 하면 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을까? 5070세대의 가장 큰 숙제다. 다섯째, ‘노후난민’만은 피해야 한다. 지금은 5070세대가 액티브 시니어로서 충분한 생활기반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80세 이후에도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란 보장은 없다. ‘노후난민’은 은퇴 후 자산이 계속 줄어드는 바람에 급기야는 의식주 같은 기본생활을 충족할 만한 자금조차 없는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돈과 수명의 경주에서 수명이 이기는 바람에 노후파산이라는 역설에 직면하고 만다. 적잖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명과의 경쟁에서 돈이 지도록 만드는 원인은 뭘까? 자산관리 소홀, 의료비 부담, 자녀부양 문제 등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자산관리 소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요즘 같은 시대에 안전하다는 이유로 자금을 원금보장형 상품에 묻어두고 곶감 빼먹듯 빼먹으면 고갈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안전심리가 노후난민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는 셈이다. 일에서 은퇴했다고 투자활동까지 막을 내리면 곤란하다. 은퇴 이후에는 나를 대신해 돈이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은퇴 및 투자전문가인 노지리 사토시는 노후난민을 피하는 방법으로 개인의 삶을 은퇴 전과 은퇴 후의 2단계로 구분하지 말고 3단계로 구분할 것을 제안한다. 즉 ①직장생활로 ‘돈 버는 시기’, ②은퇴 후 투자를 통해 자산을 불리는 ‘자산 투자기’, ③투자활동을 끝내고 불린 자산을 느긋하게 소진하는 ‘완전 은퇴기’로 구성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면서 불려나가는 ‘자산 투자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지리 소장은 은퇴 후에도 20년 정도는 자산을 불려나간다는 생각으로 투자를 계속하고, 75세쯤에야 투자로부터 은퇴를 선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2. 의료비 부담: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관련 생활비는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만 의료비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등으로 건강관리를 해보지만 도적처럼 슬며시 찾아오는 것이 ‘노후 질병’이다. 게다가 꽤 큰돈까지 삼켜버린다.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1인당 월평균 진료비는 30만2904원으로 전체 인구의 1인당 월평균 진료비(9만9315원)보다 3배 이상 많다. 70세 이후 보건의료비 지출은 소비지출의 15.5%나 차지한다. 노인이 금융자산의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어 노인 부국이라 불리는 일본에서조차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40년간 저축과 연금을 통해 노후를 대비했으나 배우자의 질병, 자녀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의 문제로 노후에 파산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 사회문제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의료비 지출은 일정연령이 되면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과 오래 살수록 위험이 급증하고 정도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자녀부양 문제: ‘73만7000원!’ 25세 자녀를 둔 부모가 한 달 자녀에게 쓰는 부양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성인 자녀를 둔 부모 10명 중 4명은 학교를 졸업했거나 취업, 결혼한 자녀를 계속해서 부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자녀가 사회에 진출해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면 부모의 자녀부양 의무는 끝나고, 부모가 노인이 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선순환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요즘은 캥거루족, 부메랑족이란 단어가 유행할 만큼 부모가 성인 자녀를 돌보는 역부양 현상이 연출되고 있다. ‘자녀부양’과 ‘부모봉양’이란 ‘더블케어(double care)’ 현상에 직면해 있는 5070세대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인다.
- 2017-03-02 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