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지난주, 파리에 있는 딸네 집에 다녀왔다. 사위가 출근한 후 다섯 살짜리 손녀는 장난감 전자피아노를 연주하며 필자에게 춤을 추라고 졸랐다. 그래서 음악에 맞춰 그동안 몰래 문화센터에서 배운 룸바를 신나게 추고 있는데, 주방에서 돌아온 딸이 그 장면을 봤다. “어? 아빠가 이제 춤을 추실 줄 아네!” 하면서 대학 시절 스윙을 추었던 딸이 필자에
서울 어느 단체에서 어르신 무료취업 상담실을 운영한다고 광고를 이곳저곳에 내 걸었다. 모집직종을 보니 경비,청소,주차관리,요양보호사,식당보조,지하철택배,치과기공배달,기타직종이라고 적혀있는데 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직종이 총 망라되어있다. 더 추가한다면 농어촌 일손 돕기 외에는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어르신을 모신다고 하면서 나이제한으로 70세까지만 뽑는다
‘꽃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데…’
나의 명동 쉘부르 입성 즈음 대한민국은 온통 전영 씨의 ‘어디쯤 가고 있을까’의 나라였다. 그 노래 하나로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때 ‘쉘부르’를 빛내던 전영 씨였기에 내 상업적인 무대의 시작은 이 노래와 함께 출발한다.
나와 비슷한 시절을 보낸 청춘들은 한 번쯤 다녀갔을 명동의 통기타 생맥주
목적지는 충청남도 부여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묻힌 시인 신동엽을 만나기 위해서다. 서울남부터미널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여행의 설렘을 더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단풍잎은 가을을 보내기 싫다는 듯 나뭇가지 끝에 겨우 매달려 몸을 흔든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호젓한 부여에 도착했다.
부여시외터미널에서 신동엽문학관까지의 거리는 멀지 않다. 5분
“하루에 한 가지 취미를 즐기면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외국 속담이 있지요. 누구나 현직에 있을 때는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년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퇴직 이후 직장 동료나 후배·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인데, 이런 때일수록 나를 즐겁게 할 수 있는
197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디바 정미조가 오랜 우회로를 거쳐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다. ‘개여울’과 ‘휘파람을 부세요’와 같은 다양한 히트곡들이 가수 정미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르겠지만, 사실 그녀는 가수로서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화가로서의 인생 2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인생의 제3막에서 가수로 돌아온 그녀
어느 날 인생 이모작을 잘 준비했다는 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부분이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또 죽을 때까지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는 것. 하기 싫은 일이나 시험을 위해 하던 공부에서 해방되었으니 허락된 시간을 누리자는 생각이었다.
인문학 책을 함께 읽고 나눌
나이 들수록 근육의 양이 줄어든다고 한다. 근육의 양은 청장년 때 정점을 찍었다가 일 년에 1%씩 줄어 이론적으로 80세가 되면 근육이 제로가 되어 모두 없어진다는 것이다. 원래 남성보다 근육의 양이 적은 여성들의 경우는 그나마 근육이 남성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여성들이 더 근육 운동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도 체중은 줄지 않는 것은 근육 대신 체
모든 잡기에는 수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고수는 오래 배워서 수준이 올랐을 수도 있고 소질이 남달라 빨리 수준을 높였을 수도 있다.
동네 당구 클럽에서도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수준 차이가 있는 사람들과도 칠 기회도 생긴다. 그러면 고점자들은 일단 꺼려한다. 하점자들과 쳐 봐야 배울 것도 없고 하점자가 너무
20여 년 전 댄스스포츠를 한창 즐기며 배울 때 세계적인 프로 선수들은 우리나라 방문을 기피했었다. 어차피 극동에서 벌어지는 아시안 투어에서 일본에는 가지만, 한국은 건너뛰기도 했다. 그러던 프로선수들이 불과 몇 년 전부터 한국에 자주 온다. 한국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한번 오면 고액의 시범료를 받을 수 있고 온 김에 레슨비를 두둑이 챙겨서 갈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