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쓰인 ‘용돈’의 정의는 ‘개인이 자질구레하게 쓰는 돈.
또는 특별한 목적을 갖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다.
말 그대로 그 누구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뜻.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니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용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각기 다른 분야의 시니어 남
갑과 을은 1976년 3월 9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다. 둘 사이에는 성년인 자녀 3명이 있다. 그런데 갑은 2000년 1월경 집을 나가 그의 딸을 출산한 병과 동거를 시작했다. 을은 갑이 집을 나간 후 혼자서 세 자녀를 양육했다. 직업이 없는 을은 갑으로부터 생활비로 지급받은 월 100만원 정도로 생계를 꾸려갔지만, 갑은 2012년 1월경부터 생
자식과 같이 산다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길 것 같다. 하지만 배우자와 둘만 살자니 뭔가 적적한 느낌이 올 때도 있다. 손주 녀석들이 보고 싶어 전화기를 들지만, 막상 보려고 하면 귀찮아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한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여유로운 황혼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 거기에 자녀 내외와의 갈등이
최근 들어 성인이 된 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황혼의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함께 사는 이유는 다양하다. 두 세대 이상의 더부살이는 우선 경제적으로 지출을 줄여준다. 자녀가 맞벌이를 한다면 양육에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대신 크고 작은 갈등도 함께 많아진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현명한 ‘더부살이 방법론’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최
요즘 결혼하는 세대들은 맞벌이가 많지만 지금의 40~50대만 해도 외벌이가 대부분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신부들도 결혼 후에는 가사와 출산, 육아 등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시의 세태였다. 30여 년 전만 해도 외벌이 남편들은 월급봉투에 가득 현금을 담아 아내에게 갖다주는 뿌듯함과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봉투째로 넘기는 남편도 있었지만
1946년 양력으로 11월 3일에 태어났다. 경주 외곽에 있는 나원, 외갓집에서였다. 아버지는 나의 출생이 당신의 호르몬 작용의 산물이라 했고, 엄마는 운명이라고 했다. 1947년에 서울로 갔고 1950년 한국전쟁이 나서 다시 나원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아궁이에 검은색 토탄 가루를 뿌려가며 밥을 짓던 것과 고무줄 장사를 따라다녔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살아가면서 자주 부딪히는 일이 돈 부탁이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으면 돈 부탁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대부분 거절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부탁이라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놀부같이 행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인심 좋은 키다리 아저씨 역할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본주의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 미국은퇴자협회(AARP)가
음악이 바뀌는 데 따라 우리는 어떤 춤을 추고 있는가. ‘저금리와 고령화’ 또는 ‘5저(저성장·저물가·저금리·저고용·저자산가치) 2고(고령화·고소득화)’로 표현되는 경제 및 금융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의 투자전략과 성향은 바뀌고 있는가. 지금까지 필자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내가 가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면
경제성장이 불투명한 지금, 부모에서 자식으로, 손주에게 자산을 배분하는 ‘세대간 원조’가 필요한 시대이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밝힌 부등식 자본의 수익률(r)이 경제성장(g)을 능가한다는 의미[r>g]다. 즉 자본가가 주식과 투자로 번 돈이 일반국민의 소득 성장보다 커져 격차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 이런 격차의 시대에 할아버지와
“손녀 일링(당시 7세)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의 학자금으로 내 주식의 배당금에서 1만 달러를 준다. 아들 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 자립해서 살아가거라. 딸 재라에게는 유한중·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준다. 아내 호미리는 딸 재라가 노후를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내 소유 주식 14만 941주는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