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계약서 한 줄 허투루 본 적 없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

아들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몇 백만 원을 이체한 뒤, 72세 이모 씨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다.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당한 걸까.
60대, 왜 유독 표적이 되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2025년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단일 연령대의 보이스피싱 피해 비중은 30.6%로 전체 연령대 중 1위로, 피해자 10명 중 3명가량이 60대 이상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집계로는 2025년 1분기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3116억 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2.2배 늘었다.
"쉽게 속아서"가 아니라 "신뢰 수준이 높아서"
흔히 고령층이 심리적으로 취약해 사기에 잘 넘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연구 결과는 다르다. 심예은·최은실 연구팀은 2023년 ‘한국심리학회지: 발달’에 발표한 논문에서 20~86세 성인 299명을 성인초기·중년기·노년기로 나눠 사기 취약성을 비교했다. 그 결과 노년기는 오히려 성인초기·중년기보다 경계심과 충동성이 낮게 나타났고, '세상은 정의롭다'는 믿음은 노년기가 성인초기보다 높았다.
즉 판단력이 흐려져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쌓아온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방심의 틈을 만드는 것이다. 자녀나 지인을 사칭한 목소리에 먼저 의심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함정, 디지털 격차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연구보고서는 노년기의 디지털 소외 현황을 짚으며, 정보 활용 경험이 적을수록 온라인·모바일 환경에서 진위를 확인할 수단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했다. 원격제어 앱 설치, 가짜 은행 앱, QR코드 결제 요구처럼 신종 수법일수록 화면 너머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디지털 확인 습관’ 자체가 없으면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판단력이 아니라, 확인할 도구와 경험의 격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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