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살아온 인생 속에서 ‘고수’라 불릴 만한 영역은 존재한다. 스스로 고수라 자부할 만한 재능이 있다면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해보면 어떨까. 재야에 숨은 고수들을 널리 알리고, 고수들의 손길이 필요한 소비자를 매칭해주는 O2O플랫폼 ‘숨고’를 소개한다.
도움말 숨고(soomgo)
최근 ‘재능거래’, ‘재능마켓’ 등으로 불리며 전문가와 소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촌놈은 모진 고생을 감내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고향에서 14년을 살고 타향인 서울에서는 무려 50여 년 이상을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늘 정년퇴직 후의 귀향 생각으로 가득했다. 혼탁한 환경과 인심 사납고 삭막한 서울 생활을 접고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귀촌이나 귀향을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있는 H 아파트에 선배가 산다. 가끔 만나 식사를 하곤 하는데 음식점을 정해서 만날 때마다 애를 먹는다. 한번은 H 아파트 앞에 위치한 한우 음식점에서 보자 했다. 유명 음식점이라 손님이 많아 금방 찾을 거라고 했는데 아파트 앞을 두어 바퀴 돌고도 못 찾았다. 전화를 했더니. 계속 “아파트 앞”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중에 알고 보
4) 데이비드 워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1954~1992년)
화가, 사진작가, 영화제작자, 공연예술가, 에이즈 인권활동가로 활동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 가족에게 정신적, 성적 학대를 당했고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6세에 집을 나와 거리 생활을 했다.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했고 샌프란시스코와 파리에서 몇 달간 살다가 19
198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미술가 전시회가 네 개나 열리고 있다. 1980년대 뉴욕의 힙합 문화에서 발아한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 낙서화)와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거리 미술)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단체전으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스트 빌리지 뉴욕;
모두들 제 갈 곳으로 나간 후의 현관에 서서 이리저리 흩어진 신발들을 정리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네 명이건만 좁은 현관에 신발들이 가득 차 있으니 볼 때마다 정리하지 않으면 가히 잔칫집 현관이다. 특히 작은아들은 매일 입는 옷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신발 때문에 갖가지 구두와 운동화들이 현관과 신발장으로 들락인다. 내가 현관 신발정리를 자주 해야 하는
수도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날, 부산역에 도착했다. 위쪽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부산은 아직 초겨울 같았다. 평소대로라면 부산역 옆 돼지국밥 골목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먹고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은 초량이바구길에서 시래깃국을 먹기로 했다. 구수한 시래깃국을 호호 불어가며 먹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걷기 코스
부산역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들었다’고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는 최현숙(崔賢淑·62).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모든 사회적 통념과 가치관에 의심을 품었다. 가출을 반복하던 끝에 출가(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천주교 사회운동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과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을 거치며 진보정당 활동을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십 년간의
추억을 되돌릴 수 있는 이야기나 물건은 삶에 기쁨을 준다. 내게도 그런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빛바랜 사진 한 장이다. 신혼여행지 제주도에서 우리 부부를 태우고 다닌 택시기사가 찍어준 사진 한 장이 그중 하나다. 공개하기 부끄러워지기도 하나 일흔에 접어드니 부끄러움보다 추억의 소중함이 더 깊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도 같고 가슴도 설렌다. 그 곱
아내가 산부인과에서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큰 수술이든 작은 수술이든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다. 여자가 여성을 상징하는 유방이나 자궁에 칼을 댈 때는 여성이라는 심벌을 상실한다는 절망감에 우울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아내를 위로해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슬금슬금 눈치만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