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사랑에도 정답이 없다. 인생이 각양각색이듯이 사랑도 천차만별이다. 인생이 어렵듯이 사랑도 참 어렵다. 그럼에도 달콤 쌉싸름한 그 유혹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헤어질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랑에 준비된 사람이다.
2021년 12월,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 1월 폐암 진단을 받고 꼬박 1년을 투병한 후 그렇게 떠났다. 그와 내가 사귄 지 10년째 되던 해이기도 했다. 나의 지난 한 해는 벽두부터 그의 병간호로 시작됐고, 소생과 회복에 대한 간절한 소망에도 아랑곳없이 그가 떠나며 한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이렇게 새해가 희망 없이 밝았다.
장례를 치른 후, 간호를 하느라 1년 동안 함께 지냈던 그의 대전 집을 나와 다시 서울 내 집으로 돌아왔다. 환자를 돌보는 도중 간간이 들러 옷가지 등 필요한 것들을 챙겨가곤 했지만 그가 떠나고 나니 내 집 풍경조차 다르게 느껴졌다. 칫솔이나 면도기 등 내 집에 두었던 그의 소소한 물건이 눈에 들어온 탓이다. 이제는 영원히 주인 잃은 것들, 그의 부재를 상기시키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을 없애지 못하고 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두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아프니까….
그와 나는 20년 전 어느 기업인 모임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나름 단단한 사업체를 꾸리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이혼한 상태였지만 10년을 서로 바라만 보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썸을 탔냐고? 그건 아니고 좋은 사람이니까, 좋아 보이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겠거니 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해 겨울, 12월 중순의 첫눈 내리던 날, 첫눈치고는 늦었고 첫눈치고는 제법 눈송이가 실했다. 모임이 끝난 후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연히도 그와 나의 차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와 그렇게 가까이 마주한 것도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았다.
천년의 사랑이 시작되고
다소 어색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후 각자의 차에 올랐다. 운전석에 앉아 고개를 기울여 그가 먼저 나가도록 손짓을 해 보였다. 그는 또 그대로 내게 먼저 차를 빼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서로 그렇게 배려의 몸짓을 하다가 내가 먼저 차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의 시선까지 느껴져 더 당황스러웠다. 난감한 상황에 처한 내게, 무슨 일인지 잠시 지켜보던 그가 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별수 있나. 고장의 원인을 찾지 못한 데다 이미 밤늦은 시각이니 내 차는 주차장에 그대로 두고 그가 나를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깜깜한 밤하늘에 흰 눈이 별처럼 쏟아졌다. 우리 만남의 서곡이자 팡파르처럼. 나란히 함께 차를 타고 오던 시간이 의외로 편안했고,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다.
천생연분이란 촌스럽고 진부한 표현을 내가 할 줄은 몰랐다. 이혼 후 10년 만에 본격적으로 만난 그 사람, 이제야말로 하늘이 점지해준 짝을 찾았다고 믿었다. 그와는 모든 것이 잘 통했고 모든 것이 좋았으니까. 가치관, 취미, 식성, 관심사, 대화는 물론,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몸까지 잘 맞았다고 솔직히 고백하리라. 국내는 물론이고 코로나 이전에는 자유로이 해외여행을 다녔고 맛집이란 맛집은 죄다 섭렵했다. 전시, 공연, 독서 등 문화생활도 알뜰히 했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녀들이 각자 둘씩 있었지만 모두 독립해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 문제로 신경 쓸 일도 없이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관계였다. 느긋하게 나이 들어갔고 다가올 노후를 함께 설계하며 행복한 노년을 꿈꿨다.
사랑의 보험이 깨지고
그러던 그와의 화려했던 세상이 불과 10년 만에 흑백의 암전을 맞았고 그는 영원히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랑은 떠나도 삶은 지속되는 거라지만, 환갑도 한참 지난 내가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가 없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두망찰 길을 잃었다. 그가 없는 하늘 아래 나는 어떤 생을 살아야 할까. 혼자 산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와 나는 결혼한 사이는 아니지만 성혼 선언문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떠올린다. 견고한 우리 사랑 한가운데 죽음이 끼어들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젊지 않은 나이였으니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미 노년의 문턱에 들어섰다. 그가 없는 나의 노년, 그 막막한 길을 홀로 걸어갈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부쩍 늙어버린 기분이다. 지난 1년간 그의 병간호로 쇠약해진 탓도 있겠지만, 사랑을 잃은 슬픔과 삶의 막막함 때문이리라. 홀로 늙어감,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나이 든 여자의 사랑은 사랑을 하는 중에도 버겁다. 더구나 우리는 동갑이 아니었나. 여자로서, 그것도 젊지 않은 여자로서 같은 나이의 남자에게 위축되지 않는다면 약간은 거짓이리라. 내 경우 역시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관하게 문득문득 내 나이를 의식하곤 했다. 아니다,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라고. 내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고 해서 그와 나의 사랑에 무슨 문제가 있었단 말인가. 그와 만나는 동안엔 오히려 내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그가 가고 나니 내 나이가 갑자기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 나는 혼자 남겨진 ‘나이 든 여자’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사랑은 보험이라는 말이 있다. 홀로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랑할 상대를 찾는다는 뜻이란다. 더는 다른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기에 성실한 보험 납세자처럼 꼬박꼬박 애정을 쏟고, 서로를 챙기다 보면 보험의 만기가 도래하듯 안온한 노후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들린다. 노년의 원만한 부부가 전형적인 그 모습이리라. 그렇다면 나는 정성스레 부어가던 보험이 중간에 깨져버린 것 아닌가. 새로 들 가능성, 새로 들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없다. 탈 수 있는 보험금 없이 홀로 노후를 맞는 대열에 내가 동참한 것이다.
만날 사람을 다 만났다면
어느 종교계 방송에서 환갑이 지나면 인생에서 만날 사람은 다 만난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라 할 때 소위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되면 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배우자가 되었든, 연인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맺어져 있는 인연을 일부러 끊어낼 필요는 없겠지만 혹여 기존 관계에서 자리가 비어 새 인연을 들인다 한들, 관계 맺기를 통한 성장판은 이미 닫혔다는 의미다. 마치 빠진 치아 자리에 임플란트나 틀니를 해 박는다 해도 치아 본연의 성질과는 무관하듯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이상 성장하고 누리고 진화할 수 없다면 더는 살아도 산 게 아니란 의미일까. 물론 그건 아닐 테지. 이제 저 너머의 존재, 신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겠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알아도 제약적이며 한계가 있었던 관계의 장막을 거둬내고 영성에 눈을 떠야 한다는 의미겠지. 그래야만 성장을 지속할 수 있고, 실상은 그러한 성장이 참 성장이라는 의미일 테지. 세속적 희로애락 속에서 울고 웃던 나를 관찰자, 주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교정하고 회복되도록 하는 과정일 테지.
내 경우라면 그의 빈자리를 하나님 혹은 부처님으로 채워야 한다는 뜻일 테니 교회나 성당, 절에 나가 위로를 구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그 얼마나 진부하고 맥 빠지는 소린가. 나는 지금 그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 간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외로움에 애간장이 녹아내릴 지경인데, 눈에 그 존재가 보이지도 않고 귀에 그 음성이 들리지도 않는 신을 통해 위로를 구하라는 말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공기를 뻐끔거리며 배를 채우라는 소리처럼 공허하게 들린다. 위로받기는 고사하고 왜 그를 내게서 빼앗아갔냐고, 이제 겨우 64세, 아직 죽음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나이의 그를, 자기 분야에서 드물게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를, 무엇보다 나와의 변함없는 애정으로 행복의 절정기를 누리던 그를 무슨 이유로 데려가야 했냐고 따지고 대들고 싶은 심정이다. 신도 질투를 하냐고, 그렇다면 신도 아니지 않냐고.
차라리 그와 혼인을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아내였다면 세상 떠난 그를 대신해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가족 내의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며 감당할 역할들로 사별의 아픔을 추스를 여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껏’ 그의 연인이 아닌가.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그 상실감과 무력감만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전부다.
다시 빛을 찾아서
슬픔에 겨워 탈진하는 하루하루 중에도 간간이 빛을 느낄 때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평안과 내적 안온함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실은 나는 그가 떠난 이후 성당에 다닌다. 매주 수요일마다 교리 공부도 한다. 신앙심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 그저 그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생전에 그는 신앙이 없었지만 왠지 성당에 가면 영혼이나마 그가 내 옆에 앉아 함께 미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지곤 한다.
올해로 나는 65세가 되었다. 10년 전 55세에 만난 그가 떠나고, 2022년의 출발선에 혼자 오도카니 섰다. 혼자라고 하지만 어쩌면 내 옆에는 신이 서 계실지도 모른다. 신은 무언의 침묵을 통해 나와 동행할 채비를 하고 계시는 걸까. 왜 신은 굳이 내 옆자리에 서려고 하시는지. 나는 그 사람 하나로 행복했건만. 하긴 연일 눈물로 어룽져 시야가 흐려진 내 눈엔 생의 완주 지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신의 손길에 의지해서 그 길을 가야 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누군가의 인도가 절실하다. 그러나 앞서 방송 내용처럼 나 또한 이제 더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동반자를 구하고 싶지 않다. ‘사람 대신 신’이란 결단에서가 아니라 또다시 그 존재를 잃고 슬픔의 늪에 빠져 허둥대거나 흐느적거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생 한 번으로 족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과 그리움, 그것은 너무나 혹독하기에.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기대수명에 따라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할 날도 함께 늘어나야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 은퇴를 미루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이에 은퇴한 시니어들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이 주목받고 있다. 탤런트뱅크는 ‘긱 경제’를 기반으로 한 일자리 중개 플랫폼으로, 고경력·고스펙 전문가와 기업을 매칭한다. 공장환 탤런트뱅크 대표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우리 사회는 건강과 전문성이 온전하더라도 20~30년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은퇴해야 하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지식이나 기술 등 능력치가 충분함에도 수십 년에 달하는 노년을 경제활동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에 절망과 무력감을 느끼는 시니어들이 많다.
이렇게 전문 경력을 가진 시니어 전문가가 은퇴 후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일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이 있다. 탤런트뱅크는 수십 년간 전문 분야 경력을 쌓아온 시니어들과 기업을 연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8년 모기업 ‘휴넷’의 사내벤처 형식으로 출범했다.
고용 패러다임의 변화
탤런트뱅크 서비스의 바탕에는 ‘긱 경제’(Gig Economy) 개념이 존재한다. ‘긱 경제’란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특정 프로젝트나 업무별로 정규직이 아닌 임시직 형태의 고용을 늘리는 경제 현상을 말한다. 프로젝트의 ‘문제 해결’ 방식에 초점을 맞춰 비효율적인 채용을 줄이고, 구직자는 원하는 업무와 시간을 선택해 효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긱 경제의 핵심이다. 탤런트뱅크는 전문인력 상시 고용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 고도의 비즈니스 문제가 닥쳤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프로젝트별로 매칭한다.
탤런트뱅크는 출범 이후 국내 ‘긱 경제’ 시장의 성장과 고용 패러다임 변화로 사업이 크게 확장하며 지난해 말 별도법인으로 분사했다. 사업 초반에는 고령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 은퇴 전후의 전문가에 우선 주목했지만, 현재는 ‘긱 경제’의 성장으로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전문가들이 탤런트뱅크를 찾고 있다. 등록 전문가 수는 1만 명을 돌파했고, 그중 서류전형과 1:1 심층 인터뷰 등 까다로운 내부 검증 시스템을 통해 인증받은 전문가는 4000여 명 수준이다. 현재 프로젝트 의뢰 수는 3000여 건에 달한다.
전문가와 기업 모두 만족도 높여
탤런트뱅크 서비스는 은퇴 후 새로운 조직과 환경에서 업무를 보는 시니어 전문가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선사하고 있다. 공 대표는 “인생 1막을 마친 전문가들에게 2막에 대한 대안은 없는 게 현실이다”라며 “은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데, 탤런트뱅크는 전문성을 살리며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은퇴하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시니어들은 풀(full) 에너지에서 벗어나 원하는 시간, 주기, 형식 전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긱 워커’의 삶에 더 만족하는 경향도 있다. 전문성을 갖췄다면 기존 연봉보다 높은 수입을 얻기도 한다. 공 대표는 “능력을 인정받은 전문가라면 주 1회 일하고 월 400~500만 원의 임금을 받기도 한다”며 “긱 워커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맡으면 월 1000만 원 이상의 수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지식·능력으로 자유로운 일상도 즐기고 전문성도 살려 일할 수 있는 것이다.
탤런트뱅크의 서비스는 재의뢰율이 60%를 넘어설 만큼 기업의 만족도 역시 높은 편이다. 탤런트뱅크만의 강점은 ‘고급’, ‘검증’, ‘신뢰’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까다로운 내부 검증 시스템으로 기업이 해결해야 할 문제, 전문가의 역량, 근무 조건, 인성 등을 사전에 철저하게 분석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업과 전문가가 함께 일하는 방법에 더 많은 유연성을 제공하고, 기업의 비즈니스 발전을 돕는다. 공 대표는 “단순히 헤드헌터가 인재를 추천하는 수준이 아니라, 해결이 필요한 ‘문제’에 맞는 전문가를 사전에 철저히 검증해 문제가 발생할 소지를 미리 차단한다”며 “이에 따라 한 기업이 동일한 전문가를 반복해서 의뢰하다가 채용하는 경우도 다수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양성도 목표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100년 넘게 사는 장수 시대에는 평생직장에 취직해 60세 전후 은퇴하는 현재 시스템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재교육을 통해 새로운 직종과 직장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에 탤런트뱅크는 전문가 교육을 통해 전문가들을 양성·육성할 예정이다. 공 대표는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전문가’와 ‘전문가가 될 사람’이다”라며 “현재 탤런트뱅크는 ‘전문가’에 집중해 서비스를 진행 중이지만 앞으로는 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탤런트뱅크는 향후 ‘온라인 자문 서비스’, ‘전문가 서베이 기반 시장 리포트’ 등 더 발전된 서비스 개발로 다양한 서비스와 고용 형태를 제공하여 긱 경제를 대표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도 ‘위드 코로나’와 함께 독립적으로 일하는 방식인 ‘긱 워커’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 대표는 은퇴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시니어들에게 “인생 1막이 끝나도 2막이 있다. 그동안은 2막을 시작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고, 당신이 쌓아온 전문성을 발휘할 서비스와 기회들이 나오고 있다”라며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 본인의 전문성으로 세상과 오래 소통하기 바란다”라고 전했다.
긴긴 산중 살림을 정리하고 충주 시내 복판에 있는 아파트를 정처로 삼은 것도 어쩐지 그답지 않지만, 술을 자못 꺼리는 기색이야말로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마주 앉자마자 술부터 목으로 털어 넣는 게 김성동(75)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객이 들고 간 술병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6, 7년 만에 재회한 참이다. 완연하기론 무자비한 세월이 그를 훑고 지난 뒷자리의 스산함이다. 백조 털처럼 희디흰 머리칼이야 개결한 느낌을 주지만, 눈빛에 실린 기운은 예전과 딴판이다. 억병으로 취하고도 몽롱해지는 일 없이 시퍼렇던 눈빛에 이젠 우수와 피로가 반반씩 얹혀 있다.
김성동은 시대가 낳은 소설가다. 시대를 대표할 지경으로 이름을 드날린 작가이기도 하지만, 질곡의 한 시대가 그를 문학의 바다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친이 살았던 시대의 파랑이 그에게까지 엄습해 평생의 족쇄로 작용했다.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문학이라는 쪽배를 얻어 타지 않았다면 벗어나기 어려웠을 굴레였다.
“나 같은 출신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겠나? 좀도둑, 부랑아, 또는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나에겐 그나마 재능이라는 게 있어 타락하지 않고 소설가로 살아온 셈이다.”
김성동이 말하는 ‘출신’이란 실로 광기에 찬 시대의 산물이며 천형처럼 가혹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빨갱이’의 자식, 불온한 씨앗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와중에 처형됐고, 남편의 이념과 이상을 공유했던 어머니 역시 지역의 여성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한 죄목으로 옥살이를 했다. 할아버지와 큰삼촌 역시 좌익 간부였다. 집안이 통째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으니 이후의 풍비박산과 후유증의 크기와 깊이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 김성동은 철들기 전부터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세상에 던져졌으며, 철들고 나서는 두려움과 외로움 외에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정서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주와도 같은 붉은 낙인. 삐딱한 시선들. 전망 부재의 미래. 무엇보다 괴로운 건 연좌제의 사슬이었단다.
“연좌제에 묶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없었고, 군인이 되더라도 장교가 될 수 없었으며, 사법고시에 붙을 경우에도 임용의 길이 막혀 있었다. 이게 연좌제에 따른 ‘삼불(三不)의 덫’이다. 출세를 꿈꾸기는커녕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막했지. 그래 고3 때 출가해 절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절 아니고는 갈 곳이 없었고, 중 아니고는 할 짓이 없었던 거다.”
승려 생활을 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했지? 장편 ‘만다라’로 문단과 대중을 사로잡았고.
“세상에서 박수를 치더라고. 돈과 명예도 얻었다. 이렇다 할 ‘쯩’을 가지기 힘들었던 나에게 소설가라는 ‘쯩’이 주어진 건 하나의 활로였다. 연좌제가 나를 문학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2018년엔 6권짜리 대하소설 ‘국수’(國手)를 출간해 저력을 과시했다. 자그마치 27년간의 집필을 통해 완간한 이 소설로 선생의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국수’를 완간한 감회가 각별했겠다.
“일을 좀 해냈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미심쩍긴 하지만 비로소 말년에 소설을 좀 썼다는 기분, 그런 거.”
미심쩍다?
“제대로 된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원래 15권으로 완성을 보려 했으나 미완에 그쳤으니까. 한 시대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강대하로 펼치고자 한 의도에 미달한 작품이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보다 아쉬운 건 순수한 조선말을 더 많이 찾아내 문장에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있을까?”
‘국수’는 조선 말엽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민중사적 관점으로 세밀하게 풀어헤친 작품이다. 세월 따라 허공으로 흩어진 전통사회의 토속어들을 푸짐하게 되살려내기도 했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이 지독한 집념으로 수집한 조선말을 문장에 대대적으로 도입했는데, 이는 ‘국수’가 가진 정체성의 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때 손에 든 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나는 김성동 소설의 애호가지만 ‘국수’를 다 읽지 못했다. 조선말들의 도도한 행진에 질려서다.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토속어들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소화하기 어렵더라. 평단의 반응은 어땠나?
“반응? 평론? 그런 거 거의 없었다. 평론은 고사하고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순수한 우리말들 앞에서 다들 그냥 나가떨어진 것 같다.”
진땀을 빼게 하는 작품이 ‘국수’만은 아니다. 김성동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구도소설 ‘꿈’에서도 조선말을 소낙비처럼 쏟아냈다. 원로작가 서정인은 ‘꿈’에 대해 말하길, ‘이를 악물고 읽었지만 완독에 실패했다’고 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선 독자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운 게 요즘의 독서 시장이다. 조선말을 과도하게 구사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전혀! 조선말에 관한 나의 관심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다. ‘찔레꽃머리’라는 조선말의 뜻을 아나? ‘모내기철’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조상들이야말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며 자생적으로 유전한다. 게다가 한글은 어떤 말이든 흡수하는 포용력을 갖고 있지 않나?
“요즘의 우리말은 이미 왜색과 양색에 물들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적어도 시인과 소설가라면 모국어의 원형을 지켜낼 책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나? 순교처럼 치열하게.”
작가라면 다들 개성을 돋우기 위해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글을 쓴다. 한국 작가들의 소설 품질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기만의 빛깔을 내는 작가가 드물더라. 하나같이 영어나 일본어 번역체 문장에 길들여져 개성을 느끼기 어렵다.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작품을 읽어보면 한 사람이 쓴 소설처럼 문체가 다 똑같더라고. 문장 한 줄만 읽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가 하나라도 있던가?”
김성동은 널찍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의자에 고즈넉이 앉은 그의 몸에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한 점 조각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벽마다 가득 채워진 책장. 심심파적으로 쓴 서예들. 그가 ‘성자’라 부르는 부모님 사진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그가 새벽마다 그 앞에 좌정하는 미륵불상 하나. 예전의 산중 살림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집 안 풍경이지만 뭔가 밋밋한 분위기다. 문장의 미화 작업에 도가 튼 반면, 환경미화엔 젬병이라 그저 어질러놓고 사는 건 여전하지만 생기의 함량이 예전과 다르다. 전에는 발이 달렸는지 날개가 달렸는지 책들이 우르르 책상과 방바닥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육필 원고 더미들이 덩달아 생동하는 스텝을 밝았다. 말하자면 전엔 창작 열기로 후끈했다. 그가 사는 곳이 창작의 천국 아니면 지옥임을 알게 했다. 한데 지금은 공기가 다르다.
연좌제와 사찰이 글 쓸 힘을 추동해
내가 아는 김성동은 소설이라는 기저질환을 앓는 이다. 온몸으로 소설의 현(鉉)을 탄주하는 인물이다. 소설이 써지지 않으면 마치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한 듯 몸을 떨며 절규하고, 날밤을 지새워 술을 마시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작품에 사무쳐 각혈과도 같은 넋두리를 토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다. 그의 술타령은 과도해 징그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순정한 문학정신엔 경이로웠다. 그런데 이제 소설을 손에서 놓았나? 75세란 물러설 나이? 그가 말하길 “힘이 빠져 소설을 쓸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소설은 기운이 있어야 쓸 수 있다. 난 ‘국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나이도 있고, 이제 일을 벌이기보다 정리하는 단계다. 절대적인 에너지를 갖고 소설에 몰입했던 시절은 저문 셈이다. 여전히 글을 쓰긴 한다. 소설 대신 역사 에세이를.”
올해 72세인 하루키는 새벽마다 1시간씩 마라톤을 한다더라. 재능보다 체력으로 승부를 내는 세계, 그게 소설 쓰기의 한 측면일지도.
“힘이 달리면 글을 물고 늘어질 수 없다. 단어 하나를 끝없이 파고드는 게 나의 글쓰기인데 그게 되지 않더라고. 몇 날 몇 밤씩 육필 원고를 쓸 수 있었던 과거의 체력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술 마시기도 힘에 부치더라.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필름이 딱 끊기거든. 뭘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소설을 쓰지 않는 선생을 예상하지 못했다. 죽는 그날까지 펜을 잡을 기세에 충천했었으니까.
“요즘 내가 평생 맛보지 못한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고? 연좌제 사슬이 풀렸기 때문이다. 2년 전에 어머니가 타계하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사찰(査察)에서 비로소 해방됐거든. 어머니 작고 전에는 매달 한 번씩 기관원이 찾아왔었다. 그 공적 라인이 사라지자 평온감이 몰려들더라고. 한편으로는 서운하던데!”
후련한 게 아니고 서운했다고?
“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평생 글 감옥에 갇혀 살았다. 목이 조여드는 것 같은 강박감을 가지고 소설을 썼거든.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유폐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소설이었으니까. 소설이 아니고선 살 수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연좌제와 사찰이 나로 하여금 글 쓸 수 있는 힘을 추동시켰다고. 그런데 사찰이 끝나자 긴장감이 확 풀리더군. 이게 소설을 쓸 힘을 앗아간 요인이기도 하다.”
비바람의 횡포가 있어야 꽃을 피우는 나무. 그가 체화한 창작의 생태계가 그쯤? 족쇄가 사라지자 맥이 풀려 소설 쓸 맛을 잃었다는 얘기에 삶의 역설이 느껴져 씁쓸하다. 감시와 억압의 공기를 마시며 우울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뒤늦게 찾아온 평온과 고통의 산물인 소설의 빛,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값진 인생의 열매일까.
노년이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때다. 눈길이 순해지고, 적당한 둔감으로 인생을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터인데, 김성동의 구름처럼 나른한 눈빛으로 보자면 그는 어느덧 바깥보다 안을 무심히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졌나 보다. 맵찬 언설을 예사로 쏟아냈던 그의 입에서는 이제 온순한 언어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이런 그를 여전히 기습하는 건 외로움, 또는 허무다.
“불경(佛經)은 가르치길 일체가 무상하니 집착을 놓으라 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집착에서, 욕망에서 벗어나겠나? 소설이라는 반성문을 통해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보기를 거듭했지만 가벼워지기 어려웠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건 늘 외로움이라는 놈이었다. 실존의 고독, 이건 어쩔 수 없는 화두다. 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것이고.”
보이는 것 없는 길 위에서 홀로 앓기. 인생사 그렇게 덧없더라는 얘기다.
습관이라는 단어를 보고 있노라니 가파른 언덕이 떠오른다. 꼭대기를 쳐다보면 한두 번 한숨이 쉬어지고 마음을 다잡아야 비로소 첫걸음이 내디뎌지는 기나긴 비탈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누구나 알다시피 습관에는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이 있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똑같이 습관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좋은 습관이란 예를 들어 매일 일정한 시간 동안 운동을 한다거나 혹은 매일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다거나 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런 행동이 몸에 배려면, 비탈길을 한 걸음씩 쉬지 않고 올라갈 때처럼 몸을 뒤로 잡아당기는 무거운 저항과 오래 싸워야 한다. 익숙해져서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가 되어도, 이번에는 자잘한 지루함이나 피로를 견뎌야 한다. 좋은 습관이란 아무리 몸에 익어도 의식적으로 애써서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쁜 습관은 그렇지 않다. 비탈길을 달려 내려가는 것처럼 그다지 어렵지 않게 몸에 붙는다. 심지어 언제 내 몸이 그런 행동을 시작했는지 의식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몸에 붙는 것은 쉽지만 멈추기는 힘들다. 나쁜 습관을 버리려면,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할 때처럼 의식적으로 꾸준히 통제해야만 한다. 좋은 습관과 나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마치 가파른 언덕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전혀 다르다. 그러니 똑같이 습관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고 해서 두 가지 행동을 동일한 범주에 집어넣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혼자 와인 한두 잔 마시는 습관이 있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집 밖에서는 아무래도 귀갓길 걱정도 있고 해서 마음 놓고 술을 마시지 못한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여운이 남은 한두 잔을 보충하다가 습관이 되었을 것이다. 습관이 되고 난 다음에는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한두 잔이 아니라 반 병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마시고 어떻게 쓰러져 잤는지 모르는 경우도 가끔 생겼다. 당연히 다음 날에는 두통에 시달리고 몸이 무거워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다. 굳이 나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좋은 습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침마다 황폐한 기분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일어나고,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와인을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그만 마셔야겠다고 몇 번을 결심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슈퍼마켓에 가면 저절로 와인 판매대 앞으로 발길이 옮겨졌다. 이런저런 와인 병의 라벨에 적힌 품종이나 제조연도를 읽어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자줏빛으로, 혹은 옅은 라임빛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병들은 어쩌면 그렇게 완벽한 곡선을 지니고 있는지! 그냥 돌아서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마지막으로 딱 한 병이라고 다짐하면서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애써 와인 사는 횟수를 줄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건강에 이상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없어서 똑바로 걷기도 힘들었다. 인터넷에서 증상을 검색해보다 ‘이석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검사와 치료를 받고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이후 와인 마시는 습관을 끊을 수 있었다. 이석증과 음주가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술을 마시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다 사람들과 어울려 한두 잔 마시면 어지럽고 메슥거리기만 했다. 그렇게 끊으려고 애썼던 나쁜 습관이 결국 몸이 거부하니 저절로 사라지고 말았다.
날마다 와인 마시는 습관을 이어간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좋은 느낌이 더 증폭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맨정신으로 보면 무심하게 넘어갔을 문장이나 흘려듣게 되는 선율이 더 감동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모든 사물의 이면에 깊고 신비한 의미가 감춰져 있는 듯 느껴지던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책상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달콤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몸이 분명한 신호를 보내기 전까지는.
나이 들고 노년기를 코앞에 두면서 점점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몸의 신호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젊은 시절에는 하루이틀 잠들지 않고 시험 공부를 하거나, 친구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능했다. 몸이 우리의 의지나 감정에 따라주었고, 견뎌주기도 했다. 물론 나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거나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은이의 욕망과 감정이 격렬할 수 있는 것은 몸이 충분히 받쳐주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몸이 달라졌는데 마음이 착각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마음은 과거의 빛나는 경험을 쉽게 잊지 못한다. 이제는 다른 몸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의 지혜를 배우고 행동을 모방하려 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의 외모나 행동을 따라 하려 애쓴다. 이따금 나는 스스로 묻는다. 젊은 시절이 지금보다 더 행복했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리고 아니,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젊은 외모나 건강한 신체 때문이 아니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그때 좀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해서 지금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회한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나 자신이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과 불안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온갖 억압과 저임금과 소외감에 시달려야 한다면,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생활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생각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해서 다른 삶을 사는 것은 굳이 젊은 시절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여전히 가능한 일 아닐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직 돈을 벌기 위해 하던 일들을 조금씩 정리하고, 하고 싶었으나 이제까지 못 했던 일들을 하면 어떨까?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기 위해 이런저런 인문학 강좌를 듣기도 하고 장편 소설 읽기 세미나나 독서 모임 같은 곳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강좌나 모임에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만날 일이 없던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이와 학력과 직업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니, 일신상의 정보나 주고받는 대화가 아닌 새로운 유형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나에게 가장 필요한 ‘다른 삶’이었고, 무의식 속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아쉽게도 새로운 대화 이상의 깊은 교류를 맺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수강한 철학 강좌의 강사가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 나오는 ‘약속할 수 있는 인간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약속하는 나’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렵고도 세세한 설명은 듣고 곧 잊었으나, 사례로 들었던 강사 자신의 이야기는 잊을 수 없었다. 그분은 15년 전쯤 건강이 나빠져서 요가를 배웠는데 놀랍게도 건강이 점차 좋아지는 기미가 보였다. 그래서 어느 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매일 요가를 하겠다고. 그날부터 그분은 정말로 하루도 빠짐없이 요가를 했다고 한다. 자그마치 15년 동안!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매우 놀랐고, 설마 하루도 안 빠졌을까 의심스럽기도 했다. 아플 수도 있고 너무 바쁠 수도 있고 그냥 까맣게 잊는 날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는 해도 거의 빠지지 않고 매일 요가를 했으니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하는 나’라는 구절이 내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몇 달 전 허리 통증이 심각해지면서 아침마다 간단한 스트레칭에 가까운 요가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일주일에 적어도 네다섯 번은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요가를 하면 저녁 무렵에는 반드시 한 시간쯤 동네 공원을 걷게 된다. 이상하게도 요가를 하지 않은 날에는 걷는 운동도 내키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확실히 관성이 작용하는 것 같다. 어쨌든 평생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규칙적으로 가벼운 운동을 하면서 뭔가 큰 변화를 이룬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노년이란 찬란하거나 아름다운 성취를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부록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의무적으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본문과 달리 맘 편히 설렁설렁 읽을 수 있는 보너스 같은 내용이 담긴 게 부록일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부록이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본문보다 치열하게 부록을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의 바람은 적절하게 독립적이고 적절하게 치열한 노년이다. 이제까지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을 가능한 한 하지 않고, 습관을 거스르는 새로운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고 싶다. 직업 탓인지 성향 탓인지 살아오는 동안 사람들과 교류가 적었고 인간관계가 편협했다. 이제는 사회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사람들과 교류하는 폭을 넓히고 싶다. 주위에는 이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거나 만나고 싶지 않다는 친구들이 가끔 있다.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만으로도 피로감을 느낀다고 호소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낯선 이들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 있다. 평생 직접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책 속의 인물과 더 가깝게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남을 후회하지는 않으나 내가 놓쳤던 경험을 한번 붙잡아보려는 시도는 하고 싶다. 나이나 계층이나 직업 같은 경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현실의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또한 홀로 생활하는 데 어렵지 않도록 건강에 큰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몸을 잘 돌봐야 할 것이다. 가벼운 운동을 계속하고, 생활하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집안일도 손에서 놓지 않을 작정이다. 죽을 때까지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들고, 내가 사는 집을 청소하고, 내가 입을 옷을 손질하는 게 나의 목표이면서 약속이기도 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려본다면, 이따금 낯설고 먼 곳으로 여행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면 좋겠다. 너무 큰 욕심일까?
‘약속하는 나’라는 구절은 나에게 와서 ‘좋은 습관을 유지하는 나’로 바뀐 것 같다. 흔히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라고들 한다. 알고 보면 내가 나라고 믿고 있는 정체성은 주위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오래 지속되어온 나의 습관적 사유와 행동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비탈진 언덕길을 날마다 한 걸음씩 힘들게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풍경이 변화하는 지점이 나타날 것이다. 습관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음을 믿게 되는 순간이다. 약속하는 내가 미래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겠다.
치매는 노년기를 위협하는 질병이자 노인들의 가장 큰 두려움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65세 이상 노인 열 명중 한 명은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많은 노화 관련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치매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 치매를 정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가고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 일본에서 이용하고 있는 세계의 신박한 치매 치료 방법 세 가지를 소개한다.
치매 노인끼리 떠나는 버스 여행부터 해변에서의 소소한 휴가까지
네덜란드 두틴험 시의 한 치매 요양시설에서는 시내 버스를 운행하는 치매 노인과 그 뒤에 탑승해 농담을 주고 받는 치매 노인들을 볼 수 있다. 해변에서 가까운 하를렘 시의 요양시설에 머무는 치매 노인들은 시설 내 해변에서 소소한 휴가를 보낸다. 이 모든 일은 요양시설 안의 ‘시뮬레이션 방’에서 이뤄진다.
시뮬레이션 방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을 그대로 구현해 놓고 있다. 평소 외출할 때 탔던 버스에 타면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가 늘어선 네덜란드의 시골길을 볼 수 있다. 해변을 구현한 방에서는 진짜 모래가 깔려 있고 이따금씩 철썩이는 파도 소리도 들린다. 심지어 해변의 열기가 느껴지는 곳에서 맛 보는 아이스크림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이 모든 것은 창문 위치에 달린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시골길 영상, 열기를 조성하는 램프 등으로 만들어진다.
네덜란드의 이례적인 치매 치료 방식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네덜란드의 64세 이상 인구 320만 명 중 약 8.4%인 27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2043년 전까지 그 수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고령층 환자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증상도 낮출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심 끝에 고안해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고, 카페나 버스 정류장, 펍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소를 구현해낸 시뮬레이션 방을 가족이나 시설에서 함께 지내는 노인들과 함께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빛과 향, 마사지, 음향을 이용하는 시뮬레이션 방은 1990년대부터 네덜란드 전역의 의사와 치매 간병인이 개척해 온 방식이다. 침대 위에서 안정을 취하게끔 하거나 약물을 처방하는 정통적인 치매 치료법을 거스른다. 에릭 스헤르데르(Erik Scherder)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 신경 심리학 교수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환자의 스트레스와 불편함을 낮출 수 있다면 생리적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네덜란드의 한 치매 환자 담당 간병인은 “이런 형태의 시뮬레이션이 실제로 치매 환자에게 투입되는 약물 치료의 필요성을 낮춘다”고 증언했다.
치매 환자도 자유롭게 지출하게, 시브스타(Sibstar)
영국에는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하는 핀테크(FinTech) 스타트업이 있다. 바로 ‘시브스타(Sibstar)’로, 치매 환자가 스스로 일상 지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한 보안 카드와 애플리케이션(앱)을 제공한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금융과 IT의 융합으로 생겨난 금융서비스다.
시브스타는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치매를 앓고 있는 창업자이자 CEO 제인 시블리(Jayne Sibley)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시브스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Sibstar’에 게재된 인터뷰 동영상에서 그는 “치매 환자인 부모님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무언가를 구매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제품을 구매하는 등 치매 환자인 부모님이 돈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의 부모님이 치매라는 질병에 구애 받지 않고, 스스로 상점이나 카페를 가고, 요가 수업을 등록하는 등 일상을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어 사업을 구상했다.
시브스타는 앱이나 홈페이지로 서비스를 신청한 사람에게 선불 체크카드를 보내준다. 시브스타 앱으로 체크카드에 연결된 계좌로 돈을 입금해 카드를 사용하면 된다. 앱으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점, 현금이나 포인트 방식 등 치매 환자가 주로 카드를 사용하는 장소나 결제 방식을 미리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앱으로 카드 사용자인 치매 환자와 가족 또는 법적 대리인이 매일 카드 사용 내역을 확인하고 관리할 수 있어 치매 환자가 소비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영국 유일의 치매 환자를 위한 핀테크 기업인 시브스타는 아이디어와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설립돼 영국 알츠하이머학회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Alzheimer's Society Accelerator Program)에 선정됐다.
테라피 독·테라피 캣과 함께하는 노인, 애니멀 테라피
개나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을 치매 노인의 심리 치료에 활용하는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hy)도 있다. 지난달 26일 지지통신은 일본 환경성이 내년부터 지자체가 보호하는 개·고양이를 병원이나 요양원에 제공하는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니멀 테라피(animal theraphy)를 희망하는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테라피 독’과 ‘테라피 캣’으로 노인의 심리치료를 담당한다.
다비드 쿠르토(David Curto) 알츠하이머성 치매 전문 의사는 스페인의 건강보험그룹 ‘사니타스’(Sanitas)의 소식지의 칼럼에서 반려동물을 이용한 요법을 알츠하이머성 치매 치료법 7가지 중 하나로 소개한 바 있다.
반려동물의 이름을 기억하고, 식사를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주거나 털을 빗겨주는 등의 행동이 치매 환자의 정신 상태나 기동성을 향상시킨다. 또 다비드 쿠르토는 반려동물이 주인에게 보이는 애정이 치매로 인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핍을 채워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일은 치매 노인의 신체, 인지, 감정, 사회적 부분 등 모든 면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적었다.
국내에서도 전자약이나 디지털 치료제, 추억의 가요 가사가 수록된 음악 퀴즈 책자를 제공하는 등 신박한 치매 치료 방식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도입 단계에 머물고 있다. 중앙치매센터는 2060년 치매 유병률이 20%를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의 시니어들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한 사회가 하루 빨리 준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리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삶을 쾌적하게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tvN 예능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의 김유곤 PD가 뉴스1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출자 한 명만이 갖는 특별한 감상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대에 변화한 집의 개념과 공간에 대한 관심이 시니어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출이 잦던 사람들이 뜻하지 않게 집에만 있다 보니 ‘정리’를 등한시했다는 사실뒤뒤늦게 깨달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집 정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정리·수납 콘텐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나 ‘바꿔줘! 홈즈’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던 2020년 여름에 시작한 ‘신박한 정리’는 지난달 50부작을 끝으로 박수칠 때 떠났다.
정리·수납 분야 도서도 ‘비포 코로나’ 시대에 비해 판매율이 크게 늘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집·살림’ 분야 내 ‘인테리어’ 및 ‘정리·수납’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도서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대비 2020년 해당 분야 도서 판매가 40.6%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기준 40세 이상 시니어가 인테리어 및 정리·수납 관련 도서 구매자 중 60%를 차지했다. 40대가 41.8%로 가장 많았으며 50대와 60대 구매자도 각각 17.4%, 3.2%를 차지했다.
인테리어 및 정리·수납 관련 도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판매량이 줄었으나 2020년 큰 폭으로 반등했다. 팬데믹(대유행) 국면을 기점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늑하고 편안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수요와 관심이 크게 높아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납가구 판매율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말 가구·인테리어 브랜드 한샘이 자사 온라인 쇼핑몰의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옷장수납’ 가구가 가장 높은 매출 신장률(85%)을 기록했다. 생활용품 최다판매 1위도 책장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수납박스가 차지했다. 한샘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집콕 트렌드’와 맞물린 영향으로 분석했다.
정리 잘하고 싶다면 비우기, 역할, 방향 기억!
공간 정리 컨설팅 업체 ‘우리집공간컨설팅’ 관계자는 “전체 고객의 60~70%가 50세 이상 시니어 고객일 정도로 (정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자녀가 독립하고 난 뒤 자녀가 쓰던 방에 남은 짐이나 가구를 어떻게 정리할지, 그 방의 쓰임을 어떻게 바꾸는 게 좋을지 문의하는 시니어 고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렇듯 시니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집콕 생활을 위한 정리 정돈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 슬기로운 집 정리를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 공간 정리 전문가 이지영 ‘우리집공간컨설팅’ 대표가 가장 강조하는 건 ‘비우기’다. 그는 “물건을 비우면 공간이 보이고 공간이 비면 사람이 보인다”면서 “물건을 보면 욕심으로 갖고 있었는지 비울 타이밍을 놓친 건지 보인다”라고 말했다. 예능 ‘신박한 정리’와 교양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한 그는 한결같이 비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정리를 하고 싶어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모두 꺼내 필요, 욕구, 버림 세 가지로 구분하라”고 조언한다. 박스 세 개를 준비해 정말 필요한 것은 ‘필요’ 박스에, 사고 싶어서 산 것은 ‘욕구’ 박스, 그 외의 쓸모없는 것들은 ‘버림’ 박스에 넣는 것이다. 버림 박스에 들은 물건들은 그대로 버리고, 욕구 박스 안의 물건 중 다른 사람이 가치 있게 사용해 줄 만한 것이 있다면 다른 이에게 나눌 것을 당부했다.
그는 공간에 역할을 부여하면 정리가 쉽다고 설명했다. 한 방에 여러 잡동사니를 쌓아놓지 말고 침실, 옷방, 서재 등 방마다 정확한 역할을 부여해 그에 맞는 가구와 물건만 옮겨두어도 훨씬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가구를 배치할 때 방향도 고려해야 한다. 오른손잡이라면 자주 사용하는 가구를 오른쪽에, 왼손잡이라면 왼쪽에 둬야 사용하기 편하고 관리도 수월하다. 그는 식기건조대부터 서랍장 같은 필수 가구부터 연필꽂이 같은 소소한 집기, 신발장 문이 열리는 방향까지 스스로의 생활방식에 맞출 것을 권했다.
이 외에도 ‘현관이나 욕실 등 좁은 공간부터 정리하라’, ‘가구 배치는 현관에서 먼 곳에 높은 가구를 놓아야 한다’, ‘가구의 색상을 맞춰라’ 같은 다양한 조언을 남겼다. 현관이나 욕실과 같이 좁은 공간부터 정리를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실처럼 넓은 공간부터 정리를 시작하면 물건이 많아 금방 피로해져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집공간컨설팅’ 관계자는 “노년기의 비움은 청년기의 비움과는 의미가 다르다. 시니어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최근 시니어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노전(老前)정리’라는 용어가 노년기의 비움을 잘 나타내 준다”고 말했다. 노전정리란 살아오면서 사용했던 과거의 물건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일로, 사후 가족들이 하게 되는 유품정리와는 차이가 있다.
이어 자녀의 독립 후 공간 재배치를 고민하는 시니어에겐 “부부 둘이서 함께 사는 경우 각자의 침실을 갖는 것이 서로에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침실과 화장실 같은 개인 공간을 부부가 함께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제는 각자 공간을 갖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우리집공간컨설팅’ 관계자는 “이 대표가 강조하는 ‘비우기’를 성공적으로 마쳤다면, 노년기를 보낼 각자만의 공간을 구성하고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건강하고 즐거운 노후 생활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30년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인 남편, 함께 보내는 시간이 영 답답한 아내. 깊어지는 황혼의 동상이몽,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이를 회복하는 데 그리 대단한 방법은 필요하지 않다. 배우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어려움을 공유하고, 부족한 부분을 챙겨주는 것만으로도 신혼의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다. 아래 사례가 자신의 이야기 같아 ‘뜨끔’했다면, 부부 사이를 개선하는 생활 속 크고 작은 행동 가이드를 실천해보자. 시작이 반이다!
CASE 1
은퇴 증후군 VS 갱년기
김은퇴 35년 일한 대기업에서 퇴직했다. 한동안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고생 끝에 얻은 명예와 남부럽지 않은 연봉, 화려한 인간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듯했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당신 뒷바라지하느라 내 인생이 끝났다”며 언성을 높이고 잔소리를 한다. 잘나가던 시절이 꿈만 같고 매일이 우울하다.
이홍조 어느 날부터 몸이 자주 홧홧하더니 관절통, 근육통, 불면증까지 전에 없던 증상이 밤마다 괴롭힌다. 한평생 반복된 가사노동에 체력은 점점 떨어져가는데, 남편은 은퇴하고도 하루 종일 누워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의 인생이 부질없게 느껴지고, 억울함과 분함, 회한이 사무친다. 밤만 되면 20~30년 전 서운했던 일까지 하나하나 생각나 일일이 따지고 싶은 기분까지 든다.
행복 솔루션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활동을 하던 시절 직장은 밥벌이 수단 그 이상의 개념이었다. 성공의 상징이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지표였다. 또 오늘날과 달리 ‘워라밸’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당시에는 가족에 소홀할지언정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풍족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가정 평화를 위한 최선이라고 여겼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30~35년간 직장에 헌신하다 은퇴한 이들은 가정과 직장 모두로부터 버려졌다는 생각에 상실감을 느낀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존감 회복이다. 먼저 아내는 앞선 상황을 이해하고 남편의 장점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재취업을 독촉하는 대신 승진한 날, 큰 프로젝트를 성사한 순간,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자식 대학 보낸 때 등 생애 성취 경험을 되짚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며 의욕을 북돋아준다. 회상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아내 또한 그동안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남편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정에 최선을 다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또 남편 역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 회사의 책임자가 아닌 배우자와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고민해보고, 가정에서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한편 남편은 아내가 ‘갱년기’라는 인생의 터널을 지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이 진심이 아닌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외면하기보다 이야기를 들어준다. “왜 또 그래”, “당신 그거 병이야. 병원 가” 등의 반응은 전쟁의 총성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표현하는 게 어색하다면 갱년기 증상에 좋은 음식, 영양제 등을 챙겨주며 ‘당신의 상태를 이해한다’는 마음을 슬쩍 내비쳐본다. 나이 들수록 배우자의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소중한 애정 표현은 없다.
CASE 2
여가 시간의 동상이몽
강바다 회사 다닐 때부터 쉬는 날마다 낚시를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몇 안 되는 낙이었다. 은퇴 후에는 막연한 불안과 우울함이 찾아올 때마다 종종 바다를 찾는다. 낚싯대를 잡고 머리를 식히다 보면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혼자 즐기는 취미 생활에 불평을 토로한다. 운동은 취미가 없는데, 자꾸만 함께할 것을 강요해 잦은 언쟁이 벌어진다.
최운동 은퇴 전 해외 주재원이었던 남편은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았다. 그러다 간혹 시간이 나면 집에서 누워 있거나 홀랑 낚시를 하러 바다로 떠나버렸다. 용기 내 함께 운동할 것을 제안하면 “일 때문에 바빠 그렇다. 퇴직하면 같이 놀러 다니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하지만 은퇴하니 이제는 “취미가 다르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며 함께하는 시간을 피한다.
행복 솔루션 20~30년 함께 산 부부라도 관심사가 다르면 공통의 취미를 갖기 어렵다. 은퇴 전부터 각자의 여가 시간을 보낸 이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이가 더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부부끼리 ‘따로 또 같이’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
먼저 지난 일주일간 부부가 함께한 시간, 활동, 대화 내용 등을 적어본다. 그 다음 이를 반성의 지표로 삼아 ‘주 3회 저녁 식사 후 산책하기’, ‘주 1회 같이 문화생활 하기’ 등 실천하기 쉬운 부부 생활 강령을 만들어본다. 요일별로 정해도 좋다. 이를테면 월·수·금은 ‘부부 동반의 날’, 화·목·토는 ‘혼자만의 날’을 보내기로 약속한다. 다소 숙제처럼 느껴져도 긴 시간 쌓인 마음의 벽을 서서히 허물고 함께하는 시간을 길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다음 서로의 취미에 발을 들인다. 반드시 같은 ‘활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데 방점을 둔다. 이를테면 남편이 낚시를 할 때 옆에서 자수를 하거나, 아내가 공원에서 조깅을 하는 동안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다. 상대는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존중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고, 본인은 배우자에 대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같이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고 싶다면, 서로의 관심사를 탐색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때 배우자의 관심사를 다 안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데이터가 연애 시절에 멈춰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상대방을 알아가던 풋풋한 그때처럼 “당신이 요즘 재미있어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 “당신, 예전에 ○○하는 것 좋아했던 것 같은데 맞아?” 등 호기심 어린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CASE 3
다시 불붙은 경제권 전쟁
박지출 은퇴 전 가정의 경제권은 아내가 책임졌다. 월급은 타는 족족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30년 넘도록 용돈을 받아 썼다. 상호 합의 하에 이뤄진 결정이기에 큰 불만은 없었지만, 과자 한 봉지를 사더라도 아내 눈치를 보느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노년기만큼은 주도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은퇴 후에는 소일거리를 찾아 직접 번 돈으로 골프용품을 사고 소소한 취미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아내가 간섭하려 든다.
오경제 남편이 피땀 흘려 벌어온 돈을 헛되이 쓰지 않기 위해 결혼 생활 내내 꼬박꼬박 가계부를 정리하며 재산을 불리는 데 힘썼다. 덕분에 노후 자금에 보탬이 될 건물을 사고, 투자로도 수익을 얻었다. 그래도 자식 결혼 전까지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남편이 은퇴 후 소일거리를 시작한 뒤부터 벌이를 공개하지 않고 고가의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변한 남편의 태도가 당황스럽다.
행복 솔루션 경제권은 신혼, 황혼을 막론하고 부부 사이 다툼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다. 결혼 생활을 갓 시작한 신혼부부는 경제권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언쟁이 오고 간다면, 황혼 부부의 갈등은 그동안 참아온 불만이 특정 계기로 폭발하면서 시작된다.
특히 가정에서 성 역할이 비교적 뚜렷한 베이비붐 세대 부부는 주로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경제권을 관리해, 돈 문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아내 쪽으로 힘이 편중되며 갈등이 빚어진다. 이에 많은 남편이 은퇴를 기점으로 재정 독립을 선언하고, 아내는 달라진 남편의 태도를 비협조적으로 느낀다.
비슷한 상황으로 갈등을 겪는 부부가 있다면 두 사람의 합의를 거쳐 경제권을 교체해보는 것이 좋다. 남편은 가계부 작성, 대금 납부 등 재정 관리를 오롯이 책임지고, 아내는 정해진 용돈으로 한 달간 생활하는 것이다. 역할을 바꾸면 각자가 진 부담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배우자의 고충을 깨닫고 서로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매달 ‘가계 대화의 날’을 정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가계 대화의 날에는 가계 자산과 부채, 현금 흐름 등을 공유하고 재테크 계획을 논의한다. 모래시계를 활용하면 발언권을 보다 공평하게 가질 수 있다. 날짜는 매월 말이나 초가 적당하다. 지난 한 달간의 재무 상황을 살펴보며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되 배우자의 잘못을 질책하지 않는다.
도움 김숙기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원장
일본의 에세이스트 이노우에 가즈코는 자신의 저서에서 행복한 노년을 위해서는 50대부터 덧셈과 뺄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빼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나갈 때 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잘 빼고, 잘 더할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브라보 독자를 위해 인생에 필요한 여러 정리법을 3회에 걸쳐 안내한다. 이번 호에서는 노년기 인간관계 재정비 노하우를 알아본다.
어긋나는 관계가 우울증을 부른다
은퇴 후 노년기는 활동 반경이 직장에서 가정으로 전환되어 인간관계가 줄어들고, 사회 참여도가 낮아지는 시기다. 또 배우자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고 자녀가 결혼해 출가하는 등 가족관계의 지형이 급변하는 때이기도 하다. 미국의 상담심리학자 세라 요게브는 저서 ‘행복한 은퇴’에서 이런 노년기 관계의 변화를 준비 없이 맞이할 경우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웩슬러 역시 저서 ‘관계의 심리학‘에서 중년 이후 최악의 인간관계를 맞이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보고서 ‘중·고령층 근로활동이 인지기능 및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따르면, 은퇴자는 일하는 중·고령층에 비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제한된 사회활동과 대인관계의 축소가 우울함의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봤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이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큰 역할을 하는데, 은퇴 후에는 이 연결망이 단절되어 자아정체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공적 관계망의 축소뿐 아니라 은퇴 후 사적 관계망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갈등도 은퇴 후 삶의 질을 낮추고 외로움을 증폭시킨다. 특히 살아온 세월 속 쌓인 갈등이 폭발하면서 관계가 망가질 때가 많다. 배우자 및 자녀와의 갈등이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의 불협화음 등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2016년 발표한 ‘4대 관계망을 통해 본 은퇴 후 인간관계의 특징’에 따르면,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대답한 은퇴자가 ‘늘리고 싶다’고 한 은퇴자보다 6배나 많았다.
이 같은 문제들을 비추어볼 때, 은퇴 후에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면 삐걱대는 관계를 정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 간 어긋난 부분을 개선하고, 줄어든 인맥을 새롭게 채워나가야 사람 냄새 풍기는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다.
배우자의 시간과 취향을 존중하라
시니어가 은퇴 후 인간관계 속에서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은 배우자와의 불화다. 부부 갈등은 시기별로 언제나 존재하지만, 은퇴 후에는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잦은 다툼이 일어난다. 또 부부관계를 지탱해주던 자녀가 결혼이나 취업 등의 이유로 독립할 경우 별것 아닌 일로도 큰 싸움을 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었던 올해처럼 외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생기면 부부간 마찰을 빚을 확률이 높다.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위해서는 ‘따로 또 같이’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균형 있게 배분하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부 여행을 갈 때 자신의 여행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반나절 정도만 함께하고, 나머지 시간을 각자 원하는 곳에서 보낸다면 다투지 않고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부부간의 대화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견 차가 생기더라도 생활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상의하고 조율해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중 언쟁이 벌어질 때는 ‘싸움 규칙’을 세우는 것이 좋다. ‘집 나가지 말기’, ‘문제가 되는 것만 얘기하기’, ‘이혼 들먹거리지 말기’ 등 갈등의 불씨를 키우는 행동을 금지하고, ‘먼저 사과하기’, ‘화가 풀리지 않았더라도 손 잡아주기’ 등을 규칙으로 정하면 잦은 싸움을 줄일 수 있다.
스포츠부터 종교, 봉사, 명상, 요리, 예술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도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중 하나다. 취미활동을 같이 하다 보면 자연스레 화젯거리는 늘고,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때 자신의 취미를 배우자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배우자의 취향에 관심을 보이면서 함께 배워보려는 포용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배우자를 향한 비현실적인 기대는 줄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는 자식 간의 관계에도 마찬가지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 소장은 “가족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라며 “배우자가 자신을 위해 희생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은 비우고, 서로의 노고에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력적인 벗이 되어라
가족을 제외하면, 은퇴한 시니어의 인간관계는 학창 시절 동창 등 친밀한 관계 위주로 재편된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라고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를 쓴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에 수백 명의 이름이 저장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는 은퇴자를 많이 만나봤다”며 “인맥의 많고 적음보다는 마음 맞는 관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매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세 명만 있어도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봐도 양보다는 질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말끝마다 불평불만을 쏟아낸다거나 걸핏하면 화를 내는 등 만났을 때 기분 좋은 에너지보다 불편함을 주는 사람은 알고 지낸 세월에 관계없이 자연스레 꺼려지게 마련이다. ‘앵그리 올드’(Angry old, 성난 노인)가 판치는 세상에 ‘앵그리 프렌드’와 가깝게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은지, 또는 만나고 싶지 않은지 생각해보면서 자신 역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매력적인 친구가 되려면,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하고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태도 도 중요하다. 가령 독서모임에 가입하자고 제안하는 친구에게 “이 나이에 눈도 피곤한데 무슨 책을 읽느냐”며 재를 뿌리는 대신, “용기가 부럽다”고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면전에 대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적을 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결국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은 바로잡아주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좋은 벗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만남으로 삶을 물들여라
하지만 같이 있으면 편하다는 이유로 친구관계에 ‘올인’해서도 안 된다. 가장 최근 자신의 모습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은퇴 직전까지 함께한 공적 관계망의 사람들이다. 이들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친구와는 또 다른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뜻밖의 만남에서도 소중한 인연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맺음에 도전해보는 것도 유의미하다. 예컨대 영화나 악기, 특정 스포츠 등 관심사나 흥미를 공유하는 모임에 가입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이나 조건에 따라 관계를 구분 짓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과 공감 능력을 갖추고, 나이 차이가 나도 절친이 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젊은 세대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신선한 자극도 받고, 배울 건 받아들이다 보면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이 60~70세였다. 이 시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100세 시대인 오늘날은 자녀와의 관계만큼이나 부부, 친구, 사회적 관계가 중요해졌다. 노후에는 특히 열정을 나눌 관계에 투자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은퇴 후에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인생을 풍부하게 채워나갈 수 있다.
도움말 강학중 가족경영연구소 소장, 한혜경 전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
안녕, 시골아, 드디어 내가 너에게 왔노라! 그에겐 그렇게 흐뭇한 인사말을 읊을 겨를이 없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사업을 하다 귀농한 김열홍(60) 씨. 그의 귀는 얇은 귀였나? 그는 “농지며 집이며 거저 쓸 수 있으니 몸만 오라”는 지인의 달짝지근한 권유를 받고 설레어 달려 내려간 참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상황이 영 달랐단다.
믿었던 사람에게 된통 당한 셈이다. 그러나 열홍 씨는 부아를 가라앉히고 얌전히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속인 건 지인이지만 홀린 건 나 자신이지 않은가, 내가 나에게 속은 꼴이지 않은가, 남 탓할 것 없다! 그냥 그렇게 여기고 후루룩 상황을 넘어서기로 했던 모양이다.
약간 요상한 귀농 시발이었다. 진즉부터 시골살이에 뜻을 두었기에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왕 내친김에 한바탕 열심히 뛰어보기로 다짐하자 새삼 흥미가 동했던가보다. 한 방 얻어맞고서야 귀농에 본격적인 발동이 걸렸던 거다. 이렇게 뒤늦게 엄청 진지해진 열홍 씨, 일단 도시에 있는 부동산을 싹 처분해 7억 원쯤의 귀농자금을 만들었다. 그건 그가 믿을 만한 가장 유력한 ‘실탄’이었다.
돈을 일컬어 ‘요물’이라고도 하고 ‘웬수’라고도 하지만, 그는 비장하게도 ‘실탄’이라 부른다. 내가 쥔 자금이 떨어지면 성벽을 넘어 거침없이 돌진해오는 세파의 기총소사에 대응할 길이 없다는 인식에서다. 그래 실없이 실탄을 낭비하지 않고 가급적 효율적이고도 참신한 전투에 임하기로 결심한 병정처럼, 열홍 씨는 최대치의 슬기를 발휘해 자금을 잘 운용하기로 하고 귀농열차를 집어탔던 것이다.
그 결과는? 귀농 10여 년이 흘렀으나 아직은 알 수 없다. 그건 그의 목숨이 다하는 날에 따져볼 사안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귀농생활에 인생의 모든 것을 쏟기로 결정했으며, 실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었다고 자부하기 전에 도출되는 대차대조표는 잠정적인 결과물에 해당하거나 무의미한 문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3도 화상을 입으며, 또는 자주 뒤집어지며 익어가는 빈대떡과 이웃사촌. 용을 쓰더라도 엎치락뒤치락, 삶이란 굴곡과 파란으로 점철되는 꽤나 허무맹랑한 레이스라는 걸 그도 잘 알지 않겠는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갈 때까지 가보리라! 이게 열홍 씨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추세라는 게 있을 텐데, 한마디로 오랫동안 주로 죽을 쑤었다.
“귀농에 만족하느냐고 내게 묻지 마라. 그 답을 나도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웃음) 때론 만족스럽다가도 때론 힘겨워 불만스럽다. 이곳에 자리 잡은 게 11년 전인데 5~6년 동안은 수익이 아예 나질 않더라고. 해마다 적자였지. 그럼에도 투자를 계속해왔다. 규모를 키우는 게 난관을 돌파할 길이라 판단하고서였다. 그러면서 ‘실탄’을 꽤나 허비했다. 다행스럽게도 4~5년 전부터는 ‘똔똔’이거나 약간의 흑자가 나고 있다.”
그는 처음 한동안 고추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를 보고 2000평 규모의 사과농장을 조성해 공을 쏟기 시작했다. 10여 마리에 불과했던 한우도 70여 마리로 늘려 사육하고 있다. 실로 모처럼 쏠쏠한 흑자를 본 작년의 경우, 사과로 올린 매출액이 5000만 원 정도. 이 가운데 60%쯤이 순수익이란다. 한우 사육에서도 비로소 자금회전이 시작되고 있다.
“뭐 하나 생각대로 되질 않았다”
자칫 적자를 보는 일에 도통하기 십상인 게 농업이다. 그렇다고 꼭 그러라는 법이 있겠나. 매사가 썩 이상하게 돌아갔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성난 얼굴로 현실을 돌아보길 거듭했으며, 활로를 찾기 위해 몸과 머리를 아낌없이 써왔던 것 같다. 염소 털처럼 허옇게 쇤 그의 턱수염은 분투의 소산일 게다. 그 결과 서광이 들이쳤나?
“이제 웬만히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그간 애환이 많았다. 뭐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게 없었다.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나날들이었지. 공연히 거액의 자금만 날리기도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건 끔찍한 경험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귀농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내려왔다는 데에 있다.”
준비한 건 오직 자금뿐이었나?
“그렇다. 호밋자루 한 번 손에 쥔 경험이 없는 문외한이 겁 없이 농사에 덤벼든 꼴이었다. 뭐든 잘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거든. 이게 오산이었다. 기술 없이 농사에 뛰어들었으니 노력을 해본들 쉽게 풀릴 일이 아니더라. 뒤늦게 농업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 1년 과정의 한우대학도 수료했다.”
귀농은 왜 했지? 목적이 뚜렷했다면 사전 준비도 부실하지 않았을 거 같아 묻는 얘기다.
“조용한 시골에 나만의 작은 낙원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낭만적인 꿈이었다. 경치 좋은 곳에 원하는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농사 노동으로 떳떳한 시간을 보내고, 가끔 하루 이틀쯤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뭐 그런 소박한 기대가 있었으나 아직 낙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사실 인간사에 낙원이 어디 있겠나. 감상적으로 살 일이 아니더라.”
농사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도시를 떠나지 않았겠지. 사업이 괜찮게 돼 가만 있어도 통장에 돈이 늘어나는 상황이었거든. 그런데 인생에는 돈벌이보다 중한 게 있지 않던가? 내 마음이 흘러가는 곳에 살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이게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난 귀농을 통해 한결 나은 삶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귀농보다 귀촌이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텃밭 농사 정도나 하며 태평한 세월을 즐기는 귀촌 말이다. 당신은 독신이다. 7억 자금이면 놀면서 슬슬 까먹어도 평생을 살 수 있을 게 아닌가.
“아하. 특정한 직업 없이 지내는 무위도식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 일과 맞부딪쳐 뭔가 보람을 끌어낼 게 없는 생활에 무슨 활기가 있겠나, 무슨 재미가 있겠나.”
비록 고행과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농업이 지닌 매력과 흥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더라는 얘기로 들린다. 그에겐 피땀 흘려 생산한 사과가 팔리지 않아 숭숭 썰어 소 사료로 주는 식의 환장할 만한 혼선이 잦았다. 그러나 농사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유 직종이라는 것, 이상과 자질을 마음껏 실험하고 교정할 수 있는 인생교실이라는 것, 게다가 정년이 없어 무기력한 노년을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등등, 열홍 씨는 농사가 지닌 긍정적 속성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가령 농산물이 안 팔리더라도 남 탓을 할 게 없다. 모든 게 나의 능력, 기술, 전문성의 여부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지. 그러고 보면 농사란 가장 자립적인 형태의 직업이다.”
그는 ‘모든 게 나의 문제’라는 걸 자주 자신에게 세뇌하며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자기학습의 효과는 커 그를 좀체 실의에 잠기게 하지 않는다. 농사로 맞닥뜨리는 난관이 이를테면 어떤 외부의 흉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한숨과 낙담에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는 힘과 깡을 끌어내는 것 같다. 저 잘난 농업정책의 협찬이나 선한 이웃의 과도한 헌신을 기대하는 따위도 그의 본성에 맞지 않아 남세스럽게 여길 따름이다.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
그런데 열홍 씨가 직면한 넘어야 할 산은 농사만은 아니라는 점을 얘기해야겠다. 그의 콩팥은 좀 서러운 콩팥이다. 기능을 상실한 탓에 그는 1주일에 사흘은 신장 투석을 한다. 월, 수, 금, 3일간은 거의 종일 병원에 누워 혈액을 걸러낸다.
“나이 들면 누구나 한두 가지 질병은 다 가지고 산다. 그저 내 복대로, 내 팔자대로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병원에선 의사에게 맘 편히 투석을 맡기고, 집에선 몸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일에 묻혀 산다.”
동네 이웃들은 당신을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라 칭찬한다.
“무슨 그런 과한 얘기를.(웃음) 남들은 수백 마리의 소도 기르고, 수만 평 규모의 사과밭을 경영하기도 한다. 난 그 반의반도 못 따라가고 있잖은가. 농사일에도 아직 서툴러 사실 그냥 시간만 때우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콩팥에 문제가 생긴 건 언제부터?
“40대 초반에 이상이 왔다. 플라스틱을 다루는 공장을 운영한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래 한동안 일을 놓고 쉬었으나 결국은 신장이식을 받게 되었지.”
공기 좋은 시골에 살며 중한 병을 고친 이들도 있다.
“귀농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과도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겹치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식받은 콩팥을 달고 산 지 12년 만에 완전히 망가지더군. 투석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게 형제 하나가 콩팥을 주겠다고 했으나 사양했다. 나 좋다고 형제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시골에 들어와 병을 고친 사례는 나도 좀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병은 좋아질 병이 아니거든. 계속 끝까지 투석해야 하고 식이요법도 충실해야 한다.”
그런 건강 상태로 열심히 농사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가. ‘강철 인간’이라 불러도 무방하겠군.
“난 어릴 때 지금보다 훨씬 지독한 고난을 겪었다. 먹을 게 없어 사나흘씩 굶기를 자주 했고, 심지어 20일간 물만 마시며 견디기도 했지. 아마 그런 경험들이 나를 꽤나 강하게 만들고 독립적인 근성을 길러준 게 아닐까. 난 지금도 알몸으로 어디에 던져져도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웃음)”
자신을 완벽하게 통치하는 인간 유형? 열홍 씨는 차돌처럼 야무지다. 불편한 몸 상태에 희한하게도 거의 무심하거나 태연하다. 간혹 표정이 딱딱해지기도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혼자 살아온 사람의 버릇일망정 병세에 상심하는 징후로는 보이지 않는다. 피로, 두통, 요통 등 신장투석에 따르는 불편이 자심할 터이지만, “난 그런 거 몰라!” 하는 투로 유유한 게 아닌가.
그는 신장 투석을 시작하며 유능한 일손 하나를 고용했다. 축사며 과수원을 혼자 건사하기엔 역부족이라 동원한 인력이다. 도시에서 내려온 이 일손은 귀농 지망생으로 향후의 귀농을 위한 예행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셈이다. 열홍 씨로선 신통치 않은 재무구조에 월급이 나가 부담이야 되겠지만 한숨 돌릴 수 있었을 게다. 이렇게 그는 동갑내기 직원과 둘이 5년째 동거하며 일을 한다. 오직 끔벅거리는 눈으로 언어를 발하는 소들의 비위를 맞춰주고, 사과나무들이 간혹 청원하는 민원을 접수해 해결해준다. 그 와중에 그가 남몰래 해온 일이 또 하나 있다. 과수 농가들에게 쓸모가 많을 그 뭔가 새로운 도구들의 개발에 열을 내왔던 것인데 2017년, 마침내 ‘가지 유인(誘引) 철 클립’을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과수 농사에서 가지 유인 작업은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다. 가지들을 적절히 늘어뜨리거나 구부려줘야 생산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 그동안 흔히들 콘크리트로 만든 추(錐)나 플라스틱 물병을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아 유인을 해줬다. 내가 만든 ‘철 클립’은 획기적으로 간소하고 효율적이다. 현재 농가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창의(創意)의 산물이구나.
“도시에서의 오랜 전공이 기계설비였다. 농사를 짓더라도 전공을 살려 만든 장비나 기구를 도입하자는 생각이었지. 내겐 다종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으며 나름 연구를 해왔다. ‘가지 유인 철 클립’은 개발이 실현된 한 가지일 뿐이다.”
‘철 클립’ 매출액은 어느 정도?
“출시 이후 약 30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제 막 알려지고 있는 과정이라 차후의 매출 상승을 예감한다. 소비자들과 만나기까지 쉽지는 않았다. 특허를 내고 홍보를 하는 등 그간 1억 정도를 투자했지만 충분히 회수가 가능할 거라 본다.”
당신의 귀농 역시 결국은 안정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편이겠지?
“소들의 순한 눈망울, 새벽이슬을 매단 사과나무, 눈부신 아침 햇살, 이런 것들이 주는 짜릿한 전율이 행복의 감정일까. 한 사람의 월급을 주고, 나 먹고살 형편은 되고, 이 역시 행복이겠지. 그러나 행복은 순간에 왔다가 순간에 사라진다는 걸 안다. 과욕 없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다. 몸 아픈 사람들에겐 시간이 한결 귀하다. 시간을 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난 그쯤의 인간이길 바란다.”
비록 시련이 많지만, 지금 살아가는 방식,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홍 씨는 별 유감이 없다. 아까운 시간을 선용해 현재보다 더 나아가고자 하는 갈증. 이건 뜨거운 목마름이다. 그렇기에 건강상의 한계나 노동의 과중함마저 그는 곧잘 무시하는 것 같다. 진격에 취한 캐터필러처럼.
김열홍 씨가 주는 Tip
•귀농하기 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자. 기술 습득 없이 농업에 나섰다간 십중팔구 실패하기 때문이다. 시골 농가에 일꾼으로 1~2년쯤 취직해 살며 농사를 익힌 뒤 귀농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똑똑한 인재다.
•집부터 먼저 잘 지을 거 없다. 자금을 아껴 써야 살아남는다. 근사한 집을 지었더라도 나중에 팔 일이 생겼을 경우엔 낭패를 볼 수 있다. 좀체 팔리지 않는 게 전원주택이니까.
•깊은 산골의 집성촌으로 귀농하면 텃세에 시달릴 수 있다.
•귀농을 하면 일단 베풀며 어수룩하게 처신하라. 술자리, 회의자리 등에 적극 동참해 사교를 하라. 잘만 사귀면 원주민들이 결국엔 귀농인의 조력자가 된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저자 김원희 씨. 나이 듦을 받아들이면서도 어쩐지 그냥 ‘할머니’는 아쉬워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일흔을 넘긴 나이, 혹자는 지팡이를 들어야 때가 아니냐고 묻지만,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여행용 캐리어를 끈다. 모닝 펍에서 즐기는 생맥주 한잔, 영화 같은 풍경 속 자유로운 젊은이와의 만남, 그리고 ‘아직은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날 때’가 아니라는 확신, 김원희 씨가 오늘도 여행을 꿈꾸는 이유다. “육체가 허락하는 한 세상 전체를 다 돌아보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책 제목에 언급된 ‘진짜 멋진 할머니’는 어떤 모습을 의미하나요?
A.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노년의 삶을 사는 것. 또 자신의 자리를 알고, 걸맞게 행동하며 받아들이는 삶이 ‘진짜 멋지다’고 생각해요.
Q. 노년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 꿈꿔왔던 해외여행을 떠나셨지요. ‘나이’라는 제한에 막상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꿈을 이룬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결단의 문제이겠지요. 저는 자녀가 자립하는 시점에 내 꿈을 실행에 옮기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니까요. 아들이 짝을 찾고 정신적으로 완전 독립하고 안정되었다는 확신이 섰어요. 이제는 더 주저할 게 없다는 생각에 결심을 하게 된 거죠.
Q. 꿈을 이뤄 즐거웠겠지만, 아무래도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A. 믿으실지 모르겠으나, 그다지 고생스럽다거나 특별한 고충을 느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물론, 음식이나, 언어, 피로감 같은 것이야 있었지만, 그것은 미지의 땅으로 여행을 떠날 때 이미 각오하고 떠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극복해야 해야 했죠. 오히려 어떤 어려움을 만나 극복하고 나면, 더 뿌듯하고, 삶에 감사하게 되더군요.
Q. 젊은 시절과 비교해 현재 즐기는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사실, 젊을 때는 사는 게 바빠서 해외여행을 가 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국내여행, 아니면 패키지로 짧게 며칠 다녀왔기 때문에, 친구들과 뭉쳐서 떠들고 즐기다 온 것뿐이라, 특별한 의미도, 기억도 사실 나지 않아요. 나이 들어 여행은, 그것도 자유 여행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 느낌은 참 경이롭습니다. 여행은 나이 들어 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Q. 여행에서의 만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는 누구인가요?
A. 많아요. 그중에서 꼭 꼽으라면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에 소개된 프라하에서 만난 각국의 신학생이에요. 광장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사랑해’라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주었죠.
Q. 버킷리스트가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A. 다리 운동이 필요하겠죠. 이 나이에 과격한 등산은 하지 않아요. 하루에 두 시간 정도 걷기를 합니다. 집 주위도 좋고요. 성당이 집에서 멀어요.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걸으면 1시간 정도예요. 왕복 2시간입니다. 평일 미사 때도 그렇게 합니다. 이렇듯 그냥 생활 속에서 걷기 운동 정도예요. 산티아고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요.
Q. 수많은 여행을 다니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동지애’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냥 그렇게 산다는 거예요. 우리처럼⋯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인 거죠. 피부색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환경이 달라도 우리는 그냥 한 생을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인 거예요. 소매치기를 만나도, 친절한 사람을 만나도, 그들 모두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지라는 거죠. 사람에 대한 사랑입니다.
Q.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해외여행이 어렵습니다. 본래 계획하셨던 일들을 잠정 미뤄두셨을 거 같은데요. 코로나19 기간은 어떤 즐거움으로 보내시는지, 또 사태가 진정되면 펼칠 꿈은 무엇인지요?
A. 독서입니다. 독서가 주는 즐거움은 최고예요. 지금처럼 외출을 자제해야 할 때, 독서만큼 좋은 취미가 없죠. 언제든 하늘 길이 열리면 세상 구경을 하러 나갈 거예요. 코로나19가 끝났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마 제가 제일 먼저 캐리어에 짐을 싸고 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