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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흐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앞으로 그동안 자신이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에서 여가로, 직장에서 가정으로, 성장에서 관리로 변한다. 이에 따라 재산을 관리하는 재무설계 방식도 바꿔야 한다. 은퇴의 시작은 여행 가방을 준비하듯 꼼꼼히 챙겨야 즐겁고 안전하다. 은퇴재무 전문가 3인의 ‘믿고 맡기는 평안한 노후의 길’을 함께 떠나보자. 소득흐름이란? “돈이 없는 사람은 이빨 빠진 늑대다.” 프랑스 속담이다. 이빨 빠진 늑대 앞에 놓인 현실은 굶주림과 죽음뿐이다. 일부일처제와 무리생활을 하는 늑대는 이동할 때 늙거나 병든 늑대를 앞세우고, 제일 뒤에는 가장 강한 늑대가 선다. 낙오와 적의 후면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런 늑대도 이빨이 빠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은 이빨이 빠지면 틀니나 임플란트를 심는다. 대체 이빨이 없더라도 미음과 영양제 등을 통해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는 있다. 늑대와 사람의 차이다. 이빨은 멀쩡한데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떨까? 이빨 빠진 늑대처럼 며칠 만에 굶어죽지는 않더라도 굶주림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돈이 없으면 “늙음은 그 자체로도, 또 다른 사람에게도 짐”이라는 에라스무스의 불길한 예언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라면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맘에 들진 않더라도 오복의 하나라는 이빨보다 돈이 더 낫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경제활동이 힘든 노후에 어떻게 돈을 마련하느냐다. 짐이 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쌓아놓은 돈, 즉 자산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소득(income)이라 부른다. 쉽게 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현금(cash)이다. 소득흐름과 현금흐름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흐름(stream)’이란 로또 당첨금 같은 거액의 일시적 소득이나 현금이 아니라 꾸준한 소득이나 현금을 뜻한다. 즉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현금흐름이 쭉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종류의 소득 그동안 쌓아온 돈, 즉 자산에서 안정적인 소득흐름을 만들어내려면 먼저 소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노후생활을 뒷받침하는 소득에는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저작권료·목돈에서 일정액을 찾아 소득화하는 방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근로소득·연금소득·이자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매달 일정한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반면에 배당소득과 저작권료는 분기 또는 연단위로 소득이 발생한다. 노후에도 매달 생활이 이어짐을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좋지만 분기 또는 연단위로 발생하는 소득도 아주 소중하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출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료는 적은 금액이라 할지라도 액티브 시니어에게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액티브 시니어의 다양한 경험들을 책으로 묶어내면 소중한 경험자산이 사회적으로 사장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 대박을 치면 금전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액티브 시니어라면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또 하나 되짚어봐야 할 것은 소득흐름의 기간이다. 인간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싫든 좋든 삶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소득 역시 지속적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본인이 사망할 때까지 생활비가 나오는 종신연금과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저작권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 특출한 몇 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저자 저작권료 시효가 극히 짧다는 점을 고려하면 연금소득의 가치는 특별함을 더한다. 나머지 근로소득·이자소득·배당소득·임대소득·목돈의 소득화 방법 등은 해당 소득을 발생시키는 원천이 사라지면 당사자가 사망하기 전이라도 소멸되고 만다. 그렇다고 이들의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노후의 삶에도 다양한 이벤트가 있고, 그중에는 돈의 지출을 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교적 풍부하고 비중이 절대적인 근로소득을 가지고 있는 현역 시절과 달리 그런 소득이 없는 노후에 다양한 사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연금소득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노후에 연금소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응하기 어렵다. 이른바 유동성 문제에 직면해 자칫하다간 흑자도산하는 기업처럼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각 소득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표1] 참조). 안정적 소득흐름 창출하는 방법 노후에 안정적 소득흐름을 창출하고자 할 때 주안점을 둬야 할 부분은 자산 규모와 연금소득의 수준이다. 이상적인 소득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자산이 없는 사람은 일정액 이상의 연금소득 확보에 초점을 둬야 한다. 최저생계비 정도는 연금소득으로 확보해야 한다. 생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인 최저생계비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않으면 구도자가 아닌 한 생계비 걱정에 액티브 시니어로서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의 60%로 산출되는데 2017년의 경우 1인 가구는 99만1759원, 2인 가구는 168만8669원이다. 올해 62세인 A씨는 5년 전 은퇴해 2세 연하의 부인과 함께 나름 행복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다. 출가한 두 자녀가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정도로 기반을 잡고 있어 자식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도 걱정이 있으니, 바로 연금이다. 그의 연금소득은 올해부터 받는 90만원 정도의 국민연금이 전부다. 그동안의 생활비는 57세 은퇴할 때 받은 3억원 정도의 퇴직급여를 은행에 넣어두고 빼내 쓰는 ‘목돈의 소득화’ 방법으로 조달했다. 매달 200만원을 사용한 결과 3억원이던 퇴직급여는 5년 만에 1억800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부터는 국민연금 90만원을 제외한 110만원을 퇴직급여에서 빼 쓰고 있다. 이런 추세로 계속 갈 경우 A씨의 퇴직급여는 정확히 13.6년 만에 고갈되고 만다. A씨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A씨에게 탈출구는 없을까? A씨의 국민연금은 2인 가구 최저생계비보다 약 80만원이 부족하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는 110만원이 모자란다. 서울에서 시가 7억원 정도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상담 끝에 주택연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부인의 나이(60세) 기준으로 7억원 아파트로 주택연금(종신지급, 정액형)에 가입하면 매월 약 147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최저생계비는 물론 본인들의 생활비보다 많은 연금소득이 만들어진다. A씨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을 합친 연금 총액 중 본인의 생활비를 초과하는 금액(37만원)을 저축하기로 했다. 10만원은 3년 뒤 해외여행을 목표로 조금이라도 금리가 높은 새마을금고 적금에 들고, 나머지 27만원은 비상자금 용도로 증권사 CMA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자금 담당)을 활용하기 위해 책 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한편 강사와 학원사업 등으로 50억대 자산가 반열에 오른 B씨(65세)는 5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은 성인 자녀(30세) 한 명과 20억 정도의 빌라에서 생활비 걱정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의 수입원은 국민연금 55만원, 이자수입 120만원, 20억대 상가 임대료 약 1000만원이다. 10억은 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이런 그에게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 B씨는 요즘 큰 고민에 빠져 있다. 경기 탓인지 임대료 수금이 잘 안 되고, 얼마 전부터 여자 친구가 생긴 아들이 결혼을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B씨는 아들 결혼자금으로 5억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B씨의 월 생활비는 약 1000만원이다. 임대료가 제때 걷히지 않는 달에는 적자를 보기도 한다. 앞으로 월 생활비를 20% 정도 줄일 생각인 B씨는 최소한 생활비 정도는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임대료 수금이 원활하지 못한 상가는 이번 기회에 처분할 계획이고, 거주하는 빌라는 나중에 자녀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이런 상황에서 B씨는 향후 월 생활비 800만원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고 싶어 한다. 국민연금과 이자수입은 120만원 정도로 줄어들 것이므로 약 680만원을 안정적으로 조달해야 하는 셈이다. 결국 B씨는 둘째 아들 결혼자금 5억원을 제한 나머지 5억원은 비상자금으로 유지하되 수익성과 유동성을 고려해 예금과 펀드 등에 분산투자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가가 처분되면 그 돈의 반을 투자해 소형 아파트 몇 채를 구매해 임대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머지 반인 10억원은 즉시연금과 월지급식펀드를 활용해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기로 계획을 짰다. 이렇게 하면 B씨의 소득원은 아파트 월세, 국민연금, 즉시연금, 월지급식펀드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안정성·수익성·유동성을 함께 노릴 수 있게 된다.
- 2017-03-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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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 가이드② 은퇴재무설계의 기본 방향
-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5070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재무설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속성을 충분히 감안한 재무설계 전략을 수립하고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재무설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새로운 길이므로 낯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관점을 바꿔야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다. 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자산관리, 소비관리, 가치관리라는 3가지 측면에서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의 은퇴재무설계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 ◇ 자산관리 아무리 돈에 초연한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돈은 필요하다. 5070 액티브 시니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삶의 눈높이가 평균적인 시선보다 높은 만큼 돈의 역할 역시 크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꽤 있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이 돈을 잘 관리하여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에도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모아놓은 돈이 좀 부족하다 싶으면 돈을 더 잘 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마디로 자산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말인데, 은퇴재무설계에 대한 이해는 그 선결 과제다. 먼저 관점을 ‘자산에서 소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2040 시절 재무설계의 핵심은 내집마련. 노후자금, 자녀교육비 등 목적자금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목돈을 모으는 것이다. 즉 자산 중심의 재무설계다. 그러나 이미 은퇴했거나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는 5070세대의 재무설계는 노후생활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현금흐름, 즉 소득창출에 초점을 둬야 한다. 연금을 활용하면 쉽게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지만, 모든 자산을 연금화해버리면 일시적으로 자금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즉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생활비와 유동성을 함께 고려하는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 둘째로는 ‘자산에서 소득으로’의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축적에서 인출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익숙해져야 한다. 자산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방법에는 일시금 방식, 연금 방식, 프로그램 방식 등 다양한데 이들을 흔히 인출 방법이라 부른다. 각 방식은 소득흐름의 안정성과 유연성 등의 측면에서 장단점이 다르므로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감안해 특정 방식을 선택하거나 두 가지 이상의 방식을 결합해 사용할 수도 있다. 인출 방법의 구체적 형태는 월 지급식 상품 선택으로 나타나는데, 예금형·즉시연금형·수익배분형 등이 있다. 셋째로는 ‘수익률에서 위험관리로’ 전환되는 패러다임에 주목해야 한다. 2040세대는 임금 또는 사업소득 형태로 계속 현금이 유입되고 투자기간이 길어 수익률 중심의 자산관리를 할 수 있다.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더라도 새로 유입되는 현금으로 가격이 떨어진 자산을 매입할 수 있어, 가격상승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5070세대는 수명 연장으로 과거보다 투자기간이 길어졌다 해도 유입되는 현금의 양이 크게 줄어들어 수익률보다는 위험관리에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5070세대에게 유입되는 현금은 대부분 생활자금 용도여서 위험관리를 제대로 못해 유입되는 현금이 크게 줄거나 들쭉날쭉하게 되면 생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 ◇ 소비관리 5070세대는 축적해놓은 자산은 많은데 일을 통한 수입이 없거나 적다. 저축해놓은 돈에서 곶감 빼먹듯 생활비를 조달해야 한다. 합리적인 소비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 습관화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무조건 소비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다. 5070세대의 특성을 감안한 소비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양적 소비에서 질적 소비로, 가족 중심의 소비에서 나 중심의 소비로 소비의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가치 중심의 소비다. 5070세대는 중년으로서 2040세대와는 삶의 중심축이 다르다. 2040세대의 삶의 중심축이 성장에 있다면 5070세대의 삶의 중심축은 의미에 있다. 가족의 성장과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한 소비에서 기부·자선·봉사 등 가치 있는 소비로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형성되고 강화된 사회적 관계망은 육체적·심리적 건강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재무적 요소와 비재무적 요소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이다. ◇ 가치관리 ‘가치관리’는 일반적인 재무설계에서는 쉽게 간과되기도 하지만, 5070 액티브 시니어의 은퇴재무설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화목, 건강, 행복을 바란다. 이것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략적 판단과 구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가족의 파탄을 불러오는 재산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상속 및 증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아직 젊은데 서두를 필요가 뭐가 있냐며 뒤로 미루면 안 된다. 판단력이 좋을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둬야 한다. 시간에 쫓겨 서두르다 보면 실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건강관리는 누구나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꾸준한 실천과 그 가치다. 노후에는 의료비가 생활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재무적 측면에서 건강관리를 아주 중요하게 보는 이유다. 일본의 노후파산 사례에서 보듯이 노후에 건강이 악화되면 재정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에 직면해 급기야 노후파산에 이르기도 한다. 노후의 의료빈민(medi-poor)은 정말 비참하다. 건강관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면서 돈을 절약하는 일석이조의 방법이다. 또한 급격한 건강 악화에 따른 인생의 하드랜딩을 방지하고,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영위하면서 서서히 인생을 마무리하는 인생의 소프트랜딩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 2017-03-0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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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 PART5] 나쁜 인상 VS 좋은 인상, 대선 후보 중 누가 가장 잘나갈 관상일까
- 박정희 혜담(慧潭) 인상코칭 연구원장 iliseo80@naver.com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으로 인해 19대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통령의 탄핵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진 사건임에 틀림이 없다. 선거철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대통령 상(相)이 따로 있나요?’이다. 인상학을 공부하면서 배운 군주의 상은 이렇다. 첫째는 눈이 맑고 빛이 나며 자애로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는 관골이 잘 싸주면서 코의 기운이 우람해야 한다. 세 번째는 수주(귓볼)가 두툼하고 풍윤해야 한다. 넷째는 이골(턱 주변)이 강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탄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음성에 힘이 있어야 한다. 맑고 빛이 나는 눈은 명석함과 현명함을 나타내며 자애로움은 사랑을 담아 사람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관골이 잘 싸준 코는 재물에 대한 힘이 강해 부를 가져다주고 신의 또한 굳건하다. 두툼한 귓불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능력이 있으며 세상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지혜가 있다. 턱의 힘이 강하면 상하 간의 조화로움을 중요시할 것이다. 음성에 힘이 있어야 내면의 힘과 상대를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느껴진다. 이 모든 조건들을 다 가진 후보자가 과연 있을까. 지금부터 대선 후보들의 인상을 들여다보자. 우선 최근에 가장 많이 거론되는 4명의 인상을 비교해보자. 먼저 눈을 살펴보자. 반기문 후보의 눈은 가로로 길고 눈동자에 강한 힘이 담겨 있다, 반면 안철수 후보의 눈은 쌍꺼풀이 짙지 않아 부드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것을 직시할 때는 강한 불꽃이 튀는 듯한 매서움이 느껴진다. 문재인 후보의 눈은 짙은 쌍꺼풀에 검은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 있어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면모가 드러나 보인다. 박원순 후보의 눈은 눈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조용하고 편안하게 보이지만 감추어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눈은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그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부위다. 대화를 나눌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소통 욕구가 있다는 의미다. 반면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눈을 회피한다. 다음은 코를 살펴보자. 코가 가장 잘 발달된 후보는 안철수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산근(눈썹과 눈썹 사이)의 힘이 좋고 콧대가 반듯하고 힘이 좋다. 명예를 중요시하며 자신이 가진 명예가 재물이 되는 코다. 반기문 후보는 자신의 삶에서 두 번째 행운을 만날 수 있었던 시기가 코의 나이, 즉 40 이후라 할 수 있다.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자신에게 온 행운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코다. 문재인 후보는 욕망은 강하지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창고(콧방울)가 다소 약해 보인다. 박원순 후보의 코는 창고가 잘 발달되어 있지만 창고 문이 커서 실속이 부족해 보인다. 코는 재산 관리 능력과 욕망, 지위 등을 나타내주는 부위로서 특히 대통령의 코는 국가 경제와 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은 콧구멍이 너무 크고 콧방울(준두)에 힘이 없어 취임 초기부터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과연 우려했던 것처럼 많은 사건과 사고가 나서 국민들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매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통령의 코가 힘 있게 반듯하게 잘 내려가 있고 콧방울이 튼실한데다 관골까지 잘 발달되어 있으면 금상첨화여서 자신의 위상이나 재물운도 좋지만 나라의 경제도 튼튼하다. 입은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부위로서 먹고 말하는 문제가 담긴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대선을 치를 때마다 입을 중요하게 보라고 한다. 특히 입술이 안으로 말려들어가 있는가를 잘 보라고 주문한다. 입술이 안으로 말려 들어간 사람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이 부족하고 현재 속이 타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입술이 뒤집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입술이 활짝 뒤집힌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여자에게 더 해당되는 말이지만 남자 역시 비켜갈 수 없는, 얼굴이 주는 언어다. 19대 대선 후보들의 입은 잘생겼다고 할 수 없다. 다행인 것은 대부분 턱이 강하고 늘어져 있지 않아 하극상을 당하지는 않을 관상들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있다. 결국에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다가올 시간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그에 맞는 적절한 인물이 선택될 것이다. ◇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인상 71세 트럼프의 강경 성향을 얼굴에서 살펴보려면 이마와 코부터 봐야 한다. 잘생긴 이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넓고 반듯한 이마와 곧게 잘 다듬어진 콧대. 좋은 가정에서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의 전형이지만 그는 돈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신문배달을 하며 용돈을 마련했다고 한다. 트럼트의 경제관념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트럼프의 모습은 그의 살아온 시간들의 이면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의 재산이 100억 달러라고 하니 실로 어마어마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자신의 사업적 역량으로 키운 것이 아니라 잘 지켜서 자산 가치가 더 커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두 번의 이혼에도 재산을 잃지 않았다. 그의 콧방울은 사업가로서 부를 축적하는 코라기보다는 가진 것을 잘 지키는 코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부동산을 이용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견고해진 턱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지구력과 자신감의 소치가 아닐까. 트럼프의 얼굴에서는 타인에 대한 동점심이나 나약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치밀하고 계산적으로 보이는 눈, 넓고 잘 발달되어 있지만 각이 지고 단단한 이마는 냉정해 보이는 코와 함께 그의 면모를 강인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그의 입은 크고 잘 발달되어 있다. 법령(입가의 주름) 또한 턱까지 잘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들을 관찰해볼 때, 작은 주변국들을 지원해줄 것이란 기대는 내려놓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작은 희망이라도 가져볼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트럼프가 명예를 중요시하는 강한 인상을 가졌다는 것이다. >>박정희(朴正姬) 전 동방대학원대학교 문화교육원 인상학 교수 혜담 인상코칭연구원 원장으로 기업체와 대학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tv조선 인상학자 패널, 관상학 전문가 패널로 밝고 아름다운 인상미학에 대해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 등이 있다.
- 2017-02-1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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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댓연금] 60대의 연금술
- 어느 60대 여성들의 대화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어린이 놀이터를 빙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앉아 있다.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할머니의 존재를 잊은 듯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었고, 할머니 두 분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잠시 손주들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우연히 그 옆에서 할머니들과 아이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필자는 어느 순간 벤치 쪽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시선을 고정했다. 남 이야기를 엿들은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 직업병 탓으로 돌리며 그 내용을 여기에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할머니 한 분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곗돈을 탄 모양이었다. 그 곗돈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요즘은 은행에 넣어둬도 이자가 얼마 붙지 않아 재미도 없는데, 곗돈을 어디에 쓸 거유?” “연금에 가입해 매달 연금으로 받으려고 해요.” “연금으로 받으면 몇 푼 되지도 않을 텐데, 차라리 여행을 다녀오거나 며느리에게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라도 매달 받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그리고 이제 우리 노후는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잖우.” 이 말을 들은 여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 게임 위의 대화는 오늘날 60대의 고민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돈이 좀 생기면 고민도 생긴다. 자식을 위해 써야 할지, 아니면 이기적으로 보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써야 할지, 자신을 위해 쓴다면 어떻게 쓰는 게 과연 좋을지 판단이 잘 안 선다. 노후를 위해 연금에 가입하는 게 좋을까? 이성은 연금에 가입하라고 권하는데, 감정은 자식을 위해 쓰라고 부추긴다. 이성과 감정의 줄타기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감정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하지만 위의 사례에 나오는 여성처럼 꿋꿋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그 결과는 어떨까? 감정적으로 내린 판단보다는 이성적 판단이 지혜로운 판단이었음을 곧 알게 된다. 2001년, 미국의 저명한 두 교수가 2001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 중 2150년까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미국 앨라배마 버밍햄대학교 오스태드 교수는 메트포르민과 라파마이신 등이 인간의 수명을 상당히 늘려줄 것이라며 생존 쪽에 내기를 걸었고, 시카고대학교의 올생스키 교수는 유전적 프로그램이 걸림돌로 작용해 아무리 오래 살아도 115세밖에 못 살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1년에 각각 150달러씩 내어 300달러를 펀드에 투자했다. 이 펀드는 2016년까지 연평균 9.5%의 높은 수익률을 보여 300달러가 1275달러로 늘어났다. 2016년 이들은 각각 300달러씩 또 내어 600달러를 이 펀드에 추가로 넣었다. 이 펀드가 2150년까지 연평균 9.5%의 수익률을 실현하면 2150년에는 약 2억 달러가 된다. 이 돈은 내기에서 이긴 사람의 유족이 다 가져가기로 했다. 지금의 60대가 150세까지 생존할 가능성은 없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수명이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연금을 선택한 이성의 판단은 옳은 것이다. 60대 연금술의 핵심과 전략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어떤 연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점에 있다. 가진 돈을 모두 연금으로 전환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바로 여기에 60대 연금술의 전략이 있다. 모든 자산을 연금화한 뒤 매달 받는 연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연금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계속 나오겠지만, 당장의 큰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빚을 얻게 된다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는 쪼들린 생활을 해야 함을 물론 최악의 경우에는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후지타 다카노리의 저서 는 연금으로 일상적인 생활은 그럭저럭 유지하더라도 여윳돈이 없는 상황에서 질병 등 추가로 돈 들어갈 일이 생기면 곧바로 하류노인으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현금이 흘러넘치는데도 경제 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풀지 않아 경기가 나아지지 않고 마치 경제가 함정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동성 함정’이라 한다. 은퇴자의 경우도 연금이 쉼 없이 나오는데도 일시적 지출에 대응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이라고 하자. 은퇴자는 이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결국 60대 연금술의 핵심은 연금화와 유동성의 적절한 조화라 할 수 있다. 정상연금이냐? 연기연금이냐? 60대가 연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은 국민연금의 수령시기를 법에서 정한 시점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뒤로 미룰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있다. 2017년에 만 60세가 되는 1957년생은 만 62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신청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국민연금은 정상 수령 연령부터 받는 것이 기본이지만 최대 5년간 앞당겨 받을 수도, 늦춰 받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앞당겨 받는 것을 조기연금, 늦춰 받는 것을 연기연금이라고 한다. 조기연금을 신청하면 정상연금보다 일찍 수령하므로 1년당 6%씩 수령액이 낮아지며, 연기연금을 신청하면 1년당 7.2%씩 수령액이 늘어난다. 1957년생이 62세에 연금을 신청할 경우 연간 1200만원(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해보자. 이 사람이 연금 수령을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와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5년 늦게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7.2%씩 급여액이 올라가므로 첫해 연금액은 36% 증가한다. 반면에 5년 빨리 신청할 경우에는 1년당 6%씩 급여액이 삭감되므로 첫해 연금액이 정상연금액보다 30% 줄어들게 된다. 첫해 받게 되는 월 연금액은 조기연금 70만원, 정상연금 100만원, 연기연금 136만원이다. 이렇게 보면 언뜻 연기연금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연기연금에 비해 조기연금은 10년 먼저, 정상연금은 5년 먼저 받기 때문이다. 어떤 수령 방법이 가장 유리한지는 누적연금액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누적연금액 곡선의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것은 연기연금이고, 그다음이 정상연금이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초과하지만,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에게는 추월당함을 의미한다. 정상연금 월 100만원과 이 연금액이 매년 물가상승률(2% 가정)만큼 증가한다고 했을 때 76세가 되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보다 많아지고, 80세가 되면 10년 늦게 시작한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을 추월하며, 84세가 되면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정상연금의 누적연금마저 넘어서게 된다( 참조). 이는 84세 말까지 생존해 있을 경우 연기연금의 누적연금액이 가장 많음을 뜻한다. 2015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62세 여성의 기대여명이 25.1세이므로 여성은 평균적으로 연기연금을 신청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며, 남성의 기대여명은 20.6세이므로 연기연금을 우선으로 생각하되 상황에 따라 정상연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많은 연금을 받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상황이란 가족력이나 본인의 건강상태 등을 말한다. 이 상황을 감안해 기대여명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낮으면 정상적으로 62세에 연금을 신청해야 가장 많은 연금액을 받는다.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 이제 60대 연금술의 전략이라 할 수 있는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 피하기에 대해 살펴보자.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 따르면, 사망할 때까지 연금이 나오는 종신연금의 적정비율은 은퇴 자산의 규모, 국민연금 수령액, 주택연금 가입금액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은퇴파산 확률이 가장 낮은 종신연금의 비중은 24~42%라고 한다. 종신연금의 비율이 24% 이하로 떨어지면 장수리스크와 변동성리스크 때문에, 42%를 넘게 되면 구매력리스크와 이벤트리스크 때문에 은퇴파산 가능성이 높아진다( 참조). 모든 자산을 종신연금으로 전환해버리면 은퇴파산 확률이 90%로 올라가는데, 이는 일반 국민들이 이용하는 사적연금의 경우 연금액이 일정 금액으로 고정되어 있어 인플레이션에 취약하고, 이 상황에서 질병이나 사고 등 큰 금액의 지출이 생기는 일이 발생하면 대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을 포함해 종신연금의 비중을 3분의 1 정도로 유지하고, 나머지 자산은 인플레이션 헤지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서는 투자형 상품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저축 투자형 소비’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 자산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말한다. 과거의 은퇴자들이 저축한 돈에서 매달 생활비를 빼 쓰는 방식을 취했다면, 단카이 세대는 저축한 돈의 일부를 투자로 운용하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투자를 위험한 행위로만 생각하지 않고, 돈에게 일을 시켜 새로운 돈을 벌어들이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일본의 50~60대 남성들의 일상 대화 속에 건강 이야기 못지않게 ‘돈이 되는 금융상품’이 회자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새로운 어른 문화 연구소’의 소장인 사카모토 세쓰오는 저서 에서 아베노믹스가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부 기관 투자가나 해외 펀드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많은 개인 투자가들이 참가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개인 투자가의 중심적 존재가 바로 단카이 세대였다”고 말한다. 투자를 통해 돈이 제대로 일을 수행하면 괜찮은데, 반드시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는 게 투자의 세계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고 아울러 유동성을 확보하기에 좋은 것이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만 60세 이상(주택 소유자 또는 배우자)의 고령자가 소유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평생 혹은 일정 기간 동안 매월 연금 방식으로 노후생활 자금을 지급받는 국가 보증의 금융상품(역모기지론)을 말한다. 주택연금을 받으려면 우선 주택금융공사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고, 이를 제휴 금융기관에 내면 그 금융기관에서 주택연금을 지급해준다. 주택연금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연금지급방식이다. 주택연금의 지급방식은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방식과 고객이 선택한 일정 기간 동안만 월 지급금을 지급받는 확정기간방식으로 나뉜다. 종신방식은 다시 인출한도 설정 없이 월 지급금을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지급방식과 수시인출한도(대출한도의 50% 이내) 설정 후 나머지 부분을 월 지급금으로 종신토록 지급받는 종신혼합방식으로 구분된다. 수시인출한도를 잘 활용하면 ‘은퇴자의 유동성 함정’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주택연금을 신청할 때 무조건 종신지급방식을 고집할 게 아니라 국민연금 수령액, 퇴직연금 등 사적연금 수령액을 먼저 계산한 뒤 부족한 월 생활비만큼을 종신연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수시인출한도를 설정해 유동성을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면 종신토록 안정적으로 생활비를 조달받으면서 갑자기 도래할 수 있는 예상외 지출 건에도 대응할 수 있어 은퇴파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손성동(孫盛東)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 역임. 현재는 ‘연금과 은퇴포럼 대표’로 있으면서 1인기업가를 꿈꾸고 있다. 공식블로그 ‘꿈꾸는 은퇴와 연금’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 동아대와 동서대에 출강하고 있다.
- 2016-12-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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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도 러브레터를 쓴다
- 내게는 두 딸이 있다. 첫째 딸은 현재 LA에 살고 있고 딸만 한 명이다. 둘째 딸은 쌍둥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모 그룹의 호주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가 호주에서 4년 동안 살다 얼마 전에 귀국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 호주로 떠난 손주들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지금은 귀국해서 서초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귀국하기 전 4년 동안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손주들과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다. 세상이 참 좋아져 무료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손주들을 향한 내 사랑 휴가 때면 한 달씩 서로 오가며 만나기도 했지만 손주들에 대한 그리움은 나를 우울하게 했다. 그래서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한 것은 그때였다. 내 사랑의 대상은 당연히 손주들이다. 내 자식 키울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랑이 솟는다. 내 자식 키울 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부담이 커서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손주들하고 대화할 때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또 손주들이 내 집을 방문할 때는 옛말로 표현해서,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긴다. 손주들이 네댓 살쯤 되었을 때는 손주들 키에 맞춰 앉아 신발도 직접 벗겨줬다. 올망졸망한 발을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럽고 행복했다. 나는 손주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좋아할 만한 간식을 직접 만들어 준비해놓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연휴를 맞아 함께 임진강 근처로 놀러갔다. 오가는 시간이 서너 시간 걸리는 거리여서 둘째 딸이 간식을 준비해 왔지만 나도 차 안에서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는 간식거리를 준비했다. 내가 늘 먹을거리를 준비해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손주들은 교외로 나갈 때마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무엇을 싸오셨을까?’ 하고 소풍 도시락 열어보듯 설레어한다. 내가 힘들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손주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땀 뻘뻘 흘리며 과일 잼도 직접 만들어 먹인다. 아이들은 보는 대로 배운다 얼마 전에 손주들한테 용돈을 줘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용돈을 줄 때마다 새 지폐를 마련해 반드시 짧은 글이라도 써서 깨끗한 봉투에 넣어서 준다. 헌 돈과 새 돈의 가치는 똑같지만 시장에서 거스름돈으로 더럽혀지고 심하게 구겨진 돈을 받았을 때는 새 돈을 받았을 때와 기분이 다르다. 은행이 막 찍어낸 듯한 빳빳한 새 돈을 받으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돈처럼 귀중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용돈을 줄 때도 정성을 다하는 것은 손주들이 어려서부터 돈을 귀하게 여기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손주들이 용돈 봉투를 열고는 “와~ 새 돈이다!”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다. 그래서인지 손주들도 내게 줄 선물을 준비할 때는 정성을 다하고 예의를 갖춘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이 맞다.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사랑의 흔적들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글로 표현하는 것은 그 느낌과 강도가 다르다. 손주들도 그것을 아는 것 같다. 말은 그 순간에 제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편지로 정성스럽게 표현한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손주들 책갈피에서 종종 다시 발견되기도 하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주고 내가 써준 편지들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도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참 행복하다. LA에 사는 손녀는 멀리 있어 행여 할머니 사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서울에 올 때마다 내가 사용하는 붓과 책 등의 물건들에 “할머니 사랑해요!”라는 글을 몰래 남기고 가는 것을 보면 기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돌아간 후 여기저기에서 발견되는 손녀의 흔적을 볼 때마다 어린 마음에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짠해진다. 그리고 LA로 돌아가 정성을 다해 쓴 ‘할머니의 Love Letter’를 보고 까르르 웃으며 곧 답장을 보내올 손녀가 그때부터 그리워진다. 손주를 예뻐하느니 홍두깨를 예뻐하라는 옛말이 있다.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 그 순간부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그저 순간순간 느끼면 되고 그 순간이 쌓이면 한 권의 아름다운 책만큼 풍성한 이야기들이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훗날 추억을 더듬듯 그 책을 살며시 펼쳐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 사랑하는 정민, 지민, 성수, 멀리 바다 건너에 살아 자주 볼 수 없는 솔라야 예쁘고 바르고 씩씩하게 성장해줘서 참 고맙다!!!
- 2016-10-0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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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러기 아빠 싫어요
- 30대의 나이인 친척 조카가 초등학생인 자녀를 필리핀으로 유학 시키면서 조카며느리도 함께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똑똑해 아마 더 큰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었나 보다. 그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필자는 걱정이 앞섰다. 젊은 나이에 부부가 떨어져 있게 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고 혼자 남아 기러기 아빠가 될 조카가 걱정스러웠다. 들리는 이야기같이 돈 버는 기계처럼 될까봐 안쓰러워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한마디 해주었다. 그저 지지고 볶아도 아이들 교육 때문이라든가 어떤 일에라도 남편과는 떨어져 살지 않을 거라고 말한 우리 며느리가 대견하고 고맙기만 하다. 12년째 기러기 아빠로 산다는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었다. 과거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유학을 하지 못했기에 아들에게는 일부러 권해서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유학 초기 혼자 떠난 어린 아들이 힘들어하자 아내가 따라가고, 아빠는 혼자 남아 버는 돈의 85%를 송금하며 혼자 살기 시작했단다. 필자는 생각이 고루해서일까, 절대 기러기 가족을 좋게 생각할 수가 없고 가족은 모여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수한 인재들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공부하고 역량을 펼쳐 우리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가족이 헤어지고 더구나 아빠만 혼자 남아 외로움을 느끼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이면서 뒷바라지를 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아버지는 12년 동안 아들을 딱 일주일만 볼 수 있었다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을지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다. 형편이 좋다면 자주 왕래하며 가족의 의미를 새길 수 있겠지만, 대다수 많은 가정이 그러지 못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유학 도중 고국에 갔다 오면 후유증으로 한동안 힘들어해서 나오게 할 수도 없고 아빠가 가자니 항공경비, 체류비, 여행비 등이 유학하는 아이와 아내의 한 달 생활비가 될 수 있어 차라리 돈을 보내게 되더라는 것이다. 공황장애 증세로 병원까지 찾았다는 아버지가 너무 힘겨워 보이고 슬프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아들이 성공하면 그것으로 만족인 걸까, 아버지는 회사에서 정년을 고려해 편한 곳으로 발령을 내주려 했지만 정신없이 일해야 외로움을 덜 느낀다며 현장을 고집했다니 그것 또한 가슴이 아픈 이야기다. 아이의 공부가 끝나고 아내가 돌아왔단다. 필자 마음이 다 훈훈하다. 아들은 그곳에서 좋은 직장에 취업이 되었는데 어느 날, 1년만 외국에서 근무하고 한국지사로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공부가 끝나고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혼자 떨어져 살아 보니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알 것 같다며 "아빠 미안해요," 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필자는 필자와 아무 상관없는 가족의 이야기인데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렀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 그 아들이 기특하고, 기러기 아빠로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이 아버지는 성공한 삶인 것 같다. 이 가족은 성공했지만 필자는 아직도 기러기 가정이 옳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가족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저나 우리 조카도 먼 훗날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 제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 2016-09-0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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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초등학교 전학](6)... 오도시다마(세뱃돈)
- 1983년이 되었다. 외국이지만 아이들에게 우리의 설을 느끼게 해 주려고 정성들여 녹두전도 부치고 삼색 나물도 무치고 내 식으로 설음식을 만들었다. 아이들도 신이 나서 만두를 빚었고, 전을 부치는 곁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떠들어대었다. 온 식구가 모이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오붓한 설날 분위기는 부러움 없는 즐거운 풍경이었다. 만두 속이 터져라 꼭꼭 넣은 사골 떡 만둣국을 후후 불어가며 외국에서 먹는 행복한 설날을 나는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다. 일본사람들은 네모난 찹쌀떡을 석쇠에 구워서 멸치 다시국물에 넣어 파랗게 데친 시금치와 짙은 분홍색을 띤 어묵 종류중 하나를 썰어서 고명같이 올려 아주 예쁘고 담백한 오조니라는 것을 만들어먹는다. 우리는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려는 속셈이 섞인 걸쭉한 기분이 드는 걸 먹는데 그들은 춥지가 않아서인지 아주 상큼 맞고 심심한 것을 먹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먹는 것도 꽤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간단하게 만들어 먹는 나의 메뉴로 하나가 추가되었다. 그들은 12월 말에 갖가지 오세찌라고 하는 새해를 위한 요리를 정성껏 많은 양을 만든다. 1월1일부터 사흘간을 집에서 먹고 자고를 해가며 반복해가며 먹기 위한 준비란다. 거의 일주일 치를 전부 만들어 놓고 그걸 또 차려 먹고 치우고 또 차려 먹으며 지낸다나? 사흘 내내 같은 음식을 먹으며 집안에서 조용하게 가족단란을 보낸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반복되는 같은 맛의 반찬을 먹느라 고역이라는 얘기다. 매번 때를 같은 반찬으로 때운다니 어이없었다. 이유는 못 물어 보고 한 엄마가 흘리는 말로 귀찮아서 그렇다며 웃었다. 정말일까? 모르겠지만 주부들이 일 년을 열심히 일해야기 때문에 힘의 저축을 위한 푹 쉼의 의미? 일본인다운 발상일 듯도...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가는 풍속은 있었다. 우리가 세뱃돈이라는 걸 받듯이 일본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오도시다마라는 걸 준다. 어른들은 그 오도시다마를 넣어주는 봉투들을 문방구나 예쁜 것들을 모아 놓고 파는 곳에 가서 자기 취미와 받을 사람에게 적합한 봉투를 무척 심중하게 준비한다. 일본 아이들은 그 돈을 받아 일 년 동안 자기의 용돈계획을 짠다는 것이다. 우선 받으면 즉시 은행에 개설해 놓은 자기 통장에 넣고 부모도 형제간에도 그 돈에 대해서 터치할 수가 없단다. 본인만의 돈 관리를 직접 해 가며 자기의 경제적인 영역을 넓혀가고 자기만의 용돈관리를 습득한단다. 확고한 셈을 직접 경험해가며 돈의 흐름을 실수도 해 보고 일어서는 법도 혼자 터득하고 배워 간단다. 한사람 1통장의 교육이 정확하게 실천되고 있는 것을 체험했다. 우리 엄마들처럼 아이들이 받은 것을 엄마가 보관해 준다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어려서부터 경제적인 머리를 키워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며 어느 한 편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아무튼 두 나라의 새해보내기는 사뭇 달랐다. 우린 영양적으로 우수한 음식을 먹으면서 윷놀이를 해가며 떠들썩하게 온 동네가 들썩이는데 반해, 간단한 음식에 경제적인 중요성을 위한 돈 관리를 정확하게 알게 해주며 어른들은 징그러울 만큼 푹 쉬는 게 새해인 거 같았다. 아이들에게 통장관리 시키는 거 하나는 건져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다.
- 2016-09-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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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가 만난 사람] 문주현 MDM 회장의 돈의 철학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 놓은 것, 사회를 위한 나눔으로 거듭나야”
- “어느 언론사 기자가 문주장학재단에 대한 기사를 썼는데 내가 환갑이 되기 전에 기금 200억 원 달성이 목표라고 마음대로 쓴 거야. 그래서 당신 때문에 200억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랬지. 그래서 달성해 버렸어(웃음).” 국내 디벨로퍼(부동산개발 업체) 1세대의 대표주자인 문주현(文州鉉·58) MDM 한국자산신탁 회장은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서 비범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문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함께 문주장학재단을 세웠다. 그리고 재단은 어느새 회사 자본금보다 더 큰 규모가 됐다. 이제 남부럽지 않은 경력과 성취를 이루게 된 그가 어째서 그토록 사회 환원을 추구하는 걸까? 문 회장이 갖고 있는 돈과 사회, 그리고 시니어로서의 삶에 대한 철학을 들어본다. 글 김영순 기자 kys0701@ 사진 이준호 기자 jhlee@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만 하는 ‘노예’처럼 살았던 그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후배 집에 얹혀살면서 생활비를 벌어 겨우겨우 필요한 돈만 메꿨던 생활. 2015년 매출액 4193억원을 기록한 MDM의 회장이자 한국자산신탁 회장을 겸하고 있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 성공 신화의 주인공 문주현 회장의 20대 시절 얘기다. 가난한 사람이 돈의 소중함을 안다 “그러던 시절, 대학교 3학년 때 모 독지가로부터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시작이었어요.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내가 돈을 벌게 되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그의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현재 200억 원가량의 기금으로 운용되는 문주장학재단을 갖고 있다. 2014년 기금 100억 원을 달성한 후 불과 2년 만에 그 두 배를 달성한 것이다. 재단은 2002년부터 초·중·고·대학생 175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1년에 장학재단을 세우니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 일을 안 하려나 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그러나 사람은 자기만족이잖아요? 내가 약속한 거고 신세를 졌는데, 해야지.” 문주장학재단의 수혜 대상자는 무조건 형편이 어려운 사람으로 선정된다. 그 외 특별한 선정 기준은 없다. 요즘은 돈을 많이 가질수록 공부도 더 잘하는 세상이다. 문 회장은 가난한 이들은 돈을 소중하게 쓴다는 신념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보다도 본인이 세상에 증명한 사실이다. “장학 대상자는 웬만하면 바꾸지 말라고 해요. 다만 성적이 급격히 떨어지면 바꾸라고 하죠. 돈까지 대주는데 공부를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거니까.” 돈이란 내 것이 아니다 문 회장은 장학재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이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저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할 뿐이라는 말이었다. “장학재단을 하다 보니 나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소개를 안 해주고 좋은 일을 한다고 소개해줘요(웃음). 아 세상이 이렇구나 싶었죠. 물론 나보다 돈 많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 거겠지만, 회사보다 자본금이 더 큰 장학재단을 갖고 있어서 그렇겠죠.” 문 회장의 사회를 향한 지원에는 장학재단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의 모교에 씨름부를 만들고 공공버스도 운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했다. 덕분에 전국 우승도 다수 경험하는 강한 씨름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서울시청 지하 1층 시민청에 마련된 서울책방이 다시 문을 여는 데는 문 회장이 쾌척한 1억원이 있었다. 국내 최초의 여자바둑대회에는 2억원을 내놨다. 모교인 경희대학교에도 매년 1억원 이상을 기부한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그가 갖고 있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돈이란 무엇인가? 내 것인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 사회로부터 얻은 거고,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관리하라고 맡긴 겁니다. 이걸 갖고 자기 거라고 유세를 떠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그리고 이 돈이 내게 관리하라고 온 것은 일정 부분을 사회에 내놔야 한다는 의미라고 봅니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돕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양극화가 해소될 방법이 없고 시장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문 회장의 ‘돈은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그러한 진실을 우회해서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가 유독 젊은이들에게 기부의 타깃을 맞춘 것도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은 자기 탓이 아닙니다. 대신 정신이 올바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주장학재단은 예술계 쪽 지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화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방향에서 검토하는 중이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보니 문화예술계 쪽이 굉장히 어려워요. 그런 사람을 도와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 있고 자질 있는 사람을 골라서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이상문학상’처럼 공모를 통해 권위가 있도록 만들어야겠죠. 아직 밑그림을 정확하게는 안 그렸지만 오페라, 소설, 악기 쪽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재생,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인생 목적 최근 문 회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도심재생 사업이다. 그에게 시기가 괜찮은지를 물어보자 확신처럼 ‘해야 할 시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재생을 지금까지는 자기 지역, 구역 별로 민간에서 했는데 민간이 하는 건 한계가 있어요. 앞으로의 세계는 도시가 국가 브랜드입니다. 싱가포르, 홍콩, 도쿄, 뉴욕 등등을 봐요. 관광할 때 그 나라를 왜 가느냐는 겁니다. 관광은 자연관광과 도시관광으로 나눌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관광이 취약합니다. 그렇다면 도시관광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을 도시 관광 국가로 만들려면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살 거주 공간으로서의 도시의 공급이 부족했다. 그래서 신도시를 마구,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저출산, 저성장기가 도래했다. 더 이상 신도시는 안 만들어질 것이라고 문 회장은 진단했다. 그렇다면 오래된 도시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도시재생이 중요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문 회장은 발 벗고 뛰는 적극적인 ‘전도사’였다. “공청회나 세미나를 하자, 우리나라의 발전 방향을 토론해보자. 하다못해 광화문, 테헤란로 등등으로 나눠 섹터 별로라도 하자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는 민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도시 부동산은 대개 개인 소유라.” 문 회장은 우리가 아이디어가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관광을 대개 일본이나 홍콩, 싱가포르로 가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가서 보는 게, 결국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지어 놓은 걸 보는 거예요.” 실로 예리한 한마디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개발과 보존은 공존해야 합니다. 북촌이나 서촌 같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지역은 보존해야죠. 다만 재개발해야 하는 곳은 과감하게, 제대로 개발해야 합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성공하면서 흔히 강남스타일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막상 강남을 가면 갈 데가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밤이 되면 거리는 죽고 뒷골목만 살아난다. 문 회장의 주장대로 도로 옆에 문화공간을 배치하여 문화 향유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함으로써 진짜 ‘강남스타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건설회사는 도면대로 짓고, 도면이 없으면 한 삽을 못 떠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죠. 반면 디벨로퍼는 지휘자고 소프트웨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상상력을 실현하는 이들이죠.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종합부동산 금융그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버타운, 도시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되어야 “나이 들어 은퇴하면 인생에 낙이 없어요. 즐거움, 기쁨, 재미가 없어지죠. 젊었을 때는 뭐든 재미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손주에게 끌리는 거겠죠. 나도 늦둥이가 있어요. 지금 제주도에 있는데 ‘네가 아빠 희망이지’라고 말하곤 해요. 손주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시니어이자 부동산 전문가로서 문 회장은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도 꿰뚫고 있었다. “실버일수록 도심으로 들어오고자 합니다. 전철, 공원, 병원 옆으로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손주들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실버가 되면 외롭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전철역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되는 거예요. 어느 성공한 시니어가 하는 말이, 자식들이 손주를 데리고 와서 자신에게 맡기고, 장을 보러 간다든지 하면 손주와 함께 있는 게 그렇게 즐겁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신이 지방에 있으니 전화만 하고 안 와서 섭섭하다는 겁니다.” 문 회장은 실버타운을 짓는다면 신경을 써야 할 부분으로 기능적인 구분을 꼽았다. 몸이 불편하여 간병인 등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과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친구들과 취미 생활 등을 할 수 있는 시니어 타운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은 두 영역을 합친다 해도 중간에 병원을 두어 병원을 중심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둘 다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건 공통된 조건이다. “실버타운은 구성원의 특성상 죽음과 밀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젊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람들과, 도시와 섞여 살아야 해요. 구분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이 시장은 굉장히 성장할 것이고, 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산다 문 회장은 올해로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가 됐다. 그에게도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 있을까? “사실 후회를 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돈은 벌었을지 모르지만 내 청춘이 가버렸잖아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연애를 잘 해봤겠어요? 당구도 못 치지. 그때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삶 자체가 옆을 볼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죠. 아내가 저에게 ‘음악을 알아?’, ‘그림을 알아?’ 하고 물어요. 그럼 저는 ‘몰라’라고 대답할 수밖에요. 저는 솔직한 얘기로 너무 안 해본 게 많고 모르는 게 많아요. 내 업무와 내가 하는 부분만 알지. 그래서 요즘은 정말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될 수 있으면 비행기로 6시간 이내로 끊어서 가려고 해요. 좀 더 많은 여행을 하는 것, 그게 제 인생을 위한 중요한 일이겠네요.” 문 회장은 아내가 자신을 보며 종종 불쌍하다고 말한다고 한다. 일밖에 모르니까. 그런데 그는 일이 없으면 공허해지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말하자면 문 회장은 자신을 돌보고 아끼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 부분을 일로 채우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그게 쉽게 안 돼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비빔밥이에요. 비벼서 빨리 먹고 일하러 가야겠다는 생각인 거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데에는 투자를 안 하려고 해요. 와이프는 왜 남은 도와주면서 자기는 그렇게 안 하냐고 타박합니다. 그런데 남을 도와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는 일이죠.” 힘들었던 어린 시절, 서른 살이 넘어 입사한 나산에서의 승승장구, IMF 한파로 인한 퇴직, 퇴직 후 MDM 설립과 한국자산신탁 회장이 되기까지. 고난과 성공을 오가며 쉼 없이 살았던 그가 살면서 이것만은 지켜야겠다는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어떤 일을 하든지 주위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내 돈 몇 푼이 중요한 게 아니고 뭘 하든지간에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이 일을 하면 참여자들이 만족하느냐, 소비자가 만족하느냐, 사회가 만족하느냐가 기준이었죠. 그래서 저는 디벨로퍼의 도덕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짓는다고 했을 때, 이걸 짓다가 멈춰 서버리면 사회적 악이 돼요. 금융사, 시공사, 협력업체, 분양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시의 흉물이 되잖아요. 그만큼 디벨로퍼란 정> 문주현 MDM 회장 1958년 전남 장흥에서 9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1978년 대입 검정고시를 보고 군대까지 다녀온 뒤 1983년, 27세의 늦은 나이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입학·졸업했다. 1987년 나산실업에 입사, 부동산개발 사업에 발을 들였고, 7번의 특진을 통해 최연소 임원이 됐다. 하지만 나산그룹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부도를 맞았다. 그는 재취업을 고민하다가 1998년 분양대행 업체인 MDM을 만들었다. 2007년 첫 시행사업에 나서기 전까지 ‘분당 코오롱 트리폴리스’, ‘분당 파크뷰’, ‘목동 현대 하이페리온’ 등 굵직한 주상복합 건물의 분양대행을 도맡았다. 2001년 재단법인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 출연금을 200억원까지 늘렸다. 2010년 한국자산신탁을 인수했으며 2012년 한국자산캐피탈을 창립했다. 2013년부터 서울시탁구협회 회장, 2014년부터 한국부동산개발협회 회장, 2015년부터는 전국검정고시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 2016-08-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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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니자서전]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 필자는 한국전쟁이 나던 해 자식 많은 가난한 농사꾼의 9남매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지금의 풍요로움을 느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 생각에 마음 한구석 애잔함이 밀려든다. 한국전쟁 이후 폐허로 변한 농촌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한 13명의 대가족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할 만큼 식량이 필요했다. 봄날은 길고 보릿고개는 높았다. 봄에 장리쌀 한 가마니를 빌려오면 가을에 한 가마니 반을 갚아야 했다. 50%의 이자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과히 살인적인 이자요, 착취다.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회 구조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해만 보릿고개를 넘을 때 장리쌀의 고리에서 벗어나면 되었지만 굶을 수는 없으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걸 필자가 해보리라 결심을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1년만 포기하기로 했다. 1년 동안 돈을 벌어보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어린 필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시절이었다. 필자 동네도 정부에서 구불구불한 논둑을 똑바로 펴는 경지정리 작업을 시행했다. 지금 말로 하면 공공근로다. 읍사무소 담당 공무원이 나와서 그날 할 일을 지정해주고 저녁 무렵 성과를 측정해서 실적에 따라 밀가루 티켓을 나눠 줬다.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최저임금에 버금가는 적은 밀가루 지급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농사일이 다 끝난 겨울에 하는 일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논둑에 한 뼘 정도 들어 올릴 만큼의 범위를 정하고 곡괭이로 논둑에 구명을 낸다. 거기에 쇠로 된 긴 지렛대를 넣고 논둑을 들어 올리면 논둑이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 직선화된 새로운 논둑을 만드는 일이다. 공사가 다 되면 바둑판처럼 반듯한 직선화된 논둑과 논이 만들어진다. 경지면적도 커지고 농토가 반듯해서 농사짓기에도 편하게 된다. 요즘 같으면 포크레인 등 기계로 하겠지만 당시는 순전히 사람의 노동에 의한 작업이었다. 공공근로라는 것이 다 그렇듯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하루 할당된 일의 양도 5~6시간이면 다 마칠 일이었다. 밀가루를 매일 주는 것이 아니고 며칠에 한 번씩 읍사무소에 가서 받아왔다. 이렇게 받은 밀가루가 10포대 정도 되었다. 필자가 벌어온 밀가루로 수제비도 해먹고 콩가루 넣은 칼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늙은 호박에 팥을 넣은 호박범벅도 해먹었다. 덕분에 쌀이나 보리를 아낄 수가 있었다. 그해 장리쌀의 고리를 끊고 보릿고개를 넘었다. 이제 빚은 없어졌다. 어머니가 두고두고 필자 공을 인정해주었다. 당시는 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먹어야 사니까 흉년에는 콩죽 한 그릇 하고 논 서 마지기를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방직공장에 취직한 나이 어린 소녀들이 봉급 받은 다음 날 우체국에 줄을 서서 고향으로 돈을 보내는 모습도 봤다. 고향 집에 보내기 위해 손에 쥔 그 돈이 달랑 300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 돈으로 오빠나 동생들 학교 다니게 하고 살림 밑천인 송아지도 샀다. 이런 돈들이 모여 논, 밭도 사고 고향 집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일등공신들이 수두룩하던 시절이었다. 땅값이나 집값이 지금처럼 비싸다면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는 가능한 일이었다. 필자는 다음 해 공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진학했다. 적성도 모르고 오직 취업이 잘되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공고를 택한 이유라면 이유다. 당시는 공부를 못해서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빠른 취업을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는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 동급생들이 하나둘씩 취업되어 학교를 떠났다. 필자도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전매청 연초제조창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담배를 만드는 기계는 이태리 제품인데 요즘처럼 완전자동은 아니나 당시로는 획기적인 자동화 기계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자동화 설비에 대해 도면 보는 법을 익히고 고장 난 기계들의 점검하고 수리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익혔다. 군대에서 기술을 더 배워보려고 육군 발전기술병으로 지원했다. 처음에는 대대 참모부에서 군수품을 담당하는 행정병 보직을 받았다. 그런데 전기 일을 하게 될 운명이었는지 부대 목욕탕 관리 병사가 전기 감전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후임으로 전기를 안다는 이유로 필자가 선발됐다. 목욕탕 관리사병은 보일러를 다룰지 알아야 하지만 필자는 보일러에 대해서는 통 몰랐다. 인근 부대를 다니며 독학으로 보일러의 운전법을 배우고 무난히 목욕탕 관리사병의 임무를 마쳤다. 한 번은 목욕탕에 사성장군인 군사령관이 방문했다. 별 4개를 보는 순간 벌벌 떨었다. 35개월을 마치고 제대한 후 한국전기안전공사에 입사하게 됐다. 27세 때었다. 필자 인생에서 전기안전공사를 빼놓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 공부도 시키고 60세 정년퇴직을 했으며 노후생활도 보장받았다. 안전공사 생활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간부시험에 일찍이 합격한 것이다. 간부는 60세 정년이지만 직원은 58세가 정년이었고 급여에서도 차등이 있어 경쟁이 심했다. 간부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하는 근속연수 점수와 상급자가 매기는 고과점수를 합한 기본점수가 있다, 여기에 필기시험을 쳐서 학과 점수를 보태어 성적순으로 뽑았다.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필기시험이었다. 필자는 상급자인 주임들을 제치고 간부시험에 입사 3년 만에 합격하였다. 간부로 첫 부임지가 공교롭게도 과거 근무한 적이 있는 사업소였다. 간부로 발령받고 보니 옛날 상사인 주임들이 부하로 바뀌어 있었다. 필자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주임들도 필자를 대하기에 곤혹스러웠다. 이런 때일수록 필자의 상급자인 과장이 잘 컨트롤 해 줘야 하는데 상급자인 과장도 주임들과 오래 근무한 정으로 심적으로는 주임들과 더 가까운 편이었다. 공식적인 술자리에는 필자가 참석했지만 주임들과 과장 간의 사적인 술자리에는 필자를 고의로 배제했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의 힘으로 간부의 위치를 찾아갔다. 두 번째 사건은 고등학교 후배가 많은 지역에 과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필자가 졸업한 공고는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엄격하여 동문회 야유회 때는 장난 비슷하게 선배가 후배 엉덩이를 몽둥이로 때리기도 했다. 나쁜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매이니까 웃으며 맞았다.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도 다녔는데 선배들이 후배 벌주는 것을 부인들이 다 보고 있었지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고착화된 선후배 간 전통이었다. 그런데 회사 간부인 필자를 때리기는 아무리 선배지만 버거워했다. 필자로 인해 벌씌우거나 매를 드는 것은 차츰 없어졌다. 하지만 선배들을 사적인 장소에서는 더욱 깍듯하게 모셨다. 술을 따를 때도 3년 이상 선배한테는 무릎을 꿇었다. 세 번째 사건은 기술직으로 감사반장이 된 것이다. 감사는 회계감사가 중요한데 기술회사에서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감사반장을 해야 한다는 사장의 경영방침에 의해서 필자가 선택되었다. 부서별 부장급 감사반원을 이끌고 사업소를 순회하며 실무 감사를 했다. 잘못하는 점보다 잘하는 점을 찾아서 타사업소에 전파하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징계도 했지만 표창도 많이 했다. 올바른 비판력과 판단력이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네 번째 사건은 전문대학교에서 겸임교수를 맡은 일이다. 기술사 자격을 갖고 있고 현장 경험이 많다는 점을 들어서 대학교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사장이 허락해 교수직을 겸임한 것이다. 전기응용 과목을 맡았는데 전기응용은 조명, 전동력응용, 전기철도, 전기화학 등 폭이 넓은 실무 분야다. 4년간의 겸임교수 시절은 몸은 힘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 다섯 번째 사건은 전기안전 부문에서 필자가 노력한 일들을 정리하여 공적조사로 만들어 경향신문이 주최하고 한국전력공사가 후원하는 에너지대상을 신청한 결과 국민봉사 부문 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굵직한 상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부상으로 대만 여행을 보내주고 금 20돈의 황금 열쇠를 받았는데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 60세 정년퇴직을 했다. 1남 1녀의 자식도 결혼하여 필자 곁을 떠났다. 비록 나이에 의해 정년퇴직했지만 아직은 신체 건강하여 일자리를 찾았다. 급여는 적지만 필자를 필요로 하는 곳에 다니고 있다. 나이 더 들면 직장에서 완전히 은퇴해야 한다. 그때를 대비해서 취미가 있는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글쓰기의 자산은 역시 독서이므로 도서관의 ‘책 읽기 마라톤’에 3년간 참가하여 언제나 1등을 하였다. 귀촌을 위해 도시 근교에 땅도 사두었다. 나이 들어서 버티는 힘은 경제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연금도 부었다. 체력도 중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올해 동호인 테니스대회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한 것이 기쁘다. 앞으로 전국테니스대회에 노년부로 참가하려고 한다. 우승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목표가 있어야 한다. 70세가 넘으면 봉사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건강한 노인이 덜 건강한 노인을 돌보는 노노케어에 매진할 것이다. 이것도 공부해야 한다. 사회봉사의 이론을 갖추기 위해 인터넷으로 사이버대학을 수강하여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니라 육체가 따라가는 봉사를 위해 발마사지와 경락안마도 배우고 민간자격증도 취득했다, 경험을 얻기 위해 시간 날 때마다 치매센터에 치매전문 자원 봉사자의 일을 하고 있다. 세상살이는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신념을 늘 갖고 있다. 필자의 생애가 아직은 진행 중이지만 돌이켜 보니 준비하며 여기까지 잘 왔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 2016-07-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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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환의 똑똑한 은퇴] 종오소호(從吾所好), 재미를 찾아다니는 재미
- 최성환 한화생명 은퇴연구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2014년 3월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CFO) 피터 오펜하이머가 무려 430억원 규모의 주식을 포기하고 그 해 9월에 은퇴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다들 놀라워했지만 정작 피터가 내놓은 이유는 단순명쾌했다. 1996년에 애플에 입사해 2004년부터 만 10년째 CFO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51세로 아직 한창이지만 회사는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되었고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앞으로는 회사와 일이 아닌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쯤 피터는 원하던 비행기 조종사 면허를 따고 자가용 비행기 하나 사서 가족과 함께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구글의 CFO 패트릭 피셰트(52세) 역시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 위해서라면서 2015년 3월 회사를 미련 없이 떠났다. 짐 로저스와 피터 린치 등 유명한 펀드매니저 중에도 억만장자가 된 다음 유유자적하며 지내겠다고 40~50대에 은퇴한 피터 팬(?)들이 수두룩하다. ‘종오소호(從吾所好)’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으리라’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리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젊어서는 엄청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또는 벌었거나 아니면 웬만큼 도(?)가 텄거나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도 저도 아닌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하면 ‘또라이’ 또는 ‘고문관’이라는 말을 듣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주된 직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마음먹기에 달린 일로 바뀌어 간다. 엄청나게 재산이 많지 않아도 도가 트지 않아도 ‘또라이’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가능한 일로 다가온다는 말이다. 물론 이때 돈이 좀 더 많을수록 좋아하는 일의 범위가 넓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분수에 맞게 하려고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널려 있다는 점에서 돈의 많고 적음이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2014년 6월 EBS의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권식씨(당시 86세). 경기도 평택에 사는 평범한 농부인 그는 몇 년 전에는 50년 이상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 온 일기가 언론에 보도되고 책으로 발간되기도 한 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점은 환갑이 되던 해에 농사를 접고 땅도 거의 다 팔아치웠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평생 일만 하다가 77세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을 실행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배운 서예가 늘어 이제 가르칠 정도가 되었고 동네 향교에서 하는 행사에는 제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나도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땅을 파는 것을 반대했던 부인이 남편이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여든이 넘은 두 분 다 건강하다. 조용한 시골에서, 그것도 평생 농사지은 곳에서 하고 싶은 대로 사는데 부러울 게 뭐 있으며 스트레스가 어디 있겠는가? ‘종오소호(從吾所好)’야 말로 좋아하는 일, 즐거움을 좇아 사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즐겁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연간 근로시간이 2124시간에 달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모자라는 것은 나만의 시간,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OECD회원국들의 평균 근로시간 1770시간과 비교하면 354시간, 가장 적게 일하는 독일(1371시간)과 비교하면 무려 1.6배나 더 많은 시간을 돈을 버는 데에 쏟아 붓고 있다. 야근과 주말 근무 등으로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일인 것이다. 그러다 막상 은퇴하면 말 그대로 막막하기만 하다.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은 있지만 해 본 적이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뭐 제대로 놀아본 적이 있어야 놀 것 아닌가? 그런데 은퇴 후 하루에 10시간씩 30년의 시간을 뭔가 의미있는 일이나 활동을 해야 하니까 총 11만시간이다. 등산이나 골프, 배드민턴, 탁구 등 다양한 스포츠와 화투와 카드, 마작 등의 심심풀이를 배우자와 친구들과 함께 즐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도 하다보면 식상해지면서 시간이 남아돈다는 게 은퇴한 선배들의 푸념이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TV 앞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은퇴 후 11만 시간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시간 이상을 TV 시청으로 때운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사실 TV 시청이 시간 때우기에는 매우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를 내려놓는 시간에 TV를 본다면 그 또한 나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TV를 보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서 나다닌다면 더 좋지 않을까? 나다니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좋은 시간 때우기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쿡방’을 보고 요리를 하거나 ‘먹방’을 보고 ‘먹행’(먹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다. 특히 ‘먹행’의 경우 그다지 어렵지 않게 많은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필자에게 꿈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는 막걸리 양조장이 500곳이 넘는다고 한다. 그곳을 섭렵하는 것이다. 우연이지만 전국의 골프장 수와 비슷하다. 어떤 분은 전국의 골프장을 다 가보는 게 꿈이라고 하는데 그런 분이라면 더더욱 골프장 근처의 양조장도 한번 들러보면 어떨까? 1박 2일로 숙소도 잡아놓고 느긋하게 그 동네 양조장에서 받아온 막걸리 한잔 걸치면서 저녁을 해보라. 골프를 치기로 했으니 동반자가 2~3명은 될 것이고 그 동반자들이 다 마음에도 맞고 사는 형편도 비슷할 터이니 분위기 또한 더없이 좋으리라.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도 한두 잔 마시다보면 그 맛과 운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쿡방’이나 ‘먹방’이 유난히 인기를 끌었던 시기는 경기가 나쁠 때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요즘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이럴 때일수록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TV를 박차고 나와야 한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돈을 쓰면 그게 경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틈틈이 봉사와 기부활동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돈을 버는 재미도 쏠쏠하다지만 돈을 쓰는 데에도 재미를 붙이면 그만큼 쏠쏠한 것도 없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다니는 재미, 즉 재미를 좇아다니는 재미만한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는 게 재미있으면 시간도 잘 가기 마련이다. 은퇴 후 11만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좇으리라는 ‘종오소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자성어 하나 더. 무엇이나 다 때가 있는 법, 내가 할 수 있을 때 그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라. 물실호기(勿失好機)!
- 2016-02-15 1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