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사회적 기업 은빛행복가게의 꿈나눔까페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보통의 카페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커피를 내리고 있는 바리스타들의 연령이다.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어 평범한 카페인 줄 알았는데, 모자 사이로 나온 흰머리를 보고서야 이들이 시니어임을 알아챘다.
하용자(河龍子·64)씨
그녀는 뽀얗고 하아얀 뭉게구름 같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색다르고 기발한 발상이 피어오른다. 집중해서 듣자니 성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이상희 헤어팝’의 이상희(李相熙·56) 원장. 직업은 미용사인데 그녀 인생에서 봉사를 뺀다면 삶이 심심할 것만 같다. 손에 익은 기술을 바탕으로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니 말이다. ‘누군가를 돕는다’란 말에
“하나, 둘, 셋, 넷….” “꽃손, 주먹손, 칼손, 재즈손.”
방배동의 한 무용 연습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음색의 목소리들이 구령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까르르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도 난다. 여학생들일까?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마주하고 나니 맞는 것 같다. 표정과 마음, 몸짓까지 생기 넘치는 치어리더팀. 우리는 그들을 낭랑 18세라 부른다!
평균 나
엄마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다. 수많은 동년배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20대에는 결혼과 출산, 30대와 40대는 지난한 육아, 50대에는 고장 난 몸과 싸웠다. 그리고 지금 엄마의 나이 앞자리는 6을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수많은 58년 개띠처럼 형형색색의 아웃도어를 장례식장, 예식장 빼고 거의 모든 자리에 입고 나간다. 뒷모습만으로는 우리 엄마와 남의
사람이 털북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살갗을 다치지 않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아가 추위와 더위를 견디기 위해 거기에 맞는 옷을 마련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원숭이가 아닌 다음에야 질기고 편하고 보기 좋은 옷을 입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마땅한 일입니다. 하물며 사람인데 자기에게, 그리고 경우에 따라, 잘 어울리는 아름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가끔 호텔 대신 아파트나 레지던스에서 묵는 것을 선호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객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세대를 초월해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는 등 가볍게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가까워져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며 심오한 인생 이야기를 하게
늘 땀이 많은 체질이다. 군대 있을 때는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내가 땀을 많이 흘리자 작업관이 나는 그만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농땡이 치느라고 땀도 안 났는데 나는 열심히 했으므로 땀이 많이 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겉보기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 그 덕을 본 셈이다.
피부가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땀이 노폐물을 빨리 빼주기
그날따라 신촌 길을 걷고 싶었다. 봄바람이 불던 첫날.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걷던 길 멀리서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다다른 곳은 신촌 홍익문고 앞 피아노. 많은 젊은이가 멈춰 서서 익숙한 선율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피아노 앞에는 갈색 모자에 목도리를 단단히 두른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밤길 위의
여성 명창 박녹주 선생은 를 즐겨 불렀다. 하릴 없이 늙어가는 신세를 해학과 골계로 표현한 조선 후기 가사(歌辭)다. 1969년, 명동극장에서 열린 은퇴공연에서 선생은 이렇게 노래 부르며 울먹였다.
… 있던 조업 도망하고 맑은 총명 간 데 없어 / 묵묵무언 앉았으니 불도하는 노승인가 / 자식 보고 공갈하면 구석구석 웃음이요 / 오른 훈계 말대답이 대
한 중년 남성의 상경은 슬펐다. 40년 가까이 한곳만 바라보며 달려온 인생이다. 가난했지만 불꽃같은 열정과 투혼이 있어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 꽃은 많은 사람에 꿈과 희망과 용기를 줬다. 중년 남성의 얼굴 곳곳에 깊게 파인 주름은 고단하고 치열했던 삶을 대변한다. 하지만 40년이란 세월 속 온갖 사연을 담은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