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는 이달 17일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 페럼홀에서 '지역기반 시니어일자리 창출 경험과 과제'를 주제로 제2회 시니어 일자리 포럼을 개최한다. 서울특별시가 주최하고,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가가 주관하며,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 한국시니어클럽협회 서울지회의 공동 후원으로 이뤄졌다.
이번 행사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주제발표를 시작으로 각 지역 사례 발표, 종합토론 등 총 3부로 나눠 진행된다. 시니어 일자리 지역 현황 및 지역 일자리 정책, 사업 사례 공유, 지역 기반 시니어 일자리 발굴 및 지원체계 등 지역 사회와 연계한 시니어 일자리 창출 경험과 과제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됐다.
먼저 '시니어 일자리, 왜 지금 지역인가? : 두 지역 이야기'를 주제로 이금룡 상명대학교 가족복지학과 교수의 주제 발표가 진행된다. 동작구, 마포구 사례를 기반으로 지역 현황 등을 진단, 두 지 역의 시니어 일자리 발굴 및 지원 방향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어 사례 발표에서는 '지역기반 시니어 일자리 창출 고민과 과제'(은평구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 특색과 어르신 수요에 적합한 일자리 개발 및 매칭', '강남지역 맞춤형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 사례', '일자리 거버넌스를 활용한 민간 부분 일자리 수요 발굴' 등 각 지역별 다양한 일자리 접근 방식을 공유한다.
마지막 순서인 종합토론에는 '서울시 지역일자리 사업 현황 및 시니어 일자리에의 적용'을 주제로 오면숙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과 과장, 조진희 동작구 일자리정책과 과장, 정상준 동작50플러스센터 팀장, 신희선 마포구 노인장애인과 과장, 홍진주 마포구 고용복지지원센터 센터장이 참여해 보다 심층적인 이야기가 오갈 예정이다.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센터장 희유 스님은 "시니어 구직자의 급격한 증가에 따라 정부 재정 지원 일자리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시니어 구직자 특성, 지역 내 취업 인프라 격차를 고려하지 않은 취업 지원이 이뤄지는 현실"이라며 "지역 주민의 수요와 시니어의 특성을 고려한 일자리 모색 및 자치구 내 시니어 취업서비스 제공기관 간 협업 모델을 제시하고 논의하기 위한 자리"라고 포럼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포럼은 시니어 구직자·구인처, 시니어 일자리 지원기관 실무자, 학계 및 현장 전문가면 참여 가능하고, 서울시어르신취업지원센터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과 전국 50+세대를 대상으로 차세대 유튜브 스타로서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50+유튜버 스쿨’ 참가자를 모집한다.
50+유튜버 스쿨은 지난 3월 LG유플러스와 서울시50플러스재단이 50+세대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사회공헌활동 협력 추진 업무 협약 이후 선보이는 첫 프로젝트다. 50대 이상 유튜브 이용자 비율이 증가하며 전 연령대가 애용하는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박막례 할머니’ 등 시니어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LG유플러스는 ‘제2의 인생’으로 유튜버를 꿈꾸는 중장년층이 늘어난 점에 착안, 이와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튜브를 처음 접하거나 평소 콘텐츠 크리에이터 활동에 관심 있는 50+세대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1인 또는 최대 3인까지 팀을 구성할 수 있다. 모집기간은 4월 22일부터 5월 19일까지이며, 교육비는 무료다. 참가 희망자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웹사이트 이벤트 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 받아 작성한 후 운영사무국 이메일로 송부하거나, 수기 작성 후 우편(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205 구남빌딩 2층)으로 보내면 된다. 신청서 접수 후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최종 10팀을 선발한다.
최종 선발된 참가자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의 교육과정에 참여한다. 콘텐츠 제작을 위한 영상 편집, 영상 효과 등 기본 교육을 비롯해 유튜브 인기 채널 편집 PD 특강과 유명 유튜버의 1:1 멘토링을 통해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다. 참가자들이 제작한 콘텐츠는 유튜브 및 SNS, U+tv 브라보라이프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배포된다.
LG유플러스 스마트홈 마케팅 담당 정혜윤 상무는 “창의적인 콘텐츠로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유튜브 스타로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50+세대를 위해 실력 있는 강사와 저명한 멘토 등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50+유튜브 스쿨’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 열정을 가진 전국 50+세대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한동안 ‘기승전OO’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떤 일의 시작, 전개, 전환 과정과 무관하게 결론이 항상 같게 나타날 때 쓰는 용어인데, 본래는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따온 말이다. 안대회(安大會·5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한시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이 부침하는 인간의 생애 또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띤다고 말한다. 유행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결(結)’에 다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안대회 교수가 엮은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인간의 삶을 큰 줄기로 잡아 152편의 한시를 ‘기승전결’ 4부로 나눠 편집했다. 전반부(기·승)가 갈등과 슬픔, 불안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부(전·결)는 기쁨과 안정,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시를 고르고 해석하며 자연스레 동년배인 중장년층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안 교수. 그의 삶은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책에 실린 한시가 쓰인 시대로 따지면 이미 ‘결’이겠지만, 요즘의 생애주기로 보면 아직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전(轉)은 인생에서의 변화를 겪는 전환기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보면 퇴직 전후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때이고요. 책에서는 ‘삶이 다가오는’(시기)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성상 4부로 나누긴 했지만, 독자에 따라 어떤 시는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갔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꼭 기승전결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배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는 굴곡과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정조도 염원한 ‘미로득한방시한’
책 제목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영조 시대의 문관 홍신유(洪愼猷)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만들었다. 풀이하면 ‘재주가 없어 낙향한 덕분에 무척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겠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어떤 점에서 이 구절을 마음에 둔 것일까?
“홍신유는 중인(中人) 출신이지만 문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했어요. 그러다 출세가 힘들어져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왔는데, 그때의 상황에서 보면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정말 능력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니까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회한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다는 거죠. 가질 수 없는 걸 부여잡고 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어요.”
홍신유는 자칫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만족으로 전환했다. 안 교수는 그런 홍신유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한가로움을 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閒方是閒)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미로’ 늙기 전에, ‘득한’ 한가로움을 얻어야, ‘방시한’ 그게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전에 퇴직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나이 들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억지로 얻는 한가로움보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보내는 한가로움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거죠. 꼭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리 정리한 삶의 방향대로 간다면 인생이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해요.”
그는 ‘미로득한방시한’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추천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득한정(得閒亭)’이다.
“수원을 방문한다면 기념 삼아 한번 가보세요. 득한정은 말 그대로 ‘한가로움을 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정조가 붙인 이름인데, 그 역시 미로득한방시한을 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가 세운 ‘갑자년 구상’을 보면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인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죠. 아쉽게도 정조는 그 구상이 실현되기 전인 18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뜹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가진 게 많을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니까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안고 있을 때, 또는 너무 바쁠 때는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각별함,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다
여항시인 최천익(崔天翼)의 시에서도 홍신유와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병석의 나를 위로하며(病中自慰)’라는 시에서 그는 병이 생겨 누워 있는 탓에 몸은 수척해졌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내적 양식을 쌓으리라 의지를 다진다.
“원문에는 ‘近裏工夫或庶幾(근리공부혹서기)’라 쓰여 있어요. 가까울 근, 속 리, 즉 근리공부는 내면공부와 같아요. 최천익은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한 내면공부를 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말했죠. 대부분 좌절을 겪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나이 들면 병이 생기는 것도 큰 좌절이잖아요. 낙담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려 채워간다면 위기도 더 나은 인생을 향한 전환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이황(李滉) 역시 ‘세상맛은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며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 교수에게 나이 들수록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때의 ‘각별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는 건 그동안 별것 아니던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경험을 말해요. 젊어서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꽃도 좋아하지 않거나 장미처럼 화려한 걸 선호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참 예뻐 보여요. 늙어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있던 평범한 것들에 눈이 가고,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거죠.”
안 교수는 노탐(老貪)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결’에 이르고 싶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언젠가 다가올 인생의 한가로운 시기에 대한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보다는 연장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게 제겐 즐거움이고 취미거든요. 다들 그건 너무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해요. ‘인문’ 자체는 하나의 종목이지만, 내용에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성이 존재하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다 해내지 못할 정도로 끝도 없고, 경지도 없어요. 그 속에서 내가 보는 만큼 아는 거고, 찾는 만큼 나아가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역량껏 차근차근 ‘결’의 시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자료 수집하러 여행도 다니고, 다른 것에 매여 하지 못했던 박제가(朴齊家) 평전도 쓰고요. 그게 바로 제가 택한 한가로움입니다.”
미국의 유명 유튜버 케이시 네이스탯이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사의 일등석 좌석을 경험하고 올린 유튜브 영상 조회수가 무려 3000만 회를 넘었다. 유명 배우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500만 달러의 모델료를 주고 만든 광고 영상의 조회수가 600만 회를 넘긴 수준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다. 영상은 난생처음 비행기 일등석에 탄 남성이 설렘을 감추지 못한 채 좌석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흥분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영상을 위해 항공사가 지불한 비용은 2000만 원짜리 좌석 하나뿐이지만 홍보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최근 SNS의 영향력이 높아지면서 기업에서 인플루언서를 찾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인플루언서란 케이시 네이스탯처럼 SNS에서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파워 블로거, 인기 유튜버, 팔로워가 많은 인스타그래머를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들은 일반인이지만 연예인보다 더 큰 파급력을 지닌다. 최근에는 구독자 수에 따라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매크로 인플루언서, 메가 인플루언서로 분류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인플루언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건 올해부터 새로 유튜브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50+세대의 인생 이모작 채널을 만들어갈 예정이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망설이기만 할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넘지 못할 산도 아니라는 걸 알아가고 있다.
단기 목표는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이다. 팔로워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유튜브 광고비가 용돈이 되고, 나아가서 유튜브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는 꿈도 꾼다. 그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도 있고,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커녕 나노 인플루언서에도 못 미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게 신나고 재미있다.
과거엔 필요한 지식은 전수조사해 모조리 공부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새로운 지식이 업데이트되는 요즘, 박형주(朴炯柱·54)아주대 총장은 지식의 시대를 넘어 통찰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방대한 정보 중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끄집어내고 취사선택하는 통찰력이 중요하다는 것. 나아가 이러한 통찰의 시대를 지나 ‘연결의 시대’가 다가오리라 예측했다. 그는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닌 ‘잘 배우는 사람’이 살아남는 미래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연결하고’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박 총장은 ‘연결의 시대’에는 각종 전문지식으로 무장했다는 자신감보다는 살아가며 그때그때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는 유연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 점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보편적인 사람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책을 통해 미래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어른 세대가 함께 고민해보길 바랐어요. 우리가 젊은 시절엔 대학만 나오면 어느 정도 취업이 보장됐고,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할 수 있었죠. 이제는 학교에서 배운 전공만으로 평생 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뭐든 금세 옛 지식이 되어버리거든요. 때문에 전처럼 한 우물 파는 건 무모한 거예요. 요즘은 기업에서도 특정 부서가 필요성이 적어지면서 축소되거나 완전 새로운 분야로 대치되기도 하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을 연결할 줄 알아야 자기 분야가 대세에서 물러나도 다른 분야로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우리 시대 중장년의 경우 수십 년을 한 분야에 종사하다 은퇴한 경우가 적지 않다. 박 총장의 말대로라면, 100세 시대 노후준비를 위해 재취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이라는 말들 많이 하잖아요. 어떤 일을 몇십 년 해왔는데 그 분야가 예전보다 덜 중요해지거나, 파이가 적어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예전처럼 ‘내가 하던 일 평생 하다가 은퇴할 거야’라는 생각이 이젠 안 통하는 거예요. 결국 원하지 않더라도 커리어 체인지는 앞으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나겠죠. 과거보다 대학 평생교육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기존 취미 개념의 문화교양 강좌에서 제2직업을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진입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해요. 최근 아주대학교를 포함한 많은 대학에서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꼰대로부터 탈피하는 대화의 프레임
소위 옛날 방식으로 젊은 사람에게 고리타분한 말을 하는 시니어를 일컬어 ‘꼰대’라고 부른다. 박 총장은 이러한 꼰대 마인드는 현시대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경험이나 직관에 따라 충고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앞두고 있을 때, 본인들의 젊은 시절 경험을 토대로 조언해요. 가령 무작정 공부 잘하면 의대 가라고 하잖아요. 앞으로는 원격 의료기술 등의 발달로 예전보다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 겁니다. 물론 병원 방문자가 줄어든다고 의사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녜요. 그만큼 연구를 하는 의사가 늘어날 거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하루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를 유능하다 하지만, 미래에는 치료법을 개발하거나 환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의사의 소양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렇게 계속 직업의 속성과 내용이 바뀌고 있죠. 아직 어린 자녀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10년, 15년 뒤인데 직관만으로 조언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박 총장은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 대해 자녀와 의논할 때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부모 세대의 조언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사유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끊임없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론에 다다르는, 즉 합리적 사유의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데이터를 통해 결과를 끄집어내는 건 모든 세대에게 통하는 방식이에요. 또, 서로에게 접점이 생기는 유일한 방법이죠. 이러한 프레임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기본 데이터가 달라졌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데이터를 갖고 대화를 하면 소통이 안 되는 거죠.”
박 총장은 기성세대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실수해도 괜찮다’는 문화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프랑스 교육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프랑스식 수능 ‘바칼로레아’는 나폴레옹 시대 때 만들어져 200년이 넘은 제도인데, 100% 서술형 평가입니다. 답이 틀리더라도 풀이 과정에서 부분 점수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시험 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요. 그에 반해 우리는 객관식, 단답형 평가이기 때문에 모험을 했다가 실수로 답이 틀리면 손해를 봐요. 즉, 모험이 리워드를 주는 게 아니라 패널티를 주는 셈이죠. 겉으론 모험심 강한 아이들로 기른다고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는 프랑스의 교육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이 한 가지 더 있다고 했다. 바로 12학년(고등학교 3학년) 때 철학 과목을 가르치는 방침이었다.
“프랑스는 대학 진학률이 낮은 편이라 대부분 학생에겐 12학년이 마지막 교육 과정이에요. 그때 철학을 가르치죠. 그렇게 중요한 과목이라면 왜 1학년 때부터 진작 가르치지 않는지 의아했는데, 그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가더군요. 12학년이 되기 전까지 아이들은 한국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학, 과학, 역사 등 정규 수업 과정을 거치죠. 공부하다가 어려우면 좌절도 하고, 내가 이걸 왜 배워야 하냐며 짜증도 내요. 그 고달픈 시간의 끝에 피니싱터치, 즉 화룡점정을 철학이 찍어줘요. 철학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과목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그것이 우리 세계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게 되죠. 배움의 이유를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유연성으로 키우는 문제해결력
지난 과정을 겪기 전에는 철학을 배워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끝나기 때문에 미리 가르치지 않는단다. 박 총장은 프랑스 아이들이 10여 년 동안 배운 것들을 철학 과목을 통해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한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특별한 계기나 연관성이 없어 보이던 것에도 관심을 두다 보면 언젠가 그것들이 꿰어지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 그는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힘은 유연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죠. 난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분야의 방식을 가져오는 겁니다. 이 분야에서는 어렵지만 엉뚱한 분야에서는 쉬운 해결책이 있기도 해요. 여러 영역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있어야 재빨리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연성은 다양한 분야에 대해 깊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호기심을 유지하는 데서 길러져요. 분야를 편식하지 않고 잡독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터뷰 내내 “여러 우물을 파야 한다”고 강조한 박 총장. 수학자로서 한 우물을 파고 있는 듯 보이는 그가 현재 파고 있는 또 다른 우물은 무엇일까?
“물론 수학에 대한 사랑은 유지하겠지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빅 데이터나 인공지능 문제에 기여할 기회를 찾고 싶어요. 실제 세상의 많은 일을 해결하는 데 수학이 유용할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의사들과 함께 의료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토론도 하죠. 수학과 유관하면서도 다른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참여하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의 영역이 더 넓어지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게 바로 제가 생각하는 연결인데, 앞으로도 더 활발하게 여러 우물을 파볼 계획입니다.”
단톡방이 신호를 보냈다. 평소처럼 느긋하게 보리라 생각하며 하던 일을 마쳤다. 은퇴 후 인생이모작을 위한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이 만든 방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자기 이름으로 자신의 장례일정을 안내하는 문구였다. 순간 장난하는 건가? 아직 60대 초반.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이라면 아주 실감나게 한 것이고 아니라면? 갑자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화를 눌렀다.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다른 동료들도 서로 이것이 진짜냐고 묻기만 했다.
장례일정 안내에는 구체적으로 입관 날짜와 출관 날짜가 있고 미사와 장지에 대한 안내까지 있었다. 일단 가봐야 확인이 될 것 같았다. 날은 엄청 더워서 세상이 열기로 이글거리고 있었지만 내 마음 속은 서늘한 불안과 후회가 범벅이었다.
우린 스마트폰 사용법과 SNS 교육을 받고 팀을 꾸려서 강의를 같이 다녔었다. 스마트폰이 한창 나오던 시기여서 수요가 많고 보람도 있었다. 강의실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만큼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교안까지 만들어야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 처음엔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의욕으로 잘 해냈지만 점점 시간을 많이 요하는 작업이라 좀 지치고 꾀가 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강의의 교안을 만들어야하는데 그가 다른 사람이 한 것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않고 카피하는 것을 보고 내가 나무란 적이 있었다. 내가 감독으로서 잔소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그가 좀 불손하게 말을 해서 나도 화를 내며 돌아서 버렸다. 그동안 워크숍도 여러번 같이 가고 또 자료를 만들며 회의도 많이 하고 강사료를 받으면 맛 집도 찾아다니며 정을 나누었는데 그렇게 불손한 것이 섭섭했고 그도 뭔가 섭섭해서 우린 그것으로 찜찜하게 헤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 어느 날 단톡방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되어 내가 인사를 건넸고 그는 답을 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였지만 섭섭함을 상쇄한 나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팀의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혼자 지방을 다니며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리곤 불쑥 자신의 장례를 안내하는 문구를 본 것이다.
장례미사가 있다는 성당에 도착해서 보니 단톡방에 올랐던 장례안내 표지판이 붙은 빈소에 그의 영정사진이 올려져있고 흰 국화꽃이 무심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슬픔에 잠긴 아내와 십대의 딸 하나가 빈소를 지키며 오열하고 있었다. 평소 심장이 안 좋았는데 사단이 났다고 하며 갑자기 가는 사람을 차마 놓을 수 없는 슬픔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마주 볼 수도 없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 굳어버린 것 같았다.
미사에 참여해서 떠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지인들에게 알려 받아온 봉투를 챙겨 건네며 그를 위해 조금이라도 뭔가를 했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시신을 따르며 부르는 성가, 망자를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보내야만 하는 아픔을 노래할 때 내 눈물은 자제력을 잃었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의 조각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음식을 나누며 했던 농담들, 지친 몸으로 함께 걸으며 했던 얘기들….
눈물 고인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영정사진은 관 앞에서 담담했다. 어른거리는 사진을 바라보며 웅얼거렸다.
“친구여, 잘 가시오. 잘 가시오.”
며칠 뒤 단톡방에 그의 이름으로 다시 글이 올라왔다.
“마지막 가는 길에 외롭지 않게 배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씨에도 어려운 걸음 해주시고 마음으로 함께 기도해주심에 유가족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그는 갔지만 난 다시 일상의 일에 치여 나만 생각하며 살고 있다. 태어나고 죽고는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고 잊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잊히며 죽을 것이다.
액티브 시니어의 일자리 문제를 다룬 ‘리스타트 컨퍼런스 2017’이 28일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진행됐다. ‘액티브 4060을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으로’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선 은퇴 후 또 한 번의 경제활동이 필수적으로 된 우리 사회 4060세대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심포지엄은 국내외 현황, 정부 정책, 지자체 정책, 인생 이모작 방안, 시니어창업 현황, 성공한 선배의 노하우, 세대융합 창업, 공유경제와 사회적경제 등 액티브 시니어의 일자리 문제와 관련된 해법 등이 다뤄졌다.
발표에 나선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과 여승연 사무관은 “그간 정부의 중장년 재취업 정책에서 배제되어 있던 중위소득 100% 초과자들을 대상으로 한 신중년 인생 3모작 패키지 구성이나 65세 이상을 위한 재취업 정책 마련 등이 추진되고 있다”며 최근 정부의 취업정책 변화를 소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선 시니어 취업시장 확대를 위한 세대융합에 관한 논의도 이어졌다. 세대융합이란 중장년과 청년 세대가 의기투합해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취업·창업 형태. 시니어 창업이나 재취업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최근 스타트업 업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에 대해 앱노트의 장우용 대표는 “다케다제약 이춘엽 前대표의 영입으로 주거래 시장이었던 제약업계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며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기 위해 직급을 없애고 직함대신 영어호칭을 사용하는 등 세대 간 융합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소개했다.
리스타트 조직운영위 관계자는 “4060세대가 다시 시작하는데 필요한 정부 지원 정책, 선배의 성공사례, 현실 인식, 지원 교육 등 유관 정보를 제공하려고 준비했다”며 “시니어 취업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커지는 만큼 관계기관의 협조를 통해 앞으로 행사 규모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행사는 사단법인 한국모바일기업진흥협회와 다수의 민간단체로 구성된 리스타트 조직운영위가 주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취미는 무엇일까?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하면 등산이다. 2015년 9월 25일 발표한 조사 결과인데 국민 100명 중 14명이 등산을 꼽았다. 그다음은 영화 및 음악감상(6%), 운동헬스(5%), 게임(5%)순이었다.
등산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장 선호하는 취미라고 한다.
나도 한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에 오르던 시절이 있었기에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결과다. 지금 살고 있는 파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서울 관악산 자락 아래 살면서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로 주말 아침을 열곤 했다. 아파트 뒷길로 해서 관악산으로 곧장 이어지는 왕복 3시간 코스의 산을 걷다 보면 지나간 일주일 동안의 스트레스, 관계의 고단함 등으로 꼬여 있던 마음의 매듭이 사르르 풀리면서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혼자 하는 산행이 몰입과 명상에 가깝다면, 함께하는 산행은 관계의 충만함을 준다. 가파른 봉우리를 나란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동지애 비슷한 느낌이 생기면서 서로의 삶 속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모임이 봄가을 산에서 개최되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 한국인의 취미 1위로 꼽히는 등산은 이처럼 몰입과 관계성 모두를 충족시킨다.
몰입의 황홀함
교육학·심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칙센트미하이 박사는 그의 저서 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순간 삶이 변화된다고 말했다. 어딘가에 빠져든다는 것, 몰입은 황홀한 경험이다. 몰입은 현재의 나와 단절이자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그 무게로 인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고통스런 현재와 잠시라도 단절할 수 있다면 고통은 견딜 만하다. 정신분석가이자 거리의 치유자로 불리는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위해 치유공간 ‘이웃’을 마련했는데 세월호 유가족 엄마들의 그 고통스런 시간을 버티게 해준 것은 따뜻한 치유의 밥상과 뜨개질이라고 말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만큼은 고통을 잊을 수 있어서 엄마들은 무서운 집중력과 속도로 뜨개질에 몰입했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달리기에 빠져 있다. 일주일에 평균 3회를 달린다. 퇴근 후 밤늦게 한 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어제 걸었던 길이 오늘은 다르게 느껴지는 등 매번 새롭다. 새로움은 신선한 자극이자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내 몸의 변화에 몰입하게 되면서 어제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다. 달리기 전엔 지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가도 막상 달리다 보면 몸이 살아남을 느낀다. 몰입이 주는 경이로움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오십에 들어서는 나는 갱년기라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오후만 되면 몸이 땅속으로 꺼질 듯한 피로감이 몰려오고 무력감으로 도통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3년 전 경기 북부 신도시로 이사해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탓에 집에 도착하면 떡실신이 되어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다. 저녁이 있는 삶은 요원하고,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었다. 우울감과 심리적인 변덕도 불쑥불쑥 찾아왔다.
이런 변화들을 보면서 스스로 갱년기라 진단내리고 시작한 것이 걷기와 달리기였다. 몰입과 명상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현실의 얽힌 매듭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는 딱이었다. 달리다 보면 변하고 있는 나,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도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출구가 아직은 한참 남았지만 갱년기, 더 나아가 노년기도 삶의 일부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든다.
시니어에게 취미는 행복의 필수 조건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는 일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여가생활에 가깝다. 반면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후 상대적으로 시간이 넉넉한 대다수 중장년층 또는 시니어들에게 취미는 생활을 활기 있게 구성하는 핵심 축이다. 젊은 사람들에게 취미가 일의 보완재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필수 항목에 가깝다.
취미생활을 잘하는 사람은 삶이 지루할 틈이 없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다양한 취미로 생활을 즐겁게 꾸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시니어에게 넉넉한 시간은 견뎌야 하는 지루한 날들이 아니라 축복이다.
몇 달 전 일이다. 경의선 퇴근길에 라이딩 복장을 한 어르신 몇 분이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에 사는 자전거 동호회 회원인데, 지난봄 개통된 동해환상자전거길을 3박 4일 라이딩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함께 달리고, 먹방도 시도하는 즐거움 속에 삶이 매번 새로워진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행복한 시니어가 친구 관계를 즐긴다는 사실이 여러 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돈이 있고 친구가 없는 것보다 돈이 없어도 친구가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상식이다. 특히 여성일수록 취미, 교양, 스포츠, 친구가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한다. 친구 또는 이웃과 함께할 때 더불어 행복의 기쁨을 알고 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의 기쁨은 홀로 느끼는 행복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사람은 늙어서 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놀지 못해서 늙는다는 말도 있다. 나이 듦을 핑계 삼아 삶을 무료하게 보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고 잘 놀아야 멋지게 나이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잘 노는 것은 취미생활을 잘 꾸린다는 것과 동의어다.
행복은 더불어 잘 놀 때 찾아오는 것
노년의 행복에 있어 소득과 건강의 역할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를 제쳐둔다면 행복한 노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 활용이라고 한다. 수많은 행복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바다. 특히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감은 고조된다고 한다.
한국 노인 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고립은 정서적 소외감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 행복을 저하시킨다. 고립되지 않도록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 즉 사회적 관계는 삶의 질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물론 가족의 역할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가족에만 의지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노년으로 갈수록 사회적 교류, 관계성 회복이 절실하다.
취미활동은 사회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활성화시키는 시간 활용 방법이다. 다양한 문화·레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관계를 가질 때 행복감은 높아진다. 50플러스재단, 인생이모작센터 등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노후 프로그램은 대체로 취미활동을 즐겁게, 이왕이면 경제적으로도 유익하게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많은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TV 시청은 오히려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재미를 느끼는 것은 그 순간일 뿐 지속적인 즐거움이 없다. 무엇보다 함께 도모하고 나누는 ‘관계’에서 비롯된 기쁨이 없다. 행복은 더불어 함께할 때 온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인생의 황혼이 깊어갈수록 절실하게 다가오는 대목이다.
어느 날 인생 이모작을 잘 준비했다는 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의견의 일치를 본 부분이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엔 하고 싶었던 것을 하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또 죽을 때까지 공부를 멈추면 안 된다는 것. 하기 싫은 일이나 시험을 위해 하던 공부에서 해방되었으니 허락된 시간을 누리자는 생각이었다.
인문학 책을 함께 읽고 나눌 그룹을 찾다가 독서클럽은 아니지만, 글 쓰는 훈련을 하는 그룹이 있어 탐색 겸 백화점 문화센터에 갔다. 보통은 말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쓰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 모두가 말을 잘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가끔 글은 좋은데 강의는 엉망인, 작가 반열에 오른 분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잠깐 들어본 강의가 맘에 척 달라붙어서 계속 듣게 되었다. 입을 벌릴 때마다 주옥같은 박식함이 무슨 보석처럼 인생의 경험에 녹아 나오면 수업 내내 행복한 마음으로 강의를 경청하곤 했다. 3개월 12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주 1회 1시간 30분씩 듣는 강의였다.
수필을 쓰고 퇴고를 거치며 글쓰기를 연마하는데 인간이 살아가며 경험하는 솔직한 표현들이 좋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따스함으로 가만가만 스밀 때는 저절로 눈이 감긴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수필을 외워서 문학회의 ‘연간 행사’로 무대에 올라 낭송하게 되었다. 원하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처음엔 외운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요령은 그냥 반복해서 읽는 수밖에 없다. 어느 단계가 되면 저절로 외워진다. 외우다 보면 작품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고 또 독자에게 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데 이 과정은 좀 힘들어도 얻는 것은 그 이상이다. 좋은 작품을 외우게 되면 글쓰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부수적으로 발성, 호흡에 대해서도 기본 훈련을 하게 되어 발음이 정확해진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느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고, 무대 울렁증이 있는 사람도 있어서 열심히 외웠어도 보통 7분 정도 소요되는 중간에 잊어버리거나 어색해져서 진땀을 흘리기도 하지만 곧 익숙해진다. 한번은 남여 듀엣으로 아포리즘 고전 수필 낭송을 했었다. 조선 인조 때 문신으로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신흠’의 아름다운 수필이었다. ‘숨어 사는 선비의 즐거움’으로 한가로움과 풍류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필자와 남자는 함께 호흡과 감정을 조절하며 연습을 여러 번 했다. 작은 몸짓까지도 맞추며 우린 무대 위 완벽한 커플로 탄생할 참이었다. 그는 감청색 양복을, 필자는 양반가의 여인답게 하늘색 모시 저고리와 연청색 모시 치마를 기품 있게 받쳐 입고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무대에 섰다. 인사도 맵시 나게 연습한 대로 잘했다.
이제 마이크를 숨소리 같은 부담스러운 잡음이 나지 않도록 조절하며 낭창거리는 소리로 낭송을 시작했다. 그와 필자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선비의 멋스러움과 풍류를 살려가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갔다. 필자의 대사가 끝나고 그가 할 차례가 되었다. 시작을 잘하는가 싶었는데 아뿔싸! 이상하게 같은 대사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두 번쯤 그러더니 소리가 끊겼다. 난감했다. 필자는 그의 대사까지 외우지 못했다. 스토리가 연결되는 글은 잊어먹어도 비슷한 내용으로 이어나갈 수 있지만 이런 수필은 단락이 끊어져 있어 외우기도 어렵고 중간에 잊어버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도 있다. 20개 정도의 단락을 각자 외우고 있었는데 단락의 시작을 찾아야 꼬이지 않고 술술 나오게 되어 있다. 그는 순간 당황했는지 단락의 처음부터 다시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끝을 맺었지만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혹시 잊었으면 자연스럽게 다시 시작해도 사람들은 반복이겠거니 생각하기도 한다. 당황하지만 않으면 그럴 일은 별로 없다.
묵독이 아닌 낭독의 문화 즐기기
시는 글이 짧고 은유가 많아 청취자에게 전달이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수필은 작가의 체험에서 나온 글이라 이해가 쉽고 공감이 잘된다. 그 대신 시보다는 외워야 할 분량이 많다는 어려움이 있다. 시와 비교해서 감정을 잘 살리면 즐거운 시간이지만 아니면 지루한 시간이 되기도 쉽다.
작품에 따라 무대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효과음악을 고르고 표정과 작은 몸짓도 연구하고 무대에 오른다. 작품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와 마치 새로운 연인을 만나듯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
필자는 4년째 기획, 연출, 낭송을 즐겁게 하고 있다. 함께하는 회원(10명)과 1년에 두 번씩 공식무대를 만들고 외부 초청 낭송에도 응한다. 작가의 강연 때 그의 작품을 낭송해 강의를 풍요롭게 하기도 한다.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
꼭 문학단체가 아니라도 격조 있는 모임에서 옛 선비들이 시조를 읊듯 시나 수필 낭송을 원할 때도 있다. 종종 감동한 관객이 끝나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람이다. 얼마 전 어떤 문학회 출판기념회에서 초청, 낭송을 했는데 70명 정도 모이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그 모임 지도교수님의 대표작 낭송이 끝나자 교수님은 벌떡 일어나 젖은 눈으로 다가와 필자에게 악수를 청하며 고맙다, 잘했다, 문우들은 그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 작품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낭송하는 시간은 마치 앞에 앉은 사람이 필자에게 눈을 맞추고 자신의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듯하다. 그래서 몰입하면 깊은 내면을 함께 여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수입은 낭송 작품당 보통 20~30만원을 받는다.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노력을 생각해서 그리 주시는 것 같다. 필자는 현재 두 개의 작품이 예약되어 있다. 하나는 피천득 기념 강좌에서 선생님의 작품 ‘보스턴 심포니’를 낭송하고, 또 하나는 일현수필문학회 송년회에서 손광성 선생님의 ‘누나의 붓꽃’을 낭송하기로 되어 있다.
그녀는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이었다. 내일모레가 환갑인데 이토록 귀엽다니,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희한한 여인이다. “일단 오늘 하루만 남편을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 평생의 꿈이었던 현모양처가 저절로 되었다고 말하는 개그우먼 이성미. 한여름 오후의 데이트는 분명 귀여운 여인과 시작했는데 끝날 무렵에 보니 작은 거인과 앉아 있었다.
그 나이에 몸무게가 40kg도 안 나간다. 뭇 여인들에게 몰매 맞기 싫은지 실토했다. “안 먹어서 이래요~ 일할 때 많이 먹으면 졸리고 느긋해져서 집중력이 떨어져 할 수 없이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자백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이성미 또래의 여인들을 할머니로 생각했다. 지금은 필자 이봉규도 60이 되고 보니 이 또래의 보통 여인들이 할머니까지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섹시한 향기가 나는 여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성미는 여름철 농익은 살구처럼 귀엽고 섹시하다. 날씬하고 자그마한 체구에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서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다. 한량 이봉규가 잠깐 정신줄을 놓았다. 프로의식을 되찾아 몰아치듯 인터뷰를 시작했다. “100세 시대에 사랑의 이모작을 위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이봉규의 다짜고짜 도발에 그녀는 “기운이 있어야 그런 모험이나 상상도 하죠!”라고 말한다. 한숨도 살짝 묻어나온다. 희극인답게 개그처럼 위장했지만 그 속내를 살짝 들출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한때는 션과 정혜영 커플이 부러웠다. 왜 나는 션 같은 남자를 못 만났을까?” 스스로 푸념도 해봤지만 결국 “내가 정혜영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고 지금의 남편에게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성미 남편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연예기획사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면서 국제대학교 조교수다. 처음 만났을 당시 남편은 이성미의 열애설을 취재하러 왔다가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인터뷰하고 얼마 후 남편은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으며 적극적으로 대시했다. 그녀의 반응을 엿본 남편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저랑 결혼할 생각 없으세요?” 하며 정신없이 파고들었다. 나름 차분한 이성미는 “연하이고 게다가 기자는 싫다”고 잘라 말했지만 싫지는 않았기에 일각의 여지는 남겼다. “부모님께 허락을 먼저 받아와라!” 하며 돌려보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남편은 이틀 뒤 찾아와서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았다”며 “6개월과 1년 뒤 언제 결혼하고 싶냐?”고 이성미를 다그쳤다. 남편의 불도저식 박력에 이성미는 항복했고 4개월 뒤 결혼에 골인했다.
우리는 ‘묵은지 부부’
한 이불을 덮고 산 지가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한때 결혼생활이 살짝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다. 권태기 시절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남편과 거리를 두기 위해 캐나다에서 7년을 살기도 했다. 두 살 연하인 남편을 약간 무시하는 교만함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후 생각을 바꿔 자신을 내려놓고 남편에게 맞추기로 마음먹었더니 부부관계가 확 달라졌다. 남편한테 전화가 오면 이성미 휴대폰에 ‘존경하는 남편’이라는 글자가 뜬다. “일단 오늘 하루만 존경하자!” 그렇게 각오하고 사니까 술술 풀리더라는 것.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린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개구질 것 같은데 의외다. “아직도 방귀를 안 텄다. 여자는 여자다워야 하고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성미의 꿈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현모양처다. ‘묵은지 부부’라고 스스로 평가한다. “냄새도 나고 매력은 없지만 깊은 맛이 있는 부부관계”라고 ‘묵은지 부부’에 관해 설명한다. 그녀의 현모양처 꿈이 이뤄진 것은 자식들의 평가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엄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게 뭐 같니?”라는 이성미의 질문에 아이들이 “하나님, 집, 가족”이라고 대답해서 너무 고마웠다고 술회한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평생 꿈인 ‘현모양처’가 됐구나 하며 가슴이 벅찼다고 한다. 이성미는 어린 시절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기에 현모양처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그녀를 버리고 떠나 새엄마 밑에서 컸다. 새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또 다른 새엄마와도 살았다. “엄마가 네 명이나 된다”고 웃으며 말한다.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이 여유로워졌지만 어릴 적 자신이 겪은 불행을 남편과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깊은 각오가 그녀의 가족을 행복하게 이끌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
너무 여유로워진 걸까? 가끔 자식들이 말을 안 들을 때는 개그맨답게 “이것들이 새엄마랑 안 살아봐서 이래!” 하며 다그칠 때도 있단다. 그래도 아이들이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고2 딸은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 이성미는 “도둑질 아니면 뭐든지 자식들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은근히 지원사격이다. 그러면서 선배 입장에서 “딸의 성격이 대범해 연예인을 해도 잘할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악성 댓글에도 견딜 수 있는 성품이라야 연예계에서 버틸 수 있다). 이성미가 자식들에게 무턱대고 관대한 것만은 아니다. 큰딸이 대학 1학년 때 입학을 보류시키고 1년간 알바를 시켰다고 한다. 자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밀크셰이크를 만드는 등 이런저런 알바를 하던 중 시간당 3만원 이상을 주겠다는 고액 알바광고 전화가 걸려왔다. 자세히 물으니 “아저씨들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된다”는 꼬임이었다. 세칭 룸살롱,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로부터의 유혹이었다. 엄마와 모든 것을 숨김없이 상의하는 딸이었다. 그때도 엄마와 상의했기에 딸이 어둠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 “100% 아이들을 믿는다. 믿는 만큼 아이들도 다 얘기한다”며 딸 자랑을 하는 이성미에게 이봉규가 태클을 걸었다. “글쎄~ 진짜 다 얘기할까? 그 나이 때는 엄마에게 숨기고 싶은 일도 발생하고 상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도발했더니 그녀는 “우리 가족은 각자 결정하는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다. 걱정은 지들이 하는 거지 엄마는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여태껏 아이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말도 한다. “흙에서 자란 아이는 용기로 크고, 아스팔트에서 자란 아이는 오기로 자란다”는 말을 20세 때 어디선가에서 듣고는 가슴에 새기고 아이들을 키울 때 금과옥조로 삼았다. 이성미의 집에는 아이들을 위한 ‘용돈 항아리’가 있다. 항상 5만원 정도 비치해놓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꺼내간다. 그녀의 ‘믿음 가정교육’에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 귀여운 여인 그리고 작은 거인 아름다운 얘기만 하고 인터뷰를 끝낼 한량 이봉규가 아니라서 전매특허 질문을
훅~ 던졌다.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용서할 수 있나?”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것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금방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바람은 피우지 않을걸!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맹세했거든” 하며 마무리 짓는다. 그녀의 표정에 강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이대로 물러날 이봉규가 아니다. “아내로서 부족한 부분이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묻자 의외의 답변을 한다. “다정하거나 살갑지 않다. 애교도 없고 사랑 표현도 못한다.” TV 화면에 비치는 그녀의 평소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이성미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백조처럼 귀엽게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을 들어서일까?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는 점을 감지했다. 현모양처 이외의 앞으로의 꿈을 물으니, 교통부장관을 하고 싶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밝힌다. 뉴스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운전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부연 설명한다. 교통부장관이 어려우면 사복경찰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체구는 작지만 사회봉사에 대한 포부는 무척 크다. 지금은 ‘CH 114’라는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교회를 찾아주는 사이트인데 올 9월에 오픈할 예정이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한 달에 1만 명 정도나 된다니 믿기 힘들다. 이성미는 이들이 안타까워 이 같은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어릴 시절과 젊은 시절 한때의 불행을 슬기롭게 승화시킨 이성미는 현모양처의 평생 꿈을 이룬 것을 넘어 지금은 남 도울 생각에 골몰하며 살고 있다. 인터뷰 시작 때는 귀여운 여인이었는데 끝날 무렵에는 그녀가 작은 거인으로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