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생의 ‘結’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다 다르다

기사입력 2019-03-15 10:16 기사수정 2019-03-15 10:16

[명사와 함께하는 북人북]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한동안 ‘기승전OO’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어떤 일의 시작, 전개, 전환 과정과 무관하게 결론이 항상 같게 나타날 때 쓰는 용어인데, 본래는 한시의 형식을 설명하는 ‘기승전결(起承轉結)’에서 따온 말이다. 안대회(安大會·58)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는 한시뿐만 아니라 희로애락이 부침하는 인간의 생애 또한 기승전결의 구조를 띤다고 말한다. 유행어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면 누구나 ‘결(結)’에 다다르지만, 그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안대회 교수가 엮은 책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인간의 삶을 큰 줄기로 잡아 152편의 한시를 ‘기승전결’ 4부로 나눠 편집했다. 전반부(기·승)가 갈등과 슬픔, 불안의 감정이 주를 이룬다면 후반부(전·결)는 기쁨과 안정, 소소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시를 고르고 해석하며 자연스레 동년배인 중장년층을 염두에 두게 됐다는 안 교수. 그의 삶은 기승전결의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했다.

“책에 실린 한시가 쓰인 시대로 따지면 이미 ‘결’이겠지만, 요즘의 생애주기로 보면 아직 ‘전’ 단계라고 생각해요. 전(轉)은 인생에서의 변화를 겪는 전환기라 할 수 있죠. 일반적으로 보면 퇴직 전후나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때이고요. 책에서는 ‘삶이 다가오는’(시기)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현하기도 했어요. 구성상 4부로 나누긴 했지만, 독자에 따라 어떤 시는 ‘이게 왜 여기에 들어갔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꼭 기승전결에 얽매여 억지스럽게 배열하지는 않았습니다. 인생에는 굴곡과 변수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펴낸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표지와 직접 적은 글귀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펴낸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표지와 직접 적은 글귀

정조도 염원한 ‘미로득한방시한’

책 제목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는 영조 시대의 문관 홍신유(洪愼猷)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만들었다. 풀이하면 ‘재주가 없어 낙향한 덕분에 무척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들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겠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어떤 점에서 이 구절을 마음에 둔 것일까?

“홍신유는 중인(中人) 출신이지만 문과에 급제했을 정도로 역량이 출중했어요. 그러다 출세가 힘들어져 부산으로 쫓기듯 내려왔는데, 그때의 상황에서 보면 이중적인 의미가 있죠. 정말 능력이 없어 그렇게 표현한 게 아니니까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회한도 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일이 없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니 행복하다는 거죠. 가질 수 없는 걸 부여잡고 탐하기보다는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느꼈어요.”

홍신유는 자칫 박탈감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을 한가로움을 즐기는 만족으로 전환했다. 안 교수는 그런 홍신유의 태도도 훌륭하지만, 가장 좋은 건 스스로 한가로움을 택하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미로득한방시한(未老得閒方是閒)이라는 옛말이 있어요. ‘미로’ 늙기 전에, ‘득한’ 한가로움을 얻어야, ‘방시한’ 그게 진정한 한가로움이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정년까지 회사에 다니지 않고 그전에 퇴직을 자처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나이 들어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억지로 얻는 한가로움보다는 스스로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보내는 한가로움이 더 유익하다고 보는 거죠. 꼭 정년퇴직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미리 정리한 삶의 방향대로 간다면 인생이 여유로워지리라 생각해요.”

그는 ‘미로득한방시한’을 실천하려는 이들에게 특별한 장소를 추천했다. 바로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에 있는 ‘득한정(得閒亭)’이다.

“수원을 방문한다면 기념 삼아 한번 가보세요. 득한정은 말 그대로 ‘한가로움을 얻는 정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어요. 정조가 붙인 이름인데, 그 역시 미로득한방시한을 원했던 인물 중 하나입니다. 정조가 세운 ‘갑자년 구상’을 보면 세자가 15세 성년이 되는 해인 갑자년(1804)에 왕위를 물려주고 화성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죠. 아쉽게도 정조는 그 구상이 실현되기 전인 1800년에 병으로 세상을 뜹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임금이 그런 결심을 하는 게 쉽지는 않아요. 가진 게 많을수록 내려놓기 어려우니까요. 내가 정말 많은 것을 안고 있을 때, 또는 너무 바쁠 때는 스스로 조금씩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오병돈 프리랜서 obdlife@gmail.com)

각별함, 평범한 것이 특별해지다

여항시인 최천익(崔天翼)의 시에서도 홍신유와 비슷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병석의 나를 위로하며(病中自慰)’라는 시에서 그는 병이 생겨 누워 있는 탓에 몸은 수척해졌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내적 양식을 쌓으리라 의지를 다진다.

“원문에는 ‘近裏工夫或庶幾(근리공부혹서기)’라 쓰여 있어요. 가까울 근, 속 리, 즉 근리공부는 내면공부와 같아요. 최천익은 병상에 누워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실한 내면공부를 하기에 알맞은 시기라 말했죠. 대부분 좌절을 겪으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나이 들면 병이 생기는 것도 큰 좌절이잖아요. 낙담하지 않고 내면을 다스려 채워간다면 위기도 더 나은 인생을 향한 전환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이황(李滉) 역시 ‘세상맛은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며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안 교수에게 나이 들수록 특별히 더 좋아지는 것이 있는지 묻자, 이때의 ‘각별함’은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이 들수록 각별해진다는 건 그동안 별것 아니던 무언가가 특별해지는 경험을 말해요. 젊어서는 즐길 거리가 워낙 많으니 사소한 것에는 관심이 가지 않잖아요. 예를 들어 꽃도 좋아하지 않거나 장미처럼 화려한 걸 선호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이름 없는 작은 들꽃도 참 예뻐 보여요. 늙어서 새로 생긴 것이 아닌, 본래 있던 평범한 것들에 눈이 가고,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거죠.”

안 교수는 노탐(老貪)을 버리고 평범한 일상에 만족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결’에 이르고 싶다고 소망했다. 더불어 언젠가 다가올 인생의 한가로운 시기에 대한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보다는 연장전에 가까울 것 같아요. 지금까지 하던 작업을 계속할 테니까요. 그게 제겐 즐거움이고 취미거든요. 다들 그건 너무 단조롭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해요. ‘인문’ 자체는 하나의 종목이지만, 내용에는 인간의 풍부한 경험과 다양성이 존재하죠.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다 해내지 못할 정도로 끝도 없고, 경지도 없어요. 그 속에서 내가 보는 만큼 아는 거고, 찾는 만큼 나아가는 거죠. 욕심 부리지 않고, 역량껏 차근차근 ‘결’의 시기를 맞이하고 싶어요. 자료 수집하러 여행도 다니고, 다른 것에 매여 하지 못했던 박제가(朴齊家) 평전도 쓰고요. 그게 바로 제가 택한 한가로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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