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전철무임이 시행되면서 어르신교통카드가 발급되었다. 십여 년 전부터는 전철·버스 환승할인제를 실시하였다. 일반인은 전철 1250원, 버스 1200원 합계 2450원이던 교통요금이 할인되어 전철 638원, 버스 612원 식으로 거리비례계산하여 합계 1250원만 부담한다. 하지만 어르신의 교통요금은 지금도 환승할인 되지 않는, 일반인보다 1200원 더
전직 상사와 아랫사람 사이 진흙탕싸움이 한창이다. ‘나 살고 너 죽기’이다. 상사에게 토사구팽 당하였다는 하소연부터 아랫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까지 다양하다. 상사가 다 부려먹은 아랫사람을 자르는 것을 토사구팽이라면 아랫사람이 상사와 등을 돌리는 것은 배신이다. 언뜻 달라 보이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부산물이다. 추적자와 도망자가 뒤엉켰다.
문형!
독하게 추운 겨울입니다. 한파가 그야말로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수도가 얼고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도 성장을 멈추어 서민들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이은 화재 참사도 한파 이상으로 춥게 합니다. 기후 온난화를 꽤 걱정했으나 올겨울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입춘 절기가 코 앞인데 추위는 물러갈 줄 모릅니다. 예전부터 입춘
호가 춘곡(春谷)인 고희동 가옥을 지나 올라가다 보면 빨래골을 만나게 된다. 약간 지하에 있는 개구멍받이처럼 생긴 곳에서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옛날 궁녀들이 그곳에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단다. 궁녀들이 비누 대신 곡물을 사용해 늘 뿌연 뜨물이 흘러나왔는데 사람들은 그 물에 빨래를 했고 그 뒤 빨래골이라 불려왔다 한다.
곡물로 머리를 감았다니 궁녀들
A라는 사람은 “될 대로 돼라.”
B라는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 수는 없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겨우 열넷, 열다섯 살이었던 우리들에게 이따금씩 이런 물음을 넌지시 던지면서 조용히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시던 분이 있다. 바로 통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박순직 선생님이다. 필자가 정신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택시기사와 70대 할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요금시비인가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 처음 보는 신기한 싸움이었다. 싸움의 발단은 이렇다. 아침 동이 틀 무렵 교통신호등이 있는 길 옆에서 택시기사가 새벽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는 시간을 이용해 자동차 백미러의 성에를 닦았다. 그리고 백미러를 닦아 시커매진 휴지를 길바닥에 버렸다. 그 뒤
‘앞으로 10년만 엄마의 상태가 지금처럼 유지되도록 도와주세요.’ 2007년 겨울 엄마의 치매 판정이 내려진 날, 하윤재(河侖材·47) 감독은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당시 일흔이 넘은 노모에게 10년은 막연히 긴 시간이라 여겼다. 그러나 만 10년이 지난 현재, 절망으로 휩싸였던 그날의 기억이 무색하리만큼 모녀는 여전히 인생의 희
겨울엔 유난히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떠오른다. 잔뜩 움츠린 몸으로 밥 한 공기 말아 넣고 숟가락질만 몇 번 했을 뿐인데 얼었던 몸이 어느새 스스로 녹는다. 50년 전통의 맛은 물론 쫄깃한 식감까지 책임져줄 순댓국집 ‘대림동삼거리먼지막순대국’을 소개한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중학교로 향하는 좁은 골목길을 하나 지나면 학교 바로 옆에 자리 잡
산중에 눈이 내린다. 폭설이다. 천지가 마주 붙어 눈보라에 휘감긴다. 어렵사리 차를 몰아 찾아든 산간 고샅엔 오두막 한 채. 대문도 울도 없다. 사람이 살 만한 최소치의 사이즈를 구현한 이 갸륵한 건물은 원시적이거나 전위적이다. 한눈에 집주인의 의도가 짚이는 집이다. 욕심일랑 산 아래 고이 내려놓고 검박하게 살리라, 그런 내심이 읽힌다. 대한성공회 윤정현
사진 촬영을 명령받을 때가 있다. 내 스스로 정한 곳이 아니라, 소속된 조직으로부터 다녀와야 하는 지역과 대상이 정해질 때다. 프놈펜에서 메콩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보트 길이 주어졌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함께 지냈던 유엔 요원들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채 나를 떠나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