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젠 ‘브라보 마이 라이프’

기사입력 2018-04-19 15:18 기사수정 2018-04-19 15:23

후드득후드득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꼭두새벽부터 잠에서 깼다. 창문을 여니 더욱 요란했다. 아, 이런 날엔 비가 오면 안 되는데…! 하지만 전지전능한 하늘에서 하는 일에 무력한 인간이 대체 무슨 힘이 있을 텐가.

모쪼록 오전 중에나 비가 그쳤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다. 시간은 저벅저벅 흘러 관광버스가 도착했다는 기사님의 전화가 왔다. 처조카의 차를 빌려 바리바리 짐을 싣고 동행할 하객들을 기다렸다.

더욱 거세진 폭우 탓에 하객들의 참석률은 매우 저조했다. 하는 수 없지 뭐, “선생님, 출발하시지요!” 관광버스 기사님도 따지고 보면 지입차(持入車) 형태의 ‘사장님’이다. 따라서 고루하게 ‘기사님’ 내지 ‘사장님’이라고 호칭하기보다는 ‘선생님’이 훨씬 낫다.

수원을 향해 출발한 버스가 도착한 건 예식 1시간 전인 오후 2시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시렁거렸다. 주변의 목련꽃은 진즉에 처참함의 종말을 고했고, 벚꽃 역시 어느새 모두 낙화한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이윽고 하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빗길을 뚫고 와주신 분들이 정말 고마웠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와중에 호텔 직원이 와서 혼주 자리로 가서 앉으란다. 양복 왼쪽에 꽃을 꽂고 아내의 곁에 착석했다.

경력이 풍부해 보이는 사회자가 ‘성혼선언문’은 신랑 아버지께서 하실 거라며 필자를 무대 정중앙에 불러세웠다. 연습한 ‘성혼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바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양가를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랑 홍관호 군과 신부 강미지 양은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여러 하객들께서 모인 이 자리에서 일생 동안 함께할 부부가 되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저는 이 혼인의 증인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두 사람이 부부가 된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아울러 시종일관 믿음직하게 자라준 아들이 고맙고, 금지옥엽 고운 따님을 주신 사돈 어르신께도 감사 올립니다.

오늘 탄생한 이 부부가 건강과 사랑, 그리고 행복의 탑만을 견고히 쌓으면서 잘 살기를 소망합니다. 끝으로 이 덕담 하나를 추가하면서 마칩니다. ‘남편은 아내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아내는 남편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2018년 4월 14일 신랑 아버지 홍경석. 고맙습니다!”

다시금 허리를 꺾어 진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일반 예식장은 대부분 뷔페식이다. 따라서 정작 예식보다는 음식을 먹는 데 더 열중하는 구조다.

하여 신랑신부는 안중에 없고 축의금을 내는 즉시 식당으로 직행하는 게 관행이자 수순이다. 그러나 어제 아들의 예식은 ‘비싼’ 호텔에서 했기에 격부터 달랐다. 예식이 본 궤도에 올라야만 비로소 음식이 나왔다.

따라서 하객들은 꼼짝없이(?) 예식의 전 과정을 눈에 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덕분에 하객들의 이탈 없이 예식은 더욱 화려함을 뽐낼 수 있었다. 예식을 마친 신랑과 신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하객들이 앉은 좌석을 돌며 인사를 시작했다.

아내의 옷깃을 잡아끌며 앞잡이에 나섰다. 친구와 동창들, 가족과 친인척 역시 이구동성으로 신랑 신부를 향한 칭찬을 남발했다. 어느새 만취한 죽마고우는 재작년의 딸에 이어 아들마저 결혼을 시켰으니 “너는 이제 아버지로서 할 일을 다 했다”며 부러워했다.

한술 더 떠 심지어 ‘브라보 유어 라이프(BRAVO YOUR LIFE)’라고까지 추켜세웠다.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그보다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가 더 맞는 거 아닐까 싶다.

예식을 마치니 비로소 비가 그쳤다. 집으로 돌아와 참았던 소주를 들이켰다. 술잔 속에서 “자네 오늘 수고 많았어! 이제 당신도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더 멋지게 살아봐~”라며 주신(酒神) 바커스(Bacchus)까지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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