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에 눈을 뜨면 처음 생각나는 사람, 그 사람이 친구고 보약 같은 친구란다. 가요 노랫말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계실 필자의 어머니는 아흔이 지나면서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어느 날은 친구분이 먼저 전화하셨다 특별히 그러자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한 분이 먼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매일매일 지켜진 약속이었다.
지난 9월, 두 분의 형님이 돌아가셨다. 여든여덟의 동갑내기 시누이올케 관계다. 몇 해 전부터 집안 모임에서 만나실 때마다 두 분은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꼭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만날 때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다른 가족들은 나이든 분들이 하는 넋두리려니 했다. 그러고는 두 분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한 달을 시차로 돌아가셨다. 덮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편안한 곳으로 동무해서 가신 거다. 평균수명은 채웠고 고통스럽지 않은 마지막이었다. 복 받은 거로 생각하자는 주고받기 위로가 있었지만 떨어지는 낙엽만큼 덧없는 인생을 생각하느라 서로의 깊어진 표정은 어쩔 수 없었다.
낙엽 지듯이
오랜만에 뉴욕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맥 빠진 목소리로 *살맛 잃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친구는 노인아파트에서 5년째 살고 있는데 건강하게 자기 시간을 잘 요리하며 산다. 취미도 다양하지만 은퇴 후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배워둔 것이 많아 은퇴 전보다 더 바쁘게 산다. 은퇴는 또 다른 시작이라며, 살짝 가려진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일 뿐 겁먹을 것도 안달할 것도 없다며 씩씩하게 말하는 친구다.
지난 두 주 동안 같은 아파트의 입주자 다섯 분이 타계했단다. 물론 연령은 8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이지만 사는 게 너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하다고 했다. 노인아파트에 입주하는 시기에는 누구나 한 번쯤 심도 있게 점점 더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앞으로 갈 길 닦으려는 준비다. 누구나 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여로의 동반자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 그 길이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길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꺼번에 떠나는 사람들을 보니 강철 여인도 어쩔 수 없는 감상에 빠졌나보다.
장의사도 성수기가 있고 비철이 있단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죽음은 계획하거나 예약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저승사자의 출두시간을 관장하는 존재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명절 후나 큰 가족 행사 후 세상을 뜨는 노인분들이 많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신체 건강한 분이 그러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만약 죽음의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천당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 보고, 하고 싶은 말 하고, 친지들과도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기회를 저승사자라도 빼앗을 수는 없겠다. 명절이나 가족의 중요한 행사에 마지막으로 동참하고 싶은 열망은, 그리고 그 열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신이 주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완성하고 싶은 인간의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의 친구 셋이 오랜만에 만났다. 한 친구가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어 자리를 못 비워 두 사람이 가게로 갔다. 저녁시간은 치킨 배달이 많아 바쁘니 점심시간에 만났다.
치킨 집 친구는 올해 말까지만 치킨집을 하다가 은퇴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부부가 같이 장사하느라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고 돈도 벌 만큼 벌어 노후자금은 확보해놨다는 것이다. 이제 그 친구를 치킨집에서 볼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친구도 그만 둘 날이 며칠 남았다며 손가락으로 세고 있었다. 그만둘 생각을 하니 주문에도 더 적극적이고 친절해졌다고 한다. 그동안 쓰던 주문 전화번호도 꽤 알려져 있는데 프리미엄을 받고 넘겨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적당한 권리금을 갖고 들어올 작자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수년간 자리를 지켰을 만큼 어느 정도의 매출은 보장이 되는 가게인데도 그 동네가 곧 재건축에 들어가게 되면 재입주하기 전까지는 매출이 부진할 것이라는 약점이 있다. 결국 권리금을 좀 깎아주겠다는 당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치킨집이 팔리면 양평에 전원주택을 하나 사서 노년을 텃밭이나 가꾸며 살겠다고 했다. 마침 먼저 자리 잡은 친구가 있어 마음을 굳힌 것 같다. 농사지어 수익을 낸다는 것은 또다시 노동을 요구하니 어렵고 과일나무 심어 과일이나 따 먹고 즐기는 수준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전철로도 갈 수 있으니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것 같다.
또 한 친구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파는 사업을 하는 친구다. 비서 한 명 두고 몇 명 안 되는 직원들과 일하는데 지식을 파는 사업이기 때문에 자신이 은퇴하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복지의 최고 좋은 방법이 일하는 거라는데 하는 데까지 할 생각이라고 했다. 늘 바쁘게 살아 자주 볼 수 없어서 원망을 많이 했다.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츰 일을 줄이고 스트레스 덜 받는 방향으로 회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어릴 적 어울리던 친구 세 명은 일찌감치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다. 최근 카톡으로 자주 연락하고 산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자주 만나자는 스케줄을 짜게 된다. 일단 그 친구들이 한국에 와서 보내는 스케줄을 짠다. 당일 만남은 물론 일박으로 단풍여행 계획도 짜본다. 당일이면 계룡산 정도를 행선지로 잡고 일박이면 경상도의 우장산이나 전라도의 내장산까지도 가보자는 계획을 짜본다. 내년 3월에는 한국 친구들이 미국에 부부동반으로 열흘간 놀러간다는 계획도 잡아본다. 미국 친구 한 명은 벌써 캠핑카를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내년부터는 우리 친구들이 65세가 된다. 각자 다른 길에서 바쁘게 살았다. 다시 모여 풀냄새 난초 냄새나는 우정의 지란지교로 돌아가야 한다. 딸린 식구도 생겼다. 모두의 공통점은 여행이나 자주 다니자는 것이다. 어딜 가나 경로우대를 받을 수 있으니 더 좋다. 그러자니 내 주변의 스케줄을 줄여야 한다.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야 하는 일부터 정리해야 한다. 놀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여행을 감당할 체력도 다져야 한다. 의상이나 신발 등 장비도 점검해야 한다. 여행 갈 때 새 신을 신었다가 곤욕을 치른 경우가 많으니 신발도 지금부터 길을 들여놓아야겠다.
자서전은 지나온 삶을 성찰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훌륭한 자기계발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때론 가슴을 적시는 소설이 되기도 하고, 희로애락이 한껏 버무려진 희곡이 되기도 한다. ‘내 이야기’ 즉, 직접 겪은 일을 자기 감정을 토대로 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내가 직접 쓰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서전을 만들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한 이들을 위한 방법을 정리했다.
민경호 세계로미디어 대표· 저자
>>STEP 1 준비 단계
자서전에는 소소한 일상부터 가치관이나 사상, 인생관, 국가적·사회적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 등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일반적으로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목차를 구성한다. 오래전부터 써 온 다이어리 등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기억력’과의 싸움이 된다. 과거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방법을 실행해 가며 토막글을 쓰거나 메모해 두는 것이 좋다.
◇ 과거를 떠올리는 방법
➊ 연대별 주요 사회 사건과 내 기억을 연관 짓기
10년 단위로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정리한다. 각 사건이 일어날 당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일이 생겼는지 떠올려 보자. 큼지막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시간 순서대로 떠오르는 기억을 정리해 나갈 수 있다.
➋ 편지·사진 모으기& 추억의 장소 찾아가기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편지·사진을 보거나 고향 집, 학교, 직장 등을 다녀오면 새로운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직접 찾아가기 어렵다면 예전에 살던 동네나 이사 다닌 집, 사무실 등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➌ 질문지 활용하기
인터뷰를 하듯 세세하게 질문지를 만들어 시기별로 나누어 답을 적어 본다. 아동기·청소년기·청년기·결혼생활기·중년기·노년기 등으로 분류하고, 몇 가지 키워드를 활용해 질문을 이어간다. (예: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나 선생님은? 첫 직장상사와 관계는? 신혼여행은? 중년기 공휴일에는 무엇을 했는가? 등등)
>>STEP 2 글감 만들기&구성하기
기억을 떠올리며 메모를 하거나 토막글을 써두었다면, 소주제를 정하고 여러 개의 토막글을 엮어서 서술해 보자. 소주제를 정하기 어렵다면 유명인의 자서전 몇 권을 읽어 보고 참고하는 것도 좋다. 다른 책의 목차나 구성을 활용해 글감을 마련하고, 얼추 윤곽이 잡히면 원하는 대로 재구성해 보는 것도 괜찮다.
◇ 자서전 내용을 독특하게 구성하는 방법
➊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 이름을 목차에 활용: 피터 드러커 자서전의 예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 목차를 보면 아주 독특하다. ‘할머니-인간에 대한 예의를 깨우쳐준유쾌한 사람’, ‘엘자와 소피-교육의 길을 제시한 노처녀 자매 선생님’, ‘폴라니 가-새로운 사회를 꿈꾸던 흥미로운 가족’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 또는 유명인의 이름을 소주제로 해 자서전을 꾸몄다.
➋ 시간 순서가 아닌 중요한 사건 순으로: 러셀 베이커 자서전의 예
미국 언론인 러셀 베이커의 자서전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흥미로운 구성이 눈에 띈다. 어린 시절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는 일반 자서전과 다르게 그는 맨 처음 ‘제1장 어머니의 타임머신’이라는 소주제로 문을 연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와의 대화를 서두에 넣는 등 기억에 남는 사건을 먼저 이야기하고 당시 관련된 에피소드를 풀어 나가는 형식이다.
>>STEP 3 글다듬기&견적 의뢰
그동안 써 놓은 글감을 모아 자서전의 두께나 형태를 가늠해야 한다. 완성도를 높이려면 글쓰기나 스토리텔링 강좌 등을 참고해 글을 세련되게 다듬는다. 가능하다면 간단한 문법을 익혀 틀린 문장이나 단어는 없는지 확인한다. 인터넷으로 ‘맞춤법 검사’ 프로그램을 찾아 활용해 보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자료가 정리됐다면 출판사 등에 자서전의 페이지 수나 크기, 레이아웃에 따른 견적을 의뢰한다.
순천에서 두 시간 정도면 담양읍에 갈 수 있다. 담양에는 대나무 숲이 유명하다 해서 이번 여행 코스에 넣었다. 순천만을 돌아보느라 피곤했지만 일단 숙소를 옮겨야 해서 담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역시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큰 길에서 보이는 펜션, 모텔 등에도 빈방이 없었다. 동네 주민에게 민박집을 찾으니 전남도립대학교 앞에 있는 한 집을 소개하면서 방 두 개에 8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잘 거라 큰 방이 필요 없다고 하니 더 찾아보라고 했다. 비싸긴 했지만 날도 어둡고 다리도 피곤한데다 배까지 고파 더 찾아볼 기력이 없어 그냥 묵기로 했다. 아래층에 음식점을 겸하고 있어 식사까지 해결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저녁 6시 반인데 음식점 불이 꺼져 있었다. 담양은 그 시간이면 다들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랬다. 오면서 봤던 다른 음식점들도 불이 꺼져 있었다. 변두리라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담양 중심지라고 했다.
겨우 대통밥 정식을 파는 음식점에 들러 저녁식사를 했다. 반찬 종류는 많은데 서울의 한정식 정도였다. 밥값은 1만3천원을 받았다. 막걸리를 주문하니 다 떨어져서 없다고 했다. 연휴에는 음식점들도 좀 늦게까지 문을 열고 막걸리도 준비해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반응이 없었다. 서울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치 오늘까지만 장사하고 그만둘 음식점처럼 보였다. 막걸리 대신 약주를 주문했더니 1만원이나 받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관방제림으로 갔다. 대나무 정원인 죽녹원은 아침 9시에 문을 열기 때문에 그전 두어 시간을 다른 데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담양읍으로 들어오는 다리를 다시 건너 초입부터 개울을 따라 걷는 길이었다. 조선시대에 홍수가 자주 나자 제방을 쌓고 거기에 나무를 심은 것이다. 관에서 주도해 방제를 위해 만든 숲이란 뜻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10m 가격으로 서 있었다.
한 그루 한 그루가 보호수 지정을 받을 만큼 컸다. 나무 밑에는 쉼터가 줄지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그늘 아래에서 한여름을 보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500m쯤 가자 차도가 나오고 메타세쿼이아 길이 나왔다. 좌우로 이어진 그 길 옆으로는 메타 프로방스라는 유럽식 마을까지 조성되어 있어 마치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주변 상가 건물들도 모두 예뻤다. 명소로 충분히 사람들을 불러 모을 만했다. 서울 주변이었다면 관괭객들로 몸살을 앓을 정도로 예쁜 동네였다.
메타세쿼이아 길은 1972년에 조성된 약 8km에 달하는 가로수 길이다. 원래는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이었는데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로 만들었다. 메타세쿼이아는 아직 수령이 40년 정도밖에 안 되어 서울의 아파트 주변에 심은 메타세쿼이아와 별다른 차이는 없다. 다만 양쪽으로 심어져 있어 그 사이로 걷는 특별한 맛이 다르다.
담양의 백미인 죽녹원에 갔을 때는 장마철처럼 비가 쏟아져 우산이 소용없을 만큼 젖었다. 그래도 울창한 대나무 숲은 볼 만했다. 2003년부터 대나무 숲을 가꾸다 보니 어느 새 이 지방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죽녹원 때문인지 동네에는 대나무로 만든 음식, 가구, 기념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들은 중국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죽녹원의 대나무는 그리 굵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굵은 대나무에는 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몰지각한 관광객들도 있다고 한다. 담양은 언젠가 가본 이탈리아의 트레비소(Treviso)를 연상케 하는 마을이다. 밀라노 근방의 소도시인 트레비소는 인구도 많지 않고 동네 한가운데 개울이 흐르고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0월 1, 2, 3일은 연휴였다. 9월 말까지 끝내야 할 프로젝트들이 있었다.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여름휴가도 못 가고 매진하다 보니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진 머릿속도 풀어야 했다. 그래서 9월 중순 추석 전에 휴가 계획을 잡았다. 탁 트인 순천만을 보며 가슴을 펴고 싶었다. 시간이 되면 담양 대나무 숲도 보러 가고 싶었다.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여행을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젊었을 때는 사전조사도 하고 숙소도 미리 예약하는 등 유난을 떨었는데 이제는 다 피곤하기만 했다.
순천으로 떠나는 날, 연휴가 중국 연휴와 겹쳐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순천시까지는 무난하게 도착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얼핏 본 전통 초가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으려고 순천시에서 순천만 쪽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해서 전화하니 엉뚱하게도 반대 방향이라는 것이었다. 무려 22km나 더 가야 했다. 순천만 쪽에는 민박, 펜션 등이 이미 다 차버려서 난감한 상황이었다.
초가집 연락처는 집 전화밖에 없었다. 할머니가 전화를 받았는데 귀가 안 들리는지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순 전라도 사투리라서 알아듣기도 어려웠다. 낙안읍성으로 오라는데 낙안읍성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게다가 주차장으로 오라며 주차장을 ‘주치장’이라고 발음했다. 상황을 보니 할머니는 ‘펜션’, ‘내비(게이션)’이라는 말은 아예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상호도 없고 세 번째 집이라는데 정말 막막했다. 일단 낙안읍성을 찾아갔다. 정문 옆에 넓은 주차장이 보이길래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비 맞고 기다리다가 방금 집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으로 초가집 사진을 보여줬더니 그곳에는 초가집이 수십 채나 된다고 했다. 할머니에게 겨우 전해들은 ‘박물관’, ‘교회’ 등을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는 데 암담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파출소 불빛이 보였다. 다시 전화를 걸어 이번에는 경찰관과 직접 통화하게 했다. 그제야 경찰관이 직접 데려다 주겠다며 차 시동을 걸었다. 경찰차는 낙안읍성을 향해 갔다. 교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고 논길을 지나니 낙안읍성 남문(쌍정루)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남문주차장’이라는 작은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이라기보다는 성벽 밑 공터였다.
그렇게 해서 겨우 할머니를 만났다. 얼굴이 검게 타고 주름이 가득한 80대 중반의 전형적인 농촌 할머니였다. 할머니를 따라 낙안읍성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채의 초가집이 밀집되어 있었다. 할머니 집은 과연 남문에서 세 번째 초가집이었다. 민박집이 성 안에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할머니가 싸리나무로 만든 대문을 열 때 시설이 너무 열악하지 않을까 순간 걱정이 되었다. 전형적인 시골집 구조로, 마당이 있는 ‘ㄴ'자 집이었다. 방문을 여는데 도배는 새로 했지만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방이었다. 화장실도 따로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른 곳으로 갈까봐 몸이 달아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이나 나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를 못 받아 다른 손님을 놓쳤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방이 4개나 되는데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숙박료는 5만원이라고 했다. 아침에 돈을 줘도 되지만 미리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흔쾌히 5만원을 줬더니 요즘 가짜 돈이 많다며 의심을 했다. 눈도 어둡고 할머니라 피해 사례가 있었던 모양이다. 칼라 복사기로 정교하게 복사한 위조지폐라면 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도 열악한데 5만원이나 받는 게 비싼 느낌이었지만 그냥 짐을 풀기로 했다. 그리고 서둘러 근처 음식점으로 나가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비가 와서 날씨가 좀 쌀쌀하다고 했더니 보일러를 틀어줬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의 표정이 훨씬 편안해 보였다. 아침 간식을 좀 나눠줬더니 고마워했다. 전날 저녁의 경계심은 다 풀어지고 어머니 같은 따뜻한 표정이 보였다. 잘 자고 간다니까 마당 감나무에서 감을 따더니 가면서 먹으라며 건넸다. 바로 전라도 인심이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을 돌아보니 여러 채의 초가집들이 민박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예쁘게 꾸며 놓고 있었다. 마당에 잔디가 깔린 집도 있고 방안에 화장실욕실이 있다는 민박집들도 있었다. 일률적으로 숙박료는 5만원인데 가장 열악한 집을 골랐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왜구의 노략질에 방어하기 위해 만든 읍성으로 읍성 내에 주민이 직접 살고 있다는 점이 다른 읍성과 다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볼거리도 많은 편이다. 바로 옆 근처에 70년대 유명 잡지였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이 있다. 잡지와 다른 유물들도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다.
얼마 전 한 여행사에서 유럽 단체 여행객에게 ‘등산복은 피해 주세요’ 라는 문자를 보내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보고 여행사가 왜 여행자의 복장까지 제한하는지 의아 했다.
관광객 개인적 취향까지 여행사에서 간섭하는 것은 지나친 관섭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자의 대상이 대충 필자와 비슷한 세대의 유럽관광객이라고 하니 연대감에 살짝 발끈하기까지 했다.
여행 갈 때 편리성, 간편성 등 기능적 면에서 등산복만 한 옷이 있을까? 특히 금방 비가 왔다 그쳤다 를 반복하는 유럽의 변덕스런 날씨에 방수, 방풍, 투습 기능이 있는 고어텍스 등산 재킷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적절한 여행 차림새 일지도 모른다고 격하게 자기변호를 했었다.
새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져서 기사의 달린 댓글을 모두 읽어 보았다.
댓글을 단 대부분의 사람이 젊은이들로 어머니 아버지 제발 등산복 좀 입지 말아요, 성당이나 왕궁 등이 산이냐 왜 등산복을 입는가? 예의가 아니다. 우리나라 아줌마 아저씨들 만나면 너무 창피하다고 까지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이런 젊은이들의 생각을 엿보며 씁쓸하면서 5년 전에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카이로를 제외한 도시는 나일 강을 따라 크루즈를 한 적이 있다. 초호화 크루즈가 아니라 도시 간 이동수단 정도의 소박한 크루즈였다.
이용자 중 동양인은 필자와 친구 그리고 서너 명의 일본인 뿐 이고 대부분이 유럽의 시니어 들이었다. 낮 시간에는 볼륨 감 넘치는 유럽의 시니어 들은 거의 반나체의 모습으로 수영을 하거나 선탠을 즐기곤 하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 리셉션 장에 모였을 때 예상치 못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유럽 시니어 들은 모두 화려한 성장으로 갈아입고 내려온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짧은 바지에 티셔츠 차림인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는 그냥 한 끼 식사를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우아하게 차려입고 만찬을 즐겼다. 구두 색깔 까지 완벽하게 맞춰 입고 온 유럽 시니어 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다.
해외여행 갈 때 등산복이 좋으면 등산복 입자. 현지인이 비웃으면 비웃으라. 해라. 그리고 당당하게 말하라. ‘우리나라에서 등산복은 등산할 때만 입지 않고 평상복 여행복으로 다 입는다’ 라고. 다행히 요즘은 등산복이 기능성은 살리고 디자인도 멋진 일상복과 등산복의 경계가 모호한 것들이 많이 나왔다. 아웃도어 브랜드 들이 등산복을 좀 변형한 여행복도 많이 내놓고 있다. 그러니 여행갈 때 편한 등산복이 좋으면 당당하게 취향대로 입고 가자.
그리고 조금 여유가 있다면 예쁜 원피스나, 멋진 나비넥타이에 정장 재킷 정도는 한 벌씩 만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낮에 관광할 때는 편하게 등산복 입고 저녁에 근사한 레스토랑에 갈 때, 미술관이나 성당 갈 때 한번 정도는 멋지게 차려 입고 간다면 더 근사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젊은 사람들이나 현지인 시선 때문이 아니라 나의 멋진 여행을 위해서 T. P. 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여행복을 준비하여 적절하게 즐길 수 있다면 여행의 추억에 더 근사하게 남을 것이다.
가을의 유명한 먹거리를 찾아 보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 이름 자체에 가을이 들어가 있는 추어탕(鰍魚湯), 서해안의 대하(大蝦), 낙지… 그런데 왜 모두 물에서 자라는 것일까? 가을은 땅에서도 열매가 많이 맺히는 결실, 수확의 계절인데.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하늘이 높아진다는 것은 대기가 건조해진다[燥]는 말이고, 말이 살찐다는 것은 겨울을 대비해서 몸이 불어난다[濕]는 말이다. 식물은 가을이 되면 잎과 줄기가 마르면서 형형색색의 단풍을 만들어 내고[燥], 모든 진액은 열매와 뿌리 속으로 갈무리되어서 열매와 뿌리가 부푼다[濕]. 다람쥐는 도토리를 모으고, 곰은 많이 먹어서 체중을 20~30% 늘려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사람도 피부는 건조해지고[燥], 속은 살이 쪄서 겨울을 대비한다[濕]. 그러므로 한의학에서는 가을을 마를 조(燥)와 거둘 수(收, 濕)로 대표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겉으로는 건조해서 생기는 피부병은 악화되고, 습기가 많아서 생긴 피부병은 호전된다. 건성 아토피나 건선, 안구건조증 등은 악화되고, 습성 아토피, 어루러기 등은 호전된다. 속에서는 살이 찌면서 습기가 더 강해진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심해지고, 디스크, 관절염도 심해진다. 에서도 가을 습기에 상하면 겨울에 기침을 많이 한다고 했다. 가을은 폐가 주관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폐와 관련된 코, 호흡기, 피부 질환이 많이 나타난다. 감기, 비염, 천식, 피부병, 상기증, 어깨와 등이 뭉치고 아픈 증상 등을 주의해야 한다. 폐가 원래 안 좋은 사람은 가을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가을에 적합한 음식으로는 갯벌, 진흙에 사는 수생 생물과 가을 과일, 견과류를 들 수 있다.
물고기, 낙지, 대하 등 물에 사는 생물은 자신의 몸에 들어온 물을 순환시켜서 몸 밖으로 내보내는 힘이 강하다. 따라서 물고기를 먹으면 예외 없이 부종을 소변으로 빼내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산후에 붓기를 빼려고 잉어, 붕어, 가물치 등 물고기를 먹는 것이다. 그중에서 진흙, 갯벌에 사는 물고기, 낙지, 대하는 습을 소변으로 잘 내보낸다. 물이 정체된 것과 습이 정체된 것은 좀 다른데, 물이 정체되면 위장이 출렁거리고, 습이 정체되면 소화가 안 되고 붇고 머리가 무겁다. 물이 정체되면 안개, 습이 생기기 쉽다. 물이 정체된 진흙, 갯벌에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습을 제거하는 능력이 발달했다. 그래서 진흙, 갯벌의 생물을 먹으면 습을 순환시켜 건조해진 피부를 촉촉하게 해 주고, 몸속의 습은 소변으로 빼내 준다. 그러므로 피부가 건조해지고 몸속이 습해지는 가을에는 갯벌, 진흙에 사는 수생 생물이 좋다. 이들은 가을철 음식으로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산후 유즙 분비를 촉진하는 음식으로도 우수하다. 산후 유즙 분비는 위장 기능이 좋아야 하고 피가 충분해야 하며 붇기가 없어야 하는데, 갯벌, 진흙의 수생 생물들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추어탕은 미꾸라지(鰍魚)와 초피(제피)를 이용한다. 미꾸라지는 몸속 습기를 소변으로 빼 주면서 피부를 촉촉하게 하고, 초피는 기침을 멎게 한다. 이 둘은 속도 덥혀 준다. 그러므로 추어탕은 가을이라는 조건에도 맞고 감기 예방과 치료도 해 주는 좋은 음식이다.
가을 전어가 유명한 것도 가을철 건강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가을 전어는 물고기라서 습기를 소변으로 잘 빼내 주고, 통통해서 살이 찐 상태이기 때문에 내 몸이 겨울을 대비하도록 하며, 피부를 윤기 있게 한다.
가을철에 낙지가 유명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낙지는 갯벌에 살면서 소화를 돕고 습기를 소변으로 잘 빼내 주며, 기혈을 보충하고 피부를 좋게 한다. 낙지는 또한 근육의 힘이 좋기 때문에, 뱀장어, 가물치처럼 남자의 힘을 돋우어 준다. 연안 진흙바닥에 사는 대하나 수입 민물 대하는 모두 아랫배의 양기를 돋우어서 겨울을 대비하게 한다.
도토리가 다람쥐의 겨울나기를 돕듯이, 가을 과일은 사람,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돕는다. 단맛은 에너지를 만들고, 떫고 시큼한 맛은 진액, 정액을 수렴해서 겨울을 버틸 준비를 하게 한다. 여름 과일인 수박, 참외 등은 단맛이지만, 가을 과일인 감, 사과, 배, 귤, 오미자는 모두 시큼하다. 이 시큼한 맛은 땀구멍을 닫아 피부가 찬바람에 쉽게 상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피부의 땀구멍이 닫히면 인체 내부는 부풀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부풀면 겨울철 추위를 이기기 쉽게 된다. 하지만 약간 서늘한 성질이 있는 편이므로 많이 먹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단단한 과일인 견과류는 피부에서 속까지 진액, 정액을 단단하게 응축해 주기 때문에 겨울 대비용으로 좋다. 연자육, 밤, 도토리, 땅콩, 호두, 좁쌀 등을 하루 한 줌 정도 먹는 것이 좋다. 견과류는 단단하고 둥글게 응집되어 있다. 사람이 견과류를 먹으면 마찬가지로 뼈와 피부가 단단해져서 찬 기운을 이길 수 있게 도와주며, 기침에도 좋다. 기운이 약한 것, 뼈가 약한 것, 설사가 잦은 것에도 좋으며, 눈과 뇌, 척추에도 좋다.
환절기라는 것은 계절의 변화가 급격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을에 따뜻하다가 추워지면 몸의 저항력이 약한 사람은 폐가 쉽게 약해져 기침, 콧물을 흘리게 된다. 변화의 급격함에는 모두가 약하다. 열대에 사는 사람이 한대에 가거나, 시차가 많이 나는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온도차가 급격하거나, 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겪거나 하는 것은 모두 감기에 걸리기 쉬운 상황이다. 따라서 환절기 감기를 예방한다는 것은 급격한 변화를 완만하게 하거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다. 이는 외부 환경을 조정하거나 내 몸의 내부 환경을 조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부 환경은 잠을 잘 때 긴 팔을 입고, 창문을 꼭 닫고, 방의 온도를 약간 높이거나, 따뜻하게 먹는 것이다.
내부 환경을 조정하는 것은 생강차, 계피차 등으로 몸의 온도를 높이는 것이다. 가을, 겨울에 쉽게 땀이 나고 배 아픈 사람에게는 계피차가 특히 좋다.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자고, 약간 늦게 일어나는 것이 좋다. 심호흡을 자주 해 주는 것 역시 적응력을 높여 준다. 갑자기 추운 곳에 나갈 때는 조금씩 흡입량을 늘려 찬 공기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것이 좋다. 얼굴이 흰 사람은 황기, 인삼 등이 좋고, 얼굴이 검은 사람은 산수유 차가 좋다.
가을철에는 태양의 운행에 맞춰 겨울보다는 일찍 일어나고 여름보다는 일찍 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여름처럼 마음을 들뜨게 하지 말고, 가을 성격에 맞게 마음을 안정하고 정신을 수렴해야 한다. 또한 성생활도 지나치게 하면 수렴을 방해하므로 당연히 주의해야 한다. 건조한 날씨로 인해 호흡기질환이나 피부질환이 쉽게 생길 수 있으므로 체액을 증강해 건조함에 대비하고, 옷을 껴입고 기운을 보충해 서늘한 바람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 최철한(崔哲漢) 본디올대치한의원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본초학교실 박사. 생태약초학교 ‘풀과나무’ 교장. 본디올한의원네트워크 약무이사. 저서:
“엄마, 우리 홍콩에서 만나자”
벤쿠버에 워홀 갔던 딸 아이가 돌아올 즈음 내게 재미난 제안을 하나 해왔다. 홍콩 경유 티켓을 끊었으니 홍콩에서 만나 3박 4일 여행을 함께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전날까지 외롭다, 우울하다, 힘들다를 반복하며 눈물을 짜내더니 하루 아침에 태도가 돌변했다. 엄마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콜~”
을 외쳤다.
“엄마 티켓은 엄마가 해결 해”
전화 뒷꼭지에 대고 외치는 딸 목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그래, 나도 고등교육 받은 사람이다’
혼자서 해외에 가본 적 없고 영어를 못해서 어찌지 하는 두려움은 전화를 끊고 나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중3 짜리 아들을 설득해 함께 가자고 했다. 엄마가 영어 못해서 싫다는 아이에게 신발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여러날 회유했다. 무심한 아들은
“여행 가서 잔소리 안한다고 약속 해”
라며 선심을 쓰듯 수락 하였다.
제주항공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면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호텔을 검색하니 가격도 비싼데다 정원이 두 명씩으로 표시돼 있었다. 호텔에 트리플 룸이란 게 있는지 조차 몰랐던 나는 그냥 한인민박에 덜컥 예약을 해버렸다. 모든 준비가 다 되고 출발 날만 기다리고 있을 즈음,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나는 엄마 보다 하루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왜?”
“시차 계산을 잘못 했어”
“뭐라고?”
한 손엔 나보다 큰,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한 손은 빼곡히 적힌 메모지를 들고 불안한 눈으로 넓디넓은 첵랍콕 공항을 둘러보았다. 버스 타는 곳은 어디인지, 옥토퍼스 카드는 어디서 사야하는지 두리번 거렸다.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떼면서 ‘과연 우리가 무사히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어 한마디 안하고도 공항버스 타는데 까지 무사히 찾아갔고,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할지 번호로 다 알려주는 시스템 덕에 내려할 할 곳에 정확히 내릴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세븐일레븐이 보이면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적어온 지도 덕분에 숙소도 단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해 초저녁 홍콩의 숙소에 도착할 때 까지 졸아 붙은 가슴을 어지 할 바 몰랐지만 아무 탈 없이 숙소에 도착했다.
캐리어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침대에 누웠다. 잠시 쉬었다가 맛있는 딤섬 먹으러 나가자고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은 피식 웃기만 했다.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한 번 해보니 이렇게 쉬운 일인 걸 경험이 없어서 많이 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여행길에서 오르면 새로운 걸 하나씩 경험하며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 시켰다. 경험의 지평을 넓혀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즐겁고 행복했다.
불면증의 시대다. “나는 불만 끄면 잔다”는 행복한 사람은 요즘 찾기 힘들다. 특히 전체 불면증 환자의 68%가 50세 이상이라는 기사로 미뤄봤을 때 독자의 수면시간도 안녕하지는 못할 듯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잠들지 못하는 ‘가련한 영혼’을 잠의 신세계로 빠뜨려 줄 아이디어 상품! 글 권지현 기자 9090ji@etoday.co.kr
기능성 베개, 잠의 질을 바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최근 5년간(2009~2013) 디스크 진료현황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목디스크 환자가 약 70만 명에서 90만 명으로 근 30%나 늘었다. 과거의 목디스크는 보통 노화가 시작되는 40~50대에나 오는 퇴행성 질환으로 여겼다. 지금은 과도한 스마트폰과 노트북 사용 혹은 익스트림 스포츠에 의한 부상으로 20~30대에서도 나타나는 흔한 병. 따라서 목 건강, 더 나아가 잘못된 습관이 가져다 준 틀어진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기능성 베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인터넷 검색창에 ‘기능성베개’라고만 쳐도 다양한 모양과 가격의 베개가 시선을 끈다. 그중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두 제품을 소개한다. 바로 전문물리치료사출신이 개발한 ‘가누다 베개’와 자생한방병원이 개발한 ‘자생추나베개’다.
소지섭 베개로 유명한 가누다 베개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균형 있고 편안하게 잘 가누다’라는 의미의 가누다 베개는 배우 소지섭이 광고모델로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베개다. 가누다 베개는 두개천골요법이라는 도수치료법을 응용해 만들었다. 인체의 두개골 구조와 뇌척수액의 흐름을 기초로 바른 수면자세를 도와주는 것. 전문물리치료사가 할 수 있는 도수치료기법(손으로 직접 치료하는 기술)인 후두두개골기저부이완법(목덜미를 풀어주는 기술)과 제4 뇌실압박법(CV4효과: 뒷머리를 지긋이 눌러주는 기술) 등을 응용해 물리적 압력 없이도 잠을 편히 잘 수 있게 해주고 불면증을 완화해 준다고 설명한다. 특히 머리와 뒷목이 이어지는 부분을 부드럽게 받치고 지지해주어 C 자형 목(경추)을 유지해 준다. 자는 동안 치료를 받듯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안했다. 누울 때 어깨 눌림이 덜해 편하며 옆으로 누워도 어깨와 귀가 눌리지 않도록 설계했다. 가누다 베개는 크게 블루라벨 알레그로와 골드라벨 두 종류로 나뉜다. 블루라벨 알레그로는 대, 중, 소, 주니어 사이즈가 있다. 골드라벨은 보조패드가 있어서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나 블루라벨 알레그로보다 약간 높다. 고밀도 항균 메모리폼과 소취 항균섬유를 사용했으며 생활방수가 된다.
가격은 블루라벨 알레그로 22만8000원, 골드라벨 15만8000원이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이용하면 더 저렴한 가격과 사은품을 받아볼 수 있다.
자생한방병원의 야심작 자생추나베개
척추전문 한방의료기관인 자생한방병원은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정기적인 치료를 받기 힘들거나 목 통증이 재발하는 환자들을 위해 자는 동안에도 건강한 C 자형 목으로 유지해 주는 자생추나베개를 개발했다. 두상의 압력뿐만 아니라 소재, 통기성, 발수기능을 두루 고려했다. 자생추나베개는 바른 자세로 누웠을 때 뒷목이 들뜨지 않게 전체를 받치는 곡선형으로 설계했다. C 자형 목을 위해 베개 중앙(목과 머리 경계 부위)에 가로로 ㄷ자 모양의 절개라인을 만들어 목 길이에 상관없이 목의 압력을 골고루 분산해 누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옆으로 누웠을 때 척추가 휘지 않을 어깨 높이인 10~15cm를 고려해 베개 높이 또한 맞췄다. 이 베개는 얼굴을 감싸주는 유선형으로 턱이 틀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감싸주며 어깨 안쪽 끝까지 베개가 닿게 만들어 잠에서 깬 뒤 어깨나 팔 저림을 최소화했다. 높낮이 조절패드로 두상 생김새에 맞춰 베개를 조작할 수도 있다. 베개 뒷부분에는 목의 피로를 실질적으로 풀어주는 지압봉 6개를 부착했다. 자생추나베개는 메모리폼이 아닌 공기 세포 모양의 결정구조처럼 생긴 ‘노그노플렉스2소재’를 사용했다. 작은 공기구멍으로 통기성을 유지하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두상과 자세에 맞게 섬세하게 변형되고 원형으로도 회복이 빠른 신소재다. 자생추나베개는 정품 한 개 22만9000원이고 이 제품 또한 각 쇼핑몰에서 다양한 구성과 방법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심신 안정과 숙면이 필요할 때 ‘멘탈닥터’
멘탈닥터는 집에서 누구든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심리 안정과 개선을 돕는 기구다. 멘탈닥터는 안구운동을 통해 심리불안의 원인이 되는 나쁜 기억을 긍정적인 기억으로 유도하고 과거 상처도 재인식할 수 있게 해 준다. 멘탈닥터를 안경처럼 착용하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귀로 들리는 지시를 들으며 눈에 보이는 파란 불빛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인다. 이렇게 이어폰으로 들리는 이야기와 함께 안구운동을 반복하면서 뇌 기억에 갇힌 신경세포의 정보를 모아 부정적인 기억들로 인한 감정을 제거해 마음의 고통을 해소해 숙면할 수 있도록 도움 받는다. 안구운동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명상과 음악을 병행한다. 내레이션에는 호흡과 명상, 이미지 요법, 암시 효과, 근육 요법, 자율신경 훈련법 등 여러 가지 심리기법이 적용돼 불면증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작동 진행 과정과 음원을 이용자 상황에 맞는 콘텐츠를 홈페이지를 통해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상담을 통해 맞춤 콘텐츠도 제공한다. 특히 마음 건강과 부정의 기억을 처리하거나 증상에 따른 콘텐츠, 명상호흡 등 각박한 삶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주는 콘텐츠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가격은 멘탈닥터 아이스캔(패밀리고급형)이 49만5000원이다.
집 안 캠핑족이 늘어난다 ‘따수미난방텐트’
집에서 웬 텐트냐고 하겠지만 생활텐트 전문기업인 아이두젠의 ‘따수미난방텐트’는 집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 맞다. 2014년 출시됐을 때 ‘텐트계의 허니버터칩’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아이두젠 공식 홈페이지의 10종류 텐트가 품절이 될 정도였다. 일명 수면텐트라고도 불리는데 이곳에 들어가서 자면 따뜻하게 온도가 유지돼 잠이 잘 들기 때문이다. 따수미난방텐트가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가정에서 쓰는 텐트를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했기 때문에다. 우풍이 심한 집에서는 난방텐트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생활공간일 수 있다. 실내에서 활동을 할 때 가장 제약이 덜 가는 구조로 설계해 현재 ‘디자인특허 출원’에 등록했다. 공기순환이 좋은 실내용 원단을 사용해 내부온도는 강하게 유지하고 수분과 습기는 외부로 배출할 수 있게 했다. 텐트 안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젖은 수건을 걸 수 있는 고리와 구멍도 만들었다. 따수미텐트의 난방효과는 한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입증한 바 있다. 올해 초 KBS에서는 가정집 안방에 보일러를 그냥 가동했을 때와 따수미텐트를 설치했을 때를 비교해 온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실험했다. 보일러를 켜고 1시간 후 실내 안방 온도는 21.9℃이었는 데 반해 따수미 난방텐트 내부 온도는 26℃로 4℃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가습효과도 30% 이상 나타나 난방비를 절감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 따수미난방텐트는 사이즈별로 2만원대에서 7만원대까지 다양하다.
잠들기 참 쉽죠? ‘따스안 온열안대’와 ‘레그셀루션’
마지막으로 초간단 잠드는 방법이다. 바로 ‘온열안대’와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는 ‘레그셀루션’이다.
평소 느끼지 못하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TV나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외선 노출로 인해 눈의 피로 또한 쌓여만 간다. 이때 필요한 것이 온열안대다. 시중에 눈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달래는 다양한 안대들이 다양하게 출시돼 있어 원하는 가격대와 사이즈를 구매하면 된다. 온열안대는 PC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직장인과 장거리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는 여행객이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수품이다. 책을 많이 보는 취업준비생과 수험생, 잠을 잘 못 이루거나 숙면이 필요할 때 간편하게 눈에 쓰고 있으면 금세 잠을 청하게 된다. 마나술의 따스안 온열안대의 경우 4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 눈 주위가 촉촉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안구 건조증이 있거나 눈이 자주 뻑뻑한 사람이 사용하면 좋겠다. 별도의 향을 첨가하지는 않았으나 주 재료인 황토향이 아로마향처럼 얼굴 한가득 퍼진다. 기분이 쉽게 풀리면서 편안해지는 장점이 있다.
레그셀루션은 종아리나 발목에 붙이는 파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신 실제 파스보다 청량감이 좋고 촉촉하다. 다량의 수분을 함유한 고밀착 하이드로겔 성분이 다리에 수분을 서서히 공급해 붙이고 있는 동안 상쾌함과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장시간 걷거나 서 있을 경우, 오랜 시간 앉아 있어서 다리가 붓거나 뭉치면 잠들기도 쉽지 않다. 피곤한 부위에 붙이고 쉬면 피로가 풀리면서 몸이 노곤해진다. 따로 마사지를 하거나 사우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레그셀루션을 꼭 써보기 바란다.
어릴 적에는 설·추석 명절이 행복했었다. 근심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새 옷도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절 증후군, 명절 이혼, 고부 갈등이란 이름의 ‘명절 스트레스’는 점점 커지고 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명절준비가 제일 큰 문제였다. 이제 명절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큰 결단을 하였다.
◇명절 스트레스의 원인
손수 준비하던 결혼과 장례문화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하여 결혼·장례식장이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명절과 제사는 아직도 ‘정성들인 음식‘이 필요하다.
대가족 맏이인 아내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40년 넘게 6남매 맏며느리 역할을 묵묵히 잘하였다.
부모님 모시고 형제자매끼리 모이던 명절은 조카들이 결혼하고 손자까지 태어나니 훌쩍 30명이 넘어섰다. 아내는 며칠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모든 일이 잘 되는 줄 알았으나 눈치 없는 필자만의 착각이었다. 한 해에 몇 차례 모임에 녹초가 된다는 사실을 사화은퇴 후에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아들과 딸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였다. “아빠, 엄마의 건강과 변화하는 세상을 생각하여 가족모임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래 깊이 생각해보자!”고 대답하였으나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대가족 분가 작전
두 달 전 어머님께서 소천하셨다. 부모님을 하늘나라로 모시고 나니, 필자가 우리가족의 ‘대권’을 이어받았다. 개혁은 집권초기에 번개처럼 하라고 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마무리 가족모임을 가졌다. “부모님 추모회는모두 참가하고, 명절모임은 직계가족끼리 갖도록 하자.”고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다. 너무 허전하다는 등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과감하게 ‘분가’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 추석부터 대가족 모임이 사라졌다. 아들·딸 가족과 손주까지 9식구만 모였다.
“음식준비를 하지 않으니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아내의 이야기였다. 멀지 않는 곳으로 소가족 여행을 갔다. 아이들과 어울려서 추석을 즐겁게 지냈다. 가족밴드에 사진을 올려서 가족끼리 재미있게 지내는 동생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를 떨치고 미래로
부모님이 계실 때에도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장로봉직 중인 큰 동생의 ‘예배’가 모든 행사를 대신하였다. 비신도가 필자를 비롯하여 절반이 넘었지만 예배는 30년 넘도록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큰 동생은 올 추석에도 가족과 함께 ‘믿지 않는 형제들을 구해주소서!“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이다. 40년 넘게 진행되었던 가족모임이 없어져 조금 허전하였다. 북적거리는 추석도 이제 한시절의 추억이 되었다.
가족모임 때마다 손자들에게 족보를 펼치시고 조상님 설명에 애쓰셨던 아버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 추모일에는 ‘메모리얼 파크’에서 온 형제자매가족이 꼭 모일 예정이다. 지난 한해의 이야기를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가족밴드’에 올려서 공유하기로 하였다. 과거회상만이 아니라 재미있는 내일을 찾는 노력을 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은 전통의례를 존중하는 경우도 많다. 위에서 밝힌 이야기는 필자의 조그만 경험이다. 추석이란 명절이 온 가족이 모여 감사절의 의미를 더 되새기는 날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