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아무 것도 없어”
공주와 부여, 익산 일원의 백제역사유적지구 팸투어를 간다는 말에 지인이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가방을 메고 출발하는데 김빠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공주 공산성에서 시작해 공주와 부여 일원을 둘러보자, 지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이 됐다. 기원 전 18년, 고구려에서 쫓겨난 비류와 온조가 한강유역 위례성에 세운 백
우리는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삶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생물학적 수명이 늘어난 ‘장수시대(長壽時代)’가 되면서, 건강한 노년은 수명연장만큼이나 중요한 숙제가 됐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듯 지난 4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건강하게 100세
지인 중에 환갑나이가 되어 남편과 1년간 별거를 선언하고 원룸으로 옮겨 생활하는 분을 만난일이 있다. 그 당시에는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잘사는 집안으로 큰 아들은 변호사이고 작은 아들은 의사다. 남편도 잘 나가는 고위공무원 출신으로 연금만 해도 3백만 원 이상을 탄다. 황혼이혼도 생각해보았으나 단지 남편이 보기 싫
라디오를 한창 듣던 시절. 라디오 광고에서 최명희의 장편소설 이 10권을 끝으로 완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설가의 의지가 아니었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듯 처절했던 몸부림을 생의 마감과 함께 알린 것이다. 길고 긴 소설, 아쉬움 속에 마침표 찍고 너울너울 혼불 돼 날아가버린 작가 최명희. 그녀의 살아생전 활동과 다양한 모습들을 만날 수 있는
“요즘 재미난 일도 없고 밥맛이 자꾸 없어져.”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만 있으니 날로 스트레스만 쌓여.”
“이제 자식도 다 크고 할 일 했으니 혼자 사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
시니어들이 만나면 흔히 하는 말이다. 몇 년 계획을 세우고 노년 준비를 했지만 자꾸 움츠러드는 기분…. 신체적, 정신적 변화 때문에 오는 우울 증상이다. 취미로
한낮에도 그저 적요한 읍내 도로변에 찻집이 있다. ‘카페, 버스정류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버스정류장’이란 떠나거나 돌아오는 장소. 잠시 머물러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버스를 기다리거나, 마침내 귀환하는 정인을 포옹으로 맞이하는 곳. 일테면, 인생이라는 나그네길 막간에 배치된 대합실이다. 우리는 모두 세월의 잔등에 업히어 속절없이 갈피없이 흔들리며 먼 길
가평군 청평면에 있는 쁘띠프랑스는 지난번 청평에 갔을 때는 못 보고 그냥 지나쳤었다. 폐점시간이 오후 6시라 5시까지만 입장이 허용되는데다 주말에 가야 인형극 등을 볼 수 있다고 해서였다. 입장료도 성인 8000원으로 비싼 편이라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경로 우대가 6000원인데 일행이 있을 경우 전체 입장료는 몇 만원이 되니 무시 못 할 부담이었다.
이
한낮, 때로 집에서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집 근처로 잠깐 나가 점심 한 끼 맛나게 먹고 들어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결국 오전 내내 집안일을 마치고 아침에 가족들이 남긴 음식들을 냉장고에서 무심히 식탁에 꺼낸다. 집에서 대충 때우는 점심이 급기야는 맥빠진다. 그렇다고 배달음식은 내키지 않는다. 아줌마도
올해로 구순이 되는 노모를 모시고 형제들과 함께 남도 나들이를 다녀왔다. 잔치 대신 해외여행을 추천해 드리니 지난 추억이 있는 그곳을 돌아보고 싶으시단다. 우여곡절 끝에 일정을 맟춘 네 자녀들과 함께 변산-개심사-내소사-목포-신의동리-광주-담양을 4박 5일 동행했다. 모두가 귀한 기억을 하나씩 더 안고 온 흡족한 추억 여행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필자의 엄마는 여행을 좋아하신다. 그런 엄마 덕에 여기저기 많이도 다녔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엄마는 참 바빴다. 네 명의 아이들에게 예쁜 옷 찾아 입히고 머리 빗기면서 3단 찬합 가득 김밥을 싸야 했고 그 와중에 화장도 해야 했으니 출발도 하기 전에 엄마 목소리가 커지기 일쑤였다. 4형제 중 누구 하나가 엄마 주먹맛을 본 후에야 우리는 집에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