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쟁이에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제2 인생을 살다

기사입력 2018-05-18 10:58 기사수정 2018-05-18 10:58

[동년기자가 만난 사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뉴스가 있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 이야기다. 젊은 주민이 나이 많은 경비원을 폭행하지를 않나, 경비원을 마치 머슴쯤으로 생각하고 자기 집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나, 주민이 잘못하고도 경비원에게 뒤집어씌우지를 않나.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면 보기도 좋고, 편안하련만. 군대에서 부하가 상관에게 바짝 긴장해서 거수경례를 강요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경비원이 사는 모습도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말이다. 세상이 왜 이럴까. 경비원의 삶은 어떤지 얘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어서 지인이 사는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A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경비원이 항상 깔끔하게 관리하는 아파트(김영선 동년기자)
▲경비원이 항상 깔끔하게 관리하는 아파트(김영선 동년기자)

“50대 중반에 시작한 게 벌써 60대 중반이 됐습니다. 10년이 조금 넘었군요. 처음엔 잠깐 하면서 다른 더 좋은 일을 찾아보려던 것이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는 부인과 슬하에 1남 1녀를 둔 올해 나이 66세 가장이다. 딸은 결혼했고, 아들과 세 식구가 함께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다. 고향은 충북 청주라고 했다.

“시골에서 살았는데 어릴 때는 잘 살았습니다. 양반집에 형편도 좋고요. 외가댁이 마을 유지였어요. 제가 마흔 살 때쯤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아기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시대에도 대학 나온 엘리트였고 농협 임원으로 사택에서 살았다고 했다. 아버지 나이 서른아홉 되던 해에 병을 얻는 바람에 더는 직장에 다닐 수 없어 사표를 냈다. 당연히 사택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명을 몰라 용하다는 병원이 있다면 전국을 찾아다니며 치료를 했다. 그 많던 땅도 하나둘씩 팔다 보니 가세는 점점 기울어만 갔다. 나중에는 하나도 안 남더란다. 얘기하다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이야기를 멈춘다. 경비원 A 씨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다. A 씨는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아버지 일만 생각하면 지금 일처럼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그 옛날이야기가 바로 눈앞에 닥친 현실처럼 아픈 상처로 남아있었다.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삶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면 A 씨도 의사가 됐을 것이다. 아버지 병은 고치지도 못했고 20년간 병석에 누워 계시다 추석날 임종했다. 그때 A 씨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남은 건 작은 전셋집 하나에 여섯 식구뿐이었다. 5남매 장남인 A 씨는 졸지에 가장이 됐다. 어머니는 양반집 귀한 막내딸로 태어나 아무것도 할 줄 모르셨다. 자존심이 강해서, 양반 체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누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입이라도 하나 덜려고 일찍 시집을 보냈다. A 씨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학 진학은커녕 고등학교도 담임 선생님 도움으로 겨우 졸업했다. 그해 봄, 온 식구가 서울 강북구 삼양동 산동네로 이사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양복쟁이가 돼 새로운 삶을 꿈꾸다

서울에서 얻은 첫 직장은 이모부가 경영하는 소공동의 유명 양복점이었다. 이모부 밑에서 잔심부름과 허드렛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어깨너머로 조금씩 익혀 나중에는 디자인, 재단, 재봉까지 정식으로 배우면서 일했다.

“월급이라야 그땐 쥐꼬리만큼도 안 됐어요. 그래도 일 다 배우고 나면 기술자로 대우받을 수 있잖아요. 그 희망 하나로 아무리 힘들어도 참아 낼 수 있었어요. 삼십 대 후반에 양복점을 열었어요. 초반에 꽤 괜찮았는데 기성복이 아주 잘 나오다 보니 맞춤 양복이 점점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IMF 때문에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니 양복을 맞춰 입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췄어요.”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했고 나이가 들어 눈도 점점 침침해졌다. 양복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A 씨 나이 50대 중반이었다.

“평생을 양복쟁이로 살아온 내가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요.”

아파트 경비원 제2 직업이 되었다

양복점 문을 닫고 한 달쯤 쉬고 나니까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생 쉬어 보지 못했던 삶이었다.

“일만 하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나중에는 밥도 잘 안 넘어가더라고요. 뭐라도 해야 마음 편할 것 같아서 구인·구직신문을 가져다 열심히 살펴봤습니다.”

아내와 진지하게 의논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면 어떻겠냐고.

“집사람이 ‘지금까지 사장님 소리 듣던 사람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도 힘들 텐데 자존심 상하는 일이 얼마나 많겠냐’고 그러더군요. 그런 걸 견뎌낼 수 있을까. 다른 일을 좀 더 찾아보다가 안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더군요.”

아내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자존심 꾹꾹 눌러 접어 두고 이력서를 들고 가서 경비원 면접을 봤다.

“대기실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나보다 훨씬 돈 많고, 형편 좋은 사람도 많더군요. 자기 소유 건물이 있어서 임대수입만으로도 생활을 충분한데 집에서 놀면 뭐하냐는 생각이 지원한 사람이 있더군요. 고등학교 교감, 공무원 국장, 육군 장교 출신도 있고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다행히 그때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합격해 경비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경비원을 초기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억울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가면 달리할 것도 없으니 그러지도 못했다. 죽을 맛이었다. 경비원 생활하면서 힘든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용역회사 횡포 심해요. 간혹 나쁜 주민이 와서 억지 부리고 몰상식하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할 때 주민들과 마찰이 잦아요. 재활용 안 되는 쓰레기를 잔뜩 담아 와서 억지 부리기도 합니다.”

자신이 경비원이 된 이후 낙엽과 하얀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아내가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낙엽이건 눈이건 제가 다 치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맘 놓고 좋아할 수가 없대요. 그런 집사람을 보면, 내 맘도 짠합니다. 저도 물론 낙엽이나 눈을 쓸 때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온몸이 쑤시고 아프죠.”

나의 직업은 경비원, 그리고 한 가정의 아버지

올봄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취직을 못 해 걱정이라는 A 씨. 아들에게 미안해 취직 얘기는 물어보지도 못한다. 그래도 마음은 어서 빨리 아들이 취업했으면 한다고. 서로 눈치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여유 있는 삶을 꿈꾼다고 했다.

“이제 점점 나이도 먹고 힘도 달리고요. 사실 그만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집사람과 같이 여행 다니고 느긋하게 살고 싶어요. 맛집도 다니고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그 안을 들여다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다를 게 없다고 말이다. 주민이 경비원에게 ‘갑’질을 해대는 뉴스가 가끔 들린다. 주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급료를 지급하면 ‘갑’이 될 수 있을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아파트 단지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낯선 자의 방문 제한, 주차문제, 택배 보관, 이사 들고 날 때, 이웃 간의 소음문제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일을 주민 대신하는 이가 경비원이다. 주민 편의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인사’ 한마디 건네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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