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8

서울에서 만나는 파리의 시선 ‘퐁피두센터’

입력 2026-08-08 06:00

퐁피두센터 한화 개관전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장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
▲전시장 전경 (ⓒ퐁피두센터 한화 )
파리에서 서울로, 퐁피두가 오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가 6월 4일 서울 여의도에 문을 열었다. 파리에 위치한 퐁피두센터는 피카소와 브라크, 마티스 등 20세기 현대 미술을 이끈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한 세계적인 미술관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마침 파리 본관이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가면서 이제 파리까지 가지 않아도 주요 소장품을 서울 도심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 큐비즘의 탄생

개관전으로 마련된 전시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은 퐁피두센터 소장품을 중심으로 큐비즘이 태동한 1907년경부터 1920년대까지의 흐름을 조망한다. 코리아 포커스를 포함해 총 54명의 작가, 112점의 작품이 소개되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 드로잉, 디자인, 아카이브 자료까지 함께 만날 수 있다. 큐비즘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물을 한 방향에서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대신, 여러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한 화면에 다시 구성한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실험에서 시작된 큐비즘은 형태를 해체하고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며, 미술이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세잔의 영향을 받은 초기 실험, 분석적 큐비즘, 색채와 리듬을 강조한 오르픽 큐비즘, 대중 전시를 통해 확산된 살롱 큐비즘, 전쟁 이후 변화한 양식 등 총 8개 섹션을 따라 큐비즘의 확장 과정을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관람객은 큐비즘이 단지 대상을 조각내는 미술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바꾼 시각의 혁명이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파리의 혁신, 한국 미술과 만나다

특별 섹션 ‘코리아 포커스: 모던 아방가르드를 향한 꿈의 지도’도 놓치기 아깝다. 20세기 전반 한국 근대 예술이 형성되는 시절, 파리는 당시 한국 화가들에게 새로운 예술을 꿈꾸게 한 상징적인 의미였다. 김환기, 유영국, 박래현 등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큐비즘과 서구 아방가르드가 한국적 감각과 만나 어떻게 새롭게 발전해나가는지 보여준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선

큐비즘 전시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 앞에서 정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조각의 시선으로 어떻게 다시 만들어지는지 천천히 따라가 보면 좋다. 정면과 측면, 안과 밖, 움직임과 정지가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질 때, 익숙했던 세계가 조금 낯설게 열리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큐비즘이 건네는 새로운 시선. 이번 개관전은 한 미술관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한다. 어쩌면 예술은 익숙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주요 작품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흉상’(국세실 기자)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흉상’(국세실 기자)

파블로 피카소, ‘여인의 흉상’, 1907, 캔버스에 유채

피카소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을 탄생시킨 인물이다. ‘여인의 흉상’ 앞에 서면 익숙한 얼굴이 낯설게 다가온다. 아프리카 가면에서 영향을 받은 강렬한 눈, 날카롭게 꺾인 코, 평면처럼 압축된 얼굴은 인물을 아름답게 묘사하려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벗어난다. 같은 시기에 제작된 ‘아비뇽의 처녀들’(우측 전자패드 속 이미지 일부)과 맞닿아 있는 이 작품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큐비즘의 출발을 알린다.

▲조르주 브라크, ‘레스타크의 고가교’(국세실 기자)
▲조르주 브라크, ‘레스타크의 고가교’(국세실 기자)

조르주 브라크, ‘레스타크의 고가교’, 1908, 캔버스에 유채

1907년 피카소를 만난 브라크는 형태와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작품을 본 비평가가 “작은 큐브(Cubes)로 이루어졌다”고 평한 것이 훗날 ‘큐비즘’이라는 이름의 계기가 됐다. 이 작품은 풍경화지만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고가교와 집, 언덕은 실제 공간이 아닌 기하학적인 면들이 맞물린 구조처럼 보인다. 풍경을 있는 그대로 옮기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를 다시 세우려는 브라크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로베르 들로네, ‘파리의 도시’(국세실 기자)
▲로베르 들로네, ‘파리의 도시’(국세실 기자)

로베르 들로네, ‘파리의 도시’, 1910~1912, 캔버스에 유채

들로네는 색채와 리듬을 통해 큐비즘을 한 단계 확장한 새로운 추상 경향인 ‘오르피즘’의 대표 작가다. 커다란 작품 앞에 서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화면 중앙에는 고전 조각을 연상시키는 삼미신이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에펠탑과 근대 파리의 풍경이 겹겹이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 도시의 속도와 빛이 하나의 화면 안에 공존하며, 회화에도 시간과 움직임을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래현, ‘노점’(국세실 기자)
▲박래현, ‘노점’(국세실 기자)

박래현, ‘노점’, 1956, 종이에 먹

시장이라는 친숙한 풍경을 동양화 재료와 입체주의적 구성으로 결합한 박래현의 대표작이다. ‘노점’은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멀리서 보면 평범한 시장 풍경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물과 물건, 공간이 리듬감 있게 분해되고 다시 연결된다. 서구 입체주의를 그대로 모방하기보다 동양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큐비즘이 한국에서 어떻게 또 다른 조형 언어로 꽃피웠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퐁피두센터 한화(국세실 기자)
▲퐁피두센터 한화(국세실 기자)

퐁피두센터 한화

여의도 63빌딩 별관이 아쿠아리움 대신 빛을 담은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리모델링 설계는 루브르박물관 리노베이션, 인천국제공항 건축을 담당했던 프랑스 건축가 장미셸 빌모트가 맡았다. ‘빛의 상자’를 콘셉트로 한 반투명 이중 유리 외관은 낮에는 자연광을 전시장 안으로 스며들도록 하고, 밤에는 건물에서 발산된 빛이 도심으로 번져나가게 한다. 미술관 앞 이어지는 야외 정원은 잠시 머물며 한강의 풍경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됐다.

‘큐비스트: 시각의 혁신가들’ 전시 정보

기간 10월 4일(매주 월요일, 추석 당일 휴관)까지

관람 시간 10:00~18:00 (수·토요일 21시까지 연장 운영 )

장소 퐁피두센터 한화(서울시 영등포구 63로 50 63빌딩 별관 G 층)

무료 셔틀 지하철 1호선 대방역, 5호선 여의나루역·여의도역, 9호선 샛강역(평일에 한함)

관람 요금 2만 8000원(65세 이상 30% 할인)

전시 해설 주중 11시, 14시, 16시 / 주말 11시, 14시 / 전시실 내 QR코드로 오디오 가이드(무료)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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