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명함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것. 그 행위야말로 사람 관계의 시작이고 사회생활의 기본이다. 또한 명함은 그 주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내 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처럼 명함은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삶에서 나를 표현해주는 매개체로서 우직하게 존재해왔다. 누구의 명함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과 역사가 보이기도 하고, 명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깊이가 보이기도 한다. 네모 반듯한 명함 안에는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간직돼 있다. 그 자그마한 종이 한 장에.
글 양용비 기자 dragonfly@etoday.co.kr / 사진 이태인 기자 teinny@etoday.co.kr
명함은 개인의 역사다.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 거쳐 간 수많은 명함들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그만큼 명함에는 개인의 무수한 애환과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도 명함은 늘 미래를 지향했다. 첫 만남의 설렘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약속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명함은 자존심이다. 세월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명함에 실리는 무게감도 더해지기 마련이다. 무게감과 책임감이 더해진, 그리고 더 묵직해진 명함을 받는 것. 그것은 현실의 고달픔도 잊게 해주는 일종의 마약이자 삶의 낙이었다. 하지만 그런 명함을 잃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존심의 상실과 일맥상통하다.
퇴직 또는 은퇴 후 이런 경험을 겪은 신중년은 의외로 많다. 퇴직 후 직책과 소속이 없어진 명함 때문에 자괴감에 생채기가 난 경험 말이다. 또는 사용할 명함이 사라져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렸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에 투자하면서 살고 싶을 때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람을 만날 일은 무궁무진하다. 그때도 옛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쭈뼛쭈뼛 서 있을 것인가? 안 그래도 된다. 전략명함 코디네이터 AG브릿지의 유장휴(35) 대표와 새로운 명함에 미래를 담아 좀 더 생산적인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을 짜보자.
◇ 명함을 거울 삼자
퇴직, 은퇴 후 신중년의 가장 큰 고민은 명함에 넣을 직책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신중년은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일이나 직업에서 찾았기 때문에 이것을 상실할 때 자신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유 대표는 명함에 직책이 없어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신중년의 명함에 “직책이 아닌, 자신의 역할과 가치 그리고 미래를 담으라”고 얘기한다.
실제로 이렇게 은퇴 후 자신의 미래 청사진을 명함에 담아서 다니는 신중년도 늘고 있다. 예컨대 손자들이 자립을 잘할 수 있도록 이름 앞에 ‘손자 서포터’라는 역할을 넣는다든지, 신중년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는 꿈을 담은 ‘시니어 활동 응원가’, 주부라서 항상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싶다면 ‘밥상 코디네이터’도 좋다. 유 대표는 자기 PR의 시대와 맞물려 자신의 퇴직에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신중년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은 명함에 완벽히 정해진 직책이나 정보가 담겨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중년의 자신감을 잃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신중년이 직업의 일선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직책을 담으려고 하면 부담감만 커질 뿐입니다. 대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담는다면 부담감은 줄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명함을 주는 행위를 함으로써 그 명함에 명시한 역할과 미래를 닮아가기 위한 책임감을 스스로 가지게 됩니다. 일종의 동기 부여가 되는 셈이죠.”
글로벌 섬유 회사 고어(Gore)는 직원들의 명함에 직책을 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직책에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둔다는 뜻이다. 명함은 이와 같다. 명함에 어떤 얼굴, 어떤 역할을 넣느냐에 따라 자신의 미래도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다.
◇ 3W를 고민하라!
“무턱대고 고민 없이 명함을 찍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Want)과 잘하는 일(Well), 그리고 좋아하는 일(Wish)을 고민해보고 이 세 가지가 모두 맞물릴 때 좋은 명함이 나오게 됩니다. 이제는 사회가 원하는 명함이 아닌 진정 나를 위한 명함을 만들 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이야말로 진짜 내 인생을 만드는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중년의 알 수 없는 상실감은 사라진 목표와 그것을 추진해야만 하는 동기 부여가 없는 것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실감은 목표를 다시금 설정해, 그것을 이뤄내야만 하는 동기 부여를 해줌으로써 해소할 수 있다. 그 역할 또한 명함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그러나 자신의 3W를 찾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바쁜 일상에 쫓겨 자신을 꿰뚫
어 볼 시간이 적었던 탓이다. 그래서 유 대표는 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사소한 일상을 먼저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혹은 자신의 내면을 먼저 통찰하라고 덧붙였다. 목표 설정에 있어 큰 그림을 그리고 원대해지면 그것을 실현할 수 없어지거나 뜬구름만 잡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을 경청하는 것, 응원하는 것 등 사소한 것에서 자신의 강점을 찾아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다고 유 대표는 강조한다.
“이제부터 만드는 명함은 목표를 달성하는 재미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자신이 놀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생각하고 고민하시면 더 좋은 자신만의 미래 명함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 뺄 것은 빼고, 스토리를 담아라
유 대표는 좋은 미래 명함을 만들기 위해 3가지를 조언했다. 첫 번째는 명함의 본질에 맞게 목적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명함은 속된 말로 ‘찌라시’라는 것이 유 대표의 생각이다. 아직 현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비즈니스를 위해 명함을 사용한다면 간결해야 하고, 친목을 위한 것이라면 명함에 스토리를 풀어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명함에 많은 것을 담지 말라는 것이다. 명함에 필요 없는 자격증이나 이력들을 넣는 경우가 있는데 미래 명함에는 과감하게 쳐내라는 것이다. 유 대표는 미래 명함의 생명은 “양보다는 질”이라고 표현한다. 뺄 것은 최대한 빼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과 이름이면 충분해요. 거기에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브랜드와 연락처 SNS 정도만 담으면 훌륭합니다.”
세 번째로 설명한 것은 뒷면에 대한 것이다. 그는 명함의 뒷장에는 스토리를 넣으라고 말한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넣거나 키워드를 넣어보세요. 또는 버킷리스트나 이뤄 내야 할 미션을 넣으셔도 됩니다. ‘내가 앞으로 이런 것들을 할 것이니 지켜 봐 달라’는 뜻이죠. 아마 남들이 여러분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캐릭터도 뚜렷해질 테니 말입니다. 뚜렷해진 캐릭터, 그게 곧 당신의 본 모습입니다.”
▲ 명함에 직책을 넣는 대신 자신이 닮아가고자 하는 미래 모습을 담은 명함.
명함은 자존심이다. 세월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명함에 실리는 무게감도 더해지기 마련이다. 무게감과 책임감이 더해진, 그리고 더 묵직해진 명함을 받는 것. 그것은 현실의 고달픔도 잊게 해주는 일종의 마약이자 삶의 낙이었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산과 물의 기운이 좋아 전국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했다해서 ‘박사마을’로도 유명한 이곳에 ‘친환경 토마토 박사’ 5인조가 떴다. 친환경 토마토만큼은 전국 어디에 내놔도 자신 있다는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성원경(61), 김남규(61), 김선복(58), 허우석(40), 박지훈(31)씨. 독수리 5형제를 떠올리기엔 나이 차가 꽤 나는 이들은 일에서만큼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한다. 세대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간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요즘. 이와는 반대로 세대차가 나기 때문에 더 배울 것이 많고,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준다는 그들을 만나 보자.
3060 청장년 유니온 "함께라면 자신 있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작목반장인 장년 3인방은 친환경 토마토 재배분야를, 청년 2인방은 유통분야를 전적으로 맡고 있다.
본래 산양삼 재배와 유통을 해왔던 두 청년은 토마토 재배에 대해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고, 토마토 농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작목반장들은 애써 수확한 토마토를 제 값어치을 받지 못하고 팔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조금씩 아쉬운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는 협업을 시작하게 됐고, 질 좋은 상품과 실속 있는 유통망을 갖춘 완전체를 이루게 됐다.
각자 가지고 있는 능력은 최대로 활용하고 부족한 부분은 공유하며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갖춘 그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그야말로 천하무적 5인조 부대가 탄생한 것이다.
30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 세대차가 주는 의미
함께 일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다섯 명 모두 ‘믿음’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뭘 믿고 함께 하는가. 김남규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젊음과 열정’이라 답했다. 그는 “그냥 젊은이들 하는 거 보면 열정이 넘치잖아. 그 열정을 사는거지 뭐. 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젊음과 열정 그 자체가 믿음이고 신뢰인거야. 아직은 우리가 시작단계지만 그런 것들이 원동력이 되고, 서로를 믿게 하니까 그 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라고 말했다.
막내 박지훈씨는 그들의 ‘경험과 삶의 지혜’에 신뢰가 간다고 이야기했다. “그분들께서 30년 넘게 해오신 농사일에 대한 경험과 세월은 부정할 수 없죠. 어쩌면 제가 살아온 나이보다 더 오랜 시간 이 일을 하셨는데 어떻게 믿음이 안가겠어요. 그동안 축적해오신 노하우와 삶의 지혜가 우리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저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죠.”
그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이 주는 ‘열정’과 앞서나갈 수 없는 연륜이 주는 ‘경험’을 교류하며 30년을 뛰어넘는 ‘세대차’를 갈등의 씨앗이 아닌 믿음의 싹으로 틔우고 있었다.
함께라서 좋은 이유
1. 역할분담으로 대량생산 유통가능 (대형 거래처 납품량 소화 가능)
2. 우리들만의 토마토 재배·판매 가능 (자체 브랜드화)
3. 개인 농사꾼이 아닌 농업공동체 형성을 통한 위험부담 최소화
4. 농사 전문가는 오직 농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어 질 좋은 상품을 수확
5. 체계적인 시스템이 상품의 질을 높여주니 재구매율은 점점 증가
친환경을 고집하는 이유
“첫째로 내 몸에 좋아.” 김선복씨가 친환경을 택한 이유다. 그는 “처음엔 농약안치고 하려니 수확량도 적고 남는 게 없으니 이게 되겠나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이 길이 더 편한길이더라”며 “아직 소비자들이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식이나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까 애써 길러 내놔도 농약친 토마토랑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어. 친환경이라 모양이 좀 안 예쁘게 나오면 그보다 덜한 취급도 받는데, 그게 이 일을 고집하면서도 가장 속상하지”라고 털어놨다.
토마토 밭에서 연신 토마토 입을 매만지며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던 성원경씨도 김씨와 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이렇게 토마토가 병해를 입어도 친환경이니까 농약이나 화학약품은 안 쓰고 있는데,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토마토가 병들어가는 걸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니 그게 정말 안타까워”라며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농약은 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작목반장들의 고충을 덜어주는 것 또한 유통 전문가들의 몫이다. 그들은 “그저 농사만 열심히 지어서 도매상에 넘기는 것이 아니라 저희 작목반의 땀방울과 정성을 박스에 담아 다양한 판매처를 통해 브랜드를 직접 소개하고 판매하고 있어요”라며 “그냥 토마토가 아니라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다르게 재배한 상품인지 먼저 알리고 소비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이죠”라고 말했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친환경 토마토 유통 원칙
1. 일차적으로 최상의 품질을 약속한다
2. 최상의 신선도를 위해 발송 당일 수확을 원칙으로 한다
3. 중간 유통과정 생략으로 최고의 품질의 토마토를 착한 가격에
4. 배송비(택배비)는 무조건 무료배송 (배송비가 붙거나 착불일 경우 상품의 이미지 또한 좋지 않기 때문)
5. 박스무게를 제외한 실 중량으로 정직하게 포장판매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이 바라보는 미래
“자연의 힘으로 키워낸 친환경 토마토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맛있게 먹고, 더 건강해졌으면 하는 거지.” 작목반의 바람은 한결 같았다. 정직한 마음으로 땀 흘려 키워낸 토마토를 많은 사람들이 알고 먹었으면 하는 것. 때문에 그들은 매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머리를 맞대고 앉아 어떻게 재배하고 어떻게 판매할지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고.
김선복씨는 “이렇게 하면 홍보가 잘되고 잘 팔릴 것 같다라고 상상하는 것들은 많은데 우리같이 나이먹은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잖아. 근데 젊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같이 고민하고 방법도 알려주고, 또 직접 진행해 주니까 큰 도움이 되지”라며 매번 회의를 통해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내고 함께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허우석씨는 본래 하고 있는 산양삼과 친환경 토마토를 접목시킨 ‘프리미엄 토마토’ 생산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산양삼 원액을 관주해 산양삼의 사포닌 성분이 토마토에서 나오도록 시험재배해 성공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상품화하기엔 풀어야할 숙제들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죠”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새로 개발되는 신품종들도 다른 농가들보다 빨리 시험재배를 통해 다양한 토마토를 소비자가 각각의 입맛에 맞게 구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며 토마토뿐만 아니라 아스파라거스도 지금의 시스템으로 재배와 유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귀농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들이 농담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농촌에서 버는 돈이 웬만한 대기업 월급쟁이 보다 낫다”라고 할 정도로 농촌은 많은 이들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꿈에 부풀어 무턱대고 귀농을 했다간 낭패보기 일쑤다.
10년 전, 군대 전역 후 21살부터 농사일을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대표명함을 꿰찬 박지훈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저희 농장에 귀농을 꿈꾸시는 분들이 견학 오시면 하는 이야기가 고추도 심고 오이도 심고 쌀 농사도 조금 짓고 산양삼도 심어보고 싶다고 하세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시작하는 건 좋지 않죠. 한 가지만 생각하고 계획하시는 게 좋아요. 귀농해서 첫해 농사는 가까운 지인분들에게 먼저 판매하면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시작이 반이니 두려워 마시고, 항상 ‘잘 될거야’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