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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의 겨울, 눈꽃 여행은 남다르다
- 유난히 겨울이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그중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태백시다. 고원의 도시 태백의 겨울은 지루할 만큼 길다. 겨울밤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밤새 사락사락 눈이 내리는 날, 석탄가루에 뒤범벅된 도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흰 설원에 감싸인다. 설원은 고산 밑에 납작납작 엎드려 있는, 지붕 낮은 집들의 때 묻은 몸을 잠시 숨겨준다. 글·사진 이신화(on the camino의 저자, www.sinhwada.com) 태백산 당골 눈축제장에서 신나게 놀고 광산 갱도 체험 해발 600m에 위치하고 있는 태백시는 기온이 타 지역보다 낮아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도시다. 해마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에서 눈축제(1월 22일~31일)가 열린다. 당골 축제장에 화려한 조명이 켜지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미 대내외적으로 많이 알려진 축제여서 해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축제장 주변에 만들어진 눈 조각품 등은 눈요기와 볼거리를 주고 다양한 공연은 흥을 돋워준다. 개썰매와 스노모빌 썰매 등 체험거리도 많아 재미가 쏠쏠하다. 거기에 1997년 5월 문을 연, 동양 최대의 석탄박물관은 꼭 찾아봐야 하리. 태백시는 1980년대 후반까지 번성했던 탄광도시였다. 그러다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사업이 시행되고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석탄박물관에서는 잊혀가는 그 시절을 상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지하 체험갱도관은 생동감이 넘친다. 전시관을 다 보고 지하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실제 탄광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대형 디오라마(모형도)로 갱내 작업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태백산 설경 보면서 천제단까지 산행하기 진정한 설경을 감상하고 싶다면 태백산(1567m) 산행을 감행해야 한다. 코스는 당골매표소와 백단사, 유일사, 사길령 등이 있다. 최단 코스는 백단사나 유일사 코스다. 겨울 산행이 결코 쉽지 않지만 주목 군락지의 설화나 일출 등을 보기 위해 찾아든 등산객들의 수없는 발자국이 찍힌다. 태백산 9부 능선인 1500고지에 오르면 망경사가 있다. 월정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나중에 복원해 오늘에 이른다. 망경사에는 물을 통해 바다 용왕과 교통한다는 용정이라는 우물이 있고 천제단(중요민속자료 제228호)으로 가는 길목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에 와서 태백산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흐른다. 망경사에서 조금 더 오르면 산정 허허벌판에 있는 천제단을 만나게 된다. 천제단 주변에는 죽어 천년, 살아 천년이라는 주목 군락지가 있다. 주목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이나 설경 감상은 매년 1월에 한 번은 해봐야 할 일이다. 철저한 등산 채비는 필수다. 고생대자연사박물관의 삼엽충과 구문소 풍치 감상하기 2010년에 개관한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033-581-3003, 태백로 2249, www.paleozoic.go.kr)이 있다. 이곳에 박물관이 생기게 된 것은 주변에 다양한 고생대 퇴적 침식지형과 삼엽충, 완족류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관심 없으면 화강암인 듯 생각하기 쉽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질이 매우 독특하다. 고생대의 바다가 융기해서 생겼기 때문이다. 문화해설사가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며 고생대부터 살아온 삼엽충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박물관 가까이에 태백 8경으로 손꼽히는 구문소(천연기념물 제417호)가 있다. 낙동강 상류 황지천의 물이 머물렀다 가는 곳으로 바위에 구멍이 나고 소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산을 가로지르는 강이다. 고생대에 석회암이 용해되어 생성된 석회동굴은 볼 때마다 신령스럽다. 주변의 얼어붙은 마당소, 삼형제폭포 등의 겨울풍치도 나름 볼만하다. 태백시내에선 낙동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둘레 100m가량의 ‘황지연못’도 가볼 만하다. 상지, 중지, 하지로 구분돼 있는데 연못에선 하루 5000톤가량의 물이 자연 용출된다. 상장동 벽화마을과 샘터마을 태백시의 또 다른 볼거리가 상장동 벽화마을이다. 이 마을은 1970년대 광부만 4000여 명이 거주했던 국내 대표적인 광산 사택촌이었다. 저탄장으로 사용된 문곡역을 중심으로 탄가루가 날리고 검게 그을린 광부들의 막장 생활을 달래는 대폿집이 줄지어 있던 번화가였다. 하지만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시행으로 폐광이 늘면서 젊은 광부들이 하나둘 떠나 지금은 400여 명의 주민들만 남았다. 지붕 낮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좁은 골목이 이어지는, 겉으로 보기엔 태백시에 있는 자그마한 시골마을과 다를 바 없다. 마을 골목 벽마다 크고 작은 70여 점의 작품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과 이야기, 사진 등을 통해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검은 황금’으로 불렸던 석탄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지나가던 누렁이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전설 속의 개를 형상화한 ‘만복이’가 눈길을 끈다. 그 외에도 철암동에 가면 탄광역사촌이 있다. 철암역 앞에 있는 역사촌은 옛 건물을 그대로 살려, 탄광 시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작나무 숲과 검룡소 겨울 트레킹 태백산 산행을 못했다면 검룡소로 대신해보자. 검룡소(검룡소길) 주차장에서 왕복 2.6㎞ 정도만 걸으면 된다. 곧게 뻗은 낙엽송 군락지 숲은 한겨울에도 빛이 난다. 검룡소에 이르는 길은 나무 데크가 연결한다. 데크에서 소(沼)를 바라보면 된다. 약 20m 둘레의 암반에서 늘 9℃의 수온을 유지하는 물이 하루 2000~3000톤씩 솟아오른다. 하지만 눈으로는 용출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래도 이곳의 의미는 크다. 검룡소는 한강의 발원지다. 임계를 지나 정선, 평창, 단양, 충주, 양평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데 36개의 크고 작은 도시들을 지나며 12개의 하천과 만나 한강에 이르게 된다.
- 2016-01-21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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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비틀스가 살려낸 영국 리버풀, 올드 팝 광팬들 줄 이어
- 필자의 ‘버킷리스트 여행지’ 중의 한 곳은 영국의 ‘리버풀’이었다. 리버풀엔 ‘비틀스’가 있기 때문이다. 통기타로 번안 곡들을 들으며 젊은 시대를 보낸 사람들. 소위 말하는 ‘팝송 세대’들은 여전히 올드 팝을 들으면서 스멀스멀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감성에 젖곤 한다. 젊을 적 추억은 팝송 음률에 남아 첫사랑을 그리워하듯, 명치끝을 아프게 꼭꼭 찌른다. 비틀스 노래를 들으며 ‘지역 맥주’를 마시던 ‘캐번 바’를 내 어찌 잊으리오. ◇ 매튜 골목에서 만나는 비틀스 첫 무대 캐번 클럽 영국 북서부의 맨체스터(Manchester), 리버풀(liverpool)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은 축구 때문이다. 우리나라 유명 축구선수들이 이 도시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 리버풀은 맨체스터를 거쳐 가게 된다. 리버풀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Liverpool and Manchester Railway) 주변의 대로변 옆으로는 오래된 건축물들이 열 지어 있다. 세인트 조지 홀(St. George's Hall)을 비롯해 엠파이어 극장, 아트 갤러리, 도서관 등. 특히 빅토리아 여왕(1819~1901년)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인트 조지 홀의 규모(51m 길이, 22m 넓이)가 커서 눈길을 잡아끈다. 1838년에 초석을 마련해 1854년에야 완공된 최초의 네오클래식 건물은 법정과 콘서트홀이라는 목적으로 지어졌다. 건물 정면에는 빅토리아 여왕과 부군인 앨버트 공의 동상과 참전 기념비가 서 있다. 이 건물들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활황을 기억케 한다. 실내에는 영국에서 가장 큰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1871년)과 12개의 동상이 있다. 현재는 각종 전시회, 연회, 축제 등의 행사장으로 이용된다. 무엇보다 리버풀을 찾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게 하는 곳은 ‘비틀스(The Beatles)’에 대한 흔적이다. 도심 곳곳에서 비틀스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존 레논의 이름을 딴 공항, 폴 매카트니가 살았던 집(20 Forthlin Road), 애비 로드와 스트로베리 필드 등 그들 노래에 영감을 준 장소들, ‘비틀스 스토리(www.beatlesstory.com)’를 비롯한 여러 기념관들. 그중에서 여행자들이 ‘비틀스 일번지’로 찾는 곳은 매튜거리(Mathew street)다. 매튜 골목에는 5~6개의 퍼브와 클럽이 뒤섞여 있다. 숨은 그림 찾듯이 비틀스를 기념하는 조형물들을 찾아내면서 걷다 보면 골목 끝자락에 비스듬히 서 있는 존 레논 동상을 만난다. 비틀스가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는 캐번 1클럽(The Cavern Club) 앞이다. 리버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네 명의 청년이 만들어 낸 비틀스. 존 레논(John W.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 등. 비틀스는 이곳에서 근 2년간(1961년~63년) 292회 공연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첫 번째 클럽이 클래식하다면, 동굴 형태로 된 제 2클럽은 춤이 함께 어우러져 더 왁자하다. ◇ 매일 클럽에서 울려 퍼지는 비틀스 음악 먼저 비틀스가 첫 무대에 올랐다는 캐번 1클럽의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온통 비틀스의 흔적으로 장식한 인테리어. 실내에는 작은 무대가 있고 한쪽에는 바 카운터와 초라한 의자들이 놓여 있다. 유행 지난 촌스러움, 칙칙함, 퀴퀴함이 함께 아우러진다. 대낮부터 찾아온 손님들은 가볍게 잔술을 마신다. 신 맛과 정제되지 않은 맛을 내는 지역 생맥주는 마실수록 묘하게 매력적이다. 해가 어둑해지면 어김없이 통기타를 두드리는 무명 가수의 라이브 무대가 펼쳐진다. 퇴색한 컨트리 가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의 주인공인 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를 닮은 듯한 무명 가수가 이미 귀에 익숙한 팝송을 부른다. ‘렛 잇 비(Let It Be)’, ‘러브 미 두(Love Me Do)’, ‘이매진(Imagine)’ 등등. 가수는 힘겨운지 간간이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노래를 불러 젖힌다. 흥에 겨운 손님들은 무대에 나가 음률에 맞춰 막춤을 춘다.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는 매튜거리의 밤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새겨진다. 무수한 사연과 이야기를 남긴 비틀스 멤버 네 사람의 삶을 일일이 조명할 수는 없다. 단 놀라운 것은 이들은 악보를 볼 수 없는 문맹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수한 히트곡을 만들어 낸 신화 같은 존재. 그들을 더 이해하려면 바닷가 근처에 있는 ‘비틀스 스토리’를 찾으면 된다. 애비로드 스튜디오와 캐번클럽, 스타클럽 등의 명소들을 재현해 놓았다. 또 비틀스가 출연했던 뮤직 비디오 등의 영상자료를 비디오로 볼 수 있다. 비틀스의 오리지널 무대 의상과 존 레논이 연주했던 피아노, 그들이 출연했던 영화 등 다채로운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세기의 뮤지션 비틀스는 리버풀을 늘 빛내고 있다. ‘리버풀의 비틀스’가 아니라, ‘비틀스의 리버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도시 곳곳에는 이 전설적인 밴드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영화 를 보면 좋다. 13명의 배우들이 영화 스토리에 걸맞게 비틀스 음악을 잘 매치해 놓았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여배우의 전 애인으로도 알려진 짐 스터게스의 첫 출연작이기도 하다. 또 ‘비긴즈-노 웨어 보이(Begins-Nowhere boy, 2009)’에서는 존 레논의 삶을 조명해주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비틀스, 오노 요코 등과의 관계를 이해하게 한다. 올해 5월, 73세의 노장 폴 매카트니는 내한공연을 했다. 비록 공연은 보지 못했지만 그의 전설은 이어졌다. 이구동성으로 ‘판타스틱’을 외쳐댔다. 라는 다큐영화를 보면 2년 전의 폴 매카트니가 출연해 녹음하는 장면이 나온다. 비틀스라는 그룹은 오래전에 흩어졌지만 단 한 명의 뮤지션이 남아 그 전설을 이어가고 있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리버풀 클럽에서 만취하는 것은 절대 금기사항이다. 클럽 앞에는 술 취한 사람들을 정리, 통제하는 지킴이들이 있다. 그들은 ‘필자처럼 좋은 사람(?)’만 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고 내게 말했다. ◇ 해양 무역도시의 옛 잔상들, 노예 거래 리버풀은 바닷가가 있는 항구 도시다. 오래전부터 해양 무역 도시였고 20세기 초, ‘대영 제국 제2의 도시’로 불렸다. 그러다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심히 파괴되었다. 특히 리버풀은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영국 내 다른 어떤 도시보다 심한 폭격을 받았으나 전쟁 이후 재건 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래서 항구 주변은 휘황한 현대적인 건물이 대부분이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버트 독(Albert Dock)이 있다. 이 건물에는 머시사이드 해양 박물관(Merseyside Maritime Museum), 국제 노예박물관(International Slavery Museum),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등의 명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 노예박물관이 관심을 끈다. 흑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오래전, 이 항구에는 가나, 자메이카 인 등 무수한 노예들의 거래가 이뤄졌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다. 국제노예박물관을 둘러보면, 죄의식조차 없던 그 시절의 영국민들의 잔인함이 떠올려진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흔적들은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영국은 1807년 노예무역을 폐지했다. 관련된 많은 영화, 다큐들이 있지만 최신작이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면 그때의 잔인성과 몰인간적인 영국 귀족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에 출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라는 현재 유명 배우의 출연 계기가 독특하다. ‘컴버배치’라는 성씨는 카리브 해 섬나라에서 노예를 부렸던 조상의 흔적이었다. 당시 바베이도스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며 노예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에이브러햄 컴버배치(1726~1785년)가 그의 조상이다. 베네딕트의 어머니인 여배우 완다 벤담은 노예제 보상 피소를 우려해 본명으로 배우활동을 하지 말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속죄하는 의미를 담아 이 영화에 적극 출연했다. 에서는 선량한 백인 윌리엄 포드로 분했다. 또 영화로 익숙한 타이타닉호도 리버풀과 무관치 않다. 타이타닉 호는 영국 사우스햄튼(1912년 4월 10일)에서 출발해 뉴욕으로 항해하다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초대형 여객선. 대서양 횡단여행의 시대를 개척하기 위해 건조된 이 배의 공식항구는 리버풀이었고, 승무원과 승객의 상당수도 리버풀 사람들이었다. 타이타닉호의 탄생과 침몰 및 각종 배의 모형을 전시한 곳이 해양박물관이다. 해질 무렵, 리버풀 대성당(Liverpool Cathedral)을 향한다. 영국 국교회의 성당으로는 세계 최대의 크기다. 20세기에 만들어진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탑 위로 올라가 바라본 리버풀 도심은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 성냥갑처럼 작아 보이는 건물들. 그곳에서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리버풀을 떠나면 다시 오기 어려운 것을 알기에 그날 바라본 낙조는 유난히 쓸쓸했다. ◇ Travel Tip - 현지 교통 정보 런던에서 지방 이동은 특급기차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서 익스프레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기차는 예약하지 않으면 버스보다 가격이 몇 배나 비싸다. 영국 대표 음식들 영국의 아침 식사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양이나 메뉴가 풍성하다. 영국인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으로는 샌드위치와 피시 앤드 칩스를 들 수 있다. 카드놀이를 좋아했던 샌드위치 백작이 카드놀이를 하면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고안해 냈다는 샌드위치는 영국인의 일반적인 점심 메뉴다. 시차 우리나라보다 9시간 늦다. 3월 마지막 일요일부터 10월 마지막 일요일까지는 서머타임으로 8시간 느리다. 전압 다른 유럽권역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꼭 어댑터가 필요하다. 표준전압은 230/240V, 50㎐. 플러그는 발이 3개 달린 BF 타입. 화폐 단위 파운드를 이용한다. 연계 도시 여행 시작을 런던에서 했다면 리버풀을 거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 에든버러(Edinburgh)로 가면 된다. 글래스고는 공업도시이고 에든버러는 옛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고도(古都)다. 특히 에든버러는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주 멋진 도시다. 추천 스코틀랜드 산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 : 스카치위스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 그중 오직 맥아의 과정을 거친 보리 한 가지로 만들어지며 동일한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싱글몰트위스키(Single Malt Whisky)가 최고다. 현지인에게 추천 받은 브랜드로는 Glenfiddich, Jura, Talisker가 있다. 특히 탈리스커는 한국인 술 마니아에게 큰 인기다. 맥주는 이니스 앤 건스(innis & gunns)가 맛있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5-11-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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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투어] 용문산 용문사, 만추 여정 느끼기 제격
- 용문사 가는 도로변,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도로 양 편으로 길게도 이어진다.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만추의 여정이 가득한, 휘어진 길. 그 뒤로 아스라이 옛 추억 한 자락이 떨어지는 낙엽 위로 오버랩된다. 형형색색으로 변한 산야 속에 유난히 노란 단풍잎이 눈을 시리게 한다. 이렇게 도로변에 은행나무를 심어 놓은 것은 용문사에 노거수 은행나무가 성성하게 버티고 있음을 알려주려 함이었으리라. ◇ 단풍 든 한적한 산길에서 만난 정지국사부도 용문사의 가을은 화려하다. 해마다 이곳의 아름다운 가을을 만나기 위해 많은 행락객들이 찾아든다. 주차비(소형 3000원)와 입장료(성인 2000원)를 내고부터는 누구나 걸어야 한다. 입구 쪽에 단풍 든 공원 앞으로 2007년에 개관한 양평 친환경 농업박물관(용문면 신점리 508-10, 070-7715-3796, http://sam.go.kr)이 있다. 옛 성루를 연상케 하는 한옥 모양의 박물관 앞으로 분수가 솟구친다. 유치원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 눈 속에는 감성이 많이도 묻어 있는 듯하다. 실내에는 양평역사실과 친환경농업실이 있고 사찰요리를 만들어보는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주변의 공원에는 아이들 취향인, 귀여운 조형물과 시비 등이 많이 눈에 띈다. 사자상 양 귀 쪽으로 수도꼭지를 달아 놓은 모습도 해학적이다. 다리를 건너면 일주문이지만 이번 여행길에는 곧추 정지(正智)국사부도 팻말(0.5㎞)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큰 도로와는 달리 한적하다. 아직 걸음이 서투른 유치원생들과의 눈높이 대화가 싱그럽다. 부도까지 올라가야 하는 길목은 붉은 단풍이 에워싸고 있다. 우선 정지국사탑비를 만난다. 비문은 권근이 지은 것이라지만 글자가 거의 마모되어 버렸다. 80m 정도 오르면 정지국사부도(보물 제531호)가 홀로 있다. 정지국사(1324∼1395)는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고려 충숙왕 복위 1년(1332), 8세 때 장수산 현암사로 동진출가(童眞出家)했다. 바로 선을 닦다가 능엄경을 배워 깊은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공민왕 2년(1353)에는 무학과 함께 원나라로 가서 지공을 스승으로 한 나옹의 제자가 되었다. 1356년, 귀국해서는 은둔하면서 수행에만 힘썼다고 한다. 천마산 적멸암에서 “나는 간다”는 말을 남기고 법랍 54세로 입적했다. 제자 조안이 이곳에 부도와 비를 세웠고, 나라에서는 ‘정지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개풍 영천사의 대장경을 용문사로 옮겨 봉안했다고 한다. 사찰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에는 무수한 돌탑이 있다. 넓은 터에는 ‘산사무공(山寺武功)’이라는 손 글씨가 쓰여 있다. 무공 템플스테이가 펼쳐지는 곳이며 108탑을 조성하는 듯하다. ◇ 국내에서 가장 큰 용문사 은행나무는 단풍 들기도 더뎌 조금 더 내려오면 용문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경내의 건축물과 함께 단풍 든 용문산(1,157m)이 한눈에 조망되는데, 무엇보다 커다란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높이 50m, 둘레 12.3m)에 눈길이 머문다. 신라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 전해오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다. 수령이 대략 1100여 년에서 15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정미의병 때 톱을 댔더니 피가 났고, 불을 질렀을 때도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던 신목(神木). 노익장을 과시하듯 잎이 무성하고 주변 나무들보다 단풍도 더디 든다. 경내 약수에 목을 축이고 잠시 둘러본다. 이 사찰은 진덕여왕 3년(649)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진성여왕 6년(892)에는 도선국사가, 고려 공민왕 때는 나옹선사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했다. 세종 29년(1447)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했다. 조선 초기에는 절집이 304칸이나 들어서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다고 한다. 그 후 왜군이 전소시켰고 6·25 때도 파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을 비켜날 즈음, 찻집 솔내음, 다래향에서 맛있는 대추약차의 그윽한 향내에 취해보거나 용문산 정상까지 산행을 해도 된다. ◇ 상원사에 오르면 속세의 번뇌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 굳이 산행을 안 해도 된다. 찻길이 잘 나 있기 때문. 상원사 입구임을 알려주는 거대한 석불부터는 민가가 사라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차 한 대가 갈 수 있는 임도 운전이 아슬아슬하지만 잠시 차를 멈출 수 있는 공간이 반갑다. 시원한 물줄기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그곳에도 아름답게 단풍이 들었다. 물소리, 새소리, 단풍 숲까지 어우러져 사랑스러운 길이다. ‘무릉도원’이 여기구나 싶을 생각이 절로 드는 곳. 찻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누군가 정성스레 가꿔 놓은 텃밭, 작은 연못, 깎아지른 듯한 언덕에 잘 쌓은 돌담이 해사한 웃음으로 반긴다. 돌계단을 따라 경내에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3층석탑을 에둘러 대웅전, 선방으로 이용되는 청운당, 요사채인 제월당이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삼성각이다. 절 마당, 트인 공간 저 멀리 용문산 능선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상원사는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때 보우선사(1301∼1382)가 여기 머물며 정진했다고 전해온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조안선사가 중창했으며 무학대사(1327~1405)가 왕사에서 물러나 이곳에서 수행했다. 또 효령대군(1396~1486)은 원찰로 삼았다. 세조 8년(1462)에는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러 찾아왔다가 중창불사를 했다고 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다 순종 원년(1907)에 왜병이 이 지역에 집결해 있던 의병을 소탕하기 위해 불을 질러 법당만 남겨놓고 모두 타 버렸다가 1918년에 복원했으나 6·25 때 모두 불타 버렸다. 이후 1969년이 되어서야 주지 덕송이 초막삼간을 짓고 복원에 착수, 1970년에 주지 경한니가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원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사자석상을 닮았지만, 정확한 형태가 아닌, 예사롭지 않은 조형물이다. 땅속에서 나온 유물들을 한데 조합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또 사찰 내에는 철조 여래좌상(경기문화재자료 제119호)이 있다. 상원사 가까이 있는 윤필암은 고려 중엽 모덕이 창건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다. ◇ 보릿고개 연수리 정보화 체험마을의 돌담 따라 걷기 상원사에서 내려오면 ‘연수리 보릿고개 정보화 체험마을’을 만난다. 연수리는 연안마을과 장수마을을 합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예로부터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골’이라고 불렸다. 현재 보릿고개마을은 성공한 정보화마을이다. 다양한 체험거리는 계절에 맞추어진다. 봄에는 산나물 채취, 냉이 캐기를 하고 여름에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가을에는 밤 줍기와 등산을, 겨울에는 청국장 만들기 등의 체험을 한다.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돌담장에 형형색색으로 색칠해 볼거리를 준다. 사계절 체험객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슬로푸드 음식체험이 인기다. 보리떡 직접 만들어보기, 지천에 난 쑥을 직접 뜯어 쑥떡 만들기, 농민들이 재배한 국산 콩으로 두부 만들기, 잘 익은 호박으로 호박밥 지어 먹기 등. 체험객들이 늘 찾는, 성공한 체험마을이다. 마을을 비켜 용문으로 오는 동안에도 눈이 시리다. 곳곳에 멋지게 지은 전원주택들이 구슬처럼 박혀 이국적인 모습을 자아낸다. 그리고 경기도 영어마을 양평캠프도 있다. 실제 미국 버지니아의 마을을 재현한 이국적인 캠퍼스다. 그래서 와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이용되었다. 학습 목적이 아닌 관광객들은 6000원이라는 입장료를 감수해야 한다. 용문면에도 할 거리가 있다.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용문면 삼성리∼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또 용문장날(5일, 10일)도 볼만하다. 국철이 생기면서 장날은 제법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지역에서 나오는 가을 특산물을 파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Travel Tip - 주소 용문사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 문의 : 031-773-3797, http://www.yongmunsa.org 상원사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220-5, 문의 : 031-773-4634 보리울체험마을 문의 031-774-7786, http://borigoge.invil.org 기타 문의 양평군청 문화관광과 : 031-773-5101 - 찾아가는 방법 자가용 서울 → 6번국도 이용 → 마룡교차로에서 341지방도로로 좌회전 → 덕촌삼거리에서 직진 → 용문산 관광단지 주차장 대중교통 수도권전철 중앙선이 용문까지 운행(2009년 12월 개통)되고 있다. 용산역~용문역(05:20~22:58) 약 1시간 30분 소요. 용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용문사, 연수리행 등 각 방향 농어촌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문의 용문시외버스터미널 : 031-773-3100, 용문역 : 031-773-7788 - 추천 맛집 용문산 입구에 중앙식당(031-773-3422), 한마당식당(031-773-5678), 용문산식당(031-773-3434) 등 산채요리 음식점이 있다. 그외 용문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무쇠솥에 오랫동안 달여 낸, 국물 진하고 고기 넉넉한 고바우집(031-771-0702, 설렁탕)을 비롯하여, 이북식 만두가 맛있는 회령만두국(031-775-2955)이 괜찮다. 용문읍에 있는 강원식당(031-773-4459, 막국수, 묵채밥 등)도 괜찮다. - 주변 볼거리 용문산에는 용계, 조계골(신점1리)이 있다. 또 용문면에서는 레일바이크(031-775-9911, http://www.yprailbike.com)를 탈 수 있다. 2010년 5월 3일 개장되었고 용문면 삼성리에서 양평읍 원덕리까지 왕복 6.4㎞ 구간이다. >>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5-11-27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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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스위스는 가는 곳마다 ‘너무 좋아’
- ‘아름다움’은 지극히 주관적이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정의가 필요치 않은 것은 기본이 충만할 때다. 스위스의 전 지역에 대한 평가는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스위스는 가는 곳마다 ‘아! 너무 좋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 아름다움 속에서 살아온 덕분일까? 스위스 사람들은 여행객들에게 한결같이 친절을 베풀어 준다. 보드라운 속살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다가와 상대를 배려한다. >>글 이신화 여행작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베른에서 만난 아인슈타인 필자는 알프스를 기대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안시(Annecy)에서 국경을 벗어나 제네바(Geneve)에 도착한다. 제네바의 레만 호수에는 하늘 높이 분수가 솟구치고 있다. 롤렉스 간판들, 거리의 꽃시계 등이 시계의 나라임을 다시 인식시켜 준다. 주마간산으로 도심을 돌아보고 베른(Bern)으로 장소를 이동한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은 가을비에 촉촉하게 젖었다.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작다. 기차역 주변 말고는 인적도 뜸해 번잡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숙소에서 준 대중교통 프리 티켓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작은 소읍의 풍치를 걸어 다니면서 보면 된다. 베른은 스위스 최초로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구 시가지의 골목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가 이어진다. 베른 도시가 생성됐던 12세기 후반에 지어지기 시작해 16세기 중반에 완성된 건물들이다. 그 건물에는 저장고 형태의 반 지하 상점이 늘어서 있다. 엇비슷한 건물 형태에 잠시 길을 잃을라치면 그럴 때마다 이 도시의 시계탑이 랜드마크 역할을 해준다. 시계탑은 감옥탑 이전에 베른의 출입구 역할을 했던 곳. 매시 정각 4분 전, 곰들과 광대들이 나와 춤을 추는 시간. 그 즈음이면 관광객들은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 시계탑 아래로 버스들이 오간다. 그것 말고도 자꾸만 시선과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것은 다양한 테마로 만들어진 인형과 석조물이 아우러진 작은 분수들. 거기에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곰 형상들. ‘베른’이라는 이름 자체가 도시를 세운 체링겐 가문이 곰 사냥을 해서 시작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뉘데크 다리 건너편에는 곰 공원도 있다.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미공원 가는 길목이라서 으레 발길을 멈추지만, 왠지 어설프기만 한 곰 공원에 배시시 웃음 짓는다. 그 외 스위스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인 대성당(높이 100m)과 국회의사당 등이 포인트다. 욕심 없이 베른 시가지를 배회하다가 한 유명한 인물을 만난다. 아인슈타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많을 텐데 왜 베른에서는 거대한 아인슈타인 박물관을 만들었을까? 아인슈타인과 베른은 어떤 연계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취리히 공과대학을 다녔고 베른에 온 것은 직장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의 이력은 어느 곳에서나 많이 나오니까 생략하기로 하고 흥미로운 사적인 삶을 들여다보자. 아인슈타인은 취리히 공과대학 동창으로 상대성 이론 논문 작성을 거들었던, 첫 아내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했다. 그가 결혼해 살았던 아파트는 구 시가지에 ‘아인슈타인 하우스’로 남아 있다. 그런데 역사박물관에서 더 자세하게 아인슈타인의 사생활을 엿보게 된다. 그의 첫사랑은 물론이고 그가 사랑했던 마지막 사랑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오직 연구만 하는 ‘샌님’이라는 고정관념이 확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몇 명의 여자가 있었던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결혼생활 16년 만에 이혼했다. 이혼 사유는 아인슈타인의 간통이었다. 이혼 위자료는 아직 타지도 않은 노벨상의 상금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혼 후, 달랑 넉 달 만에 내연의 관계였던 사촌 엘자 뢰벤탈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바람기는 재혼 후에도 잠들지 않아 평생 비서와 유부녀, 소련의 여성 스파이 등 여러 명의 연인을 두었다. 더불어 그는 아이들도 살갑게 돌보지 않았다. 밀레바와 혼전에 얻었던 딸은 출생 이후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혼 후에는 두 아들과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둘째 에두아르트는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던 일을 평생 용서하지 않아 두서없는 원망의 편지들을 보내곤 했고, 결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아인슈타인은 1932년 히틀러 집권 3주 전에 아슬아슬하게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미국에서도 생활이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하여튼 유명인들의 ‘가십(gossip)은 오랫동안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젊은 처녀의 어깨’라는 융프라우 요흐에 올라 베른에서 기차로 툰(Thun)호수 - 스피에츠(Spiez) - 인터라켄(Interlaken)까지 4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 융프라우 요흐((Jungfrau Joch, 3454m)까지 오르려면 산악열차를 타야 한다. 시작점은 인터라켄의 동역(Ost)이다. 동역에서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까지 올라가 다시 열차를 갈아타면 북벽 아이거 바로 밑 동네인 클라이네 샤이덱(Kl Scheidegg, 2061m)에 멈춘다. 이곳은 융프라우 정상과 그린델발트(Grindelwald, 1034m)로 가는 열차가 두 갈래로 나뉘는 환승역이다. 만년설을 가득 덮고 있는 위풍당당한 아이거 북벽이 우뚝 서 있다. 설산을 눈앞에 두고 마을 길 따라 1~2시간 정도 트레킹을 즐긴다. 가까스로 오르내리는 산악열차와 넓은 초지에 펼쳐지는 야생화, 햇살과 시간에 따라 바뀌어가는 산 그림자, 그림 같은 집들, 작은 호수, 레포츠를 즐기는 사람 등. 그 아름다움의 매력은 군더더기 말이 필요치 않다. 이 마을을 비껴 융프라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악열차에 오른다. 아이거와 묀히의 암반을 뚫고 설치한 톱니바퀴 레일은 총 9.3㎞. 1896∼1912년 건설되었으며, 최대경사도 25도의 압트식(Abt-System)으로 오르는 데 50분이 걸린다. 열차를 내려서는 그저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레스토랑도 있고,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판매도 하고 한 조각 선물도 준다. 얼음궁전(Ice Palace)을 관람한 후 통로를 따라 나가면 900m 두께의 눈밭, 플래토(Plateau)에 도착한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스핑크스 전망대(3571m)가 있다. 북동쪽에는 묀히와 아이거, 남동쪽에는 알레치 빙하, 남쪽에는 알레치호른, 더 멀리에는 몬테로사 산이 있다.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기상 때문에 온전한 풍치를 보는 일은,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한다. 결국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클라이네 샤이덱 주변에 펼쳐지는 풍광과 그린델발트 마을을 에둘러 봤으니 충분히 행복한 여정이다. ◇007 촬영지, 쉴트호른의 길목 마을, ‘뮈렌’ 아름다워 융프라우보다 느낌이 더 좋은 곳은 쉴트호른(Schilthorn, 2970m)이다. 라우터브루넨(806m)을 기점으로 찾아가야 한다. ‘울려 퍼지는 샘’이란 뜻을 가진 라우터브루넨은 정말로 아름다운 산골 마을이다. 247m의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비롯해 70여 개의 폭포가 연이어 높은 암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는 1779년, 이곳에서 문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낭만파 음악가 멘델스존(1809∼1847)은 폭포 앞에서 괴테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보냈다. 시인 바이런(1788∼1824)도 이 폭포에 시를 남겼다. 폭포를 지나 마을 농장 길을 따라 4㎞ 정도 걸어가면 쉴트호른 케이블카를 타는 곳이다. 5~6번 정도 정차와 운행이 반복된다. 특히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산비탈을 등지고 사는 뮈렌(Murren, 1650m)이라는 마을은 그림 같이 아름답다. 고요할 정도로 조용한 고산 마을, 거칠고 척박한 높은 산봉우리 속에서도 화사한 꽃 화분으로 예쁘게 꾸미고 가꿀 줄 아는 사람들. 이 마을에 어찌 반하지 않겠는가? ‘이 높은 곳에서 뭐 먹고 살지?’ 하는 한국식 사고가 부끄러워지는 마을이다. 쉴트호른 전망대는 융프라우하고는 다르다. 터널이 아닌 시원한 야외 공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융프라우 요흐를 비롯해 묀히와 아이거 봉우리 3개가 한눈에 들어온다. 또 이곳은 유명한 시리즈 영화인 007 촬영장소로 활용되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재미도 준다. 전망대의 식당(피츠 글로리아, Piz Gloria)’은 야외 풍경을 보면서 즐기라고 뱅글뱅글 움직이고 있다. ‘007 제6탄-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식사한 곳에서 주인공인 것처럼 파스타를 먹는다. 분명코 융프라우만 보고 왔다면 반쪽 여행만 하게 되는 꼴이 될 것이다. ◇귀족, 부자들이 만든 휴양도시, 생 모리츠 한국 여행객 대부분이 융프라우 다음으로 가는 곳은 루체른(Luzern)이다. 필자는 루체른을 거쳐 생 모리츠(ST.Moriz)로 향한다. 스위스 여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열차 여행이다. ‘Express’라는 이름으로 열차 관광 상품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중 빼어난 명품 열차가 베르니나(Bernina) 익스프레스다. 베르니나는 스위스를 가로질러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오래된 산악 열차다. 2008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열차 코스가 있다. 투시스(Thusis) ~ 생 모리츠(61.6㎞, 알불라 라인), 생 모리츠 ~ 티라노(Tirano)(60.6㎞, 베르니나 라인)를 합친, 122㎞ 구간이다. 이 열차 구간에 생 모리츠가 있다. 생 모리츠는 스위스 동쪽 끝 부분인 그라우뷘덴(Graubunden) 주의 엥가딘(Engadin)산맥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세계적인 휴양도시다. 스위스에서는 가장 일조량이 많다. 365일 중 320일이 맑은 마을. 그래서인지 생 모리츠에 도착하면 ‘그 맑음’에 눈이 부시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이름난 명사(코코샤넬 등)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스위스가 관광산업을 시작했을 때 돈 많은 영국 귀족들이 유서 깊은 호텔을 세웠고 스위스에서 가장 먼저 전기를 끌어들인 곳도 바로 생 모리츠다. 봅슬레이가 처음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엔 영국 귀족들의 스포츠였다고 한다. 그 흔적들이 생 모리츠에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은 고산을 기대어 터전을 잡았고 그 중간에 호수가 있다. 가파른 언덕이 있는 도르프(Dorf)와 온천이 모여 있는 바트(Bad), 두 마을로 이뤄져 있다. 도르프란 독일어로 ‘마을’, 바트는 ‘온천’이라는 뜻인데,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화로운 호텔과 부호들의 별장이 즐비하고, 류머티즘이나 심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온천 근처에는 리조트도 들어서 있다. 그저 휴양도시라서 오래된 문화유적도 없다. 긴 역사의 흔적도 없다. 마을에 짙게 내린 가을 풍치와 산정의 겨울 풍치를 보면서 호숫가를 에돌아보면 된다. 흰 설국이 된다면 더 멋질 것이며, 이 도시는 엄청나게 북적거릴 것이다. 생 모리츠를 벗어나면서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너무 아쉬워서 베르군(Bergun, Bravuogn) 역에 내려 한참이나 시간을 소요했다. 또 취리히로 나오는 길목에서는 ‘마이엔펠트(Maienfeld)에서 하룻밤을 유했다. 이 마을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배경이 된 곳. 이 마을에는 하이디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박물관이 있다. 조용한 스위스의 시골마을에서의 하룻밤. 와이너리가 유난히 많은 이 마을의 호텔 바에 앉아 와인 잔을 기울인다. 동네사람들만 왁자하게 떠들던 그날 밤, 여행객의 상념은 깊어간다. 왜 스위스를 떠나는 게 이리도 힘이 드는 것일까? 단지 고국 떠난 여행객의 짙은 외로움만은 아니었으리라. 교통편 한국에서는 취리히 공항을 경유하는 게 일반적이다. 또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각지에서 열차가 수시로 연결된다. 취리히 공항에서 베른까지는 1시간 단위로 열차가 오간다. 각 여행지 선택은 다음 일정에 의해 결정하면 된다. 생 모리츠는 이탈리아와 인접해 있고, 베른, 제네바는 프랑스와 통한다. 현지 교통 정보 스위스는 철도가 발달된 도시. 대부분 기차로 이동하면 된다. 스위스 카드 구입하기 스위스 패스는 아주 유용하다. 카드마다 특전이 다르므로 선택을 잘 하는 것이 좋다. 패스를 이용하면 열차는 물론 포스트버스 등 대중교통 대부분을 이용할 수 있으며 케이블카 할인, 박물관 무료 등 혜택이 많다.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다면 날짜에 맞는 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또 스위스 철도는 유레일패스로도 이용할 수 있지만 할인 적용이 다르다. 열차 시간표는 홈페이지(www.rhb.ch)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운행 시간은 유럽 전역에서 아주 정확하다. 대표 음식들 퐁뒤(Fondue)가 있다. 기본적으로 긴 꼬챙이 끝에 음식을 끼워 녹인 치즈나 소스에 찍어 먹는 요리다. 18세기 초 알프스의 사냥꾼들이 사냥 중 모닥불에 치즈를 녹여 마른 빵을 부드럽게 적셔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 또 초콜릿이 유명하니 선물용으로 구입해도 좋다. 숙박정보 스위스는 우리나라에 비해 환율이 높다. 비싼 호텔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값싼 호스텔을 이용하면 된다. 융프라우나 쉴트호른을 가려면 으레 라우터브루넨을 경유해야 한다. 라우터브루넨의 작은 마을의 밸리 호스텔(Valley Hostel)은 편하게 잘 되어 있다. 생 모리츠는 휴양지라서 숙박 가격이 비싼 편. 유스호스텔을 이용하면 아주 좋다. 스태프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아주 맛이 좋다. 화폐단위 유로 대신 스위스 프랑을 쓴다. 언어문제 스위스 인들은 노인층까지도 영어를 잘 구사한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관광 안내소에는 한국어로 된 팸플릿도 있다. 유의할 점 여행 떠나기 전, 융프라우에 대한 정보는 많이 복잡할 수 있다. 미리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현지에 가면 관광체계가 잘되어 있다. 역에 가서 목적지만 말하면 그들이 알아서 표를 끊어준다. 한국에서는 할인 티켓을 프린트해 가는 게 좋다. 또 여행 중 농장의 철조망을 유의해야 한다. 전류가 흐르고 있어서 가까이 가면 감전의 우려가 있다.
- 2015-11-04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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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에 혼자 떠나는 여행- 당진시의 유일한 섬 '난지도'
- 충남 당진시에도 섬이 있다. 난지도(蘭芝島)다. 당진군 석문반도와 서산시 대산반도 사이, 당진만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소난지도, 대난지도를 합쳐 부르고 그 주변에는 대조도, 소조도, 우무도, 비경도, 먹어섬, 풍도, 육도 등 7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 난초와 지초가 많이 자생해서 붙여진 섬 이름. 과연 그 섬엔 무엇이 있을까? 도비도 선착장에서도 눈가늠이 되는 소난지도가 해맑게 웃으면서 어서 오라 손짓한다. 글·사진 이신화 의 저자 www.sinhwada.com 작지만 조용하고 아름다운 소난지도, 의병들의 함성이 들리는 그곳, 언제 다시 가나? 오전 7시경. 도비도 선착장 주변엔 활기가 넘쳐난다.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 낚시객들을 태우느라 바삐 움직이는 작은 배들 사이로 하루에 세 번 운항하는 철부선(쇠로 만든 짐배)을 타려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모여든다. 자전거를 타고 온 여학생이 눈에 띈다. 선장의 딸이라는 여학생은 대난지도 섬의 분교로 6년간 통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시50분, 배가 출항한다. 소난지도가 나의 첫 목적지다. 당진군내에서는 대난지도 다음으로 큰, 두 번째 섬으로 선착장에서는 10분 거리다. 눈 깜짝할 새 갑진마을에 도착한다. 낯선 곳에 대한 설렘이 앞선다. 이 섬에서 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이 하선한 몇 사람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선착장 주변을 혼자 배회한다. 식당 두어 곳과 가게, 교회, 경로회관과 민가 몇 채가 있다.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두 명이 눈에 띈다. 말을 걸어볼 요량이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아흔이 넘은 할머니는 소난지도의 청아한 공기만큼이나 얼굴이 곱고 정정하다. 뭍에서 시집와 평생 이 섬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애써 캐물어야 아는 것은 아니리. 선착장 좌측으로 가본다. 길은 바다를 끝으로 끊어진 듯 보이지만 더 가보면 옛 학교터다. 1960년대에 삼봉초 소난지 분교장이었다. 점차로 사람 수가 줄어들면서 1992년 폐교됐다. 1500평 규모의 폐교엔 제법 넓은 운동장이 있고 새로 지은 듯한 마을 회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때 이 섬에도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슬슬 마을 안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찻길이 끝나는 도독어미 바닷가에 발길을 멈춘다. 소난지도는 과거 조운경로에 들었을 때 조운선이 정박하던 곳이다. 지방에서 거둔 세곡을 경창(서울 마포)으로 수송하면서 잠시 쉬어 가던 곳이다. 조선 말에는 이 세곡선을 털기 위해 도둑들이 살기도 해서 붙여진 지명인 듯하다. 펜션동, 식당이 한 채 있고 낚싯배 한 척이 있다. 바다로 나가, 눈을 들어보니 지척으로 대난지도다. 400m 지점이니 수영을 잘한다면 도착할 수 있을까? 해변엔 인적이라고는 나 혼자다. 옅은 파도소리가 귓전으로 쓸려 간다. 배가 들어온 흔적인 선착장은 부서져 있다. 왼쪽은 바닷물이 차 더 이상 갈 수 없다. 야트막한 산길도 올라보고 해변도 배회한다. 새소리, 풀 자라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사위는 고요하다. 문득 책을 펼쳐들고 싶다. 돗자리를 펴고 원 없이 못다 읽은 책을 읽고 싶다. 바닷길을 따라 우측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다로 튀어나온 기암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과 조우한다. 바위 끝에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다가 아주 작은 노래미 한 마리를 잡고 즐거워하는 사람들. 초보 낚시객들에게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우측 둠배마을 펜션단지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의병총을 만난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전국 의병들의 반발은 거셌다. 1907년, 당진지역 최구현의 의병부대, 경기남부지역에서 싸웠던 홍일초 부대, 서산의병 김태순 부대, 홍주의병 차상길 부대원들이 합류해 소난지도로 왔다. 소난지도를 택한 이유는 전라도 일대에서 세곡을 싣고 한양으로 가는 세곡선들이 정박한다는 점이다. 세곡을 탈취해 군량미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육지와 떨어져 있으니 비교적 안전하다는 점도 들 수 있다. 하지만 홍주경찰서에서 눈치를 채고 1908년 3월 15일 이곳을 기습 공격한다. 9시간의 피비린내 나는 총격전이 벌어졌다. 결국 실탄이 떨어진 150여 명 의병 전원은 이곳에서 몰살당했다. 아프다. 가슴이 저려온다. 절로 눈시울이 젖는다. 그것을 추모하기 위해 1974년 6월, 봉분을 봉축(封築)했고 1980년 6월 의병총비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1982년 8월 5일 의병총비를 제막한 것이다. 의병총 앞, 둠배마을은 펜션 단지다. 그 앞에 폐가 몇 채가 있다. ‘소난지도의 영웅들’이란 다큐드라마를 찍겠다고 만들어진 세트장이다. 하지만 제작사 관계자들은 산지 전용허가를 받지 않은 채 소나무 5000여 그루를 무단 벌채했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보전산지인 이곳에 남아 있는 폐가만큼이나 창피를 당했다. 어쨌든 이 작은 섬 안에는 제법 볼거리, 할 거리, 느낄 거리가 쏠쏠함에 재미가 많다. 겨우 5~6시간 남짓한 섬과의 만남이지만 오랫동안 알던 곳처럼 친근하다.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가슴속 깊이 파고든다. 나 언제 또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고운 모래사장이 자랑거리인 대난지도 해수욕장 오후 1시 30분에 선착장에 도착한 배를 타고 대난지도로 향한다. 대난지도에 사람이 살아온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소난지도, 대조도와 함께 근접형 군도를 형성하고 있다. 대난지도는 행정자치부가 선정한 ‘국내 명품 섬 베스트 10’ 중 하나로 꼽혔다. 그 섬에 내가 있다. 선착장 바닷가에서는 독특하게 생긴 바위가 눈길을 끈다. 엄지손가락이 올라간 듯한 작은 기암은 이 마을에서는 ‘선녀바위’라 불린다. 선착장에서 난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간다. 약 3㎞ 정도의 거리라서 걷기에도 어렵지 않다. 민가와 횟집을 지나고 나니 대난지도에서는 가장 큰 마을인 양짓말을 만난다. 바다와 조금 떨어진 데다 산기슭에 민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어 바닷가 마을이라기보다는 산중 마을처럼 느껴진다. 마을을 비켜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 삼봉초등학교 난지분교가 있다. 체육시간인 듯 아이들은 땡볕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도 전교생인 듯, 나이차이가 많아 보인다. 학교 건물은 마치 전원주택 같은 모습이다. 슬쩍 교실을 엿본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현대적이다. 교실이라기보다는 개인 방처럼 아늑하다. 그곳에 최신 컴퓨터, 빔프로젝터, 스캐너, 프로젝션TV, 전자오르간 등 한눈에도 도심 시설보다 나아 보인다. 이 분교는 2000년엔 학생수가 2명으로 감소, 폐교 위기에 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분교로 발령받은 교사들이 육지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전학시켜 오는 등 ‘학교 지키기’에 나서 폐교를 막았다. 요즘엔 ‘아름다운 학교’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매년 아이들이 한두 명씩 늘고 있다. 최신식 시설들은 모두 대기업들로부터 기증받았단다. 분교를 비켜 고갯길을 넘어서니 드디어 난지도 해수욕장이다. 당진시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당진 3경으로 꼽힌다. 폭 500m, 길이 2.5㎞의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인상적이다. 100m 이상 완만하게 연결되는 모래가 깔려 있다. 물때에 따라 물고기도 잡고 조개도 잡는 곳. 특히 수심이 완만해 해양레포츠 장소로 인기라는데 마침 청소년 수련관에서 여중생들이 래프팅을 하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이동 중이다. 한참이나 그들의 극기훈련을 지켜본다. 멋진 추억을 만들고 있는 소녀들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바다 주변으로 퍼져간다. 해수욕장 주변으로는 넓은 소나무 숲이 있다. 북서쪽에는 바다낚시터도 있다. 팔각정 망치봉(118m) 정상에 서면 해수욕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수련원 뒤쪽으로는 등산로가 만들어져 있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팻말이 마땅치 않지만 산을 좋아한다면 올라가 봐도 좋을 곳이다. 난 이제 섬 밖으로 나가려 한다. 육지 도비도에서 오후 5시 30분에 들어오는 배를 기다리면서 선착장을 배회한다. 낚시객들도 보고, 배를 타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도 만난다. 아침에 탔던 그 배에 다시 오른다. 내 살갗은 하루 만에 벌겋게 익어 버렸다. 땡볕이 내리쬐는 섬의 하루, 난 소난지도, 대난지도를 훑듯이 스쳐왔다. 그곳을 평생 지키고 사는 할머니들도 여럿 만났고 그들의 섧디 서러운 인생사도 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소난지도가 좋아? 대난지도가 좋아?” 답은 하지 않으련다. 각자의 느낌이 다를 테니 말이다.
- 2015-07-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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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투어]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친퀘테레 국립공원은 아름다웠다
- 이탈리아는 크고 넓었다. 온 도시마다 문화유적지의 보고이며 풍치가 빼어나다. 특히 토스카나(Toscana) 지방은 이탈리아 여행지의 백미라 할 수 있다. 토스카나 여행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피렌체를 시작으로 가까운 ‘빈치(Vinci)’, ‘피사(Pisa), ‘루카(Luka)’, 고대 중세도시의 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에나(Siena), 성프란체스코와 성 클라라가 몸소 고행하던 ‘아시시(Assisi)’ 등. 그 어느 곳도 놓치면 아쉬울 곳들이다. 더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친퀘테레(Cinque Terre) 국립공원이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 중부의 아펜니노(Appennino) 산맥과 티레니아(Tyrrhenia) 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 에트루리아(Etruria) 문명의 발상지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가는 곳마다 유명 예술가들을 만나게 돼 놀라운 건축양식에 입이 쩍 벌어진다. 산간지대가 아니더라도 올리브 나무는 지천이고 떫지 않은 와인 맛에 매일 길이 들여진다. 무엇보다 한국음식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맛있는 메뉴가 지천이다. 여러 지역 중에서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 친퀘테레 국립공원이다. 이탈리아 북서부의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한 친퀘테레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단 한 지역을 일컫는 게 아니다. 라 스페치아(La Spezia) 지방의 5개 해안 마을을 철도와 도보용 도로로 연결하고 있다. 한국을 예로 들자면 ‘한려해상국립공원’처럼 남해안 일원을 함께 부르는 것과 같다. 친퀘테레의 5개 마을을 천천히 즐기려면 넉넉하게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가야 한다. 단 하루 만에 5개 마을을 섭렵할 수 없다.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와 베르나차(Vernazza), 코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 등이 마을 이름이다. 리비에라(Riviera) 해안마을을 잇는 거리는 총 18㎞. 직선으로 이어진 길이라면 어려울 게 없고 관심 또한 끌지 못했을 터. 눈부시게 푸르른 청빛 바다와 기암, 그리고 마치 기암 위에 들어선 듯한 형형색색의 가옥들. 이곳의 가옥들이 색칠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더 이어졌는데, 바다로 조업 나간 남편이 집을 잘 찾아오라고 아내들이 건물에 색칠을 덧칠했단다. 형형색색 빛깔을 달리하는 작은 건물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이제는 오랜 세월이 흘러 벽면 군데군데 색이 벗겨지고 바랬지만, 그 자체로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친퀘테레 여행 시작은 대부분 리오마지오레부터다. 이른 아침, 첫 마을의 느낌은 경이롭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선 골목길을 빠져나와 아침 햇살이 마을 안쪽으로 조금씩 스며드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는다. 특히 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자그마한 항구에 매어 있는 조각배. 물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바다색 위에 형형색색, 이국적인 향기를 물씬 자아내는 배들이 정박해 있다. 어부와 지역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우러지면 자꾸만 영화를 보는 듯 착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여행객의 마음을 묘하게 뒤흔들어 놓는다. 한참을 할 말 잊고 앉아 있다가 다음 마을로 가는 행로는 기차가 아닌 보트였다. 배를 타고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가장 눈길을 끄는 네 번째 마을을 비켜 다섯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에 발을 내디뎠다. 몬테로소는 해안을 따라 가옥들이 가로로 길게 펼쳐져 있다. 첫 느낌은 생각보다 큰 마을이라는 것. 어느 마을에나 있음직한 성 프란체스코 교회. 마을은 마치 두 개로 나뉜 듯 해안을 따라 날개처럼 가옥이 이어진다. 해안 길은 동굴로 이어지는데 어둑한 동굴 끝자락에서 흘러나오는 길거리 음악가의 노랫가락이 마음을 흔든다. 봄부터 가을까지도 낮 햇살이 따가운 이곳. 사람들은 으레 수영을 즐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집에서 산 달짝지근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혀끝을 감싼다. 해안가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마을 길이 끝나는 지점, 눈길을 끄는 바위 조각이 있다. 안내표시 없는 그 바위 위에 만들어진 조각의 표정은 온갖 고행의 흔적으로 일그러져 있다. 해안가에서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맛있는 해물파스타를 먹고 이어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베르나차로 향한다. 울릉도 도동 산책로를 연상케 하는 해안가의 아름다움에 빠져 절로 걷게 된다. 트레킹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과 해안선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에 어김없이 오랜 세월 만들어진 소로. 먹고 살기 위한 사람들과 노새들의 땀 흘림으로 만들어진 길. 깎아지른 벼랑길의 쓸 만한 땅에는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다. 우리나라 남해의 가천 다랭이 마을이 연상되는 곳. 하지만 이 길은 걷기에는 많은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한다. 여행정보서는 분명히 ‘걸으면 좋은 길’로 소개할 테지만 현실에서는 마치 산행을 하는 듯하다. 무더운 땡볕, 마음을 비우고 걷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는 동양 여행객.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후들후들해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도 3분의 1도 가지 못한 지점. 결국 되돌아오는 길이 더 낫다는 것을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절대적으로 기차를 타고 베르나차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이다. 베르나차(네 번째 마을)는 몬테로소와는 모습이 다르다. 기차역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길목은 관광객들로 넘실댄다. 다섯 마을 중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베르나차는 약 1000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여느 곳과 다르게 고대 성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거기에 다섯 마을 중 유일하게 항구가 있다. 항구에서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배들을 볼 수 있고 수영,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으로 베르나차는 끝이 아니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에 만들어진 요새가 있다. 마을 전체를 조망하거나 멋진 바다 풍경을 보려면 기꺼이 올라가야 하리. 입장료도 비싸지 않다. 사방팔방 펼쳐지는 풍경에 후들거리는 발걸음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하다. 성곽의 역사를 굳이 모른들 어떠하리. 그곳에서 하객 한 명 없는 미국인 커플의 결혼식 장면이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 주례, 사진사, 들러리, 그리고 성혼이 끝나면 신부가 내미는 종이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결혼식은 끝이 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짐작한다. 미국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고 그들은 이탈리아 친퀘테레 바닷가의 한 마을에서 결혼식을 올리자고 말이다. 오후 햇살을 벗 삼아 그들은 키스로 성혼이 되었다. 어떤 사랑이야기가 있든, 어떻게 살아가든, 그게 이 순간 무어 중요하리. 그저 하객 없는, 간단한 예복을 입은 막 결혼한 커플의 행복하고 감격에 겨운 신부의 눈물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을. 그것을 지켜보는 여행객의 마음속에도 또한 추억 한 자락이 새겨졌다. 베르나차 옆 마을은 코닐리아다. 방향을 어디에서 시작하든 중간에 낀 마을이다. 다른 마을은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마을을 만나지만 이곳은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마을 또한 다섯 마을 중 아주 작고 바닷가 마을이라기보다는 산촌 같은 느낌이다. 이는 마을이 포구가 아닌 가파른 언덕 위에 터전을 잡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 마을만의 매력이 있다. 두 사람이 겨우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도로에서 만나는 숍들이 그 어느 마을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답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화분으로 장식된 유리창도 이곳에서는 예술적이다. 바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을 흥얼거리며 몇 발자국 더 떼었을까? 길은 끝나고 벼랑길 아래로 바다가 정원처럼 펼쳐진다. 바다가 지척이 아니어서 새롭다. 그 자리에 어김없이 자리한 작은 바. 지는 해를 보면서 와인 한잔을 마시면서 듣는 팝송가락이 살갑게 가슴팍을 후벼온다. 하루에 다섯 마을을 돌아보는 사이 해가 지고 있다. 마지막 마을은 마나롤라다. 이곳은 기차역에서 내려 포구로 길이 이어진다. 포구로 가는 길목에서 오래된 사진을 만난다. 거의 포도가 주제가 된 사진이지만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에는 인간미가 물씬 배어 있다. 주름진 얼굴, 햇살에 찌든 검은 피부, 무겁고 힘겨워 보이는 포도 농장,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이 이 해질녘에 특히 정겹다. 어쩌면 1338년 지어졌다는 고딕 양식의 산 로렌초 성당도 이들과 삶을 같이 하고 있을 것이다. 항구까지 이어지는 짧은 길. 그 길 끝에는 어김없이 아름다운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조금씩 마을 건물색이 해거름에 진해지면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 밑, 큰 바위 밑으로 난 소로에는 어김없이 조각배가 정박해 있고 그 바닷길 끝에 자그마한 기암이 있다. 그 시간에 지는 해는 묘하게 심장을 떨리게 한다. 이어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자리를 틀고 앉는 시간, 필자는 기차시간에 쫓겨 급하게 레스토랑에 앉아 해물스파게티를 시켜 먹었다. 기차시간과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해 못하는 웨이터는 내게 속삭인다. “저녁 9시부터는 라이브 음악이 울려.” 언제쯤에나 이런 아름다운 정서에 내가 흡입될 수 있을까? 다섯 마을 중에서 필자의 가슴속에 깊게 새겨진 곳. 풍치였을까? 아니면 영원히 잊지 못할 정도로 맛있는 해물스파게티 맛이었을까? 교통편 피렌체나 밀라노, 제노아 등지에서 철도를 이용하면 된다. 라스페치아 역을 비롯해 5개 역에서는 철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친퀘테레 카드(Cinque Terre Card)를 판다. 하지만 기차 말고도 걷거나 보트를 타거나 하는, 제각각 여행패턴이 다르므로 사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먹거리 친퀘테레 바닷가 마을에서는 아주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마다 맛이 제각각.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을 찾는 것도 요령이다. 레스토랑에는 칠리가 있어 우리 입맛에 맞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 포카치아(Focaccia)라는 지역 특산 빵이 있지만 한국인 입맛에는 아주 짜다. 이탈리아 전역의 레스토랑에서는 테이블 커버 차지를 받는다. 거기에 서비스 요금을 함께 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 한 끼 식사를 하게 되면 원래의 가격보다 훨씬 웃도는 돈을 내야 한다. 숙박정보 친퀘테레 바닷가 마을은 대부분 숙박비가 비싸다. 라스페치아에 숙소를 정해놓고 다녀도 무관하다. 대부분 숙박지에서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필자가 머문 고지대에 있는 호스텔은 가격이 저렴하고 조용했다. 분지처럼 움직이기 어려운 곳이었지만 저녁이면 하루 세 번씩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어 편리했다. △ 글ㆍ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5-06-1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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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투어] 천혜의 오지 마을, 응곡마을
- 울퉁불퉁한 비포장과 포장 길이 4㎞ 정도. 하늘 향해 쑥쑥 뻗어나간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몇 개의 개울을 잇는 다리를 건너고 시원한 계곡 길을 따라 지루할 정도로 한참을 가야만 민가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띄엄띄엄 텃밭 주변으로 민가가 둥지를 틀고 있는 모습에서야 겨우 사람 사는 곳이라는 곳을 알게 되는 곳. 바로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응곡마을(일명 통바람골)이다. 글 이신화 여행작가 마을 사람들은 뒷산에 매가 사는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응곡산(鷹谷山)’이 있어서 ‘응곡마을’이라고 하는데, 지도상에는 응복산(1359.6m)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이 마을에는 10~11가구가 있다. 토박이들은 아니고, 10~20여 년 전부터 이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다. 대부분 겨울에는 마을을 떠나 있다가 봄철 산나물이 나올 즈음에 모여든다. 4월 말에서 5월 초순경이면 얼레지 나물로 초문을 연다. 얼레지는 일명 ‘가제 무릇’이라 불리기도 하며 고산지대의 숲속 음지에 자라는 백합과의 다년생 초본이다. 높이가 25㎝ 정도 자라고 4월에서 6월에 자주색(흰색 변이도 있다) 꽃이 핀다. 잎이 얼룩덜룩하여 얼레지라 이름 붙였다고 하며 꽃말은 ‘질투’ 또는 ‘바람난 여인’이라고 한다. 얼레지는 씨앗이 발아하여 꽃을 피우기까지 7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산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오르는 동네사람들을 따라 함께 나서본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1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나무들은 아직도 썰렁한 겨울 분위기를 내지만 산행 길에 간간이 피어난 야생화가 반갑다. 노랗게 피어난 ‘괭이눈’과 ‘꿩의 바람꽃’, ‘댓잎 현호색’ 노랗게 종 모양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백두대간 능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한계령 풀’이 눈 속에 들어온다. 특히 한계령 풀은 무지 희귀한 꽃으로, 지리산 모데미골에서 처음 발견된 모데미풀처럼 한계령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죽 길을 지나고 능선 참나무 군락지 밑으로 귀하디귀한 야생화가 눈에 띄더니만 능선을 넘어 고갯길에 이를 즈음에는 완전히 야생화 화원이 펼쳐진다. 일부러 누가 이렇게 아름다운 화원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노란 꽃 사이로 이미 나물꾼들이 뜯어가 버린 얼레지의 보랏빛 꽃까지 합세해 더욱 빛이 난다. 생계가 아니라면 그냥 피고 지는 얼레지꽃 군락지까지 합세했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야생화 화원이었을 것이다. 주민들은 나물이나 뜯어가라고 하지만 보랏빛 꽃이 너무나 처연해, 가늘게 봄바람 한 줌에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꽃잎이 가련해서 차마 뜯어버릴 수가 없다. ◇약수산에서 만난 신비한 철분 약수, 명계 약수터 그렇게 한참이나 야생화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새싹 움트는 몸짓을 느끼면서 돌아오기 싫은 길을 되돌아 나온다. 나물꾼들이 얼레지를 채취해 내려와 나물 삶는 데까지는 몇 시간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마을을 비켜 임도길 중간 즈음에서 계곡 물을 건너가면 소로가 나온다. 계곡 옆길로 난 길이라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가래나물, 팥고비, 풀고비, 당귀싹, 화살나물, 골담초 등 나물 새순이 뾰족하게 올라오고 애기 괭이눈과 꽃잎에 점이 박혀 보기 쉽지 않다는 ‘긴 개별꽃’도 눈에 띈다. 산나물과 야생화를 관찰하면서 10분 남짓 올랐을까? 자그마한 폭포를 앞두고 약초꾼이 지어놓은 천막이 나선다. 켜켜이 장작을 싸놓고 부엌과 방을 들여놓고 뒤편에는 연통도 있다. 분명히 사람이 살았음직한 나물꾼의 천막은 당시에도 이곳에 있었는데, 여전히 사람은 만날 수 없다. 자그마한 폭포를 끼고 계곡을 건너면 암반 주변이 철분 빛으로 벌겋게 변해 있다. 누군가 계곡물과 섞이지 말라고 돌을 쌓아 막아 두었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한 일이다. 계곡 옆에 어떻게 이런 철분 약수터가 생겼는지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붉은 물 사이로 뽀르르 기포가 올라온다. 물위에 떨어진 낙엽을 걷어내고 손으로 물을 마신다. 강한 철분 맛보다 톡 쏘는 탄산 맛이 느껴져 설탕만 넣으면 사이다와 같다. 이 약수를 통상 명계약수라고 하는데 통바람 약수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산 이름도 약수산이다. 약수산을 둘러싸고 남으로는 명계약수, 서쪽으로는 삼봉약수, 북으로는 갈천약수, 동으로는 불바라기약수가 있다. 약수가 여러 곳에서 나온다고 하여 부른 듯하다. ◇직접 만든 아궁지에 산나물 삶아 말리고, 지친 몸에 술 한잔 두어 시간이 지난 후, 필자가 이 마을에서 맨 처음 만났던 노부부가 사는 집을 찾는다. 자루에 나물이 가득 차면 집으로 와서 곧바로 나물을 삶는다. 시멘트로 네모진 통을 만들고 뒤에 연통을 단 아궁이가 있다. 장작불을 지피고 다듬지 않은 얼레지를 넣고 뚜껑을 닿고 5분 정도 삶아주고 양철통 위에 꺼내 말리면 되는 일이다. 할아버지가 나물을 삶는 동안 할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한다. 커다란 무쇠솥이 두 개, 고기도 구워 먹고 화로로 쓰는 널찍한 양철통이 한편에 놓여 있다. 깊은 산 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수도꼭지는 잠그지 않은 채로 졸졸 물이 흘러내린다. 무쇠솥에 물을 한가득 넣고 군불을 지핀다. 자그마한 풀무를 돌려가면서. 가스렌지 위에서는 구수한 된장국이 부글부글 끓는다. 하루 종일 나물 뜯느라 지친 몸을 얼레지 된장국에 찬밥을 넣고 김치 한 가지로 때우는 것이다. “하루 정도만 우려내면 돼. 미역국처럼 맛이 좋아서 꼭꼭 얼려 두었다가 자식들에게 주지.” 겨울이면 춘천에 살다가 봄철 나물 뜯으러 온다는 할머니는 인심 좋게 된장국 한 그릇을 퍼준다. 그 맛이 얼레지 묵나물보다 훨씬 좋아서, 슬그머니 욕심이 생긴다. 뜯어오지 못한 것을 후회할 판이다. 그때 이웃 할아버지가 됫병을 들고 나타나 술잔을 돌린다. 자그마한 부엌에 옹기종기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얼레지는 귀한 나물이라서 호텔이 아니고서는 먹기가 힘들지. 말려 팔면 제법 비싸게 팔리는 산나물이야. 얼레지는 1주일 정도 후면 끝이 나고 그 다음에도 참나물, 곰취, 전우치 등 두 달 반 정도는 나물 작업을 해야 해.” 힘겨운 산나물 뜯기 작업 후에, 푸성귀로 배를 채우면 얼마나 허기질까 할 즈음 아랫집에서 전화를 한다. 이 집은 더 풍성하다. 고기에 직접 재배했다는 표고버섯과 막 뜯어 낸 곰취와 참나물, 산마늘 쌈이 차려져 있고, 여름까지 먹는다는 묵은 김치와 된장, 굵은 소금장이 있다. 막 지은 밥과 꽁치조림까지 곁들여지는 동안 마을 사람들은 계속 찾아든다. 할일 없는 겨우내 모여 술잔치를 벌였다는 사람들.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면서 밤이 이슥할 때까지 술판을 벌인다. 이 지역에서 나물은 이들의 생계수단이고, 나물 철이 끝날 때까지 산길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사람은 이제 지긋지긋한 작업이 되지만 어쩌다 한 번 들르는 여행객의 눈에는 행복하기만 하다. 아직까지 이런 곳이 남아 있다니. 이것을 관광상품화한다면 덜 힘겹게 살 텐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 유난히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이 환하다. 주소 홍천군 내면 통바람길 찾아가는 방법 영동고속도로 → 속사IC → 운두령 넘어 창촌 방면으로 난 56번국도 이용 → 창촌 → 구룡령 가는 길에 우측 명계리로 들어가는 446번 지방도로 우회전. 다리 앞에서 왼편 비포장 길로 좌회전 → 응곡마을 맛집과 숙박정보 응곡마을 통바람 산장(011~9795~1684)에서는 식사와 민박이 가능하다. 또 가는 길목인, 이승복 기념관 주변에 운두령횟집(033~332~1943, 송어회, 용평면 운두령로 825), 장수촌(033~332~7419, 토종닭, 용평면 운두령로 286)이 괜찮다. 삼봉 자연휴양림(033~435~8535~6, 홍천군 내면 삼봉휴양길 276)이나 자연속으로(033~334~0770, www.naturalpension.com, 용평면 운두령로 109-49)와 같은 펜션에서는 와인을 시음할 수 있다. 여행포인트 얼레지 채취는 올해 끝이 났고 계절에 맞는, 또 다른 산나물이 싹을 틔울 것이다. 여행객들은 필요하다면 주민들에게서 사오면 될 일이다. △글ㆍ사진 이신화 여행작가 이립(而立)에 여행작가로 시작해 어언 지천명(知天命)에 다다랐다. 그동안 ‘걸어서 상쾌한 사계절 트레킹’, ‘대한민국 100배 즐기기’, ‘on the camino’ 등 여행서 총 14권을 출간했다. ‘인생이 짧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지난해 홀로 197일간 30개국의 유럽 배낭 여행을 했다. ‘살아 있을 때 떠나자’가 삶의 모토다.
- 2015-06-02 0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