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가에 미소 짓게 하는 어린 시절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고, 그 아래 작은 도랑이 흐르는 포근한 동네…. 막내 오빠와 그 친구들이랑 논밭 사이를 선머슴처럼 마구 뛰놀며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시절…. 그랬다. 하늘이 유난히도 파래 눈부시던, 아름다운 경남 진주시에서 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극히 온화하시고 자상하신 아버지와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6월이면 먼 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뻐꾹 뻐꾹”하는 소리가 점점 가늘어질 때까지 부동자세로 그 소리를 가슴에 담는다. 뻐꾸기 소리는 그날의 슬픔을 다시 아프게 살아나게 하지만 유월이 지나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어서 더 그립다.
30년 전 큰오빠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서 45일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가
나는 대한장애인댄스스포츠서울연맹 소속 선수 겸 코치이다. 자원봉사자로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댄스스포츠를 가르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혼자서는 댄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나 같은 비장애인이 파트너로 같이 경기대회에 나간다. 올해가 4년째이다.
장애인들은 겨울철 빙판이 위험하기 때문에 겨울 동안에는 훈련을 쉰다. 그리고 대략 4월부터 새로 선수등록을
지난 5월, 집집마다 활짝 피어 올랐던 카네이션 꽃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저만큼 자취를 감추고 그 남은 향내마저 시들어 뒹굴 때쯤이면 부서진 꽃잎들은 흐린 미소로 전해온다. 또다시 6월의 꽃들은 정녕 눈부심이라고 나지막하게 내 귓가에 희망을 담고 속삭여온다.
장하다. 내 딸들아! 그리고 앞으로도 화이팅!
내게는 두 딸이 있다. 그리고 그 딸들은 6월이 되
한해를 반으로 접는 유월을 ‘희망’의 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유월은 신록이 절정을 향해가는 시기다. 신록은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준다. 무엇보다도 신록은 희망을 준다.
한해를 시작한 1월은 시무식을 비롯한 이런저런 행사로 쏜살같이 지난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2월이 지나면 3월은 입학식으로 설렘과 기대가
결혼하기 전에 누가 생일을 물어보면 양력 생일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하고 둘러서 음력 생일을 말하곤 했다. 생일잔치도 제대로 한 기억도 없다. 조용히 생일이 아닌 것처럼 지냈다. 6월 25일이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날이 생일이었으면 떳떳하게 보낼텐데’ 하고 바라기도 했다. 태어난 연도가 1950년은 아닌 몇 년 지난 해이지만 날짜가 같아서 민족의 슬픈
봄이 되면 왜 그래야 하는지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꽃밭을 일구곤 했다. 꽃밭 가꾸기가 우리 집 연례 행사였기 때문이다. 받아 놓았던 꽃씨를 전부 꺼내서 뿌리고 물뿌리개로 물을 줘가며 내 동생들과 정성을 다해 열심히 만들었던 일들이 그립다. 또 꽃모종들을 동네를 다니며 얻어 와서 심기도 했다. 그 해에는 금낭화를 처음으로 담임선생님 집에서
6월의 중순, 아직 태양열이 그렇게 극성을 부리기에는 이른 초여름이다. 잎들이 겨우 연록에서 초록으로 바뀌려는 시간인데 그 하루 내가 김포공항을 통하여 한국을 떠나는 날에는 이미 그 전날의 극성스런 열기로 대지도 덥혀져있었고 당일의 새 기운으로 기습작전이라도 하는 양 쏟아 내리는 햇빛으로 모든 고형의 물질들은 졸아들고 녹여날 것 같은 무더위였다. 굳이 그래
6월이면 으레 옷장을 정리한다. 겨울옷과 여름옷을 바꿔 넣고 내친김에 잡동사니들도 버리느라 대청소로 접어들곤 한다.
올해도 손쉬운 서랍장부터 열어 본다. 재킷 속에 받쳐 입었던 목 긴 스웨터와 짧은 소매 스웨터가 엉켜 있다. 원래 계절이 바뀔 즈음엔 서랍 속 내용물이 엉키기 마련이다. 가끔은 계절을 거스르는 날씨 탓이다.
중년을 넘어서면 점점 어울리는
나는 종종 과거의 시간에서부터 생각의 시작을 한다. 현재도 흐르고 그래서 과거의 시간이 되겠지만 현재의 흐름을 타는 일은 더디기만 하다.
겨울 아침이면 놋 세숫대야가 안방까지 들어왔다. 엄마 품에 안겨서 세수하던 느낌과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놋대야가 움직일 때마다 나던 긴 울림이 들린다. 따뜻한 물을 대야에 부으면 흐릿한 김이 오르고 은은한 아이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