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군 대화면 백석산 중턱에 ‘화이트 하우스 온 더 힐(White house on the hill’이란 곳이 있다. 인생의 2막을 코앞에 두고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필자를 비롯한 일곱 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특별한 계기에 합심해 언덕 위에 화이트칼라로 아기자기하게 지어놓은 팬션이다. 쉬고 싶을 때는 누구든, 언제든 올 수 있는 곳이다.
어느 해인
경남 양산시쯤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오늘의 목적지인 창원시 수산대교를 향해 힘차게 페달을 밟았는데 밀양시를 지나면서 긴급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라이딩 중에 한 대원의 자전거 체인이 끊어졌는데 선두를 이끌던 필자는 배낭에 넣어 두었던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또 한 명의 대원을 뒤에 달고 밀양시 삼랑진읍까지 달리고 말았다. 미안했다. 필자가
스마트폰만 잘 다뤄도 IT 도사란 소리를 듣는다. 스마트폰에 다양한 IT 기능이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굳이 디지털 카메라를 따로 가지고 다닌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스마트폰에 카메라 기능이 있는데 왜 불편하게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물론 그렇게도 해봤다. 하지만 일단 시력이 약해지다 보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는 것이 불편
어쩌다 수십 년 전 결혼식 사진을 볼 때면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부부의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했던 그날의 설렘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그때의 두근거림은 재현할 수 있다. 바로 리마인드 웨딩(Remind Wedding)이다. 요즘은 30·40주년 결혼기념일을 기념하거나, 환갑
지난 달 중순 어느날에 한때 잘 알고 지내던 25년 대학후배 녀석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전화를 하였다. 반가워하며 서로 수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후배가 "선배님 저 이번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속으로 이녀석 최근들어 바뻐서인지 연락이 뜸하다가 결혼연락하기 위해 주소 물어볼려 하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대짜고짜로 선배님 "저희 결혼식 주례를
인체는 그야말로 신비로운 기관이라 어딘가 이상이 생기면 ‘이상 신호’를 보낸다. 그러나 그 신호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된다. 의사들은 실제로 많은 환자들이 나중에서야 그것이 이상을 나타내는 신호였구나 하며 후회한다고 한다. 이번에 만난 홍유식(洪裕植·46)씨 역시 그랬다. 그의 몸이 두 번이나 말을 걸어왔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생
'놓친 고기가 더 커 보인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은 대부분 잃어버린 물건을 아깝게 생각하고 지금의 것보다 예전의 것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일을 내가 직접 겪고 보니, 위 속담이 더욱 실감 나게 느껴진다.
주로 지하철로 출ㆍ퇴근하는 필자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5호선 전철을 이용해 퇴근하고 있었다. 여의도역에서 환승해 전철 안에
사진은 아마추어나 비전문가에게 일종의 ‘오락 부산물’ 같은 것이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즐거운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 즐거움과 기억, 과시하고픈 욕망을 사진에 담는다. 하지만 사진작가에게 사진은 창작의 고통이고, 노력만큼의 보상이다. 경기도 일산의 작은 작업실에서 만난 사진작가 이병용(李秉用·57)에게 사진은
“자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1994년 1월, 현대건설 이사였던 최동수(崔東秀·77)씨가 사직서를 내밀자 고(故) 박재면 회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삼성이나 롯데에 가려고 그만두는 거냐?”는 물음에 “기타를 만들겠다”고 대답하자 더욱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업계 1위 업체였고, 잘 나가는 건축담당
조동성 안중근의사기념관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로 무려 35년 반을 재직한 대한민국 경영학계의 대표 학자다. 디자인 경영 개념을 제시하여 경영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왔던 그는 2011년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교수로서의 성공적인 생활에 이어 새로운 삶에 도전하고 있는 조동성(趙東成·67) 관장의 목소리를 통해 ‘인생 본고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