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를 맞아 인생 후반기를 ‘제3의 인생’으로 여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새 일거리를 찾아 인턴으로 취직하고,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건강한 취미와 새로운 친구를 한꺼번에 사귄다. 노년기를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가족, 회사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펼치는 시간으로 인식하는 모양새다.
상당수의 중년이 은퇴 후에도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생활비 마련이 가장 큰 이유이나 단순히 돈만을 바라고 재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건 아니다. 서울대학교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에서 5060세대에게 새로운 직업 활동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다. 50대 56.8%, 60대 74.5%가 “유연성, 성취감, 재미 등 자아실현 부분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자아실현 수단으로 만화를 선택한 시니어들을 위해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는 2019년부터 ‘웹툰 시니어멘토링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활동 중인 웹툰 작가가 45세 이상 시니어 작가, 출판 만화를 그렸던 경력단절 작가가 웹툰 작가로 거듭날 수 있게 돕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방식 외에 화상 미팅, 메일로 작화 파일을 주고받는 온라인 멘토링도 이뤄졌다.
사업에 참여한 시니어들의 만족도도 높고, 가시적 성과도 나타나는 추세다. 지원 사업에 참여한 작품으로 ‘카카오웹툰리그’, ‘네이버 나도만화가’ 등의 플랫폼에서 웹툰을 연재하거나 캐릭터를 활용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 멘토링을 받은 손진효(55) 작가의 경우 웹툰 공모전에 당선돼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손 작가는 “단순히 학원 강의를 들으며 배우는 것이 아니고 멘토와 대면하여 멘토링을 받으니 디지털작업, 웹툰 연출력, 웹툰PD 크리틱 등에 대한 궁금증을 바로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라며 “멘토링 사업 덕분에 직접 그린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90%까지 높아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70~80대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예비사회적기업 카툰캠퍼스가 여러 노인 기관들과 협력해 진행하는 ‘시니어 만화창작학교’다. 시니어 만화창작학교에서는 2014년부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만화 자서전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해당 프로그램에는 사물이나 인물 그리는 법, 소묘 등 그림 그리기 기술 수업 외에도 스토리 전개 수업이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만화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업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아서다.
전체 과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 작업을 위해 그림 그리기 수업에서 어르신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소재를 많이 활용한다. 만화 자서전 프로그램의 강사 현상규 작가는 “어릴 적 사용했던 소품 그리기, 운동회 장면 그리기 등의 주제를 던지고 그림 그리는 걸 도와드리면서 왜 이 소품을 선택했느냐고 물어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적게는 두세 달, 길게는 여섯 달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세상에서 하나 뿐인 만화 자서전이 탄생한다. 5쪽 분량의 동화책에 가까운 자서전에서 10쪽 가량의 만화 자서전까지 가지각색이다.
참여한 어르신들의 만족도도 높다. 현 작가는 “자서전 작성을 위해 본인도 잊고 있었던 과거의 자랑스러운 일들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된 어르신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수업 외적으로도 그림 그리기에 집중해 손녀에게 줄 동화책을 완성시킨 어르신도 있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르신들끼리 공감하며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자신의 삶이 담긴 자서전 줄거리를 공유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프로그램을 진행하지 못했다. 카툰캠퍼스 측은 “내년에는 방역 지침과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 진행을 조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노인들, ‘그레이그린’(Gray Green)의 등장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나는 기후 변화에 반대하는 조부모다’라는 팻말을 든 런던 길거리 노인들의 모습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외신에 실린 보도 사진 속, 손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체포되어도 상관없다고 외치는 노인들은 강력했다. 누구보다 능동적이었으며,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9월, 국내에서도 ‘새로운’ 시니어 단체가 탄생을 알렸다. 600명 이상의 60대 이상 중장년층이 기후위기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 선언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단다. 노인은 수동적이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으며, 퇴행적이지 않다는 외침과 함께. ‘60+ 기후행동’ 서명운동 참여자이며 단체 내부 정비에 한창인 이경희 환경정의 이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60+ 기후행동’을 결성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가 4℃ 올랐지만 최근 1세기 동안 1℃ 올랐다고 합니다. 지금의 5~6세 어린이들은 우리보다 산불, 가뭄, 홍수 등의 자연재해를 3배 더 자주 경험하게 될 거라는 외국 연구 결과도 있지요. 현재의 기후위기는 우리 기성세대의 오만과 무지, 탐욕과 무절제 탓입니다.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년들이 미래 세대의 몫까지 함부로 빼앗고, 개발과 성장에 눈이 멀어 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것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것보다 조금이라도 좋게 물려주는 것이 우리 노년의 의무이자 권리니까요.
회원 연령대를 60대 이상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그들의 잠재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노인들은 개인 시간이 많아 자유롭고 사회적인 경험이 풍부합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인맥까지 갖춘 60+ 세대는 대단한 인적 자원이죠. 만일 이들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사회 전환에 참여한다면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60+ 기후행동 온라인 서명에 연령 제한을 두지는 않고 있습니다. 60+ 기후행동은 ‘모두가 원하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요.
‘수동적이지 않고, 무기력하지 않으며, 퇴행적이지 않은’ 노인들의 모임, 60+ 기후행동은 앞으로 어떤 활동에 나설 예정인가요?
우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노인들끼리 연결돼 서로 이끌어주고 격려한다면 중간에 지친다 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60+ 기후행동이 조직도를 갖춘 단체보다 노인 ‘네트워크’ 형태를 지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또 지자체나 국가의 환경 정책 평가 및 감시, 기업 활동 평가를 자체적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온라인 카페나 SNS 등을 이용해 회원들끼리 소통하고, 각자 실천 중인 방법을 제안하고 실험하는 등의 개인적 활동도 계획 중이고요.
60+ 기후행동만의 특색 있는 활동도 준비하고 있나요?
네. 60+ 기후행동 준비 모임에서 흥미로운 제안이 많이 나와요. 일례로 비폭력 시위를 하는 모임의 이름을 ‘어슬렁 모임’으로 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환경오염의 온상으로 지적받은 장소 앞을 수많은 노인들이 그저 어슬렁거리자는 것이죠. 노인들이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생활지침’을 만들어 공유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청년 세대가 일일 목표를 세우고 서로 인증하고 공유하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듯, 우리 노인들도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인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죠.
해외 그레이그린 단체와 협력해 환경운동을 진행할 계획이 있나요?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으나 60+ 기후행동이 보다 더 조직적으로 구성되고 활동이 활발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정보화에 힘입어 전 세계는 이미 하나의 국가처럼 통합되고 있어요. 성공적인 환경운동은 지구촌의 선례로 남아 공동의 자산이 되기 때문에, 추후에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봅니다.
인터뷰를 읽고 환경운동이나 60+ 기후행동에 관심을 갖게 될 60+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 역시 제 삶을 돌이켜보면 반성하게 돼요. 환경보호에 관심을 갖고, 생활 습관과 태도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죠.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구에 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원을 아끼고 최소한의 소비에 만족하는 삶이 새로운 ‘기후행동’임을 인식하고, 습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TIP] ‘60+ 기후행동’에 참여하는 방법
ㆍ네이버 카페 ‘60+ 기후행동’에 가입하여 기후행동 선언문을 읽고 온라인 서명에 참여한다.
ㆍ플레이스토어나 앱스토어에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내려받는다. 텔레그램에 가입한 뒤 @graygreen60plus를 검색해 60+ 기후행동 단체 채팅방에 입장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야근이나 회식 등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다. 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고, 긴 시간 동안 많은 돈을 지불해 보모를 고용하기엔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다. 또 코로나19의 확산 탓에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 등의 공교육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맞벌이 부부의 육아 돌봄 스트레스가 한층 가중될 수 있다.
이처럼 돌봄이 필요한 가정이 긴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때 ‘우리동네 아이돌봄기동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동네 아이돌봄기동대는 60세 이상 어르신이 생후 6개월부터 9살 아이를 돌봐주는 긴급 보육 서비스다. 이는 돌봄 가정의 수요 충족뿐 아니라 어르신에게 경력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일자리를 마련해 사회 활동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한다.
우리동네 아이돌봄기동대는 고객의 집과 근거리에 있는 어르신 교사 연결을 원칙으로 한다. 아이 돌봄은 어르신의 육아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아이의 나이와 특성을 이해하고 관련 교육을 통해 전문 교사로 자질을 갖출 수 있도록 자세 및 방침, 돌봄 시장 이해, 영아기 발달 특성 놀이지도, 부모 상담기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한다.
실제 고객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가사노동자협회가 공개한 후기에 따르면 27개월 아기를 키우는 한 주부는 “어르신 교사님이 단순히 돌봄의 차원을 넘어서 그림 그리기, 책 읽어주기 등 다양한 놀이 활동도 함께해 주셔서 정서 발달에 많은 도움이 됐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어르신 돌봄 교사가 계속 남아있고 싶은 일터를 지향한다. 근로계약 체결, 주휴·연차수당 지급, 사회보험 가입, 배상책임보험 단체가입은 물론 권역별 사업국을 구성하여 상시 대화, 정기회의, 지속적 교육, 모임 및 문화 활동, 정보 제공 및 행정적 지원 등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비스 이용대상은 6개월~9세(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부모다. 돌봄 주요 내용은 등·하원 동행 및 돌봄, 부모의 긴급외출 또는 부모 질환 시 일시 돌봄, 부모 모임 활동 시 동행, 자녀 집단 돌봄 등이다. 서비스 이용 가능 시간은 7시부터 20시, 이용료는 돌봄 종류에 따라 시간당으로 책정된다. 자세한 이용 문의는 한국가사노동자협회로 하면 된다.
우리사회의 빠른 고령화로 노인 주거복지 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부와 LH는 임대주택을 활용해 고령자에게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령자복지주택’ 사업을 진행하는 등 고령자 맞춤형 주거 지원이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4월 발표한 ‘주거복지로드맵 2.0’에 따르면 2025년까지 고령자 대상 공공임대주택 8만 채를 공급하고, 이 가운데 1만 채는 ‘고령자복지주택’으로 짓기로 했다. 고령자복지주택은 주택과 사회복지시설이 복합 설치된 공공임대주택으로서, 65세 이상 저소득층이 입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고령자를 위해 손잡이, 높이조절 세면대 등의 무장애 특화시설을 갖추고, 사회복지시설은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해 1000~2000㎡ 규모로 설치한다.
2019년에 시작된 고령자복지주택 사업은 이미 적잖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9년부터 운영 중인 전남 장성에 위치한 ‘영천 고령자복지주택’의 경우 150채의 영구임대주택이 들어섰다. 1080㎡ 규모의 복지시설에서는 경로식당, 노래 교실, 건강 강좌 등 다양한 고령자 맞춤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고령자복지주택 외에도 신규로 건설되는 공공임대주택과 매입‧전세임대주택을 활용한 고령자 주택도 2025년까지 7만호가 공급될 예정이다. 신규로 건설되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문턱제거, 안전바 설치, 높낮이 조절 세면대 등 고령자를 위한 특화 설계를 반영해 건설된다. 이미 지어진 매입임대의 경우에는 이러한 특화 설계를 반영해 리모델링된다.
더 나아가 국토교통부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24시간 고령자 스마트 돌봄’ 시범사업을 착수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 AI나 사물인터넷 등을 설치해 거동이 불편하고, 자칫 위급상황에 처하기 쉬운 고령자들을 24시간 밀착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시범사업이 진행된 광주 쌍촌 영구임대주택은 6가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24시간 응급관제, 응급벨 대응, 외출 시 위치 확인, 쌍방향 의사소통, 개인맞춤형 건강 관리, 일상생활 패턴 예측 및 대응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긴급상황 발생 시 신속 대응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활동, 건강, 수면 등 개인별 생활패턴 데이터를 분석하여 위기상황에 사전대응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생활 중인 80대 A 어르신은 외출 시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예정이다. 긴급 SOS(응급벨) 서비스를 통해 위기상황 알림을 받을 수 있고, 돌봄 대상자 외출 시 동선이 파악되어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은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이 결과를 토대로 스마트 돌봄서비스를 구축해, 앞으로 공급할 고령자복지주택과 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거주하는 영구임대주택에도 적용해나갈 방침이다.
국토교통부 김흥목 주거복지정책관은 “이번 스마트돌봄 시범사업은 임대주택에 첨단기술을 덧입혀 맞춤형 주거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더 나아가서 이번 사업을 통해 축적된 일상생활 패턴에 대한 빅데이터를 평면 설계, 단지 배치, 시설개선 등에 적용하여 임대주택을 질적으로 개선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기쁠 때는 노래의 멜로디가 들리고, 슬플 때는 노래의 가사가 들린다는 말이 있다. 음악을 듣는 건 어떤 마음을 느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1980~90년대 포크밴드 ‘동물원’의 멤버로 활약했던 가수 김창기는 서정적인 노랫말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기타를 세심하게 매만지던 손으로 초크 대신 펜을 들고 음악과 삶에 관한 얘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자 한다.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다시 찾아온 이 절망에 나는 또 쓰려져 혼자 남아 있네.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괜찮다 말해줄게. 다 잘 될 거라고. 넌 빛날 거라고. 넌 나에게 소중하다고. 모두 끝난 것 같은 날에 내 목소릴 기억해.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일상적 언어로 담담하게 위로를 건네는 이 노래는 가수 커피소년의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다. 커피소년은 201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인디 가수인데, 위 곡은 그의 대표곡 중 하나다. 특히 이 노래는 삶에 지친 청춘들의 맘을 달래는 곡으로 당시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도 드라마와 라디오 등에서 자주 BGM으로 등장한다. 곡을 쓴 커피소년은 한 인터뷰에서 “단순한 말이지만 가사를 통해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힘을 드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노래는 듣는 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나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전달한다. 어떤 이들은 사람의 위로나 격려보다 음악이 더 큰 위로가 된다고 한다. 가수인 나 역시 내 노래를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말을 들으면 참 고맙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선 걱정이 앞선다. 진심 어린 위로를 나눌 이가 적은 것은 아닌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쌓이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고 노래에 의지하게 된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위로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위로다.
물론 위로는 쉽지 않다. 좋은 일을 축하하는 것은 익숙하고 쉽지만, 나쁜 일을 겪은 사람을 위로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고 참 복잡하다. 서투른 위로는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나 부담을 주거나, 좋은 의도와 달리 본인이 상처받을 수도 있다. 고심해서 상대방의 상황에 적절한 위로가 되는 언행을 한다고 해도 원했던 결과를 얻기는 힘들고, 얻는다 해도 시간이 걸린다.
위로는 단순하게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따뜻하고 친절한 감정을 통해서 상대의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는 행위다. 어떤 감정 상태로 향하는 논리적 행위가 아니라, 견딜 힘이 더 커졌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정적 행위다. 이를 통해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위로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로받은 이가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주어진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까? 위로의 첫 단계는 능동적인 청취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다시 일어서기 전에 울며 상처를 핥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위로의 첫 단계는 먼저 들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집중해서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하려 노력해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고, 이해받고 있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고통의 수렁에 빠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자신의 얘기에 귀 기울여주고, 잠시나마 마음을 기댈 어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보다 비언어적 표현과 행동이 더 중요하다. 친밀감, 따뜻함, 신뢰감 등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눈을 마주 보고 다정한 표정을 보여주며 신체적인 거리를 좁히는 것도 중요하다. 들어주며 상황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단계에서는 말을 아껴야 한다. 솔직하고 간결한 말로 고통을 공감하고, 이해한 상황을 정리해서 들려주고, 진심으로 걱정하고 상대방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전달해야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모른다고 말하면 된다.
시니어는 갑작스러운 은퇴와 부모의 죽음, 배우자와의 사별 등 말 못 할 아픔이 많다. 삶에서 축적된 상처의 상흔도 저마다 다르고, 원하는 위로 방식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의 위로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이도 있다. 이럴 때는 섣부른 조언보다 기다림이 필요하다. 곁에 머물면서 네 편이라는 연결감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이야기해”라는 엉거주춤한 도움보다는 가끔씩 안부와 마음의 안녕을 묻거나, 상대가 혼자 하기 힘든 일을 먼저 나서서 도와주면 좋다. 홀로 살아가는 인생에 내 편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든든한 일이 있을까? 매몰찬 현실에서 뜨끈한 손난로처럼 필요한 것이 위로가 아닐까?
내가 니 편이 되어줄게 - 커피소년
커피소년이란 이름은 짝사랑하던 여인이 좋아하던 아메리카노에서 모티프를 가져왔고, 사춘기 소년의 감수성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서 ‘커피소년’이라 작명했다. 실제로 첫 번째 곡의 제목은 ‘아메리카노에게’다. 짝사랑하던 여인이 결혼하면서 가수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KBS 2FM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 등 라디오와 방송에 그의 노래가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게 된다. 소년과 같은 목소리와 단순하지만 따뜻한 노랫말 덕분에 삶에 지친 2030세대에게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커피소년은 이제 40대 중년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특유의 감성을 잃지 않고 활동 중이다.
넷플릭스를 둘러보다가 오랜만에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작품에서 화 한 번 내지 않을 것 같은 털털한 인상의 주인공 정원은 극 중 두 번 화를 낸다. 이 가운데 두 번째 화를 내는 장면에서 정원은 어떻게 비디오를 틀어야 할지 모르는 아버지에게 화를 낸다.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아버지에게 비디오 재생 방법을 반복하여 알려주지만 아버지는 이를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이 장면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디오 하나 재생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울까.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원의 아버지에게 비디오란 지금의 인터넷 뱅킹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사람들은 조금 더 편한 삶을 위해 스마트폰과 인터넷 뱅킹 등 IT를 활용한 여러 장비와 서비스를 고안했다.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점점 더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예전 같으면 그냥 은행에 찾아가는 ‘아날로그 맨’이 되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변화 앞에 개인은 힘이 없다. 현금 결제가 기본이었던 전통시장은 생존을 위해 제로페이와 카드 기기를 놓기 시작했다. 은행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점포를 줄이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한국은행조차 은행 점포의 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제지할 정도다.
필자는 산업 매체에서 이차전지를 주 취재 분야로 삼으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이차전지 시장조사 업체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냈다. 이차전지의 쓰임새는 무궁무진하다. 전기자동차 외에도 이제 우리의 분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휴대전화, 최근 유행하는 무선 이어폰까지 모두 이차전지의 주요 시장이다.
동시에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과연 세상의 이로움에 기여하고 있는가?
몇 해 전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환경을 지키겠다며 스마트폰에 포함되어 있던 충전 케이블을 제공하지 않기 시작했다. 덤으로 어느 순간부터는 유선 이어폰까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단순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꽂기만 하던 이어폰을 쓸 수는 있다. 아직까지는. 그러나 이것도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업들은 환경보호를 말하지만 사실은 스마트폰 제품의 제조 비용을 줄이고, 액세서리 구매로 인한 부차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까운 미래,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무선 충전으로 충전하라며 아예 단자가 없는 제품을 출시할 것이다. 이젠 선택의 여지 없이 유선 이어폰 대신 무선 이어폰을 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몰라 헤맬 것이다. 단순하게 살 권리가 사라지고 있다.
너무 앞선 걱정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서 배터리 탈착형 스마트폰의 장점을 강조하다가 슬그머니 일체형 스마트폰을 내놓은 국내 스마트폰 업체들을 떠올려보자. 이제는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대신 충전기를 끼워야 한다.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수리센터에 가서 전지를 교체해야 한다. 소비자는 선택권을 박탈당했다. 이런 전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드웨어(HW)의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개인용 IT 단말기, 즉 스마트폰의 HW는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폭넓은 다양성을 지원한다는 데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실버폰’이라는 이름의 제품이 따로 나왔던 과거 피처폰 시대와는 또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이 기존 스마트폰을 활용한 장년 및 노년층의 접근성을 높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구형 스마트폰을 활용한 아동용 스마트폰 제품에서 이미 활용 중이다.
스마트폰의 UI 외에도 다양한 시스템의 접근성 확보 방법이 필요하다. 가까운 예로 ARS 방문 인증을 볼 수 있다. 현재 2년째 전 세계를 강타 중인 코로나19의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는 QR인증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QR 외에도 우리는 ARS 전화 인증 방식을 병행한다. ARS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그 전화번호를 목록화하여 기록을 남기는 방식이다. QR 체크를 어려워하는 고령층에게 이는 아날로그식 인증 방법인 셈이다.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한 디지털 인증, 어디서 들어본 방법인 것 같다면 정답이다. 바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합성을 뜻하니 디지로그(Digi+log)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장년층 이상의 문화 코드에 알맞은 아날로그 감성의 시스템을 만든다면 장년층이 필요로 하는 첨단 서비스를 보다 편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며 장년층 이상 세대는 앞으로 사회생활을 지속하며 생산 활동과 소비 활동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들에게 최적화된 IT 접근성은 곧 첨단 서비스에 대한 소비층의 확대를 의미한다. 앞선 전통시장의 예에서 밝혔듯 이들 역시 생산 활동을 위해, IT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들에 대한 IT 접근성 확보는 이제 IT 업계에는 시장 확보, 정부에는 기본권 보장과 같은 의무 사항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30대 초반으로 나온 정원의 세대는 지금쯤 50~60대에 접어들었다. 이들은 이제 비디오 재생 대신 복잡한 액티브엑스를 깔며 인터넷 쇼핑 또는 인터넷 뱅킹을 해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코로나19 방문인증 및 접종인증을 하며 IT 접근성에 어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정원의 아버지처럼 자녀 세대에 계속해서 부탁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부모에게 최신 기기 사용법을 매일 가르쳐주거나 대신 해줄 수 있는 세대는 1~2인 가구의 증가로 거의 사라졌다. 편리해 ‘보이는’ 세상이 아니라 남녀노소가 ‘편리하게’ IT 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본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0'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지속 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이혼 건수는 3만8446건으로 전체 이혼 가운데 34.7%를 차지했다. 이혼한 부부 3쌍 중 1쌍은 황혼이혼인 셈이다. 이혼 연령도 높아졌다. 남성의 평균 이혼 연령은 1990년 36.8세에서 지난해 48.7세로 올라갔고, 여성도 32.7세에서 45.3세로 높아졌다.
이처럼 늦은 나이에 이혼을 결심하는 부부가 많아지는 데에 전문가들은 기대 수명이 80대가 넘는 장수 시대가 한몫했다고 말한다. 현재 50~60대에겐 ‘늙어서 이혼해 뭐하나’보다는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인생 20~30년이 있다’라는 논리가 더 통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 한승미 법무법인 승원 이혼 전문 변호사는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여생이라도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황혼이혼이 많아졌다”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경제적 능력 향상과 사회 분위기의 변화 역시 황혼이혼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혼자 살아갈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여성 또는 이혼을 치부처럼 여겼던 사람들이 많아 불행한 결혼을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적인 관념이 약해짐과 동시에 이혼의 이미지가 개선되어 이혼을 자연스러운 개인의 선택으로 여기는 사회적 풍조가 형성됐다.
젊은 세대의 결혼율 감소, 고령화와 맞물려 황혼 이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급격히 늘어날 전망이다. 한승미 법무법인 승원 이혼 전문 변호사는 “결혼을 하지 않는 청년층이 증가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황혼 이혼 비중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며 “실제로 과거에 비해 이혼 상담을 의뢰하는 황혼부부가 훨씬 많아진 추세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온 만큼 서로 합의에 따른 협의이혼을 진행하면 좋겠지만, 이혼 여부 자체나 재산분할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재판상 이혼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재판상 이혼은 조정 이혼 절차와 이혼소송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유책 배우자 위자료 청구, 제소 기간 잘 따져야
재판상 이혼은 부부 당사자 중 한 사람이 이혼을 반대할 때에도 법률상 이혼 사유가 인정된다면 이혼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혼인 파탄에 대해 책임이 있는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유책 배우자에게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금인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으므로 상대방의 유책 배우자 여부를 면밀히 판단해야 한다. 다만 설령 상대방의 잘못으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유책 사유가 발생한 시점이 지나치게 오래전이라면 이혼 청구가 불가능할 수 있어 이혼사유별 제소 기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외도를 사유로 이혼소송을 할 때에는 외도를 안 날로부터 6개월 또는 외도가 있던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용서를 한 부정행위를 근거로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재산분할’이 주요 쟁점... ‘기여도’ 중요해
사실 황혼이혼을 다루는 재판상 이혼에서는 유책 배우자의 위자료보다는 부부의 공동재산을 나누는 재산분할이 가장 큰 쟁점 된다. 한 변호사는 “위자료의 경우 아무리 명백한 유책 사유가 있어도 액수가 크지 않다”라며 “황혼의 재산분할은 길었던 혼인 기간만큼 함께 축적해온 재산도 많아 액수도 크고 분쟁의 소지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재산분할은 유책 사유보다는 혼인 기간 동안 재산을 형성하고 유지·증가시키는데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재산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가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 필요한데, 기여도는 외부 경제활동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즉, 전업주부라고 해도 가사 노동과 육아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므로 50%에 가까운 재산 기여도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혼재산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부부가 혼인 기간 가운데 공동으로 쌓은 재산에 한한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 또는 혼인 전부터 갖고 있던 특유재산의 경우는 재산분할에 포함되지 않는다. 다만 해당 재산을 유지하고 증식하는 데 배우자가 기여한 바가 있으면 기여도만큼의 분할 요구를 할 수는 있다.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은 현금, 부동산뿐만 아니라 주식, 연금 등 거의 모든 자산이 포함된다. 다만 일반 자산 외에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채무 역시 재산분할에 포함되니 주의해야 한다.
아직 수령하기 전인 배우자의 퇴직금이나 연금에 대해서도 자신의 몫을 주장할 수 있다. 분할연금은 전 배우자의 노령연금(수급연령이 됐을 때 받는 국민연금)을 나눠 받도록 한 연금제도다. 분할연금을 수령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한 변호사는 “이혼한 배우자와의 혼인 유지 기간이 5년 이상이어야 하며, 분할연금 신청자 본인과 이혼한 배우자가 모두 노령연금 수급 연령에 도달해야 하는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산 명의가 공동명의가 아닌 일방 배우자로만 되어 있다면 이혼소송 과정에서 재산 처분이나 은닉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한 변호사는 “부부관계가 틀어진 후에 배우자에게 공동명의를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며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이혼의 조짐이 보인다면 상대방 명의로 된 재산의 가압류 또는 가처분 신청을 미리 해 두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긴긴 산중 살림을 정리하고 충주 시내 복판에 있는 아파트를 정처로 삼은 것도 어쩐지 그답지 않지만, 술을 자못 꺼리는 기색이야말로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마주 앉자마자 술부터 목으로 털어 넣는 게 김성동(75)의 관습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객이 들고 간 술병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6, 7년 만에 재회한 참이다. 완연하기론 무자비한 세월이 그를 훑고 지난 뒷자리의 스산함이다. 백조 털처럼 희디흰 머리칼이야 개결한 느낌을 주지만, 눈빛에 실린 기운은 예전과 딴판이다. 억병으로 취하고도 몽롱해지는 일 없이 시퍼렇던 눈빛에 이젠 우수와 피로가 반반씩 얹혀 있다.
김성동은 시대가 낳은 소설가다. 시대를 대표할 지경으로 이름을 드날린 작가이기도 하지만, 질곡의 한 시대가 그를 문학의 바다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친이 살았던 시대의 파랑이 그에게까지 엄습해 평생의 족쇄로 작용했다.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문학이라는 쪽배를 얻어 타지 않았다면 벗어나기 어려웠을 굴레였다.
“나 같은 출신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었겠나? 좀도둑, 부랑아, 또는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기 십상이었다. 나에겐 그나마 재능이라는 게 있어 타락하지 않고 소설가로 살아온 셈이다.”
김성동이 말하는 ‘출신’이란 실로 광기에 찬 시대의 산물이며 천형처럼 가혹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빨갱이’의 자식, 불온한 씨앗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좌익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와중에 처형됐고, 남편의 이념과 이상을 공유했던 어머니 역시 지역의 여성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한 죄목으로 옥살이를 했다. 할아버지와 큰삼촌 역시 좌익 간부였다. 집안이 통째 소용돌이에 뛰어들었으니 이후의 풍비박산과 후유증의 크기와 깊이에 대해선 두말하면 잔소리. 김성동은 철들기 전부터 철창 없는 감옥 같은 세상에 던져졌으며, 철들고 나서는 두려움과 외로움 외에 자신의 내면에 들어 있는 정서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저주와도 같은 붉은 낙인. 삐딱한 시선들. 전망 부재의 미래. 무엇보다 괴로운 건 연좌제의 사슬이었단다.
“연좌제에 묶여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웠다. 공무원으로 취직할 수 없었고, 군인이 되더라도 장교가 될 수 없었으며, 사법고시에 붙을 경우에도 임용의 길이 막혀 있었다. 이게 연좌제에 따른 ‘삼불(三不)의 덫’이다. 출세를 꿈꾸기는커녕 당장의 호구지책이 막막했지. 그래 고3 때 출가해 절밥을 얻어먹고 살았다. 절 아니고는 갈 곳이 없었고, 중 아니고는 할 짓이 없었던 거다.”
승려 생활을 하다가 소설가로 등단했지? 장편 ‘만다라’로 문단과 대중을 사로잡았고.
“세상에서 박수를 치더라고. 돈과 명예도 얻었다. 이렇다 할 ‘쯩’을 가지기 힘들었던 나에게 소설가라는 ‘쯩’이 주어진 건 하나의 활로였다. 연좌제가 나를 문학으로 밀어 넣은 셈이다.”
2018년엔 6권짜리 대하소설 ‘국수’(國手)를 출간해 저력을 과시했다. 자그마치 27년간의 집필을 통해 완간한 이 소설로 선생의 존재감이 새삼 부각됐다. ‘국수’를 완간한 감회가 각별했겠다.
“일을 좀 해냈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미심쩍긴 하지만 비로소 말년에 소설을 좀 썼다는 기분, 그런 거.”
미심쩍다?
“제대로 된 소설이 아니라는 얘기다. 원래 15권으로 완성을 보려 했으나 미완에 그쳤으니까. 한 시대의 뒤안길에서 이름 없이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강대하로 펼치고자 한 의도에 미달한 작품이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보다 아쉬운 건 순수한 조선말을 더 많이 찾아내 문장에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있을까?”
‘국수’는 조선 말엽의 정치사회적 격변을 민중사적 관점으로 세밀하게 풀어헤친 작품이다. 세월 따라 허공으로 흩어진 전통사회의 토속어들을 푸짐하게 되살려내기도 했다. 고고학자가 유물을 발굴하듯이 지독한 집념으로 수집한 조선말을 문장에 대대적으로 도입했는데, 이는 ‘국수’가 가진 정체성의 핵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휴가 때 손에 든 책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대중의 관심을 사기도 했다.
나는 김성동 소설의 애호가지만 ‘국수’를 다 읽지 못했다. 조선말들의 도도한 행진에 질려서다.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토속어들은 아름답고 고귀하지만 소화하기 어렵더라. 평단의 반응은 어땠나?
“반응? 평론? 그런 거 거의 없었다. 평론은 고사하고 ‘국수’를 완독한 평론가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 순수한 우리말들 앞에서 다들 그냥 나가떨어진 것 같다.”
진땀을 빼게 하는 작품이 ‘국수’만은 아니다. 김성동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는 구도소설 ‘꿈’에서도 조선말을 소낙비처럼 쏟아냈다. 원로작가 서정인은 ‘꿈’에 대해 말하길, ‘이를 악물고 읽었지만 완독에 실패했다’고 했다.
쉽게 읽히면서도 재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선 독자들의 환심을 사기 어려운 게 요즘의 독서 시장이다. 조선말을 과도하게 구사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전혀! 조선말에 관한 나의 관심은 신앙에 가까울 정도다. ‘찔레꽃머리’라는 조선말의 뜻을 아나? ‘모내기철’을 뜻하는 단어인데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조상들이야말로 타고난 시인이었다.”
언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한다. 시대의 감수성을 반영하며 자생적으로 유전한다. 게다가 한글은 어떤 말이든 흡수하는 포용력을 갖고 있지 않나?
“요즘의 우리말은 이미 왜색과 양색에 물들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적어도 시인과 소설가라면 모국어의 원형을 지켜낼 책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나? 순교처럼 치열하게.”
작가라면 다들 개성을 돋우기 위해 방울방울 피를 뿜듯이 글을 쓴다. 한국 작가들의 소설 품질에 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자기만의 빛깔을 내는 작가가 드물더라. 하나같이 영어나 일본어 번역체 문장에 길들여져 개성을 느끼기 어렵다. 저자의 이름을 가리고 작품을 읽어보면 한 사람이 쓴 소설처럼 문체가 다 똑같더라고. 문장 한 줄만 읽고도 누구의 작품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가 하나라도 있던가?”
김성동은 널찍한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햇살을 비스듬히 받으며 의자에 고즈넉이 앉은 그의 몸에 음영이 짙게 드리워져 한 점 조각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벽마다 가득 채워진 책장. 심심파적으로 쓴 서예들. 그가 ‘성자’라 부르는 부모님 사진들.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그가 새벽마다 그 앞에 좌정하는 미륵불상 하나. 예전의 산중 살림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집 안 풍경이지만 뭔가 밋밋한 분위기다. 문장의 미화 작업에 도가 튼 반면, 환경미화엔 젬병이라 그저 어질러놓고 사는 건 여전하지만 생기의 함량이 예전과 다르다. 전에는 발이 달렸는지 날개가 달렸는지 책들이 우르르 책상과 방바닥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다. 육필 원고 더미들이 덩달아 생동하는 스텝을 밝았다. 말하자면 전엔 창작 열기로 후끈했다. 그가 사는 곳이 창작의 천국 아니면 지옥임을 알게 했다. 한데 지금은 공기가 다르다.
연좌제와 사찰이 글 쓸 힘을 추동해
내가 아는 김성동은 소설이라는 기저질환을 앓는 이다. 온몸으로 소설의 현(鉉)을 탄주하는 인물이다. 소설이 써지지 않으면 마치 지구에 빙하기가 도래한 듯 몸을 떨며 절규하고, 날밤을 지새워 술을 마시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작품에 사무쳐 각혈과도 같은 넋두리를 토하기를 밥 먹듯이 하던 사람이다. 그의 술타령은 과도해 징그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순정한 문학정신엔 경이로웠다. 그런데 이제 소설을 손에서 놓았나? 75세란 물러설 나이? 그가 말하길 “힘이 빠져 소설을 쓸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소설은 기운이 있어야 쓸 수 있다. 난 ‘국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 나이도 있고, 이제 일을 벌이기보다 정리하는 단계다. 절대적인 에너지를 갖고 소설에 몰입했던 시절은 저문 셈이다. 여전히 글을 쓰긴 한다. 소설 대신 역사 에세이를.”
올해 72세인 하루키는 새벽마다 1시간씩 마라톤을 한다더라. 재능보다 체력으로 승부를 내는 세계, 그게 소설 쓰기의 한 측면일지도.
“힘이 달리면 글을 물고 늘어질 수 없다. 단어 하나를 끝없이 파고드는 게 나의 글쓰기인데 그게 되지 않더라고. 몇 날 몇 밤씩 육필 원고를 쓸 수 있었던 과거의 체력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술 마시기도 힘에 부치더라.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필름이 딱 끊기거든. 뭘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소설을 쓰지 않는 선생을 예상하지 못했다. 죽는 그날까지 펜을 잡을 기세에 충천했었으니까.
“요즘 내가 평생 맛보지 못한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고? 연좌제 사슬이 풀렸기 때문이다. 2년 전에 어머니가 타계하면서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사찰(査察)에서 비로소 해방됐거든. 어머니 작고 전에는 매달 한 번씩 기관원이 찾아왔었다. 그 공적 라인이 사라지자 평온감이 몰려들더라고. 한편으로는 서운하던데!”
후련한 게 아니고 서운했다고?
“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평생 글 감옥에 갇혀 살았다. 목이 조여드는 것 같은 강박감을 가지고 소설을 썼거든. 사방팔방으로 꽉 막힌 유폐의 심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 소설이었으니까. 소설이 아니고선 살 수 없었다. 바꿔 말하자면 연좌제와 사찰이 나로 하여금 글 쓸 수 있는 힘을 추동시켰다고. 그런데 사찰이 끝나자 긴장감이 확 풀리더군. 이게 소설을 쓸 힘을 앗아간 요인이기도 하다.”
비바람의 횡포가 있어야 꽃을 피우는 나무. 그가 체화한 창작의 생태계가 그쯤? 족쇄가 사라지자 맥이 풀려 소설 쓸 맛을 잃었다는 얘기에 삶의 역설이 느껴져 씁쓸하다. 감시와 억압의 공기를 마시며 우울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뒤늦게 찾아온 평온과 고통의 산물인 소설의 빛,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값진 인생의 열매일까.
노년이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좋은 때다. 눈길이 순해지고, 적당한 둔감으로 인생을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터인데, 김성동의 구름처럼 나른한 눈빛으로 보자면 그는 어느덧 바깥보다 안을 무심히 들여다보는 일에 익숙해졌나 보다. 맵찬 언설을 예사로 쏟아냈던 그의 입에서는 이제 온순한 언어들이 데굴데굴 굴러 나온다. 이런 그를 여전히 기습하는 건 외로움, 또는 허무다.
“불경(佛經)은 가르치길 일체가 무상하니 집착을 놓으라 한다. 그러나 무슨 수로 집착에서, 욕망에서 벗어나겠나? 소설이라는 반성문을 통해 정직하게 나를 들여다보기를 거듭했지만 가벼워지기 어려웠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건 늘 외로움이라는 놈이었다. 실존의 고독, 이건 어쩔 수 없는 화두다. 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인생은 결국 허무한 것이고.”
보이는 것 없는 길 위에서 홀로 앓기. 인생사 그렇게 덧없더라는 얘기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로 인해 노인 돌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24시간 돌보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는 간병인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추세다. 이에 간병이 필요한 사람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간병인을 연결해주는 ‘간병인 중개 플랫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간병인 중개 플랫폼들은 간병인을 매칭해주는 기본 서비스에 각 기업의 특화된 기술과 독보적인 서비스를 더해 각자의 특장점을 지니고 있다.
자체 알고리즘과 교육으로 전문성 높인 ‘케어닥’
간병인 중개 플랫폼 시장을 선도하는 ‘케어닥’은 간병인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와 요양시설도 중개한다. 전국 4만여 개 요양시설 정보를 확보하고 있고, 국내 간병인의 10%가 넘는 1만5000여 명이 케어닥 서비스에 가입해 매달 2000여 명의 케어코디(간병인과 요양보호사)가 활동 중이다.
2018년 서비스를 시작한 케어닥은 지난 3년간 케어코디 약 3만 명의 활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적인 매칭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매칭 알고리즘을 통해 케어코디는 자신의 능력과 난이도에 맞는 일자리를 추천받고, 간병인을 구하는 보호자는 환자 건강 상태에 적합한 경력을 갖춘 케어코디를 우선으로 찾을 수 있다. 간병인과 환자에 대한 기본 정보 외에도 거동 여부, 인지 정도, 필요 돌봄 내용 등 22개 항목을 개인화했다.
케어닥은 이들만의 노인 돌봄 교육 커리큘럼을 통해 보호자와 간병인의 신뢰도 얻었다. ‘간병은 교육이 필요하다’라는 신념으로 전문성 개발과 간병인 문화 개선을 위해 무상으로 간병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케어닥의 케어코디는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매일 돌봄일지를 작성하고 해당 데이터를 보호자에게 공개하고 있다. 돌봄일지에는 식사, 소변 횟수 등 매일 확인해야 할 내용이 포함된다.
입찰제 매칭으로 비용 부담 던 ‘케어네이션’
2013년 설립된 ‘주식회사 에이치엠씨네트웍스’의 앱 서비스 ‘케어네이션’은 2021년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 대상 ‘간병인 매칭 플랫폼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플랫폼이다. 케어네이션은 환자의 의료 정보 및 빅데이터 기반으로 환자와 간병인을 연결해주고 있다.
케어네이션은 올해 업계 최초로 환자 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랩’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신 간병 시장 동향 및 전망을 살펴볼 수 있는 ‘대한민국 간병 동향 리포트’를 매월 발간하고 있다. 리포트에는 환자 통계, 간병인 통계, 질환별 간병 기간 등을 제공해 간병 시장 동향은 물론 질환을 가진 환자와 보호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한다.
간병인과 보호자가 서로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는 ‘간병비 입찰제 시행’ 역시 케어네이션만의 특장점이다. 간병인과 보호자는 서로 합의된 가격으로 계약하는 입찰제 기반으로 연결돼 추가비용 발생 등의 부담을 덜 수 있다.
간병비 정찰제 강점 내세운 ‘좋은케어’
헬스케어 IT 기업인 ‘유니메오’의 간병인 구인구직 플랫폼 ‘좋은케어’는 수도권 중심 상급종합병원을 포함한 50여 개의 병원의 입원환자들과 간병인들을 매칭하고 있다. 좋은케어의 특징은 기존 간병인 시장에서 천차만별이었던 비용 문제 해결을 위해 정찰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간병인 시장의 거래 투명성을 위해 서비스 론칭 전 1년 동안 시장조사를 통해 간병인 비용 통계를 내고 이를 기준으로 자격증 보유 등 조건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비용 구조를 만들었다.
좋은케어는 간병인 중개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간병인과 환자·보호자의 정신건강까지 챙기는 심리상담 서비스 ‘좋은상담’도 개발했다. 좋은상담에서는 투병, 간병 스트레스 등 고민에 대해 비대면 영상 상담을 제공한다. 전문상담 인력은 자격증, 전공, 경력 등 평가와 함께 면접을 통해 상담역량을 평가해 선발한다.
유니메오는 의사소통이 어려워 심리 상담이 불가능한 환자들을 위해 ‘멀티 모델 감정 분석 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는 시니어의 텍스트와 음성 데이터의 특징을 분석하여 시니어의 감정 유형을 분류하는 AI 모델로서, 환자의 사용 어휘, 억양 및 톤을 분석하여 그의 심리 상태를 판별할 수 있다.
그녀는 일종의 구원이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모임에 끌려다녔던 시절, 자리에 빈 병이 하나둘씩 늘어나면 신입생은 순서대로 일어나 노래를 한 곡씩 뽑아야 했다. 흥이 나는 노래는 잘 몰랐지만, 평소 즐기는 노래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당신의 의미’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인연은 인생의 주요한 길목에서 계속 힘이 되어줬다. 어려서는 이 노래의 주인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가수 이자연을 만나기로 했을 때, 혼란스러웠던 시절 힘이 되어주었던 이 노래에 대한 감사 표시는 하고 싶었다. 그간의 도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자연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견한 한 가지 특징은 바로 ‘가족’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 애틋한 마음을 오래 품고 살아서인지, 그녀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고마운 사람들을 가족에 비유하기를 즐겼다.
형제애로 다져진 나훈아와의 인연
일본에서 활동할 때 NHK 한국어 프로그램 출연의 계기가 된 재일교포 민단에서 활동하던 언론인을 ‘일본 아버지’라고 부른다. ‘일본 엄마’는 두 분이나 계신다. 4년간이나 이어졌던 일본 생활에 힘이 됐던 사람들이다. 아직 생존해 계신 일본 엄마는 여전히 안부를 챙길 정도다.
또 다른 가족 중에는 가요계의 거목 ‘나훈아’가 있다. 그녀는 “아마 전생에 형제였을 것”이라 표현한다.
“1982년 길옥윤 선생님 소개로 한일친선협회 일본 공연에 합류하게 됐어요. 거기서 나훈아 선배님을 처음 알게 되었고요. 무명이었던 제가 두 분께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나중엔 선배님과 반반씩 나눠 공연할 정도가 됐으니까요. 나훈아 선배님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많은 빚을 지고 있죠.”
일본 공연이 끝나던 1986년 이자연은 나훈아에게 큰 선물을 받았다. 온 국민이 손뼉 치며 불렀던 그 노래 ‘당신의 의미’다. 애초에 이 곡은 나훈아가 1969년 발표했던 ‘내 당신’이 원곡이다. 개사를 거치고 제목까지 바뀌었으니 ‘감히 나훈아의 곡을 개사했다’는 오해도 받았다.
“처음엔 신곡인 줄 알았어요. 나훈아 선배님이 주신 곡이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죠. 이 곡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개사된 곡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죠. 선배님이 여자 노래로 가사를 바꿨다고 설명해주시더라고요.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받아서, 나중엔 ‘내가 더 잘 불렀다’고 농을 할 수도 있었어요.”
실제로 나훈아와의 인연은 그녀가 ‘가족’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사나이 눈물’ 역시 나훈아가 불렀던 곡을 다시 받아 발표한 것이고. ‘서울나그네’는 나훈아가 작곡한 다음 날 이자연에게 곡을 소개했다가 주인이 바뀌었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빼앗다시피 졸라 곡을 얻어왔다”고 표현했다. 이자연의 곡 ‘만남과 이별’, ‘백세시대’, ‘친구야’를 만든 작곡가 박성훈도 나훈아를 통해 알게 된 인연이다.
“남들은 선배님 얼굴 한 번 보려고 티켓 구하느라 분주하고 암표도 사는데 저는 옆에서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어 늘 감사해요. 대한가수협회 회장이 되고 나서 인사드리러 갔을 때는 협회 발전기금까지 주셨으니까요. 선배님의 제자로 데뷔 때부터 계속 도움만 받으며 살고 있어요. 선배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살아요.(웃음)”
잊지 못할 인생의 버팀목, 아버지
그 많은 아빠와 엄마, 오빠와 언니 가운데 지금까지 그녀를 지탱해주는 기둥이 한 사람 있다. 진짜 가족, 바로 아버지다. 그녀가 중학생 신분으로 1973년과 1974년 지역 MBC와 KBS 노래자랑에서 최고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음반 취입까지 이뤄졌을 때 아버지는 한탄했다. 자신의 딸이 딴따라가 돼서도 아니고, 당신이 희망하는 직업을 갖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의 재능이 빛나는 분야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었기에 맘껏 지원해줄 수도, 맘 편히 응원할 수도 없어서 한스러웠다.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걱정은 어느 날 현실이 됐다. 성인이 된 이자연의 가수 선언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활동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죠. 늘 무대를 꿈꾸던 소녀였으니 제안을 마다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죠. 1년만 하게 해달라고. 그 후에는 진학을 하든 시집을 가든 아버지 뜻에 따르겠다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을 얻어 야간업소를 시작으로 무대를 찾아다녔죠.”
하지만 그 1년이라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딸은 늘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겠다’며 고집스럽게 맹세를 이어갔지만,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이 상황을 변화시켰다. 이자연은 졸지에 소녀 가장이 됐고, 가수 생활로 동생 네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전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어요. 아버진 소년 시절부터 동네에서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동네의 열성 팬 중에 외할머니도 있었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점찍어놓고 어머니와 결혼시켰어요.(웃음) 아버지는 재능을 펼쳐볼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대신 저를 내보내신 것 같아요. 노래할 때 고음에 다다르면 아버지 목소리가 나와요. 어릴 때 듣던 그 목소리 말이에요.”
꼬마 이자연은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를 꼬리처럼 따라다녔다. 그 자리에서 노동요처럼 불렸던 ‘황성옛터’나 ‘번지 없는 주막’을 배웠다. 또 아버지가 좋아하던 ‘새타령’이나 ‘릴리리아’ 같은 민요도 함께 불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들을 사이좋은 부녀는 함께 불렀고, 아버지의 노래가 좋았던 소녀는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 곡들은 이자연이 자신의 노래가 많지 않던 신인 시절 공연의 레퍼토리로 쓰였다.
“콘서트에서 이 곡들을 부를 때는 기타나 아코디언 하나만 놓고 무대를 꾸며요. 조용한 반주 속에 노래하다 보면 하늘에서 아버지가 들어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러다 보면 자꾸 눈물도 나고요. 요즘엔 공연 전에 아버지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며 무대에 오르는 것이 습관이 됐어요.”
MZ세대와 동기동창이 되다
“나 학교를 다녀볼까?” 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동생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라에 연이어 국장이 생기며 설 무대가 사라진 언니가 궁핍해졌나 걱정돼서가 아니었다. 네 명의 동생은 가수 언니를 후광 삼아 대학도 나오고 출세를 했는데, 정작 본인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늦은 나이지만 배움을 시작하겠다 선언한 것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자매는 쉬지 않고 눈물을 훔쳤다.
늦은 나이에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학부생부터 차근차근 제대로 절차를 밟아나가는 이는 찾기 힘들다. 이자연은 정공법을 택했다. EBS 교재를 손에 잡고 방송 수업으로 기초부터 공부했다.
“처음엔 당연히 어려웠죠.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고. 기초가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냥 무작정 반복해서 수업을 듣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나중엔 선생님 농담까지 외워지더라고요. 쉰 살이 넘자 공부를 제대로 못 한 것이 늘 아버지에게 죄스러웠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맘이 놓이더라고요.”
그렇게 2011년 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예술학부에 합격했다. 이자연의 11학번 동기들은 그 면면이 화려하다. BTS의 진과 배우 이종석이 대표적이다. 선배로는 샤이니의 민호, 배우 고경표가 있다. 이자연은 소속사도 없던 신입생 시절의 모습이 강렬한지 아직도 BTS 진을 ‘석진이’라고 부른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신입생 두 사람이 와서 말을 걸어주었어요. 그때 건네준 한마디가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 친구들은 모를 겁니다. 어딘가에서 제 노래를 실컷 불러놓고는 ‘열창했다’며 너스레를 떨 때는 친동생처럼 귀여워요. 아이들이 제게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제 노래 덕분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렇게 노래가 새로운 인연을 더 깊게 만들어줄 때마다 노래의 힘을 느껴요.”
이후 이자연은 대학원까지 진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도 그녀답다.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에 관한 연구 : KBS 를 중심으로’라는 다소 긴 제목의 이 연구는 가요무대에 등장한 곡들을 통해, 시기마다 사랑받은 노래들이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지 연구했다. KBS의 도움을 받아 30년이 넘는 기간을 모조리 살폈다.
“우리 대중가요는 역사적 큰 사건을 기점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노래가 많아요. 일제강점기에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한국전쟁 때는 가족을 찾는 식이죠. 역사 속에서 우리 가요가 어떻게 사랑받았는지 보면서 대중가요의 사회적 역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죠.”
가요계 보살피는 어머니로
최초의 여성 대한가수협회장. 그녀를 장식하는 또 다른 수식어다. 2018년 갑자기 공석이 된 회장직을 선출하기 위해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부회장이었던 이자연이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당시 비대위의 좌장 격이었던 협회 명예회장 남진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또다시 소녀 가장 생활을 시작하느냐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용기가 생겼어요. 그냥 집에서 내 살림하듯이 꾸려나가면 되겠구나 하는 용기가 나더라고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더 쉬워졌어요. 그래서 겁 없이 정부 기관부터 시작해 다양한 분야의 분들을 만나러 다녔죠.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하나둘씩 결과물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살림 실력이 좋았던 덕일까. 대한가수협회는 창립 64년 만에 지정기부단체로 지정받는다. 협회 후원 확보에 날개를 단 셈이다. 코로나19로 설 곳이 없어진 후배들을 위한 예산 마련에도 힘썼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전국민 희망콘서트’, ‘전국 TOP 가요쇼’ 같은 무대를 만들었다. 사라진 무대를 직접 되살린 셈이다.
“‘전국민 희망콘서트’는 드라이브스루 형식으로도 진행됐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팬과 가수가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었죠. 300여 대의 차량이 제천 활주로를 가득 메운 가운데 신나는 리듬에 차들이 들썩거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폭발적이었죠. 무대가 그리웠던 가수만큼이나 팬들 역시 우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이자연은 지난 9월 대한가수협회 제7대 회장으로 연임이 확정됐다. 그녀의 왕성한 활동이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 그녀의 관심은 협회의 새로운 사업 분야인 역사를 담을 그릇에 집중되어 있다.
“얼마 전 이미자 선생님이 이사하시면서 공간 문제로 개인적인 자료를 한 트럭 가까이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땅을 쳤어요. 이런 경우를 흔히 봐요. 스타 선배님이 돌아가시면 남겨진 유품은 모두 개인이 소장해버리고, 나중에 공익적인 목적으로 확보하려고 해도 큰돈이 들죠. 협회 차원의 ‘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료들을 확보해놓을 수 있는 자료실 정도는 만들고 싶어요.”
가요계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걱정은 많은 변화를 이뤄낼 것이다. 이렇듯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간 그녀가 인생의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결과와 성과가 증명하기 때문이다. 이자연이 좋아하는 가족에 빗대 표현하자면, 이제 그녀는 가요계에서 어머니 역할을 해나가는 중이다. 트로트라는 고질적인 명칭 문제에서부터, 협회 회원 자격 기준 정리, 신인 전통가요 가수가 넘쳐나고 있는 상황에서 원곡 가수의 권리 보호에 관한 문제까지, 그녀의 관심사는 넓고 깊다. 가요계 구석구석 어머니의 마음이 미치고 있다.